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1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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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많은 책 중에는 책을 읽는 동안 군침이 넘어가는 책도 적지 않다. 기억에 남는 맛있는 책 중에는 우리 시대 최고 이야기꾼인 황석영이 쓴 <황석영의 맛과 추억>이 있다.

이북이 고향인 작가가 소개하는 이름도 생소한 고향음식, 북한 방문 때 김일성 주석과 함께 먹은 국수이야기, 광주를 중심으로 한 남도음식, 강한 맛의 경상도 음식 그리고 외국 여행과 망명길에 먹어 본 유럽 여러 나라의 맛있는 음식이야기와 그 음식에 얽힌 작가의 삶이 담긴 이야기책이다.

책  제목 그대로 작가 황석영의 맛과 한 평생 추억이 베어나는 이야기책인데, 최근에 제목을 바꿔서 다시 나왔다. 아련한 추억이 담긴 먹거리를 중심으로 작가 황석영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군침이 꼴딱 꼴딱 넘어가게 하는 최고로 맛있는 이야기가 담긴 책은 역시 허영만 만화책 <식객>이다. 영화를 봐고, TV 드라마를 봐도 침을 삼키며 다음에 꼭 먹어봐야지 하고 마음먹게 만드는 책이었다. 

실제로 <식객>이 소개하는 음식을 먹어보면 대부분 진짜 맛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식객>에 나오는 산해진미를 맛보려면 만만치 않은 경제적 부담이 뒤따른다는 것이 문제다.

최근 일본작가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쓴 맛있는 만화책 <리틀 포레스트>가 나왔다. 일본에서는 천재 만화가라는 찬사를 듣고 있는 이가라시는 <마녀>, <해수의 아이들> 등 신비로운 이야기를 주로 그려온 작가라고 한다.

만화를 좋아하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꽤 유명한 작가인 모양이다. 이라가시는 <영혼>이라는 작품에서 이야기마다 직접 해 먹은 음식을 등장시켰다고 하는데, 이번에 내놓은 <리틀 포레스트>는 본격적인 음식 이야기 책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작가가 7~8년 전부터 도호쿠 산간 지방의 한적한 시골마을 코모리로 내려가 자급자족 생활을 하면서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책이다. 책에 소개된 음식 대부분은 작가가 실제로 요리한 것이라고 한다.

요리도 느리고, 인생도 느리고

도시에서 귀향한 주인공 이치코의 흙냄새 물씬 풍기는 자급자족 생활기이다. 날마다 자연이 준 소박한 재료를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 이야기이다. 요리마다 생활의 지혜, 어린 시절 엄마와의 추억,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잔뜩 베여있다.

<리틀 포레스트>의 주제는 "먹는 것이야말로 인생이다"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책 표지에도 그렇게 씌어있다. 직접 농사지은 쌀과 야채로 매일 먹는 밥과 반찬부터 된장, 낫토, 푸성귀무침, 감주 그리고 명절 떡까지 모두 직접 해먹는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바쁠 것 없는 일상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녀의 인생은 느리다. 그녀의 음식도, 그녀의 요리도 모두 느리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슬로푸드'.

히츠미(수제비)는 반죽을 해서 두 시간은 재워야 제대로 맛이 나고, 낫토는 삶을 콩을 볏집에 넣고 눈 속에 묻어서 사흘을 발효시키고, 밤 조림은 2~3달을 재워두어야 제맛이 난다. 몇 시간씩 졸여서 잼을 만들고, 무치고 다듬고 정성이 들어간다. 어떤 것들은 쏟아 부은 정성에 비하여 맛이 없을 때도 더러 있다.

한편, 그녀가 만든 음식은 모두 제철음식이기도 하다. 계절마다 자신이 농사지어 수확하거나 혹은 채집한 푸성귀와 열매를 모아서 만든 음식이다 그녀가 만드는 음식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늘 창조적으로 변한다. 

양배추가 많을 때는 양배추를 색다르게 먹는 방법을 탐구하다 케이크를 만들기도 하고, 밭에 나는 잡초 뱀밥을 무쳐 나물을 만들기도 한다. 두릅과 민트로 튀김을 만들기도 하며, 히츠미를 만들다 남은 숙성된 반죽으로 인도식 차파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여름 장마철에 눅눅한 실내를 건조시키기 위해 피운 장작 스토브의 남는 열에 직화로 스토브 빵과 쿠키를 구워내기도 한다. 요리에 필요한 재료와 양념 역시 그때그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활용한다. 그래서 <리틀 포레스트>는 실험정신이 빛나는 요리책이기도 하다. 

