"진실한 1500단어와 진정성 없는 476자"
클린턴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의 차이


- 마음을 움직이는 사과를 듣고 싶었다, <헤럴드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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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대학에서 출판한 ≪공개 사과의 기술≫의 저자인 에드윈 바티스텔라는 좋은 사과의 예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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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클린턴 전 대통령은 터스키키연구소의 매독 연구에 이용된 흑인들에게 사과했다. (...) 1500단어에 이르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사과문은 구차한 변명없이 직설적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희생자들이 “연구에 이용당했다”, “배신당했다”, “속았다”고 표현했다. 또 “미국인을 대표해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NN은 이에대해 클린턴 전 대통령이 “마음을 움직이는 사과(emotional apology)”를 했다고 평가했다.

...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5일 최순실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박 대통령은 1분 40초간 476글자의 사과문을 읽어내려갔다.




이에대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우리는 대통령의 개인 심경이 아니라 무너진 헌정 질서를 어떻게 일으켜 세울 것인지에 대한 상황인식을 듣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국민이 알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질문도 받지 않고 들어가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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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전문 읽기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61026000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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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참고한 도서 ≪공개 사과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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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인기록용 2016-10-28 17: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 천, 수 만자의 사과문이었다 해도 과연 진심, 진실이 담겨 있었을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최순실이 개입한 건 사실이지만 별 일 아니었어'

옥스퍼드 대학의 ≪공개 사과의 기술≫에 비춰본 ‘대국민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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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대학에서 출판한 ≪공개 사과의 기술≫을 옮긴 김상현 선생님(전 <시사저널>, <주간 동아> 기자)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의 문제점을 '사과의 기술'에 비춰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하는 글을 출판사에 보내오셨습니다.

이번 대국민 사과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좀 더 명확히 알고자 하시는 분에게 권합니다.


사진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10월 25일 대국민 사과에 대해 납득이나 이해의 여론보다 비난과 반발의 여론이 훨씬 더 높다는 보도를 보았다. 또 “순수한 마음으로 한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표현이 돌연 소셜미디에에서 유행어가 됐다는 한 외국 언론의 뉴스도 읽었다.


문득 사과문의 내용이 궁금했다. 그간의 정황으로 볼 때 제대론 된 사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레짐작 때문에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주의 깊게 읽지도 않았다. 실제 잘못과 그로 인한 피해를 적시하고, 구체적인 보상/배상안과 반성의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사과의 기본 요건이, 특히 정치 판에서는 자주 무시되고, 대신 모호하고 무의미한 선언과 수사로 포장된 ‘거짓 사과’로 귀착되곤 하는 현상을 워낙 자주 보아 온 탓도 그런 무관심에 한몫 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 대통령의 소위 ‘대국민 사과’는 ‘사과’라는 표현을 붙이기조차 민망한 수준이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구체적 설명뿐 아니라 후속 조치도 전혀 없어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는 야당 측의 주장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얼마전 졸역한 ≪공개 사과의 기술≫에 기대어 박 대통령의 이른바 ‘사과’를 바라보면 그 실체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과문 전문 

엇보다 놀라운 것은 사과문의 길이다. 이게 정말 전문일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짧다. 바티스텔라 교수에 따르면 완전한 형태의 사과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담고 있다.


(1) 사과하는 이의 수치심과 유감 표명
(2) 특정한 규칙 위반의 인정과 그에 따른 비판 수용
(3) 잘못된 행위의 명시적 인정과 자책
(4) 앞으로 바른 행동을 하겠다는 약속,
(5) 그리고 속죄와 배상 제시


위와 같은 요소들에 비춰 본다면 박 대통령의 사과는 어느 대목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


송구스럽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와 같은 표현이 대통령의 유감을 제대로 표명했을까? 저 간략한 사과문조차 생방송이 아닌 녹화 방송으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송구’와 ‘사과’에 얼마만큼 진심이 배었을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3)도 마친가지. 박 대통령이 언급한 최순실의 개입 사실은 한없이 사소하고 심상하게 들린다. 뭇 언론이 앞다퉈 보도한 최순실의 국정 농단의 실상, 그에 대해 국민이 체감하는 심각성의 수준과는 사뭇 동떨어진 어조이다.


