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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나: 충무로 액션키드, 베테랑 되다 | 류승완 감독 인터뷰 

http://www.huffingtonpost.kr/mina-sohn/story_b_8081212.html 

올여름, 나는 제주에 다녀왔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받으며 세상은 역시 서로 돕고 사는 곳이구나 실감했다. 물론 유독 도움을 받지 못한 날도 있었다. 너울성 파도 때문에 근처 섬에도 못 가고 그렇다고 혼자 해변에 가는 것도 좀 꺼려지고. 다음 숙소로 가는 길은 멀어서 짐이 잔뜩 든 가방을 보며 어떻게 하나 고민이 한창이었다.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유일한 1인 손님이었던 나는 아침을 먹으러 숙소 카페로 나갔다. "영화나 보러 갈까?" 옆에 있던 스텝이 주인 부부와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다. 영화를 보러가자' 일정은 정해졌지만 혼자 영화를 보고 싶은 날은 아니었기에 팝콘을 쏘겠다며 오프라는 스텝을 꼬셨다. 스텝은 어물쩍 넘겨버렸고, 나는 씩씩하게 서귀포 롯데시네마로 향했다. 외로워져야만 하는 날이 꼭 있다. 


영화는 <베테랑>이었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개그와 속 시원하겠다 안심하고 볼 수 있는 이야기. 형사들이 하는 말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잘 다듬어진 시나리오 속에서 두 시간가량 신나게 웃었다. 극장 안에서 짜증이 났던 사람은 떠들다 한 대 맞아 질질 짜게 된 아이나 극 중 재벌 사람들 정도였겠다. 그들에게 이 사건은 당최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시원하게 풀릴 것이 당연한데 꼭 하나씩 색이 안 맞는 퍼즐같이. "이상하지 않아? 이게 이렇게 큰일이 아닌데." 작은 일에서 불거진 사건은 결국 벌집을 건드리고 퍼즐은 맞춰지지 않은 채 부서지고 만다. 


위에 기사를 보면 류승완 감독은 1-20대에게도 이해시킬 수 있도록 악을 구체화시켰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고 효과도 적지 않았으리라 본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엔딩크레딧을 보며 문득 "강동원이 잘 생겼으니까 우리 편."이라던 <군도>의 감상평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강동원의 우수에 찬 모습이 아무리 심금을 울리고 하정우가 비록 빡빡이였을 망정 우리 편은 하정우였다. 강동원을 우리 편 삼고 싶은 이유는, 관객에게 영화는 그저 영화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영화는 역시 보여주는 것이 전부라면 말이다. 나라를 구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것은 즐겁지만, 영화관을 나오면 이야기는 잊혀지고 영상만 남는 걸지도 모른다. 류 감독의 말처럼 빈자는 모두 선하고, 부자는 모두 악하다는 논리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다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에 너도 나도 편승하는 것은 아닌가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유전무죄의 세상에서 죄를 뒤집어 쓴 약자가 누명을 벗는 일이 뉴스나 영화화 될 이야기일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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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어딘가 미친 구석이 있어야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예술가, 발음해보면 이 말이 얼마나 어색하게 들리는 지 알 수 있다. 가수나 작가, 화가가 아닌 예술가는 책이나 잡지 같은 활자 매체 속에서만 존재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마음 속 깊이 와 닿는다. 그런 의미에서 자비에 돌란이란 배우도 찰스 비나메란 감독도 이 단어의 의미를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눈빛을 보면, 둘 다 반쯤 광기가 들어차 있다. 


가끔 생각한다. 폭력성이 강한 자녀에게 경찰을 권하는 부모도 있지만, 내향성이 다분한 자녀에게 예술을 권하는 부모도 있지 않을까. 마이클은 자신의 성향을 이해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영화를 보면서 연극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알고보니 원작이 연극이었다. 연극에서라면 아마 올리비아 역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보여주는 게 더 그럴 듯하지만, 그린이 “집에 올리비아가 있어. 난 늦게 들어가도 될 것 같아.”라고 말하고 피터슨이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한 배역이었다.(역할 비중에 비해 배우가 아까웠다) 


영화는 참으로 복고풍이다. 취조실의 녹음기나 만년필도 피터슨의 간호사복도 그린 박사의 자동차도 정신병원 자체도. 지난세기의 중후반이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정확히 어느 시대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보다 배경을 충실히 느끼게 해주었던 건, 마이클의 어머니가 쿠바에서 잘 나가던 성악가라는 사실과 남아공에서 마이클의 아버지와 만났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이나 영국, 오스트리아가 아니다. 영화의 배경은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세상에서 조금 다른 곳에 위치했다.


