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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편은 밥 먹을 때 가끔씩 <독박투어>를 틀어둔다. 한동안 너무 바빠서 보지를 못하다가 얼마 전부터 이집트 편부터 다시 정주행 중이다. 나는 2008년에 이집트를 다녀왔었고 남편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아 근데ㅋㅋㅋㅋ이 멤버들이 이집트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다. 음식도 입맛에 안 맞는 것 같았고 사람한테도 약간 지친 것 같았다. 이집트를 인도랑 많이들 비교를 하는데 우리들 기준에서는 인도가 훨씬 순한 맛이다. 인도 사람들도 황당한 요구를 가끔 하기는 하지만 강하게 맞대응하면 금방 수긍하는 느낌이었다. 근데 화면으로 느껴지는 이집트 사람들은 그것보단 좀더 매운 맛이었다. 그리고 지치지 않는달까. 


그래도 독박 멤버들은 연예인이고 엄연히 방송을 위해 간 거니까 피라미드에서 가이드를 고용해서 편하게 여행했던데 나는 그런 건 꿈도 못 꿨다. 이집트 갔었을 때 피라미드에서 사기 안 당하려고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정작 피라미드 봤던 건 별로 기억에도 없고 누가 피라미드에서 어떤 사기를 당했다더라, 이런 얘기만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그 당시 피라미드 관람 수칙 1순위는 '낙타를 타지 말 것'이었다. 낙타는 생각보다 키가 크다. 일단 한 번 타면 주인이 낙타를 무릎 꿇리기 전까지는 절대 낙타에서 내릴 방법이 없다. 여성 여행자들이 낙타를 타면 그 뒤에 낙타 주인이 앉아 계속해서 더듬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 내리기 직전에 돈을 따따블로 부른다는 거다. 만약에 그 가격을 거부하면 절대로 낙타에서 내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떤 한국인 여행자는 추가금을 거부하고 낙타에서 뛰어내렸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한국으로 귀국했다나. 아무튼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도시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지금은 좀 달라졌으려나.


피라미드를 구경한 독박 멤버들은 그날 밤 16시간 밤기차를 타고 아스완으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가장 좋은 객실을 예약한 것 같은데 객실이 너무 별로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물론 치앙마이-방콕 밤기차만큼 깔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도 기차보다는 백배쯤 나은데. 아, 나는 왜 모든 이야기가 깔때기처럼 기승전 인도로 빠질까. 이건 인도보다 좋다, 저건 인도보다 별로다, 항상 이런 식이다. 인도라는 나라, 정말 뭘까ㅎㅎㅎ 


아무튼 그들은 밤기차를 타고 아스완에 도착했고 나도 아스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맞다. 아스완이 되게 별로였다ㅋㅋㅋ. 카이로는 시끄럽고 정신 없지만 재밌기라도 했지. 아스완은 그냥 별로였던 것 같다.


문제는 아스완의 나일강 보트 투어. <독박투어> 멤버들도 처음에만 좀 신나하다가 나중에는 지루해하는 것 같았다. 호객 행위도 심하고 가격도 부르는 게 값이라 멤버들이 피곤해하는 게 느껴졌다. 아스완에서 누비안 빌리지로 가기 위해 보트 탈 때는 열심히 흥정을 하더니 돌아올 때는 '귀찮아. 그냥 그 돈 주고 타' 이러는 게 너무 웃겼다ㅋㅋㅋㅋ. 그 마음이 이해는 됐다. 화면으로 보는데도 우리도 약간 지치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아스완에서 보트 탈 때 다른 의미로 짜증이 났었다. 나랑 내 동행(여자)은 좀 젠틀해보이는 중년 남성이 모는 보트에 탔는데 보트가 출발하자마자 아주 난리였다. '남편이 있냐, 남자친구 있냐, 내 몇 번째 부인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냐' 끝도 없이 주절거려서 진짜 내리고 싶었는데 보트가 뭍에 닿을 때까지는 내릴 수도 없었다. 우리가 못 내린다는 걸 알고서 더 그러는 느낌이라 진짜 왕짜증.


