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은 밥 먹을 때 가끔씩 <독박투어>를 틀어둔다. 한동안 너무 바빠서 보지를 못하다가 얼마 전부터 이집트 편부터 다시 정주행 중이다. 나는 2008년에 이집트를 다녀왔었고 남편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아 근데ㅋㅋㅋㅋ이 멤버들이 이집트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다. 음식도 입맛에 안 맞는 것 같았고 사람한테도 약간 지친 것 같았다. 이집트를 인도랑 많이들 비교를 하는데 우리들 기준에서는 인도가 훨씬 순한 맛이다. 인도 사람들도 황당한 요구를 가끔 하기는 하지만 강하게 맞대응하면 금방 수긍하는 느낌이었다. 근데 화면으로 느껴지는 이집트 사람들은 그것보단 좀더 매운 맛이었다. 그리고 지치지 않는달까. 


그래도 독박 멤버들은 연예인이고 엄연히 방송을 위해 간 거니까 피라미드에서 가이드를 고용해서 편하게 여행했던데 나는 그런 건 꿈도 못 꿨다. 이집트 갔었을 때 피라미드에서 사기 안 당하려고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정작 피라미드 봤던 건 별로 기억에도 없고 누가 피라미드에서 어떤 사기를 당했다더라, 이런 얘기만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그 당시 피라미드 관람 수칙 1순위는 '낙타를 타지 말 것'이었다. 낙타는 생각보다 키가 크다. 일단 한 번 타면 주인이 낙타를 무릎 꿇리기 전까지는 절대 낙타에서 내릴 방법이 없다. 여성 여행자들이 낙타를 타면 그 뒤에 낙타 주인이 앉아 계속해서 더듬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또 내리기 직전에 돈을 따따블로 부른다는 거다. 만약에 그 가격을 거부하면 절대로 낙타에서 내려주지 않는다고 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떤 한국인 여행자는 추가금을 거부하고 낙타에서 뛰어내렸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한국으로 귀국했다나. 아무튼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도시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지금은 좀 달라졌으려나.


피라미드를 구경한 독박 멤버들은 그날 밤 16시간 밤기차를 타고 아스완으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가장 좋은 객실을 예약한 것 같은데 객실이 너무 별로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물론 치앙마이-방콕 밤기차만큼 깔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도 기차보다는 백배쯤 나은데. 아, 나는 왜 모든 이야기가 깔때기처럼 기승전 인도로 빠질까. 이건 인도보다 좋다, 저건 인도보다 별로다, 항상 이런 식이다. 인도라는 나라, 정말 뭘까ㅎㅎㅎ 


아무튼 그들은 밤기차를 타고 아스완에 도착했고 나도 아스완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맞다. 아스완이 되게 별로였다ㅋㅋㅋ. 카이로는 시끄럽고 정신 없지만 재밌기라도 했지. 아스완은 그냥 별로였던 것 같다.


문제는 아스완의 나일강 보트 투어. <독박투어> 멤버들도 처음에만 좀 신나하다가 나중에는 지루해하는 것 같았다. 호객 행위도 심하고 가격도 부르는 게 값이라 멤버들이 피곤해하는 게 느껴졌다. 아스완에서 누비안 빌리지로 가기 위해 보트 탈 때는 열심히 흥정을 하더니 돌아올 때는 '귀찮아. 그냥 그 돈 주고 타' 이러는 게 너무 웃겼다ㅋㅋㅋㅋ. 그 마음이 이해는 됐다. 화면으로 보는데도 우리도 약간 지치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아스완에서 보트 탈 때 다른 의미로 짜증이 났었다. 나랑 내 동행(여자)은 좀 젠틀해보이는 중년 남성이 모는 보트에 탔는데 보트가 출발하자마자 아주 난리였다. '남편이 있냐, 남자친구 있냐, 내 몇 번째 부인으로 들어올 생각이 없냐' 끝도 없이 주절거려서 진짜 내리고 싶었는데 보트가 뭍에 닿을 때까지는 내릴 수도 없었다. 우리가 못 내린다는 걸 알고서 더 그러는 느낌이라 진짜 왕짜증.


이 방송 덕분에 나는 이집트로 추억 여행을 다녀왔다. 아스완이 정말 별로였던 것도 기억이 났고, 피라미드에서 낙타 타서는 안 되는 것도 기억이 났고, 무엇보다 카이로에서 만났던 여행객들이 떠올랐다.


