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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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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의 개념이 무엇인가, 잠시 생각해본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리 기분좋은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그 언저리를 맴도는 듯한 느낌,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분위기, 은근한 방어와 고립의 냄새가 난다. 나와 친근하지 않은 그 무엇들을 우리는 '바깥'이라 부르고 있지 않던가.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나는 바깥보다는 안쪽에 속하는 것에 안도를 느낄 때가 많았던 것도 같다. 그곳이 어디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안쪽'이 주는 느낌은 '바깥'보다는 편안한 듯 보이니까. 하지만. 정말 '안쪽'이 '바깥'보다 더 편안한 것인가. 그 곳에서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장차 목수가 꿈인 전직 신문사 기자, 늦어도 쉰 살쯤에는 수도권 바깥에 번듯한 작업장 열고 부끄러움 없이 자신을 목수라 소개하고 싶다는 저자가 소개한 26가지 빛깔의 이야기는 그 '바깥'의 의미를 정의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큰 흐름의 바깥, 스포트라이트의 바깥-이라는 의미지만 안과 밖의 경계가 허술한 공간을 의미한다고 했다. 경계의 경계(警戒) 가 삼엄하지 않고 안과 바깥이 평화롭게 바뀌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며, 아예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마당을 바란다고도 한다. 어쩐지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나는 '바깥'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이미 경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제목만 '바깥'일 뿐,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이 있는 곳에서 힘을 다해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 안에서 그 사람들, 혹은 공간은 그 자신들에게 있어 '바깥'이 아닌 '안쪽'이다. 그 삶에서는 그들이 주인공인 것이다. 허리우드 클래식을 운영하는 김은주 사장, 떠돌이 영화감독 신지승, 인디밴드 타바코쥬스, 나쁜 소리에는 조심하고 좋은 소리엔 열심히 살면 된다는 천하대신 할머니,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셋넷학교 박상영 교장, 아름다운 넘버3 산악계의 휴머니스트 한왕용, 성 베네딕도 요셉수도원, 군무 발레리나 안지원, 다큐 감독 최기순, 최근덕 성균관장까지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어디에서 이런 사람들을 다 찾아냈을까.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서로 다른 삶의 빛을 내뿜고 있는 그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고, 좋아하고, 또 좋아한다는 것이다. 물질과 상관없이, 간혹 남의 시선이 신경이 쓰이기는 해도 '그저 좋아 하는 일'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셋넷학교 박상영 교장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을 두드린다. 한 학생으로부터 태어나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꼈다는 말을 들었다는 그. 기죽지 말로 꼴리는 대로(책에 나온 표현임) 살라는 뜻을 담아 정한 셋넷학교의 교훈에 알 수 없이 이끌린다.


   뚜벅뚜벅 당당하게, 사뿐사뿐 유연하게-p139

모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인간의 정신은 점점 쇠락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여유없는 생활, 앞만보고 달려가야 '남'에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책에 등장하는 그들은 말할 수 있다. 자신들의 삶에 다른 주인공은 없다고. 오직 자신 뿐이라고. 

갑자기 숨쉬기가 편안해진 듯 마음이 넉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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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바람을 걷는 소년
나디파 모하메드 지음, 문영혜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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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아무도 없는 사막에 자신의 발자국만을 남기며 걸어간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고는 있을까. 지금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인지는 알고 있을까. 옷이라고는 하의밖에 걸친 것이 없는 소년의 가녀린 몸이 금방이라도 모래 위로 쓰러질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다. 소년의 이름은 자마. 코브라의 일종인 블랙맘마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자마는 세상의 네 귀퉁이를 모두 볼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사막의 도시 아덴에서 어머니와 둘이 살며 친구들과 그 거리를 뛰어다녔으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의 죽음. 서로를 사랑했으나 생활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던 아버지를 찾아 이제 자마가 길을 떠난다.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점령한 땅을 지나고 온갖 어려움을 무릅쓴 채 아버지를 찾기 위해. 그리고 그 때부터 어린 자마의 진정한 삶이 눈을 떴다. 

