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착취의 지옥도 - 합법적인 착복의 세계와 떼인 돈이 흐르는 곳
남보라.박주희.전혼잎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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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사전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나도 노동자로서 살아온 세월이 꽤나 길다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노동자임을 인지하고 노동자에게 행해지는 차별과 불합리에 대해 의식화한 기간은 생각 보다 짧았던 것 같다. 그러한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 중 하나는 잡지 <꿀잠>을 만난 것이다. <꿀잠> 10개 언론사의 기자 20명의 재능기부로 탄생한 비정규직을 위한 특별잡지다. 지상에서 가장 따뜻한 잡지라는 슬로건처럼 노동자들의 삶과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잡지 판매수익금 또한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해 사용한다고 알고 있는데, 아쉽게도 현재는 발간되지 않고 있다.



내가 <꿀잠>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건 가벼운 마음으로 첫 페이지를 넘겼을 때였다. 첫 페이지는 잡지 속 화려한 광고에 익숙해진 내게 어쩌면 무심코 넘겨질 페이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잘 차려입은 여성 모델들의 모습은 충분히 눈길을 끌만한 것이었지만, 별다른 특별한 것이 없는 광고라고 생각했고, 광고의 대상 또한 내 관심 분야가 아닌 여성복이었기 때문이다. 페이지를 넘기려는 손가락을 주저하게 만들었던 건 여성모델의 사진 아래에 남겨진 글이었다.



아름다워요. 또렷하고 밝게 빛납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 어땠나요?
어둡군요. 흐릿합니다. 누구인지, 왜 거기에 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 청소를 하고 계셨군요. 깨끗해야 하는 것을 닦느라 더러워진
당신 손안의 걸레를 이제야 보았습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 어땠나요?



문구를 읽고 나서 다시 사진을 보았다. 사진은 스튜디오에서 광고를 위해 촬영된 것이 아닌 LED조명으로 환하게 밝혀진 대형 옥외광고물을 찍은 것이었다. 그리고 사진 속에는 문구를 보고나서야 비로소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모델의 밝은 미소를 부각시켜주는 조명판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 청소 아주머니가 걸레로 닦고 있는 모습이 불빛에 비춰진 실루엣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는 이윤추구를 위해 사람들의 눈을 잡아끌며 상냥한 인사를 건네고 있는 반면 사회의 버팀목인 노동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는 밝은 곳이 잘 보이지만 밝은 조명 안에서 바라보면 어두운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특정부분만을 강조하는 스포트라이트로 인해 땀의 눈물과 소중함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노동으로 일군 삶이야말로 자랑스럽고 떳떳해야 하고, 그 땀의 웃음이 밝고 아름답게 빛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노동이 웃음이 되는 세상, 노동이 보람이 되는 세상을 간절하게 꿈꾼다는 잡지 <꿀잠>의 존재이유와 지향점을 나는 첫 페이지만으로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이 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잡지 <꿀잠>은 내게 '당신의 노동은 안녕한가?'라고 묻고 있었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간접고용 노동자의 급여가 유난히 작은 이유는 단 한가지 차이 때문이다. 노동력을 사용하는 사람과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해 있다는 것. 그게 이들을 비정규직 중에서도 제일 밑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누군가 개입하는 순간, 착취는 필연적이다.” (P. 54)



<중간착취의 지옥도> 읽으며, <꿀잠>의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의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의 지위에 놓여있는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차별과 부당 대우 등의 사회 부조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비정규직 중에서도 약자로 분류되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346만명이나 존재하고 있고, 이들 중 대다수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의 임금을 착취당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니 이 책을 읽고 그 모든 걸 알게 되었다는 건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 기획업무를 담당하며 회사의 고용형태 중파견이나용역이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었고, 회사가 영위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 중 간접고용이 많이 발생하는 콜센터도 있었기 때문에 관심을 조금만 기울였다면 알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활 반경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파견용역의 차이가 무엇인지, 간접고용과 중간착취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떤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지, 간접고용이 많이 발생하는 사업영역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사회가 주목하는 대상들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 기꺼이 어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낮추며 차별과 착취를 견디고 있는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있었음을, 또한 그들이 불안과 분노, 체념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신음해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엄습하는 불안감을 애써 떨쳐내며 떨리는 목소리를 내어 왔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중간착취의 지옥도>에는 간접고용에 대한 기발하다 못해 기괴하고 치졸하게까지 느껴지는 수많은 중간착취사례와 방법이 등장한다. 또한 이에 대한 의미 있는 문제제기와 이를 규제하기 위한 노력들도 같이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렇게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착취에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담하기까지 하다.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직접고용관계를 원칙으로 설계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여전히 1958년 제정 당시 과거의 노동시장에 머물러 있다. 용역업체도 파견업체도 없던 그때, 당연히 간접고용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의 법은 당연하게도 오늘날 실재하는 346만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파견법은 제정된 당시부터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1998 IMF 구제금융으로 경제가 휘청거리던시절노동 시장 유연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법원에서 원청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라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지만, 이 판결 이후 원청은 처우 개선에 대한 노력 대신 불법 파견의 근거가 될 만한 일을 없애기 위해서만 노력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간접고용 개선을 위한 판결은 이렇게불법 파견 판결의 역설로 왜곡된 채 현실화되어 나타났다. 또한, 건설업에서는 임금직접지급제가 법제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똥떼기라 불리는 중간착취는 여전히 오히려 더 진화한 형태로 자행되고 있다.