이 방송 덕분에 나는 이집트로 추억 여행을 다녀왔다. 아스완이 정말 별로였던 것도 기억이 났고, 피라미드에서 낙타 타서는 안 되는 것도 기억이 났고, 무엇보다 카이로에서 만났던 여행객들이 떠올랐다.


내가 이집트에 갔었을 때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근처에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가는 호텔이 딱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썬 호텔(Sun hotel)이고 하나는 이스마일리야 호텔이었던 것 같은데 일기장이 없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이스마일리야 호텔에 묵었다.(그 이름이 맞다면 말이다. 썬 호텔에서 묵지는 않았다.) 도미토리였는데 2층 침대가 아니라 큰 방에 싱글침대를 여러 개 놓아둔 방이었다. 엄청 저렴했었다. 


한국인 여행객이 몇 있었는데 우리는 매일 밤 호텔 공용 공간에 모여서 그날 어떤 수모를 겪었고 어떤 사기를 당했는지 토로했다. 아무리 말을 하고 또 해도 여행자들의 이야기거리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집트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냥 그 여행객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 남미 여행하고 이집트로 넘어온 태권도 유단자, 아프리카 최남단에서부터 육로로 여행하다가 이집트로 넘어온 사람, 아프리카 어디 대사관에서 요리사로 근무하는 사람 등등 재미있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아프리카 최남단에서부터 육로로 여행하다가 근처 나라에서 배 타고 이집트로 넘어왔다고 말한 분은 여자분이었는데 엄청 큰 캐리어를 끌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그런 여행은 응당 배낭을 메고 해야한다고 믿었는데 그 분은 가방이 너무 무거워졌다면서 가방을 버리고 큰 캐리어를 샀다고 했다. 본인은 너무 만족한다면서 캐리어 끌고 다니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진짜 쿨했다. 어떤 분은(이분도 여자) 태권도 유단자인데 남미에서 칼 든 강도 만난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행히 싸우기 전에 그 강도가 놀라서 달아났다고 했다. 안 그랬으면 손에 든 스카프로 그 놈 목을 졸라버리려고 했다고. 너무 멋있었다. 아, 이집트에 있는 대학교에서 공부하시던 분도 계셨다. 아랍어 잘 하셨는데. 그 분도 여자였다. 나는 이때 정말 멋진 여성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이때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돈을 주고서라도 이때의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 옆 그 호텔 공용 공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주저하지 않으리. 


저 예능을 보니까 이집트에 너무 가고싶어졌다. 문제는 돈과 시간. 우리는 만약에 이집트에 가게된다면 그냥 관광만 하고 오지는 않을 거다. 무조건 다합 가서 프리 다이빙을 할 거고 시와에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가능하다면 터키까지도 돌아보고 싶다. 그러려면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을 땐 돈이 없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인생이 그런 건가? 그래서 여태까지 이집트는 마음 속 여행지 순위에서 미뤄두고만 있었다. 그런데 독박투어 보니까 이집트 너무 가고싶네. 우리가 제정신을 유지하지 않고 반 정도 훼까닥 미친다면 올겨울에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집트.


나는 남편에게 내가 만약 이집트에 가면 상형문자를 읽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리고 저건 상형문자가 아니라 '성체자'라고 불러야 하며 저 문자는 소리 글자로서의 기능도 했다고 아는척까지 했다. 이건 다 <신의 기록> 덕분이다. 이 책 진짜진짜 재밌어서 두 번 읽었는데 한 번쯤 더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일단 이걸 읽으면 이집트 문자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헛된 망상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집트 성체자란 말이야, 누가 해석을 했냐면 말이야, 로제타 스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말이지, 이러면서 아는척을 엄청나게 할 수 있게 된다. 전자책을 사놨으니까 만약 진짜 이집트에 가게 된다면 가는 비행기 안에서 무조건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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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8-11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년전 겨울에 이집트 다녀왔어요. 저는 아스완보다 아스완에서 몇 시간 더 가야하는 아부심벨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스완은 그냥 아부심벨 가는 길에 잠시 보았던 곳으로 기억에 있네요.
이집트 여행은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곳이지만 누가 간다고 하면 개인여행이 아니라 꼭 단체여행으로 갈 것을 권한답니다.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이 오랜 신축 공사를 끝내고 11월1일에 새로 개관한다는 소식을 며칠 전 뉴스에서 보고나니 또 한번 가고 싶어요.

