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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근으로 물건 하나를 판매했다. 내가 쓰던 물건이 아니라 부모님이 쓰시던 건데 이제 쓸 일이 없다 하셔서 내가 대신 당근에 올렸다. 안 팔릴 줄 알았는데 웬걸, 바로 연락이 왔다. 에누리 가능하냐고 물어보시길래(가격제안 가능하다고 올려놨음) 쿨하게 깎아드렸고 그분께서 구입하시기로 했다. 그제서야 물건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약간 더러웠다. 구매자가 오기로 한 시간까지는 한 시간 반이 남아있었다. 그때부터 엄마랑 나랑 들러붙어서 그거 세척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둘이 앉아서 대화 한 마디 없이 묵은때를 벗기던 그 장면이 왤케 웃기던지.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니, 원래 알고 있었지만 또 한 번 몸으로 느꼈다. 물건은 사는 것보다 처분하는 게 더 어렵다는 걸.


구입은 쉽다. 클릭 한 번이면 집 앞까지 날아오니까. 그런데 물건을 처분할 때는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특히 나처럼 물건을 아무렇게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면 더 그렇다. 이꼴저꼴 안 보고 분리수거로 내버리면 편한데 멀쩡한 물건을 그렇게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어떻게든 당근으로 판매 혹은 나눔하려고 노력한다. 


며칠 전에는 부모님댁 주방 정리를 도와드렸는데 너무너무 멀쩡한 스텐 냄비들이 쏟아져 나왔다. 몇 개는 분리수거로 버렸고, 쓸 만한 것들은 당근으로 나눔했다. 두세 명이 한꺼번에 연락오는 걸 보고 '그래, 안 버리기를 잘 했다. 버렸으면 고철인데 나눔하니까 물건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거잖아!!'라는 생각이 들어서 약간 뿌듯했다. 이런 뿌듯함 때문에 당근 나눔을 애용하는 편이긴 한데....그래도 너무 귀찮다. 물건 상태 확인하고, 사진 찍고, 설명 올리고, 모르는 사람이랑 채팅하는 것 자체가 너무너무 귀찮다!!!!


예전에 언니 집에 갔을 때 언니가 자기 집에 당근으로 팔 물건이 산더미라면서 나보고 당근 거래 해주면 용돈 주겠다고 했었는데ㅋㅋㅋㅋㅋㅋ그때 언니가 왜 그랬는지 알겠다. 당근 하다보면 기가 너무 빨린다. 진상은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오히려 친절한 분들만 만났는데도, 그 행위 자체가 너무 피곤하다ㅋㅋㅋ. 요즘 부모님댁 정리를 도와드리면서 당근을 좀 많이 하고 있는데, 하루에도 열두 번씩 고민한다. 당근 할까? 귀찮은데 분리수거로 버릴까? 아까운데 그냥 쓸까? 아니 그래도 당근해야지ㅠㅠ.


나의 결론은 하나다. 물건을 구입할 때 신중하게 생각할 것.


나는 물건 살 때마다 처분 방법을 고민한다. 옷을 살 때는 이걸 사서 실컷 입고 나중에 헌옷수거함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금액대의 옷들만 구입한다. 디자이너 브랜드나 백화점 옷들을 쳐다도 보지 않는 이유다. 전자제품은 최대한 구입하지 않는 쪽으로 생각하고, 사더라도 무조건 소형을 선호한다. 냉장고도 작은 거, 세탁기도 작은 게 좋다. 크기가 작으니까 팔기에도 좋고, 안 팔려서 폐기물 스티커 붙여서 버려야 하더라도 내 손으로 직접 옮길 수 있으니까 좋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부모님댁 베란다에서 겁나게 무거운 대리석 식탁 상판을 발견했다. 15년 전쯤에, 대리석 식탁 한창 유행할 때 100만 원도 넘게 주고 산 거라는데 지금은 베란다 구석에 쳐박혀 있는 신세가 되었다. 부모님 두 분이 쓰시기에는 너무 크고, 이 집에 이사 오면서 빌트인 되어 있는 아일랜드 식탁을 쓰다보니 그 대리석 식탁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이제는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슬쩍 꺼내봤는데 꿈쩍도 안 했다. 진짜 겁나게 무거웠다. 대리석 대리석 말만 들어봤지 이렇게 큰 대리석 식탁을 옮겨본 적이 없으니 대리석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잘 몰랐었다. 대리석은 정말이지 겁이 나게 무거웠다. 여자 둘이 미친듯이 힘을 쓰면 한 3cm 움직인다. 도저히 답이 없다고 생각하던 참에 '빼기' 어플이 생각났다. 무거운 물건을 집에서 밖으로 옮겨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한 게 생각나서다. 그 어플에서 식탁 상판 선택하니까 대충 52,000원이 떴다ㅋㅋㅋㅋ. 100만 원 넘는 대리석 식탁 상판 버리는 것도 열 받는데 돈을 오만 원이나 또 내야 하다니?!!!! 물건은 정말이지 사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문제다...


