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뱀이 깨어나는 마을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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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디서 알게 됐더라. 김혜리 기자가 진행하는 팟빵에서 정세랑 작가가 책 세 권을 추천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이 그 중 한 권이었다. 배명훈의 <화성과 나>, 타야리 존스의 <미국식 결혼>, 그리고 이 책이었다. 그때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두었다가 이북 적립금을 모아모아 구매했다.


주인공은 수의사인 클래라 베닝이다. 수의사 하면 동물병원에 앉아서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고치는 사람을 떠올리기 쉬운데 클래라는 야생동물 전문병원에서 일하는 수의사여서 내가 일반적으로 생각해오던 동물병원 수의사랑은 활동 범위가 완전히 달랐다. 야생 올빼미 새끼들을 집으로 데려가서 돌보기도 하고, 야생 토끼나 오소리를 수술하기도 한다. 게다가 뱀까지 잡아야 한다. 극한직업이 따로 없다.


클래라가 사는 마을 곳곳에서 갑자기 뱀이 출몰한다. 근처에 살던 여성이 어느날 갑자기 클래라에게 전화를 걸어 아기 방에 뱀이 있으니 빨리 좀 와달라고 말한다. '뱀 모양 인형인데 착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집에 도착했는데 진짜 자고 있는 아기 위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 게다가 아기가 꿈틀꿈틀 하면서 잠에서 깨려고 한다. 이대로 아기가 일어나서 울기 시작하면 놀란 뱀이 아기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클래라는 가죽 장갑을 끼고 뱀을 생포하고 아기를 무사히 구출해낸다. 다행히 클래라는 뱀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 한때 도마뱀을 공부하면서 뱀도 같이 공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 더 많은 뱀들이 출몰하면서 클래라가 가진 파충류 지식이 빛을 발한다. 누군가가 클래라에게 동물원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게 낫지 않겠냐면서, 왜 파충류 전문가가 야생동물 전문병원에 있는 거냐고 묻는다. 클래라가 야생동물 병원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그녀의 얼굴 한쪽에는 흉터가 있다. 그래서 클래라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고 이웃의 식사 초대를 모두 쳐낸다. 하지만 마을에 나타나는 뱀 때문에 클래라는 어쩔 수 없이 동네 사람들과 계속 엮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내가 고슴도치, 토끼를 돌보는 일을 선택한 이유가 정말 궁금할까? 야생동물들에게는 뻔뻔하거나 호의를 품은 주인이 없으며, 수많은 방문객이 야생동물을 멍하니 구경하러 오지 않았다. 내게는 야생동물들을 돌보는 일이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도록 보장해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이렇듯 사람들과의 관계가 무척 서투르니까.】


【내가 아는 사실은 이 영국 마을의 자연 질서가 완전히 어긋나버렸다는 점이었다. 조용한 영국 마을에서 사람들이 뱀에 물려 죽는 경우는 없었다. 잠에서 깼을 때 열대 지역의 독사를 발견하는 일도 있을 수 없는 경우였다.】


솔직히 이웃에 뱀이 나타나거나 말거나 신경 끄고 살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클래라는 관심을 쏟는다. 직업적인 소명일 수도 있는데, 사실 나타나는 뱀들이 너무나도 범상치 않아서 신경 끄고 살기가 어렵다. 가끔씩 출몰하는 영국 풀뱀들이라면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맹독을 가진 타이판 뱀까지 출몰하는 지경에 이르자 도저히 신경을 끄고 살 수가 없다. 타이판은 파푸아뉴기니나 호주 같은 더운 지역에서 서식하는 뱀인데 그게 어떻게 영국 가정집에 나타나는지 클래라는 이해할 수 없다. 


사건은 뱀에서 시작하여 더 큰 스토리로 이어진다. 클래라는 처음엔 이 뱀들이 어떻게 영국에 들어왔는지, 누가 도대체 이 뱀들을 가정집에 풀어놓는지 궁금해서 조사를 벌이다가 이 사건에 아주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주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던 이 마을들의 비밀이 밝혀진다.


