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헤드 마운틴’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 영화를 말하면서 뺄 수 없는 말이다. 오랜만에 예매를 일찍 해서 ‘조망권’에 드는 뒷자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근데 ‘조망’은 고사하고 ‘요상’한 꼴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가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앞자리에서 발생한 검은 연기는 영화 3분의 1을 넘어서며 앞으로 점점 전진하기 시작해, 결국 내 시야의 10분의 1가량을 완전히 잠식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작은 것 같지만 중앙 하단에는 자막이 흐르고, 나는 영어를 잘 못하고, 마침 잠식당한 곳이 그 부분이었다는 것은 ‘치명적’이란 단어로 밖에 내게 설명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주기 바란다.
 
 
앞자리 마운틴 분에게 정중히 등을 붙여달라는 부탁을 하거나 좌석을 발로 차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사실 속으로 몇 번이나 하고 싶긴 했다) 자꾸만 앞으로 나가는 내 몸을 끌어당긴 건 화면이 밝을 때 비치던 살짝 희끗한 머리카락을 품고 있는, 단정한 두상이었다. 오른쪽에는 그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성분이 앉아계셨다. 줄곧 생각했다. 내 아버지가 저 앞에 앉아계시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이 생각을 하니 오히려 내 등판이 자연스레 뒤에 붙어 비비적거렸다. 과연, ‘아저씨도 로맨스를 꿈꾸게 하는 영화’다.
 
 
지금 그녀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여기 오기 직전, 5년 사귀었고 이제 스타가 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지금 남자는 클럽에서 노래를 듣고 있다. 노래에 어우러지는 피아노, 드럼,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의 합주가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오늘 아침 음반 회사에서 쫓겨난 프로듀서다. 영화는 한 번씩 그들이 만나기 전 과거를 간추려 주고 음반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나씩 보여준다. 여자는 싱어송라이터, 남자는 프로듀서, 감독은 재간둥이다.
 
 
이 영화에서 뺄 수 없는 재미는 줄거리보다 음악 얘기다. 아바의 히트곡으로 만들어진 것이 ‘맘마미아’라면 ‘비긴 어게인’의 노래들은 분명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이상한 건 익숙하게 들어오던 아바의 노래처럼 새로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음악들이 귀에 익숙하게 들린단 거다. 간드러지는 데이브(애덤 리바인)의 목소리보다는 담백한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목소리가 더 좋았다. ‘라이크 어 풀(like a fool)’은 듣다가 정말 눈물 날 뻔했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그레타와 댄(마크 러팔로)이 서로의 감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스 따윈 하지 않고 헤어지는 장면이었다. 그때 키스를 했다면 예술이라는 포장지를 뒤집어씌운 치정극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각자 예전 짝에게 배신당했으니 둘이 이어지는 게 맞았던 걸까, 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공유할 수 있으니 잘 맞는 짝인 걸까. 다행히도 그들은 키스를 하지 않았고, 덕분에 오랜만에 15세 관람가(야한 액션영화는 전체 관람가면서, 왜?)다운 올바른 상업영화를 한 편 봤다. 좋은 음악은 단조로운 일상을 빛나게 해주고, 좋은 영화는 더 멋지게 살고 싶게 한다.
 
 
 
Keira Knightley - Like A Fool (Begin Again Soundt…: http://youtu.be/xk5GvfIZG-g
 
 
+다만, 음반회사와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그레타에게 댄이 “마음대로 해. 그건 네 음반이야.”라고 하는 건 다소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투자를 받아온 댄은? 밴드 멤버들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객원 형식 아니었나? 중간중간 공장제 아이돌을 꼬집는 댄의 말은 좋았지만 그와 같은 시스템 안에 있던 프로듀서가 없었다면 그레타의 노래가 하루에 10만장씩 팔릴 일은 없지 않았을까. 포인트가 ‘나쁜 음반업계, 정의로운 그레타’라고 양분되는 것 같아서 좀 중얼거려 본다. 한 사람만 많이 버는 양극화 사회가 되면 곤란하니 이것도 좋은 해결책 일수도 있겠다. 흥행을 하고 지분을 동등하게 나눴으니, 다시 모여 2집을 만들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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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관람불가’라는 빨간 표는 홍상수 감독 영화에 대한 나의 선입관을 잘 표현해준다. ‘홍상수 영화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남녀가 만난다, 새로운 곳에 간다, 한다(청소년 관람불가용으로 생각하시면 되겠다)’라고 본인은 모르시겠지만 작년에 나에게 문학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신 분이 말씀하셨다. 덕분에 내게 홍상수 감독 영화는 활활 타오르는 캠프파이어 장작과 같은 빛깔로 인식됐었다.
 
