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신자유주의 이전

1장. 2차 대전 직후

1. 전쟁이 끝나고

  전쟁이 발발하면 많은 것들이 파괴되지만 동시에 군수산업의 확장으로, 통계수치로만 본다면 산업시설의 수는 전쟁 전후의 차이가 크지 않다. 노동인구도 마찬가지로 전후에 줄어들지 않는다.
 
   유럽과 일본의 경우 전후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힘이 과거에 비해 월등히 세졌다. 전쟁 동안 완전고용이 달성되면서 자연스럽게 힘이 강해진 것이다. 패전국과 승전국에서 모두 노동자들의 힘이 커졌는데,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의 경우 전쟁 중 자본가들이 파시스트 정부에 협조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권위를 상실하였고, 프랑스의 경우 노동자들이 레지스탕스 활동을 주도하는 등 그 활약이 누부셨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결하였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전쟁 직후 좌파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였는데, 영국의 경우 1945년 7월 총선거를 통해 노동당이 정권을 차지하였다. 노동당이 들어서자  영국은 국민보험, 의료제도를 확대하고 주요 산업을 국유화 하는 등 사회복지정책을 확대하였다.
 
  전후 동유럽 국가들(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루마니아, 헝가리 등)에 소련군이 진주를 했고, 그 결과 사회주의체제가 수립이 된다. 이는 서유럽 좌파세력의 입지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2. 식민지의 독립

  서구 제국주의 세력은 17세기 초부터 아시아로 진출하여 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았고, 이들끼리 식민지 쟁탈전을 벌인다. 양차 세계대전도 이러한 식민지 쟁탈전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시아의 여러 식민지를 잃게 된다. 이로서 식민지 초과이윤이 사라지고, 국내 노동자들의 힘이 커진데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위협으로 부르주아들의 자본주의 재편은 불투명해졌다.

3. 미국의 헤게모니 장악

  전쟁을 통해 가장 이득을 본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2차 대전 후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헤게모니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 세계 금의 60%가 미국으로 집중된다. 미국은 무기를 생산하여 영국 등 서유럽 국가들에게 금을 받고 팔았다. 이들이 금을 내놓은 이유는, 전쟁시 정부가 필요한 물자를 대규모로 동원하기 위해 화폐를 대량으로 찍어내는데 이로 인해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화폐가치가 급락하여 자국의 화폐를 외국으로 유통시키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군수물자의 판매를 통해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생산력은 더욱 향상된다. 둘째, 강성 노조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국내적으로 계급 갈등을 미리 봉쇄할 수 있었다. 1946년에 들어서면서 노조는 전투성을 상실하고, 이는 타협적 노사관계의 전형이 된다. 셋째, 미국은 결국 2차 대전 후반에 참전하여 승리를 거둠으로써 국제관계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였다. 넷째, 미국 본토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전쟁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전 후 19세기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잡았던 영국과 20세기 떠오르는 헤게모니 국가 미국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국제경제질서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데 미국이 주도권을 잡는다.
  미국의 영향력 하에 브레튼우즈 기구들(IMF, 세계은행, GATT)이 만들어지고 운영이 되었으며, 이 기구들에 의해 좌우된 세계경제체제를 '브레튼우즈 체제'라고 부른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 미국의 화폐, 달러는 국제통화, 곧 기축통화가 되고, 달러와 금의 교환 비율(금 1온스 = $35)을 일정하게 유지하겠다고 미국은 약속하고 고정환율을 유지한다. 고정환율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달러를 공급해줄 외부기관이 필요했고, IMF가 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IMF는 국제수지 적자를 보는 나라에 계속 돈을 대줄 수 없었고 '긴축재정'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는 국제수지 불균형에 대한 책임을 적자국이 맡아야 한다는 미국의 논리를 보여준다. 미국은 자신의 유일 헤게모니를 바탕으로 브레튼우즈 기구를 만들고 세계경제를 이끌어나간 것이다.

  미국이 유럽을 지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마샬플랜의 실행과 그 목적을 통해 알 수 있다. 마샬플랜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럽경제를 확실하게 되살림으로써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축적에 대한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다. 둘째, 유럽경제의 회복을 통해 서유럽 부르주아들이 훨씬 수월하게 자신의 나라를 '자본주의'적으로 안착시킬수 있다. 이로 인해 서유럽은 동유럽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 동시에 자국의 좌파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셋째, 미국의 돈이 흘러들러가는 것은 미국식 생산방식과 제도를 유럽으로 전파하여 미국 헤게모니를 구축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마샬플랜을 통해 노동자들의 활력이 부분적으로 상실되고, 혁명의 전망이 사라지게 된다.

