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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고화질] 신부 이야기 15 신부 이야기 15
모리 카오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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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슴하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이들이 마냥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불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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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여행할 땐, 책 - 떠나기 전, 언제나처럼 그곳의 책을 읽는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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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운영한 지 몇 년 되었다. 블로그를 운영하기 전에도 일기 쓰는 걸 좋아해서 여행지에서 항상 수첩을 사서 일기를 썼다. 그러니 기록자로 살아온 세월이 수 년, 길게 잡으면 십 년도 넘었을 것인데 나는 아직까지도 글을 너무 못 쓴다.

인터넷에서 ‘N의 일기, S의 일기’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N의 일기는 ‘그런 일도 있는 거다. 그런 날도 있는 거다. 그런 관계도 있는 거다(아이유 일기)’ 이런 식이다. 그에 비해 S의 일기는 이런 식이다. ‘오늘 뭐뭐를 했다. 오늘 뭐뭐를 먹었다. 그리고 누구와 만나서 어디 카페에 갔다.’ 누군가는 S의 일기를 보고 ‘코로나 확진자 동선 아니냐’고 했다. 반박할 수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 일기를 쓰면서도 내 글은 코로나 확진자 동선을 벗어난 적이 없다. 모든 건 시간순으로 써야 하고(시간순을 벗어나면 죽는 병에 걸렸다) 어디에 가서 무슨 메뉴를 먹었고 얼마였는지 정확한 정보를 남기는 것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인다. 그래도 나는 이런 내 글쓰기 스타일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아 그렇지 않았다. 좀더 잘 쓸 수 있었다는 걸,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걸,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여행작가 김남희의 책은 이 책만 읽었다. 여행기를 싫어하는 편은 아닌데, 아니 꽤나 좋아하는 편인데 왜 그동안 이 작가를 몰랐을까. 아무튼 재작년 8월에 잠시 한국에 머물 때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었고 나는 이 책에 완전히 빠져들었다.(사족인데, 나는 초록색 표지의 책을 좋아한다. 오로지 초록초록 표지에 끌려 읽은 책이 서영채의 <왜 읽는가>, 그리고 이 책이었다. 둘 다 완전 너무 좋았다. 역시 초록은 배신하지 않지.)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음료를 주문해놓고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너무 좋은데 도서관 책에 밑줄을 칠 수 없으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집에 와서 노션으로 옮겨적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최근 들어 노션 기록을 살펴보다가 이 책의 인상깊은 구절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되었다. 아니 잠깐. 이 책이 이렇게 좋았었나? 2년이 지나 다시 읽으니 이 책의 문장들이 나에게 더욱 와닿았다. 책값도 비싸지 않고 전자책도 있고 에라 모르겠다, 이 책을 사자! 이렇게 되어버려서 오늘 전자책 적립금을 사용해서 이 책을 구입했다.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있는데, 2년 전에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았다. 전자책을 읽은 세월이 너무 길어서 이제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더 와닿는 걸까? 아니면 빌려 읽은 책보다 사서 읽은 책이 더 좋은 법인 걸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을 때보다 문장 하나하나가 더 크게 와닿았다. 비루한 블로그 글을 쓰고 나서 이 책을 읽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뭐 먹었다. 뭐 했다’의 향연인 내 글을 보다가 ‘두 번째로 소설을 완독한 날은 소슬한 바람이 창 너머 벚나무의 검푸른 몸피를 쓸고 지나가는 아침이었다.’ 이런 문장을 보니까 내가 아무리 여행을 좋아해도 여행작가가 될 수 없었던 이유를 단박에 깨달았다.

이 책은 여행지와 책을 결합한 산문집이다. 나는 이런 류의 책으로는 ‘여행자의 독서 1,2’가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행복했다. 여행과 책을 결합한 또 다른 멋진 책이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문장도 좋다니, 나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책이었다.

이 책의 정서는 복합적이다.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에 대해서 쓰면서도 또 외롭고 쓸쓸한 마음에 대해서도 쓴다는 게 좋았다. 사실 나도 혼자 있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데 나도 인간인지라 혼자 있는 매순간이 짜릿해서 미칠 것 같은 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가라앉을 때도 있고 고독을 느낄 때도 있다. 아무리 사람을 좋아한대도 사람 속에서 쓸쓸함을 느낄 때가 있듯이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가끔 가라앉을 때가 분명 있다. 그런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렇다고 과장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너무 좋았다.

