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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평점 :
어째서일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순간에서조차 가슴이 떨리고 마음이 불안하다. 금방이라도 큰 일이 일어날 듯, 혹여라도 안타까운 순간을 내 이 두 눈으로 보게 될까 두려워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가볍지 않다. 평소라면 멀리했을 문장들의 반복, 바람에 몸을 싣고 날아가는 풍선의 공기가 빠진 것처럼 아무 뜻도 없이 허망하게 나열된 우리말의 추상적인 인상이, 이 책에서만큼은 과연 그러할만 하다, 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은 깊고 깊은 세자의 고독이 스며있기 때문일까. 오랜 기다림의 세월동안 이도저도 하지 못한 채 스산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한없이 마음을 다잡았을 그. 소현은 곧 조선이었고 조선은 곧 그, 소현이었다.
인조의 장자이자 세자. 병자호란을 겪고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그. 소현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학질로 인한 병사라고 나와 있으나, 오랜 세월을 청나라에서 지낸 그를 정치적인 전략에 의해 암살했다는 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무엇이 조선과 그를, 아비와 아들 사이를 갈라놓게 만들었을까. '멀리 떠나 있는 아들을 생각할 때도 내가 몸이 아팠다. 베어내지 못하는 살이 붙어 있는 자리에서 아팠다. 내가 너를 생각하면 몸이 더욱 아팠다. 불로 지진 침을 맞아도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며 아들을 볼모로 보낸 아비의 마음을 토로한 인조가 세자를 역적의 무리로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은 정치에서 배제할 수 없는 더러움인가, 인조 자신의 허약함인가. 그도 아니면 명을 섬기고 청을 배척해야 마땅한 세자의 신분으로 청의 좋은 것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꾀한 세자에 대한 배신감인가. 역사는 그 무엇도 말해주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은 다행히(?) 안타까운 그의 최후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청에 끌려가 제약된 생활을 해야했던 그가 느꼈던 고독과 아비의 진심에 대한 슬픔, 또 한 명의 아비인 자신이 원손에 대해 느껴야 하는 괴로움과 약한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 조선 백성들의 애환과 삶이 담겨 있다. 한 마리 노루에 비유되었던 어쩔 수 없는 스스로의 약함. 때를 기다리고 기다려 언젠가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다시 그 길을 거슬러 올라와 모든 것을 갚아주겠다는 다짐. 눈 앞에서 이루어지는 청나라 조정의 권력 다툼 속에서 앞길을 가늠해야 했던 고민. 그런 소현의 주변 사람들의 생활도 순탄치만은 않다.
약자의 나라에서 태어난 죄만으로 노예로 끌려와 역관이 된 만상.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도 아니고 자존심도 아니며 오직 오래 살아남는 것 뿐이다. 종실의 여식으로 태어났으나 대학사의 둘째 여인이 된 흔. 차마 죽을 수 없어 살아남은 그녀에게 사랑은 사치였으나 그 사랑이 그녀를 살게 했으며 세자의 영광을 꿈꾸게 만들었다. 세자의 사람이고자 했던 석경. 한많은 여인 흔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 자신의 심약함으로 운명의 굴레에서 발을 빼지 못했으나 마지막까지 세자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했던 그 또한 조선의 비극으로 태어난 인물일 것이다. 그리고 세자의 곁에서 함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던 봉림대군. 그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그래도 덜 힘들었다 생각하는 세자 옆에서 봉림은 무슨 생각을 했을 것인가. 그가 조선의 왕이 될 것이라 차마 생각은 해보았던가.
역사소설을 읽고 나면 늘 가슴이 답답하고 남는 것은 수많은 의문 뿐이다. 아무것도 명확해지지 않고 언제나 제자리걸음 뿐인 사실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들이라 일컬어졌던 그들이 과연 진정으로 높으신 분들이었던가, 노비의 생활이나 그들의 생활이나 그리 큰 차이 없이 충분히 고통스러운 삶이 아니었던가 싶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고, 또 해결될 수도 없다는 무거운 사실이 돌처럼 마음을 내리누른다. 이제야 겨우, 벚꽃이 우수수지는 이 계절의 그림이, 소현세자의 한숨과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은, 그의 고독과 허망함에 닮아 있기 때문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