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양장)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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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내 글은 다시 접속사가 많아졌다. 고치려다가 귀찮아서 그만둔다. 이렇게 몇 번 지나가니 원래도 그랬지만 정말 하품下品이라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다. 다른 책을 뒤적거리다 다시 문장을 붙든다. 결과는 역시 못난이 인형이다. 책을 읽으면서 황선미 작가는 문장을 어떻게 썼을지 내내 궁금했다. 일필휘지로 썼을까 퇴고를 수없이 거듭 했을까. 전자라면 작가가 얼마나 습작을 많이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후자라면 작가가 작품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문장이 호흡하듯 매끄럽게 읽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전자와 후자의 합작이 분명하다. 문장 속 단어도 어려울 건 없었다. 간혹 어려운 단어는 사전을 찾아보면 될 터다. 이야기 구조는 확실히 아이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알을 낳기 위해 길러진 난용종 암탉. 잎싹은 그런 닭이다. 처지를 비관할 만하다. 닭장에 갖혀 알을 낳는 것 외에 잎싹에겐 어떤 미래도 허용되어 있지 않다. 잎싹은 묘한 닭이다. 그녀는 이런 와중에 희망을 품는다. 알을 낳아 새끼를 기르는 것. 토종닭이라면 꿈꿀 수 있지만 난용종 암탉에게는 엉감생심이다. 책을 덮고 감동과 함께 기시감이 찾아왔다. 어디서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이 이야기는 뭘까. 영화로도 봤지만 영화로 봤기 때문은 분명 아니었다. 책상 앞에 앉아 곰곰이 생각하다 올해 읽었던 작법서를 가지고 왔다. 이 작품은 영웅담을 닮아있었다.


작품의 전체 줄거리는 변형된 영웅담 구조다. 기본적인 영웅담은 비범한 출생을 거쳐 어린 시절에 고난을 겪는다. 추방 혹은 가출하여 조력자와 만나고 능력을 발휘해 성공하는 일련의 구조를 지닌다. 모든 이야기가 기본의 변형으로 이루어지듯, 이 작품에도 몇 번의 변형이 있다. 첫 번째는 잎싹의 ‘비범한 출생’과 ‘어린시절의 고난’부분이다. 이들은 사이좋게 한꺼번에 등장한다. 난용종 암탉으로서 비운의 출생, 알을 낳자마자 주인에게 빼앗기는 고난 부분이다. 다음 순서인 ‘추방 혹은 가출’ 부분도 변형된 부분이다. 보통 영웅담 소설의 경우 ‘추방’이나 ‘가출’중 하나만 나오는 반면 이 작품에는 두 가지 모두 나온다. 잎싹이 처음 마당을 나가게 되는 계기는 폐계로서의 ‘추방’이다.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그녀는 나그네의 도움을 받아 들어간 헛간에서 하룻밤 눈치 보며 자게 된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암탉에 의해 마당에서 ‘추방’당한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추방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그날 밤 잎싹이 다시 마당으로 가기 때문이다. 마당 입성에는 실패하지만 근처 아카시아나무 밑에 자리를 잡는다. 추방했지만 되돌아왔으니 일이 꼬여버린 것이다. 인정받아야 할 것은 며칠 뒤에 일이다. 나그네가 뽀얀 오리와 짝을 지어 나가자 잎싹 스스로 마당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 부분은 추방으로 시작해서 가출, 아니 독립으로 막을 내린다.조력자는 꿍꿍이가 있는 나그네였다. 나그네는 잎싹이 알을 품는 동안 옆에서 먹이도 물어다 주고, 족제비들로부터도 지켜준다. 잎싹이 품고 있던 알이 초록머리의 아기였기 때문이다. 이 불운한 외팔이 청둥오리 아버지는 부인의 숨통을 끊었던 사냥꾼에게 지친 몸을 헌납한다.


