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봉수 웅진씽크빅 출판부문 사장]

최근 웅진씽크빅(옛 웅진출판)의 공격적인 행보가 출판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해 10월 잡지부문을 디자인하우스에 일괄 매각한데 이어, 임프린트(Imprint)사를 4개에서 8개로 대폭 늘리면서 출판계의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해 150억원 수준이던 출판부문의 매출 목표도 3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올려잡았다. 최봉수 출판부문 사장은 “업계 1위를 차지하기 위해 어떤 투자든 하겠다는 게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라고 전했다. 그는 “향후 3~7년 이내에 출판계에 완전히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그 신호탄은 매출 1천억원대 출판사의 탄생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그는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출판사만이 이러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웅진의 ‘1천억 전략’을 가다듬고 있는 최봉수 사장을 지난 1월11일 만났다.

- 출판계의 흐름을 어떻게 전망하나.

= 앞으로 짧으면 3년, 길어도 7년 이내에 출판계에 완전히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걸로 예상한다. 매출 1천억원을 돌파하는 출판사가 2~3개 등장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판이 만들어질 것이다. 92년 업계 1~2위를 다투던 김영사의 매출규모가 40억원이었다. 그러다 99년 출판사들이 처음으로 100억원대에 진입했고, 드디어 지난해 400억원을 넘긴 곳이 나왔다. 규모가 커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대형 메이저 출판사의 등장은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은 2004년을 기준으로 랜덤하우스가 17%, 펭귄이 15%를 차지하는 등 상위 5개 출판사가 전체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일본도 고단샤, 소학관 등 상위 5개 업체가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영미권에만 해당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프랑스는 2개 출판사가 전체 시장의 80%를 갖고 있다.

- 집중화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뭔가.

= 우리나라는 현재 상위 5개 출판사의 시장 점유율이 4%대에 불과하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상위 5개 출판사가 아닌 곳에서 베스트셀러를 내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기획과 유통에서 경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저자나 유통회사들이 메이저 출판사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문제는 모든 출판사들이 다같이, 똑같이 성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매출 300억원 규모의 출판사가 4개, 200억원대가 10개 정도다. 이들 가운데 2~3개는 계속 성장하지만 나머지는 정체하거나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탈락하는 출판사들은 빨리 전문화로 방향을 바꿔 새로운 비전을 찾아야만 한다.

- 그렇게 되면 출판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 아닌가.

= 해외의 메이저 출판사들은 하나의 출판정책, 하나의 출판철학에 의해 움직이는 단일 조직체가 아니다. 그 안에는 다양한 색깔을 가진 수많은 임프린트사들이 들어가 있다.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출판을 한다. 오히려 새로운 변화를 통해 우리 출판문화가 훨씬 다양해지고 더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 영미식 출판 모델이 우리 현실에는 맞지 않는 것 아닌가.

= 출판이 무엇인가, 출판의 산업화가 무얼 의미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랜덤하우스중앙에 있으면서 느낀 것은 영미권의 출판사들이 한국보다도 오히려 더 편집자 중심, 사람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은 연봉이나 보상 등 모든 시스템에 반영돼 있다. 우리도 이제는 평생 편집자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해외 도서전에 가면 10년, 20년 동안 빼놓지 않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 나이이지만 수십년 동안의 출판 리스트를 다 꿰고 있는 전문 편집자들인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40세가 넘으면 은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웅진에서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다.

-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방안이 있나.

= 웅진으로 옮기면서 두 가지를 약속 받았다. 먼저 웅진씽크빅 안에 있지만 출판 부문의 자율경영을 보장해달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독자적인 인센티브 체계였다. 사업이익의 30%를 인센티브로 달라고 했다. 출판사는 공장이나 기계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좋은 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곳만이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업이익의 30%라는 건 굉장히 파격적인 것이다. 영미권에서도 목표수익의 17~18%를 주는 곳은 최고다. 다소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었는데 윤석금 회장은 흔쾌히 수용했다. 단, 나눠먹기는 안 된다는 조건을 걸었다. 전체 인력의 30%에게만 주라는 것이었다. 현재 우리 전체 인력이 100명쯤 되고, 매출목표는 300억원이다. 그대로 시행된다면 연말에 30명에게 1인당 평균 3천만원의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출판계가 또 한번 들썩일 것이다.

- 출판계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않은데.

