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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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베나는 16**년의 어느 날, 바베이도스를 향해 항해중인 크라이스트 더 킹호의 갑판에서 영국인 선원에게 강간당했다. 그 폭력의 산물이 바로 티투바다. 몇 주 뒤 브리지타운 항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임신한 상태였고, 아베나는 남자 두 명과 함께 다넬 데이비스라는 부유한 대농장주에게 팔려간다. 아베나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 다넬 데이비스는 그녀를 살 때 함께 구입했던 아샨티 출신 노예 야오에게 그녀를 줘버리고 다시는 농장에 발을 들이지 말 것을 명령한다. 야오의 극진한 사랑으로 안정을 찾아간 아베나. 딸인 티투바를 볼 때마다 자신이 폭행당했던 날의 악몽을 떠올리며 아이를 멀리하지만, 결국 모성과 야오의 사랑 덕분에 티투바에게 애정을 쏟게 된다. 하지만 다넬 데이비스에게 강간의 위협을 당한 아베나가 그를 칼로 상처입히게 되고, 결국 아베나는 처형당하며 야오 또한 다른 주인에게 팔려가는 도중 혀를 깨물어 자살한다. 혼자 남은 티투바는 만 아야라는 늙은 여인에게 거두어지면서 그녀로부터 다양한 식물들의 사용법과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소환하는 기술 등을 배운다.

 

만 아야가 죽고 다시 홀로 남은 티투바. 사람들은 만 아야의 능력을 이어받은 그녀를 두려운 존재로 여긴다. 이 사실에 충격받은 티투바는 동족들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예들을 찾아 병든 자들과 죽어가는 자들의 기력을 북돋아주기 시작한다. 어느 날 존 인디언이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자유롭던 생활을 청산한 채 그가 주인으로 모시는 수재나 앤디콧 밑으로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수재나는 티투바를 멸시하고, 그녀를 마녀로 오인하며 계략을 세운다. 수재나에게 복수하기 위해 작은 질병을 선사하지만, 그로 인해 수재나는 티투바와 존 인디언을, 푸르스름하고 차가운 눈동자에 뱀을 연상시키는 보스턴의 목사 새뮤얼 패리스에게 팔아버린다.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와 딸 벳시, 벳시의 사촌인 애비게일을 정성으로 돌보지만 어느 날부터 티투바를 보면 기절할 듯 소리지르며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아이들. 마녀로 몰려 감옥에 갇혀 처벌을 기다리는 티투바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마리즈 콩데는 스웨덴 한림원이 성 추문에 휩싸이게 되면서 수상자 선정이 불발로 끝났던 2018년, 그 대안으로 제정된 대안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세상에 단 한 번 만들어지고 단 한 번 수여된 뉴아카데미 문학상. 평생 흑인, 여성, 피식민지라는 삼중고를 짊어지고 꿋꿋하게 살아온 이 작가는 우리에게는 낯선 존재이나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대가이다. 그녀는 1937년 프랑스의 식민지 과들루프에서 은행가인 아버지와 최초의 흑인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노예제도라는 말도 모를 정도로 과보호를 받으며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16세에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고나서야 프랑스인들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얼마나 역사적, 사회적 현실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는지 인식한다. 백인보다 더 백인답게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그 동안 쌓아왔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새롭게 자신을 다져나가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첫사랑을 통해 '검둥이'라는 자의식을 확실히 깨닫게 된 콩데. 1960년부터 1973년까지 경제적 빈곤을 바탕으로 아프리카를 알아가는 경험을 거친다. 이 때의 경험으로 1976년 [에레마코농]이라는 소설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흑인, 여자, 가난한 미혼모가 아니었더라면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던 콩데의 삶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런 고난의 시간이 '작가'인 그녀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그런 그녀의 글이기에 사회적 약자와 폭력과 차별의 희생자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낸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는 그런 콩데의 성향이 잘 녹아든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같은 인간임에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팔려다니고, 강간당하고, 노예로서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아프리카인들. 심지어 백인을 상처입혔다는 이유로, 그 경위는 따지지도 않고 재판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순식간에 나무에 목매달리는 존재들. 이 작품은 1692년 보스턴 근교의 세일럼 마을 전체를 마녀 사냥의 광란으로 몰아넣으며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한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소설이다. 티투바가 감옥에 갇힌 후의 자세한 경위도 알 수 없었던 현실 세계에 콩데가 상상력을 불어넣어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자신의 욕망에 당당한 진보적인 한 여성을 만들어냈다.