(4)(5)의 요소는 사과문에 아예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사안을 바로잡겠다는 언급 자체가 없다. 저 사과문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최순실이 개입한 건 사실이지만 별 일 아니었어, 그러니 입 닫아’ 정도가 될 것 같다.


바티스텔라 교수는, 사과는 어느 단계에서든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잘못에 대한 쌍방 당사자들의 상호 이해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쌍방은 박근혜 정권과 국민이다. 상호 이해가 결여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내던지듯 나오는 사과는 사과자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잘못의 내용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엉뚱한 사안에 대해 사과하려 하거나, 진짜 사과가 불완전하거나 모호해서 진심이 빠지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이번 사과는 구체성과 진정성의 차원에서 뿐 아니라, 잘못의 내용을 제대로 규명하려는 아무런 의지나 약속이나 계획도 없이 미봉책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명맥히 실패작이다.


_ 《공개 사과의 기술》 옮긴이 김상현

(블로그 http://northshor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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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읽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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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공개 사과의 기술》저자 인터뷰


"유감과 통감은 사과가 아니다., ‘개, 돼지’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는 정치인의 경우, 몇 년 동안 개선된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11/20160811018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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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6-10-27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람 순실이 없어서 요즘 옷은 어떻게 입고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문예출판사 2016-10-28 09:26   좋아요 0 | URL
에휴 정말 부끄러운 대통령입니다. 최순실이 없어서 요즘 잠은 자는지 모르겠네요. 에휴....

매너나린 2016-10-27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공개사과 연설문은 최순실의 지시를 못받아서 저리 어눌한가 보네요.

문예출판사 2016-10-28 09:30   좋아요 0 | URL
어눌하고 진정성도 없죠.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식민지 조선의 풍경을 그린 
요절한 일본의 천재 작가
나카지마 아쓰시를 아시나요?


제2의 아쿠타가와로 말해지는 나카지마 아쓰시. 중국 고전을 근대적으로 해석한 그의 작품은 60여 년 동안 일본 교과서에 수록되었으며, 이문열 작가님은 《세계명작 산책》을 통해 그의 소설을 세계의 명작으로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故신영복 선생님은 그의 작품을 직접 번역하여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하셨죠. 이책은 신영복 선생님의 번역본 보다 더 많은 단편 소설을 담고 있는데요. 특히 식민지 조선의 풍경을 담은 단편이 추가되었다는 점이 강점입니다!


조선의 호랑이 사냥에 관한 <범 사냥>, 조선인 순사에 관한 <순사가 있는 풍경>과 같은 작품은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그린 대표작으로 지배자인 일본인과 피지배자인 조선인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역사 그리고 근대적으로 해석된 중국 고전에 관심이 있거나 영화 [밀정]과 [대호] 등을 흥미롭게 보신 분이라면 아쓰시의 단편집을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 책소개

 

 

호랑이로 변해버린 시인의 참회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짧지만 강렬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
― 일본 교과서에 수록되어 삶의 복잡한 단면을 깨우쳐준 국민 소설


중국의 고전에서 제재를 가져다가 번뜩이는 지성으로 작품을 빚어내 제2의 아쿠타가와로 불리는 나카지마 아쓰시의 대표작을 모은 단편집이 출간됐다. 특히 이번 단편집에는 나카지마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산월기〉, 〈이릉〉, 〈제자〉 등 중국 고전을 소재로는 한 작품 9편 외에도,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 조선의 풍경을 다룬 소설 세 편(〈범 사냥〉, 〈순사가 있는 풍경 – 1923년의 한 스케치〉, 〈풀장 옆에서〉)을 새롭게 수록해 국내 독자에게 나카지마 아쓰시의 색다른 면모를 선사하고 있다.