[누구도 나를 모르는 그곳에서 나는 자유로우면서도 외로운 이방인이다. 저물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문득 혼자임이 새삼스러워질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기에는 애매한 오후의 시간에, 빗소리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밤에, 오가는 골목에서 눈길을 끄는 카페를 발견했을 때, 간이역에서 열차를 기다릴 때, 습관처럼 책을 편다.]

“저물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문득 혼자임이 새삼스러워질 때”라는 구절이 너무 좋아서 오래도록 응시했다.

나는 30대 이후로는 계속 한국과 한국 바깥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지냈는데 그 생활이 좋으면서도 문득 저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었다. 머물고 있는 지역이 너무 좋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 좋아보여서 나도 여기 오래오래 눌러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랑 그 사람들의 입장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사람들은 여기에 가족도 있고 친척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나는 아무 것도 없는 이방인일 뿐이다. 내가 여기에 산다고 해서 결코 내가 부러워하는 그 사람들의 삶처럼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밀려오는 거다.

내가 부러워하는 그 사람들처럼 살려면 한국에서 가족을 꾸리고, 가족들과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친구들을 자주 만나고 그래야 하는데 나는 그게 되지를 않는다. 결혼하고 나서는 자식도 낳지 않고 남편이랑 둘이 자유롭게 살았다. 지금도 이런 삶이 너무 좋고 절대 바꿀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문득 한국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과 친지들에 둘러싸여서 사는 삶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볼 때면 부럽다고 생각한다. 다음 생이 있다는 걸 믿지 않지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태어난 곳에서 쭉 살다가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이번 생에는 역마살을 이기지 못해 너무 떠돌아서 그런지 한 곳에서 붙박이처럼 사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이 있다. 말로도 글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이 “저물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문득 혼자임이 새삼스러워질 때”라는 구절에 담겨 나에게 떠밀려왔다. 이게 책 맨 앞의 프롤로그인데 여기서부터 좋으면 어떡하란 말이냐 이러면서 나는 밤새워 책을 읽었다.

이런 문장들이 너무 좋다.

[시공간을 축으로 진행되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시간은 죽음이라는 일방통행로를 따라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시간이 우리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데 비해 공간은 유동적이며 탄력적이다. 선택의 가능성이 있기에, 우연적으로 일어난 일, 찰나의 스치는 만남, 이런 것들이 어떤 공간에서는 필연적으로 운명적인 결과로 변할 수도 있다. 삶에서 예외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상상을 열어주는 공간'이다. 어떤 장소는 우리의 상상을 현실화시키고, 더 나아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 삶을 열어주기도 한다.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삶의 예외성과 우연성 속으로 뛰어들어 삶 자체를 바꾸어내려는 의지가 아닐까.]

이런 냉철함도 너무 좋구요.

[여행으로 밥을 벌며 살아가는 지금, 나는 여행자와 관광객에 대한 분별심을 경계하게 되었다. 내 여행이나 당신의 관광이나 큰 차이가 없고, 내가 가고 당신도 가는 그곳은 더이상 오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과 경제 수준의 향상은 어디에 살든지 모두의 삶을 비슷하게 만들었고, 여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모험은 거의 불가능해졌고, 오지도 대부분 사라졌다. 여행은 이제 클릭 몇 번으로 간단히 살 수 있는 상품이 된 지 오래다. 내 친구의 말처럼 인류는 탐험을 여행으로 만들어왔고, 여행은 점점 관광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지금 나에게 의미 있는 질문은 여행 혹은 관광이라는 행위에 따르는 책임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이름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든 우리는 모두 지나가는 이방인일 뿐이고, 지나가는 이의 미덕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기에.]

게다가 이런 문장도 너무 좋다. 

[청춘의 시절, 나에게 조르바는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만 읽혔다. 40대 후반이 되어 다시 읽은 조르바는 내게 자유 그 너머의 것을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그 자유를 가져온 열정으로부터도 구속되지 않는 것이라고.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충실하기는 쉽지만 그 감정 안에 갇혀 있지 않기는 어렵다. 조르바를 동경해 조르바처럼 살고 싶었던 20대의 나는 지나갔다. 빛의 세례를 누리며 살아가되 광기에 휩싸이지 않는 것. 열정을 잃지 않되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 내 남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은 그 정도다.]