 
같이 보자고 한 사람이 없었다면 굳이 보지 않았을 영화였다. 노랑바탕에 파랑 글씨, 마음에 들었다. 모리, 영선 그리고 권. 담배, 강아지, 상원, 윤여정(극중 이름은 있지만, 나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내게 그녀는 본인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카페, 외국인 그리고 편지. 키워드 정리는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주연배우들의 다소 어색한 연기와 연출을 의도적이라 생각하고, 배우들의 출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다.
 
 
‘권’은 어학원에서 굉장히 굵은 뭉치의 편지다발을 받는다. 편지를 들고 내려가다 기침 때문에 편지다발을 놓치게 된다. 편지를 다시 주워 모은 권은 카페에 앉아 읽기 시작한다. 편지에는 그녀를 기다리며 모리가 겪은 일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편지를 계단에서 한 번 떨어뜨린 통에 영화 속 시간의 순서는 혼재되어있고, 덕분에 결말은 모호해지고 만다.
 
 
편지글에 기인한 영화여서일까, 감독은 화면을 보여주려 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배우들의 낭독을 들은 느낌이었다. 배우들의 다소 딱딱하고 틈이 많은 대사 전달도 마치 소설책을 한 줄씩 읽어 내려가듯 했다. 영화 내내 암시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점도 영화 언어에 익숙지 않은 내게 책이라는 소재를 떠오르게 해주는 요소였다. 담배라는 장애물을 딛고도 낭랑하게 울리는 목소리, 요즘 보기 드문 편지라는 소재(이메일이 아니다),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에게 관심 많은 오지랖 넓은 조연, 모리가 가지고 다니는 ‘시간’이라는 제목의 책, 무엇보다 다음의 대사가 그랬다. “뭐 하러 오셨어요. 비즈니스? 관광?” “둘 다 아닌 것 같은데요.”


자유란 뭘까?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우는 조카를 달래다 약속시간보다 삼십분쯤 늦게 안국역에 도착했다. 밖으로 나와 몇 분 걷는 동안 가디건을 벗고 민소매 차림이 되었다. 가을볕에 타면 볼품없이 그을린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청소년 관람가도 바꾸어도 될만큼 푸릇푸릇하다. 왜 빨간 딱지를 붙였는지 사실 이해되지 않을 정도. 함께 영화본 언니가 말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야한게 아니라 '찌질하다'고! 보면서 여러 생각도 많이 했지만, 무엇보다 유쾌했다. 성찰하게 만들면서도 기분좋게 웃고 나올 수 있게 하다니. 그래서 마니아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홍 감독 영화 나오면 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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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의, 액션에 의한, 액션을 위한 영화
 
1월 1일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처음이다.
 
원래 보고 싶었던 것은 요즘 별 반향을 못 일으키는 ‘호빗’이었는데 ‘용의자’를 보게 됐다.
 
주인공은 반은 남한 서울말, 반은 북한 문화어에 가까운 발음을 사용한다.
 
물론 그가 보여주는 액션은 멋졌으며, 들쭉날쭉한 말투만 제외하면 연기도 꽤 괜찮았고, 몸매는 말투의 미흡함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새해 벽두부터 울긴 싫었지만, 마지막 장면에선 눈물을 찔끔거린 건 이 영화에 대한 예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 전세계, 한반도에 필요한 건 파워가 아닌 피스라는 걸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됐다.
 
빌게이츠는 최고 부자에서 이제 최고 기부자가 되었다는데 우리나라에도 과연 그런 사람이 나올까.
 
아, 우리나라는 세제혜택을 많이 안 줘서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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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제혜택 축소…기부 발목잡는 세법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122035891
진짜 이해가 안 가는 게 3000만 원 이하는 감면액을 15%로 줄이고, 초과는 그대로 30% 감면해 주겠단다. 돈 많이 안 내는 사람은 기부금 내도 인정 안 해주겠다는 건가? 내가 표를 잘못 읽은 건지.
 
>>조세소위, 기부금 세제 혜택 축소 등 합의 실패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777575&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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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나는 좀 삐뚤어졌다.
 
가장 아쉬운 건 ‘기획의도’였다.
 