 

같은 인간이지만 흑인들이 떠안아야했던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작품 안에서 존 인디언은 살아있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티투바에게 여러 번 말하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즐기고 싶었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에 당당하고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드러내고 싶었다. 흑인이기에, 여성이기에 그녀가 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를 한정짓는 것은 백인, 그리고 남자들. 그 한계를 뛰어넘은 티투바의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삶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풍미를 지닌 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티투바. 자신의 존엄은 먼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자신의 한계를 결정할 수 있는 타인은 아무도 존재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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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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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의 어록을 줄줄 외울 정도로 혁명 사상이 투철하며 요리 잘하는 취사병으로서 인민해방군의 모범 병사로 불리는 우다왕. 그의 목표는 오로지 간부가 되어 시골에 있는 아내와 아들의 호적을 시내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사단장의 전속 요리사로 임명되어 그의 부엌을 돌보게 된 우다왕은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며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는' 자세를 고수하며 오로지 맡은 바 임무를 해내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런 그의 모습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연심을 품게 된 사단장의 아내 류렌. 어느 날 사단장이 두 달간 부대를 더욱 정예화하고 행정조직을 간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중요한 회의에 두 달간 참석하기 위해 집을 비우면서 류렌의 적극적인 유혹이 시작된다. 마오쩌둥이 내세운 혁명의 모토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새겨진 나무팻말이 제자리에 없을 때는 자신이 볼 일이 있어 찾는다는 뜻이니 위층으로 올라오도록 명령한 류렌. 그리고 마침내 자리를 이탈한 나무팻말. 우다왕은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침실 문을 두드리고, 류렌은 우다왕에게 자신에게도 성과 애정의 봉사를 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시작된 그들의 짧은 인연.

 

2005년 봄, 중국 광둥성 격월간 문예지 [화청(花城)]3월호에 장편소설 한 편이 상당 부분 삭제된 채 발표된다. 중국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어느 군부대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그러나 이미 많은 부분을 사전에 걸러냈음에도 발간되자마자 중앙선전부의 긴급 명령으로 초판 3만 부가 전량 회수 및 폐기되고, 향후 출판 및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을 할 수 없는 이른바 ‘5금(禁) 조치’를 당하게 된다. 중국 문단은 발칵 뒤집혔고 문예계는 거세게 저항했지만 당국은 요지부동이었다. 이 소설은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는 듯했으나 예상치 못한 환경에서 이 작품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수많은 중화권 독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해적판을 돌려 보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의 과잉 탄압은 오히려 독자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작품은 중화권은 물론 해외 독자들 사이에서도 반드시 읽어야 할 문제작이 되었다. 그렇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는 21세기 중국 문단 최고의 화제작이자 비공식 베스트셀러로 떠올랐으며, 해외에서도 10여 개국에 소개되어 세계 문학계의 찬사를 받았다.

 

파격적이고 시적인 성애 묘사로 논란의 중심에 놓였던 이 작품이 당국으로부터 금서 조치까지 받은 이유는 마오쩌둥이 내세운 혁명의 모토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의 언어로 전락시킴으로써 혁명 전통을 희화화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품 안에서는 마오쩌둥의 전신 석고상이 박살나는 장면, 류렌이 그의 초상화를 찢어 발로 짓밟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 사회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한마디는 혁명 언어의 경전이자 무소불위의 금언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언어를 인간의 욕망으로 해체함으로써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개개인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근원을 확인하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연월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옌렌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이번이 3판이다. 아주 오래 전 출간되었을 때는 단순히 성애 묘사 소설인 줄만 알았고, 이렇게 깊은 메시지가 담겨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연월일]에서 매혹되었던 그의 시적인 묘사는 이 작품에서도 역시 빛을 발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순간 불꽃 같았던 연심. 과연 류렌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성기능에 장애가 있으면서도 혁명정신으로 똘똘 뭉쳐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복수? 단순한 외로움 달래기? 서로 사랑한다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보이는 여자의 결심은 단호하다.

