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질렀다. 마이리뷰 당선으로 받은 적립금 5만원은 물론, 그간 모아둔 마일리지를 적립금으로 전환해 다 써버렸다. 알라딘 6년 고객이 지금 현재, 마일리지도 적금도 뭣도 다 빵, 빵, 빵이다. 예전부터 사고자 했으나 눈알 튀어나오는 가격 때문에 보류해놓았던 책, 우리 루저 브러더스에게 줄 책, 얼마 전 리뷰 보고 필받은 책. 그리하여 내가 오늘 주문한 목록은 다음과 같다.

                 김현, 프랑스 비평사(근대/현대편, 김현 문학전집 8), 문학과지성사
                 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사진에 관하여, 시울
                 제프리 노웰 스미스 책임편집, 김경식 외 옮김, 옥스포드 세계영화사, 열린책들
                 찰스 프레드 앨퍼드, 이만우 옮김, 인간은 왜 악에 굴복하는가, 황금가지

위의 두 책은 루저 브러더스들의 희망 도서이다. 역시 '현역' 인문학도는 다르다. 그저 졸업장 따기 위해 억지로 겨우 대학을 다니면서 일관되게 날라리였던 나는 아직 한 권도 김현의 책을 읽은 게 없다. 심지어 [행복한 책읽기]도. 우리나라 문인계의 3대 천재 어쩌고에 김현과 양주동이 들어가네 마네 하는 얘기도 대학을 졸업하고서야 알았다. 물론 내가 대단히 무식한 사람임은 잘 안다. 마치 필름2.0 편집장이 썼듯, 영화 <굿바이 레닌>을 보고 나온 20대 초반 어떤 여대생이 '영화 재밌다, 근데 레닌이 누구야?'라고 반응했던 것처럼, 나 역시 그 여대생 못지않게 무식하다.

하지만 가녀리게 변명하자면, 대한민국처럼 정보의 흐름이 이상하게 왜곡되고 막혀있다가 이제사, 그냥 뻥하니 뚫려있을 뿐 정보와 담론의 흐름이 건강하게 돌아다니지 못하는 사회에서, 소련이 무너지고 더이상 사회주의 서적이 금서가 아닌 - 물론 그럼에도 국가보안법은 [자본론] 같은 책을 졸지에 불온서적으로 만들기는 한다만 - 시대에 갑자기 눈앞에 거대한 적이 사라져 버리고 그 자리를 너무나도 세련된 자본이 너무나도 세련된 외모와 웃음으로 들어선 지금, '어쩜 요즘 젊은 것들은 그런 것들도 모른다' 식의 필은 담론의 주도권을 가진 3, 40대 세대들의 권력의지의 일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굳이, 리오 휴버만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나 마르크스의 [자본론] 같은 책의 전부 혹은 일부를 읽었다고 자랑하며 이를 아직 읽지 않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싶지 않다. 평범한 직장인의 입장에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같은 책은 여전히 부담스럽고, 엥겔스의 [사유재산의 기원]이나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같은 책은 여전히 읽을 수가 없다. 내가 대학 들어오기 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이 책들은 절판이다. 한국 지식인 사회를 뒤흔든 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해서도 아직은 접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라캉이나 들뢰즈나 가타리나, 그네들이 번역해놓은 책들을 내가 읽을 깜냥도 안 되거니와 한글로 읽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 뻔하다. 그건 내 무식함 때문이기도 하고, 어설픈 번역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들도 선배들이 억지로 쥐어주고 때려서 읽었을 책들을, 그런 동력과 선배들의 조언 따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아니었던 곳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잘 모른다 해서 무시하는 건 한편으로 마음이 불편하다. (물론, 나 역시 지금 대학생들의 그 어이없는 사고와 무식함에 종종 한탄을 하는 '늙어빠진'  구세대 종자긴 하지만.)

