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여성 : 성상, 우상, 신화
페트라 레스키
“모든 남자들은 제인을 사랑한다.”
그녀는 타잔에게 잠자리를 준비해주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밀림의 주부이다. 제인은 덩굴이나 ‘아아아~’하는 고함소리처럼 타잔의 소유물인 셈이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타잔은 아마 말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물론 ‘타잔’, ‘제인’과 같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문장구조를 보면 제인의 교사 자질을 의심해보게 되지만, 그녀라고 해서 뭐 뾰족한 수가 있었겠는가. 우물에서 숭늉을 만들 수는 없었을 테니까.)
밀림의 왕자와 멋지고 다재다능한 그의 아내는, 이것저것 안 해본 건 없지만 하는 것마다 족족 실패했던 한 남자의 창작물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여러 가지를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에드가 라이스 버로우즈는 가축 몰이꾼, 금광의 광부, 연필깎이 공장 사장, 교통 경찰 등 각종 직업을 전전했지만 족족 실패했다. 그러나 결국 밀림 소설 하나를 써서 그간의 실패를 모두 만회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원숭이 인간 타잔>이다. 버로우즈는 1911년 시카고에서 친구에게 빌린 사무실 구석에 앉아 다 쓴 편지지 뒷면에다 이 소설을 썼다. 총 26권에 이르는 소설은 이렇게 탄생했고, 책과 영화, 라디오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작가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다.
1권에 등장하는 제인은 볼티모어 출신의 동부 미녀이다. 그녀는 탐험대와 함께 탐험에 나섰다가 배 안에서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탐험대와 함께 쫓겨나 원숭이들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타잔은 그녀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며, 지치지도 않고 계속 그녀와 탐험대를 사자와 호랑이로부터 구해주면서 제인의 호감을 사려한다. (이 소설에는 우습게도 호랑이가 등장한다. 버로우즈는 한번도 아프리카에 가본 적이 없어서-.-;;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이 밀림의 왕자는 영어를 쓸 줄도 안다. 부모님의 책을 읽으며 독학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제인에게 아주 극소수의 명령만을 - 그는 명령문밖에 모른다 - 내린다. 그것도 글을 써야 내릴 수 있다. 그 외에도 줄타기를 자주 보여줌으로써 제인의 호감을 사고 싶어한다. 밀림의 왕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녀의 꽁무니를 쫓아다니거나 나무 잎사귀 구멍을 통해 그녀를 관찰하는 것으로 보낸다. 그러나 이런 유혹의 기술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제인은 밀림을 떠나고 만다. 물론 밀림의 왕자가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볼 리 만무하다. 그는 제인을 위해 보물을 구하고, 약간의 영어를 배운다. 그런데 하필이면 영어를 배운 곳이 프랑스 장교의 집이라, 그의 한심한 영어 문장에도 일견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타잔은 제인을 쫓아 미국으로 간다.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인은 이미 약혼한 상태였는데, 놀랍게도 신랑감은 타잔의 사촌인 영국 귀족이었다. (여기서 상황은 약간 복잡해진다. 타잔은 사실 밀림의 고아가 아니라 영국 귀족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버로우즈의 놀라운 이야기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복선과 암시를 모두 배제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 놀라운 능력!)
타잔이 아무리 힘이 세어도 제인의 결혼 약속을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타잔은 밀림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남은 스물 다섯 권의 책과 수많은 타잔 영화는 남녀간에 필연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인 온갖 우연과 소위 <말이 필요없는> 진실한 조화에 감탄할 수 있는 기회를 잔뜩 준비해놓고 있다.