 

중국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마오쩌둥과 혁명에 대해 나는 거의 모르는 상태로 류렌의 심리와 작가의 문장에 집중하며 책을 읽었다. 모두가 혁명과 충성이라는 기치 아래 앞을 향해 달려가는 그 시대에서 여자는, 개인으로서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을까. 어려우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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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고발 - 착한 남자, 안전한 결혼, 나쁜 가부장제
사월날씨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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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지기는 삼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갑자기 옆지기 출생신고). 위로 나이 차 많이 나는 누님과 형님이 한 분씩 계신다. 거의 10년이나 나는 나이 차로 인해 집안의 귀염둥이-가 아니라 그냥 막내로 자라났다. 공부보다는 노는 거 좋아해서 학창시절 어머니 속을 꽤 썩였고 뒤늦게 정신차려 공부에 올인, 대학원까지 나온 나름 수재(?)다. 아버님에게는 장남이 최고라 그리 귀여움 못 받은 듯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세상 예쁨 다 받고 성장했다. 늦게 태어난 자식, 앞으로 함께 지낼 날이 위의 자식들보다 짧을 것 같아 안쓰러우셨다고 한다. 비록 잔소리는 하시지만 절대 옆지기를 이길 정도는 아니고, 그냥 걱정되는 마음이 속에만 남아있지 않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표현된다고 봐야 할까. 이 막둥이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 지대하여 옆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한 걸음만 잘못 디뎠어도 옆지기는 마마보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정~~~말 평범하게 자라 공무원이 됐다. 노는 거에 관심 없었고 남들 들으면 재수없다 생각할 지 몰라도 공부하는 게 좋아 공부 열심히 했다. 엄청 잘 하진 않았어도 최선을 다했고 이만하면 괜찮게 살았다 싶을 정도로 나름 성취감도 느끼며 살던 그 때. 사실 나는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옆에서 그런 나를 지켜보던 부모님은 조금 답답해하셨다. 혹시라도 이 딸래미가 혼자 늙어갈까봐. 그렇다고 부모님의 바람대로 아무하고나 결혼할 수는 없어서 나의 의지를 공고히 했다. 그러다 옆지기를 만났다. 학창시절에 이 남자를 만났다면, 아마 이 남자는 놀고 있었을 것이므로, 놀기만 하는 남자는 나의 취향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을 텐데. 그나마 이 남자가 나와 만났을 때는 어머니 속 썩일 거 다 썩이고 사회인으로 자리돋움 하고 있을 때였던 것이다. 옆지기에게 말했는지 안했는지 모르지만 사실 처음 만났을 때 활짝 웃는 그 웃음에 내가 반했다. 사귀기 시작했을 당시 해프닝이 좀 있긴 했지만 적은 나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고, 결국 결혼했다. 4년 8개월 전에.

옆지기와 시가는 [결혼고발]의 저자 사월날씨의 경우처럼 무난한 사람들이다. 옆지기는 사람 좋아하고 자유로운 영혼에 집안일 잘 하고(냉장고 정리, 화장실과 베란다 청소, 집안전체청소 등등. 나는 주로 빨래만 하네) 아이들과 잘 놀아준다. 단점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여기서 단점까지 마구 어필하고 싶지는 않은 이 마음. 아버님은 별 말씀 없으시다기보다는 장남인 아주버님댁보다 딱히 우리에게 관심 없는 느낌이랄까. 어머니는 막둥이사랑이 하늘을 찌르는 분이시지만 형님네와 작은 분란이 있은 후로 시집살이를 마구 시키지는 않으신다. 그런데 무난하다고 해서 시부모님이 편할 리 만무하다. 어느 때를 기점으로 어머니가 무척 불편해졌다. 신혼 때는 시가에서 걸어서 1분이면 오갈 수 있는 집에 살았는데, 어느 날 새벽 6시 반에 어머니가 들이닥쳤다. 우리가 아침으로 뭘 먹는지 보시겠다면서. 아침이라 비몽사몽에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않은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옆지기가 나와의 협의 없이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새벽 방문에 동의한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왜 아들이 사는 집이라고, 같이 사는 아들의 아내는 생각지도 않고 새벽에 당당하게 방문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신 건가. 그가 전화를 끊고 나에게 미안한 눈짓을 보냈고 나는 모른 척 했다. '어머니가 우리 아침에 뭐 먹는지 보시려고 오시나' 했더니 그의 대답은 '우리 엄마는 안 그래' 였고, 말 그대로 들이닥친 어머니의 첫 마디는 '뭐 먹는 지 보려고 왔지' 였다.