그것은 인물들이 주는 위화감에서도 드러난다. 처음부터 남자들에게만 색기를 철철 흘리지만 꼭 동성애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마이클이나(내게는 그랬다)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 어울리지 않기도 한 피터슨과 그린은 이 세계가 진실인지 허상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올리비아(캐리 앤 모스)가 예전에 종횡무진 쏘다녔던 매트릭스의 세계처럼. 관객인 나는 물론, 감독이 만들어낸 허상임을 알고 있다. 피터슨의 눈물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화에서 한 장면을 꼽으라면 휴게실에서 피터슨과 마이클이 피터슨의 딸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부분이다. 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이클에게 피터슨은 말한다. “그건 너와 내가 나눌 이야기가 아니란 걸 너도 알지 않니?” 그때 피터슨의 애가 다 닳은 듯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은 마이클이 바라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영화를 보며 눈물이 흘릴 만큼 내 마음은 움직였지만, 영화를 모두 이해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다음에 보게 된다면 ‘정신과, 이혼, 자녀’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염두에 두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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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다큐멘터리
그러니까 이 영화는 가상 다큐멘터리다. “예전에 사람들은 그랬죠…….” 주름살 짙은 사람들의 회상 속에는 먼지가 많아 천으로 입을 가리던 시절의 이야기가 있다. 배경이 미국이니 서부개척 시대의 이야긴가 싶기도 하다. 그들도 말을 달릴 때나 광산에 들어갈 때는 입을 가렸다. 멋을 생각해서 그랬는지 마을 안에서 벌어지는 총잡이들의 대결에서는 입을 가리는 천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주름이 짙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 안에서 대결하려면 때때로 입을 가리는 일이 필요할 것이었다. 식물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오로지 ‘옥수수’만 재배 가능한 환경, 학교에서 우주 탐사를 가르치지 않는 미래의 어느 날 속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인터스텔라>에서 서두는 마치 관객에게 내미는 복선과 같다. 작가와 감독은 조각보 중 가운데 조각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한 귀퉁이에서 천천히 바느질을 시작한다. 소재는 같지만 모양과 크기가 서로 다른 조각들이 하나 둘 연결되기 시작한다.
 
 


플랜A vs 플랜B
병충해 입은 곡물들은 베어내지 않고 태운다. 불에 탄 토양은 메말라 바람이 불면 모래 폭풍이 되어 휘몰아친다. 어른이 된 머피가 사는 지구는 이제 벗어나야만 할 곳이 되었다. 호호 할아버지 브랜든 박사는 숨을 거두기 전 머피에게 고백한다. “플랜A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플랜A는 지구인들은 새 행성으로 이주시키는 것, 플랜B는 선발대가 정착해 세포 상태의 지구 생물들을 다시 키우는 것이다. 할아버지 브랜든은 자신과 오빠를 위해 아버지를 우주로 보낸다고 했지만 결국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플랜A가 없는데 플랜B에 의미가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 가족이 아프면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지만 생판 모르는 지구 반대편 사람이 병으로 죽었다고 눈물 흘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각한 전염병이나 잔혹한 살인을 당했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사람은 내게 친숙한 사람의 죽음에 눈물 흘릴 뿐, 타인의 죽음에는 무관심하다. 세포형태로 다른 행성에서 자라나는 생명체에 나는 많은 애착을 느끼진 못할 것 같다. 무조건적으로 후대를 보존해야 할 만큼 인류는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존재일까? 설사 아무 연고도 없는 생명체들을 사랑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이 헌신짝처럼 버려진다면 동의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 플랜C를 짜볼까.


플랜C
플랜C는 지구에 순응하는 방법으로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르몽드 세계사의 기온상승 곡선을 보면 10만 년에 한 번씩 지구의 기온은 기온상승 임계선에 닿았다 온도가 떨어지며 빙하기를 맞이한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1만 년 전쯤 기온상승 임계선에 다다르고 이제 슬슬 기온이 떨어지고 있어야 할 시점이다. 그러던 것이 1만 년 전부터 오르락 내리락이다. 이 사항을 두고 책에서는 기온이 2℃ 상승한 시점이 돌이킬 수 없는 임계지점이므로 도달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극단적으로 기상이 급변한 지구는 엘니뇨의 발생 빈도가 높아졌으며, 유럽은 폭염에 휩싸이고, 아시아와 미국에 열대성 폭풍이 유례없이 자주 발생했다고도 밝히고 있다. 또한 기온 변화와 그에 따른 해수면 상승 등으로 생물의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예전에 비해 비이상적으로 높은 것은 사실이나, 온도 면에서 보면 아직 최고점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온도가 올라가는 것은 밀물과 썰물 같은 지구의 자연적인 흐름일지도 모른다. 온난화 자체가 비정상이 아니라 오히려 온난화를 막으려는 우리가 ‘지구 비정상 추진위원회’ 소속은 아닌가 생각해 볼 일이다. 이산화탄소 규제 정책을 펴는 것에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높아진 해수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수중도시를 건설하고, 인간이 병충해 입은 곡물도 먹을 수 있게 변하는 것이 더 좋은 해결책일지 모른다.
 