내가 이집트에 갔었을 때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근처에 배낭여행객들이 많이 가는 호텔이 딱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썬 호텔(Sun hotel)이고 하나는 이스마일리야 호텔이었던 것 같은데 일기장이 없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이스마일리야 호텔에 묵었다.(그 이름이 맞다면 말이다. 썬 호텔에서 묵지는 않았다.) 도미토리였는데 2층 침대가 아니라 큰 방에 싱글침대를 여러 개 놓아둔 방이었다. 엄청 저렴했었다. 


한국인 여행객이 몇 있었는데 우리는 매일 밤 호텔 공용 공간에 모여서 그날 어떤 수모를 겪었고 어떤 사기를 당했는지 토로했다. 아무리 말을 하고 또 해도 여행자들의 이야기거리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집트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냥 그 여행객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 남미 여행하고 이집트로 넘어온 태권도 유단자, 아프리카 최남단에서부터 육로로 여행하다가 이집트로 넘어온 사람, 아프리카 어디 대사관에서 요리사로 근무하는 사람 등등 재미있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아프리카 최남단에서부터 육로로 여행하다가 근처 나라에서 배 타고 이집트로 넘어왔다고 말한 분은 여자분이었는데 엄청 큰 캐리어를 끌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그런 여행은 응당 배낭을 메고 해야한다고 믿었는데 그 분은 가방이 너무 무거워졌다면서 가방을 버리고 큰 캐리어를 샀다고 했다. 본인은 너무 만족한다면서 캐리어 끌고 다니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진짜 쿨했다. 어떤 분은(이분도 여자) 태권도 유단자인데 남미에서 칼 든 강도 만난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행히 싸우기 전에 그 강도가 놀라서 달아났다고 했다. 안 그랬으면 손에 든 스카프로 그 놈 목을 졸라버리려고 했다고. 너무 멋있었다. 아, 이집트에 있는 대학교에서 공부하시던 분도 계셨다. 아랍어 잘 하셨는데. 그 분도 여자였다. 나는 이때 정말 멋진 여성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이때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돈을 주고서라도 이때의 이집트 타흐리르 광장 옆 그 호텔 공용 공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주저하지 않으리. 


저 예능을 보니까 이집트에 너무 가고싶어졌다. 문제는 돈과 시간. 우리는 만약에 이집트에 가게된다면 그냥 관광만 하고 오지는 않을 거다. 무조건 다합 가서 프리 다이빙을 할 거고 시와에서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가능하다면 터키까지도 돌아보고 싶다. 그러려면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을 땐 돈이 없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인생이 그런 건가? 그래서 여태까지 이집트는 마음 속 여행지 순위에서 미뤄두고만 있었다. 그런데 독박투어 보니까 이집트 너무 가고싶네. 우리가 제정신을 유지하지 않고 반 정도 훼까닥 미친다면 올겨울에 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집트.


나는 남편에게 내가 만약 이집트에 가면 상형문자를 읽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리고 저건 상형문자가 아니라 '성체자'라고 불러야 하며 저 문자는 소리 글자로서의 기능도 했다고 아는척까지 했다. 이건 다 <신의 기록> 덕분이다. 이 책 진짜진짜 재밌어서 두 번 읽었는데 한 번쯤 더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일단 이걸 읽으면 이집트 문자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헛된 망상을 품게 된다. 그리고 이집트 성체자란 말이야, 누가 해석을 했냐면 말이야, 로제타 스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말이지, 이러면서 아는척을 엄청나게 할 수 있게 된다. 전자책을 사놨으니까 만약 진짜 이집트에 가게 된다면 가는 비행기 안에서 무조건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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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8-11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년전 겨울에 이집트 다녀왔어요. 저는 아스완보다 아스완에서 몇 시간 더 가야하는 아부심벨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스완은 그냥 아부심벨 가는 길에 잠시 보았던 곳으로 기억에 있네요.
이집트 여행은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곳이지만 누가 간다고 하면 개인여행이 아니라 꼭 단체여행으로 갈 것을 권한답니다.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이 오랜 신축 공사를 끝내고 11월1일에 새로 개관한다는 소식을 며칠 전 뉴스에서 보고나니 또 한번 가고 싶어요.

