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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유럽 현대미술관 기행 - 현대미술을 보는 눈 1 ㅣ 현대미술을 보는 눈 1
이은화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미술에 대해 모른다.
한마디로 일자무식이다.
나름대로 사물을 보고 그림을 비슷하게 그리는 취미도 가지고 있건만,
자기를 아름답다고 뽑내는 이 미술이라는 공주병 환자를 통~ 모르겠다.
더구나 현대미술은 나에게 암호판이나 다름이 아니다.
'피카소' 그림이 좋다고 사람들은 입방아를 연신 찧고
가격도 천정부지로 끝 갈데 없이 오르고 있지만
나는 그 일그러진 괴물 같은 형상의 그림이 왜 좋은지, 왜 그렇게나 비싼지 알지 못하겠다.
학교에서 체험학습으로 미술관을 탐방해도 멍하니 바라보기 일쑤였고,
(그 시절, 번쩍 번쩍 눈만 아프게 한......마차를 모는 마부의 형상을 한 텔레비전 무더기가
유명한 '백남준' 선생의 작품이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ㅡ.ㅡ;;)
방학 때 내준 미술감상문 숙제도 미술관을 빠르게 배회했을 뿐
팜플렛만 잔뜩 갖고 와 거기에 있는 글만 A4용지에 옮기기에 바빴다.
나에게 미술은 '가깝게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 이었다.
그렇게 먼 당신이 최근 나에게 지름길을 안내하여 그의 실루엣을 보여줬다.
'21세기유럽현대미술관기행' 이라는 단순명료한 타이틀을 박은 옹골찬 이 책은,
그 몸체 만큼 강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현대미술에 쓩~날아갈 수 있게 한 발판 말이다.
현대미술의 해설서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현대미술에 베터랑 급인 이 화자는 절대 '공'으로 주지 않는다.
먹이 잡는 법만 가르쳐주지 결코,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는 라이트 급인 우리에게
밥 숟가락을 들이밀지 않는다.
우리가 잡아야 할 먹이가 이 책안에 그득히 떨어져 있다.
그것도 군침 돌게 맛있는 먹이가!!
현대미술은 확실히 난해하다.
우리 눈에 그게 쓰레기 같고,
'에이, 저거도 예술이라고. 내가 발로 해도 저것보다 잘하겠네!'
라고 욕지거리를 뱉어도 그것은 예술이다.
시중에 사용하는 변기를 갖다 놓거나, 자기의 똥을 통조림화 해서 전시한다 해도
그것은 예술이다.
......의미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그 속에 많은 이야기와 감동과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미술도 똑같다.
벽에 못 박혀 있거나 땅 위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하나의 장면에 지나지 않으나,
거기에는 수 많은 이야기와 (정말 상상도 못한 다채롭고 수~많은 이야기)
감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경고 할 수 있고, 웃음 줄 수 있고, 비꼬는 꼼수를 쓸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트레이시 에밀의 작품 중에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1963~1995>이 있다.
이것은 작은 텐트 안에 이때까지 트레이시 에밀가 같이 잤던 사람들의 이름이 무수히 많이
텐트 곳곳에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설치 작품을 본 관람객들은 하나 같이
'어머 천박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 하고...'
'이것도 작품이야? 역겨워'
'도덕적이지 못하게 뭐야.' 이라는 반응이었다.
이때, 우리의 불량소녀 트레이시 에밀은 껌을 잘근잘근 씹으며 이렇게 말한다.
"이봐요, 당신들 뭐 생각하는 거야. 나하고 잤던 사람은 엄마도 있고, 할머니도 있어.
내가 낙태한 잠시 뱃속에 머무른 아기도 말이야. 당신들도 이때까지 같은 공간에
같이 잤던 사람들을 헤아려 보면 수백, 수천 명이 넘을 껄..잤던 사람들이 꼭 성관계를 가진 사람 만을
생각한 당신들이 더 도덕적이지 못하고 천박한거 아냐? ㅋㅋㅋㅋ."
라고 통쾌한 반격을 가한다.
단순한 설치물 하나에 이런 꼼수가 숨어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것이 내가 사냥해서 맛있게 먹은 먹이 중 하나다.
게다가 수 많은 도판으로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건축도 아낌없이 보여준다. (당연히 작품도)
'현대미술관 건축도 아트지?' 하고 생색내면서.....
그 생색에 배 아파하며 자연속에, 자연과 같이 공존하는 '홈 브로이히 박물관' , 감성을 느끼게 해주는
번개모양의 '유대인 박물관' , 가위로 오려 만든 것 같은...입구에 다양한 꽃과 풀로 만든 커다란
강아지가 지키고 있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은 정말로 ~정말로~ 직접가서 보고 싶다.
다 보고 나서 우리나라의 실정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우리에게는 이런 미술관이 없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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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일요일 저녁
kbs1tv 다큐멘터리 10부작 '문화의 질주'를 보고 있었다.
(그때 부제 '비틀즈에서 해리포터까지 영국의 21세기 산업혁명' )
거의 방송이 끝나는 시점에 붉은 색 건물이 뚱~악 하고 화면에 나왔으니..
...어디서 많이 봤는데......아..악!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다앗!!"
너무 반가워서 소리를 지르고 옆에 아부지 한테 열심히 저 미술관이
서점이 크다는니..기부금 통이 이쁘다는니..저 미술관을 디자인 한 사람이 무엇때문에 선정되었는지...
현대미술 작품에는 무슨 특징이 있는지 등등.....
속사포 같이, 정신없이 말해줬다.
너무 큰소리로 말해서 아부지가 시끄럽다고, 방송 끝났다고(자막이 올라가고 있었다)
눈을 흘겼다.
그러나 나는 기쁜 데 어쩌랴~ 나는 드디어 '일자무식'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