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담긴 설교 - 21세기설교 1
워렌 W. 위어스비 지음 / 요단출판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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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학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근래에 읽은 설교에 관한 책 중에 이처럼 재미있고, 알차고, 상상력과 영감을 자아낸 책은 이 책이 으뜸이다. 돌아오는 주일날 오후에 바로 설교를 하게 되어서 그런지 나에게는 설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수도 없이 깨지게 되었다. 설교 본문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그 본문에 대한 적용을 이 책을 보면서 계속해서 하게 되어서 생각보다 진도는 천천히 나간 셈이다. 그러나 읽는 가운데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창조적이고, 영감있는 하나님의 생각이 떠오르고, 말씀 앞에 더욱 침잠할 수 있도록 도운 책이기에 더욱 고맙기도 하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상상력과 삶’으로 상상이 담긴 설교의 이론적이고 성서적인 근거를 다루고 있고, 2부는 ‘상상력과 성서적 설교’로서 실제적으로 설교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주제별, 특징별로 어떻게 준비해서 설교할 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대체로 요약은 줄이고, 각 부분 부분마다 느끼게 되고 생각하게 했던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중심으로 paper를 써 내려가고자 한다.  

저자는 자신의 논지가 1부에 나와 있기 때문에 2부보다 먼저 1부를 숙독해볼 것을 권한다. 그래서 소감도 1부는 매 장마다 하려한다.  1부 첫 장인 ‘두 설교가 이야기’에서는 후새와 아히도벨을 비교하면서, 그림 그리듯 말하고 그의 우뇌를 정복해서 원하던 결과를 얻어내었던 후새를 말한다. 그는 또한 ‘수도관 은유’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설교가 단순한 진리의 전달이라고만 생각했던 한계점들을 떠올리게 했다. 설교자의 생각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전부이고, 청중의 머릿속에 뭔가를 집어넣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새로운 시각과 도전을 열어주는 출발이었다. 그럼 뭐가 더 있는 가는 물음 말이다.

 '후새가 알았던 것: 사람’에서는 후새를 통해 사람에 대한 탐구의 중요성을 알게 하였고, 사람의 정신의 능력과 상상의 잠재력들을 다시금 알게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상상을 창조하셔서 우리와 교감하신다는 것과 성경을 증언하는 사람도 고대의 기록을 현대에 전할 때에 상상력이라는 가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후새가 알았던 것: 주변 세계’에서는 후새가 압살롬의 마음의 화랑에 그림을 걸어주었고, 그가 이미 알고 있는 세계를 통해 더 놀라운 것을 보게 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저의 ‘성화된 상상의 가치’는 참으로 상상의 중요성을 알게 해 주는 글이다.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깊은 묵상과 숙고는 창조적으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효과적인 전달임을 생각게 했다.

 후새가 알았던 것: 말’에서는 은유의 놀라움을 발견하였다. 은유란 서로 무관해 보이는 두 사물을 ‘말을 통해 운반하여’ 결합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는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은유는 언어가 작용하는 방식 자체이며, 의사소통 때 불가피하게 쓰고 있음을 알았다. 아, 은유는 필수적이고, 가장 친근한 접근이겠구나!

 ‘설교자여, 내게 얘기 하나 들려주시오’에서는 나단을 통해 뒤로 치는 영향력을 보게 되었다. 자기에게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서 그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듯 했었는데, 알고보니까 자신의 얘기였던 것을 알게 하는 것은 굉장한 은유의 힘임을 알게 되었다.

 ‘강단에 춤추는 해골, 좌석에 늘어진 송장’은 참 예리하게 우리의 설교의 한계점을 보게 해 주었다. 우리의 준비 없음과 영감 없음에 대한 탓을 청중에 완악함에 핑계대고 있지는 않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생활에 관한 진리가 그들의 상상에까지, 그래서 현실의 삶까지는 전혀 영향을 못 미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공감이 되었다. 청중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충고 라기 보다는 아는 것을 행할 힘이라고 했던 것처럼 그 의욕을 북돋아주고, 그들이 자유와 의지를 마음껏 발휘토록 불을 지펴줌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숨은 파괴자들’은 이 시대의 위험을 말한 장이다. ‘사실주의’의 위험성과 그것으로 인한 상상력 마비를 문제의 핵심으로 잡았다. 포르노와 TV의 가시적인 매체들은 그들의 생각의 틈을 막아버리고 단순히 정보와 즐거움을 제공하기에 그 순간에는 즐거워 보이나 나중에는 단순화되고, 노예와 같이 길들여지게 될 것이다. 저자는 그 대안으로 라디오에 대한 얘기를 하는 데, 나는 라디오와 책 둘 다 참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은유의 신비’에서는 연관짓기와 같은 다리 구실을 하는 은유의 능력을 말하고 있다. 은유는 성경의 세계와 청중의 현실과 연결시켜 주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주어서 풍부한 현실성과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 준다. 또한 상상력과 경험의 결합은 확실한 대안임을 알게 하였다. 성령께서 설교자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은유를 통해 듣게 되면 듣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산 진리로 번역하게 됨을 말하였다. 이러한 은유적 설교에 약간의 위험성은 본문을 드러내는 일에 설교자가 소홀히 할 수 있다는 것과 장점은 잘 드러내면서 은유로서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2부는 실제적인 내용이다. 이 부분은 1부의 내용이 너무 설교가 너무 상상 중심적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주관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깨뜨려 줄 수 있는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 본문에 충실하면서, 깊이 있게 성경을 연구하면서 거기에 상상을 더하는 시각이다. 본문에 대한 석의를 통해 기록될 당시에 의미를 숙고하게 해주며, 본문이 오늘의 교회와 나와 청중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숙고할 수 있도록 해준다.

