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펜재(Giffen goods)는 열등재의 하나로서 소득이 증가할 때 그 수요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다. 이러한 기펜재가 다른 열등재와 다른 점은 수요가 줄어드는 폭이 매우 커서(대체 효과보가 소득 효과가 크기 때문) 가격이 하락할 때 수요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많이 소비해야만 하는 재화이고 이 재화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재화에 대한 강한 욕구가 존재 할 경우 이 재화는 기펜재일 가능성이 높다. 가난하던 시절의 ‘보리’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보리는 사람들이 많이 수요해야만 하는 필수 식품이었다. 보리밥이 먹기 싫더라도 살기 위해서는 보리를 섭취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보리의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금에 여유가 생기게 되고 결국 보리의 수요를 줄이면서 흰 쌀을 구매하게 된다. 보릿고개를 경험했던 어르신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옛날에는 흰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어......”
 
  현재 한국사회에서 기펜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재화 혹은 서비스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학원교육’ 서비스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원교육의 수요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고등학생의 80%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에서 수도권 대학, 더 나아가 명문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교육의 힘을 빌어야만 내신이든 수능이든 논술이든 고득점을 할 수 있는 평가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 사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은 고등학생 뿐 만이 아니다. 특목고에 진학하기 위해서, 국제중에 진학하기 위해서, 사립 초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초, 중, 고교 학생들과 심지어 유치원생들마저도 학원교육은 피해갈 수 없는 하나의 관문이다. 일제고사를 통해 끊임없이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작금의 현실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사교육이 번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모든 부모들은 가계 소득에서 학원교육비를 고정 지출항목으로 잡고 있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로 갑자기 학원 수강료가 낮아졌다고 생각해 보자. 학원 수강료가 낮아지게 되면 부모들은 고정 지출이 줄어들게 되어 주머니 사정이 여유로워지게 되고,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그러나 언제나 갈망해 왔던 ‘1:1 개인 과외’에 눈을 돌리게 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여러 명의 학생을 한 교실에 몰아넣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학원교육에 비해 값이 더 비싸더라도 선생님과 일대일로 소통하며 공부할 수 있는 과외교육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보통 학생들은 한 개의 학원만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두세 개 많게는 네다섯 개의 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전반적인 학원수강료의 하락은 학원교육 수요의 감소와 함께 과외교육 수요를 늘이게 된다. 즉, 학원교육은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수요가 줄어드는 전형적인 기펜재인 것이다. 전혀 다를 것 같이 보인 ‘흰 쌀’과 ‘과외교육’이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부모들의 푸념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 아들 딸, 좋은 선생님한테 제대로 된 과외 한 번 시켜봤으면......”
 
  기펜재에 해당하는 재화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자. 명품을 싫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들만큼 명품을 좋아하고 명품에 열을 올리는 국민들은 아마 일본 사람이나 홍콩 사람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을 것 같다. 명품은 위에서 예로 들었던 ‘보리’나 ‘학원교육’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나 기펜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이 명품을 선호하는 이유 무엇일까. 명품을 소비함으로 인해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는 ‘구별 짓기’ 전략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배기량이 더 큰 차를 선호하고, 평수가 더 넓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차별화된 문화자본을 소비함으로서 자신이 더 높은 계층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만큼 사람들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명품을 핸드백을 손에 들고 큰 차를 타고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이 사뭇 달라진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로 명품의 가격이 하락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제 사람들은 저가의 명품(더 이상 명품이 아니지만)을 더 이상 구별 짓기의 도구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명품이 비싸지 않고 희소성이 없다면 더 이상 사람들이 부러움과 시샘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명품의 수요는 감소하게 된다. 물론 가격의 하락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명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품질이 크게 뛰어나지 않음에도 단지 ‘이름 값’ 때문에 가격이 높았던 명품이라면 가격이 하락한다고 해서 새로운 구매자들이 갑자기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구매자들이 생기지 않고 기존의 구매자들이 이탈한다면 명품의 전체 수요는 결국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에서 판매되는 일부 명품들은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수요가 감소하는 기펜재라고 할 수 있겠다.
 
  기펜재는 그 사회의 성격에 따라 규정이 된다. 과거에는 기펜재가 될 수 있었던 보리가 더 이상 기펜재가 아닌 것과, 학원교육이 프랑스에서는 기펜재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펜재를 가지고 사회의 성숙도를 평가하는 것이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적어도 학원교육과 명품이 더 이상 기펜재로 분류되지 않는 사회가 좀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제 레포트로 작성한 기펜재의 예시이다.
나름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가?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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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d 2009-12-0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못 알고 계신 것 같네요
먼저 학원비가 내려가게 될 경우 소득효과에 의해서 소비자는 자신의 구매력이 높아졌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과외와 학원을 모두 늘리려고 하겠죠.
반면 대체효과에 의해 과외를 줄이고 상대가격이 저렴해진 학원을 더 많이 다니게 될 것이므로 결론적으로 학원 가격 하락에 따라 학원 수요는 증가하게 되고, 소득효과와 대체효과 중 어느 효과가 더 크냐에 따라 과외의 수요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명품은 기펜제가 아니라 위풍재라고 합니다..
 