하여간에. 그래서. 내가 대학시절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는 걸 보고 떨떠름함과 기특함과 기타 등등이 섞인 기묘한 반응을 보인 선배처럼, 김현을 찾아읽는 친구녀석 - 그는 아직 대학생이다 - 을 보며 떨떠름함과 기특함과 기타 등등에 플러스, 열등감이 섞인 기묘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똑똑하고 사려깊고 잘난 주변 친구들 덕에 나 역시 실은, 김현을 읽어봐야겠다는 무언의 압력을 스스로 받고 있긴 하다. ^^

수전 손택의 책은 나도 탐을 내던 책이다. 이 친구는 내게 '빌려주겠'다고 한다. 허허... 난 남의 책 잘 못 읽는다. 행여 때라도 탈까봐. 내 것은 나중에 한 권 다시 사야지 뭐. 이 책은 현대미학사에선가, 아주 오래 전에 롤랑 바르트의 사진에 관한 글과 같이 묶어서 냈었지만, 내가 최초로 그 책을 인지하고 읽고싶다 느꼈던 약 10년 전부터 계속 절판이었다. 중간에 몇 번, 수전 손택의 책이 안 나온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이론서와 유명한 사람의 저작에 겁부터 내는 내 컴플렉스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작년에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탓에, 공포감도 많이 극복한 상태다. 게다가 수전 손택의 그 날카롭고 섬세한 통찰력, 이재원 씨의 탁월한 번역에 감탄을 했었기 때문에 이 책도, 다른 수전 손택의 책도 기대가 간다.

[옥스퍼드 세계영화사]는 가격 때문에 작년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몇번이나 보관함에 넣었다가 장바구니로 옮겼다가 다시 보관함으로 옮겼다가, 를 반복한 책이다. 결국 적립금으로 왕창 질러버리기로 했다. 집에 이런저런 영화 서적은 있지만 막상 영화사에 관한 책은 한 권도 없었는데, 시각과언어에서 나온 데이빗 보드웰의 [세계영화사]를 살까 말까 망설이던 찰나에 이 책이 나왔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기보다 필요한 부분부터 발췌독을 해도 될 것 같고, 무엇보다도, 내가 땡스투를 누른 클로에 님의 리뷰에 의하면, 이제껏 영화사가 주로 감독 위주의 작가주의 관점, 혹은 예술사조에 의해 서술되던 것과 달리 영화산업적 관점에서 서술이 되고 있다고 한다. 산업으로서의 영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터라 더욱 기대가 된다. 돈지랄일까 아닐까, 괜찮을까 아닐까를 가늠하다가 사버리자고 결정한 데에는 클로에님의 리뷰가 결정적이었다.

이번 마이리뷰에 나란히 당선된 JWalker님이 쓰신 리뷰의 책, [인간은 왜 악에 굴복하는가]도 질러버렸다. JWalker님이 소개한 밀그램의 실험, 그리고 그에서 발생하는 악의 의지(?)에 대한 설명이 흥미를 마구 돋구었다. 이제껏 서양 책이나 영화에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연쇄살인을 비롯한 각종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JWalker님의 리뷰를 읽고서야 비로소 조금 이해가 가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심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책값만 하면 거의 10만원이 다 된다. 주문을 하고나서야, 내가 어제 바로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시리즈를 주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이 잘 안 팔려서 3, 4권 출판도 아리까리하다는 소리에 냉큼 보관함에 넣어놓았던 것인데 이런... 역시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 3대까지 고생하지는 않았으면 싶다.

요즘 목하 번역작업 중이라 책을 거의 읽지 못한다. 버스 안에서도, 출력한 영어대본을 읽으면서 옆에 한글 문장을 써넣기에 바쁘니까. 아주 조금씩, 척 팔라닉의 [다이어리]를 읽는 척은 하고 있지만 번역에 마음이 급해 도저히 집중할 수도 없고. 영화도 못 보러가고 있다. <혈의 누>가 꽤 궁금한데.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은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와중에 잠깐 걸렸다가 사라져가는 외국영화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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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과의 인터뷰
로버트 K. 레슬러 지음, 손명희 외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호러영화들, 특히 신체훼손 및 절단을 다루는 영화들을 못 본다. 그러다 어찌어찌 연쇄살인범에 관한 영화들 몇 편을 보게 된 뒤 그만 연쇄살인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뭐, 대강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겠지만 FBI의 활약상이라던가 범죄심리학, 법의학 같은 거. 굉장히 인기가 있음에도 의외로 한국에선 그닥 진전을 보고 있지 못한 학문분과들. 역시나 내가 연쇄살인범에 대해 관심을 가장 크게 갖게 된 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괴물성, 그리고 희생자의 거의 대다수가 여자라는 점 때문이다.

