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컬티시 - 광신의 언어학
어맨다 몬텔 지음, 김다봄.이민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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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맨다 몬텔의 <컬티시 - 광신의 언어학>은 미국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컬트 현상을 그 집단이 사용하는 언어 중심으로 파헤쳐 보는 책이다.


‘컬트’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정확하게 번역하기가 애매하다. ‘사이비’가 제일 가깝기는 한데 ‘사이비’라는 단어를 사용할 경우 대부분 사이비 종교만을 떠올릴 수 있어 적절한 번역어는 아니다. 컬트는 종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는 피트니스 업계에서도, SNS 인플루언서를 추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컬트 현상을 포착한다. 그래서 이 책은 ‘컬트’ 혹은 ‘컬티시’라는 단어를 굳이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는 듯 하다. 


‘컬트’에는 공식적인 학문적 정의가 없다. 강력한 지도자, 정신을 조종하는 행동, 성적·재정적 착취, 구성원이 아닌 사람에 대한 적대감, 결과로서 과정을 정당화하려는 철학 등으로 ‘컬트’의 범주를 규정하려는 노력이 있을 뿐이다.


저자가 컬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 때문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열네 살 때 부모 손에 이끌려 ‘시나논’이라는 컬트 집단에 들어가 생활했다. 열일곱 살 때 그곳을 탈출한 저자의 아버지는 혼자서 어렵게 공부해 신경과학자가 되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시나논 경험에 대해 들어온 저자는 언제나 컬트 혹은 컬트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고, 그 관심들이 축적돼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1부에서는 컬트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존스타운이나 헤븐스 게이트처럼 악명 높은 자살 컬트를 다룬다. 넷플릭스 <사이비 교주가 되는 법>이라는 다큐를 보면 관련 내용을 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어맨다 몬텔이 직접 이 다큐에 출현하기도 했다.) 


3부에서는 사이언톨로지나 하나님의 자녀파처럼 논쟁적인 종교를 다룬다. 사이비 종교인 것 같기는 한데 존스타운 집단자살 사건처럼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건 아니어서 아직도 세를 유지하고 있는 그런 종교들이다. 사이언톨로지는 톰 크루즈의 종교로도 유명하다. 영화에 대한 사랑 때문에 대역 없이 직접 위험한 장면들을 촬영하곤 한다는 그 열정적인 톰 크루즈와, 사이비 종교를 믿는 톰 크루즈가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지만 어쩌랴. 그것이 사실인 것을.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컬트 피트니스 업계를 다룬 5부였다. 운동과 ‘컬트’라니, 처음에는 생뚱맞은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사실 이 부분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적인 단어들을 쏟아내면서 우리와 바깥 집단을 차별화하고,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내가 속한 이 집단에서 배제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불안해지고, 자신의 리더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까지 운동을 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에서 저자는 ‘컬트’를 읽어냈다.


【이런 내밀한 피트니스 스튜디오는 운동으로서 심오한 사상과 깊고 개인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스스로를 브랜딩한다.】


【스튜디오 피트니스 산업이 2010년대 초 갑작스럽게, 그리고 전례 없이 부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시기, 전통적인 종교와 의료 기관 모두에 대한 성인층의 신뢰도는 급격히 하락했다.(...)젊은이들이 주류 의학을 포기하고 전통 신앙을 경멸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신체적으로 영적인 공허를 채우기 위해, 컬트 피트니스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물론 저자도 크로스핏, 소울사이클 같은 컬트 피트니스가 사이비 종교와는 다르다는 걸 인정한다. 컬트 피트니스 업계는 회원들을 가둬두지 않으며 회원들은 운동이 끝나면 친구를 만나 피트니스와는 관계가 없는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하지만 ‘의미를 미끼로 돈을 청구하는 매혹적인 지도자가 있는 곳에는 항상 일이 잘못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컬트 피트니스 리더들의 현란한 말솜씨에 매혹되어 자신의 심리적, 신체적 상태를 전혀 돌보지 못하고 완전히 끌려다니는 상태는 위험하다는 것이다.(어떤 컬트 피트니스 업계에서는 운동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를 고용한다. 운동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매혹하는 기술이라는 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6부에서는 소셜미디어 구루를 다룬다. SNS에서 팔로워를 모은 후에 영적인 의미를 내포한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자신을 깨달은 사람으로 포지셔닝하면서 자신과 함께 하면 영적인 체험에 이를 수 있다고 홍보하는 이들이 바로 소셜미디어 구루들이다.


