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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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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뒤따라온 의혹들>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사랑에...>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자녀를 둔 부모가 쓴 책이다.(진짜 좋고 의미있는 책이다!) 거기에 바로 이 책 <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가 여러 번 인용되었길래 도대체 암이라는 병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지 궁금해져서 찾아보게 되었다.(부끄럽게도, 백혈병이 암의 일종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 정도로 나는 암이라는 병에 대해 무지했다.)


이 책은 암과 관련된 방대한 분야를 다룬다. 암이라는 병 자체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암 치료법의 역사, 미국 정부로부터 암 관련 예산을 따냈을 당시의 일화들, 암의 원인과 예방, 암 환자들이 겪는 고통 등 다양한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책이 워낙 두꺼운 데다가 암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어떤 부분은 조금 스킵하면서 지나가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밌고 잘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의사인데 이 정도의 책을 써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 저자가 쓴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져서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항암제를 발견하고 그걸 환자들에게 적용해가는 여정이었다. 그걸 이해하려면 다시 백혈병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미성숙한 백혈구가 엄청나게 많이 증가해 문제를 일으키면 백혈병이다. 통제할 수 없는 비정상적 세포 증식이라는 암의 특성이 백혈구에 나타난 것이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ALL)은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서 주로 발병하는데 과거에는 치료할 방법이 없어 대부분 사망했다고 한다.


백혈병을 치료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액체 형태의 암이기 때문이다. 1890-1900년대, 종양을 잘라내거나(=절제술) 종양을 태워버리는(=방사선 치료) 시술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백혈병처럼 혈액에 생기는 암은 잘라낼 수도 태워버릴 수도 없었다. '백혈병은 그것에 처방할 약물이 아예 없는 내과의사들과 혈액을 수술할 수는 없는 외과의사들이 포기한, 고아나 다름없는 질병'이었으며 '질병들의 국경선상에 사는, 분야와 분과 사이에서 숨어 지내는 추방자'였다. 형태가 없는 암은 수술이나 방사선으로 치료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약물로 치료할 수는 없을까?


1928년, 영국 의사 루시 윌스는 인도 방직 공장 노동자들 중 출산한 여성들이 심각한 빈혈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빵에 발라먹는 효모 식품인 '마마이트'를 먹이면 그러한 빈혈 증상이 완화되었다. 정확히 '마마이트' 속 어떤 성분이 그러한 효과를 가져오는지는 나중에 밝혀졌다. 혈액 생성에 필수적인 성분 중 하나인 엽산이었다. 1940년대, 어린이 병원에서 일하는 시드니 파버라는 이름의 의사는 바로 이 엽산에 주목했다. 피 생성, 혈액, 골수, 엽산...이런 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면 백혈병에 걸린 아이들에게도 엽산을 먹여보면 어떨까? 결과는 대실패였다. 엽산을 투여한 환자들 몸에서 백혈구 수가 두 배로 증가했다. 엽산은 백혈병 세포를 촉진시키는 것이 분명했다. 


요즘 같았으면 백혈병 환자들에게 엽산을 투여해서 백혈구 수가 두 배로 증가한 시점에서 시드니 파버는 병원에서 쫒겨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40년대였고, 백혈병은 어차피 치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위험한 실험은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 당시에는 새로운 약물을 임상시험할 때 환자 측의 동의를 받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나가서 다행인, 무서운 시절이었다. 시드니 파버는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엽산이 아이의 백혈병 세포 생산을 가속시켰다면 반대되는 다른 물질, 즉 항엽산제를 투여하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즈음 다른 과학자가 엽산의 길항제(=대항제)를 발견했다. 시드니 파버는 테로일아스파르트산(PAA)이라고 불리는 항엽산제를 받아 백혈병에 걸린 아이에게 투여했으나 기대할 만한 반응은 없었다. 그러던 중 '아미노프테린(=메토트렉세이트)'이라는 새로운 항엽산제가 파버에게 도착했다. 그걸 백혈병 환자에게 투여했는데 놀랍게도 백혈구 숫자가 거의 정상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사건은 화학물질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걸 밝혀낸 최초의 사례였다.


이러한 발견은 백혈병 환자들에게만 의미 있는 소식이 아니었다. 다른 분야의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 역시 새로운 치료법이 절실하던 때였다. 암에 대해서는 절제술도 방사선 치료도 모두 한계가 분명했다. 두 치료법은 국소 종양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이미 전이된 암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방사선 치료는 방사선 자체가 암을 유발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더 공격적으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암은 전신 질병이고, '전신 질병에는 전신 치료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화학요법의 등장은 또 하나의 구세주였다.