Laika 2025-08-11 16:34   좋아요 0 | URL
오 굉장히 최근에 다녀오셨네요. 저도 아부심벨은 인상적이었어요. 그 자체로도 놀랍지만 큰 동상을 조각조각내서 옮긴 건 진짜 대단하죠. 다음에 다시 가게 되더라도 아부심벨은 또 가고 싶어요. 아스완은 아부심벨을 위한 도시 정도로만 생각하고 스쳐지나가려구요. 보트는 정말 별로였어요ㅎㅎㅎ이집트 박물관 개관 소식은 저도 들었어요. 박물관 개관하면 꼭 한 번 다시 가봐야겠어요. 예전 박물관은 상당히 낡고 어두웠던 것 같은데 얼마나 좋아졌을지 기대가 돼요!
 

우리 엄마는 넷플릭스 매니아다. 조금 이름난 작품 중에 안 본 게 거의 없다. 어디선가 '이거 재밌더라'는 말을 듣고 넷플에 들어가 그 작품을 검색해보면 이미 누군가 다 봤다는 표시가 뜬다.(영상 밑의 빨간 줄) 엄마한테 물어보면 몇 년 전에 봤다는 답이 돌아온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영상에 중독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꼭 젊은 세대에 국한된 말도 아니다. 내 주변에서 넷플릭스랑 유튜브를 제일 좋아하고 많이 보는 사람은 우리 엄마니까.


아무튼 엄마가 며칠 전에 <오프로드 인생 여행>이라는 작품을 추천해줬다. 찾아보니 이스라엘 배우 두 명이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촬영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다른 건 모르겠고 '중앙아시아'라는 것에 꽂혀서 나도 어제부터 이 작품을 정주행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5개국을 다 도는 건 아니고 한 달 동안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만 여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건 딴 소리인데 과거 소련 소속이었다가 독립한 중앙아시아 5개국 나라 이름을 외우는 방법이 있다. 유튜브 채널 '두선생의 역사공장'에서 알려준 방법이다. 왼쪽 하단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면서 '투.우.카.키.타'를 외치면 된다. '투우'는 황소 싸움 그 '투우'를 생각하면 잘 외워지고 '카키타'는 그냥 왠지 모르게 입에 착 달라붙는다. '투우카키타'는 순서대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이다. 이 방법을 알게된 후로 중앙아시아 5개국 위치는 확실하게 외우고 있다.(뿌듯)


<오프로드 인생 여행>에 나오는 배우 둘은 이스라엘에서 상당히 유명한 사람들인 것 같다. 아, 참고로 남자와 여자다. 동성 친구가 아니다ㅋㅋㅋ. 어느 작품에서 만나 친해진 것 같은데 각자 배우자가 따로 있다고 한다. 떠나기 전에 심리상담가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중앙아시아 여행 가서 둘이 사랑에 빠질 확률은 없는 거냐는 질문이 나온다. 그래, 나도 이게 제일 궁금했다. 둘은 사랑에 빠질 거였으면 이미 이스라엘에서도 빠졌을 거다, 중앙아시아까지 가서 그런 일이 생길 리는 없다고 답한다. 흐흠. 그렇군. 아무튼 여성 배우(=로템)는 진짜 유명한가보다. 자신은 이스라엘에서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룬 것 같다며 뭔가 새로운 걸 경험하고 싶어서 이걸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내가 속한 사회에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저 자신감. 왠지 멋지다. 남성 배우(=리오르)는 원래 지프차 타고 오프로드 여행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로템은 오프로드나 지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서 같이 온 것 같고. 그래서인지 지금 첫 번째 에프소드를 보고 있는데 둘이 계속 삐그덕거린다. 