Laika 2025-08-11 16:34   좋아요 0 | URL
오 굉장히 최근에 다녀오셨네요. 저도 아부심벨은 인상적이었어요. 그 자체로도 놀랍지만 큰 동상을 조각조각내서 옮긴 건 진짜 대단하죠. 다음에 다시 가게 되더라도 아부심벨은 또 가고 싶어요. 아스완은 아부심벨을 위한 도시 정도로만 생각하고 스쳐지나가려구요. 보트는 정말 별로였어요ㅎㅎㅎ이집트 박물관 개관 소식은 저도 들었어요. 박물관 개관하면 꼭 한 번 다시 가봐야겠어요. 예전 박물관은 상당히 낡고 어두웠던 것 같은데 얼마나 좋아졌을지 기대가 돼요!
 

우리 엄마는 넷플릭스 매니아다. 조금 이름난 작품 중에 안 본 게 거의 없다. 어디선가 '이거 재밌더라'는 말을 듣고 넷플에 들어가 그 작품을 검색해보면 이미 누군가 다 봤다는 표시가 뜬다.(영상 밑의 빨간 줄) 엄마한테 물어보면 몇 년 전에 봤다는 답이 돌아온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영상에 중독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꼭 젊은 세대에 국한된 말도 아니다. 내 주변에서 넷플릭스랑 유튜브를 제일 좋아하고 많이 보는 사람은 우리 엄마니까.


아무튼 엄마가 며칠 전에 <오프로드 인생 여행>이라는 작품을 추천해줬다. 찾아보니 이스라엘 배우 두 명이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촬영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다른 건 모르겠고 '중앙아시아'라는 것에 꽂혀서 나도 어제부터 이 작품을 정주행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5개국을 다 도는 건 아니고 한 달 동안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만 여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건 딴 소리인데 과거 소련 소속이었다가 독립한 중앙아시아 5개국 나라 이름을 외우는 방법이 있다. 유튜브 채널 '두선생의 역사공장'에서 알려준 방법이다. 왼쪽 하단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면서 '투.우.카.키.타'를 외치면 된다. '투우'는 황소 싸움 그 '투우'를 생각하면 잘 외워지고 '카키타'는 그냥 왠지 모르게 입에 착 달라붙는다. '투우카키타'는 순서대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이다. 이 방법을 알게된 후로 중앙아시아 5개국 위치는 확실하게 외우고 있다.(뿌듯)


<오프로드 인생 여행>에 나오는 배우 둘은 이스라엘에서 상당히 유명한 사람들인 것 같다. 아, 참고로 남자와 여자다. 동성 친구가 아니다ㅋㅋㅋ. 어느 작품에서 만나 친해진 것 같은데 각자 배우자가 따로 있다고 한다. 떠나기 전에 심리상담가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중앙아시아 여행 가서 둘이 사랑에 빠질 확률은 없는 거냐는 질문이 나온다. 그래, 나도 이게 제일 궁금했다. 둘은 사랑에 빠질 거였으면 이미 이스라엘에서도 빠졌을 거다, 중앙아시아까지 가서 그런 일이 생길 리는 없다고 답한다. 흐흠. 그렇군. 아무튼 여성 배우(=로템)는 진짜 유명한가보다. 자신은 이스라엘에서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룬 것 같다며 뭔가 새로운 걸 경험하고 싶어서 이걸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내가 속한 사회에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저 자신감. 왠지 멋지다. 남성 배우(=리오르)는 원래 지프차 타고 오프로드 여행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로템은 오프로드나 지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서 같이 온 것 같고. 그래서인지 지금 첫 번째 에프소드를 보고 있는데 둘이 계속 삐그덕거린다. 