실험정신이 빛나는 요리 만화

시골 살림이지만, 오로지 전통적인 조리법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믹서기도 등장하고, 가정용 떡치는 기계도 나온다. 한꺼번에 많이 빚은 떡은 냉동실에 보관한다. 먹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녀의 인생은 삶에 쫓기지도 않고, 늘 풍부하고, 여유롭고, 게다가 즐겁다.

<리틀 포레스트> 1권에는 열여섯 가지 요리가 나온다. 우스터소스, 낫토떡, 멍울풀, 뱀밥 같은 생소한 요리들도 있지만, 히츠미, 감주, 머위, 양배추, 빵, 매기, 호두밥, 검은 깨밥 밤조림 같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음식들도 많다. 따뜻한 밥 위에 얹어 쓱쓱 밥을 비벼 먹는다는 머위된장과 밤 속껍질 채 먹을 수 있는 밤 조림은 꼭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 반찬이다.

"머위된장을 만들 때, 데친 머위를 기름에다 볶은 후에 된장과 합치면 진한 맛이 우러나와서 더 맛있어집니다. 적당한 분량으로 머위와 된장을 섞고, 머위가 적을 때도 섞고 나서 수  개월 놔두면 된장에 향이 배어서 상당히 맛있어집니다."(본문 중에서)

대부분 음식은 소박하다. 대부분 마을에서 농사지은 재료를 이용하고, 많이 조리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요리하는 과정도 소박하다. 일본사람답게 먹는 양도 소박하다. 손으로 만든 빵과 야채 한 접시, 혹은 머위 된장을 얹어 비빈 밥 한 그릇, 두릅, 민트 튀김과 계란후라이 그리고 야채를 섞어 바게트에 끼워 먹으면 한 끼 식사다. 호두 밥과 검은깨 밥은 간편한 야외도시락이 된다.

볼펜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데, 세밀화처럼 자세히 그리고 실감나게 그린 덕분에 책에 나오는 음식들이 눈앞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작가는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 한다. 마음을 쏟아서 정성을 다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리틀 포레스트>를 펼치면 스시를 파는 한국 일식집에는 없는 진짜 일본음식, 시골 마을에서나 맛 볼 수 있는 일본 음식을 눈으로 마음으로 맛 볼 수 있다. 재료와 요리법이 있어 내키면 한 번 만들어 먹어 볼 수도 있다.

*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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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한 포기 다치지 않기를
클로드 안쉰 토마스 지음, 황학구 옮김 / 정신세계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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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열일곱 살 나이에 미 육군에 입대했고 베트남 복무를 자원하였다. 열여덟 살에 베트남에 파견되어 무기를 손에 들고부터, 수백 명의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직접 가담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7개의 항공훈장과 공군수훈 십자훈장, 명예전상장(戰傷章)을 포함한 많은 상장과 훈장을 받았다.

군대에 가면 진정한 사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육군에 입대한 그는 굴욕과 절망, 무기력한 자신에게 힘들어하다가 베트남 근무를 지원하였다고 한다. 헬리콥터 공격중대에 배치되어 M60기관총 사수가 된 그는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는 전쟁의 상처를 경험하게 된다.

그는 베트남에 있는 동안 625시간 이상의 전투비행과 625회 이상의 전투임무를 수행하였다. 그 모든 전투 임무는 다 사람을 죽이라는 임무였지만 그는 한 번도 그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나에게 적이었다. 가게주인, 농부, 여자, 어린아이, 갓난아기....그 모두가 나의 목표물일 뿐이었다. 로켓과 7.62밀리 기관총이 장착된 무장헬기 세대와, 40밀리 기관포가 장착된 무장헬기 한 대를 몰고 간 우리는 사격을 개시했고, 아무 생각 없이 마을 전체를 파괴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 살인은 완전한 광기였다. 우리는 움직이는 모든 것을 죽였다. 아이들, 물소, 개, 닭... 아무 느낌도 생각도 없었다."(본문 중에서)

끝나지 않는 전쟁

전장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 그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자신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참전자들과 거리를 두었고, 마음속 전쟁은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늘 잠을 잘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 그에게 남은 것은 사회부적응자라는 꼬리표와 매일같이 반복되는 끔찍한 전쟁악몽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사회에 적합하지 않았다. 살인자로만 훈련받았을 뿐, 한 번도 살인자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제멋대로인 채로 내버려졌다."(본문 중에서)