항엽산제가 항암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 후로도 여러 가지 항암제들이 등장했다. 그 발견 과정이 다소 충격적이다. 전쟁 때 화학 무기로 쓰였던 머스타드 가스가 항암제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머스타드 가스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심각한 피부 손상을 겪으며 사망했다. 이 사람들의 골수를 검사해보니 대개 혈액에서 백혈구가 사라지고 골수가 말라붙은 상태였다. 의사들은, 멀쩡한 사람의 골수를 말라붙게 하는 독약이 비정상적인 백혈구 증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치료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의사들은 머스타드 가스를 환자에게 실험했다. 다른 신체 기관의 손상을 막기 위해 반드시 정맥을 통해 조심스럽게 주사해야 했다. 림프종을 앓고 있던 남성에게 머스타드 가스를 투여했더니 증상이 완화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6-MP라고 불리는 독성 강한 물질이 백혈병 환자들의 증상을 완화해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또 다른 독극물이자 항암제인 빈크리스틴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항암제는 그야말로 약보다는 독에 좀더 가까운 화학 물질이다. 사람을 거의 죽기 직전까지 만들지 않고서는 암 세포를 없애기가 어렵다. 암 세포는 그 정도로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이 정도 독한 약물로 치료를 했는데도 환자들의 암은 계속해서 재발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여태까지 항암제로 밝혀진 약물들을 섞는 것뿐이었다. 메토트렉세이트, 프레드니손, 6-MP, 빈크리스틴 등을 적절한 용량과 적절한 순서로 섞어서 환자들에게 투여했다. 투여 약물의 머릿글자를 따서 VAMP, MOPP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초기 칵테일 요법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치료된 듯 보였으나 곧 재발했다.


혹시 투여한 약물의 용량이 너무 적었던 건 아닐까? 투여 기간이 너무 짧았던 건 아닐까? 도널드 핑컬이라는 종양학자는 '전면전'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메토트렉세이트를 척추에 투여하면서 뇌에는 고선량의 엑스선을 쏘고, 그 후에도 고용량의 약물을 환자가 견딜 수 있는 최대치로 오랜 시간 투여해보면 어떨까. 그 결과는 뜻밖에도 좋았다. 이 과정을 모두 견뎌낸 환자들의 재발률이 낮아졌다. 


여러 가지 약물을 섞어서 투여하고, 암이 없어진 것 같아보여도 좀더 확실하게 치료하는 것이 항암의 표준으로 서서히 자리 잡은 듯 보인다. 이러한 치료법이 마련되기까지 너무나 많은 우여곡절과 희생이 있었다. 암을 정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굴복하지는 않으려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이러한 과정들이 매우 드라마틱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현재 암이라는 병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만약 주변에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매우 묵직하게 다가올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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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가 되기
존 가드너 지음, 임선근 옮김, 레이먼드 카버 서문 / 걷는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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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나는 자주 다퉜다. 우리는 인생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너무나 달랐다. 아빠는 나에게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라고 했다.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가라고 말했다.


나는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추구하지는 않을 거라고 답했다. 그런 인생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빠는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라고? 성공한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그렇다면 앞으로 성공한 삶에서 행복을 느끼면 되는 거잖아!!!"


나도 그러고 싶었다.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추구하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진심으로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안 되는 걸 어쩌나. 세상의 많은 불행은 자신의 욕망과 주변의 기대 사이의 불일치에서 나온다.


존 가드너의 <장편소설가 되기>는 장편소설가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실용적인 조언을 주기 위해 쓰인 책이다. 나는 장편소설을 쓸 계획이 전혀 없는데도 재미있게 읽었다. 장편소설가를 꿈꾸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성공'과는 먼 길을 택한 사람이라면 꽤나 공감하면서 읽을 만한 부분이 많았다.


작가란 끊임없이 쓰고 또 쓰고 그렇게 쓴 걸 수도 없이 고쳐쓰는 사람이다. 소설 쓰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만이 이렇게 힘겹고 지루한 작업을 견딜 수 있다. 장편소설가들의 기쁨과 슬픔이 여기에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기쁨, 그리고 그것 말고는 어떠한 보상도 얻기가 어렵다는 슬픔. 


직업을 택할 때 좋아하는 것 말고 잘 하는 걸 하라는 조언이 있던데, 장편소설가들은 자신들이 이걸 잘 하는지 아닌지 확신을 얻기가 어렵다. 그럴 때 필요한 게 주변의 신뢰와 지지인데 소설가들은 이걸 얻기도 어렵다.


【의학 박사나 전기 공학자나 산림 경비원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청년에게 그 생각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허황되고 시간과 지능의 낭비인지를 설명하는 선의의 충고가 곧장 쏟아지지는 않는다. "잘해봐라"라고 말해주고 속으론 의학 박사가 되기에 성적이 모자라면 접골사라도 되겠지, 할 뿐이다. 그런데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에게는 그의 친구, 친척, 직업 작가 들은 말할 것도 없고 창작 교사들이나 창작에 관한 책들까지도 대뜸 성공하려면 각오해야 할 끔찍한 역경에 대해 지적질을 해댄다(그럼으로써 역경을 가중시킨다).】


존 가드너는 장편소설을 쓰려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기 확신이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쳐온 나는, 분명 재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정도 건사하지 못하고 사회적 의무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나아가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는 생각심지어 여러 편의 소설이 채택됐는데도거의 무기력 상태에 이를 만큼 자학하는 젊은 작가들을 수없이 봐왔다. 거절 편지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고 부모의 부드러운 채근"자식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니?"ㅡ에도 아찔해진다. 오직 강인한 사람만이, 자신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몇몇 사람의 응원에 힘입어 이 시기를 견딘다. 작가는 자신이 사실은 진지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그 진지함으로 기꺼이 큰 모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자기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악의든 선의든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격을 피할 방법짓궂은 유머든 뭐든을 찾아야만 한다.