이쯤되면 국회와 정부의 움직임이 궁금해지지 않을수 없다. <중간착취의 지옥도>에서 언급된 중간착취에 대한 국회와 정부의 대응을 살펴보자. 2000 (16대 국회, 파견법 시행이후 열린 첫 국회)부터 21 2월 말까지 21년동안 국회에서 발의된 간접고용 관련 법안은 91건이었다. 이는 21년간 국회에서 발의된 전체 법안인 7 9,216건 중 0.11%에 불과하다. 이는 간접고용에 대한 국회의 관심도를 나타내주는 지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처참한 건 91건의 법안 중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진 것은 단 2 (2%)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2건 마저도 파견 노동자의 차별 개선에 대한 것으로, 중간착취와 관련된 법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더 아프게 느껴진 건 이러한 현실을 방조하고 가속화시킨 것이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 당국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1998년 간접고용의 문을 활짝 여는 파견법을 제정했고, 그 후 23년 동안 정부는 총 7건의 파견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중 3건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부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도 있었지만, 대부분 노동자 보다는 파견업체에 유리한 규제완화에 관한 법안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국정과제 1로 추진했지만,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정규직 일자리는 감소하는 등 고용의 질은 오히려 더 퇴보하는 모양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간접고용의 폐해를 깊숙히 들여다보고 취재하여 기사화하였고, 이에 그치지 않고 기자라는 신분으로 파견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와 정부를 대상으로 사상 최유의 입법 청원까지 추진한 한국일보 소속 기자 남보라, 박주희, 전혼잎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희망과 불안, 체념 사이를 오가는 나를 희망 쪽으로 이끄는 사람은 불안에 발을 딛고 선 그였다.” (P. 262)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현실에서 부조리가 자행되고 있고, 그것이 명백하게 부당한 것임을 누구나 쉽게 인정하는데도 불구하고, ‘노사갈등현장혼란이 발생할 우려 등의 논리를 내세워 이미 갈등과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이들을 애써 외면한 채개선이나대안이 아닌검토라는 단어로 결론을 맺는 국회와 정부의 답변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희망은 무엇일까?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은 자신은 물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아직 놓지 않고 있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은타인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타인에 대한 따뜻한 관심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간접고용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중간착취는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존재할 겁니다.“ (P. 174)



타인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우리가 내딪어야 할 첫 걸음은 간접고용 실태에 대한 조사라고 생각한다. 조사의 목적은 중간착취의 형태나 범위를 파악하여 이를 시정하기 위한 것 보다는 간접고용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원인파악과 지속적으로 유지될 필요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검토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간접고용이 존재한다면 중간착취는 어떠한 형태로든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간착취 문제해결의 핵심은 간접고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 되어야 한다. 최소한 정부 공공부문에서라도 간접고용의 현황을 파악하여 이것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업무인지, 사업진행에 있어 필수적인 것인지 등을 검토하여 먼저 간접고용을 최소화시키는 방안을 구체화해나가면 어떨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해본다. 타인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한 작지만 의미있는 발걸음과 끊임없는 목소리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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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0-08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잭와일드 2021-10-08 20: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0-08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잭와일드 2021-10-08 20: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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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은 정유정 작가가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으로 이어지는 악의 3부작을 마무리하고, 인간의 내밀한 욕망이란 새로운 화두를 던진 욕망 3부작의 문을 여는 소설이다. <완전한 행복>이란 제목처럼 소설은 완전한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는 방식을 선택한 한 나르시시스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에서 신유나는 행복은 어떠한 결함도 결핍도 없는 가족의 무결, 즉 완전성을 이룬 상태라고 확신하고,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한다.