그는 1968년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후부터 1983년까지 술과 마약과 담배와 섹스에 빠져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를 떠돌며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는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그에게 전후(戰後)는 없었다. 베트남 생존자로서 그의 삶은 계속되는 전쟁일 뿐이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그 상처를 안고 현실과 함께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는 항상 권총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밤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운전을 할 때도 심지어 학교에 갈 때도 권총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전쟁은 한 번의 선전포고로 시작해서 한 번의 휴전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쟁의 씨앗은 끊임없이 뿌려지고 그 수확은 영원히 계속된다.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나 역시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많은 면에 상처를 입었다. 전쟁은 내 몸과, 마음과, 영혼에 상처를 남겼다. 전쟁의 현실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도 나와 함께 살고 있다."(본문 중에서)

전쟁의 상처는 그에게만 남아 계속되는 것이 아니었다. 1975년 이후 지금까지 어림잡아 베트남에서 복무했던, 10만명 이상의 미국인 남녀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또한 미국의 노숙자 인구 중 약 40~60%는 베트남 참전군인이라고 한다. 또한 참전 군인은 국민 평균보다 이혼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클로드 안쉰 토머스가 쓴 <풀 한포기 다치지 않기를>은 열일곱에 군대에 들어가 열여덟에 베트남전에 참전하였던, 지은이가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마약과 섹스, 알콜중독자이자 노숙자로 전전했던 청년이 십수 년에 걸쳐 평화순례를 이끄는 선승으로 변해가는 가슴 아프고 감동적인 깨달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마약과 술을 끊은 지 7년이 되던, 1990년 그는 틱낫한 스님이 이끄는 '베트남 참전자를 위한 불교명상 수련회'에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수련회를 통해 틱낫한 스님은 참전자들에게 처음으로 '전쟁에 참가한 참전자들보다 비참전자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었다고 한다.

"만물은 예외 없이 서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누구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법이며, 스스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전쟁에 가장 책임이 있고,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은 비참전자들의 생활방식 그 자체에 있다고 말씀하셨다."(본문 중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베트남을 가지고 산다

그가 쓴 책 <풀 한포기 다치지 않기를>을 읽다보면, 정념명상과 걷기 명상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얻어가는 깨달음의 과정을 쫒아갈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폭력적인 행동은 군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베트남을 가지고 있다. 그 정도는 다르지만 저마다 자신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본문 중에서)

미국정부가 개입한 10년간의 베트남 전쟁에서 대략 5만8000명의 미군이 죽었는데 1990년대 10년 동안 미국에서는 총기사고로 해마다 2만9000~3만9500명이 죽었으며, 어림잡아도 베트남전의 네 배가 넘는 26만명이 죽었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베트남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플럼빌리지를 거쳐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조동종 스승인 버니 글래스먼 스님을 만나서 승려가 된 후 지금까지 평화를 일구고 선 수행에 종사하는 사회활동가들의 국제공동체와 함께 일하고 있다.

그가 평화의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그가 쓴 책 <풀 한포기 다치지 않기를>에서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평화로 가는 길은 살인을 통해서라고 생각하도록 조건화 되었다. 나와 다르고 내 믿음을 위협하는 것은 모두 나의 적이라고 배웠다. 삶의 유일한 목적은 승리이고, 승리는 적의 파멸과 패배를 통해 얻어진다고 배웠다."

"사실 내 행동은 전 우주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종이 한 장을 함부로 대하거나 남용한다면, 그것은 곧 나 자신을 학대하고 남용하는 것이고 여러분을 학대하고 남용하는 것이다."

"내가 현실에 입을 다물고 적극적으로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하지 않고 무지와 망각 속에 산다면, 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폭력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뺏은 목숨에 대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을 되살릴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깨어남으로써 고통을 영속시키지 않고, 의식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감으로써 과거의 행동에 대해 속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불교수행을 통해 깨달았다."

"결국 모든 책임과 행동은 개인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곳도 바로 이 개인이다. 쉽게 말하자면, 비폭력이란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평화는 삶의 방식이다

그는 전쟁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서 평화에 이르는 길을 삶을 통해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치유와 변화를 경험하고 깨어난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1995년 승려가 되었을 때 탁발승이 되기로 서약하였다.

