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거닐記 - 함께 걸어 보면 좋은 서울 가이드 북
표현준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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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태어나고 휴직한 얼마동안은 요일 감각이 없었습니다. 갓난아기를 데리고 어디를 간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거든요. 그래서 주말도 월화수목금금금의 느낌으로 육아가 계속되었죠. 하지만 이제 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 걷고 뛰게 되니 마치 직장인처럼 주말이 기다려졌어요. 평일에도 아기와 함께 자주 산책을 나가는 편이지만 주말은 약간 느긋한 기분으로, 아침도 천천히, 동작도 천천히 하게 되더라구요. 무엇보다 짝꿍과 아기와 함께 나가는 시간이 기다려졌으니까요. 방에 틀어박혀 책이나 영화를 보던 정적인 저와는 달리 짝꿍은 운동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성격입니다. 한 명이라도 활동적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짝꿍마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집돌이었다면, 어쩌면 우리 아기는 주말에도 집에만 있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살짝 나가기 귀찮을 때도 나의 귀차니즘으로 아기의 경험이 제한당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좀 힘들어도 기를 쓰고 외출하게 되기도 해요.

 

그런데 막상 나가려고 해도 마땅한 장소가 그리 많지 않더라고요. 아직 놀이동산은 간 적 없지만 비용대비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다고 매일 가는 공원만 가는 것도 특별한 일을 기대하게 되는 주말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항상 주말에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숙제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계시처럼 [아이와 거닐] 책이 왔네요. 저자가 여행사진가여서 그런지 책 앞쪽에 실린 사진들이 평범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아들 사진이 실려 있는데, 우리 튼튼이 사진은 지금까지 인화한 게 없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네요. 저는 게으른 엄마입니다. .

 

서울을 주거지역으로만 여기고 있던 저에게 산책지로서의 서울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이름만 들어보고 가 본 적 없는 곳들, 가 본 적은 있으나 아기와의 산책코스로서 바라본 적은 없었던 장소들이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아직은 튼튼이가 말도 못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제한적이라 갈 수 있는 장소들도 한정적이지만 앞으로 가 볼 곳들을 여기저기 생각해 두었답니다. 저는 일요일에 남산도서관을 자주 가는데요, 사실 일정을 빠듯하게 짜두어서 산책은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요. 요즘은 날씨가 좀 추워져서 아쉽지만 내년 봄이면 우리 튼튼이도 더 자랄테니 함께 남산 산책로를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혼 전에 가끔 갔던 서울성곽길도 자연을 즐기기에 좋고, 한강은 비교적 방문하기 쉬운 곳이니 아기와 함께 걷기에 좋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아기를 안거나 유모차가 필요한 곳은 아직은 유보. 하지만 독특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홍대거리나 연희동, 이태원 길도 걸어보고 싶습니다.

 

책과 함께 <산책일기장>도 왔습니다. 어떤 형식으로 아기와의 산책기록을 남기게 될지 모르겠지만 소중한 추억을 많이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아기들은 정말 빨리 자라니까요. 요 노랗고 예쁜 책을 함께 뒤적이면서 가고 싶은 산책길을 골라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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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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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이는 오늘 저를 무척 힘들게 했습니다. 평소보다 많이 떼를 썼고, 식사도 점심과 저녁은 대여섯 숟가락 정도밖에 먹지 않았어요. 그것도 시간이 무척 많이 걸렸습니다. 배도 안고픈지 바나나를 줘도 몇 개 밖에 집어먹지 않았고, 무슨 일에선가 혼을 내려는 저를 허리에 손을 얹고 쳐다보면서 악--소리도 질렀습니다. 평소에도 밥을 잘 먹지 않아서 늘 신경을 쓰던 저는 오늘따라 힘에 부쳤는지 그만 왜 밥을 안 먹어하며 어른스럽지 못하게 울고 말았답니다. 그 와중에 한 입 더 먹이기는 했지만요. 아기를 키우는 일은 저의 인내심의 한계를 끊임없이 시험당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아니,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니 과정입니다-라고 해야 맞겠네요. 그래서 가끔 튼튼이가 내 아기가 아니라 입양한 아기라면, 혹은 짝꿍이만의 아기라면 내가 이렇게 온 정성을 다해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순간이 훨씬 더 많지만 이제 한창 고집이 세지고 말을 안 듣는 시기라 궁둥이를 팡팡 해줄 때도 있거든요. 저에게 한 생명을 입양한다는 것은 정말 존경스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 존경스러운 일을 현실에서는 많은 부부가, 그리고 이 작품 안에서도 한 부부가 해냅니다.