또한 막돼먹음의 미덕을 언급한다.


소설 쓰기에 충분한 기량을 갖춘 다음에는 한층 단단히 정신 무장을 해야 한다. 출판을 서두르기보다는 자신만의 문체를 공들여 보완하면서 소설 쓰기 기술을 천천히 신중하게 익히고 있자면 사람들이 그를 비딱하게 보기 시작하고 못 미덥다는 듯이 "대체 뭘 하는데?"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내내 빈둥거리고만 있는 거야? 네 강아지는 왜 그리 비쩍 말랐는데?"라는 뜻이다. 이럴 때 막돼먹음의 미덕이 요긴하다진지한 생활인의 자세 거부하기, 짓궂게 굴기, 툭하면 울기 같은 행태들. 취해서 울기는 닦달하려 드는 사람 퇴치에 효과 만점이다.


혹시 존 가드너가 나와 아빠의 대화를 엿들은 건 아닐까.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에서 행복을 찾도록 하라는 아빠의 말을 듣고 나는 미친 사람처럼 반항했다. 


하지만 그렇게 막돼먹은 인간이 되었다고 해서 결코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장편소설가들도 역시나 다방면으로 죄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오후 다섯 시면 일에서 해방되는 친구들과 당연히 처지가 다를 수밖에 없다. 처자식이 있으면 이웃들만큼 가족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는 생각에 막연한 죄책감까지 느낀다. 안 느낀다면 소설가가 아니다.


이쯤되니 이 책은 장편소설 쓰기를 가르치려는 책인지, 세상과 불화하는 인간들에게 공감하고 위로하려는 책인지 헷갈린다. 아마도 둘 다이지 싶다. 


책 뒷부분에서는 출판사 구하기, 에이전트 구하기와 같은 비교적 실용적인 정보들이 있으나 현재의 소설가 지망생들이 참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미국의 정보인데다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초판은 1983년에 출간되었다.


끝으로, 이 책이 좋았던 이유 한 가지 더. 이 책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자신의 작업을 위해서 때로는 수치심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면서, 자신의 작업을 좋아해주는 배우자에게 경제적으로 얹혀사는 것도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순수한 동기에서 자기 작업을 기꺼이 밀어주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작가인 그 또는 그녀는, 관습적인 도덕률을 떨치고 주의 은혜를 받들어 그의 권능 아래 사랑하는 이의 인자함에 값할 수 있도록 분골쇄신할 일이다.


존가드너, 장편소설가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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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작가, 업계인, 철학자, 스파이
김영준 지음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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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 소설처럼 줄거리를 요약할 수도 없고 비문학 책처럼 중심 사상을 뽑아낼 수도 없다.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사유가 담겨 있어 이 책의 주제는 딱 이거, 라고 말할 수도 없다. 


<작가, 업계인, 철학자, 스파이>라는 에세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리뷰를 써볼까 싶었는데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그 중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글에 대해 시작해보기로 한다.


글 제목은 <11월>. 11월이 되면 ˝각 매체들은 올해의 기억들을 정리해서 보여 주기 시작한다.˝ 아마 조금 있으면 올해의 책, 올해의 영화 같은 리스트들이 여기저기서 올라오기 시작할 것이다. 11월에 ‘올해의 XX‘를 공표하기 위해서 10월이나 9월, 혹은 더 이전부터 이에 대한 준비를 마쳤을 것이라고 저자는 짐작한다. 한 해는 분명 12월까지인데 실질적인 마감은 두어 달 전에 이뤄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 해는 1월에 시작해서 10월에 끝나 버린다. 10월까지 출시하지 못한 신제품은 ‘올해의 것’으로 거론될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업계인이 아닌, 경제적 이해가 없는 일반인들도 한 해가 이렇게 10개월, 300일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받으면 정서적인 스트레스를 받는다. 누군가 아주 쉬운 산수를 틀리고 있는데 아무도 바로잡지 않는 악몽을 꾸는 느낌 비슷할 것이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우리는 너무나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흔히들 1년의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더 훅 하고 지나가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 해의 실질적인 중간은 6월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더운 8월을 분기점으로 인식한다는 것. 그래서 하반기는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낀다는데, 이러한 분석에 저자의 분석까지 덧붙여야할 것 같다. 8월을 분기점으로 하반기로 인식하는데다가 10월부터 여기저기서 한 해를 마감하고 있으니 당연히 하반기가 빨리 지나간다고 느낄 수밖에! 그렇다면 업계인들은 왜 10월 무렵에 한 해를 결산하려고 하는 것일까? 왜 다음해 1~2월에 ‘작년의 영화‘, ‘작년의 책‘을 공표하지 않는 것일까? 저자는 이렇게 쓴다.

