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세계 석학과의 대담] 자본주의 어디로 가나?
 
 
 
한겨레 류재훈 기자 이세영 기자
 



 

» 8
 
지난해 전세계를 휩쓴 금융위기는 1980년대 이후 진행된 투자금융 중심의 자본주의 발전모델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고삐풀린 시장과 자본의 폭주로 특징되는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해를 맞아 <한겨레>는 시장과 국가, 성장과 복지, 국제무역과 통화질서뿐 아니라 환경과 발전, 소득과 분배, 생산과 소비 등 기존 사회질서 곳곳에서 움트고 있는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의 기운을 ‘대전환’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세우려 한다. 한겨레는 크게 2부에 걸쳐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전환의 물결을 독자들과 함께 나눌 예정이다.

우선 제1부에서는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진보적 외국 석학 5명의 진단과 분석을 차례로 싣는다. 첫 문을 여는 주인공은 ‘세계체제론’으로 잘 알려진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명예교수다. 이매뉴얼 교수와 한 대담은 지난달 17일(현지시각) 코네티컷 뉴헤이븐에 있는 예일대 연구실에서 이뤄졌으며, 서재정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 왼쪽부터 이매뉴얼 월러스틴(78) 교수, 서재정(48)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 교수
 

 


이매뉴얼 월러스틴(78) 교수는 16세기 이후 전개된 자본주의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분석한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사회학 석사·박사과정을 마치고 아프리카 식민체제 연구에 몰두하다가 1974년 <근대세계체제론> 1권을 시작으로, 1980년과 1989년 전3권의 대작을 내놓았다. 뉴욕주립대(SUNY) 빙햄턴대학 브로델연구소를 중심으로 ‘세계체제론 학파’라는 새로운 학문 흐름을 일궈냈다.

1976년부터 1999년 은퇴할 때까지 빙햄턴대학 교수를 지냈고, 2000년부터 예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세계체제론> 외에도 <역사적 자본주의>(1983), <미국파워의 쇠퇴>(2003), <유럽의 보편주의>(2006) 등이 있다.


서재정(48)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 교수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국제정세의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 2학년 재학 중 가족 이민으로 미국에 정착한 뒤 시카고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시절 자유로운 독서와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한 관심이 자신을 물리학도에서 정치학도로 변신케 했다고 말한다. 정치학 석·박사 과정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대학원에서 마쳤다.

2000년 코넬대 교수를 거쳐 2007년 7월 존스홉킨스대학으로 옮겼다. 주요 저서로는 <군사동맹에서 파워와 국가이익, 정체성<(Power, Interest and Identity in Military Alliances) (2007)이 있다.

 

서재정 교수(이하 서)=요즘 누구나 ‘위기’를 말한다. 어떤 사람은 금융위기, 어떤 사람은 더 일반적인 경제위기를 얘기한다. 신자유주의의 위기,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 자본주의의 위기란 말도 하고 있다.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월러스틴 교수(이하 월)=우선 위기란 말을 너무 막연하게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상승하던 경기곡선이 하강하는 상황을 위기로 해석한다. 나는 그런 식으로 위기란 말을 쓰진 않는다. 1945년 이후 세계를 보면, 미국이 세계체제 속에서 확실한 헤게모니 국가였던 25년의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에는 세계경제도 역사상 최대의 팽창이 이루졌다.

그러나 미국의 헤게모니는 70년대 이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은 경기순환 관점에서 보면 ‘콘트라티에프 B국면’(50~60년 주기의 경기순환에서 침체국면을 뜻함)에 들어섰다. 경기침체기의 전형적인 특징은 막대한 이윤을 얻던 독점기업의 지위가 다른 기업의 진입으로 흔들리고, 가장 이윤이 높던 산업의 이윤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임금이 좀더 싼 곳으로 산업을 옮기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본을 금융영역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여러 형태의 빚 메커니즘을 통한 투기이다. 또 나는 이것을 ‘실업의 수출’이라고 이른다. 이런 방식으로 1970년대엔 유럽이, 1980년대엔 일본이, 그리고 1990년대 초엔 미국이 성공했다. 하지만 금융투기는 언젠가 터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콘트라티에프 B국면의 막바지 단계에서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최근 밝혀진 매도프의 폰지사기 사건은, 더이상 금융투기로는 이윤을 계속 창출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가장 완벽한 사례이다.


