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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아메리카를 쏘다
마이크 마커시 지음, 차익종 옮김 / 당대 / 2003년 7월
평점 :
이 책은 단순한 알리의 평전이 아니다. '무하마드 알리와 60년대 정신'이라는 영어 부제가 알려주듯, 이 책은 무하마드 알리라는 새로운 스포츠 영웅이 나타난 시대적 배경, 그리고 알리와 시대가 서로 주고받은 영향들과 소통의 결과물들이 심오하고 날카로운 통찰에 의해 분석되고 있다.
미국의 60년대는 매우 흥미진진한 시대다. 말하자면 정치적 용광로라 해야 할까. 마틴 루터 킹이란 이름으로 대변되는 시민권 투쟁과 더불어, 말콤 엑스로 대변되는 흑인민족주의 운동, 거기에 베트남 반전, 히피즘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투옥되고, 지명수배를 받으며 국가에 대항해서, 지배계급에 대항해서 싸웠던 이 시기는 유난히 암살도 많았다. 그리고 각종 정치조직이 활발하게 결성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이 책은 무하마드 알리뿐 아니라 말콤엑스, 마틴 루터 킹, 폴 로브슨, 밥 딜런 등 당대의 중요한 저항가들을 자세히 다룬다. 그리고 이들과 알리가 주고받은 영향들을 분석한다.
이 시대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잘생긴 떠버리 권투선수 캐시어스 클레이는, 처음엔 백인들의 꼭두각시 인형 노릇을 하는 듯 했지만, 처음 헤비급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쥔 뒤 자신의 이슬람네이션 가입 사실을 발표하고 소리친다. '난 당신들이 원하는 그런 챔피언은 되지 않아!'
그리고 그가 갑자기 백인들의 공적이 되고, 노예의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흑인들, 그리고 이후 나아가서 전세계의 억압받는 자들의 희망의 상징으로 떠오르기까지, 저자는 무하마드 알리를 중심으로 60년대 이전 스포츠계와 흑인 민족주의 운동의 전통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꿰뚫는다.
이 책을 보며 느끼는 전율과 감동은 '무하마드 알리'라는 한 사람이 얼마나 영웅적 행적을 보여주었는가에서 연유하지 않는다. 무하마드 알리라는 영웅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탁월함에서 탄생한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그 시대에 적극적으로 조응했으며, 자신의 고민을 멈추지 않았고 그 범위를 확장시키며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결국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은 그 시대 자체였으며, 그 시대에 함께 살던 약자들의 소망과 희망이었다. 단순히 개인적인 배려에서 비롯했다가 세계 전체의 민중들과 연대하는 차원으로 나아간 베트남전 징병 거부 사건에서 그의 연설은, 그의 인터뷰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애틀랜타 올림픽의 성화봉송주자로 나타난 알리의 모습은, 더이상 60년대 그 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그가 그토록 대항하고 침을 뱉었던 국가와 자본이 이제 그를 '위대한 자'라고 찬미한다. 그는 더이상 '위험하지 않은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를 단순히 '변절한 놈'이라고 욕할 수만은 없다. 그는 자신이 냉전의 도구로 이용되던 시절, 미 국무부 사절 신분으로 아프리카를 방문했다가 아프리카 각국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내가 뭔가 대단히 잘못된 것에 이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께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말해 미 국무부 직원의 얼굴을 하얗게 질리게 만든 적이 있다. 파킨슨씨 병으로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그가, 갑자기 변절을 해서 국가와 자본의 품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갔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보다는, 이익을 위해서는 그 무엇에든지 손을 내미는 - 그것이 '알리'라 하더라도 - 현대 자본의 능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알리는, 처음부터 '걸어다니는 광고맨'으로 활약하며 정치적 요구를 거절해버린 마이클 조던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영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