나카지마는 일본 교과서에 실린 국민 소설 〈산월기〉의 작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 작가이기도 하다. 나카지마가 한문교사인 부친을 따라 1920년 경성으로 건너와 중학 6년의 시절을 조선에서 보낸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했던 시절을 경성에서 보낸 나카지마는 경성을 배경으로 세 편의 소설을 남겼다. 이 작품들에서 나카지마는 고뇌하는 지식인의 냉철한 시선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모순을 짚어냄과 동시에 당시 비참했던 조선의 현실을 묘사하고 있어 우리에게도 중요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고전을 근대소설로 새롭게 탄생시키다

나카지마 아쓰시를 대표하는 작품 〈산월기〉를 비롯해 그의 많은 작품들이 중국 고전에서 소재를 가져왔다. 나카지마는 중국 고전에서 소재를 찾되, 그 작품에 근대인의 시각을 부여해 오래된 이야기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에서 근대를 사는 우리들의 가슴에 길이 남을 삶에 대한 지혜를 담아내고 있다.


나카지마의 대표작 〈산월기〉는 호랑이가 되어버린 시인의 이야기를 통해 아무리 수재라도 절차탁마와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고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을 그대로 방치할 때, 그 사람은 더는 사람이 아니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 안의 호랑이를 키우면 그 내부의 악이 나를 지배하게 되어 인간이 아닌 짐승의 모습으로 짐승의 목소리를 내며 사람을 해치게 된다. 〈산월기〉 속 호랑이의 울부짖음은 이 세상의 모든 시인, 혹은 오만함에 빠진 이들에게 들려주는 경각의 소리다.


〈이릉〉은 흉노에 잡혀 생을 마감한 한나라 장수 이릉과, 그 이릉을 두둔했다가 궁형을 받은 《사기》의 저자 사마천, 그리고 끝내 절개를 지키다 귀국한 소무라는 세 인간상을 보여준다. 갑자기 닥친 일생의 큰 고난 앞에서 어느 인물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관점에서는 친일 인사와 독립지사 등의 인물로 대치해서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제자〉는 공자의 수제자인 자로에 대한 작가의 애틋한 마음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사제 간의 뜨거운 정에 대한 이야기이며, 기회주의자처럼 교활한 머리는 갖지 못했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맡은 일에 열정을 다 바치고 산화한 인물 자로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의 풍경을 담다

나카지마 아쓰시가 그린 식민지 조선의 풍경은 이 땅의 일본인과 조선인의 내부를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더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934년 발표된 〈범 사냥〉은 조대환이라는 조선인 친구와 주인공 ‘나’, 그리고 ‘나’의 아버지 등의 인물을 통해 일본 식민지 정부가 내세운 ‘일선융화’의 허구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나’의 아버지는 일선융화를 말하면서도 ‘나’가 조대환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등 겉과 속이 다른 식민지 지배자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인 학교를 다니는 조대환이 선배에게 불려가 맞는 모습에서도 ‘나’는 선배와 조대환이라는 중학생끼리의 문제가 아닌 강한 일본과 약한 조선이라는 식민 지배의 모순된 구조를 읽어낸다.


이러한 시선은 〈순사가 있는 풍경〉으로 이어진다. ‘1923년의 스케치’라는 부제가 붙은 이 단편은 조선인 순사의 눈을 통해 당시의 풍경을 스케치한 작품이다. 전차 안에서 일본 중학생이 조선인 순사를 깔보는 장면, 일본 여성이 조선인을 비하하는 표현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면서 ‘요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장면, 경성부 의회 선거에 나선 한 조선인이 유세장에서 일본인에게 조선인이라고 무시당하면서도 자신은 일본인이라고 강하게 항변하는 모습, 동경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을 조선인 매춘부의 입으로 폭로하는 장면 등은 식민지에서 지배-피지배의 권력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느낄 수 있게 한다. 나카지마 아쓰시가 조선을 다룬 작품은 당시 일본인과 조선인의 복잡한 내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제 식민지시기를 살펴보기 위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인생의 복잡다단함을 깨우쳐주는 작품
나카지마 아쓰시는 역사 속 인물들을 통해 세상이 흑과 백으로 쉽게 나눠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 사회에서 사람들이 갈등하는 것은 그런 복잡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데 큰 원인이 있다. 흑과 백뿐만 아니라 노랑과 빨강 등 많은 색이 그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 때에야 비로소 타인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지고, 그 이해는 화해와 통합으로 연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물이 처한 복잡다단한 측면을 생생하게 살려낸 나카지마 아쓰시의 작품은 인생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통찰력을 제시해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차례