제1부. 신자유주의 이전

1장. 2차 대전 직후

1. 전쟁이 끝나고

  전쟁이 발발하면 많은 것들이 파괴되지만 동시에 군수산업의 확장으로, 통계수치로만 본다면 산업시설의 수는 전쟁 전후의 차이가 크지 않다. 노동인구도 마찬가지로 전후에 줄어들지 않는다.
 
   유럽과 일본의 경우 전후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힘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세졌다. 전쟁 동안 완전고용이 달성되면서 자연스럽게 힘이 강해진 것이다. 패전국과 승전국에서 모두 노동자들의 힘이 커졌는데,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의 경우 전쟁 중 자본가들이 파시스트 정부에 협조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권위를 상실하였고, 프랑스의 경우 노동자들이 레지스탕스 활동을 주도하는 등 그 활약이 누부셨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결하였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전쟁 직후 좌파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였는데, 영국의 경우 1945년 7월 총선거를 통해 노동당이 정권을 차지하였다. 노동당이 들어서자  영국은 국민보험, 의료제도를 확대하고 주요 산업을 국유화 하는 등 사회복지정책을 확대하였다.
 
  전후 동유럽 국가들(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루마니아, 헝가리 등)에 소련군이 진주를 했고, 그 결과 사회주의체제가 수립이 된다. 이는 서유럽 좌파세력의 입지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2. 식민지의 독립

  서구 제국주의 세력은 17세기 초부터 아시아로 진출하여 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았고, 이들끼리 식민지 쟁탈전을 벌인다. 양차 세계대전도 이러한 식민지 쟁탈전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시아의 여러 식민지를 잃게 된다. 이로서 식민지 초과이윤이 사라지고, 국내 노동자들의 힘이 커진데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위협으로 부르주아들의 자본주의 재편은 불투명해졌다.

3. 미국의 헤게모니 장악

  전쟁을 통해 가장 이득을 본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헤게모니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 세계 금의 60%가 미국으로 집중된다. 미국은 무기를 생산하여 영국 등 서유럽 국가들에게 금을 받고 팔았다. 이들이 금을 내놓은 이유는, 전쟁시 정부가 필요한 물자를 대규모로 동원하기 위해 화폐를 대량으로 찍어내는데 이로 인해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화폐가치가 급락하여 자국의 화폐를 외국으로 유통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군수물자의 판매를 통해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생산력은 더욱 향상된다. 둘째, 강성 노조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국내적으로 계급 갈등을 미리 봉쇄할 수 있었다. 1946년에 들어서면서 노조는 전투성을 상실하고, 이는 타협적 노사관계의 전형이 된다. 셋째, 미국은 결국 2차 대전 후반에 참전하여 승리를 거둠으로써 국제관계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였다. 넷째, 미국 본토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전쟁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전 후 19세기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잡았던 영국과 20세기 떠오르는 헤게모니 국가 미국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국제경제질서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데 미국이 주도권을 잡는다.
  미국의 영향력 하에 브레튼우즈 기구들(IMF, 세계은행, GATT)이 만들어지고 운영이 되었으며, 이 기구들에 의해 좌우된 세계경제체제를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부른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 미국의 화폐, 달러는 국제통화, 곧 기축통화가 되고, 달러와 금의 교환 비율(금 1온스 = $35)을 일정하게 유지하겠다고 미국은 약속하고 고정환율을 유지한다.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달러를 공급해줄 외부기관이 필요했고, IMF가 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IMF는 국제수지 적자를 보는 나라에 계속 돈을 대줄 수 없었고 '긴축재정'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는 국제수지 불균형에 대한 책임을 적자국이 맡아야 한다는 미국의 논리를 보여준다. 미국은 자신의 유일 헤게모니를 바탕으로 브레튼우즈 기구를 만들고 세계경제를 이끌어나간 것이다.

  미국이 유럽을 지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마샬플랜의 실행과 그 목적을 통해 알 수 있다. 마샬플랜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럽경제를 확실하게 되살림으로써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축적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다. 둘째, 유럽경제의 회복을 통해 서유럽 부르주아들이 훨씬 수월하게 자신의 나라를 '자본주의'적으로 안착시킬수 있다. 이로 인해 서유럽은 동유럽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 동시에 자국의 좌파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셋째, 미국의 돈이 흘러들러가는 것은 미국식 생산방식과 제도를 유럽으로 전파하여 미국 헤게모니를 구축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마샬플랜을 통해 노동자들의 활력이 부분적으로 상실되고, 혁명의 전망이 사라지게 된다.

  미국은 자국 자본에 대한 미래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 일본의 재벌의 해체한다. 그러나 1947년 미국이 트루만 독트린을 발표하고 '냉전정책'을 수행하기 시작하며 1949년 10월 중국의 혁명이 성공함게 따라 아시아에서의 사회주의확장을 걱정하게 된다. 사회주의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 경제를 부흥시키려고 하는 차에, 1950년 6월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군수산업기지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게 된다. 그 결과로 1951년이 되자 일본은 이미 2차 대전 이전과 같은 수준의 생산력을 회복하게 된다.