 

사토코 부부는 오랜 시간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아기가 오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 포기하고 둘이서 열심히 살자-고 생각한 부부는 베이비 배턴이라는 단체를 통해 아들 아사토를 데려오게 됩니다. 그 아기가 자라서 벌써 여섯 살.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부부에게 어느 날부터 수상한 전화가 걸려오고, 사토코의 예상대로 전화의 주인은 아사토의 생모였습니다. 생모는 아기를 돌려달라, 돌려주지 못할 거면 돈을 달라는, 어처구니없고 마음 아픈 협박을 하죠. 삼자대면을 하게 된 사토코 부부와 아사토의 생모. 그 순간을 기점으로 그들의 과거가 영화 필름처럼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다양한 방면에 대해 소설을 써온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에게, 어느 사이엔가 팬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읽는다는 마음이 강해요.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작가는 첫 에피소드부터 가슴을 울리고 머리를 깨어나게 하는 소재를 사용하네요. 유치원으로부터 아사토가 정글짐에서 친구를 밀었다는 연락을 받고, 마침내는 아들을 믿기로 결심하는 사토코의 마음이 인상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금 휩쓸려서 아사토를 믿지 않는다면 그 아이의 손을 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모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p27>

아기를 잘 키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심을 잘 잡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와 소통하고 신뢰하고, 주위의 압력에도 내가 믿는 바를 저버리지 않는 것. 비난받을 각오를 하더라도 일단은 내 아이를 믿어주는 것. 저는 이 에피소드를 읽는 내내 가슴이 무척 두근거렸습니다. 만약 우리 튼튼이가 똑같은 입장에 처한다면 나는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작가는 이 에피소드 하나만으로도 부모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어떤 관계인가에 대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지표를 제시합니다.

 

아사토의 생모인 히카리는 아기를 낳았을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어요. 남자친구와의 무지한 관계로 인해 임신 6개월이 지날 때까지 자신이 임신한 줄도 몰랐었죠. 교사인 부모님은 그런 히카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의 생활과 미래를 철저히 통제하려고만 했습니다. 베이비 배턴에 보낸 것도 부모님의 의지였으니까요. 뱃속에 있는 아기의 존재를 느낀 순간부터 보낸 순간까지 히카리는 아사토를 아꼈고, 절대 잊지 않겠다고, 평생 기억할 거라고, 꼭 행복하라고 기원합니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돈을 요구하네요. 이 사람이, 정말 히카리, 아사토의 생모인 걸까요.

 

사토코 부부의 사정에도 공감했지만 저는 히카리가 처한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초경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조심하지 않았고, 그녀가 생각하기에 지루하고 딱딱한 부모님에게 반항하고 싶은 마음에 더욱 남자친구와의 관계에 매달렸죠. 그 와중에 남자친구의 태도는 어찌나 간사한지요. 부모님은 더 이상 그녀를 인정하지 못하고 아기를 품은 히카리를 멀리 베이비 배턴으로 보내버렸고, 그녀는 혼자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합니다. 저는 또한, 히카리가 내 아이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저도 화가 났을까요? 두려웠을까요? 두려웠다면 무엇이 두려웠을까요? 그 어떤 것에도 확실한 답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단 하나, 저라면 아기를 낳고 돌아온 딸에게 수험을 준비하라느니, 임신한 딸 앞에서 아기가 없어지면 좋을 텐데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에요. 히카리의 부모님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으로 그려져 있어서 오히려 이들이 사람인가, 로봇인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어요. 히카리의 부모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것도 묘사해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아침은 묘사적으로 사용된 아침이기도 하지만, 아사토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 아이의 존재가 사토코 부부, 히카리 모두에게 아침처럼 빛나는 존재이기 때문일까요. 저에게 우리 튼튼이도 그러합니다. 나의 인생에 이런 벅찬 사랑과 감동을 주는 존재가 또 있을까 싶어요.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얼마 전 떠나보낸 우리 튼뚜도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생각에 아기를 반기지 못한 어리석은 엄마는, 지금도 여전히 후회하고 마음이 아프네요. 모든 아이가 부디 찬란한 아침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기를, 존재 자체만으로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간절히 기원해요. 엄마이기 때문에 더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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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 속 조선 야사 - 궁궐부터 저잣거리까지, 조선 구석구석을 우려낸 음식들 속 27가지 조선사, 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송영심 지음 / 팜파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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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역사 공부 때문에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는데요, 이것이가!! 시험 전용이다보니 딱딱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사료도 많고 알아두어야 하는 내용들이 촘촘해서 머리가 아파오던 참이었어요. 게다가 아기가 잠든 늦은 밤, 대략 11시부터 공부를 시작하니 졸기도 많이 졸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자세한 내용들을 또 언제 배우겠나 싶어 나름 재미가 붙기도 하는, 요런 일상이랍니다. 그런 와중에 여러 가지 역사책들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관심이 가도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넣어두기만 하고 직접 읽어보는 경우가 적었지만 이제는 공부를 위해서도 흥미를 위해서도 꼭 읽어보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렇게 해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 속 조선 야사]입니다.

