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
펄 벅 지음, 안정효 옮김 / 문예출판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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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메뚜기, 굶주림, 남쪽나라, 여자아이.

......

중국에서 배가 고프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을 들은 건 어떤 역사 수업에서였다.

물론 들을 당시 나는 무척 놀랐다.

저기 머나먼 아프리카라면 모를까.

내가 사는 이 유라시아, 아시아 대륙에도 식인풍습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전까지 모르고 있었다.

'대지'에는 그 식인풍습이 나온다.

없어지는 사람들과 피둥피둥 살이 찌는 놈들.

먹을 것이 없어 인륜이 땅에 떨어지는 시점에도 세상의 수레바퀴는 꾸준히 굴러간다.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죽을 위험을 무릎쓰고 남쪽으로 기차를 타고 간다.

'아란' 역시 그때 남의 집에 팔린 여자아이였다.

무잣집 종으로 팔렸지만, 얼굴이 못생겨 순결을 유지한 그녀.

아란은 자신을 사준 남편 왕룽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 한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할까 싶을 정도로 아이도 혼자서 낳고, 그 뒤처리까지도 스스로 한다.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선 동냥으로라도 끼니를 채우지만, 굶어죽기 직전에 여자아이를 파는 방법밖에 수가 없다고 냉정하게 말하지만 뒤돌아 우는 인물이다.

아란은 소처럼, 그저 쉴새없이 일해 왕룽의 재산을 불려주고는 그만 힘을 다해 죽는다.

아란이 왕룽의 부인이므로 그녀의 재산이기도 한 것이 당연하지만, 그녀 스스로 주인된 의식이 부족했기에 나는 왕룽의 재산이라 여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읽은 소설이기에 할아버지-아버지-손자에 걸친 삼대의 모습으로 비춰보는 중국의 격동기건 뭐건 '아란을 생각한다'.

그녀는 바보같이 왜 그렇게 살다갔을까?

옛날 여성이란 성을 지닌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바보같이 살다 갔던 걸까?

어우동이나 황진이를 기꺼워히지 않는 만큼,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도 가슴 아프다.

아란을 보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평생 이룩한 재산은 누리지도 못하고, 보석이라곤 기껏 콩알만한 진주 두 알이 전부였지만 그마저도 빼앗긴 지주의 첫 번째 부인.

6개월도 더 된 이 책의 잔상은 고스란히 우리집에 녹아있다.

뼈빠지게 일해 집안을 일으킨 내 어머니.

내 어머니가 좋아하는 TV속 인물은 그저 시부모님께 효도하고 귀엽고 착한 며느리다.

바깥 일에서 성공해 남편보다 조금이라도 잘난 부인이 나오면 바로 흥분이 이어진다.

"여~자가 말이야!"

여자가 대체 어쨌다는 건가?

나는 내 성격 형성의 많은 부분을 우리 부모님이 담당했다는 것을 이제 안다.

명절 내내 먹을 것을 해치워야 하고, 여자는 그저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으며 나는 자꾸만 아란이 떠올랐다.

아란, 그녀도 그렇게 살았던가?

아니다.

돈이 없어 일손이 부족할 때, 가뭄으로 굶주릴 때, 동냥을 해야만 먹을 수 있을 때, 다시 집안을 일으킬 때......

그녀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삶의 길을 궁리했다.

내 어머니 또한 그렇다.

실제로 집을 사고 학비를 낸 원동력은 어머니가 가게를 운영해 번 수입이었다.

아버지도 왕룽처럼 부지런히 일 했지만 시대를 읽고 알맞은 가게를 택한다거나 경쟁 가게를 이기기위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문을 열어두는 악착은 몰랐다.

퇴직한 아버지와 한 발 먼저 가게를 접고 재테크의 세계로 나온 어머니는 요즘 집에만 계신다.

연휴 내내 집에서 요리를 거들고, 밥을 먹으며 대화를 하고, TV를 함께 보며 나는 불편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아빠 같은 사람이랑은 절대 결혼 안 해'

나는 시쳇말이라도 내 부모님과 마음이 잘 맞는 편은 아니다.