사실 둘이 대화하는 방식 자체가 그렇다. 리오르는 '너는 왜 나를 위로하거나 격려해주지 않아?' 이러면 로템은 '그야 당신이 잘난 척을 하니까 그렇죠' 이런 식이다. 그나저나 둘의 대화는 로템이 리오르에게 존댓말을 하고 리오르는 로템에게 반말을 하는 설정으로 번역이 되어 있다. 리오르가 로템보다 나이가 많다고는 하지만 정말 이렇게 했어야만 했을까? 나이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둘이 친구라는 설정이고 이스라엘 언어에는 우리나라 말 같은 존댓말 체계가 없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챗지피티한테 둘이 나이 차이가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억ㅋㅋㅋㅋ12년 차이라네. 리오르가 로템보다 12살 더 많다고. 아 그럼 존댓말로 번역한 것도 인정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갑자기 수긍.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래 이스라엘 수도 텔 아비브를 처음 봤다. 이스라엘은 맨날 파키스탄이랑 전쟁한다는 소식으로만 접해서 어떤 나라인지 잘 몰랐었는데 텔 아비브는 현대적인 도시 그 자체였다. 뭔가 신기했고 놀라웠다. 근데 또 이 글을 쓰면서 네이버를 찾아보니 이스라엘 헌법상 수도는 예루살렘이고 국제법상 수도는 텔 아비브라네. 복잡하다 복잡해. 아무튼 영상으로 처음 접한 텔 아비브는 너무 깔끔하고 현대적인 수도였고, 이스라엘이 파키스탄이랑 전쟁을 하거나 말거나 이란이랑 미사일을 쏘거나 말거나 거기 사는 중상류층 사람들은 편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약간 기분이 묘했다. 한류가 대중화되기 전에, 외국인들이 서울 와보고 깜짝 놀랐던 것과 비슷한 기분일까나. 한국은 북한이랑 전쟁 중인 나라라고 생각했을텐데 막상 한국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고 서울에 고층 건물들이 우수수 세워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로템이랑 리오르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공항 도착해서 지프차를 수령하고 도로를 벗어나 오프로드 길로 들어선다. 광활한 초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눈 덮인 설산까지 보여서 너무 예뻤다. 나는 중앙아시아 하면 막연하게 사막화된 황폐한 초원을 상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푸릇푸릇한 풀들로 덮여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설산까지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키르기스스탄은 다른 중앙아시아 나라들과 다르게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라고 한다. 그 산은 바로 천산 산맥. 천산 산맥은 중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키르기스스탄까지 뻗어 있구나. 너무 예뻤다. 동양의 스위스라고 불려도 손색 없는 풍경이었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눈이 작고 얼굴이 동글동글한 전형적인 몽골리안형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동양과 서양의 중심 지점인 중앙아시아에 위치해있는데도 서양권과의 혼혈 느낌이 전혀 없었다. 중국 신장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오히려 키르기스스탄보다 더 동쪽에 위치한 신장 사람들이 훨씬 더 혼혈 느낌이 강했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그냥 몽골 사람처럼 생겼다. 또 충격인 건 이 사람들의 전통 놀이인 '콕 보루'를 시작하기 전에 '앗살람 알라이쿰' '오, 알라신이시여' 이러면서 기도를 하는 거다. 그러니까 이 나라는 '튀르크계(돌궐계)'로 분류되며 한때 러시아에 속했던 영향으로 러시아어를 쓰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키르기스어(튀르크계 언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겉모습만 보면 전형적인 몽골리안인데, 종교적으로 보면 대다수가 이슬람을 믿는다고 한다.(물론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


위에 잠깐 언급한 '콕 보루'를 관람하는 장면이 <오프로드 인생 여행> 1화에 나온다. 말에 탄 키르기스스탄 남자들이 살아있는 염소를 공처럼 몰면서 진행하는 경기다. 심지어 경기가 끝나면 그 염소를 먹는다(ㅠㅠ) 리오르랑 로템 둘 다 채식주의자인 것만 봐도 이들의 동물권 감수성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키르기스스탄으로 여행을 왔으니까 전통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이걸 보러 온 거다. 로템은 공황발작이 올 것 같다면서 아예 보지 않았고 리오르는 그래도 이 사람들의 문화라면서 힘들긴 했지만 지켜보기는 했다. 둘의 대화가 재미있다.


리오르: 나는 저기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야. 저건 저들의 문화잖아.

로템 저 사람들의 문화고, 50년이나 100년 전에는 당연한 거였죠. 하지만 이젠 달라져야 해요. 용납될 수 없어요.

리오르: 그럼 전통을 어떻게 보존해?