세계경제 영광의 시기
1970년대에 이미 ‘종말’
20~30년내 안정 어려워


서=현재 국면에서 흥미로운 점은 세계경제가 경기순환의 하강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전보다 더욱 심각하게 의문시되는 상황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전 패배 이래 약 30년 동안 쇠퇴를 거듭해왔다. 이후 미국의 여러 행정부들이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이 과정을 역전시키려고 해왔다. 어떤 행정부는 인권외교나 일부 진보적인 조처들을 시도했고, 다른 행정부는 군사력을 확장하는 정책을 펴거나 ‘스타워즈’ 같은 첨단 군사력에 눈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행정부도 이 과정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월=지금 국제 상황은 미국도 돌이킬 수 없는 다극체제다. 아주 복잡하고 혼란스런 상황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른바 금융의 붕괴, 경기 불황에 빠져 있다. 심각한 디플레이션이 이어질 것이다. 4~5년 안에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작동해온 방식이다. 헤게모니의 쇠락에도 새로운 것은 없다.


서=미국 헤게모니의 쇠락과 결합된 장기적인 경기침체는 정상적인 흐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그 자체로 어떻게 되나? 전체 세계체제가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게 불가능할 정도인가?


월=우리는 정상적인 경기 하강국면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위기라는 점에서 앞으로 20~30년 안에 안정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가 사라지고 다른 종류의 세계체제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0년간 썼던 글들에서 수차례 설명한 얘기이지만, 자본이 부담해야 할 세가지 기본 비용은 인적 비용과 투입 비용, 과세 비용이다. 모든 자본가들은 꾸준하게 상승하는 이 세가지 비용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미 비용 부담이 너무 많은 데 반해 생산으로 얻을 수 있는 잉여가치는 너무 줄어든 시점에 이르렀다. 나는 자본주의 체제가 균형 상태에서 과도하게 이탈해 일시적으로라도 다시 균형 상태로 회복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우리는 분기점에 놓여 있다. 자본주의 체제보다 나은 체제나, 또는 더 나쁜 체제를 갖게 될 것이다. 확실한 것은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더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달러·군사력이 지탱해온
미국 헤게모니 함께 붕괴
위기 벗어나기 더 어려워



서=위기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70, 80, 90년대에도 아주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체제의 종말이나 자본주의 종말을 예견하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세계체제는 어려움을 빠져나오는 방법을 찾아냈다. 예를 들어, 70년대 세계경제는 석유 위기를 빠져나오는 방법을 찾았고, 80, 90년대에도 그랬다. 그렇다면, 이번 위기에서 그렇게 되기 어려운 이유는 뭐라고 보나?


월=이번은 아주 힘든 국면이다. 체제 붕괴를 1년이나 10년의 문제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체제 붕괴는 50~80년 걸리는 사안이다.

석유 위기가 발생했을 때에는 미국이 깊이 개입했다. 미국이 그 위기를 부추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1973년 유가 인상을 밀어붙인 두 나라가 사우디와 이란이었는데, 이란의 샤 국왕은 석유수출국기구 가맹국 내에서 가장 친미적인 지도자였다. 유가 인상에 따라 뭉칫돈이 산유국으로 옮겨갔고, 그 돈은 다시 미국 은행에 예치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미국 정부와 소비자들이 위기를 벗어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미국 정부와 소비자 모두 막대한 채무를 지고 있다. 결국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중국 등 다른 국가들과 공생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는 미국이 전적으로 부채에 의존해 살아가는 믿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는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부채란 언젠가는 되갚아야 하는 것이다. 중국이나 노르웨이, 카타르 같은 나라들은 한편으로는 자국 상품을 계속 구매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달러로 투자한 돈의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미국이 지탱하기를 바라는 미묘한 상황이 전개됐다. 결국에는 이들 나라들이 달러에서 서서히 손을 떼면서 달러는 붕괴하고 있다.





 

» 이매뉴얼 월러스틴(78) 교수
 

서=세계경제가 경기순환의 관점에서 콘드라티예프 B국면에 놓여 있는 동시에 위기의 말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이미 말기에 들어섰다고 한다면 지금의 경제위기는 어떤 작용을 하게 되는가.


월=현재 상황은 지난 20~30년간 진행된 과정의 한 부분이다. 과거에도 이런 경기침체는 몇 차례 있었다. 독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선도 산업을 육성하는 게 지금까지 일반적인 위기 탈출 방식이었다. 과거에는 이런 식으로 위기를 벗어났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5년쯤 뒤에 일시적인 회복을 보일 수도 있지만, 앞서 말한 자본의 세가지 비용을 더 상승시킬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오래전 물리학에서는 한 곡선이 점근선(Asymptote)을 따라 올라가 정점의 70~80%까지 도달한 상태에서 갑자기 붕괴를 시작한다는 분석이 있었다. 지금 세계경제는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 상황은 세가지 비용곡선의 70~80% 지점에 와 있고, 엄청나게 요동치고 있다.