= 386세대 이후로 출판계에 유능한 인재들이 들어 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출판의 미래가 없다. 미국의 경우, 랜덤하우스 신입사원의 70~80%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출신이다. 초기 연봉은 월스트리트의 80%에 불과하지만 15년쯤 지나면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똑같은 수준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 주저하지 않고 출판사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80%까지는 아니라도 70%, 60%는 보장해 줘야 한다. 출판의 미래는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인재들이 들어와 개척해 나갈 수있게 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출판의 산업화, 기업화가 필요하다. 1천억원대 정도의 규모가 되야 미래에 대한 투자도 하고 다양한 시도들을 해볼 수 있다.

- 단행본만으로 과연 1천억원대 매출이 가능한가.

= 순수 단행본 시장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출판의 개념이 상당히 협소하다. 학습지와 참고서, 단행본이 서로 따로 움직이고 있다. 대부분은 학습지와 참고서는 출판으로 치지도 않는다. 지난해 단행본 출판사로서는 처음으로 민음사가 400억원을 넘었다고 하지만 학습지와 참고서 쪽에서는 이미 그 정도 매출액을 넘은 곳이 상당수다.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단행본이라는 좁은 영역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단행본 출판사들이 교과서를 더 잘 만드는 현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이 맞물리면 충분히 1천억원대 출판사가 나올 수 있다. 웅진씽크빅은 학습지, 전집, 단행본 그리고 방과후 수업 등 4개 본부가 있다. 이들을 엮어내 콘텐츠를 교환하고 공유할 수 있는 영역들이 적지않다고 생각한다.

- 출판 유통체제의 변화는 어떻게 예상하나.

= 유통 쪽에서는 교보문고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화사업이 아니라 비즈니스로 서점업을 한다면 당연히 프랜차이즈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서울지역은 10개까지 가능하고 전국적으로 70개 정도까지도 가능하다고 본다. 교보문고도 최근 그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앞으로 30개까지 서점을 늘릴 계획인 걸로 알고 있다.


(이코노미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근래 『장난감을 버려라 아이의 인생이 달라진다』(이병용 저, 살림출판사 폄)를 보았습니다.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유치원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 붙어 있지만, 건태란 아이는 장난감과 놉니다. 그런 건태는 공격성을 드러내며 장난감 중독에 빠졌지요. 상담을 통해 건태의 생각을 알아 낼 수 있었는데요, 건태는 사실 엄마와 하루 종일 있었다고 해도, “아빠는 매일매일 바쁘고, 엄마는 텔레비전 보고...”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존 버닝햄의 그림책 『알도』를 보면 외톨이 소녀의 우울한 독백이 적힌 처음 몇 장이 바로 건태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그런데 그림책에서 소녀는 건태가 장난감에 빠져들었듯이 아주 특별한 친구와 단짝 친구입니다. 하지만 그 소녀는 알도라는 이름의 장난감 토끼 인형이지요. 알도는 소녀가 소녀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을 때도 위안을 주는 친구이고, 누구에게도 할 수 없던 비밀 이야기도 들어주는 믿음직한 친구입니다. 그런데 소녀는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을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인 장난감 토끼 인형 알도가 행여라도 사라질까 불안해하기도 합니다.

이 그림책의 작가 존 버닝햄도 그랬다고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대안 학교인 섬머힐을 다녔던 그는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공상에 빠져 있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소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어쩐지 안쓰러운 느낌으로 가득합니다. 어쩌면 스스로를 다섯 살 정도의 정신연령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존 버닝햄이 『알도』를 통해서 표출하고자 했던 것은 아이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은 아니였을까요? 알도를 사랑한 소녀처럼 엄마를 대신할 또 다른 애착 대상을 찾는 아이들의 심정은 보편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알도』에서 소녀는 토끼 인형이 엄마의 대리물이었다고 한다면, 『마법 침대』에서는 삐걱거리는 낡고 초라한 침대가 조지란 주인공 소년의 애착 대상이 되어줍니다. 조지는 아빠와 함께 쇼핑센터에서 사온 낡은 침대에서 머리맡에 적혀있는 ‘이 침대에 누우면 먼 곳으로 여행하게 된다.’라는 신비한 문구를 발견하게 됩니다. 엄마와 할머니는 고물 침대를 집안에 들여놓았다고 성화이지만 침대에 적혀 있던 문구의 주문을 해독한 조지는 침대를 타고 먼먼 상상의 세계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죠. 밀림에서 길을 잃은 아기 호랑이를 돌보기도 하고, 동국 속에서 보물로 가득 찬 상자를 발견하기도 하면서 조지는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마녀들처럼 침대를 타고 마음껏 상상의 여행을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남겨두고 간 휴가 여행을 다녀와 보니 조지의 헌 침대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할머니가 새 침대를 사놓으신 거죠. 어린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덮었던 작은 담요를 성장을 해서도 지니고 다니듯, 불안해진 조지는 쓰레기 운반통 꼭대기에서 낡아 빠진 침대를 찾아냅니다. 이처럼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애착 대상을 통해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하고, 현실 속에서 이루지 못할 상상을 통해 아이에서 벗어나야 하는 현실을 외면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입니다. 점점 키가 자라나서 어린 시절 침대를 쓸 수 없었던 조지가 새 침대를 구해야 했던 것이 현실이라면, 아이들은 동심의 세계 속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은 피터팬 신드롬은 누구나 조금씩은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까요? 비록 이런 아이들이 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자기 세계를 지키고자 집착하는 아이의 고집불통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아이의 작은 키로 보기에 어른들의 세계는 자신들이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큰 세상일테니까요.