【새해의 입구이자 일부인 진짜 연말은 회고를 하기에 적당한 시점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해를 살아가는 느낌을 미루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강력한 열망 앞에서는 지난해의 목록 같은 건 별 흥밋거리가 못 된다. 아마 우리는 산다는 것과 회고하는 것이 양립하기 어려운 활동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해를 정리하기에 적당한 시점은 아무도 진짜 연말이라고 여기지 않는 시기, 늦가을의 어느 달일 수밖에 없다.】


무릎을 탁 치게 된다. 특히 저 문장. ˝우리는 산다는 것과 회고하는 것이 양립하기 어려운 활동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아는 것이다˝ 이런 문장들은 외워두었다가 가끔씩 써먹기에 좋아보인다. 왜 1월에 지난해를 회고하지 않는 줄 알아? 그건 바로 그때 너무나 생생하게 새로운 한 해를 살고 있기 때문이야. 그런 시기에는 누구도 지난 것을 회고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구!! 바로 이렇게 말이다. 이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두 달 빠른 결산 관행이 암시하는 교훈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우리에게 별도의 시간이 주어지는 일은 영원히 없으며, 생각과 정리에 쓸 시간은 우리가 생활하는 시간을 헐어서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여행과 기록을 동시에 하면서 이걸 절절하게 느꼈다. 나는 기억력이 워낙 나쁘기 때문에 그날 있었던 일을 그날 정리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모든 걸 잊어버린다. 여행 기록을 남기려면 바로 그날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쏘다니고 들어와서 새벽 3시까지 일기를 썼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인간적으로 나처럼 기록하는 사람한테는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26시간쯤 주어져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툴툴대봤지만 하루가 26시간이 되는 기적은 당연히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자는 시간 먹는 시간을 아껴가면서 기록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그 기록들을 보며,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인데도 ‘저때 저랬단 말야? 아 맞다. 이런 일도 있었지‘ 하면서 깜짝깜짝 놀랐다. 그 당시에 적어놓지 않았다면 영원히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일들이 일기장 속에 남아있었다. 여행 일기들을 보면서 내심 뿌듯해하고 있었는데...바로 저 문장을 만났다. ˝우리에게 별도의 시간이 주어지는 일은 영원히 없으며, 생각과 정리에 쓸 시간은 우리가 생활하는 시간을 헐어서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것˝...!!!! 여기는 정말이지 밑줄 백만 개를 긋고 싶었다. ‘11월‘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이 에세이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이 되었다.

이 에세이집은 신문 연재 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작가, 업계인, 철학자, 스파이‘라는 카테고리로 나눠서 묶어놓기는 했지만 이것은 느슨한 분류일 뿐. 읽다보면 굉장히 다양한 주제와 사유가 오고간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글은 조금 싱겁게 끝나기도 했고 어떤 글은 결말이 좀 독특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떤 글들은 내 기준에서 "100점, 아니 200점!"을 외치게 만들었다. 모든 글이 고냥고냥 80점인 에세이집보다는 몇몇 글들이 뒤통수를 빡 때리고 가는 이런 에세이집을 좋아한다.(그렇다고 다른 글들이 별로였다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글이 대체로 다 재미있었다.)

이 책에 밑줄 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여기에 다 옮길 수는 없다. '11월'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글인 '완전한 소모'편에서 한 문장을 옮겨와보도록 하겠다.

【다이어트는 자기의 지방을 태우지만, 간소한 삶은 물건을 내버릴 뿐이다. 지방은 본래 태우라고 쌓아 두는 것이므로, 다이어트는 지방의 본질을 존중하고 목적의 실현을 돕는다고 할 여지도 있다. 물건을 버리는 것은 이와 다르다. 여기에는 일방적인 관계 단절이 있을 뿐 물건의 특성을 존중한다거나 적절한 사용법을 찾아보려는 관심은 들어 있지 않다. 자신이 물건뿐 아니라 다른 대상에도 이런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면, 과연 간소함으로 삶의 변화를 얻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개인적으로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고 있지만 작가의 이 뼈 때리는 문장에 깊이 공감한다. 나 역시 미니멀리즘 한답시고 왕창 버려도 보고, 하루 한 개씩 버려도 보고, 물건 3개를 버린 후 그 세 가지의 기능을 모두 갖고 있는 물건 1개를 사들이기도 해보고, 하나를 사도 비싼 거 사보자면서 싸구려를 버리고 브랜드 제품을 구입해보기도 했다.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깔끔해보이는 흰 색 플라스틱 수납함 여러 개를 주문해서 진열해놓을 때보다 과자 상자와 선물 상자를 활용해서 얼기설기 수납할 때 가장 만족감이 높았다. 결국 ‘버리기‘보다 ‘있는 것 잘 쓰기‘가 핵심이고 이걸 잘 하려면 ‘잘 쓰지 못할 것 같은 물건은 애초에 사지 않기‘가 전제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언젠가는 미니멀해진다. '버리기'만으로는 크게 만족감을 얻지 못한다는 걸 경험상 깨닫고는 있었지만 글로 표현하지는 못 했는데 에세이집에서 이렇게 딱 정제된 문장을 보니까 너무 좋았다. 내가 쓰려던 문장이 바로 저런 거였다구요....!

이 책을 읽고 나서 존 르카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책을 눈여겨보게 되었던 이유는 당연히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연상시키는 책 제목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저자는 존 르카레의 한국 정식 계약본 출간을 추진했던 편집자였다. 나는 존 르카레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존 르카레 편집자의 에세이는 언젠가는 읽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하며 보관함에 담아두었다가 이북 적립금 쌓였을 때 구매했던 것이다.