영화를 잘 보고 기분 좋게 감상평을 쓰려고 했는데, 속이 상했다.
 
다른 곳에 나온 것은 좀 다를 지도 모르겠다.
(각각의 매력이 있으니 비교하는 걸 지향하는 바는 아니지만, '관상' 기획의도를 좀 참고했으면 한다)
 
네이버 제작노트에는 영화를 ‘한계를 뛰어넘는 익스트림 리얼 액션!’이나 ‘공유, 생애 첫 본격 액션 도전!’이라고 소개한다.
 
톱스타라면 몸을 사리는 현실에서 배우가 직접 위험한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는 것은 높이 산다.
 
하지만, 그것만인 영화였으면 나는 새해 첫날부터 보길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공유’라는 배우에 대한 호감도가 무척 상승했지만, ‘유아인’이나 ‘장동건’이 연기를 잘 했다고 해도 나는 그 배우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렸을 것이다.
 
작가와 제작진은 배우의 들러리를 선 것인가.
 
‘작품성이 탄탄하고,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영화’ 쪽이 좀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런 말 안 해도 관객들이 나오면서 “작품성이 좋다고 해서 봤는데 액션이 참 멋지더라.”라는 입소문이 날 법하다고 생각한다.
 
애는 제작진도 함께 썼는데, 공과 돈은 배우가 긁어가는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파심에서 한 번 더 밝혀두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공유’라는 배우가 참 좋아졌다. 공유, 파이팅!)
 
그래, 나는 아무래도 좀 많이 삐뚤어진 것 같다.
 
삐뚤인 내게도 좋게 보인 것이 있었다.
 
바로 여배우의 직업이 ‘기자’라는 것.
 
액션 영화를 보기 싫은 이유 중 하나는 여배우들이 하나같이 ‘바보’ 역할을 맡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똑똑한 여자라도 남자가 중심이 되는 대부분의 액션 영화에서 그렇다.
 
문제를 일으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고 자신은 스스로 바보임을 자처하며 남자가 구해주러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런 거 보면 정말 신물 난다.
 
분명 작가가 남자일거란 생각도 든다.
(아니면 굉장히 슬플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할리우드에서 이런 줄거리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좀 덜한 편인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여배우의 직업이 ‘기자’다.
 
영화 '런닝맨'에서 ‘조은지 씨’가 그랬고, ‘용의자’에선 ‘유다인 씨’가 그렇다.
 
드라마 ‘나인’의 ‘조윤희 씨’도 기자다.
 
모든 것을 남자에게 의지하며 도움만 받던 할리우드식 여주인공들과 차별화 된다.
 
이제 정보가 충분히 조작 가능한 사회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진실의 가치는 그만큼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식 있는 기자'가 여자란 사실은 고무적이다.
 
작년 ‘연기대상’을 보시며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다.
 
“악역 했으니까 상 타겠지. 요즘엔 다 악역이 상 타던데.”
 
조성하라는 배우는 등짝을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연기를 너무 잘했다.
 
그는 철저한 악역이었으니 올해 대종상을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의 연기도 좋았지만, 그를 향해 누가 총알을 발사하는지가 훨씬 흥미로웠다.
 
비겁하지만 현실적인 선택이 화면에 비춰질 때 영화는 ‘있을 법한’ 일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상적이지만 실현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도 물론이다.
 
영화를 통틀어 ‘박 회장’이란 인물이 주는 감동이 가장 컸다.
 
가장 이상적이며, 비현실적인 인물이라 생각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 역시 ‘박 회장’같은 사람일 것이다.


http://m.blog.naver.com/greenbooks1/50186309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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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람 속을 꿰뚫어 본다고
‘1453년 흔들리는 조선’ 용한 관상쟁이가 한양에 입성한다. 그가 바로 두 말하면 입 아파지는 주인공 ‘내경’이다. 얼굴만 보아도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용한 재주로 뭇사람들의 관상을 보는 것은 물론이요, 살인사건까지 해결하니 과연 임금마저 탐낼 관상계의 슈퍼스타가 아닐 수 없다. 하여, 슈퍼스타는 문종에게 일을 하사받게 된다. 그의 재주로 역적모의를 할 것 같은 인물들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내경’은 왕의 대리인으로서 일을 시작한다.
일단 소재가 괜찮았다. 묘 자리를 가지고 그렇게 정쟁을 일삼던 사람들이니, 관상을 가지고 싸움질을 한다 한들 이상할 건 없어 보인다. 신기한 것은 ‘풍수’나 ‘관상’이나, 미신 같지만, 이미 있는 것을 해석한다는 데서 공통점을 지닌다는 점이다. 또한 현상을 ‘분석’한다는 면에서 어떻게 보면 오히려 과학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실화에서 영감을 받으면 상상력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점에서 상상력을 ‘관상’이라는 있을 법한 소재를 활용해 이야기를 잘 풀어나갔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양궁으로 치면 9점 이상 맞춘 것이 분명하다. 명궁이다.