 

그 후로 수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내가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 중 대부분은 '말'에 의한 것이었다. 나와의 통화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셔놓고, 옆지기와의 통화에서는 저렇게 말씀하시는 일이 잦았으며, 때문에 이후로는 어머니와 통화할 때는 항상 스피커 폰으로 진행했다. 하시는 말씀에 맞장구라도 치면 옆지기에게 '걔(어머니는 나를 주로 야, 걔 이런 식으로 부르셨다)는 직업이 그래서 그런지 말대꾸를 좀 한다'고, 싫은 소리 듣기 싫어 그냥 가만히 말씀만 듣고 있으면 나중에 꼭 '어디가 아픈 거냐, 표정이 왜 그러냐'는 식으로 또 한소리를 하셨다. 어쩌라는 건지. 위로 계신 형님 집에는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셔서 형님을 기겁하게 만들어 아주버님에게 크게 난리를 당하신 후 우리집에 비번을 누르고 들어오신 적은 없었지만 저녁마다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참 불편했더랬다. 나에게 늘 당부하신 말씀은 '아들 밥 잘 챙겨라' 였는데, 어머니 저도 같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시가에 가면 꼭 옆지기에게 '밥 먹고 왔냐'로 대화가 시작되었고, 옆지기가 먹고 왔다고 하면 '거짓말하네'를 스스럼없이 말씀하셨다. 아니 뭐가 '거짓말하네'인가. 내가 예민한 건지 모르겠으나 그 말에는 '네가 지금 네아침도 안 먹고 와서 네 마누라 편을 드냐' 라는 진심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명절에는 새벽부터 시누이가 오는 밤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고, 아들 안색이 안좋다고 확신하는 순간 '너희 싸웠냐, 왜 싸웠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싶어하신다.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하니 너도 나를 친정엄마라고 생각해라' 였다. 책에서도 등장하는데 나도 이 말에 동의하 수 없다. 저 친정엄마 계시는데요. 어머니, 저 같은 딸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저희 엄마 제 성격보고 고집세고 지랄맞다 하세요. 저 엄마한테는 마음 속에 있는 불만 이야기하면서 난리 버거지를 피울 때도 있지만 어머니한테는 그렇게 못해요. 제가 만약 그러면 어머니 뒤로 넘어가실 거에요. 저 몸 안 좋으면 엄마집 가서는 누워 잘 수 있어도, 어머니댁 가면 애들 돌보느라 제 밥 챙겨먹기도 힘들어요. 결국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가장 큰 차이는 속에 있는 말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느냐가 아닐까. 엄마와는 싸울 수 있다. 울며불며 이거 서운하다, 저거 서운하다 다 말하고 난리를 피워도 며칠 지나면 미안하다 사과하고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아니다. 혹시라도 속엣말을 하게 되면 '지랄하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어머니의 말들 중 충격적인 것은 며느리들에게 '지랄하고 자빠졌네'를 수시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이렇게는 못살겠다 하여 옆지기를 통해 내 의사를 전달했다.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대놓고 한 마디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전통적인 여성에 대한 인식이 내 안에도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쁨 받고 싶다는 욕구,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 어머니에게 고마운 점도 분명히 존재해서 이 널뛰는 듯한 내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도 했다. 결론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자는 것. 나를 '딸처럼' 생각한다는 어머니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나는 그저 어머니를 '시어머니'로 대하기로 했다. 잘 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못하지만 않으려고 했다. 어머니와의 통화는 옆지기에게 맡겼고, 옆지기도 친정에 자주 전화하지 않는다. 챙기는 것은 챙기더라도 효도는 셀프. 어머니도 아들이 보고싶지 며느리가 보고 싶겠는가. 옆지기는 처음에는 나를 통해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하더니, 이제 포기했다. 결혼 전에는 세상 개방적인 척 하던 옆지기는 알고보니 아버님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일부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었고, 가끔 나의 남편, 두 아이의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아들'이 되려는 그를 향해 내가 일침을 날리는 중이다. 힘들어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나를 만나버린 것을.