존 르카레에 대한 글은 좋기도 했지만 조금 슬프기도 했다. 일단 잘 안 팔렸다는 것ㅠㅠ. <팅테솔스> 영화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에서 존 르카레 책은 더이상 번역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좋은 책들이 이런 식으로 사라져갔을까? 가슴이 싸늘했다.

존 르카레 에이전시는 한국 시장에서 르카레 전작을 모두 출간해줄 출판사를 찾으려고 했던 모양인데 결과적으로 그 목표는 실현되지 않았다. 현재 두 군데의 출판사에서 존 르카레 책을 내고 있다. 그런 걸 보면 <팅테솔스> 영화의 성공 이후에도 존 르카레의 책이 획기적으로 잘 팔리지는 않았다는 걸 짐작해볼 수 있다. 한 출판사에서 통일된 표지 디자인으로 존 르카레의 전집을 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을 해보지만 현실은 정말 녹록지 않다.

편집자의 입장에서 쓴 글들은 정말이지 다 좋았다. 윌리엄 트레버에 대한 글들도 너무 좋아서 아직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을 읽지 않은 내 자신에 화가 나면서 '나는 아직 안 본 눈'이라는 사실에 뿌듯함까지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 실린 에세이 중 짧은 글보다는 긴 글이 훨씬 좋았다. 윌리엄 트레버에 대한 글도 긴 글이었는데 굉장히 좋았다. 

출판에 관한 글들을 보면 진지한 사유와 함께 실질적인 조언도 함께 던져준다. 

【편승이 가능해 보인다고 과욕스러운 탑승 리스트를 만드는 건 어리석다. 리스트가 회의에 부쳐져 검토되는 것은 편승 전략을 원점에 돌리는 일이니까. 당신이 정말로 그 책을 내고 싶다면 회의를 최대한 건너뛸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단행본으로 내면 안 팔릴 것 같은 책을 내고 싶다면 ‘잘 팔릴 것 같은‘ 리스트를 만들고 거기에 자신이 진짜 내고 싶은 책을 끼워넣어야 한다는 것. 다만 절대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회의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회의가 열리면 대부분의 의견은 묵살, 기각, 보류된다는 건 어느 업계나 마찬가지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역시 언제나 과욕은 금물.

<전함 포템킨>에 관한 글도 정말 재미있다. <전함 포템킨>의 현지 발음은 ‘빠쬼낀‘ 비슷한데 편집 일을 하면서 ‘포템킨, 뽀쫌낀, 포촘킨, 포티옴킨‘이라는 표기를 마주쳤고 제대로 된 용례는 ‘포툠킨‘!!!이라는 문장이 왤케 웃긴지 모르겠다. 편집자만이 던질 수 있는 업계인의 고급 농담 같달까.

힐링 감성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큰 즐거움을 안겨준 책이었다. 다음 책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음 책이 나온다면 또 구매해서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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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황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9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임용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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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정리(소설 속 지명=현재 지명)]


흥경부(興慶府=兴庆府) = 닝샤후이족자치구 인촨(은천, 银川). 

양주(涼州) = 감숙성 우웨이(무위, 武威). 

감주(甘州) = 감숙성 장예(장액, 张掖). 

숙주(肃州) = 감숙성 주취안(주천, 酒泉). 

우전국(于阗国) = 신장위구르자치주 허티엔(和田). 

사주(沙州) = 감숙성 둔황(돈황, 敦煌).


[인물 정리]

조행덕 : 진사 시험을 보러 송나라 수도 개봉에 왔다가 알 수 없는 운명에 이끌려 사주(=둔황)까지 가게 되는 인물.

주왕례 : 서하군 한족 부대를 이끄는 대장.

이원호 : 서하왕 이덕명의 장남이자 서하군의 통솔자.

위지광 : 우전국 위지 왕조 출신. 현재는 상단 통솔자. 

조연혜 : 과주 태수.

조현순 : 사주 태수. 조연혜의 형.


천성(天聖) 4년(1026년) 봄 조행덕은 진사시험을 치르기 위해 송나라 수도 개봉(카이펑)으로 상경한다. 그런데 깜빡하고 잠이 들어 자신의 차례를 놓쳐버린다. 인생의 너무나 중요한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린 조행덕. 그는 터덜터덜 걷다가 우연히 한 여인을 알게 된다. 그 여인이 준 천 조각으로 인해 행덕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조행덕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지금의 자신이 예전의 자신과는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어디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이 마음 속으로 소중하다고 여기던 것이 다른 것과 통째로 바뀌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행덕은 바로 조금 전까지 진사시험에 집착하고 있던 자신이 몹시 하찮게 여겨졌다. 하물며 그로 인해 절망에 빠져 있던 자신이 우습기까지 했다. 얼마 전에 그가 목격한 사건은 학문과도 그리고 서책과도 전혀 무관한 별개의 것이었다. 적어도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아울러 조행덕이 지금까지 고수해온 사고방식이나 인생의 대처방법 등을 근본부터 흔들어대는 강렬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행덕은 그 여인이 준 천 조각에 쓰인 문자를 연구하기 위해 서하의 수도 흥경으로 가기로 마음 먹는다.(나는 책이 끝날 때까지 서하의 수도가 '홍경'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흥경'이다. 어쩐지...아무리 검색해도 정보가 없더라니ㅠㅠ내가 잘못 친 거였다.) 어쨌든 조행덕은 영주를 거쳐 양주로 출발한다. 양주에 가면 어떻게는 흥경으로 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행덕은 양주로 가는 길에 알 수 없는 무리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일행과 뿔뿔이 흩어진다. 아주 맹한 조행덕은 어느 성에 들어가서 '여기가 어디냐?'고 묻고 그로 인해 병사들한테 얻어터진다. 그리고는 갑자기 군부대의 일원이 되고 전투에 투입된다. 이 모든 게 진짜 말도 안 되게 갑작스럽게 벌어진다. 알고 보니 조행덕이 도착한 성이 원래 가려고 했던 양주 성이었고, 그 성은 서하 군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다. 한족인 조행덕이 서하 군에 의해 점령된 지역에 가서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으니 안 죽은 게 천만다행ㅠㅠ.