 

중국의 고담 
산월기 
이릉  
제자  
영허 
명인전 
우인 
요분록 
문자화 
호빙


식민지 조선의 풍경 
범 사냥  
순사가 있는 풍경 -1923년의 한 스케치 
풀장 옆에서


해설 
연보

 


■ 본문 엿보기

 

■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가진 약간의 재능을 다 허비해버렸던 셈이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나 길지만 무언가 이루기에는 너무나 짧다는 둥 입에 발린 경구를 지껄이면서도, 사실은 부족한 재능이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각고의 노력을 꺼린 나태함이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나보다 훨씬 재능이 부족한데도 오로지 그것을 열심히 갈고닦아서 이제는 당당한 시인이 된 자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호랑이가 되어버린 지금에야 나는 겨우 그것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타는 듯한 후회를 느낀다. -〈산월기〉 중에서, 17쪽

 

■ 그러나 궁형은, 그 결과로 이렇게 되어버린 내 몸의 모습이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같은 불구라도 다리가 잘리거나 코가 잘린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이다. 이것만은, 신체가 이러한 상태라는 것은 어떠한 각도에서 보아도 완전한 악이다. 말을 둘러댈 여지가 없다. 마음의 상처뿐이라면 세월이 지나면서 치유되기도 할 터이나, 내 신체의 추악한 현실은 죽을 때까지 지속할 것이다. 동기가 어쨌거나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결국 ‘잘못되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어디가 잘못되었나. 나의 어디가? 어디도 잘못되지 않았다. 나는 바른 일밖에 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단지 ‘내가 있다’는 사실만이 잘못된 것이다.-〈이릉〉 중에서, 49쪽

 

■ 처음에는 참으로 천하고 우습게만 비치던 호지의 풍속이, 이 땅의 실제 풍토와 기후 등을 배경으로 생각해보면 결코 천하지도 불합리하지도 않다는 것을 이릉은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두꺼운 가죽의 호복(胡服)이 아니면 북방의 겨울을 견디기 어렵고, 육식이 아니면 호지의 추위를 견뎌낼 힘을 얻지 못했다. 고정된 가옥을 짓지 않는 것도 그들 생활 형태에서 비롯된 필연으로, 무조건 저급하다고 비방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인의 풍습을 끝내 지키려고 한다면, 호지의 자연 속 생활은 하루도 지속할 수가 없다. -〈이릉〉 중에서, 62쪽

 

■ 이 사람과, 이 사람을 기다리는 시운 時運을 보고 울었던 때부터 자로는 결심했다. 탁세의 모든 침해로부터 이 사람을 지키는 방패가 될 것을. 자신을 정신적으로 인도하고 지켜주는 보답으로, 공자의 세속적인 노고와 오욕을 일체 자신의 몸으로 받아낼 것을. 외람되지만 이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학문과 재능은 많은 후배들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무슨 일이 생길 때 가장 앞장서서 공자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바칠 사람은 바로 자신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제자〉 중에서, 98쪽

 

■ “강한 게 뭐고 약한 게 뭐란 말이야. 응? 정말로.”
(…)
이제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모두 얼어버리겠지 등을 생각하며 수면을 바라보던 나는, 그때, 문득 그가 아까 한 말을 떠올리고 그 숨겨진 의미를 발견한 듯하여 깜짝 놀랐다. ‘강한 게 뭐고 약한 게 도대체 뭐지?’라는 조의 말은, 하고 나는 그때 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단지 현재 그 한 개인의 경우에 관한 감개만은 아니지 않은가.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나의 지나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숙하다고는 하지만, 겨우 중학교 3학년 말에 그런 의미까지 생각한 것은 아무래도 그를 과대평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항상 자신의 출생에 둔감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은 매우 민감한 조 군이고, 또 상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의 일부도 그것에 원인을 돌리곤 하던 그를 잘 아는 나였으므로, 내가 그때 그런 식으로 생각한 것도 반드시 무리한 생각은 아니었다. -〈범 사냥〉 중에서, 211쪽