제인은 오두막을 청소하고 ‘타잔이 먼저 먹어야 해’와 같은 말도 참아내면서, 그를 교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저녁이면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제인이 안락한 동부의 생활을 버리고 밀림의 야영을 선택한 것이 타잔의 지능 때문이 아니라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들 짐작했겠지만, 그것은 바로 섹스다. 하루 종일 벌거벗고 밀림을 돌아다니는 남자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사랑 행위도 등장한다. 물론 <단 한 번> 고릴라가 제인을 끌고 가 버로우즈의 화려한 표현대로 ‘자기 아내로 삼으려 했을 때’ 뿐이지만 말이다. 타잔은 고릴라를 격투로 때려눕히고 혈관 속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남자라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짓을 한다. 그는 여자를 안아 그녀의 할딱이는 입술을 키스로 뒤덮는다. 당연히 동부의 공주 제인은 처음에는 약간 저항한다. 그녀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여성인지라 타잔을 설득한다. 이윽고 타잔은 그녀를 독자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다음 문단은 아주 간결한 표현으로 시작된다. “다음날…”
사실 이것으로는 좀 싱겁다. 하지만 섹스는 타잔의 주요 관심 분야가 아니다. 타잔은 제인을 석탄 봉지처럼 들고 다니면서, 마치 <하체의 중요한 부위>가 없는 남자처럼 행동한다. 많은 비평가들은 그를 호모로 추측한다. 타잔 같은 원시림의 사내로서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최악의 추측이다. 다른 비평가들은 그가 호랑이나 사자와 싸우느라 기운이 다 빠져서 그렇다고 한다. 한 코믹 만화는 심지어 - 물론 버로우즈가 죽고 난 지 20여년이나 지난 후이지만- 젊은 암컷 원숭이와 사랑에 빠진 타잔을 그리기도 했다. 옆에서는 타잔의 아들들이 고함을 지르고 있기까지 한다. 버로우즈의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타잔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2년 그들은 미국의 <보그>지를 상대로 백만달러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보그>지는 ‘타잔, 제인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개방적인> 모습을 한 제인의 사진을 실었는데, 유족들은 이 사진이 원작자가 주인공들을 창조할 당시의 지고한 도덕 기준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시대를 통틀어 제인 역을 맡은 배우 중 가장 이름을 날린 사람은 모린 오설리번이다. 실제 미아 패로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는 1930년대의 가장 유명했던 타잔, 조니 와이스멀러의 밀림 생활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당신이 옷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요.”
과감한 노출이 지나치다 싶으면 그녀는 이렇게 속삭인다. 하지만 보통 때에는 나무 집에서 상대적으로 열정 없는 중산층의 결혼 생활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 나무 집에는 미국식 주택의 온갖 편의 시설들이 다 갖추어져 있다. 코끼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원숭이 치타는 환풍기를 돌리고, 제인은 바나나를 굽는다. 제인은 비키니 착용이 금지된다. 피부 노출은 <큰 원숭이>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의 50여년 동안 제인은 그렇게 정숙한 모습으로 있었는데, 1980년대 이르러 드디어 섹스어필로 밀림을 뒤흔들고 타잔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제인이 등장한다. 보드렉은 크고 팽팽한 가슴을 드러낸 최초의 제인이었다. 그야말로 인류의 타락이 시작된 것이다. 매일같이 ‘아아아~’라는 비명이나 지르고 덩굴이나 타고 다니는 타잔은, 보드렉의 가슴 때문에 시청자의 인기를 잃는다. 벌거벗은 제인이 남자 주인공의 인기를 모두 앗아가 버린 탓에, 이후의 제인들은 다시 정숙한 제인으로 되돌아간다. 최근 마흔 한 번째 제인은 여배우 앤디 맥도웰이었다. 그녀는 가슴을 가리고 등장하며, 위험(!)은 제거되었다.
“제인은 독립적이고 똑똑하며 마음이 따뜻한 여자인 것 같아요. 에드워드 시대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특권을 누리지는 못한 사람들을 아주 잘 이해하는 여자이죠. 마음에 드는 역이에요.”
여배우는 수줍어하면서 자신이 맡은 제인 역을 마치 가죽 조끼를 입은 선교사 부인쯤으로 해석한다. 결국 그녀는 타잔이 어떤 경우에도 한눈 팔지 않고 정의의 이름으로 큰 뱀과 코끼리, 사자와 싸울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제인 그 자체는 어디를 가나 존재한다. 그녀는 밀림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정치가 옆에도, 회장의 옆에도 있다. 그녀는 <그>의 곁에 선 <완벽한> 여자이며, 모든 시대의 모든 남자들이 바라는 여자이다. 에드가 라이즈 버로우즈는 그 사실을 너무나 빨리 파악했다. 항상 자신을 기다려주고, 자신의 결점을 너그러운 미소로 넘겨주는(사실 타잔은 결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자를 어떤 남자가 꿈꾸지 않겠는가? 남자에게 꾸준히 힘을 불어넣어 주며,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이해해주는 여자. 지적인 우월을 표내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남자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여자. 바깥 밀림에서, 내부 회의실에서 남자을 기다리면서 남자가 막중한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여자. 악어와 경쟁자를 정의의 이름으로 속여 제거해주는 여자.
그녀가 바로 제인이며, 모든 남자들은 제인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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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 군데 재밌긴 한데, 모든 남자들은 제인을 사랑할까? 이런 애기의 어리광이 사랑인가.. 쳇..
그냥 자신이 하기 위찮은 일을 해줄.. 그런 존재로써 아끼는게 아닐까?
청소해주지, 밥 해주지, 밥 차리고 설거지에 뒷정리 해주지, 옆에서 떽떽거리지 않지, 꼴릴때 안을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