서하군 내에는 한족(汉族) 부대가 있었다. 조행덕은 이 한족 부대의 일원이 되어 갑자기 서하 편에서 전투에 참가하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송나라 수도에서 한족 최고 관리가 되기 위해 진사 시험을 준비하면 인물이었는데 갑자기 서하 군인이라니...! 이 소설은 이런 식으로 갑작스러운 전개들이 많다. 하지만 조행덕 본인이 이런 전개를 놀라워하지 않는다. 그는 이 모든 걸 운명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조행덕은 주왕례의 부대에 배치되어 감주 공격에 나선다. 여기에서 또 운명 같은 왕족 여인을 만난다. 설마 이 여인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려나? 그 여인은 처음에는 사랑을 거부하다가 나중에는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면서 모든 걸 받아들이고? 이런 예상이 한치도 빗나가지 않고 들어 맞는다. <둔황>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소설이지만 이런 지점 때문에 솔직히 올드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다. 모든 게 운명처럼 진행된다. 하지만 진짜로 오래된 소설이니까 일단 눈 감아주고 넘어가본다.(1959년 문예지에 연재한 소설이라고 한다.)


조행덕은 왕족 여인을 지켜주고 싶지만 어쨌든 그에게도 할일이 있다. 독자인 나조차도 잊고 있었지만 그는 서하 문자를 공부하기 위해 개봉을 떠난 것이었다. 그는 왕족 여인을 주왕례에게 부탁하고는 천성 6년(1028년) 흥경으로 떠난다. 거기에서 조행덕은 서하 문자를 익힌다. 그러고는 감주에 돌아가지 말고 이대로 개봉으로 돌아갈까 고민한다. 감주성에서 만났던 왕족 여인은 주왕례에서 부탁했으니 어떻게든 살고 있을 것이고 이대로 사라진다고 해도 누구도 조행덕을 찾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또다시 운명적인 예감과 맞닥뜨린 조행덕은 감주성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한다. 천성 8년(1030년) 감주성 근처 주왕례의 부대가 있는 곳으로 간 조행덕에게 주왕례는 왕족 여인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그 왕족 여인은 정말 죽은 것일까? 이 부분은 스포일 수 있으니 리뷰에는 쓰지 않도록 하겠다. 어쨌든 왕족 여인의 존재는 주왕례에게도 조행덕에게도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들은 나름대로 고통스러워 하지만 나는 왕족 여인이 제일 불쌍하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여러 남자들에게 치이는 걸까. 어쨌든 옛날 소설이니 참고 넘어가자.


그 후 주왕례와 조행덕이 있는 군대는 전투를 위해 감주에서 숙주(肃州)로 이동한다.(중국의 감숙성이라는 지명은 감주와 숙주의 지명에서 한 자씩 따와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소설의 절반 정도가 전부 이런 내용이다. 어디로 이동해서 싸우고 또 저기로 이동해서 싸운다. 아니 도대체 이 소설은 뭔 재미로 읽는 것이냐 의아할 수 있는데 조행덕이 속한 부대가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 자체가 아주 큰 재미다. 중국 서북부 지도를 보면서 이들이 모래 바람 휘날리며 이동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린다. 풍경 묘사가 기가 막힌다.


【부대는 감주에 인접한 위구르인들의 도읍인 숙주(肃州)를 향해 전진을 계속했다. 감주에서 숙주까지는 5백 리 길로, 약 열흘간의 행군이었다. 물이 말라버린 강가에서 야영을 한 다음 날부터 부대는 자갈이 깔린 벌판에 접어들었다. 벌판은 한동안 계속되다가 점차 모래밭으로 변하더니, 나중에는 완전한 사막지대가 나타났다. 가도 가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모래의 바다가 아득히 하늘과 맞닿아 지평선을 이룰 때까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모래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말발굽에 나무덮개를 씌우고, 낙타의 발바닥을 야크 가죽으로 감싸야 했다.