보아하니, 도화빛이 돌고 입술이 붉은게……
「관상」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색’이다. 적재적소에 사용되는 색의 대비. 색을 이용한 미장센의 활용은 유채색과 무채색의 대비로 나눠보면 어떨까. 무채색과 유채색은 한 병에 담겨있어도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다. 영화 속 장면들도 이러하다. 복잡한 한양의 생동감 넘치는 유채색이 현실을 상징하고, 비현실적일 정도로 고즈넉한 내경의 집이 무채색과 짝 지워 진다.
영화는 이상 속에 사는 ‘내경’의 식솔들을 현실 속으로 끌어낸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과 어울리지 못해 한양에서 제대로 된 색을 얻지 못하고 희미하다. 반면, 항상 세상 소리에 밝고 기민하게 행동하는 연홍과 수양대군의 옷은 색이 가진 것을 마음껏 뽐낸다. 김종서 대감의 흰 옷 또한 무채색이지만 시골 필부들이 입던 느낌이 아니다. 휘황한 호랑이 기운을 보여준다. 그들의 옷은 그 자체로 빛이 난다. 그들은 현실 속에 제대로 뿌리박고 사는 이들인 것이다.
내경과 문종이 왕의 집무장소인 근정전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왕은 어좌에 앉아있고, 내경은 바닥에 꿇은 채이다. 수양대군과 단종도 같은 장소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색의 비교는 진가를 발한다. 문종의 곤룡포는 검붉은 색으로 보인다면, 그의 아들은 다르다. 단종과 수양과 사이를 가로지르는 밝은 빛이 그의 옷이 무슨 색인지 알아보기 힘들게 한다. 색이 없다. 현실이, 현실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 장면에서 단종의 어좌가 흔들리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미장센을 잘 살린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한명회’이다. 감독은 다분히 영화언어다운 방법으로 그를 포장한다. 그가 인상적인 것은 언어나 행동이 아니라 ‘모습’이다. 중반 이후까지 그의 얼굴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가면을 쓰고 고개가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관객은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하지만 그 모습을 통해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그는 밤에 이글거리는 불빛과 함께 등장할 때가 많으므로 섬뜩한 감정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인상적인 앞부분을 끝까지 끌고나가기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미장센의 가면을 벗은 한명회는 연기파 배우마저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장센이 뛰어났다고 볼 수 있겠지만, 영화의 완성도로 따진다면 전체적으로는 무게중심 분배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어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관상」의 인물들을 살펴보며 어쩌면 하나 같이 이렇게 ‘영화적일’수가 하고 감탄했다. 소설적 인물이라 해도 구태여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주인공은 어떤 종류의 의지력이 강한 인물이며, 설득력 있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성공 여부를 떠나 욕망 달성의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몇 번의 실패 후에 기회를 맞이해야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그렇다.
우선, 여섯 명의 주인공 중 대표적 인물인 김종서, 내경, 수양대군만 살펴보자.
‘김종서 대감’은 왕위찬탈을 반대하는 쪽이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그의 욕망이다. 그리하여 내경을 통해 왕을 설득해 역모 전에 처단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물론 단종은 수양대군을 믿기 때문에 몇 번이나 거듭된 실패 후에 얻게 된 귀한 기회이다.
‘내경’은 어떤가. 집안이 역적으로 몰려 천민이 되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집안을 예전의 영화로운 상태로 되돌리고 싶고, 똑똑한 아들을 번듯하게 기르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한양에 올라와 처음에는 연홍에게 속아 고생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김종서 대감과 연을 잇는다. 이제 관상으로 알아낸 역적 수양대군만 처리하면 다시 집안을 일으킬 수 있다. 영리한 수양대군에게 속아 다른 사람을 그로 착각하는 실수도 했지만, 지나간 일이다. 역모만 막으면 세상은 내경 편이다.
‘수양대군’은 역모를 꾀하는 쪽이다. 태조가 어떻게 세운 조선인데, 약한 왕 때문에 김종서 따위의 사대부들에게 넘어가는 꼴은 볼 수 없었다. 단종 독살 계획이 실패하고, 역모를 꾀하려 한다는 것도 그들이 눈치 챘지만, 먼저 치면 승산은 내게 있다.
이들 세 명의 욕망 구조는 시나리오 플롯의 ‘인물의 특징’에 꼭 맞아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각기 다른 인물이 보여주는 복합적인 욕망이 거슬리지 않는다. 관객에게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다. 작가가 ‘2010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대상’을 수상한 인물인 만큼 설득력 있는 구성이 대단하고 생각했다.


