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오 빠스의 <이중불꽃>은 제겐 추억의 책입니다. 우연히 그 책이 아직도 유통이 되는지 궁금해 알라딘에서 검색을 했더니 품절로 나오더군요. 아, 당분간 구할 수 없는 책이구나. 역자가 작고해서 그런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전체보기를 읽어내려가다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옮긴이의 소개에 엉뚱한 사람의 약력이 기재되어 있어서요. 이게 어찌 된 일이랍니까. 돌아가신 분의 생을 순식간에 뒤바꿔버리셨군요. 그러면 안됩니다. 살아있는 분께도 마찬가지구요. 동명이인이라 착각한 것 같은데, 바로잡으세요.
<이중불꽃> 밑에 지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황병하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시통역 대학원 한국어-아랍어과 석사 및 박사을 마치고 현재 조선대학교 동양학부 교수(아랍학 전공)로 있다. 저서로는 <이슬람 사상의 이해>, <현대 중동정치와 이슬람, 아랍 이슬람 문화>가, 논문으로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등장에 이슬람 종파가 끼친 영향], [이집트와 이란의 원리주의 운동 비교] 등이 있다.
상식적으로만 봐도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지 않던가요. 이슬람 전공자가 옥타비오 빠스의 책을 옮기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셨을 텐데요. 품절인 책이라서 찾아보는 사람 없는 것 같아 소홀하게 다루고 있는 건가요. <이중불꽃>을 번역하기 위해 살아생전에 숱한 밤을 새웠을 역자에게, 또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부지불식간에 행하는 폭력입니다.
지금 알라딘에서 뜨는 것은 이슬람 연구자인 황병하 선생이고, <이중불꽃>은 옮긴 분은 이미 별세하여 이 세상에 안 계시는 문학평론가 황병하 선생입니다. 동명이인입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분께 예의가 아닌 듯합니다. 그리고 생생하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계신 이슬람 연구자 황병하 선생에게도 도리가 아닙니다. 이런 착오가 알라딘의 공신력에 흠집을 내서야 되겠습니다. 인터넷 검색 몇 번 하면, 알 수 있는 문제인데 신경 좀 써주시길 당부합니다. 산자와 죽은자의 약력을 바꾸어 소개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요. 어서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중불꽃>의 도서분류도 민음사의 보르헤스 전집 쪽으로 해놓으십시오. 문학평론가이자 에스파냐 문학 전공자였던 황병하 선생의 지명도가 그리 낮던가 의아합니다. 보르헤스를 읽는 사람이 많을 텐데, 정말 몰랐나요. 태만은 태만은 낳습니다. 알라딘 마을지기 여러분이 격무에 시달릴 거란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이 일은 반드시 서둘러 풀어야 합니다. 한 개인, 사적인 문제가 아닌 알라딘이라는 공적 공간의 신용을 위한 공공의 문제이니 말입니다.
<이중불꽃>을 옮긴 황병하 선생의 약력을 아래 옮겨놓겠습니다. 확인하시고 교체바랍니다.
황병하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광주 가톨릭대학에서 신학을 배웠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의 휴스턴대학에서 영문학과 스페인·중남미 문학을 배웠으며, 중남미 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U.C.L.A에서 근대 스페인 문학과 라틴아메리카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휴스턴대학 및 U.C.L.A에서 Teaching Fellow로 강의를 했다. 1989년 Program on Mexico of U.C.L.A 펠로우쉽으로 멕시코 국립대 및 Colegio de Mexico에서 연구를 했다. 귀국 후 서울대, 고대, 외대, 서강대, 숭의여대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백제예술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및 광주여대 창작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교통사고로 1998년 별세하였다. 저술로는 평론집 「반리얼리즘 문학론」「메타 비평을 위하여」, 장편소설 「흑맥주」, 단편소설 「지구에로의 귀화」가 있다. 그가 옮긴 책으로 「보르헤스 전집 1-5」「어느 꼬마의 마루밑 이야기」「이중불꽃」「아빠가 딸에게」 등이 있다. 또한 활발한 시와 소설 창작, 비평, 번역 작업과 함께 잡지 「문학정신」「무애」의 편집위원으로 열정적인 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