 

■ “모두 알아요? 지진 때의 일을.”
그녀는 큰 소리를 지르며 어젯밤 들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녀의 머리는 흐트러지고 눈에는 핏줄이 섰으며, 게다가 이 추위에 잠옷 바람이었다. 통행인은 그 모습에 놀라 그녀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래서요, 놈들은 모두, 그것을 숨기고 있었어요. 정말로 놈들은.”
마침내 순사가 와서 그녀를 체포했다.
“어이, 조용히 하지 못해? 조용히.”
그녀는 순사에게 달려들더니 갑자기 슬픔에 복받쳐 눈물을 펑펑 흘리며 외쳤다.
“뭐야, 너도 같은 조선인이잖아, 너도 너도…….”  -〈순사가 있는 풍경-1923년의 한 스케치〉 중에서, 246쪽

  

 

 

■ 지은이 소개

 

​나카지마 아쓰시(中島敦, 1909~1942)
1909년 도쿄 출생. 1920년에 용산중학 한문 교사로 부임한 부친을 따라 경성으로 건너와 용산소학교를 거쳐 경성중학에 입학, 4학년 수료 후 1926년 도쿄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경성을 떠났다. 1933년 도쿄제국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요코하마 고등여학교의 교사를 거쳐 일본 식민지 팔라우 남양청에서 서기로 교과서 편찬 작업을 했다. 1942년 귀국하여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나 지병인 기관지천식으로 33세로 요절했다. 대표작 〈산월기〉는 전후부터 지금까지 일본 교과서에 늘 실리는 ‘국민교재’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번뜩이는 지성으로 빚어낸 그의 작품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으며, 특히 소년기를 조선에서 보낸 경험에서 나온 〈범 사냥〉을 비롯한 세 작품은 우리에게는 필독 작품이 아닐 수 없다.


■ 옮긴이 소개

 

김영식
작가・번역가. 중앙대 일문과를 졸업했다. 2002년 계간 리토피아 신인상(수필)을 받았고 블로그 ‘일본문학취미’는 2003년 문예진흥원 선정 우수문학사이트로 선정되었다. 역서로는 《라쇼몽》(아쿠타가와 류노스케, 2008),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나쓰메 소세키, 2011), 《기러기》(모리 오가이, 2012, 이상 문예출판사), 《무사시노 외》(구니키다 돗포, 을유, 2011), 《조선》(다카하마 교시, 소명, 2015) 등이 있고, 저서로는 《그와 나 사이를 걷다-망우리 사잇길에서 읽는 인문학》(호메로스, 문광부 우수교양도서)가 있다. 산림청장상(2012,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리토피아문학상(2013, 계간 리토피아), 서울스토리텔러 대상(2013, 서울연구원) 등을 수상했다.
블로그: blog.naver.com/japanl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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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링에서 쓰러져 본 남자를 위한 소설이 여기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한
헤밍웨이 단편선 《여자 없는 남자들》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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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영감을 받아 같은 제목의 단편집을 낸 것으로도 유명한 이 책은, 헤밍웨이 자신이 1927년 단행본으로 엮어 출판한 《여자 없는 남자들(Men Without Women)》 원본 그대로를 최초 완역한 작품으로 의미가 깊습니다.

헤밍웨이는 이 단편집에서 인생이란 링에 선 다양한 남자들을 묘사합니다.

포기를 모르는 남자, 여자에게 관심 없는 남자, 동성애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 등 다양한 남자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는 담겨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인생이란 링에 서서 무언가와 맞서 싸우려는 남자들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생의 아픔을 느껴 본 남자들의 속마음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남자들만의 세계를 이만큼 잘 그려낸 작품도 없을 것 같은데요.