 

[결혼고발]을 읽다보니 할 말이 참 많아진다. 혹자는 여성의 이기심이라고, 시가를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다. 내가 너무 기가 센 거 아니냐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그가 만약 여성이라면 좋은 시가를 만났구나 하겠다. 남성이라면,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련다. 그 은근한 분위기와 말투, 며느리는 그저 아들에게 종속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그런 환경을 당신이 직접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아무 말 말고 있으라고 하고 싶다. 사위는 손님, 며느리는 식구니까 맛있는 것은 다 사위가 먹으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도 있다. 게다가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피해보다 이득을 보는 경향이 많은 집단일 가능성이 크므로 더 말하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이고 페미니스트고를 떠나 우리 사회가 여성의 대우에 각박한 건 맞지 않나. 과하다 싶을 때도 물론 있지만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악을 쓰고 찾게 된 경위는,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여자라는 이유로 받지 못해서이기 때문이다. 반대의 성이 겪는 고충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지탄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

 

저자가 너무하다 싶은 것도 물론 있다. 반찬을 해오셨는데 밑에서만 받고 돌아가시게 하는 것은 예의는 아니다. 누구를 위한 반찬이든 어쨌든 수고를 들이셨으므로 그 부분은 인정해드려야 한다고 본다. 그 횟수가 과연 얼마나 되느냐에 달렸지만. 아들 생각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이렇게 쓰고보니 결혼이 어마무시 무섭고 두려운 일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분도 계실 것 같지만, 힘든만큼 행복도 많다. 세상 게으른 내가 곰돌이 둘 낳아서 '내가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살고 있고, 맨날 투닥투닥 지지고 볶고 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처럼 내 성격 다 받아주는 사람 없다는 생각에 오늘도 다혈질인 성격 누르고 산다. 내가 시가에 불만이 있는 것을 아는 옆지기는 친정에 가면 자기가 나서서 이런 저런 일 다 한다. 설거지도 하려고 하고, 자잘한 집안일 살피고. 그도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불만으로 부루퉁한 아내가 미울 때도 있겠지만 나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어쩌겠는가. 이 대한민국에서 막둥이사랑 나라사랑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것을. 미안하기도 하지만 내가 며느리라서 받는 대접(?)의 고충을 그도 알아야 한다.

 

이 리뷰를 대체 어디서 끊어야 할 지 모르겠다. 결론은, 서로 좀 이해 좀 하고 살자는 것.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적으로 보지 말고 같은 여성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측은지심을 가져달라는 것. 남자들의 고충도 물론 있겠지만 [결혼고발] 리뷰니 여성들의 고충을 이번에는 먼저 생각해보자는 것. 그리고 나는 앞으로, 그냥 '나'로 살겠다는 것. 정말 죽어라 하기 싫은 일은 못한다고 말하면서 내 개인의 독립적인 인격을 지켜나가면서 살겠다는 것. 그렇다고 나 버릇없고 예의없는 인간 아니므로 태클은 사절. 참고로 그렇다면 집값은 보탰느냐 하는 속물적인 질문에 답하자면 시가에서 해 준 집값 못지 않게 혼수와 집값 같이 했다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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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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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중인 빅 엔젤의 생일을 앞두고 그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마마 아메리카. 그녀는 빅 엔젤의 생일 일주일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빅 엔젤이 자신의 생일과 엄마의 장례식을 묶어버렸다. 마마 아메리카를 화장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하나 둘 모여 마마 아메리카의 장례식을, 빅 엔젤의 생일을 축하할 준비를 하는 가족들. 얼마 남지 않은 생 앞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빅 엔젤에게 죽음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오직 회한과 아직 해결하지 못한 가족 일에 미련이 남을 뿐. 그래도 그는 내색할 수 없다. 그는 이 대가족의 가장, 아부지!였으니까. 그의 생의 마지막 토요일을 기점으로 엔젤 집안의 가족사와 비밀 , 모략, 암투(?)가 생생하게 벌어진다. 빅 엔젤의 숨이 꼴까닥 꼴까닥 하기 직전임에도!