로템: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말을 학대하거나 양을 도살하지 않고도 전통을 지킬 방법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유대 전통에는 남자가 아내를 여러 명 두던 시절이 있었죠. 우리가 그 전통을 고수해요?

리오르: 맞아.(먼 산 보기...)


나는 두 명한테 다 공감이 되어서 재밌었다. 그들의 전통이니까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도 충분히 이해되고, 아무리 전통이라고 해도 모든 걸 다 보존할 수는 없으며 분명히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진짜 공감이 간다. 둘이 성격이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다. 둘이서 똑같은 것만 얘기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저기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라는 리오르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많은 곳엘 다녀봤지만 때로는 낯선 사람들의 행동에서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았다. 나는 낯선 사람들의 문화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항상 노력했던가?


넷플릭스 중독자, 아니아니 넷플릭스 매니아인 엄마 덕분에 재미있는 작품을 발견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아무리 누가 추천해줘도 내 취향이 아니면 절대 안 보는데 이건 내 취향에 딱 부합해서 정주행하고 있다. 지금 2화 보고 있는데 둘이 또 싸울 각이다ㅋㅋㅋㅋㅋㅋ. 12살 차이 이성 친구인데 이렇게 싸우면서 여행하는 것도 능력이다 정말ㅋㅋ.


심리상담가: 리오르에게 뭐라고 했죠?

로템: 이번 여정에서 제 목표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거라고 했어요. 리오르고 잘 이해했고 우린 차 타고 외딴곳으로 가기로 했죠. 새랑 바람 소리, 그리고 리오르의 목소리만 듣고 싶어서요.

심리상담가: 좋은 생각이군요. 그런 말이 있어요. 다른 모든 입자와 멀리 떨어져서 홀로 우주를 떠도는 두 원자에게 남은 운명은 서로 충돌하는 것뿐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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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공식품 : 음식이 아닌 음식에 중독되다>를 읽으면서 먹는 걸 살 때 원재료명을 꼭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먹은 서울우유 플레인 요거트는 원재료가 우유랑 유산균으로 굉장히 단순했다. 그런데 냉장고에 굴러다니고 있던 또 다른 요거트 원재료에는 젤라틴, 유화제 같은 성분이 적혀있었다. 원재료가 단순하지 않아서 그런가 왠지 맛도 별로인 것 같고. 엄마도 나도 그 요거트에는 손이 안 가서 서울우유 요거트만 먹었다.


저녁에는 올리브영에 들렀다. 세일한다길래 뭐 살 거 있나 해서 들른건데 살 게 없었다. 립스틱도 파운데이션도 흥미를 잃은지 오래. 다만 바디로션 같은 거 세일하면 하나 사려고 했는데 검색해보니까 쿠팡에서 사는 게 훨씬 쌌다. 마실 거라도 사볼까 해서 냉장고쪽으로 향했다. 맥주랑 얼그레이 하이볼이 세일 중이길래 두 개를 들고서 원재료명을 확인했다. 얼그레이 하이볼에는 주정, 백설탕, 오크칩, 구연산, 향료 등이 들어있었다. 오크칩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더니 하이볼 향 낸다고 집어넣는 원재료인 듯 싶었다. 되게 건강한 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못먹을 화학약품은 없는 것 같아서 일단 하이볼은 겟. 맥주의 원재료명을 봤는데 얘는 훨씬 복잡했다. 일단 내가 잘 모르는 화학약품의 이름이 보였다. 


네이버 검색해보니 얼그레이 하이볼은 엄청 맛없다는 불호평이 많고 맥주는 맛있다는 평이 많았는데 나는 하이볼을 구매했다. <초가공식품>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원재료명 따지면서 음식을 구매하는 일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으나 일단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만큼은 '음식이 아닌 음식'을 구매하기가 매우 꺼려졌다. 하이볼이랑 같이 먹을 과자도 사지 않고 집에 와서 한라봉이랑 호두를 으적으적 씹어 먹는 중이다. 평소 같았으면 봉지과자를 까놓고 하이볼을 즐겼을텐데 말이다. 한라봉과 호두는 음식이고, 온갖 화학 약품을 버무려놓은 과자는 '음식이 아닌 음식'이라는 생각 때문에 도저히 과자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요지는 이렇다. 인간은 스스로 먹는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조절 기제를 타고 태어난다. 그래서 신체는 자신에게 맞는 적정한 몸무게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초가공식품의 등장 이후로 비만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초가공식품이 칼로리가 높다거나 지방 함량이 높다거나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초가공식품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즉 실험실에서 탄생한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초가공식품은 인간의 섭식 조절 능력 자체를 고장낸다. 그리하여 초가공식품에 중독된 인류는 '음식 아닌 음식'을 끝없이 갈망하게 된다는 것.