*르몽드 세계사(휴머니스트, 2008)


​대작의 괴로움
대작의 괴로움은 한시도 쉬지 않고 관객을 몰아붙인다는 점이다. 두 번 혹은 세 번 봐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시나리오도 가끔 등장한다. 감독은 이것도 보여줘야 하고 저것도 인식시켜야 하며, 관객들은 한 장면이라도 놓치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강박증에 빠진다. 그에 반해 <인터스텔라>는 이야기를 되짚어 볼 수 있을만한 간극이 있다. 우주를 유영하는 동안, 파도가 몰아치는 동안, 곡식이 불에 타는 동안……. 이 시간들 속에서 관객들은 다음에 올 장면을 기다리며 있었던 일들을 곱씹는다. 빨갛게 충혈 된 눈을 부릅떴던 <인셉션>의 기억은 이 영화에 없다. 여백의 미를 채운 한스 짐머의 음악과 함께 관객은 어느새 철학의 세계를 유영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만 박사의 도킹 장면에서 이유는 말해주지 않은 채 ‘혼자서 도킹하면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해 나중에는 잠시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다. 어째서 이유를 말하지 않았을까? 그가 도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주선이 파괴될지도 모르며 자신도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시도를 멈출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마 그가 계속 살아있으면 이후의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못해서 였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그러나 쿠퍼나 브랜든이 위험 요소에 대해 설명한다 하더라도 그가 이야기 전개에 문제를 주는 일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만 박사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쿠퍼를 죽이려 했을 정도로 안하무인인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생각해서 들려주는 말이라고 기껍게 들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 거짓말이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무시하면서 계속 도킹을 시도했으리라. 이야기에 개연성이 사라진 순간, 돌멩이가 나타나 매끄러운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고 사라졌다.
영화 속 결정적인 장면을 고르라면 쿠퍼가 블랙홀에 들어가서 만나는 5차원 큐브 세계다. 큐브 속에는 인류를 구할 재원인 머피의 방이 시시각각 펼쳐져있다. 쿠퍼는 그 중에서 자신이 머피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방에 도달해 신호를 전달한다. ‘STAY’ 처음에 말한 내용에 부합해 있고, 짧은 시간 내에 시계에 암호를 심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머피는 ‘여러 번’ 책이 떨어지는 현상을 겪었다고 말했지만, 쿠퍼가 큐브 속에서 책을 떨어뜨리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 ‘단 한 번’뿐이다. 편집에서 삭제된 걸까, 장면의 극대화일까, 러닝타임이 문제였을까? 머피가 잠을 자고 있을 때 책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두어 번 보여주는데 5초도 안 걸렸을 것 같은데, 그 장면이 나오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럼 과거의 유령 얘기는 성립될 수 없는 것 아닌가?(내가 놓친 부분이 있기를 바란다) 나는 어째서 이런 소소한 일이 마음에 걸리는지 모르겠다.


