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아카데미>, <새드일루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새드 일루전 -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2
스콜피오 리첼 미드 지음, 전은지 옮김 / 글담노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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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앞서 리뷰한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의 2부인 아이입니다. 1부의 표지는 리사와 로즈가 장식했는데, 2부의 표지는 디미트리-로 보이는 남자-인 듯 하네요. 짙은 눈썹에 흩날리는 머리하며 하늘하늘한 옷차림을 보니, 어릴 때 가끔 하던 컴퓨터 게임 주인공이었던 페르시아 왕자가 생각납니다. 흣. 제가 상상한 디미트리의 모습은 요런 게 아니라서 살짝 거부하고 싶어지는 마음에 금새 머릿속에서 이 그림을 지워버렸답니다. 겉표지는 괜찮은데 속표지가 영 걸리는 것이, 왜 자꾸 찜찜한 마음이 드는 걸까요. 

1부의 리뷰에서, 시리즈인만큼 1부를 기승전결 중 거대한 '기'로 보고 조금 지켜봐야겠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역시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느릿느릿 진행되고 시리즈의 기반을 다진다는 기분이 들었던 1부와는 달리, 2부에서는 각종 갈등과 위기상황이 설정되면서 작품에 긴장감이 감돌거든요. 제가 싫어하는 주인공들의 연애중심 스토리가 아니라 사건 중심이라고 할까요. 모로이와 댐퍼, 스트리고이의 대결구도가 명확해지는 데다 그동안 은근히 자식방치 엄마로 암시되던 로즈의 엄마가 등장합니다. 또 마음 가는 디미트리는 자신을 밀어내기에 바쁜데 좋은 친구로만 생각했던 메이슨이 자꾸 다가오는 통에 로즈의 마음은 갈팡질팡. 그야말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겁니다.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 작품이 '성장소설'의 특징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열일곱 소녀 로즈, 순수하고 열정적이지만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아이입니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금방 감정을 이기지 못해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고 그러면서 자신도 상처받는, 강하면서도 여린 소녀랍니다. 그런데 2부에서는 그녀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닥쳐와요. 전하지 말아야 할 정보를 전한 탓에 누군가가 죽음을 맞고 로즈는 엄청난 죄책감과 수호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되죠. 하지만 뜻하지 않은 역경을 겪은 후, 왠지 로즈는 조금 성장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인생보다 수호인으로서의 임무, 스트리고이와의 결투에 좀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이고,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도 이해하게 되거든요. 

여전히 디미트리와의 관계는 뜨뜻미지근합니다. 하지만 미리 사랑의 행방이 결정되고 주인공들끼리만 즐거워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궁금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로즈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스트리고이의 공격에서 로즈가 리사를 잘 지켜낼 수 있을지, 적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뒷편이 궁금해집니다. 1부보다 나은 2부였던 듯 해요. 2부보다 나은 3부, 그리고 결말이 나와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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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아카데미>, <새드일루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뱀파이어 아카데미 -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1
스콜피오 리첼 미드 지음, 전은지 옮김 / 글담노블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2월의 시작을, 역시나 뱀파이어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책은 그만 읽어야지 하는데도 정신을 차리고보면 뱀파이어 소설이 제 앞에 떡 버티고 있답니다. 요즘 뱀파이어를 소재로 하는 책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요. 이 작품 역시 다섯 권의 시리즈로 계획되어 있는데요, [뱀파이어 아카데미] 는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의 1부입니다. 시리즈의 제목이 1부에서는 소제목처럼 쓰이고 있으니 혼란스러워하지는 마세요. 책을 둘러싸고 있는 표지가 은근 고급스러워 살짝 벗겨봤더니, 우잉! 속표지는 결코 저의 취향이 아닙니다. 그냥 살포시 표지를 덮은 채로 간직하고 싶어지는군요. 