물론 홍일점 ‘연홍’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내경’과 ‘팽헌’은 이상을 꿈꾸는 인물들이니 제외하고, 현실적 인물들 중에서 ‘연홍’은 여섯 명의 주인공 중에서 가장 평면적인 인물이다. ‘김종서 대감’마저 청렴을 추구하면서도 백표정치로 안으로 곪아 ‘입체적인 인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반면 ‘연홍’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류에 영합해서 잘 살아보려는 모습이다. 그녀를 중심으로 한 수양대군 ‘역적 증표 만들기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대군의 이마에 점을 찍는 일. 이것이 그녀가 입체적인 인물로 발돋움할 절호의 기회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변하지 않는다. 거사를 마치고 그들은 각자 볼일(?)을 해결한다. 물론 여자와 남자가 나뉘어서 말이다. 그때 남자들은 자신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지만, 그녀는 혼자 생각한다. ‘그런다고 역모를 막을 수 있을까?’ 연홍이라는 인물은 주인공이 되기에는 너무 평면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소시민인 우리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삶에 적용해보자. 우리도 조용히 살다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어떤 역할을 부탁받는다. 투표가 될 수도 있고, 서명이 될 수도 있고 기부가 될 수도 있다. 그 외에 어느 것이든 가능하다. 동전을 던지면 한쪽 면이 보이듯, 결과 또한 한쪽으로 기울게 마련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과가 어찌되든 ‘연홍’처럼 ‘눈치’를 발휘해, 변한 세상에 영합해 살아간다. ‘연홍’이라는 인물이 의미 있는 이유는 우리의 현재 모습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은 변하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눈 내리는 날, 웬 노인네가 두려움에 떠는 장면. 바로 부관참시 당한 ‘한명회’다. 사전 수출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이 장면에서「관상」이란 영화가 일단 한국사를 배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생각했다. 한정된 관객들에게 스크린을 통해 제작진이 말을 걸어온다. “1453년은 끝났소. 그건 우리도 알지만, 당신들도 익히 알고 있는 일이오.” ‘매경’의 집, 비현실적 세상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며 관객은 어떤 일이 펼쳐질까 상상할 여유를 갖는다. 현실적인 색을 품은 ‘연홍’이 무채색의 풍경에 들어선다. 그리고, 능글맞은 제작진이 다시 말을 걸어온다. “그런데 말이유. 이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 않우? 우리는 이런 생각이 들더란 말이유. 어찌, 한 번 들어 보겠소?”
「관상」이 배경이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기획의도는 다분히 ‘현실’에 붙잡혀있다. ‘관상에 대한 관심은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제작진은 우리는 예전처럼 ‘어떻게 보이는 가’라는 관상을 중시하며 살아간다고 기획의도에서 밝히고 있다. 이것을 읽으며, 역사가 미래학이란 말이 실감났다. 영화는 이렇게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관상’을 통해 역사적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그들의 노력이 허사로 끝난다는 것을, 허망하리만큼 잘 알고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모가 끝난 후에, 자신이 왕이 될 상이냐고 묻는 ‘수양대군’에게 ‘매경’이 말한다. “왕이로소이다. 진정 왕이로소이다. 선정을 행해 주시옵소서.” 그 말에 ‘수양대군’의 대답은 매경의 아들인 ‘진형’을 죽이는 것이었다. ‘수양대군’이 말했다. “내 너를 죽여야 마땅하나 네 공이 높아 목숨만은 살려둔다.”(제가 생각나는 대로 옮겨 적은 것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매경’과 처남 ‘팽헌’은 무채색의 필부 생활로 돌아간다. 바닷가 마을에 파도가 쉼 없이 올라오지만 이미 색을 잃은 그들의 일상은 바꾸지 못한다. 세상은 언제나 유채색으로 도도히 흐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수양대군’의 이마에 감히 ‘성형수술’을 했던 사건 또한 기억 될 것이다. 공모한 사람들이 살아있는 한, 그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 살아있는 한. 15세기 ‘성형수술 사건’ 이것이 진정한 「관상」의 한 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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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언제 봤었지?
 
