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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티비 구독 끝나기 전에 봐야지 봐야지 하고 미루고 있었던 <존 르 카레 : 첩보 소설 제왕의 회고록>을 오늘 봤다. 영어 공부한답시고 영어 자막으로 보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자막을 봐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얌전히 한글 자막으로 시청했다.


첫 장면이 정말로 인상적이다. 존 르 카레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책의 가제를 <비둘기 터널>로 붙이기 시작했다는데 그 기원은 자신의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를 따라서 어느 클럽 모임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남자들이 모여서 비둘기 사냥을 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클럽 빌딩에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비둘기들이 살고 있다. 그 비둘기를 어두운 터널로 데려가 풀어놓으면 그 비둘기는 힘차게 날갯짓을 해 터널을 통과한다. 사람들은 터널을 통과해서 나온 비둘기들을 향해 총을 쏜다. 비둘기에게는 터널의 끝이 일종의 해방구처럼 느껴졌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터널 끝으로 보이는 찬란한 빛은 죽음이 부르는 손짓이었다. 그렇게 남자들이 한참 유희를 즐기고 나면 비둘기 사냥은 끝이 난다. 살아남은 비둘기들은 다른 곳으로 도망갈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그 클럽 빌딩 옥상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또 비둘기 터널을 통과해 죽음으로 날아갈 것이다.


이 다큐에서 존르카레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버지 이름은 '로니 콘웰'이고 존르카레의 본명은 '데비이드 콘웰'이다. 아버지 로니는 대단한 사기꾼이었다고 한다.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어서 사람들을 끌어 모았고, 늘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처럼 살았으며, 기회만 되면 거짓말과 사기를 일삼았다. 존 르 카레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 지쳐서 어린 두 아들을 두고 떠나버렸다. 존 르 카레가 성인이 되어서야 어머니와 만났다고 하는데 어머니가 깊은 교류는 없었던 것 같다.


존 르 카레는 어머니와 아버지 두 사람 모두에게서 상상력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은 분명해보인다. 어머지는 말년에 요양원에 있을 때 그곳 간호사들에게 자신이 두 아들을 헌신적으로 키운 것처럼 이야기를 꾸며냈다. 아마도 자신이 아들을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을 그대로 직면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아버지는 말해 무엇하랴. 죽을 때까지 개과천선하지 않고 거짓말과 사기를 일삼았던 사람이라 이야기를 꾸며내는 재능은 아버지 쪽이 훨씬더 탁월했을 것이다. 존 르 카레는 자신이 그런 재능을 타고났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듯 하다. 자신은 상상으로 이루어진 거품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상상력을 사기 치는 데 쓰지 않고 소설 쓰는 데 썼으니 정말 다행이다 싶다.


존 르 카레는 스스로에 대한 심리분석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면 아마도 소설을 쓰지 않을 것 같았다고. 그에게 소설 쓰기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나는 존르카레가 첩보 소설을 잘 쓰는 이유가 첩보기관에서 실제로 일한 경험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다큐를 보고 나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유년 시절과 아버지에 대해 많은 말을 했다. 아버지는 돈을 훔치는 빌리든 원장을 협박하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아들들을 명문 사립학교에서 교육 받도록 했다고 한다. 그래서 존르카레는 상류층의 행동과 말투를 배워야만 했다. 존 르 카레 첩보 소설의 기원을 꼽는다면 그런 순간들이지 않을까. 스파이란 겉이 속이 달라야만 하는 사람들인데 존 르 카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존재로 여겼던 것 같다.


존 르 카레는 그레이엄 그린의 말을 인용한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작가에게 유년 시절은 크나큰 자산이다, 이런 말이었다. 그걸 인용하는 존 르 카레의 표정에서 자신의 유년 시절을 그리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은 않다는 걸 느꼈다. 비록 친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고, 아버지를 따라서 항상 도망자 신세로 살았지만 그때의 경험들이 그의 소설 세계의 큰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얼마 전에 읽었던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도 생각이 났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서 이곳저곳 전학을 다녔던 김영하의 삶이 그의 소설에도 분명히 녹아 있었다. 그 역시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에세이를 펴 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 얘기를 상당 부분 털어놓았다.