내 쪽에서도 맞추려 무던히 애쓰고, 부모님 쪽에서도 받아주려 노력하셨지만 이젠 30년 가까이 해 온 이 노력에 서로 신물이 날 지경이다.

다른 사람들은 귀염성있다는 내 행동이, 내 부모님에게는 언제나 어색하고 싱겁다.

부모님과 내가 다시 살가운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아마 힘들거다. 나도 내 속을 모르지만 결혼하고 싶은 이유 중 8할 이상이 부모님과 떨어지고 싶어서다.

슬픈 일이다. 부모님과 헤어지고 싶어서 결혼하고 싶다니 말이다.

그런데 살가워질 순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란을 그 시대 사회 풍토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며 안타깝게 바라봤던 것처럼 말이다.

다행인 것은 내 아버지는 바람을 필 위인도 아니거니와 내 어머니가 그리 애교가 없는 성격이 아니란 사실이다.

두 분은 요즘 매일이 신혼처럼 즐거우신가 보다.

맛있는 걸 먹고, 즐겁게 놀 생각만 하시니 그러신가 보다.

나도 요즘 잔소리들은 시간이 없어 사실 좀 즐거웠다.

두 분과 대화할 시간도 없이 새벽에 나가 12시가 넘어야 들어오는 삶은 내게도 행복이었다.

조연은 살짝 빠지면 그만이다.

아마 역사 속 인물로 3인칭 시점에서 두 분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더 이상을 바라는 건 서로 지나친 욕심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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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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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서른은 어떤 느낌이에요?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두근두근 내인생, 비행운.

처음 언니 책을 본 건 도서관에서 였어요.

'뭐 읽을 책 없나~'하고 열람실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는데 언니 책이 눈에 띄더라고요.

앞장을 읽으며 '오~'하고 속으로 놀랐어요.

여태껏 봤던 소설들과 뭔가 달랐거든요.

제가 그 뭔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으면 평론가가 되었겠지만 평론가는 아니니까 그냥 편안히 쓸게요.

혹시 건전가요 아세요?

80년대 가수들이 음반을 내면 앨범에 꼭 한 곡씩 들어가야 했다고 하는 건전가요.

제가 좋아하는 그룹 중에 '전람회'가 있어요.

전람회는 90년대 나왔는데 꼭 건전가요 분위기가 났어요.

자기네들도 라디오에 나와 웃으면서 건전가요 같다고 웃기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언니 글에선 꼭 그런 느낌이 나요. 건전가요.

한국소설의 지나친 무거움도 없고, 일본소설의 가볍고 퇴폐적인 면도 없어요.

사실 전 한국소설은 많이 읽지 않았어요.

안 그래도 심각쟁이인 제게 매번 깊고 침울하게 파고 들어가는 한국소설은 너무 힘들었거든요.

고등학교때 채만식의 '탁류'를 읽으며 몸서리쳤던 기억이 나요.

꼭 그 책이 아니더라도 한국 소설 속 주인공들은 왜 그리 모진 고통의 세월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됐던 걸까요.

저는 그런 책들을 읽으면 저도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읽기가 겁났어요.

물론 언니 소설의 주인공들도 제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아녜요.

구질구질 쓰러지기 직전의 집에 사는 것도 싫고, 가족을 잃고 헤매기도 싫어요.

무엇보다 출산을 앞두고 벌레가 득시글대는 숲 속에 갇히는 건 정말이지 상상하기도 싫었어요.

그런데 언니, 옛날 소설들과 달리 언니 글을 읽는 건 몸서리쳐질 만큼 괴롭지는 않았어요.

슬픈 상황을 담담하게 그리지만 언제나 언닌 그 다음을 생각하며 쓰잖아요.

상황은 암울하지만 주인공들은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언젠가 그 상황을 벗어날 것 같아요.

전 그게 참 좋더라고요. '나도 이렇게 힘들지만 언젠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이런 안도감이 들어요.

사실 구질구질한 청춘은 언니 작품에 신발 바닥에 붙은 껌딱지처럼 붙어다니잖아요.