2장. 호황기 : 50-60년대

1. 황금기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1950년대를 지나면서 엄청난 호황을 맞이한다.

2. 아메리카 헤게모니

  전후 유럽 국가들은 외환 보유에 골몰하게 되는데, 1948-1952년 미국은 마샬플랜을 통하여 유럽에 많은 자금을 지원한다. 52년까지는 마샬플랜의 명목 하에 달러 원조가 진행된 반면, 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달러 원조는 군사적 성격을 띤다. 이러한 미국의 군비지원으로 인해 유럽과 일본은 급격한 생산력 회복이 가능하였다. 
  미국의 지원은 자본주의 체체 유지를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진다. 당시 '냉전'은 군산복합체의 요구를 보장해주는 적합한 정세였다.
  군사력에 의해 뒷받침된 미국 헤게모니는 서유럽과 일본에 자본주의 시스템을 전파한다.(포드주의, 케인즈주의, 코포라티즘)

3. 호황기 서유럽과 미국의 특징

  테일러주의는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테일러주의는 노동과정들이 표준적 방법으로 정리되고 노동분업을 통해 효율성이 높아지는 시스템이다. 테일러주의를 통해 '구상과 실행의 분리'가 일어나는데 노동과정을 노동자 자신이 관리하던 것에서 벗어나 자본가들이 관리하기 시작한다.
  테일러주의는 포드주의 시스템이 출현하면서 확산되는데, 테일러주의에 컨베이어벨트가 결합되어 과학적 노동분업 원리가 확실하게 도입이 되고 '대량생산'의 시대가 열린다. 포드주의는 전쟁 전 주로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는데 전후 유럽과 일본에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된다. 포드주의의 결과로 반숙련 혹은 비숙련 노동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노동생산성이 증가하고,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하락하며,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의 산별노조는 자본가들에게 협조하게 된다. 미국식 노자관계는 이렇게 해서 황금기동안 흔히 코포라티즘이라고 불리는 유럽 노자관계의 기초가 된다.

  케인즈 경제학을 이전의 고전학파 경제학과 구분해 '거시경제학'이라고 부른다. 고전학파의 경제사상은 신자유주의와 매우 흡사하다. 이들의 논리는 가격은 언제나 매우 신축적으로 운동하여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고,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세이의 법칙)는데 있다. 그러나 대공황이 발생하자 과잉공급에 수요는 창출되지 않고 대량의 실업이 발생하게 된다. 케인즈는 이를 총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을 통한 정부의 유효수요 창출을 강조하였다. 케인즈 경제학은 2차 대전에 영국에서 탄생하지만 본격적으로 채택된 것은 미국 헤게모니가 유럽과 일본에 관철되고 나서이다.

4. 동아시아 지역의 상황

  전후 일본의 자본주의를 복구하고 경제를 급격히 성장하게 한 배경은 한국전쟁이다. 이는 마치 서유럽의 마샬플랜과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일본은 국가 주도로 조선, 철강, 자동차 같은 부문을 핵심적으로 육성하였고, 정부에 의해 철저히 국내시장을 보호하였다. 또한 노조도 통제하였는데, 50년대 일본이 한참 호황을 누릴 때 전투적 노동조합이 사라지게 된다.

  미국은 50년대 내내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의 사회주의화를 막기 위해 원조를 실시한다. 그러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 근대화 작업에 착수한다. 박정희 정권이 추진했던 근대화는 이러한 미국의 전략 수정이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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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대한민국 10대와 20대, 그들의 운명

1장. 첫 섹스의 경제학 :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

  나이 스물 넷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고, 대학 등록금은 부모님이 해결해 주시며, 그것도 모자라 매달 꼬박꼬박 용돈까지 주신다는 나의 말에 미국인들은 깜짝 놀라곤 한다. 그러면서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 젊은이들은 정말 어린 아이들 같다. 너무 부모 의존적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만약 그 나이에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상태라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맞는 말이다. 서유럽 선진국가나 유럽의 젊은이들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부모의 품으로 부터 떠나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우리 젊은이들은 더욱 부모에게 의존한다. 그러나 이것이 국민성의 문제일 수는 없다. 우리가 부모로 부터 해방될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선진국들과는 '경제 구조' 자체가 다른 것이다.