자본주의 비용곡선 한계
상대적 회복은 가능해도
문제만 더 키우게 될것


서=미국의 오바마 새 행정부를 어떻게 보나? 오바마는 당신이 자본주의 체제 위기의 핵심요인이라고 주장하는 세가지 비용 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답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전체 임금비용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종의 전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또 오바마의 야심에 찬 재정지출 프로그램은 인프라와 신기술 투자를 통해 투입비용 상승에 제동을 걸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녹색기술에 대한 투자는 높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이로써 오바마는 신자유주의의 폐단을 치유할 뿐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것 같다.


월=세계무대에서 오바마가 가진 힘을 고려했을 때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힘의 중심이 8~10곳으로 분산된 상태에서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제한적이다. 최근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정상회의를 보자.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유럽 각국 대표들을 초청하지 않은 채 중남미와 카리브해 연안 대부분 나라의 대표들이 200여년 만에 처음으로 다 모였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이번 리우정상회의를 통해 미주정상회의를 완전히 격하시켰다. 5년 전엔 생각할 수도 없던 일이다. 오바마는 세계인들의 맘에 들게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미국을 지도국가로 만들 수는 없다. 사람들은 미국이 지도국가가 아니라, 단지 기후변화와 같은 많은 사안에서 협력하는 국가의 하나가 되길 원한다.

오바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미국 내 문제에 머물 것이다. 국내 소요를 막기 위해 사회민주의적인 정책을 펴는 일이 대표적이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다리를 짓는 데 돈을 쓸 것이다. 전국민 의료보험도 시행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국내적이고 지역적인 일이다.


미국의 선택 역시 제한적
오바마 대통령이라 해도
‘지도국가’ 되찾을순 없어


서=우리는 아주 다른 세상을 보고 있다. 브레턴우즈협정 이래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잡아 70년대 위기에서도 살아남았던 달러가 최근 뚜렷하게 약세다. 금융위기는 달러에 대한 믿음을 근본적으로 흔들었고, 어떤 이들은 세계통화로서 달러는 이미 붕괴했다고 얘기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군사적 우위를 지키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군사력은 아무리 기술적으로 정교하더라도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전장에서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 미국의 헤게모니를 지탱해온 두 축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변화가 지정학적 역학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는가?


월=세계 주요 패권국들은 각자가 충분할 정도의 파워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타협을 통해 최상의 조합을 모색하려 할 것이다. 예컨대 ‘상하이협력기구’(SCO) 같은 조합이다. 또 러시아나 중국은 브라질과 중남미 국가들과 은밀하게 거래를 하며 주도권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도 이런 게임을 할 수 있다. 서로 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미국과 동아시아, 유럽과 러시아 등이 가능한 조합이다.


서=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다양한 금융위기 극복방안이 나오고 있고, 국경간 자본거래에 대한 새로운 감독체계도 논의되고 있다. 이런 논의들은 자본주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쟁점은 지금의 세계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역사적 체제다. 이에 대한 논의에서도 크게 둘로 나뉘어 있다. 세계경제의 체제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을 확대하고 국제기구의 감시 기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다른 쪽에선 힘을 지역으로 분산시키고 인간과 자연을 ‘상품화의 사슬’에서 해방시켜야만 민주적이고 평등한 세계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세계체제 대안 논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월=평등한 세상에 대해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0여년 동안 벌어진 논쟁들은 ‘자코뱅’(전위주의)의 시각에서 전개됐다. 이 때문에 모든 게 국가지향적이었고, 또 누구에게나 결과가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을 똑같은 종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려 한 것이다.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다 그랬다. 이제는 이런 자코뱅적 시각이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

두 갈래 전략을 강조하고 싶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덜 나쁜 악’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현재 해야 할 일을 10년, 20년 뒤로 미루기를 원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차악은 있게 마련이다.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건설하려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관심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서 끊임없이 토론하고 협상하고, 통합을 이뤄나가야 한다.

뉴헤이븐(예일대)/정리·사진 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팔순 앞둔 백발의 열정…‘근대세계체제론’ 5권까지 의욕


15년 만에 다시 만난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는 팔순을 앞두고 백발이 더 늘긴 했지만, 여전히 정력적인 열변을 토할 만큼 정정한 모습이었다.