 

일단 야사라는 말이 들어갔으니 어렵지 않고 딱딱하지도 않을 것 같아 쉬엄쉬엄 읽어보자 생각했는데, 그리 어렵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읽고 넘길만한 책은 아니랍니다. 정치사가 버무려진 음식상, 시대가 만들어낸 음식상, 생활사가 우러난 음식상, 신분에 따른 삶이 스며든 음식상, 향토사가 요리한 음식상. 요렇게 다섯 가지 챕터에서 27가지 차림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조랭이 떡국, 숙주나물, 젓갈, 인절미에 간고등어와 굴비, 배추김치, 설렁탕과 삼계탕, 순대와 빈대떡 파전과 순창 고추장 등 생활 속에서 자주 먹고 접하지만 이런 유래가 숨어있을 줄 몰랐던 여러 가지 사연이 소개되어 있어요. 음식에 관한 사연과 함께 그 배경이 되는 역사적 내용도 자세하게 실려 있어 무척 알찬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요즘 영화로 무척 유명한 <남한산성>과 연관된, 민회빈(불쌍한 마음을 품게하는 빈) 강씨에 대한 음식도 소개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전복구이랍니다. 인조와 강빈, 소현세자의 관계는 여기 다 적을 수도 없으니 일단 생략하고요, 인조의 상에 오른 전복구이에서 독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강빈의 소행이라 여겨져 결국 사약을 받게 된 안타까운 일화가 실려 있습니다. 더해져 정묘호란, 병자호란, 인조가 삼전도에서 굴욕을 당한 후의 일들이 죽 설명되어 있는데 영화를 보고와서인지, 아니면 맛있는 전복구이와 관련하여 이런 일이 있었다는 충격 때문인지 머릿속에 오래 남았어요. 전복구이뿐만 아니라 여러 음식들 파트에서도 모두 관련 사료의 해석, 사진들이 기록되어 있어 재미있고 의미있게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답니다.

 

단순히 음식소개가 주요 내용이 된 것이 아니라 배경지식 소개가 탄탄해서 소개된 음식이 나오면 살짝 지식을 뽐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수업하다가 저도 지치고 아이들도 지쳐있을 때쯤 요런 이야기 하나씩 해주면 아이들도 역사를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생각할 수 있으려나요. 소개하는 먹을 것을 같이 줘야 더 눈이 반짝거리려나요. 수업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개인적으로 제 자신을 위해서도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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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기록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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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엄청 많아요!!

 

[어리석은 자의 기록][우행록]의 개정판입니다. 제가 [우행록]에 대한 리뷰를 올린 것은, 201051일이니, 벌써 7년 전의 일이네요. [어리석은 자의 기록]을 읽으면서 처음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고 위안해봅니다. 예전 리뷰를 보니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싶어, 뭔가 과거의 나를 들여다보는 느낌에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2010년의 저는 일을 시작한 지 3년차, 그때 겨우 하는 일에 익숙해져 처음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여유를 가지면서 오히려 애정은 깊어졌죠. 하지만 인간관계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떤 방법으로 그 관계를 좋은 방향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 갈피를 잡기 힘들어요. 오히려 나이를 먹으니 더 생각이 깊어지고 복잡해져서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전보다 깊이 의식하지 않게 된 건 분명 좋은 일이겠죠. 조금은 초연해졌다 할까요.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보다 나를 좋아하고 아껴주는 사람에게 충실하겠다, 그런 생각도 들고요. 어찌보면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인가요. 몇 년이 지난 뒤 다시 이 글을 보면, -뭐야! 이런 생각을 했었어-라며 또 다시 제 자신을 질타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7년 전에는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리뷰는 다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의도적인 건 아니었어요. 읽다보니 어쩌다 그리 되었고, 그건 아마 제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인간관계가 아닌 따름일 거에요. 한 사람이 타인을 보는 시선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고, 그 주관적인 시선에 하나씩하나씩 반응하며 반박하는 것도, 수긍하는 것도 조금은 시들하게 변해버리기도 했고요. 이번에 읽으면서 제가 마음이 쓰인 사람은 희생당한 일가족이 아니라 범인이었어요. 3세 여아를 영앙실조로 사망하게 한, 유아 방조 혐의로 체포된 그 어머니, 다나카 미쓰코.