  미국은 자국 자본에 대한 미래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 일본의 재벌의 해체한다. 그러나 1947년 미국이 트루만 독트린을 발표하고 '냉전정책'을 수행하기 시작하며 1949년 10월 중국의 혁명이 성공함게 따라 아시아에서의 사회주의확장을 걱정하게 된다. 사회주의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 경제를 부흥시키려고 하는 차에, 1950년 6월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군수산업기지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게 된다. 그 결과로 1951년이 되자 일본은 이미 2차 대전 이전과 같은 수준의 생산력을 회복하게 된다.

2장. 호황기 : 50-60년대

1. 황금기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1950년대를 지나면서 엄청난 호황을 맞이한다.

2. 아메리카 헤게모니

  전후 유럽 국가들은 외환 보유에 골몰하게 되는데, 1948-1952년 미국은 마샬플랜을 통하여 유럽에 많은 자금을 지원한다. 52년까지는 마샬플랜의 명목 하에 달러 원조가 진행된 반면, 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달러 원조는 군사적 성격을 띤다. 이러한 미국의 군비지원으로 인해 유럽과 일본은 급격한 생산력 회복이 가능하였다. 
  미국의 지원은 자본주의 체체 유지를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진다. 당시 '냉전'은 군산복합체의 요구를 보장해주는 적합한 정세였다.
  군사력에 의해 뒷받침된 미국 헤게모니는 서유럽과 일본에 자본주의 시스템을 전파한다.(포드주의, 케인즈주의, 코포라티즘)

3. 호황기 서유럽과 미국의 특징

  테일러주의는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테일러주의는 노동과정들이 표준적 방법으로 정리되고 노동분업을 통해 효율성이 높아지는 시스템이다. 테일러주의를 통해 '구상과 실행의 분리'가 일어나는데 노동과정을 노동자 자신이 관리하던 것에서 벗어나 자본가들이 관리하기 시작한다.
  테일러주의는 포드주의 시스템이 출현하면서 확산되는데, 테일러주의에 컨베이어벨트가 결합되어 과학적 노동분업 원리가 확실하게 도입이 되고 '대량생산'의 시대가 열린다. 포드주의는 전쟁 전 주로 미국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는데 전후 유럽과 일본에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된다. 포드주의의 결과로 반숙련 혹은 비숙련 노동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노동생산성이 증가하고,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하락하며, 대량생산이 가능해진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의 산별노조는 자본가들에게 협조하게 된다. 미국식 노자관계는 이렇게 해서 황금기동안 흔히 코포라티즘이라고 불리는 유럽 노자관계의 기초가 된다.

  케인즈 경제학을 이전의 고전학파 경제학과 구분해 '거시경제학'이라고 부른다. 고전학파의 경제사상은 신자유주의와 매우 흡사하다. 이들의 논리는 가격은 언제나 매우 신축적으로 운동하여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고,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세이의 법칙)는데 있다. 그러나 대공황이 발생하자 과잉공급에 수요는 창출되지 않고 대량의 실업이 발생하게 된다. 케인즈는 이를 총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을 통한 정부의 유효수요 창출을 강조하였다. 케인즈 경제학은 2차 대전에 영국에서 탄생하지만 본격적으로 채택된 것은 미국 헤게모니가 유럽과 일본에 관철되고 나서이다.

4. 동아시아 지역의 상황

  전후 일본의 자본주의를 복구하고 경제를 급격히 성장하게 한 배경은 한국전쟁이다. 이는 마치 서유럽의 마샬플랜과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일본은 국가 주도로 조선, 철강, 자동차 같은 부문을 핵심적으로 육성하였고, 정부에 의해 철저히 국내시장을 보호하였다. 또한 노조도 통제하였는데, 50년대 일본이 한참 호황을 누릴 때 전투적 노동조합이 사라지게 된다.

  미국은 50년대 내내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의 사회주의화를 막기 위해 원조를 실시한다. 그러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 근대화 작업에 착수한다. 박정희 정권이 추진했던 근대화는 이러한 미국의 전략 수정이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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