월러스틴 교수는 코네티컷 뉴헤이븐에 위치한 예일대 연구실을 먼저 찾은 기자로부터 <한겨레>의 ‘대전환’ 신년기획에 대한 설명을 듣고 “누구나 듣고 싶어하는 얘기”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자본주의는 이전의 다른 역사적 사회체제처럼 종말의 기로에 서 있으며, 앞으로 20~40년이 새로운 체제를 향한 전환기가 될 것”이라는 지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월러스틴 교수는 지난 1998년부터 3년간 한겨레에 실렸던 자신의 칼럼이 스캔된 한글파일들을 보여주며 한겨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그는 1998년 한겨레 연재와 함께 시작했던 매달 칼럼 쓰기를 바쁜 일정 중에도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

월러스틴 교수는 해마다 겨울엔 3개월씩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고 있는데, 올해 체류기간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연말부터 프랑스 사회과학 고등연구원(EHHSS)의 연구실에서 <근대세계체제론> 제4권의 마지막 장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장기 19세기’를 다루게 될 제4권이 새해 초에 출간되면 1989년 제3권 출판 이후 20년 만에 이뤄지는 업적이다. 월러스틴 교수는 자신할 수는 없지만, 20세기를 다루게 될 제5권도 마무리짓고 싶다는 의욕을 보였다.

그는 또 1985년 한국에서 출간된 <세계체제론>(정진영 편역·나남신서 13)을 보여주면서 절판됐겠지만 사본을 한 권 구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류재훈 특파원

 


☞ 월러스틴 교수의 ‘세계체제론’


이매뉴얼 월러스틴 교수의 원래 관심 분야는 미국 정치였다. 미국 정치에서 ‘인종’이란 변수가 갖는 중요성을 인식한 뒤 아프리카 지역 연구에 뛰어들었고, 다시 근대 아프리카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유럽 세계경제’의 역사로 관심을 확장시켰다. 그 결과물로 나온 책이 대표작 <근대세계체제> 시리즈이다. ‘세계체제론’이라는 그의 독창적 분석틀이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월러스틴 교수에 따르면 사회과학은 ‘부분들의 총체’인 ‘체제’를 분석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체제란 두 가지 기준에 의해 개념화된다. 우선 그 안에서의 생활이 자기충족적이어야 하며, 발전의 동인이 내생적이어야 한다. 오늘날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오직 ‘세계체제’뿐이다. 따라서 사회과학은 지역사회나 주권국가가 아닌, 세계체제를 학문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그는 세계체제의 여러 유형 중에서도 16세기 유럽에서 출현한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주된 관심 대상으로 삼았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주변부-반주변부-핵심부’라는 지리적·위계적인 분업구조로 이뤄졌는데, 이 안에서 작동하는 주기적 파동과 장기적 추세가 체제를 팽창시킨다. 오늘날의 세계경제는 유럽에서 시작된 자본주의가 19세기 말 그 경계와 세력권을 전지구적 규모로 확장시킨 결과라는 게 월러스틴 교수의 분석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영속하는 체제가 아니며, 탄생·확장·종말이라는 생애주기를 갖는 ‘역사적 체제’라고 월러스틴 교수는 본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언젠가 다른 체제로 대체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 중요한 것은 지금의 자본주의가 ‘존재의 가을’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요컨대 체제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조정비용이 지나치게 커져 그것을 평형상태에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을 월러스틴 교수는 △지리적 팽창의 완성에 따른 저임금 노동력 풀(pool)의 소진 △계급투쟁에 따른 체제불균형의 증대 △경제적 압박에 따른 정치적 정당화의 위기 등에서 찾는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탁구공에 울고 웃고’…국제중 신입생 추첨 현장


기사입력 2008-12-26 17:28 |최종수정2008-12-26 20:58 


[쿠키 사회] 26일 오전 10시반 서울 중곡동 대원중학교 6층 강당은 국제중 일반전형 입학생 최종 선발을 기다리는 317명의 학생과 그 학부모들로 가득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학부모들은 저마다 옆에 앉은 자녀의 몸을 감싸거나 손을 쥐고 낮은 목소리로 안심시켰다.

"괜찮아. 긴장하지 마. 추첨이지만 열심히 준비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추첨은 오전 11시20분쯤 이 학교 김일형 교장이 경찰관과 함께 밀실에 들어가 흰색, 녹색, 귤색 등 세 가지 색깔의 탁구공 중에서 하나를 고른 뒤 시작됐다. 학생들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차례로 단상에 올라가 상자 속에서 공을 뽑았다. 600여명이 줄지어 움직였지만 강당은 구두굽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1시간20분 뒤 모든 학생이 공을 뽑아 들고 자리에 앉자 김 교장은 별도의 상자에 감춰뒀던 공을 꺼내들었다.

"귤색이다!"