유토피아를 꿈꾼다
앤딩크래딧을 끝까지 보고 나오는 마지막 관객이 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그 소망은 성취되지 못했다. 한스 짐머의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정상인들이 열대여섯 명 정도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일곱 명 정도를 쿨하게 남겨두고 영화관을 나왔다. ‘한번 여행을 떠난 자는 돌아오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혼자 걸어 나오는 나를 불쌍히 여길 때, 영화관 복도를 걸으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배긴스도 프로도도 모험에서 돌아오지만 다시 모험을 떠난다. 샘같이 모험에서 돌아와 정착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지 모른다. <반지의 제왕>만을 예로 들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 주위에 ‘여행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배낭을 짊어지고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여행가이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유토피아를 꿈꾼다. 세상에 없는 좋은 장소. 주변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대륙, 다른 사회에서 유토피아를 찾아다녔다면 사람들은 이제 지구를 나가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 같다. 에드먼드가 발견한 별의 환경이 악화되면 인류는 다시 모험을 떠나면 되는 걸까. 제 3의 별이 오염되면 또 다른 별을 찾으면 만사형통이다. 우리는 태생부터 수렵과 채집을 일삼는 유목민의 후손이니 어쩌면, 이게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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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오래전 봤던 일본드라마가 보고 싶었던 것이, 리메이크작이 나온다고 해서인지 인간에 대한 성찰이 필요했던 시기여서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몇 주 전부터 <라이어 게임>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처음 봤을 때는 기괴한 가면을 쓰고 나오는 게임 딜러 때문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하기 힘들었지만(감상 시간은 주로 밤이었고, 얼굴이 반씩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그 가면은 처음 보면 좀 두근두근 한다) 다시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귀여운 가면이라며 웃어넘기게 되었다. 정말,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다시 봐서 놀라운 점은 칸자키 나오(주인공. 인간은 서로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며 항상 바보 소리를 듣는다)가 진짜 바보가 아니라는 점이다. 내 기억 속에서 모든 문제는 아키야마(역시 주인공. 전직 사기꾼이자 심리학 교수로 바보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나오짱의 백마 탄 기사다)가 다 풀었었는데, 다시 보니 나오 짱 혼자서 푼 문제도 있고, 절대 바보로서는 생각해내지 못할 계산식들도 종종 사용한다.(물론 그런 점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퍼주기 때문에 바보라고 불린다) 내 기억의 어떤 부분이 그릇된 정보를 저장했는지, 알 길이 없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을 리메이크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시즌2를 반 정도 본 이후의 일이었다. 클릭 클릭, 인터넷 서핑을 시작했다. 많은 경우에 그렇듯 일본 드라마보다 출연진의 외관은 눈을 즐겁게 해주었지만, 기획의도가 역시 마음에 걸렸다.(물론 시청자 각자의 해석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결정되지만 글을 쓰겠다는 포부를 품은 나로서는 어떤 의도로 만들기 시작했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여주인공을 보다 주체적인 인물로 그리기로 했다’ 이 부분을 읽고, 눈을 깜박인 후 다시 한 번 읽을 수밖에 없었다.(애석하게도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주체성이 결여된 인물이 아니다.(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오히려 주체성이 너무 강해 평면적인 인물의 전형이라 해도 될 정도다. 드라마에서 그녀를 ‘바보’라고 부르지 않은 사람이 한 명은 있었던 가 고민하게 될 정도로 비웃음을 사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심지 굳은 인물이다.


1, 2회를 봤는데 리메이크한 우리나라 드라마의 설정도 나쁘지 않았다. 일본의 <라이어 게임>은 게임 대결을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에 대해 풀어나가 마치 정제된 심리학 실험처럼 드라마 속 세상이 또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각 게임마다 세상과 동떨어진 장소에서 게임이 진행되어 그렇다고 본다. 리메이크작은 방송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나와야 하니 이런 생각은 줄어드리라 생각한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라이어 게임>은 시청률에 목메는 방송국의 행태와 성공하고 싶은 증권가 애널리스트, 신체포기각서까지 들고 나오는 사채업자들을 등장시키며 냉엄한 현실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만 여주인공인 남다정(김소은 분)이 하 박사(이상윤 분)에게 왜 처음 본 사이에 반말을 쓰냐고 한다던가, 스스로 아버지의 빚을 갚기로 결심해서 게임에 했다는 것 등으로 ‘주체적’이라고 말하면 곤란하다. 주체성을 돋보이게 하려면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하기만한’ 인물이 아니라,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하지만 ‘지혜로워서’ 게임에서 이기고 남을 여력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인물을 그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그녀의 변신은 일본드라마에선 시즌2 중반을 넘겨서야 나오지만 시즌2를 만들지 않는 이상 극의 반을 넘기 전에는 꼭 나와야 할 캐릭터의 특징이라 생각한다. 그래 뭐, 내 생각이다) 칸자키 나오가 주인공인 이유는 게임을 잘 해서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절대선을 표방하는 ‘칸자키 나오’나 인간의 욕망을 조종하려 하는 신자유주의 축소판 같은 ‘라이어게임 사무국’이던, 대칭을 이루는 ‘남다정’과 ‘방송국’이든 둘 다 결국 극과 극이다. ‘인간의 속성은 정말 극점에 존재할까?’ 동물과 신 사이, 선과 악의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말할 수는 없나.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이득을 향해 끊임없는 배신을 일삼는 후쿠나가 유지(자기잇속만 챙기는 배신의 캐릭터에서 자기잇속을 챙길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절대선과 영합하는 캐릭터로 변모)의 변화가 극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착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모두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악보다 지혜로운 선이 필요하다. 두 번째 보면서야 비로소 보인 그의 존재 의미를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그려낼까?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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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헤드 마운틴’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 영화를 말하면서 뺄 수 없는 말이다. 오랜만에 예매를 일찍 해서 ‘조망권’에 드는 뒷자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근데 ‘조망’은 고사하고 ‘요상’한 꼴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가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앞자리에서 발생한 검은 연기는 영화 3분의 1을 넘어서며 앞으로 점점 전진하기 시작해, 결국 내 시야의 10분의 1가량을 완전히 잠식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작은 것 같지만 중앙 하단에는 자막이 흐르고, 나는 영어를 잘 못하고, 마침 잠식당한 곳이 그 부분이었다는 것은 ‘치명적’이란 단어로 밖에 내게 설명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주기 바란다.
 
