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도착의 론도]를 읽은 이후 오리하라 이치의 마법에 '기꺼이' 빠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한밤, 그의 서술트릭에 뒷통수를 맞은 나는 멍~하게 다시 책장을 뒤적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 후로 '오리하라 이치=서술트릭의 대가'라는 공식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도착의 론도]를 읽은 후  '○○자' 시리즈 중 [행방불명자]를 덥석 읽었지만, 너무 크게 기대를 해서인지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계속 출간되는 [원죄자]와 이 [실종자]도 읽고 나서 실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살짝 망설였던 것은 사실. [도착의 론도]에서 받은 충격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행방불명자]보다는 한결 나은 작품인 듯 하다. 
 
사회파 미스터리 중에서는 소년법을 다룬 작품에 좀 더 관심이 간다. 가해자가 미성년자라고 해서 그를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하지 못한다면 가해자는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남은 인생을 어두운 그림자 밑에서 살아야 하나, 용서해야 한다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응어리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도 미성년자들의 범죄가 성인의 그것을 넘어선 경우가 많다. '재미로 그랬다, 단지 놀려준 것 뿐이다' 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는 매스컴을 접하면 더욱 오싹하다. [실종자] 역시 그런 소년법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이타마 현 구키 시. 한 달 전 실종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백골의 시체 한 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각각 '유다의 아들'과 '유다'라는 쪽지가 남겨진 채. 백골은 15년 전 실종된 여중생으로 밝혀지고 그 후 두 구의 백골이 더 발견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그런 와중에 두 명의 여성이 더 실종되고, 과거의 실종 사건에서 범인으로 의심받았던 용의자가 시체로 발견되기에 이른다. 그 마을에서 상해 사건을 일으키고 소년원에 수감되었던 '소년 A'. 범인을 밝히기 위해 르포라이터 다카미네 류이치로와 칸자키 유미코가 위험을 무릅쓰고 사건에 뛰어든다. 

작품에 등장하는 '소년 A'는 우리가 방송에서 접하는 바로 그 'A'다. 누군가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우리 사회는 가해자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다. 그 엄격함은 성인보다 미성년자의 경우 더 두드러지는데, 미성년자의 경우 잘못을 뉘우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미성년자인 가해자에게 터무니없는 환상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어리니까, 아직 뭘 모르니까' 라는 인식으로 소년법은 그들에게 너그럽다. 물론 그 중에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느끼고 평생을 속죄하며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접하는 미성년자 범죄의 양상을 보면, 그들이 과연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일 뿐'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들이 타인에게 입힌 상처는 어떻게 치료받아야 할까. 

소년법을 다룬 작품인만큼 역시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지만,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긴장감은 떨어지는 편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트릭으로 설정한 '소년 A'와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부분에 속아넘어가지 않고 범인을 알아챌 수 있다. 이야기가 조금 늘어지는 느낌이 드는 바람에 범인을 쉽게 추측하게 된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 내가 원하는 '뒷통수 얻어맞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해 다소 아쉬운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빵가게 재습격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들어 무척 인기를 얻고 있는 무라카미 선생의 단편집입니다. (작가마다 어울리는 호칭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미야베 미유키는 미미 여사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을 무라카미 선생으로 부르니 색다르군요 ^.^) 일본문학을 좋아하고 즐기는 분들이라면 확실히, 이 작가는 무시할 수 없죠. 교원 임용고시에서도 한자로 이 작가의 이름을 쓰라는 문제가 나올 정도로 일본 현대문학에 한 획을 그은 작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상실의 시대]를 접한 이후, 그 기묘한 분위기에 매혹당했답니다. 맨 처음 읽은 작품이라 그런지 저는 아직도 [상실의 시대]를 가장 좋아해요. 요즘 출간된 [1Q84]도 평이 좋던데 어쩐지 아까운 마음에 아직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집 역시 한 마디로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이에요. 총 여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모든 이야기가 간단한 듯 하면서도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은, 그런 소설들입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어디서 무엇을 보고 상상하게 되었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묘사도 재미있고 푹 빠지게 되는 다채로움을 자랑합니다. 무라카미 선생의 작품은 (무라카미 선생 뿐만 아니라 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작품 또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적용해서 해석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저는 그런 쪽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작품의 분위기에 푹 빠지는 것만으로 만족했습니다. 문학작품을 읽는 데 꼭 정해진 틀 안에서 해석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수능시험도 아니고. 