진정한 자유는 그 자유를 가져온 열정으로부터도 구속되지 않은 것이라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도 나는 한국이 아닌 곳에서 강아지들의 웡웡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도대체 오늘은 20대1 패싸움이라도 하는 건지 강아지 한 마리의 낑낑 거리는 소리가 너무나 애처롭다. 이럴 때 이 책과 함께라서 너무 행복하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가면서 나도 앞으로 이런 여행기를 써야겠다고 새삼스레 다짐도 해보고, 스스로 떠도는 삶을 택한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몰래몰래 엿보며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하기도 한다.(그런데 항상 떠돌다보니 숙소를 굉장히 중요시하고 꽃을 가져다 놓거나 엽서를 붙이기도 한다는 부분에서는 역시 사람은 다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숙소에 돈 들이는 걸 너무 아까워해서 정말 거지같이 다닐 때도 많았던지라....흠흠) 

아무튼 이 책은 여행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추천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주의할 점은 단 하나. 가고 싶은 여행지와 읽고 싶은 책이 지나치게 늘어난다는 것. 나는 지금 '리스본 가고 싶어ㅠㅠ' 이러면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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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게임 -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피터 홉커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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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꽤 두꺼워서 언제 읽나 싶었는데 중반부 넘어가니까 속도가 상당히 붙는다. 몇몇 챕터는 숨도 못쉬게 재미있다. 실화인데다가 잔인무도한 내용이 많아 이걸 재미있다고 표현하기가 좀 그렇기는 한데 아무튼 중반부를 넘어가면 책 읽기를 멈추기가 싫을 정도로 무지무지 흥미롭다. 웬만한 지명들도 머릿속에 들어와있기 때문에 지도를 찾아보지 않아도 쭉쭉 책을 읽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이름은 계속해서 메모를 해야 한다.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온다. 게다가 계속 바뀐다. 인도 총독이 도대체 몇 명째 바뀌는 건지;;; 사람 이름은 메모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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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1에서는 알렉산더 번스 이야기까지 적었다. 이 사람 별명이 '부하라 번스'라길래 부하라와 관련된 엄청난 사건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알렉산더 번스는 오히려 카불과 더 연관이 있다. 다만 영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맞나?) 부하라에 다녀왔다는 사실 때문에 '부하라 번스'로 불렸던 듯 하다. 이 사람 계속 카불에 머물렀고 카불에서 죽는다.


이 카불 이야기가 <그레이트 게임> 중반부의 하이라이트다. 1차 영국-아프간 전쟁(1839-1842)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사건이 부하라에서 영국인 장교 두 명이 참수되는 사건(1842)이다. 이 책의 맨 첫 장에 등장한 찰스 스토다트와 아서 코널리다. 이 둘의 죽음 역시 1차 영-아프간 전쟁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역시 가장 하이라이트는 1차 영-아프간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아프간 전쟁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영국이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가만히(?) 있던 아프간에 들어가서 지도자를 바꿔놨으니 말이다. 아프간은 그당시 통일 왕조가 없이 각 부족들이 난립한 상황이었다. 영국은 아프간에 통일 정권을 세우고 싶었다. 각 부족이 분열되어 있으면 영국이 컨트롤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각기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러시아의 꼬드김에 넘어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영국은 아프간에 꼭두각시를 앉혀두고 아프간이 인도의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고 싶었다(정말 욕심도 크다;;).


