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대강 영화감상과 독서라는 아주 단순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외모도 관심없어, 원래 예쁘지도 않아, 사람이 폭은 좁을 대로 좁아, 호기심도 별로 없는 데다가 게으르기까지 해, 그래서 다른 취미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영화와 책에 조금 더 몰두를 하기 마련이다. 둘 다 돈도 노력도 은근히 많이 드는 취미인데, 조율이 중요하다. 그리고 딱, 접점에서 만나는 게 바로 영화화된 원작소설, 혹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요즘은 다행히 영화가 원작으로 하는 소설들이 꽤 많이 나와주고 있고, 또 그런 책들을 즐겨읽는 사람들의 숫자도 꽤 늘어난 듯싶다. 출판사들이 요즘은 그쪽 시장에 많이 몰두하는 듯한 눈치. 그래서 나는, 영화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하다가 원작소설이 있거나 하면 부지런히 출판사 다니는 친구들에게 정보를 물어나른다. 물론 발빠른 출판계는 내가 이미 물어나르기 전에 벌써 계약을 맺고 작업에 들어가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나는, 책의 세계 역시도 영화를 통해 접하게 된다. 새로운 관심작들이 어떤 책과 관련이 있을 때 부쩍 그 책들에 관심이 생기고, 특히 원작소설이나 원작 희곡의 경우에 관심을 쏟게 되고. 제임스 엘로이나 레너드 엘모어, 척 팔라닉 같은 작가는 그렇게 알게 된 작가들이다. 또, 세익스피어의 세계에 발가락 하나를 들이밀게 된 것도 영화 덕이었다. (내겐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주연을 한 <햄릿>이 거의 충격의 영화로 남아잇다.)

최근에 헌터 S. 톰슨이나 P.G. 워드하우스, 트루먼 카포티 같은 작가들을 알게 됐는데, 이 작가들이 국내엔 거의 출판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덩달아 알게됐다. 그럴수록 더 궁금한 법. 톰슨은 곤조 저널리즘으로도, 올해 초 느닷없이 권총자살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와 같은 영화들, 그리고 베니시오 델 토로가 연출/주연도 맡아 의욕적으로 개발하다가 최근 주연만 맡기로 한 <럼 다이어리>같은 영화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P.G.워드하우스는 영국산 검색엔진인 Ask Jeeves!(최근 Bloglines를 인수했다)가 이름을 따온 유명한 Jeeves 시리즈를 탄생시킨 작가이고. 트루먼 카포티는 헐리웃과도 연이 깊다. 하지만 그들의 책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톰슨과 워드하워스의 책은 알라딘에 한 권도 뜨지 않고, 트루먼 카포티는 딱 한 권, [티파니에서의 아침을]만 뜰 뿐이다.

물론 내가 대단한 독서가도 지식인도 아니지만, 이렇게 '외국에선 유명한데 한국에선 책이 거의 없는' 작가일수록, 책 대부분이 소개된 작가들보다 더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니, 이건 대단한 독서가니 지식인이니 하는 타이틀이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이기에 오히려 가질 수 있는 (다소 천박한) 호기심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특히 영미문학으로 올수록 아이템이 대단히 빈약해 지고 한 작가의 대표작 하나만 주구장창 몇백개의 출판사에서 나오는 현실이 분명 존재하기에, 나의 천박한 호기심은 그래도 변명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J.D.샐린저의 몇 권 안 되는 작품조차, 작년에서야 이것 저것이 좀 나와주지 않았는가. (그 전엔 달랑 [호밀밭의 파수꾼] 한권만 참 많은 출판사에서 갖가지 번역으로 나왔었다.)

좀더 다양한 작가들의 좀더 다양한 책을 보고 싶단 건 지나친 욕심일까. 내다 대단한 독서가도, 대단히 특이한 취향의 사람도 아닌데, 그런 내게조차 대한민국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대단히 지난하고 안타까운 경우들을 종종 경험해야 한다. 그게 참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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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05-05-02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항상 읽고싶어하지만 번역이 되지 않아서 읽지 못하던 책이 어느날 출간된다면, 눈에 보이는 즉시 사야된다는 것. 잠깐 한눈팔고 딴거하고 까먹고 있는 사이에 빨간색 '품절' 메시지를 달고 있으니까 말이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노바리 2005-05-02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 그러다 그 '품절' 메시지는 어느새 '절판' 메시지로 바뀌어 버리죠.
당장 안 읽으면서 눈에 띄면 일단 사고 보는 이유이지만, 종종 놓치곤 하지요.
저도, 반갑습니다. ^o^

mannerist 2005-05-05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이 소설인 영화라. 매너는 단박에 "쇼생크 탈출"이 떠오르네요. 원래는 different season 이라는 제목으로 봄/여름/가을/겨울을 제목으로 한 중/단편소설을 묶어놓은 책의 봄에 해당하는 첫 소설: Hope Springs forever - Rita Hayworth and Shawshank Redemption 이 원작이거든요. 네이밍 센스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Hope Springs forever라니! 영화를 본 지 십년 후에야 페이퍼백으로 읽었는데 영화나 소설이나 정말 대단하덥디다. 숨막힐듯 짤막하고도 군더더기가 없어서 말이죠. 괜찮은 번역본은 언제야 나오려나... 쩝...

아. 혹시 저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 궁금하시다면 알라딘의 앤디 듀프레임이란 분이 블로그에 번역해놓으신 페이퍼를 한번 읽어보시길. =)

http://my.aladdin.co.kr/andydufresne

노바리 2005-05-06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킹은 워낙 유명하고 영화화도 많이 돼서 여기선 제외했어요. 사실 스티븐킹만큼 나오는 족족 영화화가 되면서도, 그렇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 없는 경우도 드물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잘된 케이스'가 고작 롭 라이너의 <스탠바이미>와 <미져리>, 브라이언드팔마의 <캐리>, 그리고 프랭크 다라본트의 <쇼생크탈출> 정도일 거예요. <그린마일>과 <돌로레스 클레이본>은 사람마다 조금씩 엇갈리리고, 스탠리큐브릭의 <샤이닝>은 스티븐킹 원작이라기보다 그냥 스탠리큐브릭 영화라고 하는 게 좋을 거구요. 스티븐킹 팬인 친구와 롭 라이너의 <스탠바이미>의 경우 스티븐킹보다 더 스티븐킹적이라고 얘길 하곤 하죠. :)



전 예전에 영언문화사에서 [스탠바이미](는 표제이고 네 편 다 들어있었죠)라고 나온 책을 친구에게 빌려 읽었어요. 알라딘엔 품절이라 떠있지만 사실상 절판인... [미드나이트 시즌]은 가지고 있고요. 네 편을 다 모은, 제대로된 책이 나왔으면 싶은데, 황금가지의 스티븐킹 걸작선에서 과연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겠네요. ^^;


앤디 듀프레인님의 서재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양이 꽤 될텐데 번역을 해서 올려놓으시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시네요. 게다가 아이디마저 앤디 듀프레인이시라니 번역이 훌륭하실 거란 건 당연할 터이고, 언제건 다시 읽고 싶었는데 이렇게 뜻밖에 볼 수 있다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