사막 행군을 시작한 지 사흘 정도 지났을 무렵,  처음으로 큰 강줄기가 나타나고 초원이 보였다. 그러나 강을 건너자 또다시 사막이 나왔다. 사막을 따라 행군을 계속한 지 사흘 후, 이번에는 염호(鹽湖)가 나타났다. 호수의 넓이는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가장 자리를 따라 나 있는 길만 40리에 달하는 큰 규모로, 소금기로 인해 온통 서리가 내린 듯 하얀 호수 주변에는 갈대숲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염호가 끝이 나고 한동안 황량한 황무지가 계속되다가, 저 멀리 남서쪽으로 봉우리에 눈이 덮인 높은 산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군데군데 수목과 민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들은 대다수가 살구나무로, 살을 에는 찬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이 길을 따라서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문장들이다. 정작 이노우에 야스시는 이 소설을 쓰기 전에 둔황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둔황>을 쓰고 나서 20년 후에 처음 가봤다고 한다. 소설가의 상상력이란 정말 대단하다. 이런 문장들 때문에 조행덕이 여기 가서 전투하고 저기 가서 전투하는 내용들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전투에 푹 빠져 지내던 조행덕에게 변화가 생긴다. 그는 원래 유교 서책만 읽어온 뼛속까지 유교 보이였다. 그런데 계속해서 전투에 참가하며, 또 자신의 운명을 뒤흔든 왕족 여인을 생각하면서 자꾸만 인생의 허망함을 생각하게 되었고 불교의 교리에 마음이 끌렸다.


【변방에 있는 한 죽음은 항상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실제로 행덕은 거의 매일 죽은 사람을 목격했다. 사람들은 하룻밤 앓다가 허망하게 죽어갔다. 성 안을 걷다 보면 어김없이 한두 명씩 죽어가는 사람을 볼 수 있었고, 성을 한 발짝만 벗어나도 모래 위로 삐져나온 사람 뼈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행덕에게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고, 또한 그들의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인간의 무력함과 생명의 무의미함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종교가 흥미로웠다. 】


명도(明道) 원년(1032년) 서하국 왕 이덕명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이원호가 왕이 되었다. 조행덕과 주왕례 부대에게는 숙주에서 과주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과주 태수 연혜는 불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연혜가 가지고 있는 불교 경전은 한족 언어로 쓰인 것들이었다.(인도에서 가져온 경전을 한어로 번역한 것이다.) 조행덕은 그 경전을 서하어로 번역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조행덕은 함께 불교 경전을 번역할 인재들을 모집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흥경으로 출발한다. 이때 상단을 이끄는 위지광이라는 사람을 처음 만난다. ('위지'가 성씨, '광'이 이름이다.) 위지광이 이끄는 상단을 따라 흥경에 다녀온 조행덕은 학자들과 함께 과주에 머물면서 명도 2년(1033년) 여름부터 이듬해 경우(景祐) 원년(1034년)까지 한어 경전을 서하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전념한다. 


이때부터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간다. 서하는 토번(=티베트)과의 싸움에서 이겼고 이제 그 다음 타깃은 사주(=둔황)가 될 거라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과주 태수는 서하의 힘을 알아보고 일찌감치 서하에 항복했으나, 사주 태수는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아 서하가 사주를 침략하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사주(=둔황)는 과주보다 훨씬 발달한 지역이었고 일찍이 불교가 꽃피운 지역이었다. 과주 태수 연혜는 만약 사주가 공격 당한다면 그곳에 있는 수많은 불교 경전과 불탑들이 파괴될 거라면서 좌절한다. 그 얘기를 듣자 조행덕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중 위지광이 행덕 앞에 나타나 보물을 숨길 수 있는 장소에 대해 말한다. 행덕은 예전에 왕족 여인이 준 목걸이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걸 본 위지광은 어떻게 해서든 그 목걸이를 손에 넣고 싶었다. 조행덕에게 보물을 숨길 장소를 알려줄테니 일단 거기에 그 귀한 목걸이를 숨기고, 나중에 서하 군대가 지나가고 나면 같이 찾으러 가자고 꼬신다. 조행덕은 그 이야기를 듣다가 거기에 목걸이 대신 경전을 숨기면 되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순간 어떤 생각이 행덕의 뇌리를 스쳤다. 다름 아닌, 경전만은 이곳에 닥칠 운명으로부터 구해낼 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다른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경전만은 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재물과 목숨, 권력은 한결같이 그것을 소유하는 자의 것이었으나, 경전은 달랐다. 경전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불에 타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아무도 경전을 빼앗아 갈 수 없으며,그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었다. 타지 않고 지금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조행덕은 위지광이 알려준 천불동 안 은밀한 장소에 어마어마한 경전을 숨기고 입구를 봉한다. 그 다음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 문서는 1900년대 초 왕원록이라는 이름의 도사에 의해 발견된다. 그 소식을 들은 서양인 탐험가들이 와서 헐값에 그 진귀한 문서들을 사들였고, 중국 정부는 나중에서야 그 문서들의 가치를 알게 된다. 그 문서들은 현재는 '둔황 문서'라고 불리며 '둔황학'이라는 학문까지 탄생시킬 정도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누가 왜 돈황문서를 숨겼을까? 왜 그렇게 많은 문서를 숨기고 입구를 봉해야만 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아무도 모른다. 둔황의 천불동은 우리에게 어떤 것도 얘기해주지 않는다. 이노우에 야스시는 한 권의 소설을 써서 거기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 조행덕의 운명이 바로 그 경전을 둔황 천불동으로 이끌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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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헬로 뷰티풀
앤 나폴리타노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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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복서가 신간 <헬로 뷰티풀>을 읽었다. 원래는 ‘복복깜짝북‘이라고 해서 블라인드북으로 나온 책이었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고 앤 나폴리타노의 <헬로 뷰티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곧바로 전자책도 나왔길래 일단 사봤다.