전 버닝햄이예요.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죠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넘치는 상상력을 약 20 여 편의 그림책에서 풀어나가고 있는 존 버닝햄은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 찰스 키핑과 함께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로 손꼽힙니다. 또한 몇 년 전 국내의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은 그림책 작가 1위’로 뽑히기도 했다고도 합니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그는 기존의 가치관이나 기준에 따라 억압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교육이 아이의 창조성을 억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한 존 버닝햄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어린 시절을 통한 확신에 찬 주장이기도 할 것입니다. 1937년 영국에서 태어난 버닝햄은 어린 시절, 학교만도 10여 차례 옮겨 다니다, 섬머힐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는 학생이 관습을 거슬리는 행동을 하더라도 크게 다그치거나 문제를 삼지 않는 학교로 유명한데요, 비로, 존 버닝햄은 무표정을 벗어던지고 자유로운 공상에 폭 빠져 자신이 그리고 싶은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우울했던 시절의 무표정한 모습은 그림책들에도 투영이 되는데요, 그림 속의 아이들의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이 결코 아닙니다. 웃을 줄 모르는 아이들처럼 말이죠. 또한 그는 스스로가 다섯 살의 정신 연령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 그림은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서툰 형태로 의도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거친 볼펜 자국과 시커먼 붓질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듯한 그림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쉽게 동화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만, 존 버닝햄은 그림책 하나를 구상하면서 아주 긴 시간 동안 어떻게 표현할지 많은 고민을 하는 작가입니다. 글쓰기 또한 500자 쓰는 것보다 100자를 쓰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에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골라 쓴다고 합니다. 『지각 대장 존』에 나오는 선생님의 생김새를 결정하기 위해 무려 스케치를 300번도 넘게 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철저히 그림책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겠죠?

존 버닝햄의 부인은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그림책 작가예요. 『곰 사냥을 떠나자』, 『커다란 순무』의 그림을 그린 헬렌 옥슨버리 여사를 기억하실 거예요. 두 분은 버닝햄이 런던의 센트럴 스쿨 오브 아트에서 미술 공부를 할 때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벌써 결혼 40주년을 맞은 그림책 작가 부부는 함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가져온 골동품으로 꾸민 빅토리아 시대의 벽돌집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작년 7월부터 9월까지 서울 성곡 미술관에서는 멋진 잔치가 있었습니다. 바로 존버닝햄의 그림책 속의 삽화 66점을 전시한 것인데요, 이 때 사진으로 찍은 존 버닝햄의 모습을 함께 만나보실까요?


이 때 존 버닝햄 씨는 한 인터뷰를 통해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을 쓴다고 해서 특별히 아이들을 염두해 두고 작업에 임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는데요, 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사실 어른이 좋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은 삶 속에 지혜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실제로 청년 시절 존 버닝햄은 병역을 피해 일종의 공익 근무 요원으로 이스라엘까지 가서 산림 감시원이나 청소부를 한 경험도 있는, 결코 편안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는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 기억들조차 소중히 여기며 심지어 어린 시절의 낙서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그에게는 빡빡한 공부 일정에 쫓겨 어린 시절 동안에도 참다운 동심의 시절을 보낼 수 없는 한국의 어린이들이 불쌍해 보였는지, 우리나라 엄마들에게 아이가 혼자 놀 시간을 보장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고 하더군요.

