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문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최순실이 개입한 건 사실이지만 별 일 아니었어'

옥스퍼드 대학의 ≪공개 사과의 기술≫에 비춰본 ‘대국민 사과’

----------------------------------


옥스퍼드 대학에서 출판한 ≪공개 사과의 기술≫을 옮긴 김상현 선생님(전 <시사저널>, <주간 동아> 기자)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의 문제점을 '사과의 기술'에 비춰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하는 글을 출판사에 보내오셨습니다.

이번 대국민 사과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좀 더 명확히 알고자 하시는 분에게 권합니다.


사진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10월 25일 대국민 사과에 대해 납득이나 이해의 여론보다 비난과 반발의 여론이 훨씬 더 높다는 보도를 보았다. 또 “순수한 마음으로 한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표현이 돌연 소셜미디에에서 유행어가 됐다는 한 외국 언론의 뉴스도 읽었다.


문득 사과문의 내용이 궁금했다. 그간의 정황으로 볼 때 제대론 된 사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레짐작 때문에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주의 깊게 읽지도 않았다. 실제 잘못과 그로 인한 피해를 적시하고, 구체적인 보상/배상안과 반성의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사과의 기본 요건이, 특히 정치 판에서는 자주 무시되고, 대신 모호하고 무의미한 선언과 수사로 포장된 ‘거짓 사과’로 귀착되곤 하는 현상을 워낙 자주 보아 온 탓도 그런 무관심에 한몫 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박 대통령의 소위 ‘대국민 사과’는 ‘사과’라는 표현을 붙이기조차 민망한 수준이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구체적 설명뿐 아니라 후속 조치도 전혀 없어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는 야당 측의 주장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얼마전 졸역한 ≪공개 사과의 기술≫에 기대어 박 대통령의 이른바 ‘사과’를 바라보면 그 실체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과문 전문 

엇보다 놀라운 것은 사과문의 길이다. 이게 정말 전문일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짧다. 바티스텔라 교수에 따르면 완전한 형태의 사과는 다음과 같은 요소를 담고 있다.


(1) 사과하는 이의 수치심과 유감 표명
(2) 특정한 규칙 위반의 인정과 그에 따른 비판 수용
(3) 잘못된 행위의 명시적 인정과 자책
(4) 앞으로 바른 행동을 하겠다는 약속,
(5) 그리고 속죄와 배상 제시


위와 같은 요소들에 비춰 본다면 박 대통령의 사과는 어느 대목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한다.


송구스럽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와 같은 표현이 대통령의 유감을 제대로 표명했을까? 저 간략한 사과문조차 생방송이 아닌 녹화 방송으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송구’와 ‘사과’에 얼마만큼 진심이 배었을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3)도 마친가지. 박 대통령이 언급한 최순실의 개입 사실은 한없이 사소하고 심상하게 들린다. 뭇 언론이 앞다퉈 보도한 최순실의 국정 농단의 실상, 그에 대해 국민이 체감하는 심각성의 수준과는 사뭇 동떨어진 어조이다.


(4)(5)의 요소는 사과문에 아예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사안을 바로잡겠다는 언급 자체가 없다. 저 사과문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최순실이 개입한 건 사실이지만 별 일 아니었어, 그러니 입 닫아’ 정도가 될 것 같다.


바티스텔라 교수는, 사과는 어느 단계에서든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잘못에 대한 쌍방 당사자들의 상호 이해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쌍방은 박근혜 정권과 국민이다. 상호 이해가 결여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내던지듯 나오는 사과는 사과자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잘못의 내용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채 엉뚱한 사안에 대해 사과하려 하거나, 진짜 사과가 불완전하거나 모호해서 진심이 빠지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이번 사과는 구체성과 진정성의 차원에서 뿐 아니라, 잘못의 내용을 제대로 규명하려는 아무런 의지나 약속이나 계획도 없이 미봉책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명맥히 실패작이다.


_ 《공개 사과의 기술》 옮긴이 김상현

(블로그 http://northshore.tistory.com/)




*

--------------------------

추가 읽을 거리

--------------------------

조선비즈 《공개 사과의 기술》저자 인터뷰


"유감과 통감은 사과가 아니다., ‘개, 돼지’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는 정치인의 경우, 몇 년 동안 개선된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줘야..."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8/11/2016081101855.html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6-10-27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람 순실이 없어서 요즘 옷은 어떻게 입고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문예출판사 2016-10-28 09:26   좋아요 0 | URL
에휴 정말 부끄러운 대통령입니다. 최순실이 없어서 요즘 잠은 자는지 모르겠네요. 에휴....

매너나린 2016-10-27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공개사과 연설문은 최순실의 지시를 못받아서 저리 어눌한가 보네요.

문예출판사 2016-10-28 09:30   좋아요 0 | URL
어눌하고 진정성도 없죠. 하루 빨리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