인생의 아픔을 느껴본 남자,
남자를 알고 싶은 남자,
그리고 남자를 이해하고 싶은 여성분에게 이 책을 살짝 권하여 봅니다.
^^

▶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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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 노벨문학상, 퓰리처상 수상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한 헤밍웨이 단편선!
1927년 헤밍웨이가 엮은 원본 최초 완역 출간

자연주의적·폭력적 주제나 사건을 냉혹한 자세로 표현하는 하드보일드 문학을 상징하는 작가 헤밍웨이의 대표 단편선 《여자 없는 남자들》이 출간됐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영감을 받아 동명의 단편집을 낸 것으로도 유명한 이 책은, 헤밍웨이 자신이 1927년 단행본으로 엮어 출판한 《여자 없는 남자들(Men Without Women)》 원본 그대로를 최초 완역한 작품으로 의미가 깊다.


단편작가로서도 높이 평가받았던 그는 이 단편집에서 여자에게 초연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맞서 싸우며, 동성애에도 관심을 보이는 ‘여자 없는 남자들’을 그린다. 이것은 사실과 허구, 부드러움과 강인함, 죽음과 생명, 여자와 남자, 전쟁과 평화 사이의 갈등을 첨예하게 느끼며 예술적 조화를 모색하던 1920년대 헤밍웨이의 모습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남자들의 이야기만을 엮은 이 독특한 형식의 단편소설을 통해 헤밍웨이가 빚어낸 간결하고도 힘찬 단편문학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 《여자 없는 남자들》인가?

​이 책은 헤밍웨이가 1927년 10월 14일에 열네 편의 단편소설을 묶어 단행본으로 출판한 《여자 없는 남자들(Men Without Women)》의 완역본이다. 헤밍웨이 단편집으로는 첫 번째 단편집인 《우리들의 시대에 (In Our Time)》(1924)와 마지막인 세 번째 단편집 《승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마라(Winner Take Nothin)》(1933)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아주 중요한 단편집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만으로 엮은 구성이 독특할 뿐더러, 극한의 상황에 남자들을 몰아넣으며 삶의 허무 속에서도 자유의지와 의미 있는 선택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이유를 밝히는 형식을 통해, 헤밍웨이 후기 대작인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태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헤밍웨이가 엮은 단편들은 이런저런 형태의 단편선집으로 편집되어 현재 국내 출판시장에 여러 권이 나와 있다. 그러나 기존 도서와 이 번역본의 차이점은 헤밍웨이의 여러 단편들 중에서 역자가 임의로 뽑아서 편집한 것이 아니라 1927년에 발간된 《여자 없는 남자들》의 열네 편 전편을 있는 그대로 완역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한 것은 단편집 형태 그대로, 즉 단편집에 들어 있는 순서대로 단편들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또 헤밍웨이의 문학을 이해하는 첩경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헤밍웨이가 ‘불필요한 수식을 뺐으나 필요한 표현은 빠진 게 없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사실만을 쌓아올린 냉정하고 객관적인 간결문체를 정립시킨 작가인 만큼, 헤밍웨이의 대표작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번역한 이종인 번역가 역시 섬세한 손길을 통해 그의 문체를 재현하고자 정성을 기울였다.

 

