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워낙에 주변에서 재미있다는 평과 좋은 평이 따라붙길래 관심만 갖고 있었다가, 막 사려는 순간 표절논쟁에 대해 알아버려 책사기를 포기했다가, 누군가가 선물로 던져줘서 마침내 읽고야 말았다. 과연 대단한 속도감으로 읽히는 책이었다.

전체를 세 부분으로 봤을 때, 첫 부분에서 꽤나 키들거리며 잔뜩 기대를 하고 쾌감도 느꼈지만, 가운뎃부분에서 거의 경악을 하고 말았다. 이건 웬 80년대 소설들의 지독한 클리셰란 말인가. 거의 최악의 수준. 그러다 마지막 부분으로 가서는... 조성훈의 재등장에 잠깐, 가슴이 뛰기도 했지만 실망스러웠다. 이 책에 쏟아진 칭찬과 작가에게 쏟아진 기대란, 지나치게 과도한 것, 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역시나 이 책을 읽고 꽤나 비판적이었던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며 끌어낸 불만의 동의지점들.

- 일단 두번째 부분의 식상함에 대해서는 둘 다 진저리를 쳤고,
- 첫번째 부분이 주는 더없는 매력이란 작가의 것이 아닌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것이며
- 코미디로 시작해서 꼭 눈물 한 방울 떨궈주는 결말을 맺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작금의 한국 코미디영화들의 식상한 행태와 별 다를 바 없고
- 떨어지는 문장력을 과도한 수식으로 커버하려는 노력이 잔머리스럽고
- 소설의 주제와 메시지를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직설법으로 표현해 버리는 그 뻔뻔함에 결코 동의가 안 되며
-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던 조성훈이 제대로 안 살아 있으며
- 조성훈 외에도 실은 주인공을 제외하면 제대로 캐릭터라이징된 등장인물은 없고
- 전체적인 구성력이 떨어진다.

기타 등등.

두번째 부분부터 나는 웬 작가 지망생의 습작을 그것도 제3자가 '요약'해 놓은 걸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없이 썰렁한 화술의 다른 사람을 통해 '요약본'으로 듣는 기분. 세번째 부분에선, 마지막 팬클럽을 창단하고 결국 하는 일이 야구 게임 몇 번이란 데서 또 혀를 찼다. 이런, 상상력이 이렇게 빈곤해서야. 게다가 그 야구란 게 공을 본능적으로 잘 받아놓고 '그렇게 하면 어떡해?' 자책하는 거라니. 처음부터 안 잡거나 안 치면 몰라도. 그건 삼미의 야구가 아니다, 삼미 정신을 작가가 덜떨어지게 받아들인 거다 라는 친구의 주장이었고, 나 역시 동의한다.

처음의 경쾌하고 가벼운 수위를 끝까지 제대로 유지하며 더 밀고 나갔다면 훨씬 더 좋은 소설이 됐을 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소재를 가지고 훨씬 더 경쾌하고 명랑한 문체를 유지했더라면 훨씬 더 좋은 소설이 됐을 것이다. 어차피 '회고조'의 문체이니 회사를 짤리기 전까지 번번히 모범생이, 프로가 되는 선택을 계속하는 자신에 대한 자기조롱이 있었다면 훨씬 더 주인공의, 혹은 작가의 진정성에 수긍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소설에서 본 것은 전형적인 엘리트의 자의식 과잉과,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나 루저라 칭하는 (실제론) '주류'들이 양아치에게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곤 할 때 드러내는 먹물 컴플렉스다. 그러니까, 나는 사회의 '주류'고 기득권을 꽤 가진 이가 고작 '한두' 번의 실패에 루저 운운하며 인생에 대해 갑자기 철학자요 깨달은 자인 척 하며 실패의 미학을 과도하게 찬양하는 포지션을 취하는 걸 웃기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건 딱 엄살에 불과하니까. (그런 놈들이 루저 운운하다가도 꼭 주류적 기득권이 주는 달콤한 열매는 절대 포기 못하더라.)

끝없이 자신을 생각이 깊고 뭔가 있으며 솔직한 놈으로 포장하려 하지만, 글쎄, 통찰력도 떨어지고 실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사고를 지닌 인물에 실망하고. 게다가 이걸 쓱 정당화하고 어물쩍 넘어가는 한심함에 조금 혀도 찼고. '매순간 전쟁치르듯 직장 다니다가 짤린 후 재취업을 조금 시도해보지만 결국 자신의 상황에 큰 만족을 느끼는'는 후반부는, 이거 진짜 실패도 자기비애도 모르고 자기 꼴린대로 잘 살아온 주류인생이 어디서 남에게 줏어들은 정형화된 루저의 패턴을 그대로 반복하는 느낌이 들었다. 루저들이 느끼는 치졸한 자기비애나 불안함 같은 건 눈꼽만큼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결국 주류고 메인스트림이면서 실패자연, 아웃사이더연 하는 놈들을 볼 때 느끼곤 하는 역겨움을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도 느낀다. 귀엽고 매력적인 수준엔 별로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나르시시즘.

