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커피는 단순 기호식품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자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10년간 커피 소비는 연평균 2.1%씩 증가했고, 매일 전 세계적으로 20억 잔의 커피가 소비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도 전 세계 여느 나라 못지않다. 2018년 기준 국내 20세 이상 인구의 연간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약 353잔으로 세계 인구 연간 1인당 소비량 132잔의 3배에 달하며, 원두 소비량도 약 15만톤으로 세계 소비량의 2.2%, 세계 6위 규모다.
하지만 커피는 쏟아지는 관심만큼이나 논란도 많은 음료다. 먼저 생산과 유통구조가 불투명하고 비대칭적이다. 커피 시장에선 높은 질의 스페셜티 커피가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이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은 그만큼 높아지지 않는다. 커피 시장은 200억 달러를 넘어 섰지만, 생산자들의 임금은 아직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 커피는 그 효능에 있어서도 논란이 있다. 커피는 유방암 등 암이나 불면증, 고혈압, 위염 등 위장관계 질환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최근에는 오히려 암을 예방하거나 뼈 건강에 이롭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커피의 카페인 성분은 불면증과 비만, 위장관계질환을 유발하고, 임신 가능성도 낮출 우려가 있다고 한다. 또 로스팅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유발되며, 어린이의 뼈 성장을 방해한다는 연구도 있다.
<스위스 카페>를 읽으며 ‘커피’라는 소재가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안락사’라는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락사 (安樂死)’를 뜻하는 영단어 ‘euthanasia’는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죽음’을 의미한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삶의 양보다는 질을 중시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고통 받으며 삶의 질에 제한을 받는 시한부 환자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신의 생명 보존보다는 '질 높은 삶'을 더 높은 가치로 여긴다. 질 높은 삶에는 질 높은 죽음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이유에서든 존중받아야 할 한 생명을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당장의 고통만으로 쉽게 포기해선 안된다는 생명윤리 중시자들의 주장도 있다. 죽음이 용인되는 범위가 늘어난다면 결국 사정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누군가의 죽음이 외면받는 결과가 초래되리라는 것이다. 이들은 생명은 경제논리로 설명할 수 없으며, 국가 차원의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소설에는 자발적 안락사를 지원하는 스위스의 국제단체 ‘디그니타스 (Dignitas)’가 등장한다. 스위스에서는 삶을 끝내는 방식과 시기 역시 자기결정권에 포함된다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의사가 약을 직접 주입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금지하고 있지만, 조력자살을 포함하는 소극적 안락사는 허용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존엄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018년 2월부터 연명치료 중단 자체는 합법화되었다.
사실 안락사를 둘러싼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안락사를 허용하기 위한 제반 환경이나 조건을 살펴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에서도 엄격한 조건하에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를 허가하고 있다. 이때 환자 고통의 의미는 경제적 부담, 차도가 보이지 않는 치료로 인한 희망고문, 그리고 환자와 가족의 정신 및 육체의 괴로움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체계화된 사회 시스템과 이를 검증하기 위한 의료 및 확인 절차다. 현재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들이 공공의료 시스템이나 완화의료제도가 매우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개인의 자기결정권 행사는 공공의료나 완화의료제도의 혜택을 충분히 보장 받은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에 허용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스위스 카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지막을 맞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최근에는 연명의료의 발달로 마지막의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마지막을 대비해야 하는지, ‘아름다운 마지막’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스위스 카페 – 브릿G (britg.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