그 당시 카불 통치자는 '도스트 무함마드'라는 인물이었는데 몇몇 영국인들은 그냥 이 사람을 통일 아프간의 통치자로 세우자고 주장했다. 잔인무도하기는 했으나 카리스마가 있었고, 어쨌든 그 시점 아프간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영국의 인도 정책에 대해 상당히 입김이 셌던 맥노튼(캘커타의 정치국장)이라는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도스트 무함마드를 쫓아내고 '샤 슈자'라는 인물을 통일 아프간의 지도자로 만들자는 것. '샤 슈자'는 도스트 무함마드와 권력 다툼을 하다가 쫓겨나서 인도로 망명한 인물인데 호시탐탐 카불 왕좌를 탐내고 있었다. 맥노튼은 이 사람을 아프간 꼭두각시로 앉히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무슨 생뚱맞은 계획인가 싶지만 또 나름대로 맥노튼이 샤 슈자를 민 이유가 있긴 있었다. 그 당시 도스트 무함마드는 바로 옆 동네인 펀자브의 란지트 싱과 페샤와르 지역을 놓고 으르렁대고 있었다. 한때는 카불의 영향권 아래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펀자브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땅이다. 도스트 무함마드는 계속 그 땅을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펀자브의 란지트 싱은 절대 안 준다고 버티고 있던 중이었다. 영국이 인도를 보호하려면 아프간과 펀자브가 친하게 지내야 하는데 그 놈의 땅 문제 때문에 도저히 둘이 친해질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맥노튼은, 도스트 무함마드를 내쫓고 온순한 샤 슈자를 앉힌 다음 샤 슈자로부터 다시는 페샤와르를 탐내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내면 아프간과 펀자브가 친해질 수 있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원래 계획은 펀자브의 군대를 이용해 카불을 치고 도스트 무함마드를 쫓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바지에 펀자브 지도자가 발을 삭 빼고, 결국 영국군이 단독으로 카불로 쳐들어가게 되었다. 영국군이 밀고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도스트 무함마드는 카불을 버리고 도망갔다. 영국군과 샤 슈자는 카불에 무혈입성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보였으나 문제가 있었다. 샤 슈자가 아프간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외국 군대가 들어와서 멀쩡한 왕을 쫓아내고 인기도 없는 사람을 왕위에 앉혔으니 이게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다. 게다가 영국군이 남의 땅인 카불에서 너무 방탕하게 지냈다. 매일 밤 화려하게 무도회를 열고 돈을 써재끼느라 아프간에 물자가 부족해지고 물가가 치솟았다. 심지어 아프간 여자들까지 건드렸다고 하니 아프간 사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이 당시 '부하라 번스'로 불리는 알렉산더 번스도 카불에 있었다.(이 사람 별명은 카불 번스가 되어야 한다구요.) 알렉산더 번스는 사실 영국군이 몰아낸 그 도스트 무함마드랑 친했는데, 명분 앞에 우정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번스가 자기 손으로 도스트 무함마드를 내쫓고 샤 슈자를 그 자리에 앉혔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1841년 11월. 카불의 상황을 잘 아는 인물이 번스에게 경고를 한다. 오늘 밤 당신의 목숨을 노리는 시도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아프간 사람들이 영국군에 대항해 대규모 무장 봉기를 일으킬 계획인데 그 영국군의 중심에 있었던 알렉산더 번스를 첫 번째 타깃으로 노릴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번스는 시민들의 무장 봉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집 경비를 강화하기는 했으나 그뿐이었다. 영국군 병영으로 대피하지도 않았고 카불의 요새 발리 히사르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날 대참사가 벌어진다.


영국군에 불만을 가진 아프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알렉산더 번스와 그 주변 인물들을 죽이고 말았다. 게다가 시민 봉기 소식을 들은 무함마드 아크바르(도스트 무함마드의 아들)가 여기에 가세해 영국군을 몰아붙였다. 처음에는 오합지졸로 시작한 봉기였는데 지도자까지 생겼으니 아프간 사람들의 사기가 크게 올랐다. 그런데 이 아크바르라는 인물이 진짜 잔인한 사람이다. 이 책에서 나온 것만 보더라도 거짓말을 몇 번을 한 건지 셀 수도 없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아크바르를 믿고 협상에 나선 영국 측도 순진하다고 볼 수 있겠으나, 하 모르겠다. 아크바르와 협상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영국군에게는 악몽의 시작이었으니 말이다.


우선 아크바르는 협상을 하자고 꼬드겨서 영국 측 맥노튼을 불러내어 죽인다. 그리고 남아있는 영국군과 가족들 및 민간인들에게 인도로 돌아가라고 말을 한 뒤 어마어마한 대학살극을 벌인다. 아크바르가 아프간 사람들에게 영국인들의 이동 경로를 흘렸고 영국군에 앙심을 품은 아프간 사람들이 합심해서 이런 대학살을 벌였다. 이 부분은 너무 참혹하니까 패스. 그런데 글 자체는 정말 실감나게 잘 써서 숨도 못 쉬고 읽었다. 마지막에는 영국인 군의관 한 명이 살아남아서 이 참상을 전해준다.(몇몇 인도인 병사들도 동굴에 숨어있다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몇 달 후 밝혀진다.) 1만 명이 넘는 인원 중 단 몇 명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이다.


영국군은 엄청난 타격을 입고 아프간에서 철수하게 된다. 그리고 원래 카불의 지도자였던 도스트 무함마드가 다시 돌아와 카불을 지배한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었다. 그야말로 360도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온 것. 이럴 거면 아프간에 왜 쳐들어갔냐고!!!(대참사를 벌인 주범자인 아크바르는 그 후로도 별탈없이 카불에서 살다가 병사했다고 한다.)