귤색 공을 가지고 있던 106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곳곳에서 폴짝 폴짝 뛰어오르며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 흰색이나 녹색 공을 뽑아든 학생과 부모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한숨을 내뱉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학생은 울음을 터뜨렸고 그들의 부모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괜찮으니 울지 말라"며 다독였다.

서울 미아동 영훈중에서도 추첨으로 내년도 입학생이 가려졌다. 영훈중은 '합격'을 뜻하는 붉은색 구슬과 나무 구슬을 각각 포장해 상자에 넣은 뒤 학생이 하나씩 뽑아 그 자리에서 열어 보도록 했다. 즉석에서 희비가 갈리자 학부모들은 자녀의 당락 여부와 상관 없이 선발 방식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대원중 김 교장은 "어쩔 수 없이 실시한 추첨이지만 이런 방법은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는데다 실력이 아닌 운으로 당락이 갈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며 "앞으로 서울시교육청과 선발 방식 개선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노란 탁구공을 손에 쥐고 환호성을 지르는 학부모와 어린 학생들, 광신도 집회현장을 방불케 한다. 사실 '추첨'이야 말로 가장 공평한 학생 선발방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선발 방식이 과연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국제중학교 관계자들은 좀 더 경제력 있는 부모를 두고 있고, 더 많은 선행학습으로 무장된 아이들을 원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학교의 유일한 운영 원리이자 목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들을 받아야 민사고, 외고, 과학고와 같은 소위 '명문고'에 많이 진학시킬 수 있고, 이렇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만 국제중은 지속적으로 그들의 지위와 부를 재생산해 낼 수 있다.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의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학벌사회'의 문제부터 시작하여, 강남 대 강북의 교육격차,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교육격차,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좌편향 논란, 일제고사와 전교조 교사 파면 그리고 국제중 문제 등 너무 많아서 하나 하나 다 나열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은 그 근본 원인이 정확하게 하나의 논리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대게 논란의 핵심은 '경쟁교육' 대 '평등교육'에 있다.

'경쟁', '경쟁력' 하루에도 수 십번이 넘게 듣는 친숙한 단어이다. 박정희정권 시절의 화두였던 '수출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의 확보를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감내해야 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학생들도 '교육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의 논리 아래 많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경쟁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악'이 될 수는 없다. 만약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가 진보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경쟁이 역사발전의 중요한 추동력 중 하나였다는 것을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시작으로 한때 전 세계의 절반을 붉은 깃발로 뒤덮었던 사회주의의 물결이 하나의 거대한 실험으로 막을 내린 것만을 보더라도 경쟁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경쟁은 인간의 잠재력을 무한히 끌어올리기도 하고 그들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잘못된 경쟁으로 인한 악영향은 경쟁의 순기능을 상쇄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끔직한 전쟁들... 이권과 패권 다툼... 모두 경쟁의 어두운 면들이다. 

대한민국의 교육의 현주소는 경쟁의 부작용에 있다. 식상하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잘나간다는 대학이 세계 대학들과는 경합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과, 중고등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다른 OECD국가에 비해 매우 높지만 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기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경쟁이라고 하는 도구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16일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떠한 13명의 학생들을 말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면당한 유현초등학교의 설은주 선생님은 잘못된 경쟁체제의 희생물이었다. 초등학생까지 일렬로 줄세우기 하는 것을 과연 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맞춤법, 산수... 물론 중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일제고사 시행으로 인한 학생들의 의욕상실과 좌절감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일제고사 시행으로 사교육은 늘어만 갈 것이고 어린 나이에 학원에서 늦게까지 특강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의 머리에서 과연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을까. 게다가 온갖 비리로 얼룩진 공정택 교육감은 저렇게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설은주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선택권과 자율권을 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해직이라니...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 할 수 없는 일이다. 

대학 평준화를 이야기하고 고교 평준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경쟁을 배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경쟁의 순기능을 극대화 하려는 행위이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 하였던 '경쟁교육' 대 '평등교육'의 대결 구도는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를 지니고 있다. 경쟁과 평등은 언제나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진보진영에서 이야기 하는 교육 정책에 100% 공감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교육시스템이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에는 의견을 같이 한다.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정말 생각도 많고 할 말도 많은데 머리가 복잡해서 생각만큼 잘 정리가 되질 않는다. 아무튼, 설은주 선생님이 다시 아이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땅이름과 역사] 14. 서울 종로

주간한국 / 2000년 3월 8일

조선조 초 정도전(鄭道傳)은 한양 천도의 건설을 맡으면서 한양의 성문과 중앙의 종루(鐘樓) 이름을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 즉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의 오행(五行)을 따서 붙였다.