탁발승은 소유물을 가지지 않고, 절에서 살지 않고, 집 안에서 영구히 살지 않고,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지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것은 영적인 수행으로 떠돌겠다는 맹세이다. <풀 한포기 다치지 않기를>에는 탁발승이 되어 평화를 위해 걷는 그의 여정이 담겨 있다.

폴란드에서 베트남으로 아우슈비츠와 독일, 폴란드, 세르비아, 체코, 이탈리아를 그리고 미국대륙을 횡단하는 평화여정과 평화를 향해 걸으면서 얻어가는 깨달음의 과정이 담겨있다. 그가 걷고 명상하는 삶을 통해 깨달은 평화에 관한 메시지는 이렇다.

"평화는 하나의 관념이나 정치적운동이나 이론이나 교리가 아니다. 평화는 삶의 방식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살겠다는 굳건한 결심, 고통에 대한 태도를 바꿔서 세상과 일상사에 비폭력의 태도로 임하겠다는 결심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바깥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없다. 우리 자신이 평화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유일한 길이다."(본문 중에서)

그가 쓴 책 <풀 한포기 다치지 않기를>에는 그가 경험한 치유를 위한 '듣기와 말하기' 그리고 부록으로 여러 가지 명상 수행을 위한 기본 적인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우리 자신이 평화가 될 수 있는 앉아서 하는 명상, 걷기 명상, 일 명상, 식사 명상, 주의 깊은 경청과 정념을 가지고 말하기와 같은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가 쓴 책 <풀 한포기 다치지 않기를>은 전쟁과 폭력의 실체를 알아차리고, 평화를 향한 새로운 삶을 찾는 이들에게 스스로 평화의 삶을 사는, 스스로 평화가 되는 길을 열어주는 깨달음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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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풀꽃 - 세밀화로 그린 어린이 풀꽃 도감 세밀화로 그린 어린이 자연 관찰
이영득 지음, 박신영 그림 / 호박꽃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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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바깥으로 나가면 어디서나 흔하게 풀꽃을 볼 수 있다. 아이도 어른도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은 풀꽃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트에서 만나는 이웃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만,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무심히 지나치게 마련이다.  

학교 꽃밭에도 있고, 보도블록 틈에도 있고, 버려진 화분에서도 자라는 풀꽃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려면 인사를 나누고 생김새와 이름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고향을 물어보고, 나이를 물어보고, 취미와 특기를 물어보듯이 씨는 어떻게 맺고 꽃은 어떻게 피는지 알고 있어야 더 친해질 수 있는 것이다.

세밀화로 그린 어린이 풀꽃 도감

아주 작은 풀꽃에도 이름이 있다. 우리가 흔히 '잡초'라고 부르는 것들도 모두 이름이 있다. 풀꽃을 사랑하고 자연과 생명으로 소중히 섬기는 일은 하는 어떤 선생님은 "그들이 잡초면 우리는 모두 잡놈"이라고 하셨다. 이름을 모른다고 '잡초'라 불렀으니, 우리 이름을 모르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잡놈'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다는 뜻이다.

풀꽃에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면 풀꽃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영득이 글을 쓰고, 박신영이 그림을 그린 <내가 좋아하는 풀꽃>은 '풀꽃'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풍부한 삽화와 다정다감한 이야기로 풀어낸 책이다.

덩치는 작지만 생명력이 강한 풀꽃들이 어떻게 씨를 퍼뜨리고 척박한 땅에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지를 자세하고 쉽게 알려주는 책이다. 아이들이 보기 쉽도록 그림책처럼 엮은 이 책은 사진보다 훨씬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세밀화와 귓속말 속삭임 같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며느리배꼽' 편에서 전해주는 귓속말 같은 속삭임은 이렇다.

며느리배꼽은 이름이 별난 풀이에요. 배꼽같이 오목한 곳에 열매가 달린다고 이런 재미난 이름이 붙었어요. 열매는 풀색에서 보라색이 되었다가 남색으로 익는데, 반들 반들 윤이나오. 며느리배꼽은 덩굴로 자라요.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있어서 다른 물체에 잘 붙어서 올라가요. 줄기뿐 아니라 잎자루에도 날카로운 가시가 나 있어요. 살갗이 살짝 긁히기만 해도 벌겋게 되고 가려워요. 잎은 세모꼴인데 먹어보면 새콤새콤 신맛이 나요. 비슷한 풀로 며느리밑씻개가 있어요." (본문 중에서)

애기똥풀' 편에서 전해주는 귓속말 속삭임은 이렇다.