'달려라 아비'에서도 '침이 고인다'에서도 방이 없어서 엉덩이 한쪽을 들고 방귀를 뀌어야 하는 그 구차함 속에서 살아야 하잖아요.

비가 오면 물이 차는 지하층 집에서 물을 퍼내고, 대책 없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말예요.

이번엔 좀 더 청년문제에서 가족의 문제로 관심이 이동했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어요.

가족에 대해 쓰긴 했지만, 여태까진 선택받은 입장이었다면 이번엔 선택한 느낌이 들었어요. 부부고, 엄마니까 말이에요.

단칸방에 살던 청춘들이 언니가 결혼을 하며 함께 결혼하고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된 느낌이랄까요.

이 가족들도 어찌나 힘든지, 마음이 슬펐지만요.

언니, 서른이 되면 어떤 느낌이에요?

이제 저는 한 달 좀 넘게 남았어요.

회사에선 좀더 능글거리게 됐고, 남들 말에 상처를 덜 받게 됐어요.

그러면서 싫어하는 사람도 생겨 뒤에서 살짝 욕하기도 하게 됐고요.

다단계로는 안 빠져서 천만다행이긴 하지만요.

언니, 서른이란 나이가 두려워요.

저도 어른은 어른인데 저보다 더 어른인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게다 그들과 싸워서 이겨야 돼요.

사실 사회초년병이라 스스로 어른이란 생각도 별로 없는 제가요.

어린아이 같다고 분명 다들 비웃겠지만, 가끔 생각해요, '모두 잘 사는 세상은 없는걸까' 하고요.

언제부터 사회가 모두를 경쟁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살다보니 이렇게 각박한 사회네요.

고등학교 입학식때 우리 담임선생님이 시를 한 편 읽어주셨었어요. "함께하는 우리가 보고싶다"고요.

전세계 사람들이 다들 자기네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며 물건을 만들어 놓고 사라고 해요.

그런데 물건이 너무 많아요.

팔리는 물건만 팔리고 안 팔리는 쪽은 파리만 날리고 있어요.

함께 살기 힘든 사회네요. 덜 만들고 나눠 사가면 안 되겠지요?

그래도 사회에서 만난 어른들이 모두 나쁘진 않았어요.

존경하는 사람도 있고, 본 받을 만한 점도 모두 뜯어보면 한 가지씩은 있더라고요.

언니, 그래서 희망은 언제나 있는 건가 봐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현재도 미래도 다르게 보이니까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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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숲에 갔다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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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같은 사람들

스무 걸음만 들어가도 한치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숲.

숲에는 연구소가 들어서고 관광명소로 인기를 끌며 시골 작은 동네는 숲으로 먹고살게 되었다.

숲으로 먹고 산다? 어쩐지 건강하고 힘찬 분위기지만 빛 뒤에 그림자가 따라다니듯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그림자는 숲이 있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숲이 떠나고, 평범해 보였던 마을 사람들은 살 길을 찾기 위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환경에 걸맞게 변화하는 것이니 진화라 표현해야 할까?

그러나 아무리 환경에 맞추어 변화하는 것이라 해도 변화를 즐기는 인간은 드물다.

평범한 인간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얼핏 보면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누구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

그러나 때로 안정을 위해 그것과 거리가 먼 일을 때때로 해치우기도 한다.

그런 때 그들은 대개 수동적이다.

마치 숲의 나무들처럼 말이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숲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숲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숲과 함께 동네에 뿌리 내린다.

역설 혹은 모순

“건강은 곧 균형이오. 명심하시오.” -218

모든 소설에 들어가는 것이라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된 심상은 역설과 모순 속에 감겨있다.

2부 끝에서 박인수는 사무장과 ‘산불 대피요령’에 대한 이야기로 통화를 한다.

“피하는 겁니다.”

“피해요?”

“마구 달리는 겁니다. 이미 산불이 지나간 자리로요. 산불은 지나간 자리로는 다시 오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박인수 씨는 산불이 지나간 자리를 찾기만 하면 됩니다. 그거야 간단히 찾을 수 있죠. 잔뜩 그을려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240

그러나 박인수는 사무장의 친절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산불이 지나간 자리로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이 활활 타들어 가는 불구덩이로 몸을 던진다.

