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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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뒤따라온 의혹들>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사랑에...>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자녀를 둔 부모가 쓴 책이다.(진짜 좋고 의미있는 책이다!) 거기에 바로 이 책 <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가 여러 번 인용되었길래 도대체 암이라는 병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지 궁금해져서 찾아보게 되었다.(부끄럽게도, 백혈병이 암의 일종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 정도로 나는 암이라는 병에 대해 무지했다.)


이 책은 암과 관련된 방대한 분야를 다룬다. 암이라는 병 자체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암 치료법의 역사, 미국 정부로부터 암 관련 예산을 따냈을 당시의 일화들, 암의 원인과 예방, 암 환자들이 겪는 고통 등 다양한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책이 워낙 두꺼운 데다가 암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어떤 부분은 조금 스킵하면서 지나가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밌고 잘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의사인데 이 정도의 책을 써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 저자가 쓴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져서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항암제를 발견하고 그걸 환자들에게 적용해가는 여정이었다. 그걸 이해하려면 다시 백혈병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미성숙한 백혈구가 엄청나게 많이 증가해 문제를 일으키면 백혈병이다. 통제할 수 없는 비정상적 세포 증식이라는 암의 특성이 백혈구에 나타난 것이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ALL)은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서 주로 발병하는데 과거에는 치료할 방법이 없어 대부분 사망했다고 한다.


백혈병을 치료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액체 형태의 암이기 때문이다. 1890-1900년대, 종양을 잘라내거나(=절제술) 종양을 태워버리는(=방사선 치료) 시술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백혈병처럼 혈액에 생기는 암은 잘라낼 수도 태워버릴 수도 없었다. '백혈병은 그것에 처방할 약물이 아예 없는 내과의사들과 혈액을 수술할 수는 없는 외과의사들이 포기한, 고아나 다름없는 질병'이었으며 '질병들의 국경선상에 사는, 분야와 분과 사이에서 숨어 지내는 추방자'였다. 형태가 없는 암은 수술이나 방사선으로 치료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약물로 치료할 수는 없을까?


1928년, 영국 의사 루시 윌스는 인도 방직 공장 노동자들 중 출산한 여성들이 심각한 빈혈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빵에 발라먹는 효모 식품인 '마마이트'를 먹이면 그러한 빈혈 증상이 완화되었다. 정확히 '마마이트' 속 어떤 성분이 그러한 효과를 가져오는지는 나중에 밝혀졌다. 혈액 생성에 필수적인 성분 중 하나인 엽산이었다. 1940년대, 어린이 병원에서 일하는 시드니 파버라는 이름의 의사는 바로 이 엽산에 주목했다. 피 생성, 혈액, 골수, 엽산...이런 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면 백혈병에 걸린 아이들에게도 엽산을 먹여보면 어떨까? 결과는 대실패였다. 엽산을 투여한 환자들 몸에서 백혈구 수가 두 배로 증가했다. 엽산은 백혈병 세포를 촉진시키는 것이 분명했다. 


요즘 같았으면 백혈병 환자들에게 엽산을 투여해서 백혈구 수가 두 배로 증가한 시점에서 시드니 파버는 병원에서 쫒겨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40년대였고, 백혈병은 어차피 치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위험한 실험은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 당시에는 새로운 약물을 임상시험할 때 환자 측의 동의를 받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나가서 다행인, 무서운 시절이었다. 시드니 파버는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엽산이 아이의 백혈병 세포 생산을 가속시켰다면 반대되는 다른 물질, 즉 항엽산제를 투여하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즈음 다른 과학자가 엽산의 길항제(=대항제)를 발견했다. 시드니 파버는 테로일아스파르트산(PAA)이라고 불리는 항엽산제를 받아 백혈병에 걸린 아이에게 투여했으나 기대할 만한 반응은 없었다. 그러던 중 '아미노프테린(=메토트렉세이트)'이라는 새로운 항엽산제가 파버에게 도착했다. 그걸 백혈병 환자에게 투여했는데 놀랍게도 백혈구 숫자가 거의 정상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사건은 화학물질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걸 밝혀낸 최초의 사례였다.


이러한 발견은 백혈병 환자들에게만 의미 있는 소식이 아니었다. 다른 분야의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 역시 새로운 치료법이 절실하던 때였다. 암에 대해서는 절제술도 방사선 치료도 모두 한계가 분명했다. 두 치료법은 국소 종양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이미 전이된 암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방사선 치료는 방사선 자체가 암을 유발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더 공격적으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암은 전신 질병이고, '전신 질병에는 전신 치료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화학요법의 등장은 또 하나의 구세주였다.