 
앞자리 마운틴 분에게 정중히 등을 붙여달라는 부탁을 하거나 좌석을 발로 차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사실 속으로 몇 번이나 하고 싶긴 했다) 자꾸만 앞으로 나가는 내 몸을 끌어당긴 건 화면이 밝을 때 비치던 살짝 희끗한 머리카락을 품고 있는, 단정한 두상이었다. 오른쪽에는 그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성분이 앉아계셨다. 줄곧 생각했다. 내 아버지가 저 앞에 앉아계시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이 생각을 하니 오히려 내 등판이 자연스레 뒤에 붙어 비비적거렸다. 과연, ‘아저씨도 로맨스를 꿈꾸게 하는 영화’다.
 
 
지금 그녀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여기 오기 직전, 5년 사귀었고 이제 스타가 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지금 남자는 클럽에서 노래를 듣고 있다. 노래에 어우러지는 피아노, 드럼,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의 합주가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오늘 아침 음반 회사에서 쫓겨난 프로듀서다. 영화는 한 번씩 그들이 만나기 전 과거를 간추려 주고 음반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나씩 보여준다. 여자는 싱어송라이터, 남자는 프로듀서, 감독은 재간둥이다.
 
 
이 영화에서 뺄 수 없는 재미는 줄거리보다 음악 얘기다. 아바의 히트곡으로 만들어진 것이 ‘맘마미아’라면 ‘비긴 어게인’의 노래들은 분명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이상한 건 익숙하게 들어오던 아바의 노래처럼 새로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음악들이 귀에 익숙하게 들린단 거다. 간드러지는 데이브(애덤 리바인)의 목소리보다는 담백한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목소리가 더 좋았다. ‘라이크 어 풀(like a fool)’은 듣다가 정말 눈물 날 뻔했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그레타와 댄(마크 러팔로)이 서로의 감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스 따윈 하지 않고 헤어지는 장면이었다. 그때 키스를 했다면 예술이라는 포장지를 뒤집어씌운 치정극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각자 예전 짝에게 배신당했으니 둘이 이어지는 게 맞았던 걸까, 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공유할 수 있으니 잘 맞는 짝인 걸까. 다행히도 그들은 키스를 하지 않았고, 덕분에 오랜만에 15세 관람가(야한 액션영화는 전체 관람가면서, 왜?)다운 올바른 상업영화를 한 편 봤다. 좋은 음악은 단조로운 일상을 빛나게 해주고, 좋은 영화는 더 멋지게 살고 싶게 한다.
 
 
 
Keira Knightley - Like A Fool (Begin Again Soundt…: http://youtu.be/xk5GvfIZG-g
 
 
+다만, 음반회사와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그레타에게 댄이 “마음대로 해. 그건 네 음반이야.”라고 하는 건 다소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투자를 받아온 댄은? 밴드 멤버들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객원 형식 아니었나? 중간중간 공장제 아이돌을 꼬집는 댄의 말은 좋았지만 그와 같은 시스템 안에 있던 프로듀서가 없었다면 그레타의 노래가 하루에 10만장씩 팔릴 일은 없지 않았을까. 포인트가 ‘나쁜 음반업계, 정의로운 그레타’라고 양분되는 것 같아서 좀 중얼거려 본다. 한 사람만 많이 버는 양극화 사회가 되면 곤란하니 이것도 좋은 해결책 일수도 있겠다. 흥행을 하고 지분을 동등하게 나눴으니, 다시 모여 2집을 만들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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