지금까지 제가 읽은 뱀파이어 소설들을 차근차근 따져보자면 우선,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인간인 벨라와 뱀파이어인 에드워드의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언제나 등장하지만 그들은 역경을 헤치고 굳세게 그 사랑을 지켜나갑니다. 또 다른 뱀파이어물인 '하우스 오브 나이트' 시리즈는 인간에서 뱀파이어로 변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대는 인간과 뱀파이어가 공존하는 세상, 인간 또한 어느 순간 표식을 받고 뱀파이어로 거듭날 수 있는 세계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에서는 뱀파이어 공주 리사와 뱀파이어를 수호하는 로즈가 등장합니다. 둘은 강한 결속 관계로 맺어져 있어서, 로즈가 조금만 집중하면 리사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녀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로즈도 경험할 수 있게 된답니다. 

이 책에서 리사는 모로이, 로즈는 댐퍼라는 신분인데요, 모로이는 뱀파이어 순수혈통, 댐퍼는 그 모로이를 수호하는 자로서 모로이와 댐퍼 사이에 태어난 존재라고 합니다. 모로이에게는 마법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성인이 되면 하나의 능력이 특화되기 마련인데 리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조금 독특합니다. 최면마법도 남들보다 조금 강하고, 또 영적인 능력이 있거든요. 모로이와 댐퍼의 적으로 등장하는 스트리고이는 불사의 생을 얻기 위해 모로이가 규칙을 어기고 변화된 존재입니다. 목을 베거나 은으로 된 말뚝을 심장에 박아야만 없앨 수 있다고 해요. 그리하여. 간단히 정리하면 이 이야기는 모로이와 수호인 댐퍼, 스트리고이의 전쟁 소설이자 리사와 로즈의 로맨스 소설이 되겠습니다. 

1부의 이야기는 로즈와 리사가 2년 여의 인간세상에서의 생활을 접고 뱀파이어 아카데미로 돌아가면서 시작됩니다. 어떤 위협을 받고 아카데미를 탈출한 것이지만 다른 수호인들에게 붙들린 것이죠. 돌아간 아카데미에서 리사는 크리스티안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로즈는 수호인이자 스승인 디미트리를 좋아하게 되지만 같은 수호인의 입장이라 로즈의 사랑은 한동안 힘들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랑의 막대기의 행로가 정해지고 리사의 능력이 밝혀지며 그들을 위협하는 위기를 하나 넘어가면서 1부는 마무리됩니다. 1부인만큼 시리즈 전체의 기반을 닦는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모로이와 댐퍼라는 다소 색다른 존재들을 내세웠지만 저는 살짝 지루하기도 했습니다. 영어덜트의 감정에 맞춰져 있기 때문인지 소소한 일상도 묘사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큰 사건 없이 설명하는 식이라 기승전결의 묘미를 느낄 수가 없었거든요. 전에 어떤 시리즈를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시리즈로 작품들이 쏟아져나오는 이상 1부에는 그리 큰 갈등양상이 등장하지 않는 듯 합니다. 1부에서 마지막 권까지를 하나의 커다란 작품으로 생각하고 1부를 '기' 쯤으로 여겨야 할 것 같아요. 

하나 마음에 든 것은 '로즈'라는 캐릭터입니다. 열 일곱인지라 아직 철이 덜 들었고 뱀파이어 소설의 주인공인만큼 스스로를 대단히 매력적이라 여기는, 살짝 불편한 아이이기는 하지만 거침없는 성격 하나는 알아줘야 할 것 같습니다. 묘사에 따르면 입도 거칠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행동해버리는 단순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다른 시리즈물에서처럼 예쁜척, 새침한 척, 연약한 척 하는 캐릭터보다는 조금 나은 듯 해요. 일단 모로이를 수호해야 하는 댐퍼의 입장인만큼 모든 상황에서 굉장히 전투적이지만 또 그만큼 순수한 면도 엿보인답니다. 일단 저에게 2부인 [새드 일루전] 도 있으니 2부까지는 한 번 로즈를 지켜봐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디미트리'라는 이름도 마음에 드니까요. 호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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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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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2010년 1월이 몇 시간 남아있지 않은 지금, 한 편의 리뷰를 써볼까 합니다. 아마도, 가 아니라 정확히 1월의 마지막 서평이 되겠군요. 사실 이 책은 읽은 지 한 달 정도 되었습니다만 어쩐 일인지 리뷰를 쓰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차일피일 미루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상콤한 2월을 맞이하기 위해 미루던 일을 하나 해치워보자 싶은 마음에 이 아이를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현대 희곡을 대표하는 거장 아서 밀러의 대표작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사랑받은 20세기 최고의 드라마라고 하네요. 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첫 작품이었지만 다시 읽어본 지금, 제 마음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처럼 그저 불현하고 씁쓸하기만 합니다.