그래서 종루(오늘날 서울 동서 관통도로의 축인 종로)를 중심으로 동쪽엔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엔 돈의문(敦義門), 남쪽엔 숭례문(崇禮門), 북쪽엔 숙정문(肅靖門)을, 그러나 숙정문 대신에 홍지문(弘智門)을 세우고 도시 중앙에 보신각(普信閣)을 세워 인 의 예 지 신과 일치시켰다.

특히 보신각엔 큰 종을 달아 놓아 도성의 긴급 사태 발생 때나 치안 유지를 위해 종을 쳐 성문을 여닫게 했던 것. 그래서 도심의 중앙인 보신각(오늘날 종로2가) 일대에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이 일대를 두고 ‘한 저자’(大市) 또는 ‘한 거리’(大街)라 하다가 통행 금지가 해체되는 파루(罷漏:새벽 4시)때부터 통금이 시작되는 인정(人定:밤 10시) 때까지 사람의 모임과 흩어짐이 마치 구름 같다 하여 세종(世宗)때부터는 운종가(雲從街)라 했다. 그뒤 운종가는 종루가 있는 거리, 즉 종로(鐘路)라 하였다.

당시의 사람들은 ‘인정 소리’를 변음, ‘인경 소리’라 했고 통행 금지 위반자 처벌은 매우 엄하여 그 위반 시각에 따라 처벌이 각각 달랐다. 파루는 새벽 4시쯤에 33번 치는데 이때 모든 성문이 열리고 또 밤 10시께 인정을 28번 치면 통행이 금지되었다. 이를 어기면 경수소에서 하룻밤 잡혀 있게 되는데 이때쯤 곧 시간이 바뀌는 11시, 1시, 3시에 통금위반자로 하여금 북을 치게 하였으므로 ‘경을 칠 놈’이란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

여기서 나오는 ‘28’이란 숫자는 하늘의 별자리를 28수(宿)로 나누기 때문이며 ‘33’은 불교에서는 말하는 도리천(刀利天:욕계(慾界) 6천(天)의 둘째 하늘. 수미산 꼭데기에 있는데 중앙에 제석천(帝釋天)이 거처하고 그 사방에 8천씩 도합 33천이 됨), 곧 33천을 뜻한다.

조선 철종 때의 기인이자 시인이었던 정수동(鄭壽銅)이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인정을 쳐서 통행 금지에 꼼짝없이 걸리게 되었다. 골목길에서 순라꾼과 맞부딪히자 다급하게 된 정수동이 담벽에 팔을 짝 벌리고 붙어섰다.

순라꾼이 ‘누구냐’고 묻자 ‘나는 빨래요’하였다. ‘빨래가 어떻게 말을 하는가’라고 하자 ‘하도 급해서 옷을 입은 채 빨아서 이렇게 되었소’라고 하였더니 순라꾼은 낄낄 웃으면서 지나쳐 버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종로에는 교통도 발달했을 뿐더러 능참 행렬, 종묘 참배, 선농단 제례 등 고관들이 행차 또한 잦았던지라 민초들은 그 행렬 때문에 땅에 머리를 박고 있어야 할 판. 그래서 고관의 행차때 마다 종로길을 피해 뒷골목으로 다녔으니 그 길을 일러 파맛길(避馬道)이라 했다.

또한 종로 부근에는 육의전(六矣廛)을 비롯 37개의 시전이 있어 아무데서나 상행위를 못하게 단속했다. 간혹 물건을 파는 상점이 생기기라도 하면 관에서 이속(吏屬)들이 나와 난전을 때려 부쉈기에 ‘난전 치듯 한다’는 말이 이때 생긴 것이다.

인경소리 아스라 하던 그 종로엔 지금 새로운 보신각 종루가 서 있고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모이고 흩어지던 운종가(종로)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최장집 교수 “100일 정권이 퇴진하는 사태 올 수도”
입력: 2008년 06월 11일 01:30:50
 
ㆍ시민이 할 일은 다했다…이젠 정치권이 나서길

10일 밤 최장집 교수가 서울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100만 촛불대행진을 지켜보고 있다.        우철훈기자

“동서를 통틀어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나라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시위 인파가 거리로 나오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10일 오후 8시 광화문 사거리 부근 코리아나호텔 앞의 시위 군중 틈에서 만난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65)는 “6월 항쟁을 훨씬 넘어서는 규모”라며 놀라는 모습이었다.