"애기똥풀은 줄기를 자르면 샛노란 물이 나와요. 이것이 꼭 갓난아기 똥 같다고 애기똥풀이에요. 애기똥풀 즙에는 독이 들어 있어서 먹으면 안 돼요. 소도 그걸 아는지 애기똥풀은 뜯어먹지 않아요. 하지만 벌레 물린 데 바르면 잘 낫는대요. 애기똥풀 꽃은 배추꽃을 닮았는데 크기가 좀 더 커요. 가운데 있는 꼬부라진 암술대가 유난히 눈에 띄어요. 애기똥풀 줄기는 가느다랗고 억세게 생겼어요. 그래서 까치다리라는 별명도 있어요. 잎에는 흰 털이 많아요." (본문 중에서)

풀꽃 이름에 담긴 뜻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풀꽃>에는 공원이나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꽃 38종이 실려 있는데, 풀꽃 소개는 모두 자기 이름에 담긴 뜻을 밝히는 첫인사로 시작된다. 소가 잘 먹어 쇠뜨기, 닭장 옆에서 자라 닭의장풀 같은 식이다. 이 특징을 모아서 노래를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쇠뜨기] 소가 잘 뜯어 먹어서 쇠뜨기예요.
[강아지풀] 이삭이 강아지 꼬리를 닮아서 강아지풀이에요.
[닭의장풀] 닭장 옆에서도 잘 자란다고 닭의장풀이에요.
[환삼덩굴] 이파리가 삼 잎을 닮았다고 환삼덩굴이에요.
[소리쟁이] 바람이 불면 열매가 부딪혀 소리를 낸다고 소리쟁이에요.
[쇠비름] 비름나물 맛이 난다고 쇠비름이라 한대요.
[별꽃] 꽃이 별 모양을 닮았다 해서 별꽃이에요.
[패랭이꽃] 꽃이 패랭이 같다고 패랭이꽃이에요.
[할미꽃] 할머니처럼 꼬부라져서 피어요.
[애기똥풀] 줄기를 자르면 샛노란 물이 나와요
[뱀딸기] 뱀이 나올 듯한 곳에서 산도가 뱀딸기예요.
[양지꽃]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 양지꽃이에요.
[오이풀] 잎에서 오이 냄새가 난다 해서 오이풀이에요.
[살갈퀴] 잎 끝이 갈퀴처럼 갈라져 있어서 살갈퀴에요.
[돌콩] 아주 작지만 야무지다고 돌콩이에요.
[자운영] 무리 지어 핀 모습이 자줏빛 구름 같다고 자운영이라고 해요.
[토끼풀] 토끼가 잘 먹어서 토끼풀이에요.
[괭이밥] 고양이 밥이라는 뜻, 배 아플 때 고양이가 먹는다고 해요.
[제비꽃] 제비가 돌아오는 봄에 핀다고 제비꽃이에요.
[달맞이꽃] 달 뜰때쯤 핀다고 달맞이꽃이라고 해요.
[박주가리] 열매껍질이 박 바가지를 닮았어요.
[꽃마리] 꽃차례가 또르르 말려 있다가 핀다고 꽃마리예요.
[꿀풀] 꽃에 꿀이 많다고 꿀풀이에요.
[까마중] 열매가 스님 머리를 닮아서 까마중이라 한대요.
[큰개불알풀] 열매 모양이 개 불알을 닮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어요.
[질경이] 목숨이 질기다고 질경이에요.
[엉겅퀴] 피가 날 때 찧어 붙이면 피를 엉겨서 멎게 한다고 엉겅퀴가 되었대요.
[개망초] 밭에 나면 농사를 그르친다고 개망초라는 이름이 붙었대요.
[뚱딴지] 뿌리를 파보면 엉뚱하게 감자같은게 달려 있어 뚱딴지에요.
[왕고들빼기] 키도 크고 꽃도 커서 왕고들빼기예요.

이런 식으로 이름과 이름에 담긴 뜻을 소개 후에는 어디서 사는지 어떻게 사는지 꽃모양은 어떤지, 꽃은 언제 피는지, 키는 얼마나 크는지, 분류는 어떻게 하는지, 줄기는 어떤지, 먹을 수 있는지, 맛은 어떤지, 다른 이름으로는 어떻게 부르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세밀화 그림은 꽃과 줄기 열매 자라는 모양 그리고 비슷하게 생긴 꽃을 비교해서 볼 수 있도록 함께 그려놓았다.

