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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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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오랫동안 계속되어온, 그리고 결코 결론지을 수 없는 의문이다. 언젠가 육체는 썩어 없어지고 그 속을 채우고 있던 무언가는 결국 잊혀지게 될 것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면, 과연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두 발로 걷고,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단지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혹자는 인간을 가장 위대한 동물이라고 표현했었다. 하지만 우리도 다른 개체가 내는 소리를 전부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 개체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 또한 미개한 종일지 모를 일이다. 사람이라는 것,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 많은 사람이 알고 싶어하고 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그 의문에 이 책이 말을 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2058년으로부터 조금은 더 먼 시간. 지금으로서는 까마득히 먼 미래. 지금까지의 세계는 고립되어 있었다. 2052년 첫 번째 역병이 전 세계를 휩쓴 이후에, 플라톤이 지배하는 공화국 안에서 사람들은 방벽 너머 바이러스를 지닌 또다른 존재가 넘어올까 하루하루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 주장했던 것처럼 이 세계는 철학자, 기술자, 군인, 노동자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와 떨어져 양육된다. 생후 1년이 지나면 모든 아이가 검사를 거쳐야 하고, 결과에 따라 특정 계급에 배치되거나 '제거'되는 세계. 

그 세계에서 2058년 아담 포드가 태어났다. 경계 근무를 서면서 방벽 너머에서 접근해 온 소녀 이브를 죽여야 했던 임무를 저버린 채 그녀를 구출하고자 했던 아담. 태초의 인간이 아담이었던 것처럼 아담 포드 역시 사람들에게 새로운 행동과 자신의 신념을 선보이며 사형대신 로봇 아트와 생활하게 된다. 처음에는 인공지능을 가진 아트를 인정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인간'과 '자유의지'에 대해 활발한 논쟁을 벌이는 그들. 그 논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결말은 충격적이다. 

이야기는 학술원에 들어가고자 하는 아낙스가 세 명의 면접관 앞에서 시험을 보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아담 포드의 인생에 대해 유독 관심을 갖게 된 아낙스와 면접관들의 질의응답, 홀로그램으로 재생되는 아담과 아트의 대화로 자칫 어려워질 수 있는 내용을 쉽게 풀어냈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 동안 수많은 책과 영화들이 소재로 삼아왔지만 이렇게 제대로 된 논쟁을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 동안의 작품들이 감성에 바탕을 두고 인간과 로봇을 논해왔다면 이 책은 좀 더 철학적이고 논리적이라고 할까. 

아담과 아트의 수많은 대화 중에서 아담은 마지막으로 아트에게 '현실을 개선하려 하는 인간의 의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감옥에 갇혀 아트와 논쟁하며, 자신이 아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를 평가받는 그 상황을 벗어나 자유를 얻고자 하는 열망. 그 열망이 자신에게는 있으나 아트에게는 없다 말했다. 하지만 결말 부분을 보면 이 작가는 언젠가 사람과 로봇이 어떤 부분에서는 거의 비슷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생각이) 영원할 거라 믿고 승리의 미소를 짓는 아담과 그 동안 아담과 논쟁하며 변화된 자신의 생각을 바이러스로 유포하는 아트는 변화된 내일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신념을 가진 존재다. 

그럼에도 아담이 말했던, 자신은 피부에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의 느낌이고, 자신을 덮치는 차가운 파도의 감각이며 절대 가 본 적 없지만 눈을 감고 상상해 볼 수 있는 장소이자 다른 이의 숨결과 그녀의 머리카락색이라는 문구에 마음이 출렁이는 것은 그것이 로봇은 절대 가질 수 없는 '인간'만의 감각이라는 믿음 때문일까.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 그것 또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요소가 후회와 반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현실을 개선하려는 자유의지가 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을 생각하는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논리적인 면에서는 언젠가 로봇과 동등한 입장에 서게 되는 날이 온다 해도 우리가 우리로 있을 수 있게 하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인간답게 하는 요소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싱거운 이야기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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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해도 될까요?
제임스 패터슨.가브리엘 샤보네트 지음, 조동섭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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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친구는 필요한 법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저만의 친구는 '책'이었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같이 뛰어놀던 친구도 물론 소중했지만, 저는 그 무엇보다 책을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이 사주신 30권짜리 전래동화집, 20권짜리 위인전, 백 몇 권의 여러 이야기책들. 어린 나이였지만 잠이 일찍 깨는 아침에 일어나 책을 읽곤 했던 저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저만의 착각인 걸까요, 이힛. 어쨌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즐거운 일이 있을 때도 저의 곁에는 늘 책이 함께 했어요. 책이 있어 버틸 수 있었던 일도, 책이 있었기 때문에 더 기뻤던 적도 많았습니다. 저에게는 숨 쉬고 같이 이야기하고 산책하는 제인의 상상 속 친구 '마이클'이 바로 책이었던 셈인데요, 그래도 마이클처럼 멋진 친구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흣. 