검피 아저씨 - 환상과 현실이 직교된 세상

검피 아저씨 시리즈는 버닝햄만의 스타일을 잡기 시작한 초기의 그림책들입니다. 이 중에서 먼저 출간된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는 1971년에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을 수상했습니다. 첫 장을 펼치면 물뿌리개를 들고 밀짚모자를 쓴 검피 아저씨가 자신의 집 앞에 서 있습니다. 가는 펜 끝으로 직교된 노란 선들이 뜨거운 여름날을 연상시킵니다. 아저씨는 마치 존 버닝햄 자신이 어른은 이래야 한다고 제시하는 듯 아이들에게 상냥하고 관대한 분입니다. 한적한 시골, 달리 이글거리는 햇살을 피해 할 일이 없는 동네 아이들을 태운 아저씨의 배가 강둑을 따라 조용히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배를 보고 토끼, 고양이, 개, 돼지, 염소, 닭, 송아지 등이 자신들도 태워달라고 검피 아저씨에게 조릅니다. 소란을 피우면 배가 뒤집힐 염려가 되었지만 아저씨는 착하게도 동물들을 모두 태워줍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배가 결국 뒤집히고 모두들 쫄딱 젖고 말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모두에게 “잘 가거라. 다음에 또 배 타러 오렴”하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합니다.

존 버닝햄의 작품은 환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한 페이지 안에 공존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왼쪽의 예를 보더라도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색의 목탄화에는 주인공이나 화자가 그림책 속에 존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목탄화가 실린 왼쪽의 페이지에 글이 실려 있는 것이죠. 반면 오른쪽의 채색화는 화자 혹은 주인공이 상상하는 또 다른 세상들입니다. 실제로 토끼가 어떻게 검피 아저씨에게 배를 태워달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숨어 있는 화자인 배를 탄 어린이 중 한 명의 상상으로 꾸며가는 가공의 세계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현실과 상상이 세상은 어느 한 쪽이 어느 한 쪽을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분리된 듯 통합된 이야기의 구조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처럼, 장난감을 매개로 놀 때의 모습을 왼쪽, 머릿속에 펼쳐지는 가상의 이야기를 오른쪽에 배치해 두는 것이라 비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구조는 비단 검피 아저씨 시리즈 이외에도 뒤에 소개할 『지각대장 존』에서도 적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존 버닝햄씨는 현실의 세계를 단색의 목탄으로 처리하고 상상의 세계를 현란한 색체로 표현을 했을까요? 제 생각인데요, 아이들이라고 반드시 일상의 세계를 긍정하며 즐기는 것은 아니라는 작가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 같아요. 작가가 열 번이나 학교를 옮겨야 했던 어린 시절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세요. 어린 시절의 존 버닝햄의 현실이 칙칙한 빛깔이었듯이, 오늘날의 우리 아이들도 빠듯하게 짜여진 스케줄에 쫓겨 하루하루를 암울한 흑백의 모노톤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한편, 검피 아저씨가 등장하는 다른 책 『검피 아저씨의 드라이브』는 배를 타고 나가는 대신 아저씨의 지프차를 타고 아이들과 동물들이 야유회를 가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검피 아저씨의 드라이브』에서 동일한 사건으로 이야기가 종결됩니다. 그런데 오른쪽의 그림이 자세히 보이시나요? 납작한 얼굴에 점으로 박힌 눈, 꼭 다문 입술의 아저씨는 그저 기분이 조금 좋아지면 살짝 미소만 띠고, 기분이 나빠지면 턱이 좀 길어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요. 이는,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아저씨의 모습을 통해 아이의 입장에서 본 어른들의 감정 표현의 없음의 답답함을 드러내고자 함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데요, 어쨌거나 이 착한 검피 아저씨 마저 표정이 없다는 것은 좀 아쉽네요.