"풀은 지구의 살갗이에요."

지은이는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풀꽃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 들, 숲은 모두 풀꽃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풀꽃은 지구를 감싸고 있는 우리 몸으로 치면 피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풀은 지구의 살갗이에요. 벌거벗은 맨땅에 풀이 자라면 메말랐던 땅이 살아나요. 풀꽃이 흙을 움켜쥐고 있어서 비가와도 쓸려 가지 않아요. 흙이 촉촉해지고 벌레도 생겨나요. 새가 날아들고 동물도 찾아와요. 풀은 동물 먹이가 되고, 보금자리 구실을 해요." (본문 중에서)

책 끝머리에는 종류가 다른 풀꽃들이 어떤 방법으로 번식하는지가 예쁜 세밀화로 그려져 있다. 꽃목걸이 만들기, 민들레시계, 강아지풀 콧수염, 바랭이 우산, 쇠뜨기 수수께끼, 질경이 씨름 같은 풀꽃으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도 소개하고 있다.

귓속말 속삭임 같은 글을 쓴 이영득 선생님은 동화작가이면서 들꽃 생태 안내자이다. 숲에서 어린이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며, 인터넷 카페 '우리 풀꽃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풀꽃지기로 활동하고 있단다.

풀꽃을 손수 기르며 정성껏 그림을 그린 박신영 선생님은 일산에서 세밀화 모임을 하면서 우리 풀꽃을 그리고 있단다. 국립수목원에서 희귀식물을 세밀화로 그리기도 했고, 세밀화로 유명한 <보리 어린이 풀 도감>을 그렸다고 한다.

학교, 마을놀이터, 동네 쌈지 공원 등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풀꽃들을 골라 엮었다. 어른이 읽고 보아도 좋은 책이지만, 유치원,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산으로 들로 숲으로 나들이 갈 때 함께 가면 쓰임이 많을 책이다.

<오마이뉴스>와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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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6 18: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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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나트 2008-10-18 10:19   좋아요 0 | URL
이영득 선생님 책들은 모두 풀냄새가 난답니다. 좋은 책을 나눌 수 있어 기쁨니다. 백희님 칭찬 남겨주셔서 큰 격려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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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이 쓴 <촌놈들의 제국주의>

시청 광장과 광화문에서 50일이 넘게 진해되는 촛불집회를 보면서 수 없이 여러 번 참 많이 변하고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오늘 흐르는 강물이 20년 전 그 강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은 강가에 나가 서서 20년 그 강물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곤 하는가 보다. 20년 전 그 시절에는 지금과 집회와 시위문화만 달랐던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도 분명히 달랐다. 

그 때 그 시절 진보적 지식인과 변혁을 지향하는 운동가들은 한국사회가 식민지인지, 혹은 반식민지인지, 혹은 신식민지인지 하는 논쟁으로 수많은 밤을 새웠다. 한국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생각이 같고 다름으로 친구와 동지도 나뉘곤 하는 ‘파란만장’한 경험을 하였었다. 

그런데 어느새 20년이 흘렀는데, 한국 사회가가 ‘제국주의’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주장에는 한국사회가 식민지를 만들어내지도 못하였고, 식민지를 만들 가능성과 능력도 없으면서, 식민지가 없이는 지탱하기 어려운 제국주의에서 생존의 돌파구를 찾아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깊은 우려 함께 담고 있다.

올림픽 성화 봉송 중에 일어난 중국인들의 폭력시위는 앞으로 계속 반복되면서 커져나갈 이런저런 충돌의 서곡에 불과하다. 일본은 ‘평화국가’에서 보통국가로 군사력을 키워가는 전환을 꾀하고 있으며, 독도문제 하나 만으로도 한일 관계는 언제든지 대결구도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이틈에서 한국은 북한과도 충돌하고 일본, 중국과도 틈틈이 충돌하며 왜곡된 경제의 길을 걸어갈 가능성이 높다. 만약 한, 중, 일 삼국이 끝없는 팽창과 경쟁관계로 치닫는다면, 향후 30년 내에 제국주의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우석훈의 주장이다. 한, 중, 일을 위한 평화경제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우석훈이 쓴 한국경제 대안시리즈 3권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이처럼 전쟁의 위험에 대한 심각하고 무거운 경고를 담고 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