사실 둘이 대화하는 방식 자체가 그렇다. 리오르는 '너는 왜 나를 위로하거나 격려해주지 않아?' 이러면 로템은 '그야 당신이 잘난 척을 하니까 그렇죠' 이런 식이다. 그나저나 둘의 대화는 로템이 리오르에게 존댓말을 하고 리오르는 로템에게 반말을 하는 설정으로 번역이 되어 있다. 리오르가 로템보다 나이가 많다고는 하지만 정말 이렇게 했어야만 했을까? 나이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둘이 친구라는 설정이고 이스라엘 언어에는 우리나라 말 같은 존댓말 체계가 없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챗지피티한테 둘이 나이 차이가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억ㅋㅋㅋㅋ12년 차이라네. 리오르가 로템보다 12살 더 많다고. 아 그럼 존댓말로 번역한 것도 인정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갑자기 수긍.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래 이스라엘 수도 텔 아비브를 처음 봤다. 이스라엘은 맨날 파키스탄이랑 전쟁한다는 소식으로만 접해서 어떤 나라인지 잘 몰랐었는데 텔 아비브는 현대적인 도시 그 자체였다. 뭔가 신기했고 놀라웠다. 근데 또 이 글을 쓰면서 네이버를 찾아보니 이스라엘 헌법상 수도는 예루살렘이고 국제법상 수도는 텔 아비브라네. 복잡하다 복잡해. 아무튼 영상으로 처음 접한 텔 아비브는 너무 깔끔하고 현대적인 수도였고, 이스라엘이 파키스탄이랑 전쟁을 하거나 말거나 이란이랑 미사일을 쏘거나 말거나 거기 사는 중상류층 사람들은 편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약간 기분이 묘했다. 한류가 대중화되기 전에, 외국인들이 서울 와보고 깜짝 놀랐던 것과 비슷한 기분일까나. 한국은 북한이랑 전쟁 중인 나라라고 생각했을텐데 막상 한국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고 서울에 고층 건물들이 우수수 세워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로템이랑 리오르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공항 도착해서 지프차를 수령하고 도로를 벗어나 오프로드 길로 들어선다. 광활한 초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눈 덮인 설산까지 보여서 너무 예뻤다. 나는 중앙아시아 하면 막연하게 사막화된 황폐한 초원을 상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푸릇푸릇한 풀들로 덮여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설산까지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키르기스스탄은 다른 중앙아시아 나라들과 다르게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라고 한다. 그 산은 바로 천산 산맥. 천산 산맥은 중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키르기스스탄까지 뻗어 있구나. 너무 예뻤다. 동양의 스위스라고 불려도 손색 없는 풍경이었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눈이 작고 얼굴이 동글동글한 전형적인 몽골리안형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동양과 서양의 중심 지점인 중앙아시아에 위치해있는데도 서양권과의 혼혈 느낌이 전혀 없었다. 중국 신장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오히려 키르기스스탄보다 더 동쪽에 위치한 신장 사람들이 훨씬 더 혼혈 느낌이 강했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그냥 몽골 사람처럼 생겼다. 또 충격인 건 이 사람들의 전통 놀이인 '콕 보루'를 시작하기 전에 '앗살람 알라이쿰' '오, 알라신이시여' 이러면서 기도를 하는 거다. 그러니까 이 나라는 '튀르크계(돌궐계)'로 분류되며 한때 러시아에 속했던 영향으로 러시아어를 쓰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키르기스어(튀르크계 언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겉모습만 보면 전형적인 몽골리안인데, 종교적으로 보면 대다수가 이슬람을 믿는다고 한다.(물론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


위에 잠깐 언급한 '콕 보루'를 관람하는 장면이 <오프로드 인생 여행> 1화에 나온다. 말에 탄 키르기스스탄 남자들이 살아있는 염소를 공처럼 몰면서 진행하는 경기다. 심지어 경기가 끝나면 그 염소를 먹는다(ㅠㅠ) 리오르랑 로템 둘 다 채식주의자인 것만 봐도 이들의 동물권 감수성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키르기스스탄으로 여행을 왔으니까 전통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이걸 보러 온 거다. 로템은 공황발작이 올 것 같다면서 아예 보지 않았고 리오르는 그래도 이 사람들의 문화라면서 힘들긴 했지만 지켜보기는 했다. 둘의 대화가 재미있다.


리오르: 나는 저기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야. 저건 저들의 문화잖아.

로템 저 사람들의 문화고, 50년이나 100년 전에는 당연한 거였죠. 하지만 이젠 달라져야 해요. 용납될 수 없어요.

리오르: 그럼 전통을 어떻게 보존해?

로템: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말을 학대하거나 양을 도살하지 않고도 전통을 지킬 방법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유대 전통에는 남자가 아내를 여러 명 두던 시절이 있었죠. 우리가 그 전통을 고수해요?

리오르: 맞아.(먼 산 보기...)


나는 두 명한테 다 공감이 되어서 재밌었다. 그들의 전통이니까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도 충분히 이해되고, 아무리 전통이라고 해도 모든 걸 다 보존할 수는 없으며 분명히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진짜 공감이 간다. 둘이 성격이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다. 둘이서 똑같은 것만 얘기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저기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라는 리오르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많은 곳엘 다녀봤지만 때로는 낯선 사람들의 행동에서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았다. 나는 낯선 사람들의 문화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항상 노력했던가?