상상 속의 친구, 보통은 공포 영화 소재로 자주 등장하죠?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상상 속 친구 마이클은 다정하고 근사한 꽃미남입니다. 세 번이나 결혼한 아름다운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로 인해 더 외로운 소녀 제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친구가 되어주죠. 하지만 상상 속 친구인 마이클은 제인의 아홉 번째 생일날 그녀를 떠납니다.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것, 그것이 규칙인 겁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후, 제인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자신과 마이클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크게 성공한 후 이제 영화로 제작하려는 단계에 있기도 해요. 하지만 엄마의 그늘 밑에서 여전히 외롭고, 시덥잖은 남자에게 휘둘리며 상처받는 그녀는 꼬마 제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제인 앞에 마이클이, 상상 속 친구라고만 믿었던 그 마이클이 짜잔! 하고 등장한 겁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궁금해했던 건 마이클의 존재였어요. 분명히 제인의 상상 속 친구일텐데 어떻게 현실에 존재하는 걸까, 어떻게 제인과 사랑에 빠지는 걸까, 짐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이클은 '상상 속 친구'가 직업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제인이 무대와 영화를 제작하는 것처럼 마이클은 상상 속 친구가 되어주는 일을 하는 거죠. 물론 다음 친구를 만나기 전에 휴가도 얻을 수 있답니다. 

고민과 어려움을 헤치고 두 사람은 결국 사랑을 이룹니다. 평소라면 손에 들지조차 않았을 내용의 아주 심플한 사랑이야기지만, 역시 때가 때잖아요. 며칠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틈을 타서 읽었더니 나름 달콤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대체 봄은 어디쯤 와 있는 걸까요. 봄이 오기는 하는 걸까요.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읽어야 제 격인 이 책을 위해서라도 너무 늦지 않게 봄이 와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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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아이들
양석일 지음, 김응교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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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자리가 사나웠다. 긴장이 모두 풀려버린 휴일 밤, 다시 일주일을 시작하기 위해 약간의 긴장 상태로 돌아가면 그렇지 않아도 잠이 잘 안 오는데, 밤에 이 책을 읽은 것이 화근이었다. 일요일밤에 오지 않던 잠은 한층 더 나를 외면했고 까막까막 잠든 꿈 속에서조차 나는 편안하지 못했다. 어떻게 감히 편안하길 바랄 수 있으랴. 한밤중이 아니라 햇살이 밝은 낮에 읽어도 먹구름을 불러올 책이었는데. 잊고 있던 책을 급한 마음에 집어든 것이 잘못이라고, 조금 더 이 책을 빨리 챙길 걸 그랬다고, 그것도 아니면 아예 여유를 두고 다음 날 환한 대낮부터 읽었어야 했다고 몇 번이나 후회를 했는지 모르겠다. 결국, 당연한 이치로, 아침부터 눈꺼풀은 무겁고 뱃속도 더부룩하며 몸이 슬슬 아파올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 작품을 접한 건 어느 일요일 낮, 영화를 소개해주는 한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일본의 상큼이 츠마부키 사토시와 꽃중년을 대표하는 에구치 요스케가 화면에 잡힌 것을, 그 날의 내가 우연히 눈에 담았다. '저 사람들이 저런 영화도 찍었어?'라는 단순한 호기심에 TV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그러나 곧, 불유쾌한 기분으로 그 앞을 떠나고 만다. 그런 영화를, 그런 이야기를 활자로 접하려니 더욱 힘이 들었다. 영상을 볼 때처럼 눈도 감을 수 없고 귀도 막을 수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다고,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도 했다.