이런 식의 주장에 또다른 반론이 있을 수도 있으나, 내가 직관적으로 느끼기에는 이 책의 주장에 일견 타당성이 있다. 인류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실험실에서 탄생한 분자들을 먹는 게 몸에 뭐 그리 좋을 게 있을까. 가습기 살균제 사건 때도 느꼈고, 더 멀게는 방사선의 위험성을 모르고 방사능 음료를 판매한 사건에서도 느끼지만, 나는 일단 너무나 새로운 것에는 경계심을 갖는 편이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도 제로 열풍에 늘 의심을 품고 있었다. 콜라가 몸에 나쁘면 콜라를 끊어야지, 그걸 대체해서 제로 콜라를 먹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나는 어쩌다가 탄산음료가 먹고 싶으면 차라리 오리지널을 마신다. 설탕은 그래도 자연에서 뽑아내기라도 하지, 단맛을 내지만 칼로리는 없는 저 성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선뜻 손이 안 간다. 평소에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이 책의 주장에 더욱더 감화가 되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제로 음료는 불신하면서 과자 중독자로 살았던 나, 정말 모순덩어리였다...ㅠㅠ)


요즘 나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도 그렇고 아주 친하게 지내는 지인도 그렇고 다들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먹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각자 주장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지만, 어쨌든 공통점은 딱 하나. 질 좋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들 왜 이렇게 먹는 걸 신경쓰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조금만 신경을 놓으면 안 좋은 음식들을 먹기가 너무 쉬운 환경에 놓였기 때문인 듯 하다. 나만 봐도 그렇다. 요리하기가 싫으니까 온갖 화학 약품이 들어있는 밀키트를 사먹고, 밥 대신 과자를 먹는 일도 다반사였으니까.


먹는 걸로도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말이 있다. 건강하게 살려면 약에 기댈 생각하지 말고 먹는 것부터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어차피 평생 살 수는 없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데 식생활이 망가지면 반드시 건강을 해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과자는 끊을 수 없겠지만 밀키트는 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 하기 싫으면 야채 삶고 고기 구워서 소금 뿌려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올한해 목표는 가짜 음식 말고 진짜 음식으로 내 몸을 만드는 것. 초가공식품을 싹 끊을 수는 없지만(과자 없이 살 수는 없다ㅠㅠ) 서서히 멀어지고 싶다. 음식 아닌 음식들, 그동안 즐거웠고 앞으로는 적게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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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눈이 내렸다. 이번 겨울은 눈이 참 자주 내린다. 나는 추운 건 좋은데 눈 내리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길을 걸을 때 팍팍팍 빠르게 걷고 싶은데 눈이 오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슬로우모션처럼 걸어야 하는 게 별로다. 그래서 올겨울에는 산책을 많이 못 했다. 그래서 살이 찌기 시작한 건가. 나가서 걷고 싶은데 길이 너무 질퍽거려서 걷기가 참 애매하다.


창밖을 보다가 루이즈 페니의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하면 캐나다, 캐나다 하면 가마슈 경감 시리즈라는 단순한 발상이다. 가마슈 경감 시리즈는 여름이 배경일 때도 있고, 겨울이 배경일 때도 있는데 나는 이 시리즈와 찰떡궁합인 계절은 겨울이라고 생각한다. 스리 파인스(사건이 주로 벌어지는 마을)에는 눈이 내려줘야 제맛이다.


눈 내리는 날, 스리 파인스의 비스트로에 모인 동네 사람들. 그들은 카페오레나 핫초코를 한 손에 들고 정답게 대화를 나눈다. 물론 살인 사건 이야기일 때가 많지만ㅋㅋㅋ. 


