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치고 율린이 형과 동대문에 다녀왔다. 형이 내일 중요한 소개팅이 있는데 마땅히 입고 나갈 옷이 없다는거다. 알맹이가 중요하지 껍데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소개팅을 주선해준 친구 체면도 있는 것이고 처음 만나는 이성에게 최대한 멋지게 보이고 싶은 욕망은 건강한 본능이니까 뭐... 아무튼 이러한 연유로 형의 새 옷 장만에 들러리로 나서게 되었다.

  정말이지 오랜만의 동대문이었다. 평소같았으면 많은 인파로 복작거렸을 거리가 오늘은 한산하였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거리는 쓸쓸한데 텅 빈 동대문 운동장의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시려왔다. 명품 문화 도시 서울에 더 이상의 풍물시장은 존재하지 않겠지...

  평소에 패션과는 거리가 먼 두 남자였기에, 옷 고르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특히나 감정에 호소하는 호객행위를 뿌리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좀 더 둘러보고 다시 올게요'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결국은 둘러보고 다시 오겠다던 가게에서 옷들을 샀다. 현찰박치기를 한 덕분에 그럭저럭 흥정은 되었다.

  요즘 내가 외롭다 보니, 간만에 들어온 소개팅에 과도하게 들떠있는 형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혼란할진데, 사랑없이 꾿꾿하게 버티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 있는 것들을 보라

사랑하라

놓지 마라

- 더글러스 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