재일한국인으로 태어난 작가 양석일은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여행한 후 극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그 곳 아이들의 실태를 목격하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인 '스트리트 칠드런' 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결국 이기적이고 잔혹하며 무자비한 어른들의 기록인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효도'라고 불렀다. 어린 딸을 팔아서, 팔린 그 딸이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도 알고 있으면서, 고작 냉장고와 텔레비전을 사고 주위의 부러움을 얻기 위해 딸을 팔면서, 그것을 '효도'라고 불렀다. 그들은 같은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 아이들을 인신매매해 매춘을 시키는 충과도, 아이들을 통해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타이로 몰려드는 사람들과도 다르지 않다. 아이들의 고통은 매춘에서 끝나지 않는다. 팔린 아이들은 또 다시 비싼 값에 장기를 내놓고, 어째서 이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는 지 깨닫지도 못한 채 수술대 위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그런 역겨운 사람들 속에 NGO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아이들을 교육시키고자 노력하고, 매춘 현장을 붙잡아 정부의 도움을 받기 원하지만 정부와 경찰은 그저 묵인할 뿐이다. 실종되는 아이 몇 천 명, 매춘 하는 아이 또 몇 만 명. 도움의 손길은 많지 않고 집회 도중 살해 당하며, 무엇보다도, 그들이 저지하고자 하는 악행은 그늘 속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 속에서 NGO단체의 활동은,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일본인 자원봉사자 게이코의 마지막 대사에는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현실을 외면할 수는 있지만, 자신으로부터는 영원히 도망칠 수 없다는 말.  작가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소설을 쓴다고 해서 현실이 금방 바뀌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다' 는 것, 그렇기에 어떤 방향에서는 새로운 흐름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둠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수위 높은 묘사는 읽어내리기에 무척 버거웠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보다 더욱 냉혹하리라. 부족하게도 나는,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그저 그들이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마련되기를 마음속으로나마 빌어볼 뿐이다.


 

 아버지가 무슨 말씀 하시는지 잘 알겠지? 이 년 전에 야이룬 언니도 가족을 위해서 돈 벌러 갔단다. 야이룬이 번 돈 덕분에 이렇게 냉장고도 텔레비전도 살 수 있었어. 마을사람들도 모두 부러워하지. 효성 지극한 딸이 있으니 행복하다고 말이야. 너도 언니처럼 할 때가 온 거야. 알겠지?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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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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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일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순간에서조차 가슴이 떨리고 마음이 불안하다. 금방이라도 큰 일이 일어날 듯, 혹여라도 안타까운 순간을 내 이 두 눈으로 보게 될까 두려워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가볍지 않다. 평소라면 멀리했을 문장들의 반복,  바람에 몸을 싣고 날아가는 풍선의 공기가 빠진 것처럼 아무 뜻도 없이 허망하게 나열된 우리말의 추상적인 인상이, 이 책에서만큼은 과연 그러할만 하다, 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깊고 깊은 세자의 고독이 스며있기 때문일까. 오랜 기다림의 세월동안 이도저도 하지 못한 채 스산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한없이 마음을 다잡았을 그. 소현은 곧 조선이었고 조선은 곧 그, 소현이었다. 

인조의 장자이자 세자. 병자호란을 겪고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그. 소현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학질로 인한 병사라고 나와 있으나, 오랜 세월을 청나라에서 지낸 그를 정치적인 전략에 의해 암살했다는 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무엇이 조선과 그를, 아비와 아들 사이를 갈라놓게 만들었을까. '멀리 떠나 있는 아들을 생각할 때도 내가 몸이 아팠다. 베어내지 못하는 살이 붙어 있는 자리에서 아팠다. 내가 너를 생각하면 몸이 더욱 아팠다. 불로 지진 침을 맞아도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며 아들을 볼모로 보낸 아비의 마음을 토로한 인조가 세자를 역적의 무리로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은 정치에서 배제할 수 없는 더러움인가, 인조 자신의 허약함인가. 그도 아니면 명을 섬기고 청을 배척해야 마땅한 세자의 신분으로 청의 좋은 것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꾀한 세자에 대한 배신감인가. 역사는 그 무엇도 말해주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은 다행히(?) 안타까운 그의 최후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청에 끌려가 제약된 생활을 해야했던 그가 느꼈던 고독과 아비의 진심에 대한 슬픔, 또 한 명의 아비인 자신이 원손에 대해 느껴야 하는 괴로움과 약한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 조선 백성들의 애환과 삶이 담겨 있다. 한 마리 노루에 비유되었던 어쩔 수 없는 스스로의 약함. 때를 기다리고 기다려 언젠가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다시 그 길을 거슬러 올라와 모든 것을 갚아주겠다는 다짐. 눈 앞에서 이루어지는 청나라 조정의 권력 다툼 속에서 앞길을 가늠해야 했던 고민. 그런 소현의 주변 사람들의 생활도 순탄치만은 않다. 