【영국은 심한 상처를 입었다. 아무리 많은 훈장을 수여하고, 개선문을 세우고, 연대 무도회를 비롯한 갖가지 잔치를 열어도 마지막 아이러니는 감출 수가 없었다. 영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자마자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샤 슈자의 아들은 석 달이 안 되어 권좌에서 쫓겨났다. 영국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밀어냈던 도스트 무함마드가 왕좌로 복귀하는 것을 무조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누구도 도스트 무함마드가 아프가니스탄에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결국 한 바퀴 원을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영국이 아프간에서 당한 대참사 소식은 부하라까지 흘러 들어간다. 그 당시 부하라에 찰스 스토다트와 아서 코널리가 인질로 잡혀 있었다. 일단 찰스 스토다트가 먼저 잡혔고, 아서 코널리는 그를 구하러 갔다가 같이 잡힌 거였다. 도대체 스토다트가 왜 인질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기는 한데,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스토다트가 부하라의 예절을 어겼다는 것이다. 왕을 만나러 갈 때는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했는데 말을 타고 들어갔다던가 하는 이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건 너무 사소한 이유다. 그 당시 중앙아시아에서는 러시아와 영국의 기싸움이 너무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하라의 지도자는 아마도 시험을 해본 게 아니었을까. 영국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 모르겠으니 일단 인질을 잡아보고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당시 영국은 아프간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찰스 스토다트, 그리고 그를 구하러 들어간 아서 코널리를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부하라의 지도자는 영국인 인질을 잡았는데도 영국에서 너무 조용한 걸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영국의 힘이 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영국이 보낸 공식 사절이 아니라 첩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 당시 중앙아시아에서는 워낙 흉흉한 소문이 많았다. 유럽인은 전부 스파이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사실 꼭 틀린 말은 아니다. 다들 정보 빼내려고 혈안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찰스 스토다트와 아서 코널리가 운 나쁘게 부하라 지도자에게 잡혔고 영국 정부에게 버림 받았고 영국이 아프간에서 쫓겨났다는 소식까지 들은 것이다. 그 결과는 두 사람의 죽음이었다. 워낙 잔인한 성격이었던 부하라의 지도자는 굳이 두 사람을 살려두어 후환을 남길 필요가 없겠다고 판단하여 두 사람을 참수시켰다. 물론 바깥 세상에 본보기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함부로 부하라에 들어와서 스파이 짓을 했다가는(물론 스토다트가 스파이는 아니었다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이런 꼴을 당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영국군 장교가 둘이나 부하라에서 죽임을 당했는데도 역시나 영국은 가만히 있었다. 카불 대참사 직후여서 도저히 군대를 부하라까지 움직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아프간까지 가서 그 수모를 당했는데, 아프간보다 더 먼 부하라까지 가라고? 갈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그 당시 영국 국내 여론도 안 좋아서 쉽사리 그런 결정을 내리긴 어려웠다. 그렇게 그레이트 게임의 두 선수가 사망하고 게임의 전반전은 막을 내렸다.


이 다음부터는 영국과 러시아가 약간의 소강 상태를 맞이한다. 특히 영국은 아프간에서 당한 충격이 너무 커서 그걸 수습하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도 내부 문제도 심각했다. 1857년 세포이 항쟁이 벌어지고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통한 인도 간접 지배 방식을 버리고 직접 통치로 전환한다.


그리고 이제 그레이트 게임의 후반부로 접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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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게임 -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피터 홉커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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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요즘 초집중해서 읽고 있는 책.


* 책 맨 앞에 지도가 있지만 왔다갔다 하면서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일단 챗지피티 켜고 '부하라 위치 어디야, 헤라트 위치 어디야' 이러면서 온갖 지도를 뽑아냈다.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지역들의 위치 정도는 어느 정도 알아놔야 이해가 편하다. (예: 카스피해, 흑해, 캅카스, 히바, 부하라, 헤라트, 카불, 테헤란 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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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일단 두 명이 죽고 시작한다. 찰스 스토다트와 아서 코널리. 아직 누군지 모르지만 중요한 인물일 게 분명하니까 메모하고 넘어가자. 이들이 죽은 장소는 부하라.(부하라는 진짜 자주 등장하니까 위치를 꼭 알아둘 것.)


