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펜재(Giffen goods)는 열등재의 하나로서 소득이 증가할 때 그 수요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다. 이러한 기펜재가 다른 열등재와 다른 점은 수요가 줄어드는 폭이 매우 커서(대체 효과보가 소득 효과가 크기 때문) 가격이 하락할 때 수요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많이 소비해야만 하는 재화이고 이 재화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재화에 대한 강한 욕구가 존재 할 경우 이 재화는 기펜재일 가능성이 높다. 가난하던 시절의 ‘보리’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보리는 사람들이 많이 수요해야만 하는 필수 식품이었다. 보리밥이 먹기 싫더라도 살기 위해서는 보리를 섭취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보리의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자금에 여유가 생기게 되고 결국 보리의 수요를 줄이면서 흰 쌀을 구매하게 된다. 보릿고개를 경험했던 어르신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옛날에는 흰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었어......”
현재 한국사회에서 기펜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재화 혹은 서비스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학원교육’ 서비스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원교육의 수요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고등학생의 80%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에서 수도권 대학, 더 나아가 명문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교육의 힘을 빌어야만 내신이든 수능이든 논술이든 고득점을 할 수 있는 평가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 사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은 고등학생 뿐 만이 아니다. 특목고에 진학하기 위해서, 국제중에 진학하기 위해서, 사립 초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초, 중, 고교 학생들과 심지어 유치원생들마저도 학원교육은 피해갈 수 없는 하나의 관문이다. 일제고사를 통해 끊임없이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작금의 현실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사교육이 번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모든 부모들은 가계 소득에서 학원교육비를 고정 지출항목으로 잡고 있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로 갑자기 학원 수강료가 낮아졌다고 생각해 보자. 학원 수강료가 낮아지게 되면 부모들은 고정 지출이 줄어들게 되어 주머니 사정이 여유로워지게 되고,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그러나 언제나 갈망해 왔던 ‘1:1 개인 과외’에 눈을 돌리게 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여러 명의 학생을 한 교실에 몰아넣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학원교육에 비해 값이 더 비싸더라도 선생님과 일대일로 소통하며 공부할 수 있는 과외교육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보통 학생들은 한 개의 학원만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두세 개 많게는 네다섯 개의 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전반적인 학원수강료의 하락은 학원교육 수요의 감소와 함께 과외교육 수요를 늘이게 된다. 즉, 학원교육은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수요가 줄어드는 전형적인 기펜재인 것이다. 전혀 다를 것 같이 보인 ‘흰 쌀’과 ‘과외교육’이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부모들의 푸념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 아들 딸, 좋은 선생님한테 제대로 된 과외 한 번 시켜봤으면......”
기펜재에 해당하는 재화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자. 명품을 싫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들만큼 명품을 좋아하고 명품에 열을 올리는 국민들은 아마 일본 사람이나 홍콩 사람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을 것 같다. 명품은 위에서 예로 들었던 ‘보리’나 ‘학원교육’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나 기펜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이 명품을 선호하는 이유 무엇일까. 명품을 소비함으로 인해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는 ‘구별 짓기’ 전략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배기량이 더 큰 차를 선호하고, 평수가 더 넓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차별화된 문화자본을 소비함으로서 자신이 더 높은 계층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만큼 사람들이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명품을 핸드백을 손에 들고 큰 차를 타고 다니면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이 사뭇 달라진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로 명품의 가격이 하락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제 사람들은 저가의 명품(더 이상 명품이 아니지만)을 더 이상 구별 짓기의 도구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명품이 비싸지 않고 희소성이 없다면 더 이상 사람들이 부러움과 시샘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명품의 수요는 감소하게 된다. 물론 가격의 하락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명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품질이 크게 뛰어나지 않음에도 단지 ‘이름 값’ 때문에 가격이 높았던 명품이라면 가격이 하락한다고 해서 새로운 구매자들이 갑자기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구매자들이 생기지 않고 기존의 구매자들이 이탈한다면 명품의 전체 수요는 결국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에서 판매되는 일부 명품들은 가격이 하락함에 따라 수요가 감소하는 기펜재라고 할 수 있겠다.
기펜재는 그 사회의 성격에 따라 규정이 된다. 과거에는 기펜재가 될 수 있었던 보리가 더 이상 기펜재가 아닌 것과, 학원교육이 프랑스에서는 기펜재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펜재를 가지고 사회의 성숙도를 평가하는 것이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적어도 학원교육과 명품이 더 이상 기펜재로 분류되지 않는 사회가 좀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제 레포트로 작성한 기펜재의 예시이다.
나름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가?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