이제 기억도 안 날만큼 오래된 옛날 얘기인 것 같다.
 
끽해야 몇 달 전 일이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언니와 영화를 보러 갔다.
 
상영관이 멀리 있어 주말인데도 아침 일찍 일어나, 부리나케 준비를 했었다.
 
우리는 키덜트답게 ‘몬스터 대학교’를 보기로 했다.
 
게다 언니가 꼭 더빙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해서 더빙으로 봤다.
 


청록색 털북숭이 설리반은 유명 가문 출신이다.
 
입학 하자마자 ‘겁주기 학과’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몸짓이나 목청 등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천부적 재능’이었다.
 
마이크는 어릴 때부터 작고 귀여운(!) 외모로 모두의 놀림을 받았다.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오로지 선생님뿐.
 
세상에 항변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영화의 제대로 된 시작은 마이크의 대학교 입학 장면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하지만 대학에서도 그의 외모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귀여운 생김새와 목소리는 그 누구도 무섭게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이크는 사소한데 한눈파는 대신 노력했고, 학기 말이 되자 설리반과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재능을 가지고도 노력하지 않는 자와 재능은 없지만 노력하는 자.
 
그러나 학장의 선택은 둘 모두의 학과 퇴출이었다.
 
‘겁주기 학과’ 복귀를 위한 그들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된 줄거리이다.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이크와 설리반은 학과 복귀는커녕 대학교 중퇴자가 된다.
 
물론, 나중에 몬스터 주식회사 최고의 인기스타가 된다는 말도 빼놓아선 안 되겠다.
 
그들은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가장 힘든 우편실부터 시작한다.
 
세월이 지나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위로 올라간다는 성공 스토리다.
 
묘한 기시감이 들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치 자기개발서 같다.
 
현실적인양 설리반의 가문을 이야기하고, 마이크의 모습을 꼬집지만 결국, ‘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씁쓸했다. 현실에서, 해도 안 되는 일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찡하게 울렸던 장면이 두 군데 있었다.
 
첫 번째는, 몬스터 주식회사를 견학하러 갔을 때 마이크가 했던 말이다.
 
“너희 저 괴물들의 특징이 뭔지 아니? 모두 다 다르다는 거야”
 
모두 다 각자의 개성이 있으니 그것을 발전시키면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인생은 묘하다.
 
그걸 아는 그도 좌절하게 되고,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시험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연다.
 
두 번째는, 멋대로 문을 열고 나간 마이크가 학장이 막은 문을 열기 위해 ‘겁주기 계획’을 실현하는 모습이다.
 
마이크가 가진 모든 겁주기 능력을 총 동원하고 같이 갔던 설리반이 합세해, 둘은 몬스터 세상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한다.
 
현실은 변함없는 ‘중퇴생’이었지만 그는 분명 성취감을 얻었을 것이다.


비명캡슐이 가득 차고 학장의 놀라는 얼굴이 비춰진다.
 
순간 엄청난 겁주기에 성공한 그들에게 ‘중퇴 취소’가 선언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학장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괴물이었다.(역시 제도권은 특별함을 힘들어 하는 게 분명하다)
 
짐을 잔뜩 지고 버스정류장에 선 그들 앞에, 학장이 나타난다.
 
“학교에서 너희들을 받아줄 순 없지만, 행운을 빈다”(기억대로 썼다. 내용은 얼추 맞을거다)
 
재능을 인정한다는 듯이 들리지만, 결국 알아서 살아남으란 얘기 아닌가.
 
영화관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 영화 제목이 뭐였지? 목적이 이끄는 삶?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보는 내내 신나게 웃었지만, 뒷맛은 썼다.
 

영화 속에는 세상의 사상이 너무 재미있게 녹아있어서 까딱 잘못하다간 속고 만다.
 
내 길을 잃게 된다.
 
아닌가, 영화는 반어법을 쓴 것일까.
 
가족영화로 구분된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다니, 집으로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1,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선전문구와 영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선택했었다고 합니다. 독일인들은 투표로 그를 나라의 수장 자리에 앉혔지요. 이 영화를 보고나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문화로 많은 사람의 생각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보다 주의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교훈적인가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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