항엽산제가 항암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 후로도 여러 가지 항암제들이 등장했다. 그 발견 과정이 다소 충격적이다. 전쟁 때 화학 무기로 쓰였던 머스타드 가스가 항암제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머스타드 가스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심각한 피부 손상을 겪으며 사망했다. 이 사람들의 골수를 검사해보니 대개 혈액에서 백혈구가 사라지고 골수가 말라붙은 상태였다. 의사들은, 멀쩡한 사람의 골수를 말라붙게 하는 독약이 비정상적인 백혈구 증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치료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의사들은 머스타드 가스를 환자에게 실험했다. 다른 신체 기관의 손상을 막기 위해 반드시 정맥을 통해 조심스럽게 주사해야 했다. 림프종을 앓고 있던 남성에게 머스타드 가스를 투여했더니 증상이 완화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6-MP라고 불리는 독성 강한 물질이 백혈병 환자들의 증상을 완화해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또 다른 독극물이자 항암제인 빈크리스틴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항암제는 그야말로 약보다는 독에 좀더 가까운 화학 물질이다. 사람을 거의 죽기 직전까지 만들지 않고서는 암 세포를 없애기가 어렵다. 암 세포는 그 정도로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이 정도 독한 약물로 치료를 했는데도 환자들의 암은 계속해서 재발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여태까지 항암제로 밝혀진 약물들을 섞는 것뿐이었다. 메토트렉세이트, 프레드니손, 6-MP, 빈크리스틴 등을 적절한 용량과 적절한 순서로 섞어서 환자들에게 투여했다. 투여 약물의 머릿글자를 따서 VAMP, MOPP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초기 칵테일 요법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치료된 듯 보였으나 곧 재발했다.


혹시 투여한 약물의 용량이 너무 적었던 건 아닐까? 투여 기간이 너무 짧았던 건 아닐까? 도널드 핑컬이라는 종양학자는 '전면전'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메토트렉세이트를 척추에 투여하면서 뇌에는 고선량의 엑스선을 쏘고, 그 후에도 고용량의 약물을 환자가 견딜 수 있는 최대치로 오랜 시간 투여해보면 어떨까. 그 결과는 뜻밖에도 좋았다. 이 과정을 모두 견뎌낸 환자들의 재발률이 낮아졌다. 


여러 가지 약물을 섞어서 투여하고, 암이 없어진 것 같아보여도 좀더 확실하게 치료하는 것이 항암의 표준으로 서서히 자리 잡은 듯 보인다. 이러한 치료법이 마련되기까지 너무나 많은 우여곡절과 희생이 있었다. 암을 정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굴복하지는 않으려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이러한 과정들이 매우 드라마틱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현재 암이라는 병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만약 주변에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매우 묵직하게 다가올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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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갑골문자 - 중국의 시간을 찾아서 걸작 논픽션 27
피터 헤슬러 지음, 조성환.조재희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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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연하고 쓸쓸하면서도, 불편한 연민은 느껴지지 않는 에세이였다. 저자의 특성일 수도 있고 중국인의 특성일 수도 있고, 하여튼 좋았다. 이 저자의 다른 책들도 전부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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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브루 별 헤는 밤 디카페인 (원액) - 500ml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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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페인이라서 주문해봤다. 오트밀크에 섞어서 먹어봤는데 맛있었다. 속 쓰려서 커피 못 마실 때는 디카페인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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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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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잡다한 이야기가 다 튀어나오는데 엄청 재밌다. 역시 빌 브라이슨! (전자책이 나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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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가 되기
존 가드너 지음, 임선근 옮김, 레이먼드 카버 서문 / 걷는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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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나는 자주 다퉜다. 우리는 인생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너무나 달랐다. 아빠는 나에게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라고 했다.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가라고 말했다.


나는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추구하지는 않을 거라고 답했다. 그런 인생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빠는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라고? 성공한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그렇다면 앞으로 성공한 삶에서 행복을 느끼면 되는 거잖아!!!"


나도 그러고 싶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추구하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진심으로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안 되는 걸 어쩌나. 세상의 많은 불행은 자신의 욕망과 주변의 기대 사이의 불일치에서 나온다.


존 가드너의 <장편소설가 되기>는 장편소설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실용적인 조언을 주기 위해 쓰인 책이다. 나는 장편소설을 쓸 계획이 전혀 없는데도 재미있게 읽었다. 장편소설가를 꿈꾸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성공'과는 먼 길을 택한 사람이라면 꽤나 공감하면서 읽을 만한 부분이 많았다.