처음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수의사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신선했다. 경찰이나 탐정이 아닌데도 사건 해결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뱀에 대해서라면 경찰도 형사도 무쓸모다. 뱀을 다루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서 훈련된 파충류 전문가가 아니라면 함부로 나설 수 없다. 클래라는 자신이 대단한 파충류 전문가는 아니라고 말하며 겸손을 부리지만, 무시무시한 독사를 만났는데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지녔다. 맹독을 가진 타이판을 보고서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나서는 장면에서 클래라에게 반했다. 함께 있던 남성이 다른 전문가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클래라를 설득하는데, 클래라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 사이에 이 뱀이 집 안의 어떤 구멍들을 통해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금 자신이 잡아야만 한다고 말한다. 진짜 멋져.


그렇게 멋지게 타이판 뱀을 생포해놓고서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뱀 전문가에게 자신이 잡은 것을 보여주러 가는 길에는 또 소심해진다.


【노스는 덮개를 살짝 열어 틈을 벌렸다. 나는 숨을 멈췄다. 만약 저 뱀이 전혀 위험하지 않은 뱀이라면 어떡하지? 무려 숀 노스가 전혀 위험하지 않은 애완용 뱀 한 마리를 보려고 지친 몸을 이끌고 시차에 시달리며 브리스톨까지 온 것이라면, 멍청한 나는 무슨 낯으로 그를 본단 말인가?】


주인공이 이렇게 멋짐과 소심함을 오가는 캐릭터여서 이 소설이 한층 더 재밌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 흉터를 보고 외모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한 거라고 말할 때, '외모에 결함이 있으면 내면이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는 거냐고' 반문하는 장면은 정말 통쾌했다. 


【많은 사람들은 평범한 미래를 이야기하며 나를 격려하려 했다. '사람들이 전부 외모에만 집착하지는 않는단다, 클래라. 너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거야' 마치 볼썽사나운 외모를 가진 사람은 저절로 더 좋은 내면을 지니게 된다는 듯, 아니면 외모의 결함을 내면의 뭔가로 당연히 보충해야 한다는 듯이 말했다.


주변 인간들에게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은둔형 캐릭터가 프로페셔널하게 활약하는 이야기가 정말 좋았고 뱀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들(?)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뱀은 무조건 징그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뱀을 추종하고 숭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어서 깜놀했다. 그리고 뱀은 끈적거리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실크처럼 부드럽다고. 으아아아악, 상상하지 말자. 상상하지 말자. 살면서 읽게 될 뱀 이야기는 이 책에서 다 읽은 것 같다. 더이상 뱀은 그만(ㅠㅠ) 샤론 볼턴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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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풀잎 하프 트루먼 커포티 선집 2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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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지고 부서질 듯 아슬하면서도 반짝거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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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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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니 플래그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읽었다. 동명의 영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는 아직 보지 않았고 책으로 먼저 읽게 되었다. 한동안 절판이었던 모양인데 최근에 새 표지를 입고 다시 나왔다. 전자책도 나왔길래 냉큼 구입했다.


이 책은 1980년대, 에벌린과 니니 스레드굿 부인의 대화로 시작이 된다. 에벌린은 시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로즈 테라스 요양원에 왔다가 니니를 만나게 된다. 니니가 에벌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된다. 에벌린은 처음에 니니의 이야기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니니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니니가 해주는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휘슬스톱 카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지 스레드굿과 루스 제이미슨이 운영하는 그 카페는 기찻길 부근에 위치하여 오고 가는 손님들이 많았다. 이지가 그 카페를 열었을 때는 대공황이 미국을 휩쓸던 시절이었다. 가난하고 배가 고픈 떠돌이 손님들이 휘슬스톱 카페로 찾아와 먹을 것을 주면 허드렛일을 해서 갚겠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지는 그런 손님들을 단 한 번도 문전박대하지 않았다. 흑인이 음식을 팔아달라고 찾아와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 시절, 흑인은 백인과 함께 어울릴 수 없었다. 흑인은 철저하게 고립되고 분리되어 백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만 활동해야 했다. 이지는 흑인들을 위해 뒷문에 메뉴판을 새로 달았다. 그들을 앞문으로 들여 테이블 위에 앉혀 음식을 먹이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자신들은 물론 그 흑인들마저 위험해지는 상황에 처해질 수 있어서 할 수 없이 뒷문으로 음식을 팔게 된 것이다.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고 해서 그저 소소하고 일상적인 일들로만 채워지진 않는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비일상적인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철길에서 놀다가 목숨을 잃거나 팔을 잃기도 하고, 2차대전에 참전하여 비극적인 사건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KKK단이 돌아다니면서 흑인들을 위협하고는 했고, 남편이 부인을 때려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는 시절이었다. 이지와 루스를 비롯한 휘슬스톱 카페 사람들은 그 시절을 그저 무기력하게 흘려보내지 않았다. 개인이 사회 전체를 뒤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몇 사람만은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 주인공들은 알고 있었다. 이지와 루스, 그리고 십시와 온젤, 빅조지 가족은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때론 잔인하고, 때론 따뜻했던 그 시절을 헤쳐나간다.