이들은 지금 그레이트 게임에 참여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레이트 게임이란?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경쟁을 뜻한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앙 아시아가 바로 자기네들 땅 아래에 있으니까 탐이 났겠지. 그런데 영국은 도대체 왜 끼어든 걸까? 그건 인도 때문. 영국은, 러시아가 만약 중앙아시아를 차지한다면 그 다음 수순은 인도가 될 거라고 봤다. 인도를 방어하기 위해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저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


【정치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이 그늘진 투쟁이 벌어진 광대한 체스판은 꼭대기에 눈이 덮인 서쪽의 캅카스 산맥으로부터 중앙아시아의 큰 사막과 산맥들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중국령 투르기스탄과 티베트까지 뻗어 있다. 최고의 보물, 즉 런던과 캘커타에서는 빼앗길까 봐 걱정을 하고 아시아에서 근무하는 야심만만한 러시아 장교들은 간절하게 원하던 보물은 영국령 인도였다.】


그 당시 인도로 말하자면, 영국은 뺏길까봐 노심초사하던 곳, 러시아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노렸던 곳이다. '전설적인 부'를 지닌 어마어마한 땅, 그곳이 인도였다. 솔직히 현재의 인도만 생각하면 잘 와닿지 않는다. 나는 솔직히 이 대목 읽으면서 '인도가?!!!' 이랬었다. 


하지만 엄연히 인도는 영국 지배 전 무굴제국까지 굉장히 잘 나가던 나라였다. 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기 전에 모든 다이아몬드는 인도산이었다는 말도 있고(출처 불분명), 인도에서 나는 각종 향신료(특히 후추)는 말해 뭐해. 너무너무 귀해서 한때 그 집에 후추가 얼만큼 있는지가 부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유럽 사람들이 육식을 많이 했는데 솔직히 지금 기준으로 보면 누린내 나는 맛없는 고기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인도의 후추를 맛본 유럽 사람들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후추가 고기의 누린내를 싹 잡아줘! 너무 맛있어!! 그런 귀한 것들이 전부 인도에서 나오니...다들 인도를 보물이라고 여길 만했겠다.


영국은 인도를 차지하기는 했는데...뭘 제대로 한 것 같지가 않다. 이 책 보면 '영국 도대체 왜 저래' 소리가 계속 나온다. 인도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페르시아랑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었는데 두 번이나 동맹 조약을 맺고도 두 번을 배신 때린다. 내가 페르시아였다면 영국 정말 너무 싫었을 듯. 


러시아가 대놓고 중앙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데 영국은 그 사실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분명히 러시아의 야욕을 경고하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 당시 모든 영국 관리들이 인도를 소중하게 여겼던 건 아닌 게 분명하다. 어쩌다 보니 차지하기는 했지만, 땅 넓고 인구 많고 관리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존재였음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영국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지가 않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게 느껴진다. 인도를 방어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 당시 외무장관이 누구냐, 인도 총독이 누구냐에 따라 오락가락 하는 느낌.


그런데 러시아가 캅카스를 지나 콘스탄티노플까지 밀고 내려오자 영국은 화들짝 놀라며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얼른 정보를 수집해오라고 부랴부랴 사람을 파견하기에 이른다.(그보다 몇 년 앞서 무어크로프트라는 영국인이 이미 그쪽 지방을 탐험하고 러시아의 파워에 대해 경고를 했건만 그때는 무시하더니 이제 와서 뒷북;;)


여기서 '아서 코널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으며, 애석하게도 이 책의 맨 첫 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 지역을 탐험하고 나서 상관들에게 만약 침락군(=러시아군)이 온다면 루트는 두 개라고 보고한다. 첫 번째는 히바(현재 우즈벡)-발흐(현재 아프간 북부)-카불(현재 아프간)-페샤와르(현재 파키스탄)-인더스 강 건너서 인도로 가는 루트다. 두 번째는 아예 헤라트(현재 아프간)를 점령해서 거기서 군대를 양성하고 퀘타(현재 파키스탄)를 지나 인도로 가는 길이다. 


어느 길이든 아프가니스탄을 지나야 한다. 만약 아프간 사람들이 러시아에 길을 터준다면 영국은 인도를 뺏길 것이요, 아프간 사람들이 러시아와 싸워준다면 영국은 인도를 보호할 힘을 얻을 것이었다. 그레이트 게임이 벌어지던 1830년대까지만 해도 아프가니스탄은 통일된 중앙 정부가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부족들이 각자도생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힘이 센 지도자를 뽑아보자면, 헤라트의 캄란 샤, 카불의 도스트 무함마드가 있다.


영국은 고민에 빠졌다. 누구를 아프간의 통일 지도자로 추대해야 할 것인가? (하여튼 남의 나라 문제에 끼어드는 건 도가 텄다. 아프간 통일 문제를 왜 영국이 고민하고 있냐고요.) 