나그네가 사냥꾼에게 당한 이후로 잎싹은 본격적으로 초록머리와의 생활을 시작한다. 닭이 오리를 혼자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잎싹이 ‘능력 발휘’ 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독립했지만 친정인 마당을 기웃거리던 잎싹은 완전한 독립의 주문으로 ‘나는 엄마야’를 선택한다. 그녀는 초록머리가 성체로 성장하게끔 충분히 능력을 발휘한다. 마지막 부분인 성공도 두 가지 의미로 읽힌다. 초록머리는 더 이상 닭인 잎싹 옆에 있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는 집오리 떼에게 갔다 무리가 되지 못하고 청둥오리 떼에 편입되려 한다. 처음에는 외톨이였지만 결국 초록머리는 파수꾼이 되어 다른 청둥오리들과 함께 떠난다. 주인공은 잎싹이니 그녀의 관점에서 보자. 일반적인 성공의 의미를 두면 자식을 잘 가르쳤으니 ‘성공’한 삶이다. 그러나 그 성공이 저 멀리 날아가 버렸으니 자기만족 말고 남은 것이 없다. 이 순간 잎싹은 자신에게 또 다른 꿈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날고 싶다. 저 하늘을 훨훨 자유롭게 초록머리처럼 날고 싶다. 작가는 다시 비틀기를 시도한다. 잎싹은 족제비에게 먹혀 유체이탈을 한다. 덕분에 날지 못하는 닭에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또 다른 소망을 이루게 된다.


영웅이 있다. 별 볼일 없다고 업신여겨진다. 허황된 꿈만 꾼다고 비웃음을 산다. 거기다 샌데 날지도 못한다. 책 속에서 오리가 닭인 잎싹을 비웃으며 ‘날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어린이는 희망이다. 자신이 청둥오리일지 백조일지 아니면 핼리캠을 날리게 될지 누구도 모른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영웅은 될 수 있다. 변형된 영웅담 속에서 고집센 폐계 잎닭은 초록머리의 영원히 멋진 엄마로 자유롭게 살았던 닭으로 남을 것이다. 삶을 추억하는데 꼭 묘비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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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는 깊다 1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1
전우용 지음 / 푸른역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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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역시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는 박쥐같은 한 해를 보냈다. 이걸 하자니 저걸 잘 못 하겠고, 저걸 하자니 이쪽에 있는 것이 눈에 밟혀 마음이 석연치 않다. 저놈 저러니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지 하며 내 주변 어른들만 속을 썩으셨을 거다. 대여섯 어린 동생에게도 그런 말을 듣고는 아이고 정말 헛살았나 싶었지만 남들이 보는 삶의 주기와 내가 생각하는 삶의 주기가 다르니 별 수 없는 일이다. 하고 싶은 일보다 맡겨진 일에 먼저 충실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지만 지나간 일이다. 그 시절에는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나만의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 존중’이라는 것을 크게 깨달은 한 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나는 왜 글을 쓸때 자꾸 의문형일까. 왜 자꾸만 질문을 하고 싶지? 하하하) 이것 역시 개인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비판은 확실히 하되 시선만은 언제나 따뜻할 것. 그러면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장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전우용 선생의 글투가 참으로 그렇다. 다루는 주제가 근대사인 만큼 오욕의 역사가 대부분인데 이걸 장점은 장점으로, 단점은 단점으로 나누고 비평점을 나중에 정리하는 식이다. 책에 나온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자.

 

 

 

우리나라에 전차가 개통된 것은 1899년 5월 4일의 일이다. 시민들은 ‘신문명의 이기’에 환호했다. 일본에도 교토에만 있던 것이 근대화에 한참 뒤진 경성에 들어선 것이다. 그만큼 고종 황제세력은 문명화를 서둘러 근대국가로 발돋움한 우리 모습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전차는 이런 모습을 세계만방에 알리기도 전에 6살 아이를 치어 죽인 살해 죄목이 붙어 태형과 화형에 처해진다. 환호하던 시민들은 성난 군중으로 돌변해 동대문 전차 차고에까지 불을 지르려 했다. 당시 일반 시민들은 새로운 것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거니와 이것이 아이를 치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민감한 사항이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다음날 각 신문에 실린 광고는 죽은 아이의 명복을 빌거나 시민들의 주의를 구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단체 유람 특별열차’ 운행을 알리는 광고였다. 새로워서 어색하지만 나라의 일이라 박수쳤던 사람들에게 문명의 이름은 이렇게 비인격적이고 잔인했다.