이 책은 저자인 나디파 모하메드가 자신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해서 쓴 이야기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린 자마의 인생은 보기에도 그리 평탄하지 않다. 동생의 죽음, 아버지의 방황,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일했음에도 가계가 나아지지 않아 늘 일을 해야 했던 어머니, 친척으로부터 받은 천대와 멸시, 어머니의 죽음, 시작되는 모험. 말이 좋아 모험일 뿐이지 목숨을 건 여정이었다. 그 고단한 시간들을 이겨내고 자마는 사랑하는 아내의 품으로 돌아갔으며 이제 그 이야기를 아들인 나디파 모하메드에게 들려준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조션 자마의 용기와 성장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먹을 때보다 굶을 때가 더 많고, 누구의 보호도 없이 하루하루 생명을 위협당하며 살아야 하는 생활.  그럼에도 '인생이 주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는 문구처럼 겸허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 끝내는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자마는, 과연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와 빛나는 생명에 관한 이야기지만, 이 작품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막연하게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나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같은 분위기와 감동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그 기대치에는 못미쳤다고 할까. 아무래도 작가의 아버지라는,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인지 어쩐지 전기나 자서전 같다는 생각에 소설로서 다가오는 격정과 울림이 적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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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행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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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소설이다. 마지막 여자의 독백(이라고 할지, 편지라고 할지) 부분을 읽고 난 후 맨 처음 든 생각은 '이게 뭐야!'였다. 잔인하게 일가족을 살해한 사람의 동기가, 여러 사람을 인터뷰한 인물의 목적이 고작 그 때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인간이란 어디까지 이기적이고 잔혹해질 수 있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행태에 내 이해심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트릭이 생각보다 싱거웠던 것인지, 또 그런 것도 아니라면 그 동안 읽어왔던 추리소설들의 소재와 전개가 너무 뛰어나서 상대적으로 이 작가의 이 작품이 대단치 않게 느껴지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리뷰를 올려야지 하며 며칠을 곱씹는 동안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누군가를 해친 그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살아가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은 때로는 즐거워도, 가끔은 피할 수 없는 숙제 같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늘상 즐겁지만은 않다는 게 문제일까. 지금 이 순간 이 사람과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아무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도 어차피 이 사람은 남이라는, 그런 어두운 생각이 불시에 고개를 들기도 한다. 나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는 이들이 어떤 한 부분을 보고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평가할 때, 우리는 상처받는다. 물론 그들이 평가한 한 때의 그 모습도 나의 일부이겠지만 누구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고 어떤 상황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밖으로 드러낼 수 있는 얼굴이 달라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우리는, 한결같기를 원하고 한결같기를 요구한다. 사람의 마음 속이 얼마나 복잡하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한 집에서 일가족 네 명이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엘리트 남편과 아름답고 우아한 아내, 귀엽고 예쁜 두 아이의 가정이 어느 날 사라졌다. 범인은 잡히지 않고 단서조차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가 그 사건을 소재로 주위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한다. 그들 가족을 좋은 인상으로 기억하는 동네 아주머니, 우아한 부인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질투의 감정 또한 가지고 있었을 동년배의 부인, 엘리트였던 남편을 상냥하지만 때로는 기회주의자로 기억하는 회사 동료와 옛날 연인, 부인을 적대시했던 대학 동창 등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본 이 가족에 대해 기술한다. 때로는 동경을, 때로는 질투를, 때로는 폄하의 눈을 가지고.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생각한 것은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말이었다. 친구들끼리 놀다보면 갑자기 감정이 틀어져 '이 바보, 멍청이, 돼지!!' 등등의 깜찍한(?) 말을 내뱉던 때가 있지 않던가. 그럴 때 친구를 더 약올리기 위해, 혹은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방편으로 '그럼 너는 부처님해,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니까 난 부처님이야'라는 말을 했던 적은 없었나. 