존 르 카레는 이 다큐에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자주 언급한다.(이 책과 <팅터 테일러 솔저 스파이>, 그리고 <완벽한 스파이>의 스포일러가 다큐에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에 민감하신 분들은 이 다큐를 피하시는 게 좋을지도.) 그는 이 소설에서 딱 하나 후회되는 부분이 있다면 첩보기관이 뭐 대단한 곳인 것마냥 그린 점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다큐에서 여러 번 '중심이 비어있다'는 말을 한다. 자신의 내면에 뭐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텅 비어있다는 것, 영국 첩보기관 국장의 방에 있는 비밀금고에 엄청난 기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막상 열어보니 금고는 텅 비어있었다는 것. 다큐의 첫 시작인 '비둘기 터널' 장면과 일맥상통하는 허무함이 느껴졌다. 찬란한 빛의 끝에는 죽음이 있고, 어떤 사람이나 조직의 한 가운데는 텅 비어있다는 것. 


한동안 존르카레의 소설을 열심히 읽다가 잠시 멈췄는데 다시 이 작가의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흥미로운 다큐였다. 조용조용하게 대화를 하면서도 주변사람 성대모사도 하시고 은근히 매력있는 작가였다. 사기꾼 아버지로부터 사람을 끌어당기는 능력을 물려 받은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놓은 존 르 카레의 책들을 다시 한번 독파해 나가야겠다. <리틀 드러머 걸>에서 멈춰 있다. 재미없어서 멈춘 게 아니라 봐야할 책이 너무 많아서 멈춰 있는 것ㅠㅠ그래도 이 다큐 너무 재미있게 봐서 다시 존 르 카레 책을 읽고 싶다. 아마존에서 존르카레의 회고록도 영어 킨들 버전으로 사놨는데...그건 또 언제 읽나 싶다. 알라딘에서도 전자책 쌓아두는 버릇을 못 고치고 이제는 아마존에서도 킨들 전자책을 쌓아두고 있으니 병이다 병. 그래도 애플 티비에서 보려고 벼르던 존 르 카레 회고 다큐를 오늘 다 봐서 뿌듯하다. 이제 책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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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지피티를 애용하고는 있으나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당연한 말씀. 지피티 프로그램에서도 지피티가 실수할 수 있으니 재차 검증하라는 안내 문구를 띄우고 있으니까. 


요즘 지피티가 실수하는 빈도는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 제목을 뽑아내고는 한다. 예전에 김영하 작가의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나는 김영하 작가의 책을 다 읽었기 때문에 지피티 검증 용도로 한 질문이었음) 생전 처음 보는 제목의 책을 추천해줘서 깜놀했다. 내가 모르는 신간이 나왔나 하고. 하지만 역시나 뻥이었고. 그런 책은 세상에 있지도 않았다.


그 후로 지피티한테 책 추천해달라는 질문은 거의 안 하는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그런지 요즘은 또 지피티랑 책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ㅋㅋㅋㅋㅋ피터 홉커크의 <그레이트 게임>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어서 이거랑 비슷한 책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국내에 발간된 피터 홉커크의 책은 단 두 권. <그레이트 게임>이랑 <실크로드의 악마들>이다. <실크로드의 악마들>은 작년에 읽었고(둔황 다녀오고 나서 읽은 거라 당연히 재미있었음), <그레이트 게임>은 지금 읽고 있는 중이다. 피터.B.골든이 쓴, 중앙아시아 역사를 다룬 <중앙아시아사>도 틈틈이 읽고 있는 중이다.


이거 말고 뭐가 더 있나 싶어서 알라딘 뒤져보다가 결국 지피티한테 질문했다. 내가 지금 <그레이트 게임>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또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그랬더니 아예 영어 원서 책들 리스트를 쫙 뽑아준다. 분명히 이 중에서 세상에 없는 책이 섞여있을 거라는 생각에 매의 눈으로 아마존 도서 사이트를 뒤졌는데 웬일. 다 있는 책들이었다.


내가 진짜 영어 원서를 술술 읽을 수 있는 영어 수준이 아니지만 그래도 책들이 전부 다 재미있어 보여서 일단 전부 내 위시리스트에 담아 뒀다. 한 권씩 야금야금 구입할 예정. (고등학교 때 이 열정으로 책을 읽었으면 영어 마스터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때는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 줄 몰랐지.)


