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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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을 읽고 나서 언제나 머릿속에 남는 건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다.“ - <64> p. 691, 옮긴이의 말 에서 -



‘가장 아름다운 미스터리‘, ‘휴먼 미스테리의 정점이라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신작 <빛의 현관>의 홍보 문구를 보고 어쩌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이나휴먼과 같은 수사들이 추리 미스터리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그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빛의 현관>을 접하기 이전일지라도 이러한 홍보문구에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의 생존을 위해 벌어지는 경찰 조직내 갈등과 암투를 그린 그의 대표작 <64> 조차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가슴에 따뜻한 온기와 여운이 남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빛의 현관>의 홍보문구를 보고 나는 '아름다운' 이나 '휴먼'이라는 문구 보다 '가장''정점'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가슴이 설렜다. 소설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휴먼 미스테리의 대가가 보여주는 그 정점이란 어떤 것일지 그 생각만으로 이번 신작소설에 기대를 걸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오랜 팬으로서 대부분의 출간작을 읽어왔지만, 작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내가 <빛의 현관>의 출간 전부터 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의 신작에 대한 정보를 갈구한 이유이다. 그러던 중인생이라는 여정에서 길을 잃은 이에게 내리쬐는 한줄기 빛과 같은 이야기라는 작가의 인터뷰를 보게 된 순간 나는 이 소설이 작가의 커리어 뿐만 아니라 독자인 나에게 있어서도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일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또한, 신종 전염병으로 전세계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시기에 휴먼 미스터리의 대가의한줄기 빛과 같은 위로란 어떤 것일까 너무나도 궁금했다.



여러 사건과 갈등들이 밀도 높게 중첩되면서 서서히 장대한 서사의 결말을 향해 수렴하는 <64>를 비롯한 그의 전작과는 달리 <빛의 현관>의 서사구조는 비교적 단순하게 전개된다. 소설은 크게 주인공인 건축가 아오세가 사라진 건축주에 관한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것 그리고 아오세가 소속된 건축사무소가 설계 공모전을 준비하는 것과 관련된 두 가지 사건을 다룬다. 아오세는 전적으로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라는 요청을 받고 잊고 지내왔던 건축가로서의 열정을 불태우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걸작 'Y 주택'을 완성한다. 건축계에서 신앙처럼 떠받드는 '남향'에서 벗어난 이 '북향'의 집에 대해 의뢰인은 찬사를 보냈고, 건축업계에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주택'으로 선정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주택의 완공 후 의뢰인은 연락이 닿지 않고, 직접 찾아가본 'Y 주택'에는 사람이 산 흔적도 전혀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의뢰인 가족의 행방을 파헤치는 것이 소설의 주축이다. 또 다른 한 축은 소설의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난 후 아오세가 속한 건축사무소가 설계공모전에 입상하기 위해 진심을 다해 준비해나가는 과정이다. 건축 설계 공모를 두고 각 건축사무소가 벌이는 설계전쟁은 소설의 후반부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너한테 가장 아름다운 건 뭐지?"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면 바로 답이 튀어나오겠냐고 대꾸하려는데, 어디선가 머릿속을 향해 답이 던져졌다. 유일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

"노스라이트"

"북쪽 빛이라... 기법이 아니었군. Y 주택은." (p. 363)



당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을 무엇인가? 이는 주인공 아오세의 친구이자 아오세가 속한 건축사무소의 소장인 오카지마가 아오세에게 던진 질문인 동시에 소설의 주제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또한,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인생이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위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이를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우리가 꿈꾸는 삶에서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집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와 같은 노랫말처럼 저마다 그리는 이상향에는 저마다의 취향과 가치관이 투영된이 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착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는 땅에 뿌리를 내리겠노라 다짐하는 이도, 땅에 작별을 고하고 고층 건물에 여생을 맡기는 이도.“ (p. 321)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 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픔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절들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건축을 하다 보면 안다. 인간이 집에 가진 고집들은 단순한 취미나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과 숨겨진 욕구가 드러난다. 그것은 미래 지향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 내역이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p. 30)



아오세는 지나온 삶 동안 아버지의 직업적 특성에 따라 여러 곳을 이주하며 살았다. 떠돌이의 삶에 정주(定住)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인생의 기로에 섰을 때, 혹은 도무지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절로 떠오르는 곳을 고향이라 부른다면 아오세에겐 고향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건 빛의 기억 뿐이다. 부드러운 빛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갈망이 솟아오를 때가 있다.” (p. 33)



아버지를 따라 떠돌던 건설 현장의 숙소에는 희한하게도 북쪽 벽에 큰 창이 나 있었다. 새어 들어오는 것도,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아닌, 왠지 조심스레 실내를 감싸 안는 부드러운 북쪽의 빛. 동쪽 빛의 총명함이나 남쪽 빛의 발랄함과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듯 고요한 노스라이트 (north light)는 추후 아오세의 삶에서 행복의 이정표가 된다. 한동안 아오세가 꿈꾸는 집은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또 이별의 아픔을 거치면서 진정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후 아오세가 꿈꾸는 집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온 삶과 가치관이 반영된 집으로 변해간다.