 

 

 

전우용 선생은 이 사실에 역사의 서술이 승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과 대한제국이 근대문물을 도입한 이유, 당시 일반 민중의 신문물에 대한 생각을 섞어서 들려준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일반인이 사건 파악에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주변 이야기로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강요한 것이 아니냐’ 라는 질문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천천히 따져보면 전체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반 시민들은 새로운 것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1899년 5월 4일에는 환호하던 사람들이 1899년 5월 26일에 전차를 부수고 불태웠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 전자가 경성 거리를 활보한 기간은 22일,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기간이었다. 다른 설명들도 이와 같다.

 

 

 

일주일 전쯤 새해에 꼭 하고 싶은 일로 세계사와 한국사의 정리를 꼽았다. 문학작품을 볼 때 시대상보다 작품 자체의 의미를 중요시 하는 편이지만 일단 역사가 없으면 제대로 된 해석이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게다 역사는 정리하지 않으면 배우고 배워도 헛갈리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현재가 안 보이고 미래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밥벌이를 못하면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지만 사상계는 지속적으로 밥벌이가 안 되는 일을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의 생각을 움직이는 사상은 대개 쓸데없는 것에서 시작했다. 옛날을 돌아보고 비평점을 찾는 일은 확실히 바로 돈이 되는 것이 아니지만 제대로 걷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일이다. 경제 위기야 말로 기초학문을 든든히 해서 새로운 사회구조를 확립해야 할 때다. 이상하지 않은가. 예전엔 이병철 사장이었던 것이 이건희 회장님이고 우리에게 일자리를 ‘내려주시는’ 분이시다. 돈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못하고,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을 해도 대기업에 먹히고 마니 중요한 것은 자본을 쥐고 있는 자본의 신이다. 이렇게 살다간 다 같이 망할게 분명하다. 역사를 배워야 한다. 이제 경제로 풀릴 일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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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대제 12 - 얼웨허 역사소설, 전면 개정판 제왕삼부곡 1
얼웨허 지음, 홍순도 옮김 / 더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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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일이 있다. 거의 다 읽은 책을 두고 ‘지금은 읽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이 되는 경우. 두 번 말하면 입 아프고 웬 황당한 얘기냐 하겠지만 이 책이 과연 그런 경우다. 11권 30쪽 즈음까지 신나게 읽다 밤새 자고 일어나니 이런 마음이 들었다. ‘왜’냐고 물어보면 그때는 뭐라 콕 집어 할 말이 없었지만 지금은 있는 것도 같다. 아마 지금이라야 할 수 있는 말을 속에 담아두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목 아래 들어온 칼은 애써 무시했다. 공신들의 숙청을 지켜보며 손가락만 빨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천엽이 할마마마가 떡잎을 제대로 봤다고 할 정도로 잘 자랐다. 천재도 이런 천재가 없는지 가르치는 학자들마다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며 성실하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릴 때부터 키워온 배포는 얼마나 자랐는지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치수 사업에 힘을 실어 백성들 삶을 윤택하게 했다. 비옥한 농토와 늘어난 상점. 서서히 번화해가는 도시 풍경이 태평성대라고 불릴 만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마음에 걸리는 점은 끊임없이 등장하는 탐관오리 얘기다.

 

 

 

지방관이 되는데 연줄을 쓰고, 뇌물수수로 잡혀 들어갔지만 금방 나온다. 나라가 어려우니 어느 정도의 뇌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야기하는 강희가 있을 정도다. 슬쩍 이건 아닌데 싶지만 최고 권력자가 인정할 정도로 관행이었다. 이 문제로 그의 말년은 고통이고 고민이었다. 이 결과로 시진핑이 모델로 삼았다는 부패 척결의 대명사 넷째 윤진이 새로운 황제로 등극한다. 야화가 많지만 엘웨허가 그린 상벌이 뚜렷한 냉철남 옹친왕이라면 그럴 법하다. 부패 척결을 마음먹었는데 자기 연줄 챙기는 황자는 미덥지 못하다.