연쇄살인범 유모 씨의 검거를 계기로 시류에 편승하고자 급하게 출판된 듯한 이 책은 원래 1992년에 씌어진 책이다. 연쇄살인범(Serial Killer)이란 말을 처음으로 썼으며, 범죄용의자 프로파일링 기법을 FBI에 정착시킨 군인이자 FBI 요원이자 범죄심리학자 로버트 K.레슬러가 톰 샤흐트만과 함께 쓴 이 책은, 20여 년간 FBI에서 연쇄살인범들을 뒤쫓았던 그가 자신이 다루었던 사건들과 유명한 연쇄살인범들의 예 등을 거론하며 연쇄살인범들의 심연을 엿보게 해 준다. wishlist에만 올려놨다가 동생이 생일선물로 사준 덕에 좀더 빨리 읽게 됐다.

로버트 레슬러에 의하면, 모든 연쇄살인범죄는 섹스와 연결돼 있고 여성혐오적 측면이 강하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폭력과 섹스가 결합된 기괴한 상상을 즐겨왔으며, 이 환상이 한도를 넘어서면서 환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이러한 환상을 즐기게 되는 계기로는 주로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 성폭력 피해 경험 등이 있고, 그밖에도 친구와의 이별이나 부모의 이혼 등 극심한 트라우마가 존재하고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해소되거나 위안받지 못하는 출구없는 상황에서 점차 환상의 정도를 높여감으로써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극히 내성적인 성격과 인물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장애를 겪게 된다. 이성애자건 동성애자건 특히 성적 접촉에서 있어 다른 타인과 평등하게 합의를 거치고 사랑을 하는 방식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 하게 된다.

이런저런 연쇄살인범들의 특징을 읽고 있자니 가슴이 뜨끔해진다. 나잖아? 싶은 부분들.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예를 들어 아무리 미워도 뒷통수를 장도리로 깨부숴 죽이는 상상 따위는 해본 적이 없다는 것 정도인데... 그러나, 이런 타입의 모든 사람들이 연쇄살인범이 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H.P.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의 끔찍하고 기괴한 환상을 소설쓰기로 풀었으며, 팀 버튼은 기괴한 상상력과 악동기질을 가진 영화감독이 되었다. 서너 살때부터 가족들과 무대에 서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그리하여 실질적인 아동학대를 당했던 버스터 키튼은 또 어떤가? 극단의 대인기피증을 보이는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잘나가는 소설가이기만 하다. 연쇄살인범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에게는 자신의 소설 속에나 등장하는 인물일 뿐. 역시나 어릴 적부터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고 돈벌이 연주를 해야 했던 모짜르트나 베토벤이나 모두 위대한 음악가가 되었다.

영화 <스크림> 시리즈에서 한 등장인물은 폭력적인 영화는 연쇄살인범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연쇄살인범에게 창의력을 높여줄 뿐이라고 말하는데, 과연 어찌보면 연쇄살인이란 연쇄살인범들에겐 나름의 예술행위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목숨과 인격을 극심하게 해칠 뿐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인격을 가진 주체로 대하지 않는 끔찍한 범죄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

인간의 정신의 심연엔 갖가지 폭력과 끔찍한 환상들, 그리고 분노와 공포와 증오와 혐오가 놓여있다. 그 누구에게나. 인정하고 싶지 않다 해도, 어느날 문득 의식으로 떠오르는 그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 인간들 모두에게 깃들여있는 괴물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알고 있다. 또한 남탓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아마도 이것이 연쇄살인범과 아닌 사람의 차이일 것이다.

군 CID 등에서 비밀업무를 수행했던 저자는 반전운동이 거셌던 60년대 당시 자신의 활동을 합리화시키며 "실제로 반전단체 등에 엄한 테러리스트들이 껴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고 있는데, 이 사람의 과거가 조금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나는 그가 육군 출신으로 군대가 체질에 아주 잘 맞는, 타고난 육군이었다가 FBI 등으로 옮기게 된 것을 보며 이 사람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큰 물음표를 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후반에 가면 이 사람은 사형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에서긴 하지만.

연쇄살인범, 살인자들이라는 타자에 대한 호기심보다, 나는 내 안에 깃든 괴물성을 찬찬히 다시 반추해 보는 데에서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느꼈다. 행동패턴들을 연구해 양식화하는 작업들을 슬쩍 엿보는 것 역시 재미있긴 했지만. 다 읽고서 느낀 감상은 그래서, 이것이다. 역시, 인간이란 존재는, 참 재미있다는 것.

