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 눈 때문이겠지만, 엄마와 나는 손을 잡고 걸었다.

언제부터인가 휘청휘청 넘어질 듯 흔들려야만 다른 사람의 손을 잡게 됐는데,

그래서인지 이제는 누군가 다른 사람 손만 잡아도 휘청휘청 넘어질 듯 어지러워지더라.

내 손을 잡고 걸어가던 엄마가 그런 말씀을 했다.

이제 어느 정도 살아보니 그 말씀이 모두 사실이라는 걸 알겠다.

 

_ 김연수 「일기예보의 기법」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손, 잡기.

문득 누군가의 손을 잡는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아직, 휘청휘청 넘어질 듯 어지러워지는 손,을 경험하지 못한 나는,

 

내가 잡았던,

가장 설렜던, 가장 기억에 남는 손을 떠올려보게 된.

 

 

꼬물꼬물 아가 조카가 나의 손가락 하나를 꽉 쥐던 순간의 감동과 놀람과 기쁨,

좋아하는 작가님의, 내가 좋아하는 그 글들을 써내렸을 그 손을 꼬옥 쥐어본 그 순간의 벅참,

지난주 금요일, 얼결에 잡았던 박시환의, 서늘한 손, 그 손의 온도를 잊지 못하고 있는 내 손의 설렘.

 

이런 손들,

지금 내가 떠올리고 있는 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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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 

 

       이향

 

 

  심심해서 옛 사진첩 뒤적거리다보면 그 안에 아이는 크게 웃고 있다 아이가 작을 때는 웃음이 참 컸다 사진 밖으로 쏟아지는 웃음 그러고 보면 웃음이 아이를 키운 것 같다 웃는 그 힘으로 잠을 자고 젖을 빨고 팔다리 쭉쭉 뻗었겠다

 

  아이가 어릴 때는 내 몸도 간지러워

  아침에 눈뜨는 것도 어렵지 않았는데

  아이 곁에서 다 웃어버렸는지

  어쩌다 저녁모임에서 돌아오는 긴 골목 같거나,

  기껏해야 한바탕 헛웃음 뒤로 번지는 물기 같다

 

 

 

 

 

 

따끈따끈 새 시집 한 권 들고는 어쩔 줄 모르고 있다...

 

 

문학동네시인선 47번, 이향 시집 『희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시집을 받자마자 넘겨보다가,

“좋다아...!” 절로 감탄 터졌다...!

 

처음 눈 마주친 시는 ‘웃음’인데, 왠지,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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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11-18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고 갑니다. 시인처럼 읽는 사람 역시 웃음뒤 물기 남기겠네요.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

원주 2013-11-19 10:25   좋아요 0 | URL
그 웃음 뒤 물기, 함께 느껴주셔서 감사해요...!
한동안 이 시집에 푸욱 빠져 지낼 것 같아요.^*^

그렇게혜윰 2013-11-1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제목 캬 좋다~~^^

원주 2013-11-19 10:26   좋아요 0 | URL
시집은, 더 좋아요...!!! ^^*
올 겨울, 자신 있게 추천하고 다닐 시집!! ^^
 

최승호 詩集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

 

 

 

 

  코가 깨져본 사람은 이해하리라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돌부리들이 있다는 것을

  넘어진 자리에서 흙먼지를 털고 얼른 일어나

  다시 직립의 자세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누가 봐도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당당하게 걸어가야 하고

  걸어가고 또 걸어가다보면

  해질녘 긴 그림자처럼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것을

 

  _ 「돌」 부분

 

 

 

  떡이 된다는 것은

  마음이 바닥에 누워 있게 된다는 것

  바닥에 누워 있게 된다는 것은

  무기력한 덩어리가 된다는 것

  떡이 되어 베개를 베고 누워 있든

  베개를 안 베고 누워 있든 떡이 되면

  끈적거리는 절망감과 물컹한 후회가 찾아온다

 