지독하게 씹어놨지만 매력이 분명 존재한다. 위에 늘어놓은 지독한 독설들은 어쩌면, 오히려 매력들과 아쉬움에 대한 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만약 두번째 부분이 완전히 다른 식으로 쓰여졌다면, 세번째 부분이 조금 더 성의있게 쓰여졌다면, 나는 이 책을 이런저런 부족함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열렬히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재미있게 읽었던 첫번째 부분마저도, 책을 다 읽고 난 뒤에야 "이런저런 비겁함과 갈 데까지 가지 못한(혹은 밀어부치지 못한) 엉거주춤함(이게 또 루저연 하는 '주류'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그리고 소설의 매력의 대부분이 작가의 몫이 아닌 삼미 그 자체의 몫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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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요, 찬드라 - 불법 대한민국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삶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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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책을 읽었다. 읽는 내내 먹먹했다. 눈도 먹먹하고 귀도, 코도, 그리고 가슴도 먹먹했다. 몇번은 책장을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 그럼에도 맨 마지막, 언론에 의해 소위 '이주노동자들의 첫 파업'이라 이름이 붙은 아모르 파업 이야기에서 벅찬 희망을 느끼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2004년 4월 20일인 오늘로 158일째, 명동성당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추방 저지!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노동비자 쟁취!를 외치며 농성을 하고 있다.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풀이하고 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이 사회를 살아나가는 공동체의 동등한 일원으로서 그 속내와 사연을 나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생각한다. 이 책은 내게 그런 역할의 첫 단추가 돼준 셈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그것이 하나의 성,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민에게만 해당되는 배타적인 말이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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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아메리카를 쏘다
마이크 마커시 지음, 차익종 옮김 / 당대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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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순한 알리의 평전이 아니다. '무하마드 알리와 60년대 정신'이라는 영어 부제가 알려주듯, 이 책은 무하마드 알리라는 새로운 스포츠 영웅이 나타난 시대적 배경, 그리고 알리와 시대가 서로 주고받은 영향들과 소통의 결과물들이 심오하고 날카로운 통찰에 의해 분석되고 있다.

미국의 60년대는 매우 흥미진진한 시대다. 말하자면 정치적 용광로라 해야 할까. 마틴 루터 킹이란 이름으로 대변되는 시민권 투쟁과 더불어, 말콤 엑스로 대변되는 흑인민족주의 운동, 거기에 베트남 반전, 히피즘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투옥되고, 지명수배를 받으며 국가에 대항해서, 지배계급에 대항해서 싸웠던 이 시기는 유난히 암살도 많았다. 그리고 각종 정치조직이 활발하게 결성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이 책은 무하마드 알리뿐 아니라 말콤엑스, 마틴 루터 킹, 폴 로브슨, 밥 딜런 등 당대의 중요한 저항가들을 자세히 다룬다. 그리고 이들과 알리가 주고받은 영향들을 분석한다.

이 시대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잘생긴 떠버리 권투선수 캐시어스 클레이는, 처음엔 백인들의 꼭두각시 인형 노릇을 하는 듯 했지만, 처음 헤비급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뒤 자신의 이슬람네이션 가입 사실을 발표하고 소리친다. '난 당신들이 원하는 그런 챔피언은 되지 않아!'

그리고 그가 갑자기 백인들의 공적이 되고, 노예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흑인들, 그리고 이후 나아가서 전세계의 억압받는 자들의 희망의 상징으로 떠오르기까지, 저자는 무하마드 알리를 중심으로 60년대 이전 스포츠계와 흑인 민족주의 운동의 전통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꿰뚫는다.