벌이 꽃을 찾아가듯, 술중독자는 술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사건이 시작된다.

공포는 만들어진다

“유령의 정체를 보니 마른 억새풀이었네.”

사무장은 박인수까지 이하인의 뒤를 따를까 궁금했는지 바쇼라는 시인의 말을 빌려 이런 말까지 주워섬긴다.

‘어렸을 때 무서운 소리에 놀라 귀신인줄 알았는데, 실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어린 시절, 한 번도 이런 일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밤에 주위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큰 소리에 놀라 허둥대던 일.

날이 밝으면 아무것도 아닌 풀들의 춤사위가 밤에는 공포로 변신하곤 한다.

작가는 이렇게 공포가 만들어진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는 잊혀지는 것이라 한다.

“……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박인수 씨를 모른다고 하면 박인수 씨도 없는 사람이 됩니까?” -318

책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는 것으로 나온 ‘진’이란 인물이 박인수라는 산지기를 몰아세우기 위해서 하는 말이지만,

내게는 결국 자신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시인하는 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여러 번 들으면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에도 진짜라고 생각하고 넘기곤 한다.

옛날에 만화책 ‘20세기 소년’을 보며 그 구체적인 모습을 처음 접하고 놀랐던 것이 기억난다.

사이비 교주 ‘친구’는 대중을 속이기 위해 밧줄을 이용해 공중부양하는 쇼를 벌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 ‘친구’를 들어 올리는 사람들조차 밧줄을 손에 쥐고도 그에게 홀려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어떤 정보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많은 경우 생각이 달라진다.

“나만 보고 나머지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반대로 세상은 다 봤는데 나만 못 보는 건 무엇인지 알아야겠죠. 모두 알 수는 없어요. 누구나 깨닫지

못하는 걸 어느 정도 갖고 있게 마련이니까요.”-319

나만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결정짓고 보지 않는다’는 어떤가?

단적인 예로 ‘에이즈 보균자’에 대한 태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에이즈는 손을 잡는 것만으로는 감염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 옆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에이즈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 사람이 특별히 다른 사람과 다른 행동이나 외모를 가지고 있지 않을 경우 그런 행동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당시 함께 읽던 책이 조지오웰의 ‘1984’였다.

세상의 모든 정보를 조작하며 장악하는 빅브라더는 한 명이 아니다.

영원불멸하게 이어질 것 같은 단체이다.

그러한 단체가 만들어져 소수의 인권을 짓밟는 일은 어쩌면 우리가 파리 한 마리를 죽이는 것보다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정보의 교류가 늘어나고 정보가 돈이 되고 힘이 되는 사회.

그러나 정보에 민감하지 않고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사회가 될 것인가.

‘공포는 만들어진다’

나는 이것이 정보화 사회를 사는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함께 읽었던 책이 공교롭게도 ‘1984’였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 주위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왜곡하고 있는 ‘빅브라더’가 현재도 꽤 많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잊고 무비판적으로 활자를 읽는다면 어느 순간 ‘빅브라더’의 꼭두각시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상황설명> 성격정리

다른 등장인물에게서 이전의 등장인물을 묘사할 수 있음.

복선 깔기_ 잘못 짚고 있다. 그러나 말해주지 않는다.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조연/ 날씨와 감정의 교차/ 명언 인용

주인공의 느낌, 생각 나열.

한 사람의 특징을 쓰고, 다른 사람의 특징을 나열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비교 효과.

속말> 내면묘사> 행동묘사

필요한 부분만 묘사_ 독자에게 한정된 정보만 제공하게 되는 한계점 제시.

‘단어’에 천착하는 심리묘사.

자신의 생각을 밝힘으로써 자기 자신을 묘사.

치통, 중독, 거짓말.

무엇보다 일상을 담담하게 풀어낸 담백한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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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 문학동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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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우체국에 가면 떠난 그 사람이 내게 보낸 편지가 있을 것 같다.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잡히지 않았던 파도같은 사람.

