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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 자라지 않는 아이 유유와 아빠의 일곱 해 여행
마리우스 세라 지음, 고인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작년 저희반에는 J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그저 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아이였다는 정도로만 해둘까요. 또래 친구들보다 나이도 두 살 정도 많고 이해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 누구보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예쁜 미소를 가지고 있는 아이에요, J는. 6교시가 끝나면 꼭 저에게 와서 '안녕히 계세요' 꾸벅 인사하고 가는 모습에 교무실의 다른 선생님들도 정말 귀엽다, 예쁘다고 칭찬하셨고 수업 시간에 만든 과자며 케이크는 꼭 저에게 가져와 선물로 주고 가곤 했지요. 그래서 반 친구들도 J를 귀여워하며 잘 어울렸고 장난도 곧잘 치곤 했답니다. J가 그렇게 생활할 수 있게 되기까지, J의 밝은 천성도 한 몫 했겠지만 결코 그 가족들의 노력과 눈물을 배제할 수는 없겠죠.
뇌성마비인 유유는 85퍼센트의 장해를 지닌 장애인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간질 발작을 일으키며 먹는 일도 입이 아닌 위로 호스를 연결해서 해결해야 하죠. 뛰거나 춤을 추는 것은 커녕 침대에서 미끄러져 떨어져도 아무 저항도 할 수 없는, 늘 무슨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 걱정하며 살아가야 하는 아이입니다. 유유의 아버지 마리우스 세라는 그런 유유를 데리고 가능한 한 많이 여행을 다니자, 라고 결심합니다.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유유도 보고 느낄 것이라 믿는 거에요. 여행 중에 찾아온 발작, 위급한 상황,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아이의 사망과 일상에서 불쑥불쑥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슬픔이 이 한 권의 책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유유 가족들의 생활이 눈물로만 얼룩졌던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유이스(유유의 이름) 는 나의 둘째 아이다', '우리 부부와 딸아이는 유이스가 15퍼센트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고 돕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고통스러운 자극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기쁨과 환희의 순간이 더 자주 찾아온다' 와 같은 문구들을 통해 아빠 마리우스 세라가 아들 유유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가족들이 유유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유를 위해 집을 개조하고, 여행을 다니죠. 그리고 아빠는 자신이 오랫동안 바란 꿈을 이 책을 통해 이룬 것 같습니다.
아빠의 꿈은 유유가 달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어요. 어느 날 조카 아이가 멋지고 우아하게 춤을 추는 장면을 보면서 '내 아이는 저렇게 못할 거야 ' 라는 생각에 눈물을 떨구었던 아빠는, 비록 사진으로나마 그의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되었죠. 책의 내용이 어떻더라도 마지막에 유유가 힘차게 달리고 있는 사진만으로도 무한한 말들과 감동이 전달될 것이라 믿어요.
역자 후기를 읽는 동안 가슴이 쿵 울리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유유가 2009년 7월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가족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유유의 죽음을 한없이 슬퍼하기보다는 유유가 그들에게 주었던 기쁨과 환희의 순간에 감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유유의 아팠던 모습보다도 힘차게 달리는 모습을 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되겠죠.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사랑과 기쁨을 선사한 아이. 그 유유가 지금도 책 속에서 멋지게 달려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