어제는 <그레이트 게임> 읽다가 진짜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안되겠다, 피터 홉커크의 책을 한 권 더 사야겠다, 결심하고서는 아마존에서 <Trespassers on the Roof of the World: The Race for Lhasa>를 구입했다. 전자책으로 구매했는데 가격은 3달러대.


티베트에 외국인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던 시절에 티베트에 들어갔던 외국인 탐험가들 이야기다. 하지 말라는 거 하는 사람들, 특히 국가적으로 민감한 규칙들을 아무렇지 않게 어기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린다. 스파이 소설을 읽는 느낌이랄까. 잡히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왜 이런 모험을 해야만 했을까, 매우 궁금하다.


위의 책을 다 읽으면(과연?ㅋㅋ) <The High Road to China>랑 <The Border - A Journey Around Russia> 같은 책들을 구입해보고 싶다. 전부 지피티가 추천해줘서 알게된 책이다. 우리나라에는 번역이 안 된 책들이라 읽고 싶다면 아마존에서 전자책을 구입해야 한다.


그리하여 중앙아시아 관련, 나의 책 읽기 리스트는 대강 이러하다.


<그레이트 게임> 다 읽고,

<중앙아시아사> 틈틈이 읽고,

<Trespassers on the Roof of the World: The Race for Lhasa> 대강 맛만 보고(왜냐면 영어가 어려울 것 같아서 꼼꼼하게 읽을 자신이 없음ㅠ)

<The Border - A Journey Around Russia> 읽어보기! 이거는 Erika Fatland라는 저자의 책인데 이 저자가 쓴 것들 진짜 전부 재미있어 보인다.

<The High Road to China>도 재미있을 것 같음.


그나저나, 아마존에서 파는 전자책들, 가격이 들쑥날쑥 제각각이다. 어떤 건 15달러인데 어떤 건 3달러 막 이런다. 게다가 가끔씩 파격 할인 행사도 하기 때문에 함부로 전자책 사서 쟁여놓기 무섭다. 언제 파격세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같은 책인데도 출판사가 두 개고 가격도 다른 게 있어서 잘 살펴봐야 한다. 분명히 똑같은 저자에 똑같은 제목인데 어떤 건 15달러, 어떤 건 10달러길래 좀더 알아보니 하나는 미국 출판사고 하나는 영국 출판사란다. 내용은 똑같은데 미국 거냐, 영국 거냐에 따라 5달러가 차이가 나다니!!그렇다면 나는 무조건 싼 걸 고른다.ㅋㅋㅋ


한동안 너무 바빠서 책과 멀리 떨어져 지내다가 요즘 또 책이 너무 좋은 시기다. 아무 것도 안 하고 하루종일 책만 읽고 싶다. 그러려면 누가 나한테 밥도 해주고 돈도 벌어다줘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네ㅋㅋㅋ. 아무튼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틈틈이 책을 읽고 있다. 일단 가장 큰 목표는 <그레이트 게임> 뽀개는 것.


(사실 <그레이트 게임>은 책이 너무 두꺼워서 PDF로 스캔을 했다. 이렇게 두껍고 무거운 벽돌책을 종이책으로 읽을 자신이 없다. 목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책장 하나하나 넘기기도 귀찮다ㅠㅠ(이렇게 귀찮음이 심해서 밥은 어떻게 먹냐 수준) 그래서 지금 PDF로 읽고 있는데, 너무 편하다. 노트북 화면에 띄워놓고 마우스로 스르륵 스크롤 하면서 읽으니까 세상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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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를 빡세게 해보고 싶어서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를 주문했다. 경험상 이런 류의 책은 링제본을 해야 확실히 보기 편하다. 두께 때문에 두 권으로 나눠서 제본한다길래 얼마나 두껍나 했는데...진짜 두껍기는 하다. 제본 안 했으면 무거워서 들고다니지도 못할 뻔 했다.

어쩐지 너무 두껍고 어려워 보이는 책이라 한동안 거리두기를 하다가 어제 처음으로 책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도저히 집에서는 공부 못할 것 같아서 카페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스타벅스 가서 톨 사이즈 따뜻한 아메리카노랑 잉글리시 스콘을 주문했다.