작가인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는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으로 펜포크너상, 에드거상, 라난 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로, 그의 장편소설이 국내에 소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가 형의 마지막 생일 파티에 영감을 받아 쓴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은 암 선고를 받은 70세 노인 빅 엔젤의 마지막 생일 파티를 둘러싼 대가족의 해프닝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제멋대로에 감이 안 잡힌다. 엄청나게 유쾌하다”라는 뉴욕타임스의 평가처럼, 도대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문장들을 읽다보면 이것이 과연 가장이 죽음을 앞둔 집안의 모습이란 말인가, 의심을 품게 된다. 막 던지는 말들, 스스럼없는 행동들. 어쩌면 이것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또 누군가를 다시 떠나보내야 할 준비를 해야 하는 이들의 방어같은 것이었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는 애증의 관계 속에서 영원히 끊고 살 수 없는 사람들.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하는만큼 미움이 배는 깊어질 수 있는 사이. 빅 엔젤의 가족들이 간직한 시간들도 그러했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도 잘못된 착각이었을 뿐 그 사이에 단단히 얼어있던 빙하는 한 순간에 녹아내리고, 쌓여있던 오해도 단번에 풀어진다. 삶을 바라보았을 때는 내보일 수 없었던 속내가 누군가가 죽음을 앞에 둔 시점에서 스스럼없이 쏟아져나오는 아이러니. 죽음 앞에서는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다.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생동감 넘치는 인물과 재치 있는 문체로 그려낸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읽다보면 정신없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품은 미국 중소출판사 무역협회에서 주최하는 리튼하우스상을 수상했으며, “현대의 마크 트웨인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도서 Top 100, 뉴욕도서관 올해의 추천도서, 커커스 리뷰 올해의 책, NPR 올해의 책, PBS 올해의 책, 리터러리허브 올해의 책 등에 선정되었고, 필립 로스와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을 영화화한 스콧 스테인도프의 지휘 아래 할리우드 TV 시리즈로 영상화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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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
우와노 소라 지음, 박춘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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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생일날,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647번 남았습니다-라는 문장이 아래쪽 시야에 홀연히 떠오른다.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먹었지만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숫자가 1씩 줄어든다. 식사가 아니라 간식이더라도. 불현듯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를 계산하다가 숫자가 0이 되면 어머니가 돌아가실 거라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부터, 더 이상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열세 살 때부터는 어머니의 집밥을 입에 대지 않게 되었고 스스로 차려 먹거나 귀찮을 때는 컵라면이나 과자, 패스트푸드 점의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대학에 진학한 후 자취를 시작하기 위해 집을 떠날 때 어머니가 싸주신 주먹밥은, 편의점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어머니의 집밥을 먹지 않기 위해 버텨왔던 모치즈키. 생각지도 못하게 받아든 소식에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당신이-남았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총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 자신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횟수, 수업에 나갈 수 있는 횟수, 불행이 찾아올 횟수, 거짓말을 들을 수 있는 횟수, 놀 수 있는 횟수, 살 수 있는 날 수. 감동적이기도 하고 코믹하기도 하고 코 끝이 시큰하게 될만큼 슬프기도 한 가지각색의 이야기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즐겁게 해주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마지막 페이지를 다 덮은 후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누구라도 자신의 눈 밑에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가 나타난다면 어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을 마음 편히 먹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 횟수가 나타난다면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하겠지. 수업에 나갈 수 있는 횟수가 보이면 학생 입장에서는 유급이라도 할까 겁이 날 수밖에 없다. 불행이 찾아올 횟수가 보이면 어서 이 불행이 끝나길 바랄 것이고, 거짓말을 들을 수 있는 횟수가 보이면 타인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신경쓰며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놀 수 있는 횟수가 나타나다니, 그렇다면 제대로 놀아주겠다고 각오할 수도 있고 살 수 있는 날 수가 나타나면,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허를 찌르는 것이 즐거운 듯, 작가는 즐거운 반전도, 코믹한 반전도, 따스한 반전도, 슬픈 반전도 준비해놓고 독자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이다.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옆지기가 옆에서 지켜봤다면 -표정이 왜 저렇게 자꾸 바뀌지-라며 궁금해했을 것이다. 심지어 방금 전에는 눈물을 글썽이다가 지금은 방을 굴러다니며 웃는 모습에 오히려 자신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을지도. 이 작품 덕분에 무척 즐거웠다는 것만은 꼭 말해두고 싶다. 게다가 가제본으로 만났는데 종이질이 엄청 훌륭하다. 맨들맨들. 아차 하는 순간 종이에 손을 베일 것 같은 느낌. 처음에는 표지가 우중충해서 슬펐는데 첫 페이지 넘기는 순간부터 '이건 소장용이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 따스한 느낌이 나는 출간본의 표지가 아쉽기는 하지만 가제본도 나름의 매력을 풍기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득 들려주었다. 우와노 소라, 기억해야 할 작가가 한 명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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