작품 줄거리

《여자 없는 남자들》의 첫 번째 이야기인 〈패배를 거부하는 남자〉는 헤밍웨이 문학의 핵심적 주제의 하나인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매혹을 다룬다. 투우사 마누엘은 투우 경기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투우와의 싸움을 결코 피하지 않는다. 나이 든 이 투우사와 투우와의 대결은 훗날 그의 대표작인 《노인과 바다》 에 나오는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 거야”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다른 나라에서〉에서는 전시에 한 남자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적인 상황이 그려지는데,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전쟁을 부조리의 산물이라고 말하게 된 헤밍웨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얀 코끼리 같은 산〉은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아득히 하얀 코끼리(환상)를 바라다보는 여주인공과 남자를, 〈살인자들〉은 판돈이 크게 걸린 조작된 권투 시합에서 약속한 패배를 승리로 뒤바꿔 돈을 따간 권투선수 올레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그린다. 〈조국은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는 1927년 4월 헤밍웨이와 신문기자인 가이 히칵이 낡은 포드 자동차를 타고서 파시스트 무솔리니의 나라 이탈리아로 열흘간 여행을 한 소재를 픽션으로 꾸몄으며, 〈5만 달러〉는 한 인간의 역설적 모습을 교묘한 이중 플레이를 통해 보여준다. 이어, 소령과 당번병 피닌 사이에서 벌어지는 동성애에 대한 암시를 담은 〈간단한 질문〉, 여자에게 처음 배신을 당한 남자의 심리를 자연 풍경에 의탁해 잘 묘사한 〈열 명의 인디언〉, 미국 부인을 냉정하게 관찰하는 듯하지만 편견에 사로잡힌 남자의 모습을 그린〈딸을 위한 카나리아〉, 알프스 산중에서 저질러진 야만을 자연현상에 빗대어 묘사한 〈알프스의 목가〉가 다뤄진다. 〈추격 경주〉는 두 남자의 경주를 허무한 인생에 빗대어 묘사했으며,〈오늘은 금요일〉이라는 희곡에는 예수의 죽음을 바라보는 로마 병사 1, 2, 3의 심리가. 〈시시한 이야기〉에서는 투우가 암시하는 생의 허무와 그것에 도전하는 남자를,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인 〈이제 제가 눕사오니〉에서는 전쟁 후유증 때문에 잠들면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갖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극한의 부조리 속에서 발견한 인간 승리의 모습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헤밍웨이는 심한 부상으로 후송된 뒤, 비로소 전쟁이 낭만이 아닌 부조리가 만들어낸 실존임을 깨닫는다. 이후 그는 문명에 내재된 폭력과 부조리에 천착해 작품에 녹인다. 헤밍웨이는 등장인물을 일부러 위험한 상황 속으로 몰아넣고, 이를 인간의 내적 본성과 남성다움을 엿볼 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다. 때문에 그가 선택한 주인공은 투우사, 군인, 운동선수들이다.    전쟁으로 삶의 방향을 잃은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의 상징으로 불리는 헤밍웨이의 고뇌는 그러나, 허무주의에서 끝나지 않는다. 헤밍웨이는 전쟁을 통해 직면하게 된 세상의 부조리 속으로 등장인물들을 뛰어들게 한다. 노쇠한 투우사가 벌이는 경기, 공포가 만연한 전쟁, 도박이 걸린 게임,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 그는 주인공들을 통해 삶 속에 만연하는 극단의 허무를 발견하게 하였으며, 그 속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와 실존의 의미를 탐험해나갔다. 헤밍웨이는 부조리의 세계 속에서도 자유의지를 긍정하며 의미 있는 선택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부조리한 세계는 변화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선택 속에서 삶이 무의미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존재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부조리에 맞서 도전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통해 그가 그리고자 한 것은, 바로 운명에 지배받지 않는 인간의 진정한 승리의 모습이었다.

   


■ 차례

 

패배를 거부하는 남자
다른 나라에서
하얀 코끼리 같은 산
살인자들
조국은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5만 달러
간단한 질문
열 명의 인디언
딸을 위한 카나리아
알프스의 목가
추격 경주
오늘은 금요일
시시한 이야기
이제 제가 눕사오니

 

작품 해설
헤밍웨이의 하얀 코끼리
헤밍웨이 연보

 


■ 본문 엿보기

 

■  “취직해서 일을 해보는 게 어떤가?” 그가 말했다.
“난 일하기 싫어.” 마누엘이 말했다. “난 투우사라고.”
“이제 더 이상 투우사는 힘들잖아.”
“아니, 난 투우사야.” 마누엘이 말했다.
“그래, 투우장 안에 있을 땐 그랬지.” 마누엘이 웃음을 터뜨렸다.
레타나는 의자에 앉아서 아무 말 없이 마누엘을 바라봤다.
“원한다면 야간에 넣어주겠네.” 레타나가 말했다.
“언제?” 마누엘이 물었다.
“내일 밤.”
“나는 누구 대신 뛰는 건 싫어.” 마누엘이 말했다.
-<패배를 거부하는 남자> 중에서, 8쪽

 