 

ps. 저자가 이 책을 쓸 때까지 미국에서 자신이 목격한 여성 연쇄살인범은 에일린 워노스 단 한 명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에일린 워노스의 이야기는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으로서 최근 <몬스터>로 영화화된 바 있다. 성매매 피해자로서 강간 위기에서 정당방위로 살인을 시작했던 에일린 워노스와, 여성혐오 및 타인에 대한 완벽한 지배의 욕구 및 자신의 환상 충족 욕구를 위해 살인을 했던 수많은 남성 백인 연쇄살인범의 차이. 인간과 사회라는 것의 본질, 그 양상에 특히 흥미를 가진 이들을 매혹하는 또 하나의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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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등 - 잉마르 베리만 자서전, 예술가의 초상 03
잉마르 베리만 지음, 민승남 옮김 / 이론과실천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스웨덴의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자서전인 이 책은 보통 연대기순으로 나열되는 여느 자서전과 형태를 달리한다. 물론 책 앞 부분은 주로 베르히만의 어린시절에 집중되어 있지만, 시대순이라기보다는 주제별로 총 25개로 나누어진 각 챕터는 시간을 마구 오가며 베르히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영화세계에 영향을 미쳤을 만한 사건들, 에피소드들을 끄집어낸다. 나로서는 부끄럽고 쪽팔리고 충분히 자기혐오의 계기가 될 만도 한 사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조하게 서술한다.

그래 건조함. 원래 베르히만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의 글 역시 '건조함'이란 키워드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리뉴얼 전 미디어몹 블로그의 메모장에 이 책 표지 그림을 얹어놓고는 "시작부터 세다"고 적어놨었는데... 이런 식이다. 예를 들면 나이 터울이 있는 여동생이 태어나고 특히 사랑하고 집착하던 어머니가 자신이 아닌 갓난아기인 여동생에게 관심이 집중됐던 때를 회상하며 베르히만은 그냥 건조하게 이렇게 말해버린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실행에 옮겼다." 대여섯 살 즈음? 아기 침대에 기어올라가 여동생 목을 조르던 사건을 서술하면서. 에둘러 돌아가는 것도, 변명하는 것도 없다. 이게 처음부터 몇 번이 반복돼서, 나는 생경하면서도 문득문득 놀라곤 했다.

애초에 그의 영화를 좋아했던 것도, 영화 속에서 보이는 종교에 대한 심리적 갈등과 신에 대한 회의,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믿음 등 그의 철학적 부분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사이에 놓인 이 베르히만이라는 인간의 강박증들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엄격함 속에서 스스로의 정신세계를 억압하고, 그 때문에 스스로 자초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 그리하여 또 한편으로는 반대급부로 막나가는 격렬함. 그리고 친구의 표현을 빌자면 이야기 구조에서 "더럽게 성격 나쁠 것 같은" 특성들. 바로, 내가 동질감을 느꼈던 부분들이다.

자서전에서 그가 직접 고백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확실히 베르히만은 스스로 억압적이고, 강박증과 편집증이 심하며, 성격도 더럽고 꼬장꼬장하고, 그러면서도 어이없이 순진한 면이 있고 그렇다. 목사 집안의 둘째아들로서, 각종 소소한 엄격한 규칙들 밑에서 오후마다 고백성사와 회초리질의 처벌이 일과였던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난 이력. 그의 영화들이 끝없이 신을 부정하고자 하나 결국 부정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방황하고 회의하는 인물들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화니와 알렉산더>에서 목사인 엄격한 계부에게 정신적으로 학대당하는 주인공 어린아이들의 모습엔 분명 자신의 어린시절이 투영되어 있고. 그럼에도 이 인간은 자존심이 무지허니 센 인간이라 좀처럼 약한 모습도, 변명도, 다른사람 탓도 보여주지 않는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 한켠엔 우월감 없는 연민이 솔직하게 고백되어 있고, 목사 사모로서 냉정하고 차가웠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 한켠엔 집착에 가까울 만큼의 사랑과 갈구가 표현되어 있다.