이 책을 보며 느끼는 전율과 감동은 '무하마드 알리'라는 한 사람이 얼마나 영웅적 행적을 보여주었는가에서 연유하지 않는다. 무하마드 알리라는 영웅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탁월함에서 탄생한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그 시대에 적극적으로 조응했으며, 자신의 고민을 멈추지 않았고 그 범위를 확장시키며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결국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은 그 시대 자체였으며, 그 시대에 함께 살던 약자들의 소망과 희망이었다. 단순히 개인적인 배려에서 비롯했다가 세계 전체의 민중들과 연대하는 차원으로 나아간 베트남전 징병 거부 사건에서 그의 연설은, 그의 인터뷰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애틀랜타 올림픽의 성화봉송주자로 나타난 알리의 모습은, 더이상 60년대 그 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그가 그토록 대항하고 침을 뱉었던 국가와 자본이 이제 그를 '위대한 자'라고 찬미한다. 그는 더이상 '위험하지 않은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변절한 놈'이라고 욕할 수만은 없다. 그는 자신이 냉전의 도구로 이용되던 시절, 미 국무부 사절 신분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했다가 아프리카 각국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내가 뭔가 대단히 잘못된 것에 이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께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말해 미 국무부 직원의 얼굴을 하얗게 질리게 만든 적이 있다. 파킨슨씨 병으로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그가, 갑자기 변절을 해서 국가와 자본의 품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갔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보다는, 이익을 위해서는 그 무엇에든지 손을 내미는 - 그것이 '알리'라 하더라도 - 현대 자본의 능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알리는, 처음부터 '걸어다니는 광고맨'으로 활약하며 정치적 요구를 거절해버린 마이클 조던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영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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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이스라엘
랄프 쇤만 지음, 이광조 옮김 / 미세기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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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두껍지 않은 이 책은 '시오니즘'의 허상에 대해 제대로 폭로한다. 시오니즘에 입각해 세워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해 우리가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신화들이 사실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조목조목 알려준다. 심지어 시오니즘이 얼마나 나치즘과 적극적으로 결탁했는가에 관한 폭로에까지 이르면 충격을 가눌 수가 없다. 이스라엘의 일상화된 고문과 끔찍한 감옥에 대한 폭로, 그리고 '비상조치'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국가보안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인타파다의 성공요건으로 유대인 노동자 계급과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인종주의적 측면이 강한 시오니즘의 조직적인 차별정책과 팔레스타인 착취에 대하여, 저자가 강조한 성공요건은 하나의 '요건'일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대항방법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계급환원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건 이 책의 미덕은, 시오니즘의 허상에 대해 역사적 사실들을 근거로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대략적인 개괄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입문서'로서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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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5-11-17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이 책을 '입문서로서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는 책'으로 보셨군요. ^^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마르완 비샤라 지음, 유달승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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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 테러리즘, 그리고 미래'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의 원제목을 그대로 직역하자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냐 아파르트헤이트냐'가 된다. 책에서도 여러 번 지적하지만, 그 어느 국가보다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먼저 수교를 맺었던 이스라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 즉 인종차별을 철폐할 그 시기, 그 어느 곳보다도 사상 유래없이 지독한 인종차별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인종청소를 계속해왔음은 물론이다.

이 책은 1993년 오슬로 협정 이래 각종 협정과 협약들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분석한다. 미국의 중재 하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협정의 시도는 계속되었지만, 이것은 애초의 이스라엘의 역사적/정치적 책임은 외면한 채, 팔레스타인에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희생을 요구해왔다는 사실, '평화를 통해 안보를 구축'하는 것이 아닌, '안보, 즉 힘의 우위에 바탕을 두고 평화를 추구'했던 국제외교의 실패를 파헤친다. 물론 여기에서 중재자를 자처한 미국이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에게 면책특권을 주었으며, 이스라엘의 입장을 '중립'의 것인양 제안했고 이를 팔레스타인이 받아들이도록 압박했다. 굴욕적인 조건들을 팔레스타인측이 받아들여 오슬로 협정이 이루어졌음에도 이후 이스라엘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미국은 이를 방관 혹은 부추켰으며,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외면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오슬로 협정 덕분에 (그리고 그 이후 약속을 하나도 안 지키면서도 미국의 비호를 받은 덕분에) 팔레스타인을 경제적으로 종속시키고 착취하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능가하는 인종차별을 가속화할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철저하게 이스라엘에 종속되고 시장으로서, 또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공급원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으며, 오슬로 협정 이후 경제적 파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이스라엘과 미국의 책임과 잘못들을 분석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부정부패 역시 비판하고 있으며, 인티파다의 필연성을 강조하면서도 자살테러공격을 비판하며 비폭력 평화운동을 강조하고 있다.

책 뒤에 부록으로 붙은 분쟁연보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역사를 간략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훌륭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부실한 번역이 책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려 놓아 독자를 고통스럽게 한다. 도대체 한글 문장 자체가 문법에 안 맞는 게 숱하게 눈에 띄는 경우라니. 어떤 문장은 도대체 원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싶어질 정도다. 그래도 반 가량을 넘기고 나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속도도 붙고 오문도 줄어드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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