한국경제 대안시리즈 1권에서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우석훈은, 이번 책에서 한국자본주의를 ‘촌놈’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국 젊은이들이 사망각서까지 쓰면서 아프가니스탄 선교에 나서는 현상을 어설픈 제국주의, 한국자본주의를 ‘촌놈’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무런 준비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17~18세기에 유럽이 했던 제국주의의 길을 조절장치 하나 없이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슬픈 죽음들은 한국자본주의 발전과정의 합리적 전개에 관한 논리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본문 중에서)

서구열강들과 달리 한국은 한 번도 제국주의 경영을 경험해 본적이 없으면서, 종교적 이유든 외교적 이유든 외국에서 아프가니스탄 납치사건과 같은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뭔가 제국주의 비슷한 걸 하고 싶은데, 능력이 안 따라주다 보니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이 지은이의 생각이다.

역사가 기계적으로 순환된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한 중 일 세 나라 모습이 19세기 중반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가 서로 경쟁하며 독자적 ‘민족국가’를 키워나가던 시기와 닮았다는 것이다. 

“제어되지 않은 팽창, 무한한 외부 자원 및 시장을 요구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어느 순간 전쟁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자본주의는 어느 정도 규모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그 안에 전쟁을 부르는 힘도 커진다는 것을 지난 2세기 동안의 세계사가 보여준다.”(본문 중에서)

실제로 일본과 중국은 남중국해 석유수송로를 둘러싸고 언제든지 충돌할 위험을 안고 있고, 독도와 관련된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한일관계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세 나라가 아프리카에서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들어섰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라고 한다. 이런 과격한 민족주의는 이십대나 십대로 내려가도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일본과 중국 역시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지은이의 판단이다.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보여주는 지표

2007년 여름 한국을 강타한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은 18~19세기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기독교를 앞세워 식민지를 개방하였던 것처럼 한국 기독교인들도 수년전부터 동남아와 중동에 진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일본, 독일과 마찬가지로 피납 당하는 국민이 된 것은 어설프지만 제국주의적 성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국주의이고는 싶으나 미국 눈치를 살펴야 하고, 또 아무도 한국 같은 엉성한 나라에게 기꺼이 식민지가 될 턱이 없는 이 기묘한 현상을 우리는 ‘촌놈들의 제국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본문 중에서)

다음은 지은이가 주장하는 한국형 ‘촌놈 자본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첫째, 오랫동안 유엔기후협약분과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우석훈은 2007년 발리에서 작성된 UN기후변화 협약인 ‘발리 로드맵’에 의해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 받은 새로운 협상에서 한국은 개도국 지위를 벗어났다고 한다. 21세기로 넘어오는 그 언저리 어디쯤에서부터 한국은 선진국으로 질적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선진국으로 질적 변화가 ‘한국 제국주의’로 전환이라면, 그 전환점은 분명 노무현 정부의 어느 한 시점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국내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파시즘으로 전환하면서 제국주의 체제를 강화한 독일, 이탈리아와 노무현 정권기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을 한국제국주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좌파정권이라기 보다는 민족주의 정권에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둘째, 이라크 파병은 민족패권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한국이 비용을 지불하는 경제적 군사 파병으로 한국자본주의 역사에서 처음 일어난 일이며, 본격적인 제국주의형 자원전쟁에 참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용병에 가까웠던 월남전과는 달리 순전히 ‘국익’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강요에 의한 마지못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해외 군사활동을 강력히 바라는 정부와 국익(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고 믿었던 국민들이 원해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는 주장이다. 

셋째, 수출주도형 산업국가인 한국은 외연확대에 의해 움직여온 경제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대체로 외부 힘을 원동력으로 작동하는 경제가 패권주의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연변지구와 동남아로 확대되기 시작한 한국의 경제패권주의는 조금씩 제국주의 형상을 갖춰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정치 및 이념은 아직 제국주의에 적합하지 않지만, 한국경제는 이미 제국주의 구조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넷째, ‘다이나믹 코리아’를 국정운용의 기조로 삼은 것은 김대중 정부시기에 한국자본주의의 기본성격이 패권주의적으로 전환하였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국정원칙으로서 ‘동북아 중심국가론’ 역시 건설 산업을 중심으로 국가의 제국주의적 재편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북아 중심국가론의 의미

다섯째,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동남아시아나 베트남 같은 곳에서 한류는 전형적인 제국주의형 문화 속성을 나타내고 있고, 한류에 대한 국민적 열광은 정부 정책과 문화 예술계마저도 제국주의적 흐름에 급속하게 편성시키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특히, 황우석 사건은 제국주의를 향한 사회문화적 전환을 보여주는 시금석과 같다는 것이다.