그가 작업했던 연극연출가, 감독,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이전에 그의 영화 중 잉그리드 버그만의 유작인 <가을 소나타>를 보면서 나는 무시무시한 공포감에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울음을 터뜨리면서 영화를 보았는데, 그 때문인지 암 판정을 받고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혼자 싸우느라 괴팍을 부리던 잉그리드 버그만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서로를 "당신이 무슨 세계적인 감독이야?" "남말하네, 당신이 무슨 세계적인 배우야?"를 주고받으며 싸움질을 하다가 어느 순간, 픽, 웃음을 터뜨리며 상대를 인정하던.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비로소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던 모습들.

혹은 <산딸기>에서 주연을 맡았던 감독이자 배우, 빅토르 스외스트룀에 대한 이야기도 잊을 수 없다. 촬영기간 내내 괴팍을 부리던 그가 실은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날까봐, 소심함을 감추느라 그런 것이라는 베르히만의 회고를 보면서... 아 이 인간, 역시나 자기가 너무나 여린 속살을 감추기 위해 더없이 뻣뻣하고 딱딱한 방어벽을 치는 인간들 특유의 그 성질 때문에 자기랑 비슷한 인간들을 대번에 꿰뚫어보고 이해하는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찍은 영화 얘기들이 많고, 나는 그의 영화 중 일곱 편인가를 이미 보았던 만큼, 자신의 삶의 어떤 부분들이 어떤 영화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그리고 그 영화를 찍으며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담담히 회고하는 부분들이 강한 울림을 준다.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를 이토록 담담하게 고백하기도 쉽지 않으리라. 실은 "그렇지 않아~" 라는 말을 듣기 위해 뱉어내는 과장된 자기 부정(이의 본질은 실은 자기 연민이다) 따위는 없다. 호들갑도 없다. 이러기도 쉽지 않을텐데. 괴팍하고 삐죽삐죽한 면이 없지 않지만, 이 인간은 안 그런 척 해도 자신이 받은 상처보다 자신이 준 상처들을 더 두려워 한다. 하긴, 이게 소심한 인간들의 전형적인 특징이 아닌가. 있는 대로 잘난 척 하며 어깨에 힘주는 것이 실은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봐, 그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란 것도 담담히 먼저 인정을 해버린다.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쓴 자서전이라 그럴까. 난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베르히만 영화들은 사실 한국 관객들에겐 그닥 잘 맞지가 않다. 북구인의 유머감각이란 썰렁하기 짝이 없고 생에 대한 무덤덤하고 건조한 시선은 때론 섬뜩하며 스탠리 큐브릭과 비슷한, 그러나 또다른 잔인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베르히만은 유난히 더 꺼끌꺼끌하고 격렬한 건조함을 가지고 있다. 그게 영화에서뿐 아니라 글쓰기에서도 드러난다. 그래서, 이 사람이 쓴 소설 - 국내엔 한겨레에서 나왔다가 절판이 되었다 - 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베르히만 영화가 좋다. 언어과잉, 이미지 과잉, 자의식 과잉은 내가 하는 건 자연스러워도 남이 하는 걸 보는 건 괴로우니까. 그리고... 확실이 엄청 꼬여있으면서 지극히 냉정하고 건조한 이 인간, 나와 비슷한 사람이다.

이 책과 함께 사놓은 [베르히만의 창작노트]를 읽은 후,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아, 그리고 베르히만이 스스로 '거짓말 투성이'라고 조소했던, 그가 조금 더 젊었을 무렵 쓴 [Bergman on Bergman]도 궁금, 또 궁금. DVD로 출시된 베르히만의 영화들도 사놓고 두고두고 다시 보고픈 욕심도 크다. 당장 <산딸기>, <제7의 봉인>, <외침과 속삭임> 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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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여성들 - 늑대를 타고 달리는
막달레나의 집 엮음 / 삼인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이주노동자 얘기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책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내용인 것은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쭈뼛거리며 친구들 뒤를 따라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장에 처음 갔을 때, '아무 개념없이' '멋모르고' 간 것들이 그간 한편으론 스스로가 너무 답답하고 한심하게 생각된 분명한 이유였음에도, 또 한편으론 그대신 굉장히 많은 다른 경험들을 할 수 있었구나, 하는 걸 지금에서야 느낀다. '농성장'이란 곳이 결코 일상의 공간이 아니지만, 나는 그 농성장에서 '그럼에도'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별 놀라움이나 충격 혹은 내적인 반발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본 모습이 결코 일상의 전부도, 전형적인 모습도 아니라는 건 잘 안다. 반복하지만, 농성장 천막이란 곳 자체가 도무지 일상의 공간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나는, 울고 웃는 갖가지 사연들, 서로 위해주고 배려하는 모습과 토라지고 싸우는 모습들도 보았고, 주로는 같이 밥먹고 수다떨고 사진찍고 같이 춤추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때론 같이 술먹고), 혹은 말없이 천막 안에서 시간을 같이 보내는 등 '같이 노는' 시간들을 통해 일상의 일부, 혹은 일상의 반영(reflect)의 일부를 함께 했다. 그리고 이건, 집회에 참여해 함께 구호를 외치고 투쟁가를 부르고 거리를 행진한 시간들만큼이나 소중했다. 이런 경험은, 사람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어떤 편견을 충족시키는 저 담장 너머 밖의 말하는 인형이 아닌, 살아있는,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다. (물론 내가 깨닫고 있는, 혹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한계들 역시 존재할 것이다.) 당연히, 이주노동자들은 나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게다가 습속과 문화도 다르다), 말도 다르고 지금 처해있는 처지도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이고 노동자란 측면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고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치사해지고 때로는 작은 것에 감동하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짜증내고 울고 웃는다는 점에서 같다.