 

무서워요. 제 상식으로는, 저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식 밖의 사람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인물이죠. 일가족 네 명을 몰살시킨 그 행동은 무척 잔인하고, 제 정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에요. 무서웠지만, 동시에 무척 안타깝고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아버지에게 물리적이고 성적인 폭력을 당했음은 물론, 친어머니에게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어요. 오히려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어머니로부터 여성으로서의 질투에 의한 홀대와 멸시까지 당합니다. 엄마는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를 지켜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하물며 자신의 남편이 딸을 성폭행했는데 여자로서 질투라니, 일어나서도 안되고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그녀가 의지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을 지켜주려던 오빠, 한 사람 뿐이었어요. 지옥 같은 가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다나카는 어떻게든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무기는 미모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어린 시절 학대의 트라우마와 함께 그녀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어요. 상처투성이인 그녀가 낳은 아기가, 엄마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음은, 어찌 보면 정해진 일이 아니었을까요.

 

정상이라고 하기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두 사람이 서로를 의지하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다나카가 저지른 일을 알고 있었고, 그녀를 위해 인터뷰를 시작한 그녀의 오빠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일을 벌이죠. 그가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 건 무엇이었을까요. 죽은 사람들이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것? 여동생을 위해 필사적이었을테니 그 점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분명 알게 되었을 겁니다. 사람들은 모두 어두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든 자신을 타인의 우위에 두고 싶어한다는 점을요. 제가 인터뷰 속에서 느낀 건 그런 것들이었어요. 은연 중 내비치는 자신의 장점, 몰랐다는 듯 알려주는 타인의 약점. 그래서 그는 더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자신을 보호해주어야 하는 존재로부터 마땅히 보호받지 못한 남매의 상처는, 그들이 저지른 범죄와는 별개로 너무나 가슴 아프게 다가왔어요. 우리 아기곰 생각도 많이 났고, 아기곰이 살아갈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두렵기도 하고요. 아기곰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그 복잡다단한 관계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질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바라는 점은, 아기곰은 부디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닮지 말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중심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따뜻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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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이별
박동숙 지음 / 심플라이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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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 의정부에 있었을 때, 10시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는 항상 <허윤희의 꿈과 음악 사이에>와 함께 했었습니다. 하루의 피곤을 느낀 것도 잠시, 차분하고 달콤한 허윤희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마음을 아련하게 만드는 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말 꿈결 같았어요. 40, 혹은 1시간 가까이 걸리던 퇴근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그 길 위에 나만 혼자 있는 것 같은 그런 착각도 했었죠. 몸은 피곤했지만 주차하는 순간이 아쉬울 정도로 그 때의 감성은, 정말 최고였거든요. 허윤희 아나운서가 들려주는 사랑이야기는,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니었고, 때로는 그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잠 못 이루던 날도 있었습니다. 귀로만 듣던 그 이야기들을 겨우 책으로 만났네요.

 

책을 읽는 내내 한동안 듣지 못했던 허윤희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오랫동안 한밤의 라디오를 가까이하지 못했지만,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과거의 저를 떠올릴 수 있었죠. 그리고 제목이 [어른의 이별]인만큼 어쩔 도리 없이 과거의 인연들이 떠오릅니다. 과거의 인연들이 아쉽지는 않아요. 투닥투닥하더라도 저는 지금의 짝꿍을 무척 사랑하고, 이 사람이 아니면 오롯이 나를 받아들여주지 못했을 거라는 확신도 있으며, 우리 아기곰을 얻게 된 건 정말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짝꿍 외에, 그리고 우리 아기곰 외에 그 어떤 다른 존재도 떠올릴 수 없을만큼 이 두 사람을 굉장히 아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궁금한 것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헤어지던 그 때, 그리고 책을 읽는 순간에 떠오르던 질문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손을 놓은 건 내가 먼저였을까, 그가 먼저였을까. 시간이 흐른 뒤의 그의 연락에 내가 다른 식으로 반응했다면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까. 짝꿍을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온 옛 인연의 소식에 잠시 마음이 어지러웠던 때도 있었거든요. 이제와서는 부질없는 질문이겠지만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처럼 저의 인생도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텐데 그 또다른 모습은 어떨지에 대한 순수한 의문이라고 해두고 싶네요. 다시 한 번. 전 짝꿍을 많이많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히힛.

 

오랜만에 사랑과 이별에 관한 글을 읽었더니 마음이 울렁울렁합니다. 때도 알맞게 찬바람도 조금식 불어주고 있네요. 사랑의 순간도, 이별의 순간도 저의 인생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그 시간들의 터널을 지나 짝꿍을 만났고, 우리 아기곰을 만날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해요. 부디 지금 곁에 있는 인연에 최선을 다해주세요. ‘어른의 이별이 무엇인지 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맺어진다면 좋고 맺어지지 않는다 해도 후회 없이, 가슴은 아파도 다시 앞을 바라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사랑을 하는 여러분, 새로운 사랑을 기다리는 여러분, 모두 응원합니다. [어른의 이별] 덕분에 잃어버린 감성을 찾은 기분입니다. 흐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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