어른들은 잊고 있는 동심

스티븐이 집에 가져온 장바구니 속에는 달걀이 다섯 개, 바나나가 네 개, 사과가 세 개, 오렌지가 두 개, 도넛이 한 개. 그리고 과자 한 봉지가 있었어요. “스티븐, 대체 어디 있다 오는 거니?” 엄마는 심부름을 시키고는, 행여 나쁜 일이라도 생겼을까봐 한참을 노심초사하며 기다렸어요. 그래도 엄마는 스티븐의 얼굴을 보자 안심이 되셨는지 “겨우 달걀 여섯 개, 바나나 다섯 개, 사과 네 개, 오렌지 세 개, 도넛 두 개, 과자 한 봉지를 사오는데 이렇게 늦었니?”라고 꾸짖었어요. 후후. 스티븐의 엄마는 어렸을 때 저의 엄마와 똑같아요. 제 이야기 해드릴까요? 어떤 일이냐 하면요, 맏딸인 저는 가끔 두부 심부름이나 달걀 심부름, 혹은 붕어빵 심부름을 갔었어요. 딸랑딸랑 울리는 종소리의 발원지를 쫓아 두부 아저씨를 만나면 아저씨가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두부 한 모를 제가 가져간 사발에 넣어주셨지요. 그런데 저의 집 근처에는 자갈밭이 옆에 있는 테니스 코트가 있었는데, 저는 두부를 들고 산악인 아저씨들 흉내를 내다 그만 자갈밭에 엎고 말았답니다. 두부는 사발 밖으로 튀어나와 뭉개져 버렸어요. 빈 그릇을 달랑 들고 풀죽은 모습으로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너 어디 갔다 왔기에 빈 그릇만 들고 왔어?” 하하, 엄마는 자갈밭에서 미끄러져 무릎이 깨진 저보다는 빈 그릇이 먼저 눈에 보이셨나 봐요. 참 야속했겠죠? 엄마도 한 때는 어린애였고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장에도 갔다 오셨을 턴데, 어린 꼬마가 장에 혼자 가는 일이 얼마나 두렵고 힘든 일인지 다 잊은 듯 하시니까요. 하지만 만일 그 날 엄마가 저에게 “많이 아프니?”라고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셨더라면, 그림책 『장바구니』의 스티븐이 겪었던 사건에 별로 동감을 느끼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시킨 장보기 목록대로 스티븐이 장을 봐오지 않은 걸까요? 아니죠. 스티븐은 아마도 엄마가 알려주신 것을 외우며 장에 갔을 거예요. 정확하게 샀지만, 돌아오는 길에 곰, 원숭이, 캥거루, 돼지, 염소, 코끼리를 만나 장바구니에 든 것들을 하나씩 던져주고 나서야 간신히 피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것도 모르고 엄마는 화만 내요. 엄마들은 벌써 아이들은 한 걸음, 한 걸음씩 힘겹게 세상을 배운다는 것을 잊어버린 걸까요?

엄마뿐일까요? 학교 선생님은 어때요? 저도 가끔은 회사에 가기 싫을 때 혹은 지각할 것 같기만 할 때 말도 안 되는 공상을 하곤 했었어요. 존 버닝햄의 작품인 『지각대장 존』은 어린 시절의 존 버닝햄이 그랬을 듯 매일 학교에 지각을 합니다. 지각을 했다고 야단치는 선생님은 존에게 이유를 묻지만 존이 대는 이유는 얼토당토 않은 것들뿐 입니다. 실제로 존이 등교길에서 악어와 사자를 만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존이 학교에 가는 길은 존의 상상 속에서 엄청난 고난의 길입니다. 악어가 나타나 존의 장갑을 던져버리질 않나, 사자가 나타나 존의 바지를 물어뜯지 않나... 그러니 존 패트릭 노먼 맥헤너시 선생님도 존의 말을 믿어줄 수는 없었을 거예요. 어른들은 그래요. 왜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어않는지, 왜 지각을 하면서 거짓말을 둘러대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하기 보다는 펄쩍 펄쩍 뛰면서 지각한 조를 벌을 주기만 하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고 말지요. 저도 『지각대장 존』에서의 존처럼 ‘선생님 잘못했습니다.’라고 반성문에 수도 없이 써봤는데요, 그렇게 한다고 진짜 반성하게 되지는 않더군요. 어른들은 몰라요. 무엇이 아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고, 어떻게 해야 즐겁게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지 않아요.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얼마 전 본, 킴 푸브 오켄손 글, 에바 에릭손 그림의 그림책 『유령이 된 할아버지』가 떠오르는군요. 주인공 소년의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소년과의 작별을 하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되자 유령이 되어 소년을 찾게 됩니다. 손자와 함께 옛 추억을 회상하며 뜨거운 포옹을 하고 편안히 작별을 하는 모습을 『유령이 된 할아버지』는 감동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칠순이 된 존 버닝햄도 할아버지일테고, 인생이란 무엇인지 좀 더 따듯한 시각으로 조명해서 『우리 할아버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림책 속의 주인공인 어린 손녀는 할아버지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느냐며 질문을 합니다. 그러자 그 순간, 손녀는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굴렁쇠를 돌리고 줄넘기를 하며 시소와 그네를 타는 어린 시절의 할아버지도 만나고 현실로 돌아온 소녀에게, 밤이 되자 할아버지는 동화책을 읽어주십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소녀는 텅 비어있는 할아버지의 의자를 바라보며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을 그리워합니다. 이 그림책은 죽음과 부재, 그리고 그로 인한 그리움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빼어난 책입니다. 혹자는 아이들에게 죽음과 부재란 문제가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세요. 가끔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안방 문을 빼꼼이 열고 부모님이 무사히 주무시는지 확인해야 다시 잠들 수 있던 기억들이 한 번 정도씩은 있으셨을 테니까요. 『우리 할아버지』가 제게는 그토록 가슴 찡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비록 죽음으로 인해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온다고 하더라도 삶을 긍정하며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의 애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좀 우울해 보이지만 따듯한 이야기로 마녀의 그림책 소개를 마치게 되었네요. 겨울밤, 아이들과 함께 나란히 누워서 존 버닝햄의 그림책을 함께 읽으시면서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요?
라인
저자소개
‘책을 요리하는 마녀’Oracle the Miracle은 그림책을 소개하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그림책에 빠져 지내는 엉뚱한 마녀입니다. 현대영어사, 언어세상, 사회평론 등에서 미국교과서 프리젠터로, 어린이 영어 도서 출판기획 편집자로 일하면서 그림책을 배우게 된 ‘책을 요리하는 마녀’는 요즈음 온라인 콘텐츠 번역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을 요리하는 마녀’ Oracle the Miracle은 틈틈이 싸이월드의 공식 페이퍼 ‘영어동화의 세계’를 발행하고 개인홈페이지‘witchcook.com’을 통해서도 그림책과 챕터북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YES24 어린이 독서도우미 2기( ☞클럽 보기)로 활동하며 어린이 독서 교육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엉뚱하지만 기발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책을 요리하는 마녀’는 우스꽝스럽게도 클래식 음악 감상과 직접 한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취미랍니다.