물론 그 당시에도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있지도 못했고, 오히려 회사일로 피로에 쪄든 몸으로 농성장에 와서 "그냥 수다나 떨다 가는" 것에 충족되지 않는 부족함과 안타까움과 답답함도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또다른 의미에서 소중한 시간들이었음을, 내가 전혀 헛짓거리를 했던 건 아니었음을, 이 책을 읽고서야 느꼈다.

이주노동자만큼이나 배제되고 자신의 입을 갖지 못한 채 타인에 의해 언제나 폭력적으로 정의되고 묘사되며 평가되고 오해되는 성매매 여성들을, 성매매 연구자들이 심층 인터뷰하며 그 과정, 혹은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8개의 글이 실려있는 책이다. 이렇게 소개했을 때 사람들이 가질 통상적인 선입견과 달리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여인수난 열전을 늘어놓으며 화려한 비극미를 치장하지도, 그러므로 성매매가 나쁘고 비참한 것이라느니 혹은 그러므로 성매매를 합법화 해야 한다느니 떠들지도 않는다. 이 책은 그저, 저마다 사연을 가진 개개인으로서의 그들의 삶, 그들의 기쁨과 절망과 슬픔, 분노와 희망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거기에서 보이는 그녀들은 일방적으로 불쌍한 피해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들의 생활과 일상의 주체로 서 있다.

어떤 소수자운동이든지간에, 우리는 그들을 한 사람의 당당한 주체로 인정하는 것,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입을 열게 하고 그 주장에 귀를 조용히 기울이는 것, 그리고 서로가 평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기본임을 알고 있다. 소수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대체적으로 그들을 주체로, 말하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말하는 주체라는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너무 많이 본다. 온라인상에서 내가 끼어드는 모든 담화들에서,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훈계와 평가와 작정하고 달려드는 오해의 대상으로 한없이 격하되는 것이 못마땅했고 때로는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나마 나는 말을, 내 언어를 가진 사람이고, 블로그라는 표현수단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언제나 제3자들에 의해 이리 평가되고 저리 평가되고, 그리하여 이렇게 혹은 저렇게 되어야 한다는 주장의 볼모로 잡히는 것은 과연 얼마나 무시무시한 폭력으로 느껴질까. 그 깊이를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약간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할 듯싶다.

