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사회학회 창립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사회계층론 수업이 끝나고 서울대로 향했다. 4시 가까이 되어 도착하였는데, 김호기 교수의 발표가 막 끝나가고 있었다. 항상 언론매체를 통해서만 보던 학자를 직접 본 소감은 그냥 '싱거움'이었다.
심포지엄 2부에서 조대엽 교수님이 '운동정치의 제도화와 정당정치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하셨는데, 중간고사 이전의 정치사회학 강의내용와 연결되는 부분이 많았다. 선생님은 이번 촛불시위를 두고 그 긍정성 보다는 우리사회의 정치참여제도가 갖는 결함에 주목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정치참여제도가 잘 갖추어져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이번 쇠고기 협상에 무효를 선언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에서 쇠고기 수입이 이루어진다면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인가. 과연 제도의 보완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담보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 학회는 소위 말하는 소장파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되었는데, 그 창립 목적을 살펴보니 '현실과의 생산적 긴장을 통한 사회의 분석, 탐구 및 미래 전망'이었다. 여기서 긴장이란 기존 학자들의 과도한 현실 개입과 방관자적 태도 사이의 중용적 자세를 의미하는 것 같았는데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현재 진행형인 촛불시위에 대한 학자들의 조급한 분석들을 과연 생산적 긴장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이건 개입도 방관도 아닌 촛불시위라는 따끈한 이슈를 소재로 삼은 운동분석연구의 상품화가 아닐까. 이런 연구에 얼마만큼의 진정성이 녹아들어가 있는가. 왜 교수님들은 직접 촛불시위에 참여하여 여중생들이 '평화시위'보장을 외치고 전경들이 방패로 무고한 시민들을 찍어 내리는 장면들을 포착하지 않을까. 그리고 왜 그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이것은 학자의 몫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과 사회 운동가들의 몫이기 때문인가.
사회학 가운데 현실과 가장 가까운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정치사회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치사회학자들은 다른 학자들보다도 더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 뭣도 모르는 일개 학부생이지만 '생산적 긴장'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옹졸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p.s 심포지엄이 끝나고 술자리에서 정일준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공부는 끈기있고 노력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머리가 좋고 나쁘고는 중요하지가 않다. 절대량의 독서, 절대량의 고민, 절대량의 대화가 중요하다. 도구로서의 영어를 빨리 정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