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이상한 소리 - 일본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서은혜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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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맞으면서 근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막부 체제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권력의 판도가 바뀜과 더불어 서양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시대를 맞아들이게 된 것이죠. 이와 함께 당연히 문학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문학이 갑자기 '나는 근대문학이야!' 라고 선언할 수도 없고, 그 시점까지 읽혀지던 문학의 형식이 갑자기 변화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생활면에서는 아마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조금 천천히, '근대문학'이라고 불려질만한 형태로 변모하게 되었겠죠. 너무 깊이 들어가면 어려워지고 또 그렇게 깊이 알 필요도 없지만 확실히 이 책에 실린 단편집들은 '근대'라고 불리던 때에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의 작품이니 일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을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표제작은 나쓰메 소세키의 <이상한 소리>이며 그 외에 구니키다 돗포의 <대나무 쪽문>, 시가 나오야의 <오오쯔 준끼찌>, 미야모토 유리코의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이단자의 슬픔>, 시마자키 도손의 <클 준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망원경과 전화>, <삽화>, <산다화>, 오오카 쇼헤이의 <모닥불>이 실려있습니다. 대부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된 적이 없는 작품들 중심으로 엮어져 있어 새로운 자극을 받음과 동시에, 그들의 문학 세계가 이렇게도 깊고 깊은 것이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다고 할까요. 일본어를 전공한 저로서는 일본문학에 있어서도 조금은 알고 있다는 거만한 마음이 폭삭 사그라들고 말았답니다. 대신 앞으로는 겸손한 마음으로 문학작품과 작가들을 대해야겠다는 마음이 솟아났지요.  

이 중 한 작품만 살짝 소개드려 볼까요? 저는 구니키다 돗포의 <대나무 쪽문>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부유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옆집에는 무척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는데요, 얼마나 가난하냐 하면, 바로 하루벌어 하루먹고 살까말까한 가정인 것입니다. 더운물에 만 밥에 반찬은 단무지. 때에 전 홑이불을 함께 덮고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며 또 한 번의 밤을 보내는 부부에게는 집을 따뜻하게 할 목탄도 이제는 없습니다. 결국 아내는 부유한 옆집의 목탄을 하나 둘씩 훔치게 되고 가난한 처지를 한탄하며 남편과 싸움까지 벌입니다. 울컥한 남편은 또 목탄 가게에서 한 자루를 훔쳐오고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결국 목을 매고 자살하고 맙니다. 

부유함과 가난함, 안타까운 생활의 차이가 짧은 이야기 안에 극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 두 가정을 연결하면서도 단절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대나무 쪽문'입니다. 엉성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그 문을 넘어서는 일이 젊은 부부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인 겁니다. 가난에 대한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아내가 결국 목을 맨 장면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목을 매어서는 안된다' 같은 생각이 제 안에는 자리잡고 있거든요. 어쩌면 극도의 가난 속에서 살아보지 못한 자의 호사스러운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가치가 있다는 작품이라고 해놓고 왜 별점이 다섯 개가 아닌지, 궁금하신가요? 이 별점은 작품에 대한 별점이라기보다 번역과 표기에 대한 별점입니다. 출판사에서는 '현행 외래어표기법이 표방하고 있는 영어 중심의 일방적인 표기법의 폐해를 최소화하고 각 언어의 독자성에 대한 존중을 취지로 수년 전부터 모든 외래어에 대해 원어 발음에 가장 가까운 한글표기방식을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또 '현행 문광부의 외래어표기법은 규정의 통일성을 위해 영어식 발음을 따르고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만, 언어에 따라서는 우리말 된소리가 현지음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라고도 했고요. 

저는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책읽기가 참 많이 불편했습니다. 출판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예전에 제가 잠깐 일했던 출판사에서는 국립국어원의 표기 규칙을 따르고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일본어 'つ' 는 창비출판사에서는 '쯔'로 국립국어원에서는 '쓰'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일본어도 몇몇 발음은 우리말의 된소리와 발음이 비슷하기는 합니다. 한국어로 표기하기에 불편한 점도 있고요. 하지만 출판사에서도 국립국어원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만큼, 표기규칙은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는대로 표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학교에서도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게시되어있는 표기규칙대로 일본어 표기방식이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교육과 실제 쓰이는 표기가 달라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위에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할 때 작품은 책에 있는 그대로, 작가는 국립국어원의 표기규칙과 학교에서의 수업내용에 따라 수정해서 올려봅니다. 

또, 번역 면에서도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빠, 타까 짱이 이질에 걸렸대요......" 하고 그런 표정을 지어가며 말했다. -p64, 시가 나오야의 <오오쯔 준끼찌> 중에서.
위에서 언급한 '그런' 표정이란 대체 어떤 표정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질에 걸린 듯한 표정이란 뜻일까요, 아니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던 걸까요? 문장을 보니 원문이 어떻게 쓰여있었을 지 짐작은 갑니다만, 그 동안 읽었던 근대단편문학 중 이런 식의 읽기 힘든 번역은 처음이었습니다. 문장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랄까요. 적확한 우리 표현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도 잘 압니다. 일본어는 생략과 축약의 미(?)를 갖는 언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번역할 때조차 그 미를 고스란히 가져와서는 안 되겠죠. 우리 정서에 맞게 고치는 것, 그것이 바로 '번역' 아니겠습니까. 이 작품집은 시장에 내놓은 일종의 '상품'입니다. 자연스럽지 않고 의미가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은 상품은 독자들로부터 원망만 사게 될 거에요

이러니저러지 불평이 많았지만 어쨌거나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이렇게 한 권으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만큼은 행복한 일입니다. 일본 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 독일,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 프랑스, 중국, 폴란드, 러시아 편도 출간된 것으로 아는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모두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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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1 1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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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1 2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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