 



삶은 인간의 예측 가능한 영역을 벗어나서 자리해 있다. 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것? 우리는 삶에 대한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얻기 위해 간절히 매달리지만, 진실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 언저리에서 표류하며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별, 죽음과 같은 억센 슬픔의 순간들을 겪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실과 결핍의 경험들도 치유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곧 일상이 되어 인생의 한 부분으로 녹아든다.

 



삶을 완전히 통제하여 온전히 행복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아니 행복을 논하기 전에 우리의 삶 속에서 완벽히 통제가 가능한 영역이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날 일을 완벽히 통제하고 선택하지 못한다. 다만 이미 발생하여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에 대해 대처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저마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와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와 신념들이 결국 우리가 삶을 바대하는 자세가 되고, 행복에 대한 가치를 만드는 것일 것이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 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거.”

 



<완전한 행복>에서 차은호와 신유나는 부부이지만, 완전히 대비되는 행복관을 가지고 있다. 행복을 이루는 공식은 덧셈에 가까울까? 뺄샘에 가까울까? 어떤 것이 더 나은 행복관인지에 대한 질문은 의미가 없다. 행복이라는 가치 자체가 상대적인 것이고,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지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지만, 행복이라는 지향점을 바라보는 시각은 누구나 다르고, 그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선택도 누구나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신유나는 행복에 도달하지 못했을까?‘는 질문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반달늪에 뭐가 있니?”

가보시면 알아요.”

길에서 벗어나면 안돼요.” (p. 41)




소설에서 반달늪은 주요 사건들이 발생하는 장소이자 소설 전개상의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반달늪으로 가는 길은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반달늪은 지름길이나, 샛길로 가지 못하고, 가는 과정에서도 잠깐이라도 길을 벗어나 다른 장소를 향해도 안된다. 이는 불행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임을 확신하는 신유나의 잘못된 행복관에 대한 상징이다. 또한, ’반달늪이라는 이름은 보름달처럼 충만한 상태가 되지 못하고 항상 상실과 결핍, 파멸이 예정되어 있는 신유나의 자기애에 대한 집착과 행복에 대한 강박의 결과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신유나의 행복관은 과정이 아닌 결과에만 주목한다. 삶이라는 속성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행복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가깝다. 그 모든 변수를 통제하고 반달늪에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신조차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반쪽짜리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무시했던 과정들이 자신은 물론 자신 주변의 삶들까지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욕망, 행복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고, 종국에는 타인의 삶을 파괴하게 만들 것이다.

 



습지에 가실 거예요?”

어쩌면 그래야 할지도 몰라.”

그럼 샛길로 가야 해요. 샛길은 제가 잘 알아요.” (p. 494)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은 지유는 반달늪을 원래 부르던대로 부르지 않고 습지로 부른다. 또한, 습지로 가는 것도 모두에게 알려진 길 보다 샛길로 가길 권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죽음을 예정하고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과 그러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하는 것은 존재와 소멸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진지하게 탐구해나가는 것,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고 타인과의 온도를 맞춰 나가는 것, 또 그러한 과정에서 나름의 대안과 답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자세, 행복을 맞이하는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모든 사람에게 있지만, 행복을 추구하면서 또는 행복의 기준이나 지향점, 행복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 등으로 인해 우리는 타인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수 있고, 결국 타인의 행복에 일정부분 책임을 갖게 된다는 것을 <완전한 행복>은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거.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 (p.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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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읽기 - 역사가가 찾은 16가지 단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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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읽기>의 저자는 역사학자 설혜심 교수이다. 설혜심 교수는 역사학자이지만 인간의 삶과 관련된 친숙한 주제들을 학자로서 새롭게 풀어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내가 설혜심 교수의 저작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소비의 역사>를 접하면서부터다. <소비의 역사>는 소비라는 하나의 테마를 통해서 역사의 발전과정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E.H. Carr의 말처럼 과거를 다루고 있지만 결코 오늘날 직면한 문제들과 동 떨어 있지 않다는 걸 독자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책의 접근방식이 인상 깊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비라는 주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조망함으로써 역사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깊이 스며 있는지 느끼게 해준 것과 마찬가지로 설혜심 교수는 <애거사 크리스티 읽기>에서도 추리수설의 여제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통해서 역사를 되돌아보는 흥미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소비의 역사>에서 소비자 운동의 발생이나 바이 아메리칸 캠페인의 역사, 윤리적 소비의 기원 등을 살펴봄으로서 소비의 역사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저항과 해방 연대의 주제를 다룬 것처럼 본작 <애거사 크리스티 읽기>에서는 추리소설 상에서 역사가만이 감지할 수 있는 지점들을 세밀히 포착해내어 마치 독자들이 추리소설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보다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서 애거사 크리스티가 미처 독자들에게 전달하지 못한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대신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도 하고 잇다.