에이헙 선장처럼 목적이 있는 고래잡이도 아니면서 먼 바다만 고집한 사람이었다.

왜 그런지 물으면 기억 날것 같으냐?

아니요,

아니.

나는 모르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큰 파도에 실려 찾지 못할 바다로 떠나버렸다.

왜 그런지 물으면 생각 날것 같으냐?

아니요,

아니.

나는 모르오.

바닷가 우체국에 가면 떠난 그 사람이 내게 보낸 편지가 있을 것 같다.

그가 왜 그 밤에 배를 타고 떠났는 지 나는 모른다.

노른내 풀, 풀 나는 김 영감 말에 혹한 게지.

연락하겠다던 말, 나는 믿지 않았다.

배는 마지막이라는 말, 나는 믿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났지만 연락은 오지 않는다.

석 달이 지났지만 연락은 오지 않는다.

아마 전파가 닿지 않는 곳일 게다.

그러니 그의 소식은 우체국에서 전해줄 것이다.

왜 그런지 물으면 얘기할 수 있느냐?

아니요,

아니.

나는 모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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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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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상화에서 세밀화로

『카스테라』 속의 세계가 친숙하지만 낯설었다면, 『더블』속의 세계는 낯설지만 친숙하게 느껴진다.

『카스테라』에서 작가는 문득 등장한 기린이나 펠리컨, 광활한 냉장고로 환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 세계는 감히 환상이 아니라면 적용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가 갑자기 기린이 되어 나타나거나 냉장고에 부모님과 여러 중요한 책들, 그리고 두 명의 중국인만을 빼고 넣는다는 것은 문학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더블』로 넘어가며 이야기는 좀 더 실제에 가까워진다.

‘루디’에 등장한 용역 청소부도 정신이상자가 판치는 세상이기에 현실성이 없지 않다.

무작정 가게나 대학 강의실에 들어가 사람을 쐈다는 기사는 이제 뉴스의 단골소식이 되어버렸다.

‘비치보이스’의 짝퉁 크라잉넛과 ‘별’의 연주와 같은 사람들도 많지는 않을지언정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한다.


『카스테라』가 어설픈 그림을 그리듯 상상을 늘어놓는데 불과했다면 『더블』에서 작가는 구체적인 사건을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서 일상성을 획득한 것이다.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카스테라』-53p)에서는 너구리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끊임없이 강조함에도 작가의 말에 손을 들어주기 힘들다.

또한 농경사회의 즐거움은 토끼였을 수도 다람쥐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서울에는 73층을 넘어가는 고층빌딩이 있고, 뉴스에서 직경 십 킬로라고 했다는 몇 줄의 대화가 도심 상공에 아스피린이 떠 있다는 구구절절한 설명보다 거대 아스피린을 실제로 느끼게 한다.(『더블』-151p)

소설은 구체화된 만큼 실체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도심 한복판에 나타난 ‘아스피린’이 지하철에 등장한 ‘기린’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2) 미국과 외계, 그리고 세계시민

21세기 들어서면서 큰 인기를 끈 것은 외계인에 대한 영화와 드라마였다.

외화시리즈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엑스파일.

생쥐를 잡아먹던 다이애나(V-1984년 작)가 아닌, 말끔하게 차려입고 언론을 쥐락펴락하는 외계인 애나(V-2009년 작)의 등장.

‘디스트릭트9’의 보호구역에 살며 지능은 높지만 인간의 감시를 받으며 시달리는 외계인과 ‘트랜스포머’의 외계 로봇 세계까지.

이러한 상상 속 외계 생물체는 화면 속에서 지구의 권력과 결탁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거나 그 권력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점점 노출 빈도수도 높아질 뿐더러 인간과 비슷한 습성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동질감마저 느끼기에 이른다.

21세기 최대의 히트작 ‘아바타’가 대표적이다.

주인공 제이크는 결국 외계 생물체인 ‘나비족’의 일원이 된다.