_ 「떡」 부분

 

 

 

마귀와 오래 싸우다보면 마귀가 된다. 쩨쩨한 마귀와 싸우다보면 쩨쩨한 마귀가 되고 저 잘난 마귀와 싸우다보면 저 잘난 마귀가 된다. 마귀와의 싸움은 지나고 나면 정말 헛되고 부질없고 덧없다. 너절한 세월 뒤에 사악한 인생 뒤에 후회화 죄악의 냄새를 풍기면서 허무가 그윽하게 찾아온다. 물론 죽으면 마귀는 사라진다. 한 사람을 다 망가뜨린 승리감에 기뻐 날뛰면서 마귀는 또다른 제물을 찾아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다. 이런 마귀는 사실 조무래기 마귀에 지나지 않는다.

 

_ 「마왕」 부분

 

어느 날 나 없는 나의 고독은

동쪽 은하

외뿔소자리에서 고개를 쳐들 것이다

 

_ 「소행성」 부분

 

똥꿈을 꾸면 로또를 사야 한다

똥꿈에도 불구하고 로또는 휴지가 된다

다시는 로또를 사지 말아야지

지구가 황금색 똥바다로 변하는 꿈을 꿔도

로또를 사지 말아야지

하지만 로또 말고 무슨 희망이 남아 있단 말인가

똥꿈을 꾸지 않아도 로또를 사야 한다

그는 또 로또를 산다

로또는 또 휴지가 된다

 

_  「대박」 부분

 

 

 

 

말술은 아니지만 어제도 술을 마셨고 그저께도 마셨다. 이년 전에도 마셨고 이십 년 전에도 마셨다. 그렇게 마셔댔는데 마신 게 없다. 밑 빠진 술자루에 술붓기, 밑 빠진 술주전자로 술따르기.  

 

_ 「색신」 부분 

 

 

 

 

 

 

 

 

난다詩방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코뿔소도 만나고,                                      은하수도 만나고,

   우주도 만나고,           도 만나고,        아귀마왕도 만나고,                           

도 만나고,

도롱뇽도 만나고,                                                                         사막도 만나고,

                                      허공도 만나고,          닭발도 만나고,

  소행성도 만나고,                                                                              

흰올빼미도 만나고,

  달빛도 만나고,                 엄마도 만나고,                                로또도 만나고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시의 만물상, 난다詩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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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어젯밤에, 실시간 이슈 1위에 올랐었다면서요...? +_+

기뻤어요....*-_-*

그 시간, 많은 분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구나, 생각하니, 절로 '흐흐흐흐' 미소가...(흐흐흐흐)

 

 

 

어젯밤에 『자기 앞의 생』이 화악 주목을 끈 이유는,

드라마 <비밀>에 나왔기 때문이라고...!

오오, 저는 안 보는 드라마여서 몰랐는데, 검색해 보니,

첫 베드신 이후, 남녀 주인공이 함께 『자기 앞의 생』을 읽었다고 하네요..... *-_-*

로맨틱하다아.........

 

 

(사진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596493)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라는 부분을 여 주인공이 남 주인공에게 읽어줬다고 하네요.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는 장면이죠...

아아... 모모....

아아... 하밀 할아버지....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뭉클해지는 사람들...

 

 

 

『자기 앞의 생』에서 제가 그은 밑줄도 올려봐요.

책에 그어진 밑줄은 이보다 훠얼씬 많지만요. ^^

 

 

 

  

내 생각에는,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잠을 자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일에 아랑곳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의로운 사람들은 매사에 걱정이 많아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44)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63)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건,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울게 돼 있는 것이다. 인간을 만드신 분은 체면 같은 게 없음이 분명하다. (91)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겪어본 후에야 그놈의 행복이란 걸 겪어볼 생각이다."(100)

 

"두려워할 거 없어."