작가는 미스터리한 사건 두 가지를 던져주고 끝까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하나는 대공황 시절 기차에서 물건을 훔쳐 흑인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길바닥이 던져주던 도둑 ‘레일로드 빌’이 누군인가 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이다. 특히 살인사건과 관련된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는 괴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마저 풍기니...이 소설을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이 소설에서 느껴지는 주요한 정서 중 하나는 ‘쓸쓸함’이다. 1980년대, 요양원에 들어와있는 니니 스레드굿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휘슬스톱 카페가 존재했던 과거 그 시절을 추억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니니의 이야기를 듣는 에벌린 역시 휘슬스톱 카페 사람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그들을 마치 친구처럼 느낀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비록 역사가 개인에게 잔인했을지언정 개인은 서로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했던 시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에벌린은 자신이 살아가는 1980년대가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정숙한 여자 프레임에 갇혀서 정작 자신의 인생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가족들은 전부 남처럼 느껴지고, 마트에서 웬 양아치 청년에게 욕을 먹기도 한다. 에벌린은, 도대체 세상이 왜 이따위로 망가져버린 건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트린다.


‘과거와 현재’의 대결은 불공평한 싸움이다. 과거는 언제나 힘이 세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요즘 것들은 예의가 없고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른다'는 말이 적혀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파피루스에 진짜 그런 내용이 있었는지 진위 여부는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현재는 거지 같은 것이며, 요즘 애들은 언제나 예의가 없고, 세상은 계속해서 망가져 가고 있다'는 인식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가장 좋았던 시절이라고 규정해버리면 나머지 삶은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 후에 남는 것은 '쓸쓸함'이라는 감정 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런 함정에 빠질 뻔했던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과거는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현재는 왜 이렇게 거지 같은 거람?!!!


하지만 이 소설은 지나간 시절에 대해 추억하면서도 마냥 쓸쓸하게만 끝나지는 않는다. 1980년대를 살아가는 에벌린 카우치라는 인물 덕분이다. 에벌린은 니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비록 현재를 구성하는 그 모든 요소들이 짜증이 나긴 하지만, 에벌린은 자신에게 남겨진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니니로 인해 변화하게 되는 에벌린 카우치 덕분에 이 소설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도약하게 된다. 소설은 계속해서 과거의 휘슬스톱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가장 소중한 것은 현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에벌린 카우치, 무슨 말을 그렇게 하우. 당신은 아직 젊어요. 마흔여덟 살이면 아직 아기일뿐이라고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잖아요! 메리 케이는 나이를 상관 안 해요. 그녀 역시 햇병아리는 아니거든요. 자, 내가 에벌린이라면, 그리고 에벌린처럼 피부가 곱고 에벌린 정도 나이라면, 캐딜락에 도전해 보겠어요. 물론 운전면허를 따야하겠지만 어쨌든 도전은 해 볼 거예요. 생각해 봐요, 에벌린. 에벌린이 나처럼 오래 산다면 앞으로 살 날이 37년이나 남아 있어요."】

 

【에벌린은 스레드굿 부인에게 이곳에서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음, 있어요, 가끔 느껴요.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떠나버렸으니....가끔 교회 사람들이 보러오긴 하지만 그저 안부 인사나 나누고 가 버리죠. 인생이란 게 다 그런 거니까. 만나고 작별하는 거죠. 가끔 클리오와 어린 아들의 사진을 보면서 지난 일들을 그려 본답니다.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스레드굿 부인은 에벌린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것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힘이에요,에벌린. 꿈, 내가 보낸 시절에 대한 꿈이죠."】


두꺼운 책인데도 흡입력이 굉장해서 이틀 동안 쉬지 않고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여행 버킷 리스트에 '미국 남부에 가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먹기'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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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4-08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안 읽어봤지만, 여러 사람이 이 책 좋다고 하는 말은 본 듯합니다 어려운 시절에 사람은 마음을 나누고 살았네요 한국 사람도 예전이 좋았어 하는 말 하기도 하네요 좋았던 때도 있지만 그런 때만 있었던 건 아닐 텐데... 정말 지나간 날이 더 힘이 센가 봅니다

좋은 날이 있었던 걸 기억하고 지금을 살아야죠 지금도 좋게 만들어가면 되겠습니다 그게 쉬운 건 아니겠지만...