【영향력 스펙트럼에서 사이언톨로지 쪽으로 슬금슬금 움직이는 이 인물들은 당신을 구슬려 전자책을 사게 하고, 그다음은 명상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또 온라인 최면 강좌 수강권을 사게 만든다. 이 단계에 이르면, 당신의 영적 여정은 워크숍이나 캠프에 등록하지 않고는 의미가 없어진다. 당신이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이 여정은 그들에게는 수익성 좋고, 확장성 있으며, 불로 소득을 창출하는 황금알 낳는 거위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컬트에 끌리는 걸까. 그것은 인간의 외로움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어떤 공동체에 속해서 강렬한 유대감을 갖고 싶다는 인간 고유의 본성 때문에 사람들은 자꾸만 컬트에 끌린다.


【인간은 외로움 앞에 맥을 못 춘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생존을 위해 긴밀한 집단을 만들어 생활하던 고대 인류 이래로 사람들은 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집단에 이끌렸다. 진화 측면의 장점 이외에도, 공동체는 우리가 행복이라는 미스터리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신경학자들은 집단으로 기도문을 외우거나 노래를 하는 등 초월적인 유대 의식에 참여할 때, 우리 뇌가 도파민이나 옥시토신처럼 기분을 좋게 하는 화학물질을 분비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동일한 강도로 컬트에 끌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을 비슷비슷한 컬트 집단을 전전하며 살 정도로 이런 쪽에 과도하게 경도되어 있지만 또한 어떤 사람들은 컬트적인 특성을 바로 간파하고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대해 뼈 때리는 분석이 등장한다. 


【사람들을 착취적인 집단으로 끊임없이 끌어들이는 건 절박함이나 정신 질환이 아니라 과도한 낙관성이다.】


넷플릭스 <사이비 교주가 되는 법>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음이 열려 있고, 이상주의적인 사람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일단 어딘가에 이상적인 낙원이 있다고 믿어야 사이비 종교든 그냥 종교든 어딘가에 빠져들 수 있다. 비관적인 사람들은 이상 낙원이라는 건 애초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쪽으로 잘 빠지지 않는다. 비관적으로 살아서 좋은 점 하나를 발견했다. 컬트에 잘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밖에는...음.


이 책은 철저하게 미국 중심으로 쓰여져 있다. 전세계 컬트를 대상으로 분석했다가는 책 한 권으로 끝낼 수 없었으리라.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컬트를 떠올렸다. 코로나 당시 밝혀진 신천지의 정체, 대도심 한복판에서 ‘기운이 좋으세요’ 하면서 말을 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 수많은 무속신앙과 샤머니즘, 수많은 SNS 팔로워를 거느리며 물건이든 체험이든 뭔가를 팔아대는 인플루언서들을 떠올려보면 우리나라 역시 이쪽 방면에서는 꽤 잘 나가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컬트에 대한 내용이지만 결국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외로움 때문에 컬트에 빠져드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또 모를 일이다. 좀더 나이가 들고 주변 사람들이 떠나고 나를 받쳐주는 밑바닥이 아예 없다고 느끼게 되면 누구보다 열렬한 컬트 추종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나는 저런 데 빠지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어떻게 하면 좀더 나은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을지 이 책을 통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서 좋았다.


【컬트에 빠지는 사람들이 "길을 잃었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길을 잃었다. 삶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에게 무질서하고 혼란스럽다. (...)사실 확인과 교차 점검, 그리고 영적 만족감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올 수 있다는 생각을 수용하는 태도가 적절히 배합되기만 하면, 우리는 안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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