‘본문이 무엇을,어떻게 말하는 가,처음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에서는 단어와 문맥에 대한 정통적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문학적인 장르와 수사학적인 표현 방식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말한다. 또한 원독자에게 무엇을 말하였는 가를 아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한국의 설교자들이 이런 석의 부분에 약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본문을 보는 힘, 문장과 글을 읽는 힘이 약한 것을 느낀다. 누군가 성경연구와 설교는 국어가 약해서 못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저자는 오늘의 교회의 의미를 파악해 보라는 역사신학의 문제도 거론하면서 본문에 대해 교회가 해석해온 역사를 보라고 말한다. 균형있는 관점이다.

‘본문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를 바라보라고 하는 데, 청중을 위한 설교준비, 성경연구가 많음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설교는 나의 인격을 통해 걸러진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인격을 관통하여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내가 말씀 앞에 해결된 경험과 부딪혀본 경험과 체험되고, 검증된 내용이라면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나도 참 이런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참 많음을 깨닫게 되었다.

 적용에 대한 관점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 전인격적인 변화(지,정,의)를 통해 말씀으로부터 배운 바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다. 감정적인 뜨거움을 추구하거나, 지적인 내용만을 제공받거나, 의지적인 결단은 하게끔 하는 데 내용이 없다거나 하면 모두 불완전한 적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인격적인 적용과 청중의 변화을 향한 설교에 목표를 두자.

실 예를 들어서 자르기와 합치기의 분석과 종합을 보여준 것은 내 설교에 적용해 보기에 유익했다. 무슨 질문들을 던져야 하고, 무엇을 삼가야(언어유희...) 된 다는 것을 알았다.

상상력과 인물설교, 장례식을 위한 위로 설교, 특별한 날을 위한 메시지의 설교의 구체적인 주제를 정하고, 상황과 현실에 따라 설교를 작성해가는 실제적 지침은 급하게는 필요하지 않더라도 두고두고 참고하면서 적용할 필요를 느꼈다. 장례설교는 아직 할 기회가 잘 없지 않은 가? 그러나 막상 장례설교를 부탁하면 막막했었는데, 좋은 지침이 되었다. 인물설교를 하려면 무엇보다 선입관과 편견을 버리고 진지한 탐구와 자료조사가 필요함을 알았다. 전 이해를 내려놓고 무엇보다 거룩한 상상력을 지닌 통찰력으로 예리하게 적용해가는 힘,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의 결실로 나타남을 알았다. 짧은 기간에, 수고 없이 통찰력은 생기지 않는다. 노련함 가운데 통찰은 존재함을 알고 있다.

 유머와 창조력은 내가 나름대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도 장담 못할 것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훈련시키지 않고 적용해나가지 않으면 금방 녹슨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생각들을 훈련하며 좌뇌(논리적 사고)와 우뇌(감성적 사고)를 골고루 훈련하는 것이 필요할 듯 싶다. 창조는 주의 깊은 관찰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알았다. 또한 휴식의 필요성, 재충전과 묵상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열심히 한 다음에 쉬어야 그 쉼이 의미를 더 크게 가질 것 또한 기억한다. 책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갖고, 어휘를 늘려갈 것을 다짐케 한 것은 이 책을 통한 또 하나의 큰 수확이다. 삶 속에서의 도전 정신, 시도해 보고자하는 실험정신이 내게 많이 있었는데 좋은 조언이 되었고 더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결국 이 책을 통해서 본문에 충실해야함과 본문에 대한 고정관념 속에서 딱딱한 진리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 성경적인 설교가 아님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달방식과 적용방식의 변화와 보완을 통해 거룩한 상상을 불러 일으켜서, 청중의 전인격적 변화와 삶에서의 열매들을 거두는 종으로 살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설교는 잘 안할 때는 몰랐는데 설교를 계속 준비하다가 보니까, 그리고 성경과 신학 또한 공부하면 할수록 더 궁금증이 많아지고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여 지는 것 같다.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쉽게 생각했던 교만한 태도를 벗어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의 영원한 숙제인 설교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 있는 접근으로 나의 지평을 넓혀주고, 도전을 준 이 책의 저자에게, 소개해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이젠 지속적인 적용과 도전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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