앞서 다채로움을 자랑한다고 말씀드렸지만, 그것은 이야기의 소재와 분위기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작품 안에서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주제는 아마도 '상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표제작인 <빵가게 재습격>에서 주인공은 과거 동료와 빵가게를 습격한 적이 있습니다. 큰 가게를 덮칠 필요도 없이 그저 자신들의 굶주림만을 채워줄 만큼의 빵만 훔쳤던 그들의 관계는, 그 일이 있는 후 단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틀어지게 되죠. 옛날 빵가게를 습격했을 때 주인은 그들에게 바그너의 음악을 다 들어줄 것을 부탁했었고, 주인공은 그것이 어떤 저주가 되어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굶주림을, 어쩌면 그 때보다 더한 공복감을 주인공은 지금 아내와 다시 겪고 있는 겁니다. 아내는 이제 자신이 주인공의 파트너가 되었으니 그 저주에 자신도 걸렸다면서 그 저주를 풀 유일한 방법은 다시 한 번 빵가게를 습격하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주인공의 '빵가게 재습격'은 시작되는 거죠.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상실감과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쩌면 주인공은 자신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언가가 변해가고 바뀌어가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을 다쳤던 것이 아니었을까, 인정하지 않았지만 친구와의 관계가 끊어지게 된 것에 엄청난 상실감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공복감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가 해요. 제가 예전에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그랬거든요. 무엇이든 양껏, 한국에 있을 때 먹던 양보다 배를 먹어도 계속 배가 고픈 거에요.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서 병원에 가봐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생활에 적응하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면서 그런 증상도 사라졌습니다. 주인공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어느 밤 갑자기 공복감을 느꼈고, 아내와 예전 벌였던 범죄(?)를 (범죄가 맞긴 한데, 어쩐지 안 어울리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요;;) 되풀이함으로써 가슴 속에 응어리졌던 무언가가 풀어졌던 게 아닐까요? 이 아내라는 사람, 평범한 시각으로 보면 참 신비한데(과연 인간이 맞긴 할까 라는) 주인공에게 있어 치료제나 다름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각각의 작품이 다른 분위기를 취하고 있지만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코끼리의 소멸>도 그렇고, <패밀리 어페어>에 등장하는 방황하는 주인공도요. 그런 상실감은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쌍둥이들이 어떤 존재였는 지 모르지만 그들을 잃고 상실감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섬을 연상하게 했어요. <로마제국의 붕괴*1881년의 인디언 봉기*히틀러의 폴란드 침입*그리고 강풍세계>와 <태엽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은 약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결국은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량이 매우 적은 단편들의 모음이지만 잘 찾아보면 동일인물로 생각되는 사람이 등장해요. 그 이름은 비밀로 해두겠습니다. 그래야 찾아보는 재미가 생길테니까요. 호홋. 찬바람이 불길래 거기에 어울리는 분위기의 책이 읽고 싶었는데, 역시 무라카미 선생의 분위기는 좋군요. 책을 읽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아~좋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 오랜만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 서브 로사 4 - 베누스의 주사위 로마 서브 로사 4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돌아온 <로마 서브 로사> 시리즈입니다! 비교적 빠른 속도로 출간되다가 한동안 뜸해서 어찌 된 일인지 쪼콤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요렇게 무사히 4권이 나와서 기쁜 마음, 한량 없습니다. 쿄쿄. 제가 워낙 미스터리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로마 서브 로사>의 매력이 미스터리가 전부는 아니거든요. 솔직히, 이 작품에서 미스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다고 볼 수 없답니다. 그보다는 그 시대 로마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내려고 노력한 흔적과 작가가 들려주는 수많은 뒷이야기들에 빠져드는 느낌을 애정하는 거죠. 내가 결코 살아볼 수 없는 세계, 그 세계 속에서도 사람들이 웃고 울고 사랑하고 증오하며 만들어내는 온갖 드라마들이 정말 일품입니다. 

우리의 멋쟁이, 고르디아누스가 어느 새 오십 대를 맞이했습니다. 멋진 남자의 매력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나이를 먹었을 때 더 깊은 맛을 내는 법! 이라고 믿고 싶은 저의 눈에 이 고르디아누스는 여전히 매력남입니다. 그의 큰아들 에코는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러운 쌍둥이를 둔 가장이 되었고, 둘째 아들 메토는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카이사르 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이집트 노예였으나 사랑에 빠져 아내로 맞아들인 아내 베테스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고르디아나도 벌써 열 세 살이 되었으니 세월의 흐름이란!  고르디아누스의 '더듬이' 도 소소한 일거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평온한 생활. 그 평온한 세상을 깨트리기 위해 두 사람이 그의 집 문을 두드립니다. 