이번 사건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스리 파인스에서 늙어 죽는 사람은 없는 거야? 살인마저도 평범하지 않잖아. 그저 한 대 후려치거나 서로 찌르거나 총이나 몽둥이를 사용하면 안 되는 거야? 아니다. 언제나 난해했다. 복잡하기까지 했다. 전혀 퀘베쿠아답지 않았다. 퀘베쿠아는 거침없고 명쾌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얼싸안았다. 누군가를 죽이겠다면 머리를 후려치면 될 뿐이었다. 퍽. 끝. 유죄. 다음. ‘이건가?’, ‘이게 아닌가?’ 따윈 없다. 빌어먹을.


스리파인스를 묘사하는 이런 문장들이 너무 웃기고 좋다ㅋㅋ. 나야 소설이니까 읽는 거지만, 진짜로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매번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동네를 다 떠나고도 남지 싶다. 작고 아름답지만 너무나 무서운 마을...그곳이 스리 파인스다.


만약 살인 사건이 없다면 그런 마을에 살고 싶느냐 하면 그것도 글쎄. 생각은 좀 많이 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도시의 익명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작은 마을, 작은 공동체가 갖는 폐쇄된 분위기를 못 견딜 것 같다는 생각이 언뜻 든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스리 파인스를 너무나 사랑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벌어지는 같은 주제의 대화였다. 해변으로의 여행 상품 비교, 캐리비안 크루즈 여행 상품 고르기, 산 미겔 데 아옌데와 카보 산 루카스, 또는 바하마 대 바베이도스에 대한 논쟁. 끝을 모르고 내리는 눈과는 거리가 먼 이국적인 장소들. 하지만 여행이 아무리 근사해 보여도 실제로 떠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가브리는 그 이유를 알았다. 머나, 클라라, 피터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루스의 이론은 달랐다.

"다들 게을러터져서 그런 거야."

글쎄, 꼭 그런 건 아니었다.

가브리는 카페오레를 홀짝이며 시선을 벽난로 속 타오르는 불길에 둔 채 익숙한 리듬을 타는 익숙한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비스트로 안을 둘러보았다. 대들보, 넓은 널로 깐 바닥, 중간문설주가 달린 창문, 통일성을 무시하고 배치된 편안하고 오래된 가구들. 그리고 그 너머로 펼쳐진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스리 파인스보다 따뜻한 곳은 없으리라.


현실에서는 이런 마을에서 살아볼 일이 없어서 그런 건지, 루이즈 페니 소설에 등장하는 스리 파인즈의 분위기를 너무 사랑한다. 특히 겨울 배경 문장들이 좋다. 바깥이 너무나 춥기 때문에 실내가 대조적으로 더 아늑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눴고, 이따금 멈춰 서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입김을 불어 가며 대화하는 모습이 꼭 만화 속 등장인물들이 말풍선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몇몇은 카페라테를 마시러 올리비에의 비스트로로 향했고, 몇몇은 신선한 빵이나 과자를 사러 사라네 블랑제리 빵집으로 갔다.


피터와 클라라는 비스트로에 가는 동안 마주친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웠다. 두 사람은 개나 고양이가 물어뜯곤 했던 낡은 털모자 대신 크리스마스 양말 속에 들어있었던 새 모자를 쓰고 있어서 옛 모자에 익숙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이 키우는 반려동물들은 겨우내 모자에 달린 털실 방울을 가만히 놓아두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방울 대신 양초처럼 머리 꼭대기에 심지만 달고 다니기 마련이었다.


만약에 소설 속에 등장하는 어떤 마을에 가볼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면 나는 겨울의 스리 파인스를 택해야겠다. 눈발을 해치면서 올리비에의 비스트로로 들어가 카페오레를 주문하고 머나의 헌책방에 들러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추천받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눈 오는 겨울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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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이다. 시간이 참 잘 간다. 시간이 흐르는 게 마냥 아쉽지만은 않다. 그 시간들을 잘 견뎌냈다는 뜻이니까, 한편으로는 달력이 넘어가는 게 뿌듯하기도 하다. 예전에 투병하시는 분이 그린 인스타툰을 본 적이 있다. 그분은 나이 많은 어르신을 보면서 부러워했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건 그 나이까지 죽지 않고 살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니 많은 게 달리 보였다. 나이 먹는 게 딱히 슬프지 않다. 아프지 않고 꺾이지 않고 2025년을 맞이한 나 자신, 대견하다.