넷플릭스 중독자, 아니아니 넷플릭스 매니아인 엄마 덕분에 재미있는 작품을 발견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아무리 누가 추천해줘도 내 취향이 아니면 절대 안 보는데 이건 내 취향에 딱 부합해서 정주행하고 있다. 지금 2화 보고 있는데 둘이 또 싸울 각이다ㅋㅋㅋㅋㅋㅋ. 12살 차이 이성 친구인데 이렇게 싸우면서 여행하는 것도 능력이다 정말ㅋㅋ.


심리상담가: 리오르에게 뭐라고 했죠?

로템: 이번 여정에서 제 목표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거라고 했어요. 리오르고 잘 이해했고 우린 차 타고 외딴곳으로 가기로 했죠. 새랑 바람 소리, 그리고 리오르의 목소리만 듣고 싶어서요.

심리상담가: 좋은 생각이군요. 그런 말이 있어요. 다른 모든 입자와 멀리 떨어져서 홀로 우주를 떠도는 두 원자에게 남은 운명은 서로 충돌하는 것뿐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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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지피티를 애용하고는 있으나 무조건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당연한 말씀. 지피티 프로그램에서도 지피티가 실수할 수 있으니 재차 검증하라는 안내 문구를 띄우고 있으니까. 


요즘 지피티가 실수하는 빈도는 많이 줄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 제목을 뽑아내고는 한다. 예전에 김영하 작가의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나는 김영하 작가의 책을 다 읽었기 때문에 지피티 검증 용도로 한 질문이었음) 생전 처음 보는 제목의 책을 추천해줘서 깜놀했다. 내가 모르는 신간이 나왔나 하고. 하지만 역시나 뻥이었고. 그런 책은 세상에 있지도 않았다.


그 후로 지피티한테 책 추천해달라는 질문은 거의 안 하는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그런지 요즘은 또 지피티랑 책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ㅋㅋㅋㅋㅋ피터 홉커크의 <그레이트 게임>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어서 이거랑 비슷한 책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국내에 발간된 피터 홉커크의 책은 단 두 권. <그레이트 게임>이랑 <실크로드의 악마들>이다. <실크로드의 악마들>은 작년에 읽었고(둔황 다녀오고 나서 읽은 거라 당연히 재미있었음), <그레이트 게임>은 지금 읽고 있는 중이다. 피터.B.골든이 쓴, 중앙아시아 역사를 다룬 <중앙아시아사>도 틈틈이 읽고 있는 중이다.


이거 말고 뭐가 더 있나 싶어서 알라딘 뒤져보다가 결국 지피티한테 질문했다. 내가 지금 <그레이트 게임>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또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그랬더니 아예 영어 원서 책들 리스트를 쫙 뽑아준다. 분명히 이 중에서 세상에 없는 책이 섞여있을 거라는 생각에 매의 눈으로 아마존 도서 사이트를 뒤졌는데 웬일. 다 있는 책들이었다.


내가 진짜 영어 원서를 술술 읽을 수 있는 영어 수준이 아니지만 그래도 책들이 전부 다 재미있어 보여서 일단 전부 내 위시리스트에 담아 뒀다. 한 권씩 야금야금 구입할 예정. (고등학교 때 이 열정으로 책을 읽었으면 영어 마스터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때는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 줄 몰랐지.)


어제는 <그레이트 게임> 읽다가 진짜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안되겠다, 피터 홉커크의 책을 한 권 더 사야겠다, 결심하고서는 아마존에서 <Trespassers on the Roof of the World: The Race for Lhasa>를 구입했다. 전자책으로 구매했는데 가격은 3달러대.


티베트에 외국인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되던 시절에 티베트에 들어갔던 외국인 탐험가들 이야기다. 하지 말라는 거 하는 사람들, 특히 국가적으로 민감한 규칙들을 아무렇지 않게 어기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린다. 스파이 소설을 읽는 느낌이랄까. 잡히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왜 이런 모험을 해야만 했을까, 매우 궁금하다.


위의 책을 다 읽으면(과연?ㅋㅋ) <The High Road to China>랑 <The Border - A Journey Around Russia> 같은 책들을 구입해보고 싶다. 전부 지피티가 추천해줘서 알게된 책이다. 우리나라에는 번역이 안 된 책들이라 읽고 싶다면 아마존에서 전자책을 구입해야 한다.


그리하여 중앙아시아 관련, 나의 책 읽기 리스트는 대강 이러하다.