커피랑 빵을 때려넣었는데도 너무 집중이 안 되어서 챕터1을 간신히 끝마쳤다. 처음에는 간단(?)해보이는 단어 10개 정도로 시작하는데 계속해서 새로운 단어로 가지치기 해나간다. 머언 옛날에 수능 영어 공부 열심히 했었는데ㅋㅋㅋ세상에 이렇게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이 튀어나오니까 새삼 충격 받았다. 세상은 넓고 외워야할 영어 단어는 무지하게 많다. 그래도 어원을 중심으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챕터1에서 그나마 익숙했던 단어는 A misogynist(여성 혐오자) 하나였다. 페미니즘 관련되어 아주 많이 등장하는 단어여서 나도 모르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추측할 수 있듯이, 'mis-'는 그리스어 misein(=미워하다)에서 파생되었고 gyne은 여성을 뜻하며 '-ist'는 보통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접미어이므로, A misogynist가 여성을 싫어하는 사람을 뜻한다는 걸 쉽게(?) 유추해낼 수 있다.


A philanthropist도 보자. 'Phil-'은 뭔가를 좋아한다는 뜻, anthropos는 인간을 뜻한다. 그러니까 인간을 좋아하는 사람들, 박애주의자라는 뜻이 완성된다. 독지가, 자선가라는 뜻도 있다. 의미는 참 좋은데 이거 발음하기 무지 어렵다. F 발음이 L 발음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TH 발음으로 연결된 후 P 발음을 내뱉어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나는 영어로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저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뿐이라서 굳이 발음까지 공부해야 하나...? 싶었지만 열심히 연습했다. 안 되는 발음도 연습 하다보면 은근히 쾌감이 느껴진다.


그나저나 '독지가'라는 단어의 정확한 한자어 뜻이 뭘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네이버 한자사전 들어가서 검색했다. '篤 도타울 독/志 뜻 지/家 집 가'를 써서 [1. 마음이 독실(篤實)한 사람, 2. 사업(事業)이나 공공(公共)의 일에 특(特)히 마음을 쓰고 협력(協力)ㆍ원조(援助)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1번보다는 2번 뜻을 주로 사용하는 듯 하다. 연말연시가 되면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독지가의 후원' 이런 류의 기사 제목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너무나 익숙한 단어였는데, 독지가의 '독'이 '도타울 독'이라는 걸 어제 처음 알았다. '도타울 독'은 또 언제 사용할까.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할 때 '독실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데 '독실'의 '독'이 바로 '도타울 독'이라고 한다.


언젠가 '나는 한자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심지어 신문이나 책에서 중요한 단어는 한자로 표기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가 '너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했다가는 꼰대 소리 듣는다'는 답변을 들었다.(심각한 분위기가 아니라 둘 다 농담처럼 던진 소리였다) 어쨌든 나는 한자를 좀더 많이 알고 싶다. 책을 보다가, 뉴스를 보다가, 저거는 무슨 한자를 쓰는 단어지? 이런 생각이 들면 네이버 사전을 찾아본다. 영어 단어를 공부할 때 어원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한국어 실력을 늘리려면 어느 순간 한자가 필요해진다.


오늘은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 챕터2를 공부해야 하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좋은 책인 건 알겠는데 솔직히 나한테는 좀 어렵다ㅋㅋㅋㅋ. 이 책 앞에 보면 "매일 적어도 하나의 레슨을 공부하세요. 여건이 허락하는 한 하루라도 건너뛰면 안 됩니다."라고 쓰여 있는데...건너뛰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하지만 공부해야지. 책을 구매했고, 링제본을 했다는 것은 재판매가 안 된다는 뜻.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품에서 이 책을 끝장내야 한다. 당분간 커피와 달달한 빵의 힘을 많이 빌려야겠다...!


이 책에 등장하는 발음기호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사전에 등장하는 일반적인 발음기호는 아무리 봐도 제대로 못 읽겠는데(그래서 꼭 발음듣기를 눌러서 소리로 들어봐야 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발음기호를 보면 읽힌다! 이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발음기호를 눈으로만 봐도 어떻게 읽는지 대충 짐작이 가니까 좀더 자신감 있게 단어를 공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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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5-02-13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한자를 익히려면 옥편을 뒤적일 줄 알아야 했지만,
요새는 네이버사전만으로도 누구나 쉽게
한자를 살필 뿐 아니라, 한자 밑말(어원)까지
한눈에 찾아볼 수 있더군요.