신분도 계급도 다른, 그래서 적대감이 느껴질 것도 같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준다는 이유로 너무나 기뻐하며 열심히 이야기를 쏟아내었던 그녀들의 모습이 각 글들에서 보인다. 물론 연구자들의 겸허하고 성실한, 그리고 오랜 시간의 노력이 그렇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에 큰 힘을 발휘했을 터이다. (지금도 열심히 활동 중인 그분들께 존경을.) 하지만 그런 활동가/연구자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생살을 보이면서, 삶의 질곡과 일상의 기쁨과 아픔을 담담히 드러내놓는 그녀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에서 나는, 모진 바람과 아스팔트 틈에서도 기어코 꽃을 피우는, 그리고 대기 가득 꽃씨들을 날아오르게 하는 예쁜 꽃, 민들레를 떠올린다. 그리고 운동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깨닫고 나를 돌아보며 반성한다. 여전히 나는 '성 노동자'라는 말 자체에 대해 별로 동의할 수 없지만, 이 말이 그녀들에게 어떤 주체감과 자존감을 안겨줄 수 있는지, 말 자체에 대한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수긍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마지막에 실린 글, '어떤 역사'는 몇번이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보았다. 그들 자신이 스스로 만든 자치조직 개나리회는 비록 사회의 철저한 외면을 당하였지만, 그들 자신에겐 더할 수 없는 긍지와 자존감의 역사로 남아 그들의 삶을 직접 변화시켰고, 나처럼, 연구자라는 매개를 통해 뒤늦게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조차 무한한 용기와 감동을 안겨주었다. 개나리회가 특별한 것은 그녀들이 스스로 만든 조직이고, 스스로 목표와 활동을 정해 스스로 열심히 활동했던 조직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몸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정신을 돌아보며, 상상도 할 수 없는 주변의 폭력과 시선에 직접, 스스로 당당히 맞서 싸운 역사. 감히 누가 그 역사를 작은 것이라,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으랴. 진정한 역사는 바로 그런 것들이 하나둘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주여성 문제를 고민하는 분들 중 아직 이 책을 접하지 않은 분들께, 이책 후반부에 실린 백재희의 글 'I'm entertainer, I'm not sex worker'와 쳉 실링의 글 '사랑을 배우고, 사랑에 죽고'가 특히 도움이 되시리라 믿는다. 소수자의 주체적 운동을 고민하시는 분들께는 엄상미의 '어떤 역사'가 큰 영감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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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대강 영화감상과 독서라는 아주 단순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외모도 관심없어, 원래 예쁘지도 않아, 사람이 폭은 좁을 대로 좁아, 호기심도 별로 없는 데다가 게으르기까지 해, 그래서 다른 취미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와 책에 조금 더 몰두를 하기 마련이다. 둘 다 돈도 노력도 은근히 많이 드는 취미인데, 조율이 중요하다. 그리고 딱, 접점에서 만나는 게 바로 영화화된 원작소설, 혹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요즘은 다행히 영화가 원작으로 하는 소설들이 꽤 많이 나와주고 있고, 또 그런 책들을 즐겨읽는 사람들의 숫자도 꽤 늘어난 듯싶다. 출판사들이 요즘은 그쪽 시장에 많이 몰두하는 듯한 눈치. 그래서 나는, 영화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하다가 원작소설이 있거나 하면 부지런히 출판사 다니는 친구들에게 정보를 물어나른다. 물론 발빠른 출판계는 내가 이미 물어나르기 전에 벌써 계약을 맺고 작업에 들어가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나는, 책의 세계 역시도 영화를 통해 접하게 된다. 새로운 관심작들이 어떤 책과 관련이 있을 때 부쩍 그 책들에 관심이 생기고, 특히 원작소설이나 원작 희곡의 경우에 관심을 쏟게 되고. 제임스 엘로이나 레너드 엘모어, 척 팔라닉 같은 작가는 그렇게 알게 된 작가들이다. 또, 세익스피어의 세계에 발가락 하나를 들이밀게 된 것도 영화 덕이었다. (내겐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주연을 한 <햄릿>이 거의 충격의 영화로 남아잇다.)

최근에 헌터 S. 톰슨이나 P.G. 워드하우스, 트루먼 카포티 같은 작가들을 알게 됐는데, 이 작가들이 국내엔 거의 출판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덩달아 알게됐다. 그럴수록 더 궁금한 법. 톰슨은 곤조 저널리즘으로도, 올해 초 느닷없이 권총자살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와 같은 영화들, 그리고 베니시오 델 토로가 연출/주연도 맡아 의욕적으로 개발하다가 최근 주연만 맡기로 한 <럼 다이어리>같은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P.G.워드하우스는 영국산 검색엔진인 Ask Jeeves!(최근 Bloglines를 인수했다)가 이름을 따온 유명한 Jeeves 시리즈를 탄생시킨 작가이고. 트루먼 카포티는 헐리웃과도 연이 깊다. 하지만 그들의 책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톰슨과 워드하워스의 책은 알라딘에 한 권도 뜨지 않고, 트루먼 카포티는 딱 한 권, [티파니에서의 아침을]만 뜰 뿐이다.

