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인공은, 많아야만 한다

주인공은 많아야만 할까? 나는 책을 읽으며 서평의 첫 문장을 떠올리곤 하는데, 이 책의 경우 그 문장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일단 첫 문장을 떠올리지 못하면 글의 방향이 정해지지 않기 때문에 쓰기가 힘들다. 그래서 다 읽은 날은 7월 7일이었지만, 좀체 서평을 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첫 문장을 쓰기 어려웠을까. 그건 아마 줄거리의 중심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 몰라서였던 것 같다. 앞부분만 읽고 개 킬러 박동해에게만 초점을 맞춘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의 중심 내용은 ‘어린시절의 기억이 빚은 사이코패스의 만행’ 정도가 될 것이다. 중반부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인간과 동물’이라는 범주 안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읽은 사람들은 비로소 ‘오작동하는 정부와 사회의 모순’에 대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카페의 카페모카처럼 소설 속 이야기에는 층이 있다. 층을 짓는데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코 인물이다. 소설의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 중 사건과 배경은 변함없지만 인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화양이라는 한정된 배경과 빨간눈이라는 사건 속에서 각 인물의 행동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정유정 작가의 소설에는 ‘영화적 서사’라는 말이 끊임없이 따라다닌다. 이 작품 역시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카메라 앵글이 돌아가는 재난영화 같은 느낌이다. 좀 다른 면이라면 재난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된 주인공이 관심을 받는다면, 『28』에서는 앞부분에 윤주나 재형이 아닌 동해의 활약이 더 눈에 띈다는 점 정도다. 요즘 원톱인 영화가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 주인공들이 나와 그들의 삶 속에서 겪는 재난의 여러 국면을 보여주는 것도 이러한 서사의 단면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만큼 소설 속에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가 풍성해진 것은 ‘영화적 서사’의 장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6장부터는 더 이상 인물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 삶에 있어 모두 주인공이지만, 무릇 이야기란 모래산 같아서 중심을 하나로 모으지 않으면 막대기가 한쪽으로 무너지게 마련이다. 다루는 인물이 줄어들면서 문제는 점점 핵심으로 접어든다. 그 과정인 박동해와 박남철의 마지막을 서둘러 끝내 좀 허무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작가는 마지막까지 모래산의 균형을 잘 맞추었기에 막대기는 넘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현상이 되어야 한다

정유정은 현상이다. 현상? 그래. 나는 정유정이 ‘현상’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현상이 되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은 ‘눈 가리고 아웅’ 하면 다 해결될 것 같다. 이것을 덮으려 저것을 터트리고, 지금 일어난 일을 덮으려 예전 것을 끄집어내고. 그 많은 목소리들 중에 제대로 된 상황인식과 공익을 위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두렵다. 언젠가 동물에게 했듯이 소설 속에서처럼 사람도 마구잡이로 죽이고 생매장 하는 옛날 같은 일이 벌어질까봐. 이미 겪은 일이지만 아직도 겪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실을 꼬집는 이런 책이, 이런 작가가 현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같은 의미로 세계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책이나 영화 등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문제가 생기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 이거 어딘가에서 봤던 일이다. 잘 지켜봐야겠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면 화양이건, 강원도건, 어느 곳이 폐쇄 당하더라도 우린 서로에 의해 살아남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빅데이터의 두려움에 대해 조지오웰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그 장점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인보다 ‘앞으로, 어떻게’가 중요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 『28』은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의 원인’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 하루키의 책에서 등장인물 쓰쿠루와 구로는 시로를 죽인 범인을 애써 찾는 대신 자신이 범인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렇게 자책하고는 이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전염병 이야기라고 하면 당연히 나올 것이라 생각했던 숙주를 찾으려는 움직임이나, 백신을 만들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서 ‘왜 전염병일까?’라는 질문이 하나 더 추가된다. 암도 있고, 심장마비도 있고, 자살도 있는데 왜 하필 천재지변과 유사한 전염병일까?

사실 전염병은 소재로서도 좀 낡은 편에 속한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최초의 전염병 이야기는 1995년 영화인 ‘아웃브레이크’다. 숙주는 원숭이. 처음에는 신체접촉에 의해 병이 전염되지만, 나중에는 호흡기로도 전염되는 변종 바이러스가 등장해 경악했었다. 그 이후로 전염병을 소재로 한 여러 영화를 보았지만 이야기의 주된 흐름은 병의 ‘원인’을 찾아 ‘백신’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전염병에서 모두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전염병을 그저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병’으로 규정하고 이후에 병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병에 걸린 사람은 있고 병세의 진행상황은 나타나지만 숙주 얘기는 거의 건너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염병의 원인을 연구해야할 박남철 과장도 백신을 만들기는커녕 자신의 아들 때문에 고민하다 자살로 생을 마무리한다. 백신의 홀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결국, ‘전염병이 무엇인가, 살인자가 누구인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전염병은 이제 언제, 어디에서나 나올 수 있고, 힘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어설프지만 이제 답을 내보자. 전염병은 언제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는 우리 내부의 문제와 같다. 산재한 문제들이 너무 많기에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은 이미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대신,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이냐가 중요하다. 문제를 바로 보고, 제대로 해결할 힘만 있다면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문제는 문제될 게 없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수도 없이 생겨나는 세상이다. ‘원인을 찾기보다 결과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에게 새롭게 주어진 과제다.’ 작가는 어쩌면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표지를 보자마자 눈을 확 끌었다. 은행나무의 소설들은 디자인으로 책 자체가 팔딱팔딱 살아 숨쉬는 물고기 같다는 인상을 준다. 띠지를 넣어도 넣지 않아도 디자인이 자연스럽다. 뒷표지 문구도 많은 것 같지만, 정리된 세 가지 이야기만 담았다. 내용으로 따지면 오히려 두 가지로 추려질 정도다. 내가 뒷표지에 많은 얘기를 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내 눈에는 참 좋아보였다. 책이 전체적으로 좀 무겁지만, 거의 500쪽에 달하는 장편이니 이쯤은 그냥 넘어가도 되지 싶다. 요즘 28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해주는 말이 있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가슴을 뚫어 주는 한 방이 있다."(사실 이렇게 정리해서 말해주진 못했다. 다음 번에 그렇게 말해 줘야지 생각은 한다 ㅋ) 결국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그런 시시껄렁한 얘기로 마치게 된다. 으아~ 부럽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서기 2015-07-26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Soae 2015-08-11 19:31   좋아요 0 | URL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