내 돈 주고 버리기는 싫어서 당근 나눔으로 올렸다. 곧바로 연락이 왔다. '진짜 대리석이에요?'라고 물으시길래 대리석 맞다고 답했다. 그 분은 다음날 우리집에 방문했다. 나는 없고 엄마만 있었는데 그 분이 식탁 상판 보자마자 '이거 대리석 아니에요. 겉에만 대리석이고 안에는 시멘트예요.'라고 했다고 한다ㅋㅋㅋㅋ. 그래도 가져가시기는 했다고.


나는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식탁 상판이 겁나게 좋은 대리석이라서 일부러 페이크를 치기 위해 이게 사실은 시멘트라고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 혹은 식탁을 판매한 회사가 우리를 속이고 대리석을 입힌 시멘트를 팔았을 가능성.(우리는 15년 동안 그게 진짜 대리석이라고 알고 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는 그게 나쁜 대리석이든 좋은 대리석이든 무조건 처분하려고 했기 때문에 굳이 그 분이 거짓말을 해서까지 후려쳐서 가져갈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100만 원을 주고 대리석을 입힌 시멘트를 샀고 그 무거운 걸 15년 동안 이고지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한테는 이 이야기가 도시괴담보다 더 무섭다.


이번에 당근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어디까지나 내 기준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 함부로 선물해서는 안 된다. 가장 처치곤란한 물건 투탑 중 하나가 바로 선물받은 물건들이다.(나머지 하나는 멀쩡하다는 이유로 대책없이 주워온 물건들이다.) 특히 영양제랑 주류가 문제다. 얘네들은 당근으로 나눔도 안 된다. 그렇다고 못 먹는 영양제랑 주류를 입속으로 털어넣을 수도 없고 하수구에 버릴 수도 없어서 주변 지인들한테 연락해서 필요한 사람을 수소문하고는 있는데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선물할 일이 있을 때는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꼭 물어본다. 요즘에는 카톡 선물하기에 찜 기능이 있어서 그거 보고 선물해주기도 한다. 내 인생에 서프라이즈 선물을 하는 일은 거의 없는 편이고, 서프라이즈 선물 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래서 물건 쌓이는 거 싫어하는 미니멀리스트들이 약간 차갑고 정 없다는 소리를 듣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미니멀리스트를 내가 싸잡아서 평가할 수는 없고, 나는 좀 차갑고 정 없는 편이 맞다ㅠㅠㅠㅠ. 제일 싫어하는 선물이 생화여요...


아직도 당근에 올려야 할 수많은 물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글 쓰면서 내일 문고리 거래 약속한 게 생각나서 얼른 문 밖에 내놨다. 인생 편하게 살 거면 다 버리면 되는데 버리기에는 너무 멀쩡한 물건들 때문에 나도 괴롭고 물건도 괴롭다. 지구의 환경은 행복할까...? 