-------------------------------

삽화가 소와달 님(장천석)은 '광고언어연구'외에 다수의 북카버 디자인을 하셨습니다. 소와 달과 아이를 수채화와 유화로 그리기를 좋아하는데, '프러시안블루' 전에 1회부터 12회까지 작품을 출품하셨고, 혜원갤러리에서 '인물화'전을 가진 경험이 있습니다.

 

 

예스에서 퍼왔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환경책 잔치 벌이는 ‘바보들’ [06/01/17]
한달 책값 1만3천원 한국인 상대로
입시제도 재테크책도 아닌 환경책 읽으라는 자들
확실히 정신나간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그런 책 펴내는 출판사들 더 바보 아닐까

새해 벽두에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3분기 가구당 평균 소비지출 내역은 새삼 충격적이었다. 여러 매체들은 특히 그 통계의 핵심을 ‘책값에 인색한 한국인’ 쪽으로 잡아 보도하고 있었다. 내용인즉, 한국인들이 책을 구입하는 데 거의 돈을 쓰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문값 1만2천원을 포함해 잡지와 애들 동화책까지 포함해 한달 책값이 1만397원이었다. 전체 소비지출(204만8902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5%였다. 2004년 같은 기간의 책값은 1만148원이어서 그나마 좀 늘었다지만, 2003년(1만774원)에 견준다면 3.6% 줄어들었다. 외식비는 24만5천원, 사교육비 14만9천원, 통신비 13만2천원, 그리고 옷 사 입고 장신구 사서 가꾸는 데 드는 돈은 6배 이상이다. 한마디로 한국인들 거의 돈 들여 책을 안 산다는 이야기다.

이번 통계결과는 해석하기에 따라 시사하는 바 의미가 깊다. 출판계의 양극화 현상이 깊어진다는 우려도 들리지만 출판계 사람들에게 이런 통계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을까. 잘은 모르지만, 시멘트 바닥에서 꽃을 피우려는 무모한 노력이 재삼 확인되어 어쩌면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싶은 허탈과 깊은 낭패감에 사로잡히지 않았을까 싶다.

환경판의 몇 소중한 사람들과 뜻이 맞아 벌써 4년째 매년 ‘환경의 날’ 즈음에 교보 매장을 빌려 ‘환경책 잔치’를 벌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런 통계가 주는 남달리 황당한 심사가 있다. 이 황당한 느낌은 출판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절망감이라 할 수 있다. 이다지도 책을 안 읽는 사회에서 ‘환경책’이라는 신조어를 개발해 그 범주를 애써 정하고, 환경책 독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환경책 출판을 하고 있는 출판사에게는 ‘한우물상’이라는 형태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 다르게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 호소하는 이 한심스러운 책잔치가 어쩌면 플래카드 내걸어 사람들 모아 얼음판 밑에서 빙어를 건져내 기름에 튀겨먹는 강원도 산간지방의 빙어잔치만도 못할지 모른다는 모질고도 겸연쩍은 자괴감 말이다.

