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가족 방랑기
가쿠타 미쓰요 지음, 신유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가족이란 틀로 제목은 묶여 있지만, 이 소설은 성장 소설의 냄새를 폴~폴~ 풍긴다.

고3에서 대입 재수생이 되는 나 ‘야지마 리리코’. ‘리리코’는 자신의 이름을 남몰래 ‘리코’라고 개명하고 노트에 적는 인물일 만큼 자의식의 세계가 확실하다. 그런 그녀의 자의식을 지탱해주는 중심에는 태어나지 못한 남동생 ‘폰키치’가 있다.

아무도 그녀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지만, 지난 날 자신의 상처로 놀란 어머니가 황급히 계단을 내려오다 유산한 일을 그녀는 자기 책임이라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 한 맺힌 영혼을 기억하기 위해 그녀는 끊임없이 말을 건다. “폰키치, 폰키치…”하며 말이다.

주류상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결혼해서 가끔 놀러오는 큰언니, 프리터 둘째언니, 다마노코시를 꿈꾸는 셋째언니까지. 요즘 보기 드문 여섯이라는 대식구는 몇 번이나 말해야 밥 먹으러 나오지만, 기쁜 일에 차등을 두어 외식을 나가는 화목한 가정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장난스럽게 웃고 떠들며 계속될 것 같던 시절들은 둘째 언니의 문학상 수상으로 궤도 이탈을 감행한다. 첫째는 책에 나왔던 옛 연인과 다시 불이 붙고, 셋째는 집안을 일으키겠다며 별안간 들고 일어선다. 리리코는 리리코대로 고모의 죽음이다, 큰언니의 미행이다, 이러저러한 일에 휘말려 재수생이 되고 만다.

그 뒤에 이어지는 가게 리모델링과 둘째의 독립선언. 시노자키 레이지와 마쓰모토 겐 사이에서 방황하는 리리코.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 이렇게 소소한 사건들로 리리코에게 가장 중점을 두는듯하면서도 가족의 일상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 간다.

그 중,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언제나 삶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려 했던 아버지의 모습은 작가의 삶에 대한 의지를 들여다보게 한다.

작가는 말한다. “뭔가 늘었다면 말 그대로 늘어난 거지 그걸 가지고 이제부터 뭔가 줄어들 거라 여기는 건 잘못이야. 건전하지 못해.”

줄어든 것도 마찬가지다. 줄면 줄었을 뿐 그것이 뭔가 생겨날 거란 의미는 아니다.

종합쇼핑센터 체리제이가 생긴다는 사실은 책의 도입부에서부터 모든 상점가 사람들을 불안하게하고 압박하는 일이었다. 비유하자면 아직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새 파도인 것이다. 그러나 상점가 사람들은 ‘야지마 주류’처럼 개장을 하기도 하고 혹은 업종을 바꾸며 새로운 파도에 적응하는 몸놀림을 익히게 된다.

책을 읽으며 삶이란 밀물과 썰물이 공존하는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모델링 후에도 개점 세일만 반짝 했을 뿐, ‘야지마 리큐어숍’은 다시 한산한 예전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밀물일지 썰물일지 모르지만 곧 새 파도에 익숙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파도에 익숙해짐으로서 체리제이라는 새 파도는 어느새 헌 파도가 될 거시다. 시간이 더 흐르면 또 다른 파도가 왔다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또 그 새 파도에 적응해 헌 파도로 만들 것이다. 그게 어떤 방법일지는, 역시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무엇이 시작된 건 시작된 거고 무엇이 끝날지 미리부터 걱정하는 건 이상해.”

그렇지만 모른다고 걱정한다면 그건 이상한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길을 걸을 때 무심고 여린 가지를 꺽고 싶다거나, 작은 동물들을 괴롭히며 희열을 느낀다면, 스스로 앙테크리스타가 아닌지 되돌아 보라.

 

새 학기를 시작하는 상큼한 신학기의 광장. 블랑슈는 크리스타라는 이름을 가진 한 존재와 마주친다. 아니 멀찍이 떨어져서 보았으니, 목격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존재 크리스타. 그러나 크리스타와 가까워질수록 블랑슈는 사생활을 침해받고 그녀에게 조종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크리스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이. 그러나 현실은 사건을 항상 좀더 교묘하게 아울러서 뚜렷이 그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언구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제 3자가 인정하기가 쉽지 않게 만든다. 블랑슈의 말처럼 번쩍하는 섬광 같은 행동이 아니고는 그 무엇도 누군가를 구해줄 수 없다. 말로 하는 변호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말은 오히려 공격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우려가 있다.

노통브는 위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통용될 만한 해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블랑슈의 방법은 그녀의 방법일 뿐이다. 다만 작가 자신도 그런 고민을 품고 있었음을 짐작케 해주는 면은 있다.

 

사람은 각기 다른 성품을 지니고 태어나고 또 스스로 그것의 깊이를 만든다. 모두와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소수와 만나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똘레랑스. 노통브가 말하려고 했던 건, 단순히 힘든 사건에서의 탈출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인간성의 인정이자 이해는 아니었을까.

 

 

 

- 나는 우정에 대해 숭고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몽테뉴와 라 보에시 같은 우정이 불가능했던 것은 우정에 조금이라도 비열한 마음이나 경쟁심이, 일말의 부러움이나 한치의 의혹이 깃들면 나는 그 우정을 발로 차버렸다.

 

 

- 나는 적의 의도는 파악하고 있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그런 해로운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은 시련이었으며, 그것도 매우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악을 얼싸안을 수 없었기에 힘든 시련이었다.

 

- 크리스타의 문제는 힘의 관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배자니 피지배자니 하는 이야기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따분하기만 했다. …중략…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나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중략… 불행이 가져다준 좋은 점도 있었다. 이 시기만큼 책을 열심히 읽은 적이 없었다. 과거의 결핍을 보충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앞으로 다가올 위기 상황에 맞서기 위해서도 나는 탐욕스레 책을 읽었다. 책읽기를 도피처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리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다. 책읽기란 가장 정신집중이 된 상태에서 현실과 대면하는 것이다. 묘하게도 그것이 언제나 흐리멍텅한 상태로 현실에 뒤섞여 있는 것보다 덜 두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01-A903076925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예쁜 제목입니다. 아름다운 문장가 김연수 작가님의 사인을 받으면 저도 그런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신청합니다. 터무니없나요 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