척 보기에도 요상한 행색을 한 두 사람. 한 사람은 대모신 키벨레를 모시는 환관 사제인 트리고니온.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고르디아누스가 이집트에 머물 때 배움을 얻었던 스승 디오입니다. 로마의 세력 안에 들어온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은 독립을 원하는 자국의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다가 로마로 피신해있었는데요, 그 대신 그의 딸 베레니케를 여왕으로 옹립하고자 이집트에서 100인 사절단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온갖 암살과 위협에 사절단은 해체되고 사절단의 수장이었던 디오마저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고르디아누스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족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고르디아누스는 그의 청을 거절하고, 그 날 디오는 누군가에게 무참히 목숨을 잃습니다. 그 사건을 해결해달라며 매력적인 여인 클로디아가 접근해오고, 고르디아누스는 다시 한 번 그의 '더듬이'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매번 그랬지만 이번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 역시 복잡하면서도 단순해요. 진실을 찾아 복잡한 길을 돌고돌았지만 그 끝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단순하죠. 게다가 등장인물들조차 쉽지 않습니다. 이집트 패권을 차지하려는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그들을 방패로 삼아 권력을 차지하려는 클로디우스와 저지하려는 키케로, 카일리우스. 그리고 그 중심에 디오 살인사건이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정치'의 탈을 쓴 음모와 소문, 배신과 모함입니다. 뱀의 혀를 가진 듯한 키케로가 펼치는 법정공방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 [임페리움] 에서 보여주었던 정의로운 모습은 사라지고, 제 머리속에서 키케로는 약삭빠른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또 대모신을 모시는 트리고니온과 같은 갈루스(환관 사제) 와 축제를 등장시켜 로마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한층 높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누스의 주사위'는 던질 때마다 새로운 수가 나오는 주사위 수라고 해요. 승리의 확률이 높다고 한다는데 이 작품에 꼭 맞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세요? 파헤치고 파헤칠수록 드러나는 새로운 사실들. 새롭게 드러나는 사실들이 많아질수록 사건은 진실에 가까워지죠. 승리는 역시 우리의 멋쟁이 고르디아누스의 것이라는 건 의심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늘 깔끔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고르디아누스이지만, 그도 가족 문제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3권에서의 메토와의 갈등도 그렇고, 앞으로는 딸 고르디아나가 속을 좀 썩일 것 같네요. 베테스다를 똑닮아서 당차고 똘똘한 고르디아나와 아버지로서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고르디아누스가 앞으로 어떤 부녀관계를 보여줄 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이번 편은 특히 이야기가 풍부해서 읽는 즐거움이 컸어요. 1권 이후 제대로 된 '로마 서브 로사'를 보여준 작품인 것 같습니다. 조금 오랜 기간을 두고 출간되어서 그런 걸까요? 이런 큰 재미를 맛볼 수 있다면 기다리는 괴로움도 겪을만 한 듯 싶습니다. 아아, 즐거웠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샤와 코기
타샤 튜더 지음, 김용지 옮김 / 아인스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쿄쿄. 요렇게 사랑스러운 책이 또 있을까요?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따뜻한 책입니다. 타샤 할머이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도, 저처럼 이름은 들어보셨을 거에요. 저도 이 할머이에 대해 아는 건 많지 않아요. 그저 전원생활을 하면서 여러 동물을 키우고, 수많은 그림책을 출간했다는 정도랄까요. 제가 이 타샤 할머이에 대히 알게 된 건 저희 엄마 덕분이었답니다. 시골생활을 쪼콤 동경하시는 저희 엄마가 어디선가 이 타샤 할머이에 대해 듣고 저에게 타샤 할머이와 관련된 책을 전부 구입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지금 저희집 거실 한 켠에는 타샤 할머이가 지은 책들이 촤라락, 진열되어 있어요. 집에 오는 친척들이 다 눈을 빛내며 군침을 삼키곤 한답니다. 

하지만 워낙 다른 읽을거리를 쌓아놓고 있는 전 정작 제가 구입한 타샤 할머이 책들을 자세히 읽어볼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 [타샤와 코기] 책을 만나게 된 거죠.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타샤 할머이와 강아지 종류 중 하나인 코기 개들에 관한 이야기에요. 1959년에 기르기 시작한 미스터B를 시작으로 2000년에 태어난 메기까지 수많은 코기와 함께 한 아름다운 이야기랍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글자보다 사진들이 풍부하다는 점이에요. 사진만 보아도 타샤 할머이가 이 강아지들을 얼마나 사랑했는 지 저절로 전해져 오거든요. 