내일도 당근 지옥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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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였던....) 때 썼던 일기장을 발견했다. 엄마가 베란다 창고에서 커다란 박스 두 개를 꺼내왔는데 그 안에 일기장, 상장, 스케치북 같은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이사를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 그동안 이걸 버리지 않고 이고지고 다녔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 7살때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쓴 일기장이 모두 남아 있었다.(초등학교 5,6학년 때 일기장이 없는 걸 보면 고학년 때는 일기 쓰기 숙제가 없었나보다.)


일기장을 대충 정리만 하고 집어넣었어야 했는데 나는 일기장을 열어보는 실수를 저질렀다. 집정리 십계명 중 하나가 '추억의 물건은 절대 들춰보지 말 것'인데 나는 그 금기를 어겼다. 그리하며 어제 밤 늦게까지 초등학교 때 쓴 일기를 읽느라 늦게 잤다. 나름 힘들었고 나름 즐거웠던 초등학교 때의 내가 있었다. 나는 언제나 과거와 단절된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일기장을 보니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가 조금이나마 연결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토요 미스테리 극장>의 매니아였다. 이 프로그램의 첫 화가 방영하기 전에 예고편만 보고도 마음을 홀딱 뺏겼었는데 학교 걸스카우트 야영날이랑 딱 겹치는 바람에 첫 화를 본방으로 보지 못 해서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엄마한테 첫 화를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해달라고 부탁했고 야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1화를 봤다.


나는 혹시나 이 기억이 조작된 건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었다. 왜 그런 이야기 있지 않은가.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 911테러와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졌을 때 당신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어디에서 누구와 무얼 하고 있었다'고 대답하지만 사실은 전혀 틀린 기억일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 말이다.


나는 혹시 <토요 미스테리 극장>의 첫 화를 집에서 본 게 아닐까, 걸스카우트 야영 때문에 첫 화를 못 봤다고 나 혼자 착각한 건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일기장 안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았다. 일기에 걸스카우트 야영 이야기가 적혀 있는데 그 날이 바로 <토요 미스테리 극장>의 첫 화가 방영한 날이었다!!! 야영 때문에 토요 미스테리 극장을 챙겨보지 못 한 게 확실했다. 사람의 기억은 불확실하다고 하지만, 어떤 기억은 놀랍도록 정확하다.


언니가 탕수육 먹다가 토한 사건도 내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 이건 내가 기억하는 사건은 아니고 언니가 기억하고 있는 일인데 내 일기장에 꽤나 자세하게 적혀 있어서 깜놀했다. 이걸 내가 일기장에 적은 것도 기특하고 그 오래된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언니도 참 대단했다.


엄마가 창고에서 너덜너덜한 박스를 꺼냈을 때는 어우 저걸 왜 아직도 짊어지고 다니는 거야, 이러면서 살짝 싫어했는데 다 커서 일기장을 보니까 재밌긴 참 재밌다. 이래서 그 당시 선생님들이 일기 쓰라고 닦달을 했나 보다. 그것이 30년 후를 위한 큰 그림이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재밌는 건 둘째 문제고, 손도 대기 싫을 정도로 낡아버린 일기장들을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 했다. 가장 좋은 건 사진 찍고 버리는 건데 수십 권의 일기장들을 반듯하게 펼쳐놓고 정갈하게 사진 찍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눈 딱 감고 버려 버리는 게 제일 좋은데 차마 그럴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쌓아두기에는 나의 미니멀리즘 성향이 견디지 못 한다. 아아아 괴롭다.


이래서 미니멀리즘 전문가들이 추억의 물건은 제일 마지막에 정리하라고 하는 거다. 추억의 물건을 마주하는 순간 모든 정리 작업은 올 스톱이다. 지금 다른 것도 정리할 게 많은데 일기장 때문에 다른 것에 손도 못 대고 있다. 거실에 널어놓은 너덜너덜한 공책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서 유튜브 쇼츠만 보고 있는 거 실화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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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2024-11-19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옛 추억을 되살려주는 일기장에 관한 너무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Laika 님의 글 「어떤 기억은 놀랍도록 정확하다」를 읽고 많은 분이 공감하고 추억 속에 잠길 것 같네요. 이런 좋은 글이 나오게 된 건 Laika 님의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네요. Laika 님의 어린 시절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옛 일기장,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중에 또 들춰 보면 어떤 추억과 영감을 불러일으키겠죠. 저 같으면 못 버리겠어요. 종이로 된 기록이 디지털로 된 전자 문서 기록보다 훨씬 오래간다고 하죠. 감사합니다. 건필하시고요. ^^

2024-11-21 2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원래 종이책을 사지 않는 강경 전자책파인데 전자책이 나오지 않은, 앞으로도 나올 것 같지 않은 책들은 어쩔 수 없이 종이책을 구매한다. 그리고 북스캔 업체에 들고가 PDF로 바꿔버린다.