 



<애거사 크리스티 읽기>는 갓 추리소설에 입문한 초심자부터 웬만한 추리소설계의 명작들을 섭렵한 매니아층에 이르기까지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일컬어지는 크리스티와 그의 작품들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북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역사학자로서의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 정도 주관적인 평가가 들어간 면도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크리스티의 모든 작품들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면서 추리소설의 역사에서 그녀와 그녀의 작품들이 위치하는 지점을 설명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시도해보지 못한 영역이고 높이 평가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애거사 크리스티 읽기>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팬들은 물론이고, 역사와 영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 또한 순수하게 추리소설에 열광하는 팬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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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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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호텔의 유령>"이것은 소설이다. 소설에 불과하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스쳐 지나친 이 문장은 소설을 읽고 나서 "이것은 너와 나, 우리의 이야기. , 삶에 관한 이야기다."라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삶은 예측 불가능한 정글과도 같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것?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악의와 원한에 대한 두려움이 상존하는 <대불호텔의 유령>의 등장인물들과 다를 바 없다. 정글은 인간의 인식의 영역을 넘어서는 거대한 세계이자 인간을 구속하고 제약하는 현실이다. 인간은 삶과 죽음을 모두 포용하고 있는 정글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저마다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운명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안정된 삶을 원하지만 결코 각자가 추구하는 안심 (安心)에 이르지 못한 채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대불호텔의 인물들처럼 말이다.

 


<대불호텔의 유령>3부로 구성된 액자식 소설이다. 1부는 유년시절에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악의에 노출되어 고통스러워하는 소설가 가 화자가 되어 과거 대불호텔에 얽힌 이야기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2부는 소설가인 1950년대 인천 대불호텔에서 일어난 미스테리한 일들을 박지운에게 전해 듣고, 그 당시 인물인 지영현의 시각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낸 것이다. 3부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소설가인 와 주변인물들이 각자가 가진 진실의 단면을 통해 그 시절 대불호텔에서 벌어진 일들의 실체에 대해 접근해가는 이야기다. 액자식 구성이지만 1부와 3부는 단순히 테두리 이야기로서만 기능하고 있지 않는다. 1부는 이야기의 서두를 깔면서 2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기괴한 이야기의 힘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고, 3부는 흩어져 있는 진실의 조각들을 껴 맞추며 2부의 이야기를 새롭게 조망한다.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는 또 하나는 이야기의 일정부분이 실존하는 역사적 사실과 장소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불호텔은 실존했던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고, 호텔에서 중식당으로 또 월세집으로 변해갔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또한, 등장인물도 실제 기록에 근거하고 있다. 작가는 실제 역사적 사실과 상상을 통해 구현한 허구를 하나의 이야기로 뒤섞어 놓았다. 이렇게 실존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무대장치 위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화자들은 혼돈을 가속화시킨다. 소설가인 는 기억의 잔상과 착오로 인한 사례를 늘어놓으며 자신으로부터 발화된 이야기는 자신이 겪은 일이라고 그 자신도 확신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또한, 2부의 이야기는 사실여부는 차치하고 어디까지가 박지운의 직접 체험이고 어디까지가 전해들은 것인지 또한, ’의 자의적 해석이 반영된 부분은 어디까지인지 조차 불분명하다. 이러한 무대장치와 이야기 전개방식은 대불호텔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한층 더 괴기스럽고 신비롭게 만든다.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죽음을 예정하고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과 그러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하는 것은 존재와 소멸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악의원한이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삶의 우연성을 상징한다면 나는 내 배의 선장이라는 표현은 삶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와 의지를 상징한다. “너 때문에. 그것 때문에.” 우리는 이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될까? 아니면 이 말을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삶을 살게 될까?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도달하고자 했던, 불분명한 진실의 경계를 너머 존재하는 한조각의 진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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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9-10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잭와일드 2021-09-10 21: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오랜만이라 더 기쁘네요^^

이하라 2021-09-10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잭와일드 2021-09-10 21:41   좋아요 0 | URL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금요일 저녁 되세요^^

초딩 2021-09-11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잭와일드 2021-09-11 14:15   좋아요 0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9-11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잭와일드 2021-09-12 09: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김홍모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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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중인 고통과 아픔, 부조리...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Remember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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