 

예전에 출간된 [가시고기] 라는 소설, 혹시 알고 계신가요? 그 책이 출간된 이후로 우리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보통 무한한 사랑을 전달해주는 대명사는 '어머니'로 그려지죠. 그에 반해 '아버지'는 가장, 무뚝뚝함, 경제활동 등의 다소 딱딱하고 정없는 단어들로 나타내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아버지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머니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 준 소설이 바로 [가시고기]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후로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존재 이유, 아버지의 삶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는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더불어 '부모자식'이라는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죠. 아서 밀러의 이 작품, [세일즈맨의 죽음] 은 불황을 배경으로 미국의 소시민들의 삶, 아버지의 삶, 부자(父子)사이에 대해 그리고 있습니다.

 

대공황이 오기 전까지 주인공 윌리 로먼은 희망으로 가득찬 사람이었습니다. 차와 집, 든든한 두 아들, 사랑하는 아내, 세일즈맨으로서 쌓아가는 실적이 그의 삶의 모든 것이었죠. 하지만 불황은 몸바쳐 일한 회사에서 그의 자리를 잠식해갔고 훌륭하게 자랄 것이라 믿었던 두 아들은 그를 낙담시켰으며 그에 따라 윌리는 삶의 의미를 잃어갑니다. 아들 비프와 해피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갈수록 윌리는 과거로 도피하기 시작하고, 가족들이 이해하지 못할 말을 늘어놓기 시작하며 실망과 낙담이 늘어갈수록 그의 기억은 현실을 피해 저 멀리 유년기까지 날아가고 말죠. 결국 회사에서 해고당한 날, 그는 끝내.

 

이 작품에서 주제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부분은 린다가 아들과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한 번은 제 남동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일하다가 결혼하면 아이들 낳아 키우는 남자의 삶은 단순하면서도 허망한 것 같다고. 물론 그 사이사이에 소소한 행복과 기쁨은 있겠지만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든다고. 예외는 있겠지만 어쩌면 가정에서의 아버지란 존재는 여전히 쓸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의 삶이란 보답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결코 보답을 원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그 보답이 물질적인 것이 아닌 위로와 사랑, 관심이라고 해도 말이에요. 사회적인 불행인 공황과 더불어 윌리에게 닥친 위기는, 아마도 아들들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 아들들과의 불화로 인해 더욱 깊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가족 간의 사랑과 위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의 부모님에게,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총 174페이지의 희곡으로 휘리릭 읽을 수 있지만, 휘리릭 읽은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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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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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밍겔라 감독, 랄프 파인즈와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1997년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아카데미 9개 부문을 수상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한 이 영화는, 그러나 사실, 나에게는 깊은 감흥을 주지는 못했었다고 기억된다.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하기에 10대의 나는 어렸던 탓도 있겠지만 내 머리 한 구석에는 '그 영화는 나와 맞지 않았어' 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동을 책으로는 느낄 수 있을까 하여 손에 집어든 원작소설. 늘 그렇듯 책과 영화에 대한 감상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겠지만, 책은 영화보다 더 깊은 울림이 있다.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에서는 영국인 환자 알마시와 캐서린, 알마시를 간호하는 해나와 젊은 군인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책에서는 알마시와 해나, 공병인 킵, 그리고 스파이로 활동했던 카라바지오가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홀로 알마시를 간호하는 해나에게 아버지의 친구인 카라바지오가 찾아오고 폭탄해체기술을 가지고 있는 인도인 공병 킵이 머무르면서 네 명은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전쟁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어 황폐해진 마음을 핥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리고 알마시가 사실은 독일 첩자가 아니었을까 의심하면서.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 해나와 킵의 사랑도 작품 안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소재임에는 확실하다. 전쟁 속에서 자신으로 있을 수 있게 만들어 준 것,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해 준 것, 누군가에게 기대고 위로받고 싶게 만드는 것, 그 모두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비롯되었다. 하지만 영화에서와는 달리 작품 안의 네 사람은 '전쟁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일 뿐이다. 알마시는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잃었고, 해나는 아버지를, 카라바지오는 손가락을, 인도인이지만 영국인과 함께 싸우는 킵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잃었다. 상실의 아픔과 상처를 크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모두와의 생활을 통해 평안과 위로를 얻고자 발버둥친다. 