올 한해 사부작 사부작 사들인 종이책이 상당히 쌓였길래 최근에 북스캔 하러 다녀왔다. 내가 모르는 사이 북스캔 업체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예전에는 사당 쪽에나 조금 있고 다른 곳에는 많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서울 곳곳에 있다.

나는 총 24권을 가져갔다. 너무 무거워서 캐리어를 끌고 갔다. 가면 우선 책등을 잘라야 한다. 일반 책은 재단비가 1,000원인데 하드커버는 재단비 1,500원을 받는다. 하드커버 책은 무겁기도 무거운데 책등 자를 때도 비싸다.

깔끔하게 잘라진 책들을 가져다주시면 본격적으로 스캔 시작. 내가 갔던 곳은 기본 30분(6,000원)에 추가시간 10분당 2,000원이다. 시간이 곧 돈이다. 초집중해서, 어떠한 오류나 딜레이도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스캔해야 한다.

스캔 속도가 정말 빨라서 정신없이 작업했다. 24권을 다 스캔하고 나니까 약 4n분 소요. 총 50분으로 계산했다. 문자인식(OCR)이나 선명도 높이는 작업을 추가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런 거 다 뺐다. 재단비랑 스캔 비용은 총 36,500원이 나왔다. 24권인데 나름 선방한 것 같다.

예전에는 스캔 끝난 책들을 가게에 버리고 왔는데 이번에는 다시 싸들고 왔다. 어차피 버릴 책이니까 밑줄 팍팍 그으면서 읽고 싶어서다. 스테이플러로 대충 찍어서 휙휙 넘겨가면서 보고 있다. 형광펜으로 밑줄도 마구마구 친다. 어차피 PDF로 바꿔놨으니 험하게 다뤄도 상관없다. 마음이 너무 편하다.


북스캔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실 제일 좋은 건 출판사에서 정식 전자책을 내주는 거다. 그건 폰트와 글자 크기를 바꿀 수 있으니 정말 짱이다. epub파일이 최고다.

이미 PDF로 스캔해놓은 파일이 있더라도 정식 전자책이 나오면 또 산다. 그것이 바로 조지수의 <나스타샤>. 전자책으로 안 나올 것 같아서 북스캔 했는데(나중에 캐나다 여행 갈 때 들고가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전자책이 나와서 바로 구매했다. 이런 데는 돈 써도 아깝지 않다. 전자책이 나오기만 한다면 중복 소비 쯤이야.

두껍고 무거운 책들은 한번쯤 전자책 발간을 고려해주시길. 692쪽에 969g인 <그레이트 게임>이나 704쪽에 1075g인 <내 심장을 향해 쏴라> 같은 책들이 전자책이 있었다면 굳이 책등 쪼개고 스캔하는 생고생은 하지 않았을텐데.