희선

Laika 2024-04-13 15:3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좋은 날을 기억하고 현재를 살아야죠! 이 책을 보고나면 그런 마음가짐이 드는 것 같아요...^^책을 보고나서 영화도 봤는데 책이 훨씬 좋았어요.
 
[eBook]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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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과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만연했던 시절, 서로가 서로에게 보호막이 되어주며 삶을 지탱해나갔던 휘슬스톱 사람들의 이야기.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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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컬티시 - 광신의 언어학
어맨다 몬텔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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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맨다 몬텔의 <컬티시 - 광신의 언어학>은 미국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컬트 현상을 그 집단이 사용하는 언어 중심으로 파헤쳐 보는 책이다.


‘컬트’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정확하게 번역하기가 애매하다. ‘사이비’가 제일 가깝기는 한데 ‘사이비’라는 단어를 사용할 경우 대부분 사이비 종교만을 떠올릴 수 있어 적절한 번역어는 아니다. 컬트는 종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는 피트니스 업계에서도, SNS 인플루언서를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컬트 현상을 포착한다. 그래서 이 책은 ‘컬트’ 혹은 ‘컬티시’라는 단어를 굳이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는 듯 하다. 


‘컬트’에는 공식적인 학문적 정의가 없다. 강력한 지도자, 정신을 조종하는 행동, 성적·재정적 착취, 구성원이 아닌 사람에 대한 적대감, 결과로서 과정을 정당화하려는 철학 등으로 ‘컬트’의 범주를 규정하려는 노력이 있을 뿐이다.


저자가 컬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 때문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열네 살 때 부모 손에 이끌려 ‘시나논’이라는 컬트 집단에 들어가 생활했다. 열일곱 살 때 그곳을 탈출한 저자의 아버지는 혼자서 어렵게 공부해 신경과학자가 되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시나논 경험에 대해 들어온 저자는 언제나 컬트 혹은 컬트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고, 그 관심들이 축적돼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1부에서는 컬트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존스타운이나 헤븐스 게이트처럼 악명 높은 자살 컬트를 다룬다. 넷플릭스 <사이비 교주가 되는 법>이라는 다큐를 보면 관련 내용을 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어맨다 몬텔이 직접 이 다큐에 출현하기도 했다.) 


3부에서는 사이언톨로지나 하나님의 자녀파처럼 논쟁적인 종교를 다룬다. 사이비 종교인 것 같기는 한데 존스타운 집단자살 사건처럼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건 아니어서 아직도 세를 유지하고 있는 그런 종교들이다. 사이언톨로지는 톰 크루즈의 종교로도 유명하다. 영화에 대한 사랑 때문에 대역 없이 직접 위험한 장면들을 촬영하곤 한다는 그 열정적인 톰 크루즈와, 사이비 종교를 믿는 톰 크루즈가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지만 어쩌랴. 그것이 사실인 것을.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컬트 피트니스 업계를 다룬 5부였다. 운동과 ‘컬트’라니, 처음에는 생뚱맞은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사실 이 부분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적인 단어들을 쏟아내면서 우리와 바깥 집단을 차별화하고,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내가 속한 이 집단에서 배제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불안해지고, 자신의 리더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까지 운동을 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에서 저자는 ‘컬트’를 읽어냈다.


【이런 내밀한 피트니스 스튜디오는 운동으로서 심오한 사상과 깊고 개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스스로를 브랜딩한다.】