전 사실 이 코기 종을 일본에서 처음 봤어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 때 본 강아지가 정말 이 코기 종이 맞는 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처음 이런 모습을 한 개를 봤을 때 맨 처음 든 생각은 '다리가 무척 짧구나!'였습니다. 북슬북슬한 노란 털은 탐스럽지만 다리가 무척 짧고 여우와 흡사해서 그다지 정이 가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한 수많은 코기 종을 보고 있자니, 꼭 껴안아 보고 싶을 정도로 정이 담뿍 들어버렸답니다. 캬캬. 정말 사랑스러워요. 특히 2000년에 태어난 메기의 표정은 정말이지 '이 개가 뭘 좀 아는구나'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답니다. 아니, 개가 어떻게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걸까요! 

타샤 할머이는 코기 종을 등장시킨 그림책 [코기빌 마을 축제]를 통해 코기의 인기를 높인 점을 평가받아 1983년 미국 펨브로크웰시코기 클럽의 명예회원으로도 뽑혔다고 합니다. (이런 클럽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그 책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얻은 인세 수입으로 꿈에 그리던 버몬트 주 산 속에 땅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하니, 살아있는 코기나 그림책 속의 코기나 타샤 할머이에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입니다. 쿄쿄. 쪼콤 가격이 세긴 하지만 타샤 할머이와 코기들의 영혼의 교감을 엿보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책인 듯 합니다. 아웅, 사랑스러워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틸다
빅토르 로다토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열세 살 소녀 마틸다, 죽은 언니의 삶을 스토킹하다-라는 문구만 보고 확 덤벼들었다가, 나가떨어지기를 몇 번.  이렇게 어려운 책은 오랜만입니다. 화자가 어린 소녀인 데다 서술체가 아니라 대화체로 쓰여 있어서 방심했던 탓일까요? 이 소녀, 정말 심오한 정신 세계를 가지고 있어요. 저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정신 세계를요. 게다가 말투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만큼 톡톡 튀고 화제 또한 탱탱볼처럼 탱탱. 여기 저기 튀었다가 부딪히기 일쑤입니다. 덕분에 책을 읽는 기간이 엄청 늘어져 버렸습니다. 영화 <레옹>의 '마틸다'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이 소녀 마틸다, 그녀는 대체 어떤 아이인 걸까요.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틸다에게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던 우수한 유전자를 지녔던 언니 헬렌이 있었어요. 네, 있었습니다. 그 언니 헬렌은 이미 이 세상에 없거든요. 마틸다의 이야기에 의하면 달려오는 기차에 치었다고 합니다. 헬렌을 밀었던 남자가 누구였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마틸다의 기를 죽였던 헬렌. 언니의 죽음 이후 금이 가기 시작한 가족 관계에 위기를 느낀 마틸다는 스스로 언니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리라 다짐하죠. 헬렌의 이메일부터 조사하기 시작한 마틸다는 생전의 그녀 삶 속으로 깊이 침투하여 언니가 가지고 있던 비밀의 한 자락을 움켜쥡니다. 사랑스러운 소녀보다는 어쩐지 말괄량이 삐삐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 마틸다는 과연 언니의 죽음의 비밀을 밝히고 가족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마틸다] 를 제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또래의 아이들이 현실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일 거에요. 아니면 우리가 너무 십대 초반의 소녀들의 마음을 얕잡아보고 있었던 걸까요. 제가 지켜봐온 십대 소녀들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우니까요. 당차고 똘똘하고 머뭇거리지 않으며 똑바로 자신의 길을 향해 달려나가는 마틸다는 그녀의 부모들보다 더 그녀를 대단한 인물로 보이게 해요. 하지만 그런 겉모습 안에는 역시 언니의 죽음으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는 또 다른 소녀가 발버둥치고 있었던 거겠죠. 언니의 죽음의 비밀을 알아내고, 가족의 끈을 어떻게든 이어보겠다고 애쓰는 소녀는 결국, 다른 소녀들이 그렇듯 한 단계 더 높은 계단을 밟게 됩니다. 다만 그 성장이 마틸다에게는 좀 더 가혹했던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책 뒷면 날개에는 오프라 윈프리가 추천하는 여덟가지 질문이 실려 있습니다. 저는 그 중 -좋은 결말보다는 불길한 끝을 기다릴 때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그 불길한 끝이 다가오지 않는 것이겠죠. 생각하기도 싫지만 불길한 끝을 상상해본다는 건, 정말 그것이 나에게 다가왔을 때 조금이라도 더 버틸 수 있게 미리 마음단련을 하기 위함이지 않을까요. 문득 죽음과 애도와 성장. 이 세 가지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