<그레이트 게임> 다 읽고,

<중앙아시아사> 틈틈이 읽고,

<Trespassers on the Roof of the World: The Race for Lhasa> 대강 맛만 보고(왜냐면 영어가 어려울 것 같아서 꼼꼼하게 읽을 자신이 없음ㅠ)

<The Border - A Journey Around Russia> 읽어보기! 이거는 Erika Fatland라는 저자의 책인데 이 저자가 쓴 것들 진짜 전부 재미있어 보인다.

<The High Road to China>도 재미있을 것 같음.


그나저나, 아마존에서 파는 전자책들, 가격이 들쑥날쑥 제각각이다. 어떤 건 15달러인데 어떤 건 3달러 막 이런다. 게다가 가끔씩 파격 할인 행사도 하기 때문에 함부로 전자책 사서 쟁여놓기 무섭다. 언제 파격세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같은 책인데도 출판사가 두 개고 가격도 다른 게 있어서 잘 살펴봐야 한다. 분명히 똑같은 저자에 똑같은 제목인데 어떤 건 15달러, 어떤 건 10달러길래 좀더 알아보니 하나는 미국 출판사고 하나는 영국 출판사란다. 내용은 똑같은데 미국 거냐, 영국 거냐에 따라 5달러가 차이가 나다니!!그렇다면 나는 무조건 싼 걸 고른다.ㅋㅋㅋ


한동안 너무 바빠서 책과 멀리 떨어져 지내다가 요즘 또 책이 너무 좋은 시기다. 아무 것도 안 하고 하루종일 책만 읽고 싶다. 그러려면 누가 나한테 밥도 해주고 돈도 벌어다줘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네ㅋㅋㅋ. 아무튼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틈틈이 책을 읽고 있다. 일단 가장 큰 목표는 <그레이트 게임> 뽀개는 것.


(사실 <그레이트 게임>은 책이 너무 두꺼워서 PDF로 스캔을 했다. 이렇게 두껍고 무거운 벽돌책을 종이책으로 읽을 자신이 없다. 목도 아프고 손목도 아프고, 책장 하나하나 넘기기도 귀찮다ㅠㅠ(이렇게 귀찮음이 심해서 밥은 어떻게 먹냐 수준) 그래서 지금 PDF로 읽고 있는데, 너무 편하다. 노트북 화면에 띄워놓고 마우스로 스르륵 스크롤 하면서 읽으니까 세상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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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공식품 : 음식이 아닌 음식에 중독되다>를 읽으면서 먹는 걸 살 때 원재료명을 꼭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침에 먹은 서울우유 플레인 요거트는 원재료가 우유랑 유산균으로 굉장히 단순했다. 그런데 냉장고에 굴러다니고 있던 또 다른 요거트 원재료에는 젤라틴, 유화제 같은 성분이 적혀있었다. 원재료가 단순하지 않아서 그런가 왠지 맛도 별로인 것 같고. 엄마도 나도 그 요거트에는 손이 안 가서 서울우유 요거트만 먹었다.


저녁에는 올리브영에 들렀다. 세일한다길래 뭐 살 거 있나 해서 들른건데 살 게 없었다. 립스틱도 파운데이션도 흥미를 잃은지 오래. 다만 바디로션 같은 거 세일하면 하나 사려고 했는데 검색해보니까 쿠팡에서 사는 게 훨씬 쌌다. 마실 거라도 사볼까 해서 냉장고쪽으로 향했다. 맥주랑 얼그레이 하이볼이 세일 중이길래 두 개를 들고서 원재료명을 확인했다. 얼그레이 하이볼에는 주정, 백설탕, 오크칩, 구연산, 향료 등이 들어있었다. 오크칩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더니 하이볼 향 낸다고 집어넣는 원재료인 듯 싶었다. 되게 건강한 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못먹을 화학약품은 없는 것 같아서 일단 하이볼은 겟. 맥주의 원재료명을 봤는데 얘는 훨씬 복잡했다. 일단 내가 잘 모르는 화학약품의 이름이 보였다. 