  프랑스에서 16세 소녀가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소년을 만나 동거를 선언했다고 가정해 보자. 사실 16세란 나이는 서양에서도 동거하기에는 아직 이른 나이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부모는 딸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할 것이고, 신중한 토론을 거친 후에도 딸의 마음이 확고하다면 '축복'으로 결론을 내릴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 한국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해 보자.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부모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그리고 그 딸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지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가 프랑스의 부모들과 한국의 부모들이 자식을 사랑하는 정도의 차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에서는 10대 소녀가 동거를 유지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살 집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결혼을 하고 정규직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전체 국민의 50%가 자기 집이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독립을 위한 20대의 주거공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대학 등록금 또한 20대의 독립을 막는 큰 요인 중 하나이다. 스위스 같은 경우 대학 진학률이 27%인 반면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80%에 육박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 대학자율화 조치를 통해 대학과 대학생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덕에, 지금까지도 높은 대학 진학률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청소년들의 대학 진학은 거의 의무화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선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할 수 없는 경제 구조가 고착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대들은 대학 등록금을 스스로 해결할 방도가 없다. 한 해 등록금이 1,000만원 가까이 되는데, 그에 따르는 장학금은 턱없이 부족하고, 등록금이 내리기는 커녕 매년 물가상승률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오르고 있다. 혹 어떤 사람들은 미국 대학들도 등록금이 비싸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사립대학 시스템으로 진화하면서 대학 펀드, 혹은 사회적 펀드의 형태로 다양한 장학금을 만들어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하였다. 더군다나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국민 모두가 대학을 나와야만 하는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세번째 독립의 걸림돌은 눈물없이 보기 힘든 '알바 시장'이다. 우리나라의 최저 임금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낮은 편이다.(2003년 기준 노르웨이 15,023원, 영국 9,480원, 일본 7,238원, 한국 2,510원) 10대나 20대 대학생이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알바인데, 이러한 낮은 임금과 높은 노동강도로는 등록금은 커녕 생계비도 제대로 해결하기 힘들다.

2장. 20대가 만나게 될 세상

  80년대 후반, 대학에서 학점은 지금만큼 중요하지 않았다. 권총을 아무리 많이 차도, 선동렬 방어율보다 낮은 학점을 받아도 졸업만 하면 취직은 골라가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대학의 낭만을 만끽했던 세대는 현재 소위 말하는 A급 대기업에서 다들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20대에게는 이러한 과거의 낭만이 꿈만 같다. 활짝 열려있었던 취업의 문은 굳게 닫혔고, 승자 독식(Winner-Takes-All)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20대는 세내 내의 경쟁이 극단적으로 높아졌을 뿐 아니라 더욱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세대 간 경쟁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대 간의 경쟁은 경쟁의 범위와 규칙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20대는 관록으로 뭉친 앞 세대들을 이길 방법이 없다. 지금의 20대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곧 비정규직이 될 운명앞에 서 있는 것이다.

제2부. 20대에게 숨통을 10대에게 생존을

1장. 위기의 20대 : 자멸인가 세대 착취인가?

  경제사에서는 지금 진행중인 세계화를 '3차 세계화'라고 지적하는 경향이 있다. 첫 번째 세계화는 19세기 후반에서 1차 세계대전까지, 그리고 2차 세계화는 1차 세계대전에서 2차 세계대전까지를 의미한다. 앞의 두 번에 걸쳐 세계화를 보통은 '제국주의'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세계화를 '세계화'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세대 간에 존재하였던 균형이 깨지게 되고, 특정 세대는 이런 변화에 대해 더 많은 수혜를 누리게 되는 반면 희생자에 해당하는 세대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영국의 경우 결혼 통계를 보면, 19세기 후반의 남자들은 25.9세에 결혼을 했고 이때부터 계속 연령이 높아져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인 1911-1915년 사이에는 27.49세로 높아지고 전쟁 중에는 27.92세까지 높아진다. 이후에는 약간씩 낮아지기 시작해서 68혁명 이후인 1970년대에 24.43세까지 낮아졌다가 다시 높아지기 시작해 1999년 30세를 넘겨 현재는 31.2세에 결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세기 후반부터 결혼 연령이 높아진 이유는 소위 이 시기의 '젠틀맨'들(우리나라의 경우로 보자면 중산층의 아들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대영제국의 전쟁에 참여하는 일이 잦았고, 군 복무가 아니더라도 식민지에서 상인 활동을 통해 부를 확보한 후에 결혼하는 일이 많았다. 그 이후에는 젠틀맨 모델이 종료되면서 사람들의 결혼 연령이 낮아지기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영국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공공의료와 공공주택과 같은 정책이 시작되고, 모든 의사가 공무원이 되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을 포함한 공공정책을 정착시키게 된다. 이 역시 결혼 연령을 낮춘 한 원인이었다. 이런 영국식 사회복지체계는 1980년의 대처리즘과 함께 점차 약화되기 시작하고 다시 결혼 연령은 높아진다. 1980년부터 신자유주의를 세계적으로 주창했던 대처 수상의 정책적 전환의 효과와 최근의 영국 20대의 삶이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중(1936-1945) 유겐트(독일은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 이후 외부의 경제적 지원 프로그램의 종료로 직접 타격을 받은 독일 중산층과 노동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민족주의적인 사회주의라는 이념으로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한 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독인 사회주의자들은 '유겐트'라는 이름의 10대 조직을 광범위한 독일 청소년들의 조직으로 확대개편하게 된다.) 경험을 가지고 있는 '회의적인 세대'는 60년대 중반에 독일의 40대와 50대를 형성하였다. 이 세대는 새로 등장한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독일 68세대와 정면으로 부딪히게 되는데, 68혁명은 독일에서도 격렬하게 진행되었지만, '회의적인 세대'는 도덕적 우월감이 부재하였기 때문에 큰 세대갈등은 형성되지 않았다. 지역공동체와 지역자치라는, 화해하고 같이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제3의 안전지대를 독일 사회경제체제가 제공한 셈이다. 이런 독일의 세대갈등의 해소는 상대적으로 20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더 많은 발언권을 만들어 주는 시스템으로 진화를 하였는데, 선진국 중에서 20대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의 기초위원들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스템이 바로 독일 시스템이다.