내가 살고 싶은 집. 눈을 깜빡이는 찰나에 '목조 주택'이 보였다. 콘크리트 외벽은 침묵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온존해온 계획, 햇살과 그늘이 어우러져 세월을 새기는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은 머릿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을 새기는 집'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월에 지고 만 것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힘없이 스러져, 고개를 들려는 기척조차 없었다.” (p. 40)



빛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아오세에게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빛의 현관'은 행복한 추억으로 안내하는 문,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받는 집이다. 이는 자신의 삶과 가치관이 투영된 집이고, 또한 동시에 아내 유카리의 소망과 가치관이 반영된 집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남향이 아닌 북향으로 지어진 Y 주택은 보편적인 행복의 기준을 지향하는 집은 아니다.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르고 저마다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듯이 Y 주택은 아오세 가족만의 삶과 이야기, 행복에 대한 주관적 기준이 담긴 집이다.



노스라이트란 '의식 아래의 행복'을 암시하는 은유입니다. 마음의 안녕에 바탕이 되는 것. 영혼의 안전망이라고도 할 수 있죠. 남과 비교하거나, 사회의 시선에 좋고 나쁨에 좌우되는 그런 상대적인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보이지 않게 되는, 어떻게 발견해야 하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되는 소박한 감정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 요코야마 히데오 인터뷰 中에서 -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상실과 결핍의 과정을 겪으며 천천히 소멸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채 조용히 빛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하나의 섬이 아닐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슬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를 건넨다.



채운다. 부족한 것을 채운다.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것을 하염없이 채운다.” (p. 344)



우리는 수많은 상실의 경험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술이란채워도 채워도 여전히 부족한 것을 하염없이 채워 나가는 끝없는 작업이라는 작중 화가 후지미야 하루코의 신조와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자신의 마음을 채우는 것이라는 전설적 건축가 타우트의 철학은 이러한 우리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 Y 주택이 아오세의 가족의 새로운 배경이 되고, 추억이 되고, 기쁨의 원천이 되길 빈다. 아오세의 가족이 Y 주택 안에서 찬란하고 고요한 노스라이트를 받으며, 먼 훗날 Y 주택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또 다른 새로운 추억들을 채워나갔으면 좋겠다. 또한,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이 소설을 읽고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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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밟기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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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십시오. 여기 천재가 나타났습니다

 

2020년 올해는 슈만 탄생 210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동시에 그와 동갑내기 피아니스트인 쇼팽의 탄생 2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슈만은 그만의 감성이 담겨 있는 독창적인 음악으로 유명하지만, 쇼팽, 멘델스존, 브람스 등을 발굴해낸 음악 비평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무명의 작곡가 쇼팽의 천재성을 단번에 알아보고, 천재의 탄생을 대중에게 알렸던 음악사상 최대의 찬사가 담겨 있는 그의 평론은 쇼팽이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음악 애호가들에게 널리 회자되는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다.


 

여러분,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하십시오. 거장의 숨결이 느껴지는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였습니다

 


다소 낯 간지러운 표현이 될지는 몰라도, 요코야마 히데오의 <그림자 밟기>를 읽고 나서 내가 느낀 소회는 쇼팽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경이와 찬사, 존경이 담겨 있는 슈만의 표현을 빗댄 위와 같은 문장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사실 요코야마 히데오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다. 그의 전작 <64> 12년의 기자 경험과 치밀한 자료조사, 10년에 걸친 집필 기간이 쌓아 올린 걸작으로 요코야마 히데오를 명실상부한 거장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일본소설의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렸다'는 어마어마한 극찬을 받은 <64>2012년 일본 최고의 소설로 꼽혔고, 영국추리작가협회상 인터내셔널 대거 최종후보, 독일 미스터리 대상 해외부문 1위에 오르며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천재' 대신 '거장'이라 표현한 이유는 그의 오랜 팬으로서 이제는 '천재' 라는 표현 보다 '거장' 이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자 밟기>'거장의 숨결이 느껴지는 새로운 작품'로 표현한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요코야마 히데오를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휴머니즘이라는 코드를 조합하여 그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해낸 작가라고 생각한다. 미스터리 장르를 다루면서, 또 경찰 조직에 관한 여러 편의 소설을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추리력과 통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나 탐정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을 거친 후 절망과 좌절 속에서 흐릿해진 눈으로 스쳐 지나가는 한 조각의 진실을 바라보는 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소설 속에서 미스터리를 쫓으며 진실을 갈구하는 인물들은 내면에서 욕망과 갈등이 꿈틀대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러한 등장인물을 통해 인간에 대해 탐구하며, 인간 성장의 드라마를 그려내고 있다.