네이버 검색해보니 얼그레이 하이볼은 엄청 맛없다는 불호평이 많고 맥주는 맛있다는 평이 많았는데 나는 하이볼을 구매했다. <초가공식품>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원재료명 따지면서 음식을 구매하는 일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으나 일단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만큼은 '음식이 아닌 음식'을 구매하기가 매우 꺼려졌다. 하이볼이랑 같이 먹을 과자도 사지 않고 집에 와서 한라봉이랑 호두를 으적으적 씹어 먹는 중이다. 평소 같았으면 봉지과자를 까놓고 하이볼을 즐겼을텐데 말이다. 한라봉과 호두는 음식이고, 온갖 화학 약품을 버무려놓은 과자는 '음식이 아닌 음식'이라는 생각 때문에 도저히 과자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요지는 이렇다. 인간은 스스로 먹는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조절 기제를 타고 태어난다. 그래서 신체는 자신에게 맞는 적정한 몸무게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초가공식품의 등장 이후로 비만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초가공식품이 칼로리가 높다거나 지방 함량이 높다거나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초가공식품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즉 실험실에서 탄생한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초가공식품은 인간의 섭식 조절 능력 자체를 고장낸다. 그리하여 초가공식품에 중독된 인류는 '음식 아닌 음식'을 끝없이 갈망하게 된다는 것.


이런 식의 주장에 또다른 반론이 있을 수도 있으나, 내가 직관적으로 느끼기에는 이 책의 주장에 일견 타당성이 있다. 인류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실험실에서 탄생한 분자들을 먹는 게 몸에 뭐 그리 좋을 게 있을까. 가습기 살균제 사건 때도 느꼈고, 더 멀게는 방사선의 위험성을 모르고 방사능 음료를 판매한 사건에서도 느끼지만, 나는 일단 너무나 새로운 것에는 경계심을 갖는 편이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도 제로 열풍에 늘 의심을 품고 있었다. 콜라가 몸에 나쁘면 콜라를 끊어야지, 그걸 대체해서 제로 콜라를 먹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나는 어쩌다가 탄산음료가 먹고 싶으면 차라리 오리지널을 마신다. 설탕은 그래도 자연에서 뽑아내기라도 하지, 단맛을 내지만 칼로리는 없는 저 성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선뜻 손이 안 간다. 평소에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이 책의 주장에 더욱더 감화가 되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제로 음료는 불신하면서 과자 중독자로 살았던 나, 정말 모순덩어리였다...ㅠㅠ)


요즘 나뿐만 아니라 우리 엄마도 그렇고 아주 친하게 지내는 지인도 그렇고 다들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먹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각자 주장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지만, 어쨌든 공통점은 딱 하나. 질 좋은 음식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들 왜 이렇게 먹는 걸 신경쓰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조금만 신경을 놓으면 안 좋은 음식들을 먹기가 너무 쉬운 환경에 놓였기 때문인 듯 하다. 나만 봐도 그렇다. 요리하기가 싫으니까 온갖 화학 약품이 들어있는 밀키트를 사먹고, 밥 대신 과자를 먹는 일도 다반사였으니까.


먹는 걸로도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말이 있다. 건강하게 살려면 약에 기댈 생각하지 말고 먹는 것부터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어차피 평생 살 수는 없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건강하게 살아야 하는데 식생활이 망가지면 반드시 건강을 해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과자는 끊을 수 없겠지만 밀키트는 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 하기 싫으면 야채 삶고 고기 구워서 소금 뿌려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올한해 목표는 가짜 음식 말고 진짜 음식으로 내 몸을 만드는 것. 초가공식품을 싹 끊을 수는 없지만(과자 없이 살 수는 없다ㅠㅠ) 서서히 멀어지고 싶다. 음식 아닌 음식들, 그동안 즐거웠고 앞으로는 적게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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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를 빡세게 해보고 싶어서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를 주문했다. 경험상 이런 류의 책은 링제본을 해야 확실히 보기 편하다. 두께 때문에 두 권으로 나눠서 제본한다길래 얼마나 두껍나 했는데...진짜 두껍기는 하다. 제본 안 했으면 무거워서 들고다니지도 못할 뻔 했다.

어쩐지 너무 두껍고 어려워 보이는 책이라 한동안 거리두기를 하다가 어제 처음으로 책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도저히 집에서는 공부 못할 것 같아서 카페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스타벅스 가서 톨 사이즈 따뜻한 아메리카노랑 잉글리시 스콘을 주문했다.