이제 외계 생명체는 살면서 한 번 만나 볼 수도 있는 대상이지, 절대 먼 존재로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의 상상력이 ‘쥐를 잡아먹는 것을 엿보는 데’(V-1984년 작) 그쳤다면, 이제 ‘언어학자들을 모아 외계 언어를 만들 정도’(아바타-2010년 작)로 상상이 적극적이며 구체적으로 변했다.

그만큼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외계’를 ‘세계’로 치환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80일간의 세계여행』이 등장했던 초기산업사회만 하더라도 여행이나 무역은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한정된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세계는 가까워졌고 우리는 다른 나라에 좀 더 쉽게 갈 수 있게 되었으며, 그들에 대해 좀 더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민규 소설에는 유독 미국, 외계 등의 우리가 잘 모르는 세계가 많이 등장한다.

아무리 여행이 일반화된 오늘날이라고 하더라도 편도로 백만 원을 넘기는 미국여행을 해본 사람이 많을 리 없으며 우주여행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카스테라』나 『더블』 속에서 미국이나 외계는 생소한 존재가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 사람은 언제 동물로 변하나, 미국 말고 다른 나라는 안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세계는 이제 경제로 급속도로 단일화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나라에만 산다고 해도 싫든 좋든 세계시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미국과 외계를 통해 이야기 해준다.


등장인물들은 점심시간에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사오고 새로운 ‘호올스’의 맛에 집착한다.

맥주도 카스나 OB가 아닌, ‘코로나’가 그들의 메뉴다.

가끔 아무렇지도 않게 UFO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같은 것을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세계를 더 가깝게 느끼게 된다.



3) 청년세계에서 어른세계로

『카스테라』에서 작가가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것은 청년실업과 그들의 꿈, 암담한 현실 등의 청년 문제다.

그러나 『더블』의 이야기는 더 이상 ‘청년’에 국한되지 않는다.

카스테라의 주인공들은 취업을 하고 싶은 고등학생과 대학생, 졸업생 등 취업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이한 양력을 찾자면 ‘헤드락’의 유학생이나 ‘대왕오징어의 기습’에 나오는 소년들 정도일 것이다.

『더블』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있다. 주인공들은 이미 거의가 직장인이거나 사회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또 가난한 공장 노동자부터 외국의 미치광이, 그리고 마지막을 양로원에서 보내는 노년의 삶까지 작가는 인생의 폭넓은 분야를 다룬다.

이것은 등장인물 유형의 다양화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리고 조금 비틀어 보면 다양화를 추구할 수 있을 만큼 작가가 보는 눈이 넓어졌다는 이야기도 된다.

세상에는 취업을 하지 못해서 속상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더블』에서는 이제 취업이라는 청년 문제에서 벗어나 ‘사람’이라는 존재의 문제를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이 엿보인다.

자기만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어른의 시각’으로 한층 성장한 것이다.


『카스테라』에서 인간적인 것은 달에서 소변을 본 최초의 인류쯤이다.

이때 작가는 소소한 것에 대한 반항, 즉 찌질함이 인간적인 것이라 생각했다.(『카스테라』-110p)

그러나 『더블』에서 말하는 인류는 이제 세상을 좀 아는 고층빌딩 회사원이다.

그는 답답한 현실에 짜증나고 답답하면서도 ‘아스피린’을 탓할 수 없다.

그것 때문에 답답하고 화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걸로 탓해 봤자 자신만 바보가 될 뿐이라는 것을 안다.

결국 그는 현실에 적응해버린다.(『더블』-167p)

이것이 현실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일 뿐일지라도 의미는 있다.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미래의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카스테라』가 박민규 작가의 ‘현실적응기’라고 한다면, 『더블』은 ‘현실관찰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현실을 접수한 작가가 말하는 미래를 기대할 차례다.

물론 나는 그것이 『핑퐁』에서처럼 세계를 떠나는 상상력으로 표현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건 자조 섞인 울음에 불과할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데스카 오사무의 『아톰』을 보고 일본의 어린아이들이 과학자를 꿈꾸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소망이 있다면 이런 것이겠다.

박민규의 소설을 읽고 한국의 청년들이 공평한 세상을 꿈꾸는 것.

이제 다시 근대문학을 꿈꾸어도 좋을 시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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