작가란 끊임없이 쓰고 또 쓰고 그렇게 쓴 걸 수도 없이 고쳐쓰는 사람이다. 소설 쓰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만이 이렇게 힘겹고 지루한 작업을 견딜 수 있다. 장편소설가들의 기쁨과 슬픔이 여기에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기쁨, 그리고 그것 말고는 어떠한 보상도 얻기가 어렵다는 슬픔. 


직업을 택할 때 좋아하는 것 말고 잘 하는 걸 하라는 조언이 있던데, 장편소설가들은 자신들이 이걸 잘 하는지 아닌지 확신을 얻기가 어렵다. 그럴 때 필요한 게 주변의 신뢰와 지지인데 소설가들은 이걸 얻기도 어렵다.


【의학 박사나 전기 공학자나 산림 경비원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청년에게 그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허황되고 시간과 지능의 낭비인지를 설명하는 선의의 충고가 곧장 쏟아지지는 않는다. "잘해봐라"라고 말해주고 속으론 의학 박사가 되기에 성적이 모자라면 접골사라도 되겠지, 할 뿐이다. 그런데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에게는 그의 친구, 친척, 직업 작가 들은 말할 것도 없고 창작 교사들이나 창작에 관한 책들까지도 대뜸 성공하려면 각오해야 할 끔찍한 역경에 대해 지적질을 해댄다(그럼으로써 역경을 가중시킨다).】


존 가드너는 장편소설을 쓰려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기 확신이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쳐온 나는, 분명 재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정도 건사하지 못하고 사회적 의무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나아가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는 생각심지어 여러 편의 소설이 채택됐는데도거의 무기력 상태에 이를 만큼 자학하는 젊은 작가들을 수없이 봐왔다. 거절 편지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고 부모의 부드러운 채근"자식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니?"ㅡ에도 아찔해진다. 오직 강인한 사람만이,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몇몇 사람의 응원에 힘입어 이 시기를 견딘다. 작가는 자신이 사실은 진지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그 진지함으로 기꺼이 큰 모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악의든 선의든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격을 피할 방법짓궂은 유머든 뭐든을 찾아야만 한다.


또한 막돼먹음의 미덕을 언급한다.


소설 쓰기에 충분한 기량을 갖춘 다음에는 한층 단단히 정신 무장을 해야 한다. 출판을 서두르기보다는 자신만의 문체를 공들여 보완하면서 소설 쓰기 기술을 천천히 신중하게 익히고 있자면 사람들이 그를 비딱하게 보기 시작하고 못 미덥다는 듯이 "대체 뭘 하는데?"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내내 빈둥거리고만 있는 거야? 네 강아지는 왜 그리 비쩍 말랐는데?"라는 뜻이다. 이럴 때 막돼먹음의 미덕이 요긴하다진지한 생활인의 자세 거부하기, 짓궂게 굴기, 툭하면 울기 같은 행태들. 취해서 울기는 닦달하려 드는 사람 퇴치에 효과 만점이다.


혹시 존 가드너가 나와 아빠의 대화를 엿들은 건 아닐까.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에서 행복을 찾도록 하라는 아빠의 말을 듣고 나는 미친 사람처럼 반항했다. 


하지만 그렇게 막돼먹은 인간이 되었다고 해서 결코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장편소설가들도 역시나 다방면으로 죄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오후 다섯 시면 일에서 해방되는 친구들과 당연히 처지가 다를 수밖에 없다. 처자식이 있으면 이웃들만큼 가족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는 생각에 막연한 죄책감까지 느낀다. 안 느낀다면 소설가가 아니다.


이쯤되니 이 책은 장편소설 쓰기를 가르치려는 책인지, 세상과 불화하는 인간들에게 공감하고 위로하려는 책인지 헷갈린다. 아마도 둘 다이지 싶다. 


책 뒷부분에서는 출판사 구하기, 에이전트 구하기와 같은 비교적 실용적인 정보들이 있으나 현재의 소설가 지망생들이 참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미국의 정보인데다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판은 1983년에 출간되었다.


끝으로, 이 책이 좋았던 이유 한 가지 더. 이 책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자신의 작업을 위해서 때로는 수치심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면서, 자신의 작업을 좋아해주는 배우자에게 경제적으로 얹혀사는 것도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순수한 동기에서 자기 작업을 기꺼이 밀어주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작가인 그 또는 그녀는, 관습적인 도덕률을 떨치고 주의 은혜를 받들어 그의 권능 아래 사랑하는 이의 인자함에 값할 수 있도록 분골쇄신할 일이다.


존가드너, 장편소설가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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