최 교수는 오후 7시쯤 제자들과 함께 시위에 합류했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의 68년 5월은 혁명적 사태가 전개된 측면이 있다고 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그와는 다른 의미에서 뜨거운 목소리와 함께 질서있고 평화적이며 냉정한 분위기가 조화된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세계적으로도 민주화됐다고 평가 받는 국가에서, 어째서 100일밖에 안된 정부에 대해 이 정도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수 있는지 민주주의사적으로도 연구할 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민주화는 20년 전에 이뤄냈지만 아직도 보수정당이 집권해 민주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통치 방식은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것으로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아야 하고 그것이 정치적인 결과로 표현돼야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이번 집회의 가장 큰 의의로 시민들이 민주화라는 큰 얘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 경제적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았다.

“그간 우리 정당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시민들의 사회 경제적 요구에 반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과격하게 폈지만 시민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번 사태로 시민들이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 첨예한 관심을 갖고 개입하기 시작했음이 분명해지면서 정당들은 이러한 구체적인 요구에 관심을 갖고 정책을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전환의 계기에 처했습니다. 이젠 진보와 보수 정당이 분명히 차이를 갖고 시민들의 요구에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관련, 운동의 에너지를 정당제도로 수렴해야 한다는 논의를 주도해온 최 교수는 이번 시위에 대해서도 “거리의 정치는 오늘 이 선에서 그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했다고 봅니다. 이 문제는 ‘끝이 없는 시위’가 아니라 제도권 내 정당이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정치를 통해 풀어야지 이 단계를 넘어서는 시위가 계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최 교수는 “21년 전처럼 독재정부에서 민주정부로 정치체제를 변화시킨다든가, 지금처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쇠고기 문제 등 거대 이슈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규모로 거리에 나와 ‘이건 안된다’고 말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가능하다”며 “하지만 섬세한 대안을 만들어 내는 일에는 ‘거리의 정치’만으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제는 정치권이 나서서 전체 공익에 부응하는 제도 조건에서 선택할 대안, 현실적 대안을 만들어낼 단계가 됐다”는 얘기였다.

그는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청와대에 대해서는 “내각과 청와대 보좌진이 총사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람들을 바꿔서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정책 기조 전반에 대한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간 시민들의 요구를 전혀 들으려 하지 않던 태도를 버리고 이들의 구체적인 요구에 어떻게 반응하고, 목소리를 담아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100일도 안된 정권이 정말로 퇴진하는 세계사적인 기록을 세울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국회에 대해서는 “어째서 지금 사태에서 정당이 전혀 보이지 않는지 참담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까 지나가다 보니 통합민주당 등 야당은 군중의 한 부분으로 앉아있더군요. 정말 참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당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다양한 시민들의 소리를 적극 반영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온 것 아닌가요.”

그는 여당보다 야당에 대해 더욱 신랄했다. “수가 적다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단 몇 사람이라도 좋으니 제대로 된 대안을 갖고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제시하고 요구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아주 얘기도 안하고 시민들 집회만 따라나와 있는 일이 반복되면 보수정당 체제만 강화되는 일이 쳇바퀴 돌 듯 이어지는 결과를 허용할 뿐입니다.”

여당에 대해서는 “다수당이라고 해서 야당의 대안 제시를 무시할 것이 아니라 집권당으로서 더 책임감을 느끼고 시민들의 이 거대한 요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해 해결책을 찾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해서는 “촛불집회가 지금까지도 시민사회 단체들이 많이 개입한 운동은 아니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자제하고 정치권을 끝없이 압박하면서 지켜보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이 이제는 숨을 고르고 지켜봐야 한다”는 제안에 다시 한 번 단서를 달았다. “내가 시민들에게 여기서 자제해야 된다고 하는 뜻은 이런 것입니다. 시민들이 숨 고르고 있는 사이 이명박 정부가 여론이 사그라들고 이렇게 그냥 넘어간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때야말로 이 정부는 존립 자체를 진지하게 걱정하는 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손제민기자>

 

나는 이번 광우병 사태를 통해 한국 제도민주주의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본다. 사실 지난 정권에서도 제도민주주의의 한계는 뚜렸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과는 달리 이명박 정권이 집권 초기에 이토록 수세에 몰리는 이유는 한계를 감추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권위주의적이고 국민과의 쌍방향 소통을 차단한 채 일방적으로 국정운영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촛불시위가 어떻게 진행이 될 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된다. 정부가 정신을 차리고 재협상을 하겠다고 나오면 좋겠지만, 하는 꼬라지를 보니 내각과 청와대 수석 개편안만을 내놓고 재협상은 못하겠다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데 안쓰럽다.