【스튜디오 피트니스 산업이 2010년대 초 갑작스럽게, 그리고 전례 없이 부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시기, 전통적인 종교와 의료 기관 모두에 대한 성인층의 신뢰도는 급격히 하락했다.(...)젊은이들이 주류 의학을 포기하고 전통 신앙을 경멸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신체적으로 영적인 공허를 채우기 위해, 컬트 피트니스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물론 저자도 크로스핏, 소울사이클 같은 컬트 피트니스가 사이비 종교와는 다르다는 걸 인정한다. 컬트 피트니스 업계는 회원들을 가둬두지 않으며 회원들은 운동이 끝나면 친구를 만나 피트니스와는 관계가 없는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하지만 ‘의미를 미끼로 돈을 청구하는 매혹적인 지도자가 있는 곳에는 항상 일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컬트 피트니스 리더들의 현란한 말솜씨에 매혹되어 자신의 심리적, 신체적 상태를 전혀 돌보지 못하고 완전히 끌려다니는 상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어떤 컬트 피트니스 업계에서는 운동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를 고용한다. 운동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매혹하는 기술이라는 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6부에서는 소셜미디어 구루를 다룬다. SNS에서 팔로워를 모은 후에 영적인 의미를 내포한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자신을 깨달은 사람으로 포지셔닝하면서 자신과 함께 하면 영적인 체험에 이를 수 있다고 홍보하는 이들이 바로 소셜미디어 구루들이다.


【영향력 스펙트럼에서 사이언톨로지 쪽으로 슬금슬금 움직이는 이 인물들은 당신을 구슬려 전자책을 사게 하고, 그다음은 명상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또 온라인 최면 강좌 수강권을 사게 만든다. 이 단계에 이르면, 당신의 영적 여정은 워크숍이나 캠프에 등록하지 않고는 의미가 없어진다. 당신이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이 여정은 그들에게는 수익성 좋고, 확장성 있으며, 불로 소득을 창출하는 황금알 낳는 거위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컬트에 끌리는 걸까. 그것은 인간의 외로움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어떤 공동체에 속해서 강렬한 유대감을 갖고 싶다는 인간 고유의 본성 때문에 사람들은 자꾸만 컬트에 끌린다.


【인간은 외로움 앞에 맥을 못 춘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생존을 위해 긴밀한 집단을 만들어 생활하던 고대 인류 이래로 사람들은 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집단에 이끌렸다. 진화 측면의 장점 이외에도, 공동체는 우리가 행복이라는 미스터리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신경학자들은 집단으로 기도문을 외우거나 노래를 하는 등 초월적인 유대 의식에 참여할 때, 우리 뇌가 도파민이나 옥시토신처럼 기분을 좋게 하는 화학물질을 분비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동일한 강도로 컬트에 끌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비슷비슷한 컬트 집단을 전전하며 살 정도로 이런 쪽에 과도하게 경도되어 있지만 또한 어떤 사람들은 컬트적인 특성을 바로 간파하고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대해 뼈 때리는 분석이 등장한다. 


【사람들을 착취적인 집단으로 끊임없이 끌어들이는 건 절박함이나 정신 질환이 아니라 과도한 낙관성이다.】


넷플릭스 <사이비 교주가 되는 법>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음이 열려 있고, 이상주의적인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일단 어딘가에 이상적인 낙원이 있다고 믿어야 사이비 종교든 그냥 종교든 어딘가에 빠져들 수 있다. 비관적인 사람들은 이상 낙원이라는 건 애초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쪽으로 잘 빠지지 않는다. 비관적으로 살아서 좋은 점 하나를 발견했다. 컬트에 잘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밖에는...음.


이 책은 철저하게 미국 중심으로 쓰여져 있다. 전세계 컬트를 대상으로 분석했다가는 책 한 권으로 끝낼 수 없었으리라.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컬트를 떠올렸다. 코로나 당시 밝혀진 신천지의 정체, 대도심 한복판에서 ‘기운이 좋으세요’ 하면서 말을 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 수많은 무속신앙과 샤머니즘, 수많은 SNS 팔로워를 거느리며 물건이든 체험이든 뭔가를 팔아대는 인플루언서들을 떠올려보면 우리나라 역시 이쪽 방면에서는 꽤 잘 나가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컬트에 대한 내용이지만 결국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외로움 때문에 컬트에 빠져드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또 모를 일이다. 좀더 나이가 들고 주변 사람들이 떠나고 나를 받쳐주는 밑바닥이 아예 없다고 느끼게 되면 누구보다 열렬한 컬트 추종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나는 저런 데 빠지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어떻게 하면 좀더 나은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을지 이 책을 통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서 좋았다.


【컬트에 빠지는 사람들이 "길을 잃었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길을 잃었다. 삶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에게 무질서하고 혼란스럽다. (...)사실 확인과 교차 점검, 그리고 영적 만족감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올 수 있다는 생각을 수용하는 태도가 적절히 배합되기만 하면, 우리는 안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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