물론 내가 대단한 독서가도 지식인도 아니지만, 이렇게 '외국에선 유명한데 한국에선 책이 거의 없는' 작가일수록, 책 대부분이 소개된 작가들보다 더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니, 이건 대단한 독서가니 지식인이니 하는 타이틀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이기에 오히려 가질 수 있는 (다소 천박한) 호기심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특히 영미문학으로 올수록 아이템이 대단히 빈약해 지고 한 작가의 대표작 하나만 주구장창 몇백개의 출판사에서 나오는 현실이 분명 존재하기에, 나의 천박한 호기심은 그래도 변명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J.D.샐린저의 몇 권 안 되는 작품조차, 작년에서야 이것 저것이 좀 나와주지 않았는가. (그 전엔 달랑 [호밀밭의 파수꾼] 한권만 참 많은 출판사에서 갖가지 번역으로 나왔었다.)

좀더 다양한 작가들의 좀더 다양한 책을 보고 싶단 건 지나친 욕심일까. 내다 대단한 독서가도, 대단히 특이한 취향의 사람도 아닌데, 그런 내게조차 대한민국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대단히 지난하고 안타까운 경우들을 종종 경험해야 한다. 그게 참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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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05-05-02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항상 읽고싶어하지만 번역이 되지 않아서 읽지 못하던 책이 어느날 출간된다면, 눈에 보이는 즉시 사야된다는 것. 잠깐 한눈팔고 딴거하고 까먹고 있는 사이에 빨간색 '품절' 메시지를 달고 있으니까 말이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노바리 2005-05-02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 그러다 그 '품절' 메시지는 어느새 '절판' 메시지로 바뀌어 버리죠.
당장 안 읽으면서 눈에 띄면 일단 사고 보는 이유이지만, 종종 놓치곤 하지요.
저도, 반갑습니다. ^o^

mannerist 2005-05-05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이 소설인 영화라. 매너는 단박에 "쇼생크 탈출"이 떠오르네요. 원래는 different season 이라는 제목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을 제목으로 한 중/단편소설을 묶어놓은 책의 봄에 해당하는 첫 소설: Hope Springs forever - 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 이 원작이거든요. 네이밍 센스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Hope Springs forever라니! 영화를 본 지 십년 후에야 페이퍼백으로 읽었는데 영화나 소설이나 정말 대단하덥디다. 숨막힐듯 짤막하고도 군더더기가 없어서 말이죠. 괜찮은 번역본은 언제야 나오려나... 쩝...

아. 혹시 저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 궁금하시다면 알라딘의 앤디 듀프레임이란 분이 블로그에 번역해놓으신 페이퍼를 한번 읽어보시길. =)

http://my.aladdin.co.kr/andydufresne

노바리 2005-05-06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킹은 워낙 유명하고 영화화도 많이 돼서 여기선 제외했어요. 사실 스티븐킹만큼 나오는 족족 영화화가 되면서도, 그렇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 없는 경우도 드물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잘된 케이스'가 고작 롭 라이너의 <스탠바이미>와 <미져리>, 브라이언드팔마의 <캐리>, 그리고 프랭크 다라본트의 <쇼생크탈출> 정도일 거예요. <그린마일>과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사람마다 조금씩 엇갈리리고, 스탠리큐브릭의 <샤이닝>은 스티븐킹 원작이라기보다 그냥 스탠리큐브릭 영화라고 하는 게 좋을 거구요. 스티븐킹 팬인 친구와 롭 라이너의 <스탠바이미>의 경우 스티븐킹보다 더 스티븐킹적이라고 얘길 하곤 하죠. :)



전 예전에 영언문화사에서 [스탠바이미](는 표제이고 네 편 다 들어있었죠)라고 나온 책을 친구에게 빌려 읽었어요. 알라딘엔 품절이라 떠있지만 사실상 절판인... [미드나이트 시즌]은 가지고 있고요. 네 편을 다 모은, 제대로된 책이 나왔으면 싶은데, 황금가지의 스티븐킹 걸작선에서 과연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겠네요. ^^;


앤디 듀프레인님의 서재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양이 꽤 될텐데 번역을 해서 올려놓으시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시네요. 게다가 아이디마저 앤디 듀프레인이시라니 번역이 훌륭하실 거란 건 당연할 터이고, 언제건 다시 읽고 싶었는데 이렇게 뜻밖에 볼 수 있다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