한자는 굳이 따로 가르치기보다는
네이버사전으로 넉넉하다고 느껴요.

이보다는 우리말 말밑(어원)을
사람들이 제대로 살피고 익혀야
비로소 영어 말밑과 한자 말밑도
왜 그러한 결인지 알아차릴 만하지 싶습니다.
 

얼마 전 나의 독서 습관에 약간의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인스피아 뉴스레터에서 '느림보 독서법'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다. 이 뉴스레터는 느리게 읽는 법과 관련된 책 여러 권을 소개해줬는데 그 중 에밀 파게의 <독서술>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이 유유 출판사에서 <단단한 독서>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는 걸 알고 나서 바로 <단단한 독서>를 구입해서 읽었다. 이 책은 이렇게 주장한다. "책 읽는 방법을 배우고자 한다면 우선 책을 천천히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뒤로도 계속 천천히, 자신이 마지막으로 읽게 될 소중한 책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천천히 책을 읽어야만 한다."고.


이 말은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조언이었다. 책을 많이 읽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백미터 경주를 하는 사람처럼 올한해 백 권이 넘는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 정작 기억나는 작품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원인 모를 공허함에 시달리며 이렇게 책을 읽어나가는 게 맞는 건가 의심하고 있을 때 '천천히 읽으라'는 조언을 접하게 되었고 나는 곧바로 나의 독서 습관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문제는 그 당시 읽었던 소설이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이었다는 거다. 이 소설은 너무 재미있어서 도저히 천천히 읽을 수가 없었다. 1,2부도 재밌었지만 3,4부는 기절할 정도로 재미있어서 새벽 3시까지 책 읽다가 침대에 쓰러져서 잠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 상황에서 느리게 읽기는 개뿔. 등 뒤에서 누가 칼을 들고 쫓아오는 것처럼 미친듯한 속도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결말까지 다 보고 나서 이 책은 정말 대박이라고 생각하며 조만간 1권부터 다시 천천히 읽기로 결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읽었던 책은 바로 이것.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1권인 <로재나>다. 추석 연휴를 맞이해 긴 시리즈물을 시작하고 싶어서 <반지의 제왕>,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놓고 고심하다가 마르틴 베크를 선택했다. 올초엔가 전자책 적립금 모일 때마다 한 권 한 권 사들여서 이미 시리즈를 전부 구입해둔 상태였는데 안 읽고 묵히다가 드디어 펼쳤다.

다 읽고 나서 생각했다. 이 책은 '느리게 읽기'에 특화된 책이로구나! 북유럽 특유의 느린 일처리와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까지 합쳐져 소설 속의 모든 일이 그야말로 느릿느릿 진행된다. 국제전화 연결하려면 몇십 분 기다리는 건 기본이고(그나마 국제전화가 가능했으니 다행) 다른 나라와 서류라도 주고받을라 치면 며칠에서 몇 주까지도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분실이라도 안 되면 다행.)

일처리 속도뿐 아니라 소설 자체의 템포도 느리게 흘러간다. 셜록 홈즈 같은 천재 탐정이 등장해 사건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비상한 두뇌를 가진 주인공이 추리 쇼를 펼치지도 않는다. 이 소설에 나오는 경찰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추리소설이나 범죄소설이 아니라 경찰이라는 직업군에 대한 탐구일지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좋았을까.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이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없이 그저 잠복하고 잠복하고 또 잠복하는 순간들을 읽는 것이 나는 너무 좋았다.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은 표적을 정확히 맞혀서 목표물을 획득하는 명사수가 아니다. 그들은 표적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들이 어느 쪽을 향해 쏴야 하는지 모른다. 그들은 살인 사건이라는 바다에서 살인범이라는 돌멩이를 찾기 위해 쉴 새 없이 그물망을 던졌다가 올려서 뭐가 잡혔는지 살펴보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또 그물망을 던지는 어부와 같다. 저렇게 해서 어느 천년에 범인 잡겠나, 싶은 생각이 들법도 한데 막상 소설을 읽다보면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마르틴 베크에게 조금씩 끌린다. 이 인물에게 왜 끌리는 것인가 생각해봤는데 나는 이 인물에게서 묘한 희망 같은 걸 발견했던 것 같다. 대단한 사명감이나 번뜩이는 재능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 그저 자신이 맡은 일을 쉬지 않고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그런 종류의 희망 말이다.

