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Chemistry.
알라딘 중고 저렴하게 나와 있어서 전에 사뒀던 책이다.
사두면 이렇게, 어쨌든 시간이 되는 한은 꺼내보게 된다. 아 화학! 화학책!
화학이 제목인 소설책! 그거라도!
작가는 하버드에서 화학 전공으로 학부. 그러고 나서 보스턴 대학(BU)에서 화학은 아니고 공공보건? 하튼 이학 쪽에서 석사를 하고 문예창작 석사도 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보스턴의 한 대학에서 화학과 박사과정 여학생. 중국계 미국인. 학업은 지지부진, 동거하는 (미국인 백인) 남친과 사이도 막다른 길의 끝으로 가고 있고, 자기를 자기같은 (분노가 축적되고 조용히, 꾸준히 자기파괴적인) 사람이 되게 한 결정적인 인물들(부모)와의 갈등은 영원회귀. 그녀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녀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있게 될 것인가.
자전적 소설인 건 분명한데
거의 회고록 수준으로 자전적인 건 아닌 거 같다.
소설에서 주인공의 남친이 유일하게 이름이 있는 인물 (에릭). 주인공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베프가 있는데 베프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다 (내내 변함없이 "the best friend"로).
주인공의 실험실 동료, "랩 메이트"가 있는데 마찬가지 (내내 변함없이 "the lab mate").
심지어 에릭과 주인공이 같이 키우는 개도 내내 변함없이 "the dog."
작가 생년이 88-89년 정도로 짐작되는데 소설은 17년엔가 나왔으니 20대 중후반의 작품.
소설이 시작하고 어느 정도는 20대 작가의 제한된 관심, 제한된 시야라 느껴지는 면모가 있다.
남친. 공부. 가족(이 주는 관심이자 위협). 그게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의 바로, 남 얘기가 아니게 된다. 나를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아니 89년생이면 거의 (거어어어어어어어어의. 라고 한참 말합시다) 내 자식급 아니냐. 내 자식 세대에 속하는 작가가 자기 세대를 얘기하는데 내가 내 얘기로 읽으면 노망 아니냐.
그러니까. 과연 소설은 무얼 할 수 있는지.
주인공은 이민 1.5세대다. 주인공의 부모는 중국, 상해에서 만나 결혼했고 주인공을 낳고 나서 미국으로 왔다. 주인공의 모친은 상해의 유력한 집안 딸. 밖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앞을 막고 "오 영화 배우 같다, 오드리 헵번 같다!" 감탄했던 미녀. ㅋㅋㅋㅋㅋㅋ (미녀, 이 말 좀 웃김). 부친은 개천용. 부와 모 인물 각각,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가 한편 강한 기시감 들게 진부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 아주 특이하고 재미있고, 독자가 소설에서 만나는 매력적이거나 흥미로운 (잊기 힘든) 인물들이 따로 모여 살고 있는 우주가 있다면 당장 거기 입주하실 만한 분들이다.
중국에서 주인공이 아기이던 시절. 부친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살고 싶어서 미국 공대 대학원에 무수한 입학 원서를 내는데 단 하나 입학허가도 받지 못하는 세월을 3년쯤 보낸다. 그의 영어는 형편없었다. 그러나 그의 수학은 독보적이었고 그는 그 점을 호소했다. 마침내 한 교수가 입학허가를 주었고 그 교수는 그가 졸업할 때 다음과 같이 감탄한다. "그는 16명의 가장 성실한 대학원생을 다 합한 만큼의 일을 혼자 했어."
어린 시절. 주인공의 부모는 자식을 불행하게 만드는 법을 알던 이들이었다. 야단맞을 짓을 하면 자기 방으로 보내고 혼자 있게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식이 바로 옆에 있어도 3인칭으로 부르면서 자식의 부족함을 같이 탐구했다. 자식을 투명인간화했다. 자식이 어떤 말을 하든 들리지 않는 척했다. 그러나 그건 중국어로 말할 때이고 영어로 말대꾸 하면, 부모는 폭발했다. "내 아버지를 그렇게 격분케 한 게 영어였을까? 아니면 내 버릇없음이었을까? (영어로 말대꾸하면) 바로 그의 손이 내 얼굴로 날아왔다."
이런 저런 디테일들이 갑자기, 무엇인가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들 기억하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