  프랑스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중 청소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은 콜라보(collabo, 부역분자) 아니면 레지스탕스라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레지스탕스라는 위험한 노선을 선택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잠재적 콜라부라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이 60년대 후반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프랑스의 부패와 혼란상은 극에 달했다. 이 당시 소위 '사르트르'세대라고도 불리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똑똑했다고 하는 프랑스 68세대가 등장하게 된다. 이 세대가 공유했던 책은 다른 나라가 그랬던 것 처럼 모택동 전집 혹은 체 게바라 전기가 아니라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라는 실존주의 철학책이었다. 프랑스 68세대가 다른 나라와 조금 다른 것은, 대학생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들까지 폭넓게 포함한다는 점이다.
  68혁명이라고 부르는 전 세계적인 사건이 처음 발발한 것은 미국의 베트남 공습에 항의하기 위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뱅크에서 농성을 하던 프랑스 학생 6명이 구속된 직후인 1968년 3월 22일, 파리 낭테르 대학에서 8명의 학생이 대학 총장실을 점거하면서부터였다. 8명에 불과한 학생들의 작은 농성이 전 세계를 뒤엎고, 일본 동경의 전공투에서 미국의 프린스턴대학에까지 그야말로 한 세대를 가르게 되는 거대한 사건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었다. 낭테르대학에서 시작된 프랑스의 학생 소요사태를 보통 '68혁명'이라고 부르는데, 낭테르대학이 폐쇄되면서 학생들은 5월 3일부터 소르본 대학에 모이게 되고, 시내 곳곳에서 유혈사태로 진행되던 시위는 10일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6월 5일 전국적 시위는 종료되고, 그해 6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드골의 집권당은 68혁명에도 불구하고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프랑스의 혼란은 해결되지 않았고 다음해 국민투표를 계기로 드골은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게 된다.
  68혁명 이후 대학의 국유화가 이루어졌고, 68세대는 프랑스 자본주의의 성과를 만끽한다. 그러나 이 세대가 지나간 다음 90년대부터 경제가 위축되고 실업률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유럽의 세대 구분과 세대 간 경쟁이 조금은 부드러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일본의 68세대라고 할 수 있는 전공투(全學共鬪會議) 세대는 더 고립되어 있었고, 그래서 더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다. 넓게 본다면 일본의 경우 68세대 혹은 전공투세대와 같은 정치적 현상에 의한 분석보다는 '단카이 세대'(단카이는 덩어리라는 뜻, 베이비 붐 세대)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68혁명은 소위 베이비 붐 세대가 스스로 세대 간 분배의 전환점을 만들어낸 사건이었으나, 일본의 단카이 세대는 사회적으로 고립되면서 세대 간 단절은 물론 '세대 내'단절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참전 세대들은 다음 세대에게 권력을 거의 나누어 주지 않았고, 새로 등장한 베이비 붐 세대를 아무 특징이나 주장도 없이 그저 뭉쳐 있다는 의미의 '단카이'로 규정한다. 이 세대가 일본 사회의 경제적 주도층의 자리에 올랐을 때 일본을 덮친 것은 '헤이세이 공황'혹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되는 10년 공황이었다. 이렇게 단카이 세대는 취업부터 은퇴에 이르기까지 매번 불이익을 당한다. 단카이 세대 이후 일본에서는 점차 다음 세대에 대한 분배가 가혹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국 68혁명의 이념을 흔히 WASP(White-Anglo-Saxon-Protestant) 급진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68혁명이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이전 세대에 대한 다음 세대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유색인종의 문제화 함께 보다 폭넓고 복잡한 요소들이 개입되었다. 유럽의 68세대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하나의 집단으로 구성된 것에 비해 미국의 68세대는 'WASP 급진주의'라는 단어 속에서 훨씬 그 의미가 줄어들었다.
  미국은 내우 낮은 사회보장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미국의 68세대는 유럽과는 달리 기업에 사회적 재분배를 만드는 기능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화를 하였다.
  