일단 이 책은 재미있다. 구매하고나서 50% 정도를 순식간에 읽었고 자기 전에 ‘나머지도 살짝 읽어볼까‘하면서 펼쳤다가 새벽 3시까지 읽어서 다 끝내버렸다. 꽤 두꺼운 책이었는데 페이지 넘기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네 명의 자매가 등장한다. 첫째 줄리아, 둘째 실비, 그리고 에멀라인(=에미)과 세실리아는 쌍둥이다. 줄리아는 요즘 말로 하면 K-장녀 같은 인물이다. 당차고 저돌적이고 가족들을 대신해서 뭔가를 계획하고 결정하는 인물이다. 실비는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낭만적인 면이 있지만 한편으론 자신만의 고집이 있다. 에미와 세실리아는 조용한 듯 보이지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용감한 인물들이다.


그리고 줄리아의 남자 윌리엄이 이 가족의 삶에 등장한다. 윌리엄에게는 남모를 상처가 있다. 윌리엄 위로 세 살 많은 누나 캐럴라인이 있었다. 하지만 윌리엄이 태어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캐럴라인이 죽었다. 부모들은 평생토록 죽은 캐럴라인을 생각하느라 윌리엄을 신경쓰지 않았다. 윌리엄은 부모가 있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사실상 고아나 마찬가지였다. 줄리아의 부모인 로즈와 찰리는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윌리엄이 외로운 아이라는 걸 알아본다. 그들은 윌리엄을 자신들의 아들처럼 여긴다. 줄리아의 동생들은 윌리엄을 오빠처럼 생각한다. 드디어 윌리엄에게도 가족이 생긴 것이다.


윌리엄은 대학 때까지 쭉 농구를 했다. 하지만 이미 부상을 입었던터라 자신이 프로 농구선수로 성공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줄리아는 윌리엄의 장래까지 미리 결정해놓았다. 자신의 부모를 만나러 온 윌리엄이 장래에 대한 질문에 대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그는 아마 교수가 될 거라고 대답을 해버린다. 윌리엄은 그렇게 자신을 이끌어주는 줄리아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생각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 인생의 비극이다. 윌리엄은 줄리아의 바람대로 교수가 되기 위해 석사 과정을 밟지만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많은 것들이 꼬이기 시작한다.


이 책은 여러 주인공들의 입장이 번갈아가면서 서술된다.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여러 캐릭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 내용 중에 ‘은근히 막장인데...?‘ 싶었던 지점들이 꽤 있었는데도 ˝왜 저래...?˝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 저 사람 입장에서는 저럴 수도 있겠지˝ 하면서 넘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롤러 코스터를 탄 것처럼 감정이 오락가락하게 된다. 저 사람 입장에서는 저럴 수 있는데, 이게 또 이 사람 입장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문제라서 하...미쳐버릴 것 같았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내가 줄리아였다면 어땠을까, 내가 실비였다면, 윌리엄이었다면, 이들의 엄마인 로즈였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이런 걸 계속해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은 없었다. 뭘 선택했어도 조금씩은 후회했을 것 같다. 후회 없는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하...도대체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 이런 생각으로 며칠간 골머리를 썩었다.


다만 이 소설은 너무 미국적인 소설이라고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었다. 미국은 안 가봤지만 미국인들이 생각보다 더 가족적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주말은 항상 가족이랑 보내야 하고 가족 간의 화합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회라는 것. 물론 한국도 굉장히 가족적인 사회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가족 문화와는 뭔가 다르다.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가족과 부딪히면서 자아를 찾으려는 것 같고, 미국 사람들은 뭐가 어찌됐든 가족이 최고, 이 세상에서 믿을 건 가족뿐, 이런 느낌이랄까. 그런 점에서 약간 이 소설의 기저에 깔린 감정들과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서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 소설도 많지 않았던 것 같아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이었다.


[ ˝네, 교수님. 윌리엄 워터스입니다. 여긴 너무 덥네요.˝

˝그렇다네, 윌리엄 워터스. 그렇고말고.˝

윌리엄이 노교수에게 그늘을 드리우려고 그 앞에 섰다. ˝도움이 필요하세요?˝

˝아, 글쎄, 우리 모두 그렇지 않나? 옆에 앉지 그러나, 윌리엄 워터스. 누구든 햇볕을 좀 쫴서 나쁠 건 없지.˝


이 문장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도움이 필요하세요?˝라는 질문에 ˝아, 글쎄, 우리 모두 그렇지 않나?˝라고 대답하는 노교수. 그야말로 인생의 달고 쓴 맛을 모두 맛본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 노교수는 정말 스치듯이 지나가는 캐릭터인데 소설 다 읽고 나면 이 노교수가 계속 생각이 난다. 하여튼 이 소설은 묘하게 자꾸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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