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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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을 읽고 나서 언제나 머릿속에 남는 건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다.“ - <64> p. 691, 옮긴이의 말 에서 -



‘가장 아름다운 미스터리‘, ‘휴먼 미스테리의 정점이라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신작 <빛의 현관>의 홍보 문구를 보고 어쩌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이나휴먼과 같은 수사들이 추리 미스터리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그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빛의 현관>을 접하기 이전일지라도 이러한 홍보문구에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의 생존을 위해 벌어지는 경찰 조직내 갈등과 암투를 그린 그의 대표작 <64> 조차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가슴에 따뜻한 온기와 여운이 남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빛의 현관>의 홍보문구를 보고 나는 '아름다운' 이나 '휴먼'이라는 문구 보다 '가장''정점'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가슴이 설렜다. 소설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휴먼 미스테리의 대가가 보여주는 그 정점이란 어떤 것일지 그 생각만으로 이번 신작소설에 기대를 걸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오랜 팬으로서 대부분의 출간작을 읽어왔지만, 작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한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내가 <빛의 현관>의 출간 전부터 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의 신작에 대한 정보를 갈구한 이유이다. 그러던 중인생이라는 여정에서 길을 잃은 이에게 내리쬐는 한줄기 빛과 같은 이야기라는 작가의 인터뷰를 보게 된 순간 나는 이 소설이 작가의 커리어 뿐만 아니라 독자인 나에게 있어서도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일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또한, 신종 전염병으로 전세계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 시기에 휴먼 미스터리의 대가의한줄기 빛과 같은 위로란 어떤 것일까 너무나도 궁금했다.



여러 사건과 갈등들이 밀도 높게 중첩되면서 서서히 장대한 서사의 결말을 향해 수렴하는 <64>를 비롯한 그의 전작과는 달리 <빛의 현관>의 서사구조는 비교적 단순하게 전개된다. 소설은 크게 주인공인 건축가 아오세가 사라진 건축주에 관한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것 그리고 아오세가 소속된 건축사무소가 설계 공모전을 준비하는 것과 관련된 두 가지 사건을 다룬다. 아오세는 전적으로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라는 요청을 받고 잊고 지내왔던 건축가로서의 열정을 불태우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걸작 'Y 주택'을 완성한다. 건축계에서 신앙처럼 떠받드는 '남향'에서 벗어난 이 '북향'의 집에 대해 의뢰인은 찬사를 보냈고, 건축업계에서도 '일본을 대표하는 주택'으로 선정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하지만 주택의 완공 후 의뢰인은 연락이 닿지 않고, 직접 찾아가본 'Y 주택'에는 사람이 산 흔적도 전혀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의뢰인 가족의 행방을 파헤치는 것이 소설의 주축이다. 또 다른 한 축은 소설의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난 후 아오세가 속한 건축사무소가 설계공모전에 입상하기 위해 진심을 다해 준비해나가는 과정이다. 건축 설계 공모를 두고 각 건축사무소가 벌이는 설계전쟁은 소설의 후반부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너한테 가장 아름다운 건 뭐지?"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면 바로 답이 튀어나오겠냐고 대꾸하려는데, 어디선가 머릿속을 향해 답이 던져졌다. 유일하고 절대적인 아름다움.

"노스라이트"

"북쪽 빛이라... 기법이 아니었군. Y 주택은." (p. 363)



당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을 무엇인가? 이는 주인공 아오세의 친구이자 아오세가 속한 건축사무소의 소장인 오카지마가 아오세에게 던진 질문인 동시에 소설의 주제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또한,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인생이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위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이를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우리가 꿈꾸는 삶에서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집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와 같은 노랫말처럼 저마다 그리는 이상향에는 저마다의 취향과 가치관이 투영된이 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여행을 꿈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착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는 땅에 뿌리를 내리겠노라 다짐하는 이도, 땅에 작별을 고하고 고층 건물에 여생을 맡기는 이도.“ (p. 321)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 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픔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절들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건축을 하다 보면 안다. 인간이 집에 가진 고집들은 단순한 취미나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과 숨겨진 욕구가 드러난다. 그것은 미래 지향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 내역이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p. 30)



아오세는 지나온 삶 동안 아버지의 직업적 특성에 따라 여러 곳을 이주하며 살았다. 떠돌이의 삶에 정주(定住)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인생의 기로에 섰을 때, 혹은 도무지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절로 떠오르는 곳을 고향이라 부른다면 아오세에겐 고향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남은 건 빛의 기억 뿐이다. 부드러운 빛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갈망이 솟아오를 때가 있다.” (p. 33)



아버지를 따라 떠돌던 건설 현장의 숙소에는 희한하게도 북쪽 벽에 큰 창이 나 있었다. 새어 들어오는 것도,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아닌, 왠지 조심스레 실내를 감싸 안는 부드러운 북쪽의 빛. 동쪽 빛의 총명함이나 남쪽 빛의 발랄함과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듯 고요한 노스라이트 (north light)는 추후 아오세의 삶에서 행복의 이정표가 된다. 한동안 아오세가 꿈꾸는 집은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또 이별의 아픔을 거치면서 진정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후 아오세가 꿈꾸는 집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온 삶과 가치관이 반영된 집으로 변해간다.



내가 살고 싶은 집. 눈을 깜빡이는 찰나에 '목조 주택'이 보였다. 콘크리트 외벽은 침묵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온존해온 계획, 햇살과 그늘이 어우러져 세월을 새기는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은 머릿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을 새기는 집'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월에 지고 만 것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힘없이 스러져, 고개를 들려는 기척조차 없었다.” (p. 40)



빛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아오세에게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빛의 현관'은 행복한 추억으로 안내하는 문,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받는 집이다. 이는 자신의 삶과 가치관이 투영된 집이고, 또한 동시에 아내 유카리의 소망과 가치관이 반영된 집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선호되는 남향이 아닌 북향으로 지어진 Y 주택은 보편적인 행복의 기준을 지향하는 집은 아니다.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르고 저마다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듯이 Y 주택은 아오세 가족만의 삶과 이야기, 행복에 대한 주관적 기준이 담긴 집이다.



노스라이트란 '의식 아래의 행복'을 암시하는 은유입니다. 마음의 안녕에 바탕이 되는 것. 영혼의 안전망이라고도 할 수 있죠. 남과 비교하거나, 사회의 시선에 좋고 나쁨에 좌우되는 그런 상대적인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보이지 않게 되는, 어떻게 발견해야 하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되는 소박한 감정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 요코야마 히데오 인터뷰 中에서 -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상실과 결핍의 과정을 겪으며 천천히 소멸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채 조용히 빛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하나의 섬이 아닐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슬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를 건넨다.



채운다. 부족한 것을 채운다.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것을 하염없이 채운다.” (p. 344)



우리는 수많은 상실의 경험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술이란채워도 채워도 여전히 부족한 것을 하염없이 채워 나가는 끝없는 작업이라는 작중 화가 후지미야 하루코의 신조와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자신의 마음을 채우는 것이라는 전설적 건축가 타우트의 철학은 이러한 우리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 Y 주택이 아오세의 가족의 새로운 배경이 되고, 추억이 되고, 기쁨의 원천이 되길 빈다. 아오세의 가족이 Y 주택 안에서 찬란하고 고요한 노스라이트를 받으며, 먼 훗날 Y 주택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또 다른 새로운 추억들을 채워나갔으면 좋겠다. 또한,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이 소설을 읽고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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