이때 '알렉산더 번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펀자브의 통치자인 '란지트 싱'에게 선물을 가져다준다는 핑계로 배를 이용해 인더스 강을 탐험한다. 펀자브 들러서 란지트 싱 만나고, 그 다음에 카불 가서 도스트 무함마드를 만났는데 번스와 도스트 무함마드는 처음 보자마자 죽이 잘 맞았다고. 그 후에 번스는 카불을 떠나 부하라로 가게 된다. 부하라에서도 좋은 대접을 받고 온 번스는 일각 영웅으로 떠오른다. 번스의 별명이 '부하라 번스'라는데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흥미진진.


그 당시 영국의 분위기는 역시나 반반이었다. 러시아의 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늘어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절대다수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영국 대사는 "러시아의 힘이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딱 잘라 평가했다.



...여기까지의 내용이 전체의 3분의 1이다. 작년에 무작정 읽다가 중간쯤에 길을 잃고 중도하차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요약하면서 읽는 중. 너무너무 재밌다. 이런 종류의 책을 더 많이 읽고 싶다. 일단 같은 저자의 <실크로드의 악마들>은 당연히 구비했고, <중앙아시아사>도 같이 읽는 중. 하지만 일단 <그레이트 게임>부터 차분하게 완독하고 다른 책 시작하자.


아아, 그나저나 우즈베키스탄 여행 가보고 싶다. 이런 문장을 보면 부하라에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부하라는 어떤 곳인 건가요.


【1825년 2월 25일,무어크로프트 일행의 시야에 멀리 첨탑과 돔이 들어왔다. 그들은 그곳이 이슬람이 지배하는 중앙아시아 최고의 성도(聖都) 부하라임을 알았다. 워낙 거룩한 곳이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빛이 하늘에서 아래로 쏟아지지만 부하라에서는 빛이 위로 비추어 하늘을 밝힌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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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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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뒤따라온 의혹들>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사랑에...>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자녀를 둔 부모가 쓴 책이다.(진짜 좋고 의미있는 책이다!) 거기에 바로 이 책 <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가 여러 번 인용되었길래 도대체 암이라는 병이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지 궁금해져서 찾아보게 되었다.(부끄럽게도, 백혈병이 암의 일종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 정도로 나는 암이라는 병에 대해 무지했다.)


이 책은 암과 관련된 방대한 분야를 다룬다. 암이라는 병 자체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암 치료법의 역사, 미국 정부로부터 암 관련 예산을 따냈을 당시의 일화들, 암의 원인과 예방, 암 환자들이 겪는 고통 등 다양한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책이 워낙 두꺼운 데다가 암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어떤 부분은 조금 스킵하면서 지나가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밌고 잘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의사인데 이 정도의 책을 써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이 저자가 쓴 다른 책들도 읽고 싶어져서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항암제를 발견하고 그걸 환자들에게 적용해가는 여정이었다. 그걸 이해하려면 다시 백혈병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미성숙한 백혈구가 엄청나게 많이 증가해 문제를 일으키면 백혈병이다. 통제할 수 없는 비정상적 세포 증식이라는 암의 특성이 백혈구에 나타난 것이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ALL)은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서 주로 발병하는데 과거에는 치료할 방법이 없어 대부분 사망했다고 한다.


백혈병을 치료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액체 형태의 암이기 때문이다. 1890-1900년대, 종양을 잘라내거나(=절제술) 종양을 태워버리는(=방사선 치료) 시술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백혈병처럼 혈액에 생기는 암은 잘라낼 수도 태워버릴 수도 없었다. '백혈병은 그것에 처방할 약물이 아예 없는 내과의사들과 혈액을 수술할 수는 없는 외과의사들이 포기한, 고아나 다름없는 질병'이었으며 '질병들의 국경선상에 사는, 분야와 분과 사이에서 숨어 지내는 추방자'였다. 형태가 없는 암은 수술이나 방사선으로 치료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면 약물로 치료할 수는 없을까?


1928년, 영국 의사 루시 윌스는 인도 방직 공장 노동자들 중 출산한 여성들이 심각한 빈혈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빵에 발라먹는 효모 식품인 '마마이트'를 먹이면 그러한 빈혈 증상이 완화되었다. 정확히 '마마이트' 속 어떤 성분이 그러한 효과를 가져오는지는 나중에 밝혀졌다. 혈액 생성에 필수적인 성분 중 하나인 엽산이었다. 1940년대, 어린이 병원에서 일하는 시드니 파버라는 이름의 의사는 바로 이 엽산에 주목했다. 피 생성, 혈액, 골수, 엽산...이런 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면 백혈병에 걸린 아이들에게도 엽산을 먹여보면 어떨까? 결과는 대실패였다. 엽산을 투여한 환자들 몸에서 백혈구 수가 두 배로 증가했다. 엽산은 백혈병 세포를 촉진시키는 것이 분명했다. 