이로써 내가 갖고 있는 종이책은 또다시 제로에 수렴하게 되었다. 제로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딱 두 권을 종이책 상태로 보관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 그것은 바로 <탐험가의 스케치북>과 <아틀라스 중앙 유라시아사>.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이건 쪼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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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영화를 보았다. <냉정과 열정 사이>! 나는 영화를 좀처럼 보지 않는 인간이라 이 영화도 한때 엄청 인기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해 알고 있는 건 피렌체 두오모 성당이 나온다는 것 뿐이었다. 과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그곳은 연인들의 성지라서 연인들은 그곳에 가서 사랑을 맹세한다나, 아무튼 그런 문장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이 영화의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헤어져놓고도 서로를 못 잊어서 남의 나라까지 와서 사랑의 난리 부르스를 춘다. 당연히 남주에게는 여친이 있고, 여주에게도 남친이 있다ㅋㅋㅋㅋㅋ. 현재 만나는 애인을 버리고 서로를 선택해야만 그들의 사랑이 빛난다고 생각해서 이런 설정이 탄생한 걸까? 하긴, 서로 솔로라면 이렇게 아련한 영화가 탄생할 이유도 없다. 예전에는 이런 식의 설정(각자 애인이 있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해!)이 흔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요즘 나오면 욕 먹을 거라는 건 확실히 알겠다. 그래도 옛날 영화니까-하면서 재미있게 봤다.


같이 보던 짝꿍은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쓴 세 장 짜리 편지에서 기함했다ㅋㅋㅋㅋㅋ. 여주가 편지를 낭독하는 나레이션이 깔리면서 둘의 과거 회상 장면이 차르르르르 아련하게 깔리는데 옆에서 자꾸 '길다, 길어' 이러고 있으니까 너무 웃겼다ㅋㅋㅋㅋㅋ.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건 90년대의 이탈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거다. 왜 요즘 젊은이들이 레트로 레트로 하면서 추억에 젖어 사는지 알겠다. 이 영화를 보다 보니 90년대 유럽에 가보고 싶어졌다. 현재 유럽은 비행기 타면 갈 수 있지만 90년대 유럽은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은 <명작을 읽는 기술>과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이다.


<명작을 읽는 기술>은 그동안 아주 많이 봐왔지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던 '고전주의, 낭만주의, 리얼리즘, 실존주의, 자연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일단 한 번 후루룩 읽었는데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서술도 깔끔하고 분명하다. 재독하면서 밑줄 친 거 정리하려고 대기 중이다.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 이 책은 학살이 벌어졌던 장소를 방문하고 나서 쓴 책이다. 가장 슬펐던 부분은 목포형무소 수감 중에 실종된 것으로 추청되는 저자 할머니의 오빠 이야기였다. 그 당시 소위 '빨갱이'로 불렸던 사상범들이 목포형무소에 다수 수감되어 있었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경찰들이 수감자들을 배에 태워 바다에 수장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오빠가 갇혔던 목포형무소가 사라진 상황에서 그의 흔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반도 가장 끝 마을에 사는 할머니의 여동생인 이모할머니는 무언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물었다. 나를 반기던 이모할머니는 고개를 떨구고 침묵했다. 방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오래된 시계에서 시곗바늘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이모할머니의 미간에 도드라진 주름이 살짝 움직였다. 나는 재촉하듯 다시 물었다. 이모할머니는 오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모할머니가 말문을 닫고 있는 동안에 옆에 앉은 이모할아버지가 침묵을 깼다.
"그 사람은 빨갱이니 모르는 게 좋다."
단호한 이모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색해진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후손들 잘되라고 돈까지 써서 호적도 지웠다. 다시는 묻지 마라."
이모할아버지의 무뚝뚝한 목소리가 대문을 나서는 내 등을 때렸다.】

【전쟁이 끝난 후, 바다는 이상하게 풍년이었다. 어시장에는 목포 사람들이 없어서 못 먹는다는 낙지와 민어가 넘쳐났다. 하지만, 목포 사람들은 바다에 수장된 사람들이 생각나 좀처럼 생선을 먹을 수 없었다. 거울처럼 잔잔하던 전쟁 이전과 달리 목포 앞바다는 성난 것처럼 거칠어져만 갔다. 바다에서 놀던 아이들도 물귀신이 잡아갔고, 조기잡이 나갔던 어른들도 돌아오지 못했다. 바닷속의 원귀들을 달래기 위해 당골을 불러 수많은 씻김굿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귀신이 가득한 바다는 목포 사람들에게 더는 너른 품을 내어 주지 않았다.】

