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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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서 금방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 책. 범죄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만 범죄자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 그를 대하는 종교인들의 태도가 더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나의 내면에 있는 나의 적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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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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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사놓은 전자책인데 태국에 와서야 펼쳐들게 되었다. 그러고보면 모든 책에는 타이밍이란 게 있다. 사자마자 읽히는 책, 몇 년 후에 읽히는 책, 특정 지역에 와서야 읽히는 책. 몇 년만에 온 태국은 약간 심심한 나라가 되어 있었다. 내가 몇 년 치만큼 나이를 먹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여러 번 방문한 지역이어서 더이상 흥미가 크게 돋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관광객이 생각만큼 많이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하긴, 내가 예전에 치앙마이에 왔을 때는 코로나가 끝나고 사람들이 미친듯이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래서 어딜 가도 사람이 북적북적했는데 요즘 치앙마이는 그때처럼 붐비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골랐다. 여행지에서 도파민을 얻을 수 없다면 책에서 얻겠다는 심정으로.


이 책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장클로드 로망은 어느 날 자신의 아내와 두 자녀를 살해한다. 그리고 집에 불을 지른다. 그 화재로 자신도 죽을 요량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로망 본인은 살아남는다. 그 놀라운 소식을 전하러 로망의 부모 집에 달려간 로망의 삼촌은 아연실색한다. 로망의 부모마저 죽어있었던 것이다. 장클로드 로망은 그러니까 자신의 부모, 아내, 두 명의 자녀를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것이다. 도대체 왜?


경찰관들은 장클로드 로망의 살해 동기를 조사하기 위해 그의 직장 동료를 탐문하려고 한다. 그가 다닌다고 알려진 세계 보건 기구에 전화해보지만 아무도 로망을 알지 못한다. 직원 명단에도 그런 이름은 없다. 그 전에 그가 근무했다고 알려진 연구소에도 전화해보지만 마찬가지. 그가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 의과 대학 졸업생 명부에서도 그의 이름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18년 동안 완전히 가짜인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그는 자신이 졸업한 걸로 알려진 그 의과대학에 입학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2학년 말 진급시험에 참석하지 않아 3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했다. 하지만 부모와 친구들에게는 자신이 문제없이 3학년으로 진급했다고 말했고 아무도 로망의 거짓말을 눈치해지 못했다.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완전히 엉터리 가짜였다. 


그런 주제에 '플로랑스'라는 이름의 여성을 사랑하는데 그 여성을 잡기 위해 한 거짓말은 더욱 기가 차다. 자신이 림프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임의 리더격인 친구에게 은근히 흘림으로서 그 여성의 동정심을 이용한다. 플로랑스는 로망과 잠깐 만났다가 이미 결별을 선언한 상태였는데 로망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로망에게 돌아온다.(도대체 왜!!! 병은 병이고 사랑은 사랑이지ㅠㅠ) 그렇게 둘은 결혼하게 된다.


작가가 진술한 로망의 그 이후 행각은 더욱더 기가 찬다. 의대 졸업생이자 의학 연구소에 다니고 있는 사람인 척 행세를 해야 하는데 도대체 그 돈이 어디서 나온단 말인가. 대기업에 다닌다고 뻥은 칠 수 있어도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만큼 월급을 벌어올 수 없으면 그 사람은 반드시 의심을 받게 마련. 게다가 싱글도 아니고 결혼까지 한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거짓말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로망은 주변 사람들의 신임을 이용한다. 로망의 부모는 산림 관리원이었고 로망은 의대를 졸업했으니 특출나게 성공한 자식이었던 셈. 그래서 주변 친척들의 신임을 얻었던 것 같다. 그래서 로망의 부모와 삼촌, 더 아나가서 아내의 부모까지도 퇴직금과 집 판 돈을 로망에게 맡긴다. 로망이 나중에는 세계 보건 기구에 다니는 국제 공무원 행세를 했기 때문에 로망이 가진 스위스 은행 계좌에 돈을 맡기면 이윤이 높다고 믿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에게 사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기가 밥 먹는 것보다 쉬운 일이 되어 버린다. 가만히 있어도 자신한테 몫돈을 맡기는 사람들이 찾아오다니 로망 같은 사기꾼에게는 행운이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로망은 주변 사람들이 스위스 은행에 예치해달라고 맡긴 돈을 지 돈처럼 써버린다. 부인한테는 월급이라고 가져다 줬을 거고 주제에 또 바람까지 피워서 불륜 상대에게 비싼 선물 공세를 퍼붓기도 한다. 그렇게 십 몇 년을 무직 상태에서 국제 공무원 행세를 했다고 하니...그것조차 어떻게 보면 기적이라고 볼 수 있을 법하다.


로망의 사기 행각이 발각될 뻔한 계기가 된 사건도 정말 황당하다. 로망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불륜 사건이 발생한다. 남교장과 여교사가 불륜 상태에서 연애를 한 것. 그걸로 남교장은 교장에서 물러나고 평교사로 강등이 된 것 같다. 이때 로망이 갑자기 학부모 위원회에 입김을 넣어서 남교장의 강등은 부당하다면서 이것은 누군가의 모함이 분명하다며 교장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고 나서기에 이른다. 본인이 아무래도 불륜을 하다보니까 남의 불륜마저 옹호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게 분명하다. 황당한 건 이 사건 때문에 본인의 처지가 들통날 위기에 처한다. 