약자의 나라에서 태어난 죄만으로 노예로 끌려와 역관이 된 만상.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도 아니고 자존심도 아니며 오직 오래 살아남는 것 뿐이다. 종실의 여식으로 태어났으나 대학사의 둘째 여인이 된 흔. 차마 죽을 수 없어 살아남은 그녀에게 사랑은 사치였으나 그 사랑이 그녀를 살게 했으며 세자의 영광을 꿈꾸게 만들었다. 세자의 사람이고자 했던 석경. 한많은 여인 흔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 자신의 심약함으로 운명의 굴레에서 발을 빼지 못했으나 마지막까지 세자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했던 그 또한 조선의 비극으로 태어난 인물일 것이다. 그리고 세자의 곁에서 함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던 봉림대군. 그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그래도 덜 힘들었다 생각하는 세자 옆에서 봉림은 무슨 생각을 했을 것인가. 그가 조선의 왕이 될 것이라 차마 생각은 해보았던가. 

역사소설을 읽고 나면 늘 가슴이 답답하고 남는 것은 수많은 의문 뿐이다. 아무것도 명확해지지 않고 언제나 제자리걸음 뿐인 사실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들이라 일컬어졌던 그들이 과연 진정으로 높으신 분들이었던가, 노비의 생활이나 그들의 생활이나 그리 큰 차이 없이 충분히 고통스러운 삶이 아니었던가 싶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또 해결될 수도 없다는 무거운 사실이 돌처럼 마음을 내리누른다. 이제야 겨우, 벚꽃이 우수수지는 이 계절의 그림이, 소현세자의 한숨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은, 그의 고독과 허망함에 닮아 있기 때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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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 자라지 않는 아이 유유와 아빠의 일곱 해 여행
마리우스 세라 지음, 고인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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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저희반에는 J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그저 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아이였다는 정도로만 해둘까요. 또래 친구들보다 나이도 두 살 정도 많고 이해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 누구보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예쁜 미소를 가지고 있는 아이에요, J는. 6교시가 끝나면 꼭 저에게 와서 '안녕히 계세요' 꾸벅 인사하고 가는 모습에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들도 정말 귀엽다, 예쁘다고 칭찬하셨고 수업 시간에 만든 과자며 케이크는 꼭 저에게 가져와 선물로 주고 가곤 했지요. 그래서 반 친구들도 J를 귀여워하며 잘 어울렸고 장난도 곧잘 치곤 했답니다. J가 그렇게 생활할 수 있게 되기까지, J의 밝은 천성도 한 몫 했겠지만 결코 그 가족들의 노력과 눈물을 배제할 수는 없겠죠. 

뇌성마비인 유유는 85퍼센트의 장해를 지닌 장애인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간질 발작을 일으키며 먹는 일도 입이 아닌 위로 호스를 연결해서 해결해야 하죠. 뛰거나 춤을 추는 것은 커녕 침대에서 미끄러져 떨어져도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늘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 걱정하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입니다. 유유의 아버지 마리우스 세라는 그런 유유를 데리고 가능한 한 많이 여행을 다니자, 라고 결심합니다.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유유도 보고 느낄 것이라 믿는 거에요. 여행 중에 찾아온 발작, 위급한 상황,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아이의 사망과 일상에서 불쑥불쑥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슬픔이 이 한 권의 책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유유 가족들의 생활이 눈물로만 얼룩졌던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유이스(유유의 이름) 는 나의 둘째 아이다', '우리 부부와 딸아이는 유이스가 15퍼센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고 돕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고통스러운 자극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더 자주 찾아온다' 와 같은 문구들을 통해 아빠 마리우스 세라가 아들 유유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가족들이 유유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유를 위해 집을 개조하고, 여행을 다니죠. 그리고 아빠는 자신이 오랫동안 바란 꿈을 이 책을 통해 이룬 것 같습니다. 

아빠의 꿈은 유유가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어요. 어느 날 조카 아이가 멋지고 우아하게 춤을 추는 장면을 보면서 '내 아이는 저렇게 못할 거야 ' 라는 생각에 눈물을 떨구었던 아빠는, 비록 사진으로나마 그의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되었죠. 책의 내용이 어떻더라도 마지막에 유유가 힘차게 달리고 있는 사진만으로도 무한한 말들과 감동이 전달될 것이라 믿어요. 

역자 후기를 읽는 동안 가슴이 쿵 울리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유유가 2009년 7월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가족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유유의 죽음을 한없이 슬퍼하기보다는 유유가 그들에게 주었던 기쁨과 환희의 순간에 감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유유의 아팠던 모습보다도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겠죠.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사랑과 기쁨을 선사한 아이. 그 유유가 지금도 책 속에서 멋지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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