심하게 말해서, 이런 사회가 안 망하고 설렁설렁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런 사회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자기기만일지도 모른다. 한 사회에 만약 얼굴이 있다면 부끄럽고 창피해 뻘개진 얼굴을 수직으로 떨궈야 할 판이다. 교육열은 이 지구별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높고, 문맹률 낮기로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사회건만, 졸업하면 그날부터 책 안 읽는다는 이야기다. 교육의 목표가 세칭 일류대학 입학이고, 입학 후의 목표는 오로지 취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일은 어찌 생각하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 민족집단의 공동기억인 ‘국사’가 선택과목이고, 언제부터인지 국어국문학과 앞에 ‘미디어’라는 해괴한 당의정이 붙더니만, 지방대학의 경우에는 그나마 있는 국문과도 없애고 무슨 ‘미디어문화과’ 어쩌구 돌아가는 판이니 따로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나라’로 말해도 ‘민족’으로 말해도, 어불성설의 끔찍한 일들이 뻔뻔스러운 현실이 되어버렸다.

대학의 일부 학과가 그 존속 때문에 시대 흐름에 아부하는 조어를 만들어 견뎌내려는 모습도 안쓰럽긴 하지만, 진작부터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은 인문학을 적극적으로 죽인 지난 정권의 교육관이었다. 이를테면, 정부 부처의 명칭만 해도 그렇다. ‘문화관광부’도 문제적이지만, ‘교육인적자원부’가 뭔가. ‘사람’을 키우는 교육에 어떻게 ‘자원’이라는 광물질의 아우라를 지닌 말이 그토록 천역덕스럽고 당당하게 결합될 수 있을까. 그런 기능주의가 공공연해지다 보니 급기야는 최고 통치권자의 입에서 ‘대학이 산업’이라는 말도 튀어나오고 말았다.

늪지에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느라 사람들 엄청 죽인 제정 러시아의 피터 대제는 “모든 인간은 정해진 의무를 가진 법률적인 재산의 일부분이다”라는 칙령을 내렸다. 국가는 곧 피터 대제 자신이었으므로 모든 인간은 곧 자기 소유물이라는 과대망상이었다. 부채질하듯 살육을 일삼었던 중국 황제들의 백성관도 오십보백보이긴 했다. 거기서 인류는 좀더 바람직하고 마땅한 방향으로 나아갔을까. 틈만 나면 일 없이도 습관처럼 ‘대통령’을 조지는 언론재벌과 재벌언론의 ‘표현의 자유’가 한껏 구가되는 것을 보면, 진일보한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만 골똘히 고쳐 생각해봐도 그렇다. 사람이 어떻게 자원인가.

모름지기 우리 시대는 타락했다. 어떻게 타락했는지도 모를 만큼 철저하게 비천해졌다.

그런 가운데 바보처럼 환경책 잔치를 벌여놓고, 사람들 앞에서 떠들었다.

“환경 이야기는 절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환경책에는 지금 우리네 살림살이를 최소한이나마 사람답게 지속하기 위한 깊은 고민과 모색이 배어 있고,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과 뜨거운 감성이 있고, 의심하지 않고 진행되는 우리 문명에 대한 진단이 있고, 인간의 얼굴을 한 상식의 힘도 보여주고 있고, 자궁의 마음과 땅의 마음과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네 희망의 근거인 다음 세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법이 상상력과 감수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담겨 있습니다.”

수입의 0.5%밖에 책값으로 쓰지 않는 사회에서 나는 그런 헛소리를 해댔다.

그뿐인가. 신이 나서 단오장의 약장수처럼 단언했다. “생명과 행복의 문제가 환경책보다 더 정직하게 담겨 있는 책들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환경책이라 부르는 책들은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좋은 책들의 정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입시책도 아니고, 취업책도 아니고,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책도 아니고, 그 흔해빠진 처세술책이나 재테크 책도 아닌 낯선 환경책 읽기 운동에 뛰어든 우리 환경책 잔치 패들은 확실히 정신나간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팔리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도 꾸준히 진지한 환경책을 펴내는 출판사들은 “그런 책들로 다르게 살자”고 독서운동을 벌이는 우리보다 더 바보들일지도 모른다.

그 한심한 바보들에게 힘내라고 어떻게 격려해야 할지 정말 난감하다.