  한국의 상황으로 돌아와서, 유신 시대에 경제생활을 시작한 사람을 '유신 세대'라고 부른다면, 73년에서 80년 사이에 자신의 경제적 삶을 시작한 지금의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의미할 것이다. 유신 체제가 북한과의 경제적 경쟁이라는 사회적 모티브를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 시스템이며, 경제적으로는 포디즘의 국제 분업 체제 하에서 움직였던 시대이기 때문에 유신 세대는 냉전 세대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지게 된다. 대체로 다양성보다는 획일성을 중심으로 사유한다. 세대 내 단결력이 높고, 성장에 대한 향수를 통합에 익숙해져 있고, 지역으로 묶이는 것을 대단히 선호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유신 경제의 향수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지만 또 한편으로는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지역감정의 희생자이기도 한 우리나라의 유신 세대는 사회적으로는 20대가 누려야 할 경제적 몫을 가장 많이 노리는 약탈자이면서도 집에 돌아가면 그들과 부모 관계로 협력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 등장했던 여러 종류의 세대 중 가장 강력한 세대는 386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세대는 국제적으로 통칭되는 '베이비 붐 세대'의 한국 버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독일이나 프랑스의 68세대에 가장 가깝다. 이 세대는 정치적 단결성이 높고 대단히 강력하다. 그러나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자기 결집은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386세대는 IMF이전에 이미 사회 진출을 상당 부분 완료한 연공서열의 마지막 세대이다. 지금의 20대와 386세대는 경제적 관계에서 직접적으로 전선을 형성하는 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많은데 안정적 직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 세대간 갈등은 더욱 격렬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군다나 386세대와 20대는 서로 혐오하고 질시하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386세대와 20대 사이에 'X세대' 혹은 '신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미니 세대를 하나 설정 할 수 있다. 이 세대는 우리나라의 다양성 1세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으나 불행히도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고자 할 때 IMF경제위기가 발생하게 되었다. 김대중 정권 시절, 신용카드를 발급함으로서 소비능력을 제고하는 정책을 편 적이 있는데, 이 정책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었던 세대가 바로 X세대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신세대는 한국경제의 안전지대로 넘어온 거의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20대와 바로 앞선 세대인 X세대를 비교하면, 이 두 세대는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인데, 이미 진출한 앞세대가 뒷세대에 비해 조금이나마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다른 세대와는 달리 20대는 서로를 소외시킬 확률이 높은데, 여러 가지 사회적 경험을 공유하면서 단결하고 뭉치도록 배우고 또 그렇게 살아온 앞의 세대와는 살아온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대 내 경쟁에서 가장 불리한 집단을 꼽으라면 일반적으로 고졸 이하 집단과 여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청년실업 또는 고학력실업이라는 호들갑에 가려 사회적 이슈조차 되지 못한 불행한 집단이기도 하다. 고졸자의 실업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 한 것은 IMF개혁 이후이다. 혹자는 제조업이 구시대의 산업이 되어가고 학력 인플레도 작용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 할 지 모르지만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은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가 줄었다는데 있다. 여기에 한국사회의 학벌주의도 한 몫을 했다. 여성의 경우를 보자면 27세쯤 부터 시작해 또래 남성과의 임금 격차가 현격하게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는 여성 대부분이 비정규직이 때문이다.(전체 비정규직 중 70%가 여성이다.) 또한 같은 비정규직일지라도 여성임금은 남성임금의 65%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감정노동(emotional Labor)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사실들은 패배한 다수 가운데서도 계층이 나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이라는 경제주체의 입장에서 또 다른 경제주체인 자본을 본다고 하면, 생산자본과 유통자본이라는 두 개의 창을 통해서 세상을 보게 된다. 생산자본의 경우 탈 포디즘이라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중후장대형'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 장치 산업이나 노동 집약적 산업이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규모 투자가 정지된 많은 업종에서 20대 신규 인력채용은 극도로 제약되어 있다.
  20대에게 더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유통자본의 측면에서이다.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로 넘어가면서 럭셔리 마케팅 즉, 명품시장이라고 하는 신 사치재 시장이 등장한다. 우리의 자본은 일본이 단카이 세대를 덩어리로 취급했듯이, 지금의 20대를 하나의 덩어리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자본에게 있어 20대는 덩어리이기는 한데 30대보다는 구매력이 약한 덩어리이다. 따라서 이들을 타겟으로 하는 개념을 만들기 보다는 확실한 구매력이 있는 집단을 겨냥한 마케팅 방식을 수정해서 20대에게 적용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20대가 30대들이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그들의 경제적 여건을 더욱 어렵게 한다. 소비자를 하나의 덩어리로 놓고 특별한 개성이 없다고 파악되자 18세기 이후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 가지가 된 '사치'와 '민족'이라는 장치를 결합시켜 이러한 마케팅을 내 놓은 것이다.