어제는 시사인 전자책을 구독해볼까 싶어서 시사인 사이트를 기웃거리다가 뉴인(NEW IN)이라는 서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사인 전자책을 구독하면 월 12,000원인데 뉴인을 구독하면 월 9,900원에 시사인 최신 기사들을 전부 볼 수 있다는 것. 시사인 기사들을 굳이 책의 형태로 볼 필요가 없는 나에게는 상당히 합리적인 서비스였다. 바로 구독 결제! 주간지 기사의 긴 호흡을 좋아하는 편이라 예전부터 시사인을 좋아했는데 뉴인 서비스 괜찮으면 이걸로 정착해야겠다. 종이 잡지 쌓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딱인 것 같다.


어제는 또 당근 거래를 열심히 했다. 안방 침대를 무료나눔으로 올려놨는데 깨끗한 상태가 아니여서 그런지 아무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사실 이런 큰 가구는 운반 가격이 문제다. 용달차 부르면 못해도 20-30만원은 나올텐데 그 돈 주고 이렇게 낡은 침대 가져가느니 사는 게 낫겠다고들 생각하는 듯 하다. 이걸 버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어제 연락이 왔다. 외국인이었다. 이 외국인은 대뜸 영어로 매트리스만 가져갈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날을 위해서 내가 그렇게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던가? 에라 모르겠다, 나도 영어로 대화했다. 매트리스만 가져가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사이즈가 크니 차를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자신은 혼자고 이걸 들고 버스를 타겠다는 거다ㅋㅋㅋㅋㅋ내가 말했다. 절대 안 된다고, 이거 혼자서는 들지도 못한다고, 버스에 타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했다. 그 외국인은 자신의 집에 아무 것도 없으며 오늘 당장 매트리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 그 사정은 이해하는데 차라리 다른 곳에서 싱글 매트리스를 구해보는 게 낫지 우리집 매트리스는 당신에게 적합한 물건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어느 정도 수긍했는지 다른 물건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휴...미리 말 안 했으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 것인가.


이 동네는 서울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수도권인데 몇 년 전부터 외국인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요즘에는 외국인이 정말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당근 거래 하는 외국인들도 꽤 만났다. 예전에 냄비 나눔글 올렸었는데 그거 받아간 사람도 외국인이었다. 한국말 너무 잘해서 얼굴 보기 전까지는 외국인인지도 몰랐다. 오늘 침대 가져간다는 이 분은 한국에 처음 온 사람인건지 한국말을 못하고 냅다 영어로....;; 그나저나 이분이 문장 끝에 sir/ma'am 붙이는 건 별로였다. 내가 그 사람 상관도 아닌데, 당근에서 무료나눔을 하는 게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고, 갑자기 불편해졌다. 예전에 인도 여행할 때 그쪽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말할 때 꼭 sir 혹은 ma'am을 붙였던 기억이 떠올랐다.(부자들은 당연히 예외ㅋㅋ)이 외국인도 혹시나 그쪽 계통인 걸까. 뼛속 깊이 깔린 계급 의식을 느낄 때마다 나는 불편해진다. 그나저나 방에 매트리스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는데 이 추운 겨울을 어찌 보내나 걱정이네.


밤에는 장농 정리를 했다. 모아서 아름다운가게에 보내려고 했는데 계획 취소. 아름다운가게는 당장 옷걸이에 걸어서 팔아도 되는 컨디션의 옷들만 받는다고 한다. 세탁이나 수선 과정이 없기 때문에 진짜 깨끗한 옷만 받는다고. 내가 선별한 옷은 그 정도의 컨디션이 아니어서 아무래도 헌옷 수거업체에 연락을 해야할 것 같다. 옷 기증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구나. 기증을 하고 싶다면 깨끗하게 입고 낡아지기 전에 미리미리 기부할 것. 오늘의 교훈이다.


요즘 보고 있는 책은 <중앙아시아사>. 이 책, 재밌다. 밀리의 서재에서 보고 있는데, 전자책 적립금 쌓이면 구매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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