■ “왜 남자는 결혼해선 안 됩니까?”
“그러면 안 되니까 그래. 남자는 결혼해선 안 돼.” 소령은 화를 내며 말했다. “모든 걸 잃게 될 걸 뻔히 알면서 그런 잃는 자리로 들어가선 안 되는 거야. 그런 자리로 들어가선 안 된다, 이 말이야. 잃지 않을 다른 것들을 찾아야 한다고.”
격분한 소령은 격렬하게 말했다. 말하는 중에도 시선은 여전히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대체 왜 남자가 결혼하면 모든 걸 잃는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게 될 거니까 그렇지.” 소령이 여전히 벽을 쳐다보며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 중에서, 62~63쪽

 

■ “권투를 하면서 많은 걸 잃었어.” 잭이 말했다.
“그래도 큰돈을 벌었잖아.”
“맞아. 그래서 내가 권투를 한 거지. 자넨 내가 잃은 게 많다는 걸 알고 있지, 제리?”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마누라한테 제대로 뭔가 해준 적이 없어. 집 밖으로 너무 많이 돌아다녔고. 딸애들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못 됐어. 사교계 남자애들이 ‘너희 아빠 누구야?’라고 물어보면 ‘우리 아빠는 잭 브레넌이야’라고 할 거 아니야? 그게 애들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5만 달러> 중에서, 123쪽
 

■ 닉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은 뒤 침대에 누웠다. 거실에서 아버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얼굴을 베개에 파묻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닉은 생각했다. ‘이런 기분이 자꾸 들다니 내 가슴이 찢어진 게 틀림없어.’ 잠시 뒤에 닉은 아버지가 입김으로 등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바람이 밖의 나무들을 스치는 소리를 들었고 바람이 방충망 사이로 차갑게 들어온다고 느꼈다. 그는 베개에 얼굴을 오랫동안 파묻고 있었다.
-<열 명의 인디언> 중에서, 158쪽

 

 

■ 지은이 소개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
헤밍웨이는 1899년 미국 시카고 교외에서 태어났다. 고교 졸업 후 캔자스시티 《스타》지 기자가 되었으며, 1차 세계대전 때는 의용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종군하다가 부상을 당해서 입원했고 이듬해 휴전이 되자 귀국했다. 그 후 그의 창작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친 G. 스타인, E. 파운드 등과 친교를 맺었다.


《3편의 단편과 10편의 시(詩)》,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에 이어 발표한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 이르러 확고하게 명성을 얻은 헤밍웨이는 파리와 에스파냐를 무대로 찰나적이고 향락적인 남녀를 내세워 전후(戰後)의 풍속을 묘사함으로써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를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았다. 또한 전쟁의 허무함과 고전적인 비련을 테마로 한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 문학의 걸작으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에스파냐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에스파냐 내전시 공화정부군에 가담해 활약한 체험을 통해 스파이 활동을 다룬 희곡 〈제 5열〉을 탄생시켰고, 이후 에스파냐 내전에 연루된 미국 청년 로버트 조던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 《무기여 잘 있거라》 이상의 반향을 얻었다. 그런 다음 오랜 침묵 후에, 큰 고기를 낚으려고 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불굴의 정신과 격렬한 삶의 자세를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묘사한 《노인과 바다》를 발표, 퓰리처상(1953)과 노벨문학상(1954)을 받았다. 헤밍웨이는 1961년 7월, 갑작스런 엽총 사고로 죽었는데, 자살이라는 설도 있다. 그는 지성과 문명의 세계를 속임수라고 보고, 가혹한 현실에 의연하게 맞서다가 패배하는 인간의 비극을 간결한 문체로 힘 있게 묘사한, 20세기의 대표적 작가다.


■ 옮긴이 소개

 

이종인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번역가 양성과정 겸임교수를 지냈다. 현재 인문·사회과학 분야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 《살면서 마주한 고전》, 《번역은 글쓰기이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유쾌한 이노베이션》, 《마에스트로 리더십》, 《로마제국 쇠망사》, 《로마사론》, 《중세의 가을》, 《작가는 왜 쓰는가》, 《호모 루덴스》, 《숨결이 바람 될 때》,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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