요즘 같았으면 백혈병 환자들에게 엽산을 투여해서 백혈구 수가 두 배로 증가한 시점에서 시드니 파버는 병원에서 쫒겨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940년대였고, 백혈병은 어차피 치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위험한 실험은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 당시에는 새로운 약물을 임상시험할 때 환자 측의 동의를 받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나가서 다행인, 무서운 시절이었다. 시드니 파버는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엽산이 아이의 백혈병 세포 생산을 가속시켰다면 반대되는 다른 물질, 즉 항엽산제를 투여하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즈음 다른 과학자가 엽산의 길항제(=대항제)를 발견했다. 시드니 파버는 테로일아스파르트산(PAA)이라고 불리는 항엽산제를 받아 백혈병에 걸린 아이에게 투여했으나 기대할 만한 반응은 없었다. 그러던 중 '아미노프테린(=메토트렉세이트)'이라는 새로운 항엽산제가 파버에게 도착했다. 그걸 백혈병 환자에게 투여했는데 놀랍게도 백혈구 숫자가 거의 정상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사건은 화학물질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걸 밝혀낸 최초의 사례였다.


이러한 발견은 백혈병 환자들에게만 의미 있는 소식이 아니었다. 다른 분야의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 역시 새로운 치료법이 절실하던 때였다. 암에 대해서는 절제술도 방사선 치료도 모두 한계가 분명했다. 두 치료법은 국소 종양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이미 전이된 암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게다가 방사선 치료는 방사선 자체가 암을 유발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더 공격적으로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암은 전신 질병이고, '전신 질병에는 전신 치료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화학요법의 등장은 또 하나의 구세주였다.


항엽산제가 항암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 후로도 여러 가지 항암제들이 등장했다. 그 발견 과정이 다소 충격적이다. 전쟁 때 화학 무기로 쓰였던 머스타드 가스가 항암제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머스타드 가스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심각한 피부 손상을 겪으며 사망했다. 이 사람들의 골수를 검사해보니 대개 혈액에서 백혈구가 사라지고 골수가 말라붙은 상태였다. 의사들은, 멀쩡한 사람의 골수를 말라붙게 하는 독약이 비정상적인 백혈구 증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치료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의사들은 머스타드 가스를 환자에게 실험했다. 다른 신체 기관의 손상을 막기 위해 반드시 정맥을 통해 조심스럽게 주사해야 했다. 림프종을 앓고 있던 남성에게 머스타드 가스를 투여했더니 증상이 완화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6-MP라고 불리는 독성 강한 물질이 백혈병 환자들의 증상을 완화해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또 다른 독극물이자 항암제인 빈크리스틴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항암제는 그야말로 약보다는 독에 좀더 가까운 화학 물질이다. 사람을 거의 죽기 직전까지 만들지 않고서는 암 세포를 없애기가 어렵다. 암 세포는 그 정도로 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이 정도 독한 약물로 치료를 했는데도 환자들의 암은 계속해서 재발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여태까지 항암제로 밝혀진 약물들을 섞는 것뿐이었다. 메토트렉세이트, 프레드니손, 6-MP, 빈크리스틴 등을 적절한 용량과 적절한 순서로 섞어서 환자들에게 투여했다. 투여 약물의 머릿글자를 따서 VAMP, MOPP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초기 칵테일 요법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치료된 듯 보였으나 곧 재발했다.


혹시 투여한 약물의 용량이 너무 적었던 건 아닐까? 투여 기간이 너무 짧았던 건 아닐까? 도널드 핑컬이라는 종양학자는 '전면전'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메토트렉세이트를 척추에 투여하면서 뇌에는 고선량의 엑스선을 쏘고, 그 후에도 고용량의 약물을 환자가 견딜 수 있는 최대치로 오랜 시간 투여해보면 어떨까. 그 결과는 뜻밖에도 좋았다. 이 과정을 모두 견뎌낸 환자들의 재발률이 낮아졌다. 


여러 가지 약물을 섞어서 투여하고, 암이 없어진 것 같아보여도 좀더 확실하게 치료하는 것이 항암의 표준으로 서서히 자리 잡은 듯 보인다. 이러한 치료법이 마련되기까지 너무나 많은 우여곡절과 희생이 있었다. 암을 정복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굴복하지는 않으려는 의사들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이러한 과정들이 매우 드라마틱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현재 암이라는 병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만약 주변에 암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매우 묵직하게 다가올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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