2장. 다안성 1세대를 위한 크리스마스 캐럴

  세대간의 형평성과 세대간의 경쟁과 같은 문제는 혁명이나 유사한 변화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세계화를 반대하는 것은 예산제약조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포디즘으로 되돌아 가는 것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포디즘으로 되돌아 갈 수도 없다. 세대간 경쟁의 문제는 스스로 내리게 되는 선택의 문제에 가깝고, 윗세대가 대신해주거나 대리인이 전문가로서 알아서 해줄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경제가 가지고 있던 연공서열제나 종신고용제를 무너뜨린 것은 IMF경제위기이고, 승자독식 게임의 강화는 과외금지 위헌결정의 효과이다. 이미 포디즘이 끝난 상태에서 지금 사교육을 통해서 다시 강화시킨 주입식 교육과 암기식 교육은 포스트 포디즘에 적응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교육비의 엄청난 지출을 감당하면서 한국 경제가 IMF위기를 극복하고 세계화 충격을 흡수하면서 구조전환할 방법은 없다. 따라서 사교육 문제의 해결, 서열화 되어있는 대학체계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이 두가지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10대의 해방과 동시에, 부모들도 정상적인 경제적 삶이 가능해질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전면적으로 도입한 '선택과 집중' 패러다임에서 선택은 정부의 몫이었다. 이로 인해 발생한 대표적 현상이 획일성이다. 획일성이 극대화되면서 동시에 경쟁도 극대화 되었는데, 이는 한국식 승자독식 상황을 형성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살펴보면 첫째,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대신 정부가 노동자 재교육에 지금보다 10배 정도 더 많은 돈을 들이고 창업기금 같은 것을 지금의 10배정도로 늘려서 경제 전체의 혁신율을 경쟁의 방식으로 높이는 방안이 있고, 둘재, '볼보주의 방식' 즉 '일자리 나누기 방식', 전체 임금은 그대로 두고 노동자 고용을 높여 총고용을 늘리는 방식을 통해 노동 수익을 낮추는 대신 노동 안정성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독과점화는 생산자본의 독과점화와 유통자본의 독과점화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양쪽의 경우 모두 20대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한다. 생산에서의 독과점화는 기업 사이의 경쟁을 약화시키고 무엇보다도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서 있을 땅을 점차적으로 줄어들게 만든다. 이는 '수출 기업과 내수 기업 사이의 양극화' 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양극화'로 표현된다.
  한국의 20대가 맞게 된 고통의 원인은 지난 5년 동안의 중소기업 붕괴와 사회적으로 경제적 약자들의 탈출구였던 자영업의 경제적 기반이 사라진 점에 있다. 따라서 대기업과 맞서서 중소기업이 지금 당하고 있는 불공정 사례를 줄여주는 일과, 정상적으로 국민 경제를 작동시키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 자영업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조치들을 도입하는 일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프랜차이징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유통업과 서비스업의 대자본화의 한 현상인데, 여기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대신에 제품 경쟁력이 줄어들게 된다. 프랜차이징을 선택하면 지역경제는 붕괴되고 대신 가격은 낮아진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가격도 높은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다.
  현재 한국 경제는 큰 공룡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이다. 유럽은 문화라는 힘으로 극복을 하고 있고, 미국의 경우 법원이 직접 나서 완화시켰다. 우리도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제 양극화가 생겨나고 청소년 고용이 심각해지는 것은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지만 OECD국가들 중 우리나라는 국제적 비교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우리의 상황을 개선하는데 참고가 될 것이다. 스위스의 경우는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공공영역에서 상당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해 준다. 시청에 가서 상담을 하면 공공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방식이다. 프랑스의 경우 우리나라 노동부에 해당하는 '고용 및 연대부'라는 정부부처를 신설하여 청소년 아르바이트에 관한 기준과 해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일본의 경우 알바 임금이 대졸 초임 정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훨씬 청소년 노동공급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고, 중산층을 포함한 경제주체들의 해체가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은 첫째, 제도적인 측면의 보완이다. 프랑스의 경우 중고등학교 사회교과서의 경제항목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고용계약서를 쓸 것과 노동권리에 대해 가르쳐 준다. 둘째, 지자체보다 작은 규모라도 별도의 예산을 확보해서 알바 보조금을 지급해주는 방법이 있다.

  에코레인져, 풍력발전의 오퍼레이터 등 생태 건전성과 공공성을 높임과 동시에 20대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농업공무원 같은 제도를 신설하면 지방에 젊은 피를 순환시킬수 있을 것이고, 도시에서 20만명 정도의 유휴 노동력이 빠지게 되면,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3장. 바리케이드와 짱돌의 기원에 관한 고고학적이며 기능론적인 고찰

  우리나라의 20대는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장치들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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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단절된 사회
: 전대미문의 물질적 풍요로 가득 찬 사회에서, 극소수 부자들은 대량의 재화를 차지하지만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다.

<사회의 단절>
- 프랑스 사회학자 알랭 뚜렌은 프랑스의 사회구조가 피라미드식 계층 구조에서 마라톤 경기 구조로 변했다고 보았다. 구조 내의 하층에도 속하지 못하고 구조 자체를 이탈하는 사람들이 증가한 것이다. 중국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 실업과 샤강 현상(일시 휴직상태에 있는 준실업상태)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첫째, 국유기업의 저효율성과 만성적인 적자, 둘째, 여러 해 지속된 불경기로 인한 경제성장 속도의 둔화, 셋째, 산업구조의 전환을 들 수 있다.
- 그러나 위의 조건들이 잘 해견된다고 해도 근본적인 변화는 힘들 것이다. 샤강 노동자와 실업자들은 대부분 저학력자에 단순업무 종사경험만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취업 기회는 높은 교육수준을 지닌 사람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회의 주도산업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없고, 지금의 체제하에서 안정된 취업체제로 돌아갈 가능성이나 유망 산업이 취업 기회를 줄 가능성도 없다.
- 사회의 단절 현상은 도농간에도 발생하는데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국민총생산과 취업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반드시 하락한다.(농산품의 소득 탄성력은 낮다)
- 일본의 경우 경제성장기(1950~80)에 농업인구의 65%, 미국의 경우는 72%가 도시로 이동하였으나 중국의 경우 호구제도 등과 같은 여러 인구제한 정책으로 1.5%만이 도시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런 상태가 유지된다면 농민들은 자체소비와 생존을 유지하는 자연경제활동을 하게 될 것이고 과거 수십년 전의 소작농처럼 될 것이다.
- 도시로 들어간 절대다수의 농민공들은 대도시의 호구가 될 수 없으므로 사회보험, 복지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그들의 자녀들은 도시에서 학교를 다닐 수 없다.