발리에서 벌어진 학살과 그 후의 이야기도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1965년 겨울부터 1966년 초봄까지, 바닷속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살해된 십만여 명의 흔적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남부 사누르 해안의 버려진 놀이동산에서부터 아궁산까지 학살 장소는 수없이 많았다. 
학살자들은 사람을 죽이고 발리의 산과 바다에 버렸다. 공산당으로 몰려 죽은 사람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다. 발리에는 공산당으로 몰려 죽어서 이승을 떠도는 귀신 이야기가 흔했는데,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밤 외출을 꺼렸다.
신혼 여행객들이 이용하는 풀빌라로 유명한, 남부 해안의 호텔 대지는 1965년 발리 학살을 지휘했던 인도네시아군 사령부가 있었던 주둔지였다. 호텔 개발 회사는 군용지를 저렴하게 인수하여 호텔을 건축했다. 공사 과정에서 나온 수천의 유골은 먼 바다로 나가서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호텔이 완공된 이후, 전기가 자주 끊어지고 투숙객이 귀신을 보고 공포에 떨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학살지 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신혼여행 부부를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1965년의 발리 학살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었다. 아침마다 사원에 정성스럽게 차낭 사리를 올리는 아주머니는 남편과 아들을 죽인 학살자를 이웃에 두고 살고 있다. 죽창으로 이웃을 죽인, 잔인한 타멕[발리의 민병단]의 열성 대원이었던 그도 이제는 늙었다. 늙어서 거북이처럼 느릿해진 노인네는 매일 아침 지팡이에 의지하며 집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아주머니는 노인네가 사라지면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우붓의 작은 마을에서는 공산당이라는 이유로 친구가 친구를 형이 동생을 죽였다. 타멕에 가족을 잃은 아주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들은 그날 이후, 나에게 발리는 더이상 힐링의 낙원이 아니었다. 사람이라는 탈을 쓰고,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나 가족을 동물처럼 학살한 무서운 곳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더이상 발리는 지상낙원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다이빙 했던 발리 앞바다에 그런 아픔에 새겨져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자는 발리에서 관광객이 많이 가는 곳이 아니라 현지인들 사는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제발 다른 관광객들처럼 관광지 가서 놀아라', '너 공산당원이냐?' 이런 얘기까지 듣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 10년 전 베트남 여행했을 때가 떠올랐다. 아주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외국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단순히 사기를 치고 잔돈을 빼돌려서 그런 인상을 받은 건 아니었다.(그 정도 잔잔한 사기는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겪었다.) 그들은 외국인이 베트남에 와서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하는 것 같았다.(우리가 한국인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역사를 몰랐다면 '여기는 왜 이럴까' 이러면서 잊어버렸겠지만 베트남과 한국의 과거를 알기 때문에 내 마음은 무거웠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하기에는 굳이 굳이 베트남에 여행 와서 돌아다니고 있는 게 잘못인 것 같기도 했고, 하여튼 여행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물론 이 경험도 10년 전 이야기고 최근 베트남 여행에서는 그런 경험이 전혀 없었다. 관광객을 대하는 상인들은 무척 친절했다. 구글 지도에 평점 5점 남겨달라면서 활짝 웃기도 하셨다.


아무튼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는 읽어보길 잘한 책이었다. 목포형무소와 발리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필리핀, 대만 등지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아픈 과거를 담은 책을 읽는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차이이기에 이렇게 새롭게 나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들이 좋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 전자책을 구입했다. 이미 종이책으로 읽어봤기에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있는데 그래도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어서 전자책으로 샀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이라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전자책 판매중지가 뜰까봐 약간 무서워서 미리미리 사둔 거다.