이야기의 주체는 알마시이기도 했다가 해나가 되기도 했다가 때로는 카라바지오, 때로는 킵이 된다. 시선과 공간, 시간 모두가 경계없이 자유롭다. 결말부분처럼 다른 공간의 사건이 같은 시간대에 서술되기도 하고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역자는 그것을 '다중성'이라고 표현했는데, 나에게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가 마치 둥근 유리구슬 안의 장식품들처럼 다가왔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격렬한 감정의 변화도 잘 느껴지지 않고 그저 삶을 이어갈 뿐이던 등장인물들의 테두리가 어느 날 '원폭'을 계기로 깨져버리고 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서로를 돌보고 치유하려던 그들이 갑자기 세상 밖으로 내몰리는 것 같은 느낌. 

이 작품은 전쟁소설이자 연애소설이기도 하지만 그 밖의 '다른' 소설이기도 하다. 그 '다른'에 대해 정확히 표현할 수 없어 어렵고, 어렵기 때문에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깊이 있고 고요한, 색다른 매력의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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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이상한 소리 - 일본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서은혜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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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맞으면서 근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막부 체제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권력의 판도가 바뀜과 더불어 서양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시대를 맞아들이게 된 것이죠. 이와 함께 당연히 문학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문학이 갑자기 '나는 근대문학이야!' 라고 선언할 수도 없고, 그 시점까지 읽혀지던 문학의 형식이 갑자기 변화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생활면에서는 아마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조금 천천히, '근대문학'이라고 불려질만한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겠죠. 너무 깊이 들어가면 어려워지고 또 그렇게 깊이 알 필요도 없지만 확실히 이 책에 실린 단편집들은 '근대'라고 불리던 때에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의 작품이니 일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을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표제작은 나쓰메 소세키의 <이상한 소리>이며 그 외에 구니키다 돗포의 <대나무 쪽문>, 시가 나오야의 <오오쯔 준끼찌>, 미야모토 유리코의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이단자의 슬픔>, 시마자키 도손의 <클 준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망원경과 전화>, <삽화>, <산다화>, 오오카 쇼헤이의 <모닥불>이 실려있습니다. 대부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이 없는 작품들 중심으로 엮어져 있어 새로운 자극을 받음과 동시에, 그들의 문학 세계가 이렇게도 깊고 깊은 것이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할까요. 일본어를 전공한 저로서는 일본문학에 있어서도 조금은 알고 있다는 거만한 마음이 폭삭 사그라들고 말았답니다. 대신 앞으로는 겸손한 마음으로 문학작품과 작가들을 대해야겠다는 마음이 솟아났지요.  