 

 

 

중국에 부패가 심각하다는데 대세는 중국이라고 여기도 다르진 않다. 학교 선생님이 되려면 돈 싸들고 가야하고, 국회의원은 민생안정 대신 여기저기 갑질하고, 빈부격차의 골은 점점 깊어진다. 우리도 옹정제가 필요한 것 아닐까. 안철수 의원이 나와서 신당을 창당한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너무 깔끔한 분’이라고 한 의원이 꼬집는 말을 들었다. 근데 이제 ‘너무’ 깨끗한 사람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 나는 민주에 가까운 중립이라 자부하지만 요즘엔 민주당에 욕밖에 할 게 없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자기들 잘못은 없는 척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속 시원히 사과하고 앞을 내다보면 누가 잡아먹나. 촛불시위는 잊은 지 오래. 내가 하는 말은 무조건 옳다. 반대는 반대한다. 그러니까 안철순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아직까지 안철수다. 앞으로도 안철수였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 안철수가 옹정황제를 좀 알아주길 바라는 게 큰 욕심은 아니길 바란다.(물론, 여자 문제는 제외하자. 중임도 후계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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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걸으며 가장 많이 보게 되는 단어가 뭘까. ‘놓치면 후회 50%할인, 1+1의 기회, 최대 찬스' 회원 가입을 했던 여러 화장품 가게나 카드사에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혹은 잊기 전에도 소식을 알려오곤 한다. '10월 멤버십 데이 마지막 날! 10%혜택, BIG SALE 마지막 혜택 놓치지 마세요~, 미국산 LA식 갈비 1,690원' 대부분이 할인을 한다는 메시지다. 이렇게 매번 할인을 하면, 도대체 남는 게 있기나 할까.


책을 정가로 사면 바보라는 말을 듣던 시절이 있었다. 온갖 할인 쿠폰에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반값할인, 계절마다 찾아오는 창고 대 개방까지. 다른 책을 읽으며 할인시기를 기다리면 할인의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할인 도서 안에서만 맴돈 책 구매는 만족감까지 할인되어 애써 구입한 책들을 책꽂이에서 먼지와 뒹굴게 하거나 집안을 어지럽히는 주범으로 어머니의 잔소리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요즘도 사은품으로 간혹 유혹당하긴 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필요한 책 위주로 구매하는 규모 있는 쇼핑으로 돌아서는 중이다. 그 대신 내 방에는 화장품과 옷들이 쌓여가고 있다.


‘대한민국에도 드디어 블랙프라이데이 상륙, 저렴한 가격에 시민들 기대 커, 백화점 개장 전 400여 명의 손님 몰려, 할인이라더니 제 값 받아, 할인율 조작으로 소비자들 분통’ 20대 이상의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다수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뉴스가 얼마 전 부글부글 끓다 사그라들었다. 나도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 브랜드 트렌치코트를 한 벌 구입했다. 할인율이 조작됐는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한 벌에 몇 십만 원을 호가하는 브랜드의 옷을 십만 원도 주지 않고 구입했으니 꽤 저렴한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새 옷을 사면서 어머니 몰래, 예전에 입던 트렌치코트를 버렸다.


내방 서랍 한쪽에는 아이브로우 타투 한 개, 매직쿠션 두 개, 립스틱 한 개, 보습 오일 한 통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로 쌓여있다. 가끔 조카가 꺼내 장난을 칠뿐 내가 만진 적은 까마득하다. 보습 오일은 ‘원 플러스 원’으로 구입했다가 한 통을 다 쓰지도 않고 새로운 보습 크림을 사면서 일 년 정도 방치한 것 같다. 옷이나 신발도 싸다고 사두었다가 몇 번 몸에 걸치지도 않고 쌓아둔 것이 많다. 이렇게 내 방에서 가만히 썩어갈 물건들을 생각하면 쇼핑은 금물이지만 길을 걷다 ‘할인’이라는 단어를 발견하면 내 눈동자는 자연스럽게 그쪽을 좇고 있다.