모든 것을 빨리 빨리 해결하고, 안 되는 일에는 후딱 손 떼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온 나에게 이러한 인물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소설은 사회가 실제로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혹은 어떤 식으로 굴러가야 하는지를 말해주기 위해 쓰여진 것만 같았다. 정답은 느리게 가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 살다 보면 꿈도 희망도 없는 시기가 도래하지만 그럴 때에도 살아가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핵심은 꿈이나 희망, 속도 같은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태도'에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리게 읽기'에 대한 나름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 빨리 빨리 읽으려고만 하다가 책에 대한 흥미를 잃을 뻔했기에 느리게 읽더라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읽는 독서가가 되기로 다짐했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여러 모로 슬로우 리딩과 찰떡궁합인 책이 아닌가 싶다.

+) 그나저나 <로재나> 읽다가 나폴리 4부작이 생각나서 초반에 좀 가슴이 아팠다. 나폴리에선 경찰이 범인을 잡는 건지 범인이었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들을 잡는 건지 알 수가 없었는데 <로재나>의 배경인 스웨덴에서는 경찰이 몇 달간 공을 들여서 진짜 범인을 잡는다. 똑같은 1960년대인데 나폴리와 스톡홀름은 완전 딴나라 세상이다. 이래서 다들 북유럽 북유럽 하는 건가 싶다. 그런데도 마르틴 베크는 계속해서 우울해하는 걸 보니 복지와 치안만이 해결책이 아닌 건가 싶기도 하고. 우연하게도 비슷한 시기를 다룬 완전히 다른 두 소설을 읽고 나니 생각이 많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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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유튜브에서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자주 찾아듣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도 마이클 잭슨은 워낙 슈퍼스타였기 때문에 유명한 노래들은 대충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각 잡고 집중하고 들어보니까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제일 많이 찾아 들은 노래는 '빌리 진'이랑 '데인저러스'인데 자꾸 머릿속에 '데인저러스!!' 가사 맴돌아서 미치겠다. 진짜 제대로 후크송. 


저녁 산책할 때는 윌라 오디오북을 듣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 책 뭐 없나 살펴보다가 <마리 앙투아네트 :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있는 거 보고 바로 듣기 시작했다. 역시 츠바이크. 문장들이 기가 막히다. 산책하면서 오디오북으로 듣는데도 내가 막 긴장돼서 미칠 것 같았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돈 펑펑 쓰면서 프랑스 국민들에게 미움 받는 장면에서 '제발 사치 멈춰!'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들이 단두대로 갈 운명이라는 걸 다 아는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이 책을 들으면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때문에 프랑스 왕실이 망했다'는 편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중국 역사를 보면 항상 나라가 망한 게 여자 때문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경우가 많았다.(ex. 달기, 양귀비...) 오죽하면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아름다운 미인)'이라는 단어까지 생겼을까.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그런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실눈을 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치는 당연히 했겠지만 마리 앙투아네트 한 명 때문에 왕실이 무너졌다고 할 수 있을까?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친 목걸이 사건을 보면 원흉은 루이 15세다. 그가 자신의 첩인 뒤바리 부인에게 주려고 엄청나게 화려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주문해놓고 갑자기 죽었다. 보석상은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줄 사람을 찾다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고객을 찾은 거다.(하지만 실은 잔느라는 여인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사칭해 목걸이를 구입하고 처분해버림.) 이것만 봐도 루이 15세의 사치가 장난이 아니었을 거라는 감이 오는데 왜 항상 사치의 아이콘은 마리 앙투아네트여야만 했을까. 나라가 망하면 망하기 직전에 나라를 쥐락펴락 했던 여인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아마 루이 15세 때 혁명이 일어났다면 루이15세의 정부인 뒤바리 부인이 온갖 욕을 다 먹었을 게 뻔하다. 이런 게 정말 답답한 부분.