<사회 단절을 다시 논하며>
- 중국의 경우 제1,2,3의 물결이 공존한다. 물론 어느 사회든 산업과 직업의 차이가 존재하나 중국은 각 산업사이에 단절이 존재한다. 미국 농민의 경우 기계화와 현대화된 기구로 토지를 경작하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 농산물 가격과 거래정모를 살피는 등 시대적 농업경영을 한다. 이들은 주류 상품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그 사회의 가장 선진적인 부분이 더 이상 전체사회와의 연관성을 가지지 못하는 단절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 사회의 가장 선진적인 부분이 국내의 낙후된 부분이 아닌 선진국의 세계시장과 연결되어 순환시스템을 형성(표준화)한다. 특히 WTO를 가입한 상황에서 이러한 표준화와 단절효능은 다방면에서 나타날 것이고, 이는 소득격차를 높여 사회분열이 가속화 될 것이다.

<다원사회와 단절사회>
- 다원사회는 60년대 서구에서 생긴 개념으로 다원사회에서는 사회구조의 변화가 심화되고 각종 사회집단의 역량이 병존하며 가치관의 차이로 심지어 서로 대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 상이한 부분들이 대체적으로 동일한 발전수준에 처해있기 때문에, 사회의 각 부분들은 전체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
- 단절사회는 다른 한 부분이 전혀 다른 시대의 발전 수준에 머물러 있어, 그들 사이에서는 전체 사회를 이룰 방법이 없어 사회 전체가 분열된다.(정치적 의미가 아닌 사회적 의미에서만)

02. 성장과 발전의 신논리
: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경제는 연 7~8%의 초고속 성장을 계속했지만 국민 대다수는 아무런 혜택을 누리지 못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불경기라고 느낀다.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에 나타난 부조화>
- 80년대에는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사회환경도 개선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90년대에 이르자 경제성장은 사회상황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이는 경제성장과 사회상황개선 사이의 단절을 의미한다.
-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노동취업조건의 개선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취업기회가 거의 없는 경제성장) 둘째, 빈부격차가 심화되었다.(식량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농민소득의 하락, 도시 실업자 증가로 인한 도시 빈곤계층의 형성, 90년대 말 중국의 지니계수는 0.458) 셋째, 사회치안이 악화되었다.
- 위에서 언급한 부조화는 중국의 사회발전에 전환점이 출현했음을 의미하고(경제성장이 사회발전을 이끄는 시대의 종말) 따라서 정부정책은 사회의 공평성과 질서 등의 문제로 관심의 방향을 옮겨야 한다.

<경제성장 : 현실적 패러독스>
- 빠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대부분이 그만큼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이 없었다면 경기침체로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 이러한 패러독스는 분업형 공업화의 결과이다.(도시의 공업화만 현대화하고 광대한 농촌과 농민은 이 과정에 함께하지 못하였다.)

<제도 확립과 개혁 논리보다 앞선 구조의 변화>
- 체제 확립보다 앞서는 구조적 문제를 중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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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류 [신자유주의적 노동에 의해 공격받는 인간성]

저자가 70년대 초에 미국 블루 칼라 노동자의 실상을 다룬 책 '계급의 숨겨진 상처'를 쓸 당시 인터뷰했던 한 사람(엔리코)이 있었는데, 15년 후 우연히 엔리코의 아들(리코)을 마주치게 된다. 리코는 시내 중심가 오피스 빌딩 관리인이었던 아버지와는 달리 꽤나 성공한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졸업 후 14년간의 직장 생활중 네 차례의 이사를 하는 등 표류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의 불안정한 삶과 신경제의 시시각각 변하는 카멜레온적 가치는 의무, 신뢰, 헌신 등의 장기적 가치들과 상충하게 되고 그는 여기서 아버지나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신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인생에 대한 통제력 상실의 두려움이 생겨났다.

'장기는 안 돼' 임시직과 비정규직이 업무를 주도하고, 일자리는 프로젝트와 근무분야로 대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학자 베넷 해리슨은 이 같은 변화욕의 원천이 급속한 이익의 실현을 바라는 조급한 자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사회학자 월터 파월은 네트워크 형이 위계 질서를 강화하는 피라미드 형보다 훨신 운신의 폭이 넓고 고정적인 피라미드 형에 비해 해체가 쉽고 재편도 쉽다고 이야기 한다.

유연한고 느슨한 네트워크 형 조직은 사회적 결속을 약화시킬 수 있다.

사회학자 마크 그래노베터는 현대 조직 네트워크의 특징을 유대관계의 약화로 보았고, 장기적인 인간관계보다 단기적인 교제 형태가 보다 유용하며 더 이상 충성심과 같은 강력한 사회적 유대관계를 강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지속가능한 자아(sustainable self)의 의식을 간직하는 인간성의 특징들이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변화를 표류를 의미하고, 성공을 안겨준 유연한 행동이 인간성을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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