남교장을 두둔하지 않는 다른 학부모가 로망과 대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세계 보건 기구에 전화해 장클로드 로망이라는 직원을 문의하지만 그런 직원은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는 것. 아마도 이 일이 아내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물론 로망이 무너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돈 때문이다. 불륜 상대인 '코린'의 돈을 맡아서 다 써버리게 되는데 코린이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래서 로망은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부모를 죽이고 부인을 죽이고 아이들을 죽이게 된다. 솔직히 이런 상황이면 본인이 자살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데, 이 사람은 본인만 살아남고 주변 사람들을 죽이자는 결정을 하게 된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니 희대의 또라이가 분명하다. 어쩌다보니 거짓말하게 된 것, 그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 남의 돈을 써버린 것, 그래 다 어찌저찌 이해는 되는데 그 결말이 자살이 아니라니, 무려 5명을 살해하는 걸로 결말을 매듭짓다니. 세상에 이런 미친 결말이 또 어디 있나 싶다.


이런 식의 분노만 있었다면 이 책을 다 읽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장클로드의 이야기를 1인칭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엠마뉘엘 카레르 본인의 목소리가 있다. 작가는 이 사건에 끌려서 먼저 장클로드 로망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후로 둘은 편지를 주고 받고 감옥에서 만남을 갖기도 한다. 작가는 처음에 이 사람에게 약간의 호기심 또는 호감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운명은 그에게 거짓말이라는 병이 들러붙게 했고 그러한 병에 걸린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런 식으로 거짓말은 그도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짓이지 그가 의도적으로 행한 일은 아니었다고 이해하려고 애써 노력한다. 하지만 그의 재판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나서는 작가 역시 장클로드 로망은 완전한 사기꾼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그리고 장클로드 로망을 옹호하고 그를 따뜻한 마음으로 돌봐주는 종교인들과 심리적인 거리감을 둔다. 


그리고 내 눈에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베르나르의 입장이란 게 단지 헌신적인 기독교 신자의 입장이라는 걸 충분히 이해했다. 나는 마리프랑스와 그가 내 작업을 기웃거리면서,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 명의 정의로운 사람들보다 스스로를 뉘우치는 한 사람의 죄인을 위해 신의 가호를 기도하며 즐거워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들은 아흔아홉 명의 정의로운 사람들보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한 사람의 죄인을 위해 기도하는 걸 더 즐긴다는 표현에서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뉘우칠 죄가 별로 없는 평범한 사람보다, 죄가 많고 그렇기에 뉘우칠 가능성도 더 큰 범죄자들을 더 사랑하고 옹호하는 일이 이런 심리에서 가능하리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했다. 이해했다고 해서 그걸 지지한다는 뜻은 아니다. 엠마뉘엘 카레르 본인이 독실한 종교인이어서 아마도 이러한 탁월한 분석을 해낸 것 같은데 때론 어떤 한 책은 한 구절만으로도 그 책을 읽은 의미가 충분해지기도 하다. 나한테는 이 구절이 그러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네이버에 검색해봤더니 최신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챗지피티한테 물어봤더니 이 사람은 이미 가석방되어서 아주 조용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를 하거나 언론에 나서는 일은 없다고. 하...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엠마뉘엘 카레르라는 작가를 내가 계속 찾아읽게 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발견했다. 이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할 때조차 솔직하다. 자신이 장클로드 로망에게 끌렸다는 것, 그리고 지나치게 공손한 어투로 편지를 보낸 이유 등등 보통은 내보이기 싫은 속내를 적을 때조차도 상당히 솔직한 편이다. 이 작가의 책은 <왕국>를 읽은 게 다인데 그때도 정말 솔직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계속 찾아읽게 되는 듯하다.


범죄 실화를 다룬 책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건 단연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였다. 이 책을 쓸 때 트루먼 카포티조차 두 명의 범죄자 중 한 사람에게 끌렸다. 범죄자에게 끌리는 건 작가들의 고질병인가. 하지만 나조차도 그런 매혹을 거부할 수가 없는 게 나는 틈만 나면 <그알>같은 범죄 다큐를 보고 실제 범죄를 다룬 유튜브 영상을 찾아 본다. 이런 내가 범죄에 끌리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물론 범죄에 관심을 갖는 것과 범죄'자'에게 끌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지만 때론 어떤 문제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기도 한다.


5명을 살해한 장클로드 로망의 적은 자신의 내부에 있었다. 과연 나의 적은 어디에 있을까. 게으르고 무능력한데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닌 척하면서 살아가는 나 자신의 내부에도 나의 적이 있다. 그 적이 나를 이기지 않도록 부단히도 노력하고 살아야 하는데 세상 살이 정말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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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화질] 신부 이야기 15 신부 이야기 15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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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슴하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이들이 마냥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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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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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이 궁금해서 읽을 필요는 없다. 홍콩 거주 탄자니아인들의 거래(혹은 생활) 방식이 메인인데 매우 흥미롭다. 모든 건 변하는 법이니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남을 도울 때는 겸사겸사 해도 충분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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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게임 -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피터 홉커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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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 위주로 서술한 책이라 더 재미있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탐험한 고개들을 오늘날에는 유튜브로 바로 찾아볼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영-러 갈등이 메인이지만 뒤로 갈수록 우리 역사와도 맞닿은 부분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두꺼운 벽돌책인데 다 읽어서 매우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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