눈동자를 단속하기 위해 통장 잔고를 생각했다가, 집에 굴러다니는 물건들을 생각했다가, 이도저도 안 되면 그냥 가서 물건을 살펴본다. 천천히 살피다 보면 이성이 돌아와 세일하는 물건들이 이미 나에게 있거나 필요 없는 물건임을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쇼핑몰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종사자들은 늘어나는데, 사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으니 할인을 할 수밖에 없다. 요즘 하나 둘 문을 닫는 가게들을 발견하게 된다. 지나친 상업화가 가져올 문제는 없는 걸까? 거리를 둘러보면, 이상할 정도로 비슷한 것들만 파는 가게들이 우후죽순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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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어느새 한 달 가까이 지나버렸다. 먹고, 자고, 뒹굴 거릴 계획은 정말 계획으로 끝나고 연휴 내내 음식 만들고 조카와 놀아주는 가족 봉사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나마 재미라고 불릴만한 일이 새로 시작한 <디데이>라는 드라마를 본 일이다. <디데이>는 서울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가정 하에 만든 드라마로 응급실 의사들의 신발이 운동화라 던지, 중환자실에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수동 산소 호흡기를 사용한다던지, 소송의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 환자를 받지 않겠다는 대형병원 등의 모습들을 보여줘 마치 지금 어딘가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장감이 느껴졌다. 1회를 못 본채로 2회 중간부터 봤음에도 불구하고 힘들지 않게 드라마에 몰입이 가능했다. 공중파 막장드라마와 격이 다른 케이블 웰메이드 드라마 시대가 도래한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서로 더 갖겠다고 싸우는 1% 얘기에 관심이 사라진지 오래다. 별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별세계에 살게 놔두면 된다. 삼시세끼를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고, 가족과 어떻게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지 생각하는 것이 나 같은 보통사람이다. 참, 휴일과 연봉 문제도 뺄 수 없는 주제다. 그 보통사람의 이야기가, 이 드라마에는 있다.
 
 
발군의 연기력과 화면의 적절한 사용, 나열하면 끝이 없지만 굳이 드라마 제작의 일등공신 꼽자면 철저한 조사와 입담을 바탕으로 써냈을 극본이라 하고 싶다. 좋은 극본이 없다면 모든 노력이 헛일이다.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내용이 허접하면 가슴에 남는 게 없지 않은가. 그런데 예고편 이후에 자막에서 제작이 'SM'이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SM이라면 이제 세계에서 알아주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아닌가. 그래, 그 기업이 맞다.
 
 
생각해봤다, 내가 SM이라면 왜 제작 사업을 시작했을까. 탄탄한 극본으로 바탕으로 한 웰메이드 드라마를 제작하면 잘 만든 만큼 제작비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고, 연기 잘하는 스타 배우 옆에 소속사 배우를 조연으로 포진시켜 데뷔무대를 만들 수 있고, 언젠가 극본부터 배우며 제작까지 총괄해서 한 편을 만들 능력을 기른다면 영향력은 막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물론 안방 브라운관 앞에 앉아 흥미진진한 대리만족을 경험하겠지만 그것이 얼마만큼의 진실일까. 그들이 만든 체제에 익숙해진 우리가 거짓을 보여주어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아직 시청률은 1%대고 주연 배우 중 소속배우는 정소민 한 명이다. 게다 그녀는 연기도 잘하니 연기력 운운한다면 입을 다물어야 할지 모르겠다. 방송사에서 1년 드라마 편성전체를 SM에게 외주로 넘기고, ‘SM에서 만드는 웰메이드 드라마에 출연하지 못하면 인기를 얻기 힘들다’가 공식이 되는 시대가 온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이건 잘 됐을 때의 일이니, 기우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쉬운 건 우리나라 대기업이 그렇듯, 집중된 권력이 부패를 일으키지 않는 경우를 아직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내가 굳이 SM을 괴롭히려고 이 글을 쓴 것이 아님을 확실히 밝힌다.(저는 소송을 걸만큼 힘이 있는 인물이 아니랍니다) 괴롭히긴 커녕 이런 글을 쓴 나도 SM에서 높은 연봉으로 자리 하나 준다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달려갈지 모를 일이다. 그저 드라마를 보며 든 의구심을 글로 풀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내 불안증(!)에 대한 대책으로는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을 겸할시 소속 배우 중에 주인공을 세울 수 없다거나, 극본은 프리랜서에게 맡긴다거나 하는 관련 법규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힘 있는 사람이 법에서 빠져나갈 구멍은 얼마든지 있다.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프리랜서 작가에게 집필 이후의 생계를 약속하는 것이 대기업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법을 만드는 것보다 시청자가 똑똑해지는 편이 낫지 않을까. 기업이 이권을 독식하려 하지는 않는지 내가 언론플레이에 놀아나고 있는 건 아닌지 알아볼 안목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잘 믿는 사람이 바보취급 당한 건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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