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치고 율린이 형과 동대문에 다녀왔다. 형이 내일 중요한 소개팅이 있는데 마땅히 입고 나갈 옷이 없다는거다. 알맹이가 중요하지 껍데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소개팅을 주선해준 친구 체면도 있는 것이고 처음 만나는 이성에게 최대한 멋지게 보이고 싶은 욕망은 건강한 본능이니까 뭐... 아무튼 이러한 연유로 형의 새 옷 장만에 들러리로 나서게 되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의 동대문이었다. 평소같았으면 많은 인파로 복작거렸을 거리가 오늘은 한산하였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거리는 쓸쓸한데 텅 빈 동대문 운동장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시려왔다. 명품 문화 도시 서울에 더 이상의 풍물시장은 존재하지 않겠지...

  평소에 패션과는 거리가 먼 두 남자였기에, 옷 고르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특히나 감정에 호소하는 호객행위를 뿌리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좀 더 둘러보고 다시 올게요'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결국은 둘러보고 다시 오겠다던 가게에서 옷들을 샀다. 현찰박치기를 한 덕분에 그럭저럭 흥정은 되었다.

  요즘 내가 외롭다 보니, 간만에 들어온 소개팅에 과도하게 들떠있는 형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혼란할진데, 사랑없이 꾿꾿하게 버티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 있는 것들을 보라

사랑하라

놓지 마라

- 더글러스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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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정치사회학 발표 수업이 끝났다. 오랜 시간동안 준비해 왔던 터라 후련한 감도 있지만 벌써 끝났나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이제까지의 발표 수업 준비는 항상 수동적이고 재미가 없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사실 처음에는 걱정되는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같은 조원 여학우들이 모두 4학년이라 취업준비 등등의 이유로 많이들 바빴고, 복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없는 내가 팀장이 되는 바람에 초반에는 정말 앞이 깜깜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과는 달리 다들 너무도 적극적으로 준비에 참여해 주었고, 팀 구성원들이 학번이 같고 나이도 비슷해서 그랬는지 마음이 잘 맞아서 발표 준비가 지루하지 않고 즐거웠던 것 같다. 거기에다 조금은 시니컬하고 썰렁한 농담을 즐기시지만 정말 열심히 우리를 이끌어 주셨던 조교님 덕분에 한층 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솔직히 학점은 걱정이 되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이 사귀었고 배운 것들도 많고 무엇보다도 율린이 형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 사람이란 것이, 정이라고 하는 것이 참 좋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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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규환이다. 방패로 마구 찍어 내리는 것도 모자라 살수차로 물대포를 쏘아대고, 분말 소화기를 마구 뿌려댄다. 이게 지옥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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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 고시를 강행하였다. 억지로라도 국민들의 입을 벌려 쇠고기를 집어넣겠다는 대국민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집에 가겠다는 진규를 설득해 시청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시청에서의 집회 후 청계광장으로 이동을 하는 도중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서 '전기세 아깝다. 불꺼라. 조중동 쓰레기'라고 주위의 시민들과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거대 권력을 앞세워 정부의 찌라시 역할을 하는 신문들을 과연 누가 선택할 것인가. 그들은 광화문 거리를 점령한 시민들이 무섭지 않은가.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것 같다. 21년 전 6월에 그랬던 것 처럼 촛불의 거대한 흐름을 키워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이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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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정치사회학회 창립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사회계층론 수업이 끝나고 서울대로 향했다. 4시 가까이 되어 도착하였는데, 김호기 교수의 발표가 막 끝나가고 있었다. 항상 언론매체를 통해서만 보던 학자를 직접 본 소감은 그냥 '싱거움'이었다.

  심포지엄 2부에서 조대엽 교수님이 '운동정치의 제도화와 정당정치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하셨는데, 중간고사 이전의 정치사회학 강의내용와 연결되는 부분이 많았다. 선생님은 이번 촛불시위를 두고 그 긍정성 보다는 우리사회의 정치참여제도가 갖는 결함에 주목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정치참여제도가 잘 갖추어져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이번 쇠고기 협상에 무효를 선언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에서 쇠고기 수입이 이루어진다면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인가. 과연 제도의 보완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담보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 학회는 소위 말하는 소장파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되었는데, 그 창립 목적을 살펴보니 '현실과의 생산적 긴장을 통한 사회의 분석, 탐구 및 미래 전망'이었다. 여기서 긴장이란 기존 학자들의 과도한 현실 개입과 방관자적 태도 사이의 중용적 자세를 의미하는 것 같았는데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현재 진행형인 촛불시위에 대한 학자들의 조급한 분석들을 과연 생산적 긴장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이건 개입도 방관도 아닌 촛불시위라는 따끈한 이슈를 소재로 삼은 운동분석연구의 상품화가 아닐까. 이런 연구에 얼마만큼의 진정성이 녹아들어가 있는가. 왜 교수님들은 직접 촛불시위에 참여하여 여중생들이 '평화시위'보장을 외치고 전경들이 방패로 무고한 시민들을 찍어 내리는 장면들을 포착하지 않을까. 그리고 왜 그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이것은 학자의 몫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과 사회 운동가들의 몫이기 때문인가.

  사회학 가운데 현실과 가장 가까운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정치사회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치사회학자들은 다른 학자들보다도 더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 뭣도 모르는 일개 학부생이지만 '생산적 긴장'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옹졸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p.s 심포지엄이 끝나고 술자리에서 정일준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공부는 끈기있고 노력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머리가 좋고 나쁘고는 중요하지가 않다. 절대량의 독서, 절대량의 고민, 절대량의 대화가 중요하다. 도구로서의 영어를 빨리 정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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