나는 이번 광우병 사태를 통해 형성된 국민들의 에너지를 이번 사안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치적 지형을 바꾸는데 써야 한다고 본다. 사실 우리는 제도민주주의의 한계를 이야기 하기 전에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성숙되어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87년 이후로 꾸준히 추락하는 투표율, 여전히 갈 길이 먼 정당정치, 정부와 의회의 원활하지 못한 소통 등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촛불시위에 꼽사리 끼려는 민주당 의원들의 엉덩이 부터 차고 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사넌센스] 영혼 없는 유령이 배회한다

▣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유령 하나가 반도 남쪽을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재주는 영혼 없는(혹은 없도록 강요받는) 무리들을 홀리는 것. 유령은 모든 걸 바꾸라며 피리를 분다. 그리고 반도 남쪽은 가락에 맞춰 춤을 춘다. 행정안전부는 이전 정부의 훈령과 지침 등을 한꺼번에 폐지하기로 했고, 교육과학부는 ‘좌편향된’ 사회·역사 교과서를 바꾸기 위한 검토에 착수했다. 13세기 독일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약속을 위반한 위정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피리 소리로 마을 아이들을 꼬드겨 데려갔다. 반면 21세기 반도 남쪽 유령의 피리 가락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복수가 목적이다. 잃어버린 10년을 찾기 위함인가. 유령은 세계 최장 노동시간으로도 모자라 ‘일찍 일어나는 새’ 바람까지 일으킨다. 순진하게 ‘피리 사내’를 뒤따랐던 아이들은 지금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유령이 데려갔나. 두 명의 이주노동자가 반도 남쪽에서 사라졌다. 5월15일 저녁 8시50분 인천공항. 서울·경기·인천 지역 이주노조의 토르너 림부(네팔) 위원장과 압두스 사부르(방글라데시) 부위원장은 방콕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졌다.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원들에게 붙잡혀 청주보호소에 감금된 지 13일 만이다. 지난해 11월 단속된 당시 지도부 3명이 인권위에 진정을 내고도 강제 출국당한 아픈 경험이 있는 이주노조는 이번엔 더 다급하게 인권위에 긴급구제 신청을 한 터였다. 이날 오전 국가인권위원회는 표적 단속으로 이들의 인권이 침해됐는지를 가리기 위해 강제 출국을 유예하라는 긴급구제 결정을 내렸으나 소용없었다. 이쯤에서, 영혼 없는 유령이라도 품음직한 의문이 든다. (1) 이주노조 합법화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21만여 미신고 이주노동자 가운데 하필 지도부 두명만 단속·감금되고 강제 출국당한 까닭은? 참고로, 서울고법은 지난해 2월 서울지방노동청이 이주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건 부당하다며 신고필증을 내주라고 판결했다. (2) 정부 합동단속 이틀 만에 10여 명의 단속반원이 집 앞에 잠복하다 이들을 붙잡은 건 표적 단속일까, 아닐까? 국제앰네스티는 이번 사건을 이렇게 규정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호하는 기본적 노동권과 결사의 자유를 그들에게서 박탈하고, 전체 이주노동자들이 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려는 정부의 시도”라고.

반도 남쪽과 프랑스의 차이는 뭘까. 두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사라진 그날, 프랑스에선 5만여 명(주최 쪽 주장, 경찰 발표는 1만8천여 명)의 교사와 10대 고등학생들이 파리 시내를 관통하는 시위를 벌였다. 공공 지출을 줄이기 위해 교원을 대폭 감축하려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나라 학교의 학생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사와 교감들이 학생의 시위 참가를 막으러 나섰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다음날 서울시교육청은 중·고교 교감 670명과 장학사 222명 등 892명을 5월17일 촛불집회 현장에 내보내 학생지도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령이 보기에 학생부 교사들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경찰의 정보과 형사는 집회를 신고했다가 취소한 전주의 한 고등학생을 수업 중 불러내 겁주고, 임기를 보장받은 경찰청장도 시위대 겁주기에 여념이 없다. 카를 마르크스가 이 광경을 봤다면 이랬을까?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과 반도 남쪽의 인권을 걱정하는 촛불들이여, 단결하라. 잃을 건 사슬뿐이요, 얻을 건 세상이니.”

 

이주노조 토르너 림부 위원장이 결국은 강제 추방을 당하였다. 새로 들어서는 위원장마다 어김 없이 강제 추방이라니 이렇게 잔혹한 탄압이 또 어디에 있는가.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면서도 그들의 권리는 조금도 보장해 주려하지 않는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태도가 정말 더럽다. 이번 사건으로 이주노조 운동이 주춤하게 될까 걱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