인터뷰이들은 각자가 객관적인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들이 바라본 네 명의 가족은 자신들의 감정을 그대로 투영한 존재들이었다. 그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친하게 지냈지만 나는 결코 저 사람같은 미모나 재력은 가질 수 없다는 괴로움, 때문에 그 사람이 나를 무시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쪽에서 그 사람을 안중에도 없다고 생각한 왜곡된 기억들이 인터뷰이들이 진술하는 내용에 의해 오히려 그들 자신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결코 하나가 아니고, 아무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는 표지의 문구가 이해되는 내용들이다. 

 인터뷰와는 별개로 한 사람의 진술이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한 여성의 고백은 사건과 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녀의 과거에 연민을 갖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한 행동으로 한 가족을 몰살시키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이번 이야기에서 그 점이 조금 아쉽다. 

우행록-어리석은 행동을 기록했다는 이 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결국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잃지 않을 것, 모든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아 왜곡된 마음을 가지지도 말고, 남의 것만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타인의 행동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다'는 너그러움을 갖는 것. 우리가 누구를 감히 평가할 것인가. 자신이 남긴 발자취조차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면서. 

하지만 책 속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을 우행록이라고 보기에는, 우리는 매일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고, 그저 안타까운 일일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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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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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오랫동안 계속되어온, 그리고 결코 결론지을 수 없는 의문이다. 언젠가 육체는 썩어 없어지고 그 속을 채우고 있던 무언가는 결국 잊혀지게 될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면, 과연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두 발로 걷고,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단지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혹자는 인간을 가장 위대한 동물이라고 표현했었다. 하지만 우리도 다른 개체가 내는 소리를 전부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개체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 또한 미개한 종일지 모를 일이다. 사람이라는 것,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 많은 사람이 알고 싶어하고 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그 의문에 이 책이 말을 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2058년으로부터 조금은 더 먼 시간. 지금으로서는 까마득히 먼 미래. 지금까지의 세계는 고립되어 있었다. 2052년 첫 번째 역병이 전 세계를 휩쓴 이후에, 플라톤이 지배하는 공화국 안에서 사람들은 방벽 너머 바이러스를 지닌 또다른 존재가 넘어올까 하루하루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 주장했던 것처럼 이 세계는 철학자, 기술자, 군인, 노동자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 양육된다. 생후 1년이 지나면 모든 아이가 검사를 거쳐야 하고, 결과에 따라 특정 계급에 배치되거나 '제거'되는 세계. 

그 세계에서 2058년 아담 포드가 태어났다. 경계 근무를 서면서 방벽 너머에서 접근해 온 소녀 이브를 죽여야 했던 임무를 저버린 채 그녀를 구출하고자 했던 아담. 태초의 인간이 아담이었던 것처럼 아담 포드 역시 사람들에게 새로운 행동과 자신의 신념을 선보이며 사형대신 로봇 아트와 생활하게 된다. 처음에는 인공지능을 가진 아트를 인정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인간'과 '자유의지'에 대해 활발한 논쟁을 벌이는 그들. 그 논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결말은 충격적이다. 

이야기는 학술원에 들어가고자 하는 아낙스가 세 명의 면접관 앞에서 시험을 보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아담 포드의 인생에 대해 유독 관심을 갖게 된 아낙스와 면접관들의 질의응답, 홀로그램으로 재생되는 아담과 아트의 대화로 자칫 어려워질 수 있는 내용을 쉽게 풀어냈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 동안 수많은 책과 영화들이 소재로 삼아왔지만 이렇게 제대로 된 논쟁을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 동안의 작품들이 감성에 바탕을 두고 인간과 로봇을 논해왔다면 이 책은 좀 더 철학적이고 논리적이라고 할까. 