 


<그림자 밟기>도 추리소설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삶에서 직면한 저마다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번민하고 고민하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 성장 드라마라는 점에서 그의 전작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주인공 마카베는 전도유망한 엘리트였지만 일순간에 밀려온 삶의 소용돌이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픔 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떠나간 가족에 대한 오해와 원망 속에서 스스로 밑바닥 인생을 선택하여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카베는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자, 부패한 형사, 비정한 야쿠자, 사고로 부모를 잃은 소녀, 아들을 기다리는 노인 등 다양한 인물과 관련된 사건을 겪고 해결하면서 자신이 품고 있는 삶의 화두에 대해서 탐구해 나간다.

 


<그림자 밟기>는 동일한 등장인물과 배경이 반복되면서도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피카레스크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 마카베가 겪게 되는 개별적 사건들이 하나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한편 한편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도 완결성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결되는 시리즈물로서 같이 읽으면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구성이다. 더군다나 <그림자 밟기>는 앞서 언급했듯이 성장 드라마의 성격을 띠고 있고, 여타의 사건들을 겪은 주인공이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에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단편소설집이 아닌 하나의 소설로 모든 에피소드를 같이 읽는 것을 추천한다.

 


주인공 마카베는 정의로운 법조인을 꿈꿔왔지만 가족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 이후, 충격과 죄책감 속에서 스스로 도둑이라는 삶을 선택하여 살아간다. 이것이 그의 전작들과 대비되는 차별화된 요소를 만들어내는 기본 구도가 되고 있다. 그의 전작들이 세상을 사회의 빛을 지켜내는 경찰과 제도권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빛 뿐만 아니라 빛에 가려진 그림자를 어둠의 시각에서,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밝은 곳에서는 바라보면 어두운 곳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어두운 곳에서 바라보면 밝은 곳이 잘 보이기 마련이다. 주인공 마카베는 음지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밝은 곳을 바라보고, , 빛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사회의 부조리를 빠짐 없이 조명하고 있다.

 


경찰 소설의 거장이 그 정반대에 위치한 범죄자의 시각에서 소설을 썼다는 점도 놀랍긴 하지만 이 소설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 거장의 숨결이 살아있다고 표현할 만한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소설 내내 그의 곁에 머무는 주인공 마카베의 쌍둥이 동생 '게이지'의 존재다. 셜록 홈즈의 든든한 동료로 그의 곁에 머물면서 홈즈의 지성을 이끌어내는 왓슨이 연상되기도 하고, 아이언맨의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가 연상되기도 하는 '게이지'라는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로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추리소설 팬으로서 수많은 작품 속에서 주인공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캐릭터를 봐왔지만 '게이지' 같은 독특한 형식과 매력을 가진 캐릭터는 보지 못했다.

 


"쌍둥이란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를 밟으려 하며 살아가는 존재였다. 마카베가 나라면 이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곧 게이지 역시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뜻했다. 가슴이 시커멓게 타 들어갔다. 생김새는 물론 자신과 마음속까지 똑같은, 복사판이나 다름없는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저주했다. 차라리 사라져버려. 그렇게 빌었다." (p. 134)

 


<그림자 밟기>라는 소설의 제목처럼 쌍둥이라는 존재에서 나오는 캐릭터의 특징과 사고로 죽은 후 영혼이 되어 주인공의 곁에서 대화하면서 주인공의 심리와 사건 전개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정은 이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매력 포인트다. 또한, 동시에 '게이지'의 존재 자체는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수수께끼이자 질문이기도 하다. 쌍둥이 동생 '게이지'의 영혼은 정말로 실존하면서 주인공 마카베에게 머물렀던 것일까? '게이지'의 존재는 물리적인 이별의 한계를 넘어서서 영혼의 동반자를 이루는 쌍둥이로서의 숙명이 만들어낸 기적일 수도 있다. 또한, 동생의 존재를 부정하고 저주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늘 곁에 있던 형제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마카베의 내면이 만들어 낸 허구의 존재일 수도 있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내면 될 뿐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남기는 궁극적 질문은 주인공 마카베가 동생과 진정한 이별을 하며 한 단계 성숙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마지막 대목에 있다. 바로 소설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그림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림자'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림자는 고단한 일상에서 미처 신경쓰지 못하고 지나친 내면의 목소리, 삶의 본질을 상징하는 것이다. 내가 내린 나름의 답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와 삶을 이룬다. 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면서 빛이 되고, 그림자를 만든다. 그림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불완전한 형태와 빛깔을 띠지만 나와 완전히 분리할 수 없는, 필연적으로 나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다.