어쨌든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은 정말 재미있었다. 이 책 다 끝내자마자 바로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유의 장미>를 펼쳤다. 언젠가 다시 볼 일이 있을줄 알고 전자책으로 구비해놨었다, 후훗!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는 내 기억 속에서 내가 엄마한테 사달라고 조른 첫 번째 책이다. 서점에서 두꺼운 세 권짜리 만화책을 사들고 나온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프랑스 혁명이 뭔지도 모르면서 이 만화책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그 당시에는 1권이 제일 재미있었고 2권은 쏘쏘, 마지막 3권은 거의 펼쳐보지도 않았다. 삼부회의, 혁명 이런 단어들이 뭔지 이해하지도 못할 때였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옷이랑 머리 너무 예쁘고 오스칼 멋있어서 만화책 보던 시절ㅋㅋㅋㅋ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부터 느꼈지만, 사실 이 책은 마지막 프랑스 혁명 파트가 찐으로 재밌다. 초반에 마리 앙투아네트와 뒤바리 부인의 기싸움, 잔느의 목걸이 사기 사건은 '오호 재밌다' 이 정도라면 프랑스 혁명 파트는 '찢었다, 미쳤다' 이러면서 보게 된다. 특히 오스칼이 왕실 근위대를 뛰쳐나와서 프랑스 위병대에서 근무하면서부터는 진짜 너무 재미있다. 자매 중 제일 예쁜 막내딸로 태어나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군복을 입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제일 가까이에서 모시는 왕실 근위대장으로 근무하다가 계급, 신분 이런 걸 모두 뛰어넘고 자신의 그림자와 같았던 앙드레를 남편으로 선택하더니 프랑스 혁명에 투신해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이런 여성 캐릭터! 정말 전무후무하다.


요즘 <베르사유의 장미>를 뮤지컬로도 만들어서 공연하고 있나보다. 뮤지컬은 전혀 안 보는 사람이라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오스칼 캐릭터가 무매력이라는 평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뮤지컬에서 오스칼이 매번 화만 내고 소리만 지르고 있다고ㅠㅠ만화책 보면 오스칼 진짜 개멋있는데 말이죠. 말 안 듣는 프랑스 위병대 군인들까지 휘어잡은 카리스마...나의 오스칼...ㅠㅠ.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다 듣고 나서는 요즘<나의 눈부신 친구>를 오디오북으로 듣고 있다. 이것도 진짜 엄청 재미있다. 오디오북을 들을 때 기본적으로 문장이 길지 않고, 묘사보다는 스토리 중심의 책을 고르는 게 필승 전략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 책이 딱 그렇다. 문장이 간단하고 '나'와 친구 '릴라'를 중심으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다만 등장인물이 많아서 헷갈린다는 게 흠.)


그런데 똑같은 분량을 소화한다고 쳤을 때 오디오북으로 듣는 것보다 전자책으로 읽는 게 훨씬 더 시간이 적게 걸린다. 이 책도 오디오북으로 듣다가 갑자기 전자책이 궁금해져서 밀리에 있는 전자책을 펼쳤는데 말도 안 되게 빠른 시간에 더 많은 내용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녁 산책 시간은 어차피 책을 읽을 수 없는 시간이기때문에 그 시간에 오디오북을 듣는 건 나름 뜻깊은 일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네 권짜리 책은 도저히 제대로 읽을 엄두가 나지 않기에 오디오북은 정말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리고 요즘에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초기작부터 순서대로 읽고 있다. 읽으면서 느꼈다. 이 사람 혹시 잘 배운 변태 아닐까...? 책들이 어딘가 다 이상하다ㅋㅋㅋㅋ<검은 개>는 멀쩡한 편인데 <이노센트>는 읽다가 깜놀했다. 갑자기 토막...이요? 단편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차마 언급하고 싶지도 않은 소재들로 가득 차 있다.


이언 매큐언, <속죄>의 원작자로만 알고 있었던 이 작가의 초기작이 이렇게 위험한 소재를 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얼마 전에 읽었던 <견딜 수 없는 사랑>이 너무 재밌어서 초기작부터 읽으려고 했던 건 뿐이었는데,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악마의 재능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까. 글은 너무나 내 취향이라서 계속 읽을 예정이기는 한데...와...후아...정말 지독하다. 이언 매큐언 초기작은 조심하세요. 하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읽을 예정이기는 하다. <속죄> 이후부터는 소재가 좀 무난해진다는 평이 있으니 앞으로는 지뢰밭이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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