(한겨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위대한 밥상’ ‘잘먹고 잘사는 법’ 등 건강관련 음식 서적 꾸준한 인기

2006년 병술년(丙戌年), 올해 역시 가장 큰 화두는 ‘건강’이 될 듯하다. 현대의학이 이뤄낸 인간의 평균수명 연장은 단순히 오래 살고 싶은 ‘장수(長壽)’ 개념에서 벗어나 ‘젊고 건강한 삶’의 연장 가능성을 우리에게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건강에 대한 단순정보 ‘욕구’(Needs)가 건강한 삶을 강렬히 ‘원하는 것’(Wants)으로 진전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헬스, 요가 등 소위 웰빙운동을 실천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됐고 또 건강보조식품과 유기농 식품 등 몸에 좋은 먹거리에 관심을 쏟게 됐다.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고가의 유기농 식품이 연평균 20% 이상의 높은 매출 증가를 보인 것을 비롯해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유기농 코너가 속속 들어서고, 회원제 유기농 직거래 전문점의 확산은 몸에 좋은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출판계에까지 들어왔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당뇨병 다스리는 최고의 밥상’ ‘생로병사의 비밀’ ‘비타민’ ‘위대한 밥상’ ‘누가 해도 참 맛있는 나물이네 밥상’ ‘잘먹고 잘사는 법 시리즈’ 등 최근 강세를 보이고 있는 건강 관련 음식 서적 판매 증가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거의 해마다 발생하고 있는 ‘만두 파동’ ‘김치 파동’ 등 일련의 불량 음식물 파동을 겪으면서 가족의 안전한 먹거리는 결국 내 손으로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이 저변에 자리하게 된 것도 판매 증가의 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건강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소재로 한 책의 경우, 시청자의 인기를 얻은 방송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했기에 방송을 보다가 놓친 내용을 언제든 글로 다시 정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 독자들의 적극적인 책 구매로 연결되고 있다.

따라서 미디어 결합에 의한 시너지 효과라는 점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TV, 인터넷 등과 연계된 정보성 출판으로 인해 전통적인 아날로그 상품인 책이 한층 활력있게 독자에게 다가서는 것이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은 식품에 관한 정확한 상식에 무지한 것이 얼마나 끔찍한 상황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과자 회사원 출신인 저자의 충격적인 리포트라는 점에서 아이를 둔 주부들에게 더욱 큰 호응을 얻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가공식품의 폐해와 설탕의 악영향에서 벗어나야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해결책으로 소비의 주체가 되는 우리 자신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제시한다.

이같이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건강 관련 음식 서적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인기를 얻고 있는 서적들을 좀더 세밀히 살펴보면 단순히 건강 정보와 음식 정보만을 담고 있지 않다. 이 책들의 특징은 대부분 어렵고 생소하게만 느꼈던 의학 상식, 식품 상식, 조리법 등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는 점에서 독자들이 이로 하여금 보다 친절한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는 친밀함을 느낄 수 있다.

대중매체로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TV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거 많은 건강 프로그램은 딱딱하고 어려운 정보 전달 위주의 내용이 주를 이뤄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다소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은 오락 프로의 성격을 적절하게 가미해 시청자에게 보다 친근한 형식과 내용으로 다가가고 있다. KBS 2 TV ‘비타민’의 경우 공인된 국내 최고 대학병원의 교수진을 초대하면서도 매주 주제에 맞는 연예인을 섭외해 시청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전략을 취한 것이 성공비결 중 하나로 부각됐다.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을 모은 ‘누가 해도 참 맛있는 나물이네 밥상’ 요리 서적의 인기는 인터넷이 또 다른 정보전달 매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는 제2, 제3의 새로운 인기 블로그 음식작가의 등장을 예고한다.

또 다매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현실에서 보다 친밀하고 대중 속으로 깊숙하게 파고들 수 있는 매체, 즉 인기있는 방송 프로그램, 신뢰할 수 있는 개인 블로그 등이 곧 서적 판매 증가와 상당부분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음을 알게 한다.


(김미현 ‘드림하우스’ 여성출판팀장) = 주간조선발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일찍 잠든 누군가를 위해 인터넷으로 티비를 보기로 했다

서동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너무 궁금해서 안볼 수 없어서였다. 

그런데

도무지 접속이 안된다. 동시 접속자가 너무 많다나? 다른 방송사는 안그런데 왜 하필 에스비에스만

만 에스에스에스

궁금해 죽겠는데 이렇게 30분동안 on air를 클릭하고 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06-01-18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조금만 더 있다 보심 되겠죠?
전 한번도 다시보기를 본적이 없어요~

모1 2006-01-18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보셨는지궁금..

하늘바람 2006-01-18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1님 못 보았답니다. 11시까지 계속 10분 뒤 접속하라더군요. ㅠㅠ 새벽별을 보며님 정말 감사해요. 이벤트 참여하게 1해주셔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