 


삶을 탐구하는 여정의 끝에서 마카베는 죽은 동생의 영혼에 얽매여 지나쳤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자신의 내면과 대면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마카베의 영혼의 목소리가 사라졌을 때, 그는 아스팔트에 드리워진 자신의 옅은 그림자를 보았다. 그 옅은 그림자는 마카베가 다시 고개를 들어 연인 히사코의 자전거의 페달을 밟자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며 꼬리를 끌며 그를 따라왔다. 마카베가 긴 방황을 거친 후에 비로서 그림자를 만난 것처럼 앞으로의 삶은 행복의 빛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그의 그림자는 빛을 따라 묵묵히 그의 삶을 지지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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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백제 여행 - 황윤 역사 여행 에세이, 개정증보판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1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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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커녕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조차 일정부분 멈추어버린 지금, 덕후 출신 역사학자를 따라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를 보면서 집콕 여행을 즐기는 기분도 괜찮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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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2-10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잭와일드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항상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잭와일드 2020-12-11 03:3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서재의 달인과 북플 마니아 되신걸 축하 드립니다. 즐거운 연말 보내시길 빕니다.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 - 개정증보판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2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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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커녕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조차 일정부분 멈추어버린 지금, 덕후 출신 역사학자를 따라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를 보면서 집콕 여행을 즐기는 기분도 괜찮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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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커피는 단순 기호식품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자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0년간 커피 소비는 연평균 2.1%씩 증가했고, 매일 전 세계적으로 20억 잔의 커피가 소비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도 전 세계 여느 나라 못지않다. 2018년 기준 국내 20세 이상 인구의 연간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약 353잔으로 세계 인구 연간 1인당 소비량 132잔의 3배에 달하며, 원두 소비량도 약 15만톤으로 세계 소비량의 2.2%, 세계 6위 규모다.



하지만 커피는 쏟아지는 관심만큼이나 논란도 많은 음료다. 먼저 생산과 유통구조가 불투명하고 비대칭적이다. 커피 시장에선 높은 질의 스페셜티 커피가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이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그만큼 높아지지 않는다. 커피 시장은 200억 달러를 넘어 섰지만, 생산자들의 임금은 아직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 커피는 그 효능에 있어서도 논란이 있다. 커피는 유방암 등 암이나 불면증, 고혈압, 위염 등 위장관계 질환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최근에는 오히려 암을 예방하거나 뼈 건강에 이롭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커피의 카페인 성분은 불면증과 비만, 위장관계질환을 유발하고, 임신 가능성도 낮출 우려가 있다고 한다. 또 로스팅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유발되며, 어린이의 뼈 성장을 방해한다는 연구도 있다.



<스위스 카페>를 읽으며 ‘커피’라는 소재가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안락사’라는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락사 (安樂死)’를 뜻하는 영단어 ‘euthanasia’는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죽음’을 의미한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삶의 양보다는 질을 중시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고통 받으며 삶의 질에 제한을 받는 시한부 환자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신의 생명 보존보다는 '질 높은 삶'을 더 높은 가치로 여긴다. 질 높은 삶에는 질 높은 죽음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이유에서든 존중받아야 할 한 생명을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당장의 고통만으로 쉽게 포기해선 안된다는 생명윤리 중시자들의 주장도 있다. 죽음이 용인되는 범위가 늘어난다면 결국 사정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누군가의 죽음이 외면받는 결과가 초래되리라는 것이다. 이들은 생명은 경제논리로 설명할 수 없으며, 국가 차원의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소설에는 자발적 안락사를 지원하는 스위스의 국제단체 ‘디그니타스 (Dignitas)’가 등장한다. 스위스에서는 삶을 끝내는 방식과 시기 역시 자기결정권에 포함된다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의사가 약을 직접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금지하고 있지만, 조력자살을 포함하는 소극적 안락사는 허용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존엄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018년 2월부터 연명치료 중단 자체는 합법화되었다.



사실 안락사를 둘러싼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안락사를 허용하기 위한 제반 환경이나 조건을 살펴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에서도 엄격한 조건하에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를 허가하고 있다. 이때 환자 고통의 의미는 경제적 부담, 차도가 보이지 않는 치료로 인한 희망고문, 그리고 환자와 가족의 정신 및 육체의 괴로움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체계화된 사회 시스템과 이를 검증하기 위한 의료 및 확인 절차다. 현재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들이 공공의료 시스템이나 완화의료제도가 매우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개인의 자기결정권 행사는 공공의료나 완화의료제도의 혜택을 충분히 보장 받은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에 허용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스위스 카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지막을 맞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최근에는 연명의료의 발달로 마지막의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마지막을 대비해야 하는지, ‘아름다운 마지막’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스위스 카페 – 브릿G (brit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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