한동안 책 물욕이 사라졌다며 기뻐했다.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또 장바구니가 터져나가고 있다. 다음 달에는 적립금 들어오면 존 르 카레 책 전부 사고 싶고, 민음사 세문전도 모으고 싶다. 다 샀다가는 정말 큰일이다. 돈도 문제지만, 안 읽고 쌓아두기만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다! 심지어 책장 전시 기능도 없는 전자책을!(ㅠㅠ)


전자책 쌓아둔 거 반성하면서 얼른 책 읽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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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하도 싸돌아다니는 사람이라 이번 여행 앞에 '오랜만에'라는 단어를 갖다 쓰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심적으로는 오랜만이라고 느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지역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한 번 가봤던 곳에 또 간 적이 많았다.(예를 들면 태국) 이번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중국 서북부 지역에 다녀왔고 그래서 오랜만에 진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나는 예전부터 여행 갈 때는 반드시 책을 챙겨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자책 리더기를 사기 전에는 종이책을 두세 권씩 배낭에 넣어서 다녔고 전자책 리더기를 사고난 후에는 반드시 여행 갈 때 리더기를 챙겨간다. 여행에서 독서는 절대 뺄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여행을 다녀보니 생각보다 여행 다니면서 책 읽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1)시간 부족의 문제, 2)심리적인 문제, 이렇게 두 가지를 가장 크게 느꼈다.


우선 시간 부족의 문제. 여행 다니면 책 볼 시간이 없다. 낮에는 여행을 해야 하고 밤에 숙소에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다음날 뭐 할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블로그에 비공개로 매일매일 여행 기록을 저장해두는데 그것만 해도 엄청난 중노동이다.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은데 그날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느라 새벽 세 시까지 못 잘 때도 있었다ㅠㅠ. 여행과 기록과 계획만으로도 너무 벅찼기에 독서의 ㄷ자도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두 번째는 심리적인 문제였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독서도 일종의 여행이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책을 읽으면 어쩐지 이중의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이중의 여행은 생각보다 편하지 않다.


물론 여행지랑 완전히 찰떡인 책인 경우에는 잘 읽힌다. 예를 들어 이노우에 야스시의 <둔황>. 이번에 둔황 가는 기차 안에서 <둔황>을 읽었는데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조행덕이 과주(瓜州)를 지나 사주(沙洲)로 향하는 장면을 읽고 있는데 마침 기차가 과주 역에 멈춰섰을 때 느낀 그 희열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런 경험은 흔치 않다. 대부분의 책은 여행지와 그렇게까지 찰떡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라오스에 간다고 해보자. 라오스에서 무슨 책을 읽어야할지 열심히 생각해봐도 딱 떠오르는 게 없다. 가장 최근에 간 라오스 여행에서는, 베트남 작가 바오 닌이 쓴 <전쟁의 슬픔>을 읽었다. 습하고 비가 많이 오고 삼림이 울창한 라오스의 풍경과 아주 잘 어울렸다. 하지만 어쨌든 내 몸은 라오스에 있고 정신은 베트남 전쟁 당시를 헤매고 있으려니 피로한 것도 사실이었다.(책 자체는 당연히 좋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 여행지와 완전히 찰떡으로 어울리는 책이 아니고서는 책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여행할 때는 여행하는 것과 기록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독서는 여행 전이나 후에 하는 것이 나에게는 맞다는 걸 깨달았다.(물론 한달살이는 예외다. 해외 한달살이 할 때는 시간도 정신적 여유가 많으니까 독서가 가능하다.)


독서는 여행 전과 후에 하는 걸로 어느 정도는 마음을 먹으니까 예전만큼 여행지에서 책을 읽어야겠다고 안달복달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지와 딱 어울리는 책이 있다면 꼭 챙겨가고 싶다는 욕망을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여행지와 딱 맞는 책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네이버에 내가 갈 여행지와 '책' 혹은 '독서'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지만 딱히 영양가 있는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미리미리 '이 책은 어디 가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라고 기억해두는 편이다. 


둔황 갈 때 <둔황> 읽은 것은 솔직히 일차원적인 해답이었다. 그런 눈에 보이는 정답 말고 생각지도 못 했는데 그 여행지에 찰떡인 그런 책들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있다. 여행지와 책을 엮어서 쓴 책인 <여행자의 독서>는 그런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책이다.(물론 이 책에서 소개한 책도 그 여행지와 완전히 찰떡인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참고가 된다.)


이제 여행이 끝났으니 또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지에 관련된 책을 읽는 거, 너무 좋다. 여행과 독서를 동시에 해야겠다는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여행과 책은 최고의 짝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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