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등 - 잉마르 베리만 자서전, 예술가의 초상 03
잉마르 베리만 지음, 민승남 옮김 / 이론과실천 / 2001년 11월
평점 :
절판


스웨덴의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자서전인 이 책은 보통 연대기순으로 나열되는 여느 자서전과 형태를 달리한다. 물론 책 앞 부분은 주로 베르히만의 어린시절에 집중되어 있지만, 시대순이라기보다는 주제별로 총 25개로 나누어진 각 챕터는 시간을 마구 오가며 베르히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의 영화세계에 영향을 미쳤을 만한 사건들, 에피소드들을 끄집어낸다. 나로서는 부끄럽고 쪽팔리고 충분히 자기혐오의 계기가 될 만도 한 사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조하게 서술한다.

그래 건조함. 원래 베르히만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의 글 역시 '건조함'이란 키워드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리뉴얼 전 미디어몹 블로그의 메모장에 이 책 표지 그림을 얹어놓고는 "시작부터 세다"고 적어놨었는데... 이런 식이다. 예를 들면 나이 터울이 있는 여동생이 태어나고 특히 사랑하고 집착하던 어머니가 자신이 아닌 갓난아기인 여동생에게 관심이 집중됐던 때를 회상하며 베르히만은 그냥 건조하게 이렇게 말해버린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실행에 옮겼다." 대여섯 살 즈음? 아기 침대에 기어올라가 여동생 목을 조르던 사건을 서술하면서. 에둘러 돌아가는 것도, 변명하는 것도 없다. 이게 처음부터 몇 번이 반복돼서, 나는 생경하면서도 문득문득 놀라곤 했다.

애초에 그의 영화를 좋아했던 것도, 영화 속에서 보이는 종교에 대한 심리적 갈등과 신에 대한 회의, 그럼에도 버리지 못하는 믿음 등 그의 철학적 부분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사이에 놓인 이 베르히만이라는 인간의 강박증들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엄격함 속에서 스스로의 정신세계를 억압하고, 그 때문에 스스로 자초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 그리하여 또 한편으로는 반대급부로 막나가는 격렬함. 그리고 친구의 표현을 빌자면 이야기 구조에서 "더럽게 성격 나쁠 것 같은" 특성들. 바로, 내가 동질감을 느꼈던 부분들이다.

자서전에서 그가 직접 고백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확실히 베르히만은 스스로 억압적이고, 강박증과 편집증이 심하며, 성격도 더럽고 꼬장꼬장하고, 그러면서도 어이없이 순진한 면이 있고 그렇다. 목사 집안의 둘째아들로서, 각종 소소한 엄격한 규칙들 밑에서 오후마다 고백성사와 회초리질의 처벌이 일과였던 엄격한 집안에서 자라난 이력. 그의 영화들이 끝없이 신을 부정하고자 하나 결국 부정하지 못하고, 그 안에서 방황하고 회의하는 인물들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화니와 알렉산더>에서 목사인 엄격한 계부에게 정신적으로 학대당하는 주인공 어린아이들의 모습엔 분명 자신의 어린시절이 투영되어 있고. 그럼에도 이 인간은 자존심이 무지허니 센 인간이라 좀처럼 약한 모습도, 변명도, 다른사람 탓도 보여주지 않는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 한켠엔 우월감 없는 연민이 솔직하게 고백되어 있고, 목사 사모로서 냉정하고 차가웠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 한켠엔 집착에 가까울 만큼의 사랑과 갈구가 표현되어 있다.

그가 작업했던 연극연출가, 감독,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이전에 그의 영화 중 잉그리드 버그만의 유작인 <가을 소나타>를 보면서 나는 무시무시한 공포감에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울음을 터뜨리면서 영화를 보았는데, 그 때문인지 암 판정을 받고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혼자 싸우느라 괴팍을 부리던 잉그리드 버그만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서로를 "당신이 무슨 세계적인 감독이야?" "남말하네, 당신이 무슨 세계적인 배우야?"를 주고받으며 싸움질을 하다가 어느 순간, 픽, 웃음을 터뜨리며 상대를 인정하던.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비로소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던 모습들.

혹은 <산딸기>에서 주연을 맡았던 감독이자 배우, 빅토르 스외스트룀에 대한 이야기도 잊을 수 없다. 촬영기간 내내 괴팍을 부리던 그가 실은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날까봐, 소심함을 감추느라 그런 것이라는 베르히만의 회고를 보면서... 아 이 인간, 역시나 자기가 너무나 여린 속살을 감추기 위해 더없이 뻣뻣하고 딱딱한 방어벽을 치는 인간들 특유의 그 성질 때문에 자기랑 비슷한 인간들을 대번에 꿰뚫어보고 이해하는구나, 싶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찍은 영화 얘기들이 많고, 나는 그의 영화 중 일곱 편인가를 이미 보았던 만큼, 자신의 삶의 어떤 부분들이 어떤 영화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그리고 그 영화를 찍으며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담담히 회고하는 부분들이 강한 울림을 준다.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를 이토록 담담하게 고백하기도 쉽지 않으리라. 실은 "그렇지 않아~" 라는 말을 듣기 위해 뱉어내는 과장된 자기 부정(이의 본질은 실은 자기 연민이다) 따위는 없다. 호들갑도 없다. 이러기도 쉽지 않을텐데. 괴팍하고 삐죽삐죽한 면이 없지 않지만, 이 인간은 안 그런 척 해도 자신이 받은 상처보다 자신이 준 상처들을 더 두려워 한다. 하긴, 이게 소심한 인간들의 전형적인 특징이 아닌가. 있는 대로 잘난 척 하며 어깨에 힘주는 것이 실은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봐, 그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란 것도 담담히 먼저 인정을 해버린다.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쓴 자서전이라 그럴까. 난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베르히만 영화들은 사실 한국 관객들에겐 그닥 잘 맞지가 않다. 북구인의 유머감각이란 썰렁하기 짝이 없고 생에 대한 무덤덤하고 건조한 시선은 때론 섬뜩하며 스탠리 큐브릭과 비슷한, 그러나 또다른 잔인함을 가지고 있다. 특히 베르히만은 유난히 더 꺼끌꺼끌하고 격렬한 건조함을 가지고 있다. 그게 영화에서뿐 아니라 글쓰기에서도 드러난다. 그래서, 이 사람이 쓴 소설 - 국내엔 한겨레에서 나왔다가 절판이 되었다 - 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베르히만 영화가 좋다. 언어과잉, 이미지 과잉, 자의식 과잉은 내가 하는 건 자연스러워도 남이 하는 걸 보는 건 괴로우니까. 그리고... 확실이 엄청 꼬여있으면서 지극히 냉정하고 건조한 이 인간, 나와 비슷한 사람이다.

이 책과 함께 사놓은 [베르히만의 창작노트]를 읽은 후,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아, 그리고 베르히만이 스스로 '거짓말 투성이'라고 조소했던, 그가 조금 더 젊었을 무렵 쓴 [Bergman on Bergman]도 궁금, 또 궁금. DVD로 출시된 베르히만의 영화들도 사놓고 두고두고 다시 보고픈 욕심도 크다. 당장 <산딸기>, <제7의 봉인>, <외침과 속삭임> 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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