아담과 아트의 수많은 대화 중에서 아담은 마지막으로 아트에게 '현실을 개선하려 하는 인간의 의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감옥에 갇혀 아트와 논쟁하며, 자신이 아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를 평가받는 그 상황을 벗어나 자유를 얻고자 하는 열망. 그 열망이 자신에게는 있으나 아트에게는 없다 말했다. 하지만 결말 부분을 보면 이 작가는 언젠가 사람과 로봇이 어떤 부분에서는 거의 비슷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생각이) 영원할 거라 믿고 승리의 미소를 짓는 아담과 그 동안 아담과 논쟁하며 변화된 자신의 생각을 바이러스로 유포하는 아트는 변화된 내일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신념을 가진 존재다. 

그럼에도 아담이 말했던, 자신은 피부에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의 느낌이고, 자신을 덮치는 차가운 파도의 감각이며 절대 가 본 적 없지만 눈을 감고 상상해 볼 수 있는 장소이자 다른 이의 숨결과 그녀의 머리카락색이라는 문구에 마음이 출렁이는 것은 그것이 로봇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의 감각이라는 믿음 때문일까.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 그것 또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요소가 후회와 반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자유의지가 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을 생각하는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논리적인 면에서는 언젠가 로봇과 동등한 입장에 서게 되는 날이 온다 해도 우리가 우리로 있을 수 있게 하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인간답게 하는 요소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싱거운 이야기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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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해도 될까요?
제임스 패터슨.가브리엘 샤보네트 지음, 조동섭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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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친구는 필요한 법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저만의 친구는 '책'이었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같이 뛰어놀던 친구도 물론 소중했지만, 저는 그 무엇보다 책을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이 사주신 30권짜리 전래동화집, 20권짜리 위인전, 백 몇 권의 여러 이야기책들. 어린 나이였지만 잠이 일찍 깨는 아침에 일어나 책을 읽곤 했던 저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저만의 착각인 걸까요, 이힛. 어쨌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즐거운 일이 있을 때도 저의 곁에는 늘 책이 함께 했어요. 책이 있어 버틸 수 있었던 일도, 책이 있었기 때문에 더 기뻤던 적도 많았습니다. 저에게는 숨 쉬고 같이 이야기하고 산책하는 제인의 상상 속 친구 '마이클'이 바로 책이었던 셈인데요, 그래도 마이클처럼 멋진 친구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흣. 

상상 속의 친구, 보통은 공포 영화 소재로 자주 등장하죠?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상상 속 친구 마이클은 다정하고 근사한 꽃미남입니다. 세 번이나 결혼한 아름다운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로 인해 더 외로운 소녀 제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친구가 되어주죠. 하지만 상상 속 친구인 마이클은 제인의 아홉 번째 생일날 그녀를 떠납니다.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것, 그것이 규칙인 겁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후, 제인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자신과 마이클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크게 성공한 후 이제 영화로 제작하려는 단계에 있기도 해요. 하지만 엄마의 그늘 밑에서 여전히 외롭고, 시덥잖은 남자에게 휘둘리며 상처받는 그녀는 꼬마 제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제인 앞에 마이클이, 상상 속 친구라고만 믿었던 그 마이클이 짜잔! 하고 등장한 겁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해했던 건 마이클의 존재였어요. 분명히 제인의 상상 속 친구일텐데 어떻게 현실에 존재하는 걸까, 어떻게 제인과 사랑에 빠지는 걸까, 짐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이클은 '상상 속 친구'가 직업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제인이 무대와 영화를 제작하는 것처럼 마이클은 상상 속 친구가 되어주는 일을 하는 거죠. 물론 다음 친구를 만나기 전에 휴가도 얻을 수 있답니다. 

고민과 어려움을 헤치고 두 사람은 결국 사랑을 이룹니다. 평소라면 손에 들지조차 않았을 내용의 아주 심플한 사랑이야기지만, 역시 때가 때잖아요. 며칠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틈을 타서 읽었더니 나름 달콤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대체 봄은 어디쯤 와 있는 걸까요. 봄이 오기는 하는 걸까요.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읽어야 제 격인 이 책을 위해서라도 너무 늦지 않게 봄이 와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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