커피랑 빵을 때려넣었는데도 너무 집중이 안 되어서 챕터1을 간신히 끝마쳤다. 처음에는 간단(?)해보이는 단어 10개 정도로 시작하는데 계속해서 새로운 단어로 가지치기 해나간다. 머언 옛날에 수능 영어 공부 열심히 했었는데ㅋㅋㅋ세상에 이렇게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이 튀어나오니까 새삼 충격 받았다. 세상은 넓고 외워야할 영어 단어는 무지하게 많다. 그래도 어원을 중심으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챕터1에서 그나마 익숙했던 단어는 A misogynist(여성 혐오자) 하나였다. 페미니즘 관련되어 아주 많이 등장하는 단어여서 나도 모르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추측할 수 있듯이, 'mis-'는 그리스어 misein(=미워하다)에서 파생되었고 gyne은 여성을 뜻하며 '-ist'는 보통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접미어이므로, A misogynist가 여성을 싫어하는 사람을 뜻한다는 걸 쉽게(?) 유추해낼 수 있다.


A philanthropist도 보자. 'Phil-'은 뭔가를 좋아한다는 뜻, anthropos는 인간을 뜻한다. 그러니까 인간을 좋아하는 사람들, 박애주의자라는 뜻이 완성된다. 독지가, 자선가라는 뜻도 있다. 의미는 참 좋은데 이거 발음하기 무지 어렵다. F 발음이 L 발음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TH 발음으로 연결된 후 P 발음을 내뱉어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나는 영어로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저 눈으로 보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뿐이라서 굳이 발음까지 공부해야 하나...? 싶었지만 열심히 연습했다. 안 되는 발음도 연습 하다보면 은근히 쾌감이 느껴진다.


그나저나 '독지가'라는 단어의 정확한 한자어 뜻이 뭘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네이버 한자사전 들어가서 검색했다. '篤 도타울 독/志 뜻 지/家 집 가'를 써서 [1. 마음이 독실(篤實)한 사람, 2. 사업(事業)이나 공공(公共)의 일에 특(特)히 마음을 쓰고 협력(協力)ㆍ원조(援助)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1번보다는 2번 뜻을 주로 사용하는 듯 하다. 연말연시가 되면 '이름을 밝히지 않은 독지가의 후원' 이런 류의 기사 제목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너무나 익숙한 단어였는데, 독지가의 '독'이 '도타울 독'이라는 걸 어제 처음 알았다. '도타울 독'은 또 언제 사용할까. 종교에 대한 믿음이 강할 때 '독실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데 '독실'의 '독'이 바로 '도타울 독'이라고 한다.


언젠가 '나는 한자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심지어 신문이나 책에서 중요한 단어는 한자로 표기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가 '너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했다가는 꼰대 소리 듣는다'는 답변을 들었다.(심각한 분위기가 아니라 둘 다 농담처럼 던진 소리였다) 어쨌든 나는 한자를 좀더 많이 알고 싶다. 책을 보다가, 뉴스를 보다가, 저거는 무슨 한자를 쓰는 단어지? 이런 생각이 들면 네이버 사전을 찾아본다. 영어 단어를 공부할 때 어원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한국어 실력을 늘리려면 어느 순간 한자가 필요해진다.


오늘은 <워드 파워 메이드 이지> 챕터2를 공부해야 하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좋은 책인 건 알겠는데 솔직히 나한테는 좀 어렵다ㅋㅋㅋㅋ. 이 책 앞에 보면 "매일 적어도 하나의 레슨을 공부하세요. 여건이 허락하는 한 하루라도 건너뛰면 안 됩니다."라고 쓰여 있는데...건너뛰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하지만 공부해야지. 책을 구매했고, 링제본을 했다는 것은 재판매가 안 된다는 뜻.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품에서 이 책을 끝장내야 한다. 당분간 커피와 달달한 빵의 힘을 많이 빌려야겠다...!


이 책에 등장하는 발음기호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사전에 등장하는 일반적인 발음기호는 아무리 봐도 제대로 못 읽겠는데(그래서 꼭 발음듣기를 눌러서 소리로 들어봐야 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발음기호를 보면 읽힌다! 이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발음기호를 눈으로만 봐도 어떻게 읽는지 대충 짐작이 가니까 좀더 자신감 있게 단어를 공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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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5-02-13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한자를 익히려면 옥편을 뒤적일 줄 알아야 했지만,
요새는 네이버사전만으로도 누구나 쉽게
한자를 살필 뿐 아니라, 한자 밑말(어원)까지
한눈에 찾아볼 수 있더군요.

한자는 굳이 따로 가르치기보다는
네이버사전으로 넉넉하다고 느껴요.

이보다는 우리말 말밑(어원)을
사람들이 제대로 살피고 익혀야
비로소 영어 말밑과 한자 말밑도
왜 그러한 결인지 알아차릴 만하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