이 중 한 작품만 살짝 소개드려 볼까요? 저는 구니키다 돗포의 <대나무 쪽문>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부유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옆집에는 무척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는데요, 얼마나 가난하냐 하면, 바로 하루벌어 하루먹고 살까말까한 가정인 것입니다. 더운물에 만 밥에 반찬은 단무지. 때에 전 홑이불을 함께 덮고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또 한 번의 밤을 보내는 부부에게는 집을 따뜻하게 할 목탄도 이제는 없습니다. 결국 아내는 부유한 옆집의 목탄을 하나 둘씩 훔치게 되고 가난한 처지를 한탄하며 남편과 싸움까지 벌입니다. 울컥한 남편은 또 목탄 가게에서 한 자루를 훔쳐오고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결국 목을 매고 자살하고 맙니다. 

부유함과 가난함, 안타까운 생활의 차이가 짧은 이야기 안에 극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 두 가정을 연결하면서도 단절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대나무 쪽문'입니다. 엉성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그 문을 넘어서는 일이 젊은 부부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인 겁니다. 가난에 대한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가 결국 목을 맨 장면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목을 매어서는 안된다' 같은 생각이 제 안에는 자리잡고 있거든요. 어쩌면 극도의 가난 속에서 살아보지 못한 자의 호사스러운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가치가 있다는 작품이라고 해놓고 왜 별점이 다섯 개가 아닌지, 궁금하신가요? 이 별점은 작품에 대한 별점이라기보다 번역과 표기에 대한 별점입니다. 출판사에서는 '현행 외래어표기법이 표방하고 있는 영어 중심의 일방적인 표기법의 폐해를 최소화하고 각 언어의 독자성에 대한 존중을 취지로 수년 전부터 모든 외래어에 대해 원어 발음에 가장 가까운 한글표기방식을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또 '현행 문광부의 외래어표기법은 규정의 통일성을 위해 영어식 발음을 따르고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만, 언어에 따라서는 우리말 된소리가 현지음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라고도 했고요. 

저는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책읽기가 참 많이 불편했습니다. 출판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예전에 제가 잠깐 일했던 출판사에서는 국립국어원의 표기 규칙을 따르고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일본어 'つ' 는 창비출판사에서는 '쯔'로 국립국어원에서는 '쓰'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일본어도 몇몇 발음은 우리말의 된소리와 발음이 비슷하기는 합니다. 한국어로 표기하기에 불편한 점도 있고요. 하지만 출판사에서도 국립국어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만큼, 표기규칙은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는대로 표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학교에서도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게시되어있는 표기규칙대로 일본어 표기방식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교육과 실제 쓰이는 표기가 달라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위에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할 때 작품은 책에 있는 그대로, 작가는 국립국어원의 표기규칙과 학교에서의 수업내용에 따라 수정해서 올려봅니다. 

또, 번역 면에서도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빠, 타까 짱이 이질에 걸렸대요......" 하고 그런 표정을 지어가며 말했다. -p64, 시가 나오야의 <오오쯔 준끼찌> 중에서.
위에서 언급한 '그런' 표정이란 대체 어떤 표정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질에 걸린 듯한 표정이란 뜻일까요, 아니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던 걸까요? 문장을 보니 원문이 어떻게 쓰여있었을 지 짐작은 갑니다만, 그 동안 읽었던 근대단편문학 중 이런 식의 읽기 힘든 번역은 처음이었습니다. 문장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랄까요. 적확한 우리 표현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도 잘 압니다. 일본어는 생략과 축약의 미(?)를 갖는 언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번역할 때조차 그 미를 고스란히 가져와서는 안 되겠죠. 우리 정서에 맞게 고치는 것, 그것이 바로 '번역' 아니겠습니까. 이 작품집은 시장에 내놓은 일종의 '상품'입니다. 자연스럽지 않고 의미가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은 상품은 독자들로부터 원망만 사게 될 거에요

이러니저러지 불평이 많았지만 어쨌거나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이렇게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만큼은 행복한 일입니다. 일본 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 독일,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 프랑스, 중국, 폴란드, 러시아 편도 출간된 것으로 아는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모두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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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1 1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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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1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