그걸 말이라고 하나. 사실 말이지 '두려워할 거 없다' 라는 말처럼 얄팍한 속임수도 없다. 하밀 할아버지는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군이며 두려움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기의 오랜 경험을 믿으라고 했다. (108)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116)

 

저능아란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자라지 않기로 마음먹은 아이다. (131)

 

여러분도 알겠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죽을 맛이었다. 이건 아닌데, 생이 이런 건 아닌데, 내 오랜 경험에 비춰 보건대 결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사람들은 말없이 하나둘 줄을 지어 밖으로 나갔다.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232)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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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사람

 

 

잊었던 목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바람을 따라 무리지어 떠나던 가을이 보일 때쯤

오래전 예쁘게 웃던 아름답던 그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어디서 무얼 하는지 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내 맘을 알는지 참 좋은 사람이란 생각에

며칠간 전화기에 그 사람 이름만을 써놓았는데

죄 많은 나는 당신을 생각하는 일로도 미안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떠나고

죄 많은 나는

그에게도 나에게도 죄가 되는 그리움을

아프게 묻었습니다

잊었는데 지웠는데 바람을 따라 떠나던 가을

끝자락에 그가 있더군요

그 사람 목소리가 듣고 싶네요 이 가을에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잊는 것으로 충분하다.

‘만남과 헤어짐’ 두 가지면 살아가는 일을 설명할 수 있다.

사랑을 하고 제대로 잊고, 다시 누군가와 만날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마침내 ‘산다’.

결국 그대 때문에 살고, 그대를 잊고, 마침내 다시 살아가는 이 가을, 당신에게 남겨진 책 『그대, 살다, 잊다』

 

 

 

배우 김영호 아저씨(^^).

터프한 외모 뒤에 숨은 반전매력으로, 이 늦가을, 제 마음을 녹이시네요...!

 

내 마음을 흔든 글 조금 더 소개하며....

 

(아아, 가을 탄다...ㅜㅜ)

 

 

 

 

 

단 한 길로 달려갈 수 있게 해주세요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로,

다른 길이 아니면 이 길로 가기엔

우리가 힘이 듭니다

 

가다가 끊어진 길에서 멈춰 서는 우리가 보이면

좌절하지 않도록 바람을 불게 해주세요

 

미련한 사랑 앞에서 더이상은 서럽지 않게

눈물이 마르게 말입니다

 

외로움에 지쳐

길이 아닌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후회하는 삶이라도,

희망이 있는 단 한 길로 가게 해주세요

 

가끔 내리는 빗속에 어둠이 찾아오더라도

아침이면 명확하게 보이는 그 한 길 위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기에

지금 잠시 흔들리는 것뿐이라고 자위하게 말입니다

 

지금 보이는 그 길이 후회하지 않는

내 길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금은 아픈 상처일지라도

 

 

사랑과 이별 그리고 내 삶. 그건 흉터의 역사다. 사랑이 떠나가면 비가 오고 눈물이 마르면 겨울이 간다. 겨울이 지나면 또 꽃이 필 테지. 계절이 변하면 모든 게 지워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우리 그리우면 모여 살아도 좋다. 외로우면 떠나도 괜찮다.

 

바람처럼 홀연 떠나곤 한다. 나는 늘 바다를 꿈꾸고, 하늘을 나는 새가 되길 바라본다. 바람처럼 떠도는 시간 동안 수많은 상처가 나고 행여 그것들이 흉터로 남을지라도. 나는 다시 떠난다. 바람처럼. 지금은 아픈 상처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아물어갈 테고, 먼 훗날 만지게 되는 흉터는 삶의 위안이 되어줄 것이다.

 

몸에 수많은 흉터가 생겨나면 힘들어도 사람답게 산 것이겠지. 그리움에 익숙해지면 어느새 눈물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지금 내가 그리우면 혼자라도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하다 헤어지면 비를 맞을 거다. 비가 그치면 슬프게도 다시 뒤를 돌아보게 되는데 지나온 계절에도 흉터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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