국민 80%가 줄기세포 연구로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국익’ 때문에 과학계의 진실, 가임여성들의 인권, 불확실한 경제성 추정 등의 문제를 모두 덮고 진행되었던 황우석 사건은 수출중심주의에 대한 열광과 기본적인 궤를 같이한다는 주장이다. 당시 98% 국민이 유전공학을 이용한 줄기세포 수출산업화에 찬성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이는 그만큼 한국에서 국가주의와 패권적 팽창에 대해서 반대할 힘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미 인문학이나 철학도 인류 보편주의나 역사적 상식에 비추어 한국의 팽창주의를 저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셈이다.”(본문 중에서)

여섯째, 이미 80%를 넘어선 한국의 대외의존도가 싫든 좋든 외부시장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 주목하라고 한다. 노무현 정부 4년째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된 ‘경제 영토’라는 단어는 단순한 정책 마케팅을 넘어서 것으로, 이미 한국경제는 식민지 없이는 지탱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가장 쉬운 방식은, 한국자본주의가 이미 식민지를 필요로 하는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들었으나 단독으로 제국주의를 구현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을 등에 업고 사실상 제국주의로서 기능하려고 한다는 가설에 있다.”(본문 중에서)

따라서 한미 FTA에 대한 노무현 정부가 보여준 과도한 집착 역시 이러한 경제영토 확장이라는 논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일곱째,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반공형 극우파와 민족주의형 극우파들이 빠른 속도로 극우사회의 기반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점이 있다. 좌파들마저 ‘부국강병’을 외치는 작금의 모습을 종합해보면, 노무현 정부 5년은 한국 제국주의가 첫발을 사회적으로 내디뎠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내부 식민지 전략 강화와 남북통합

이 외에도 <촌놈들의 제국주의>에는 한국사회와 경제가 ‘제국주의적’ 성향을 보여주는 크고 작은 징후들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서 소개되고 있다. 식민지를 만들 능력도 가능성도 없으면서 제국주의적 흐름에 편승해버린 ‘촌놈 제국주의’ 한국사회와 경제의 미래는 무엇인가?

우석훈은 필연적으로 “내부 식민지 전략의 강화와 건설자본형 제국주의”로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과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북한 당국자들이 이 대목을 읽는다면,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분노에 찬 성명서 발표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다음과 같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보다 가깝고 동남아보다 임금이 싸고 아프리카보다 훨씬 양질의 노동력을 가지고 있는 북한을 식민지로 전환시키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인(?)눈으로 볼 때 오히려 이상한 일인지도 모른다."(본문 중에서)

‘햇볕정책’이던, ‘대북강경책’이던 이제는 상대정부를 인정하고 내부 식민지로 가느냐, 아니면 상대정권을 무너뜨리고 가느냐의 차이만 남았을 뿐이기 때문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는 주장이다. 통일 근본주의와 이윤중심의 민족패권주의는 결국 북한을 경제 식민지화 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고, 이윤 중심주의에 기반한 자본의 북한 진출 경향은 점차 강화될 것이라고 한다.

우석훈은, 북한과의 경제통합에서 ①생태도시와 생태건축,②생태농업, ③자연생태 보전 이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하지만 금강산 골프장 같은 일이 일어나거나 핵폐기장 같은 혐오시설이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치지 못한다. 아울러, 남북통합을 바탕으로 한민족 패권주의가 득세한다면 국방비는 늘어나고 동북아시에서 긴장은 더욱 심화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30년 동안, 한, 중, 일 삼국을 둘러싼 극우파 블럭 확대와 생태적 위기, 성장의 한계, 석유자원 중심의 에너지 위기, 국가 단위의 빈부격차문제들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군산복합체와 제국주의적 산업구조는 이런 갈등과 위기를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다분히 막연한 ‘평화 우위’를 말 하지만, 현실에서 평화가 전쟁을 누르는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 한다.

“전쟁이 벌어지거나 전쟁과 가까워질 때는 돈을 버는 특정한 사람들과 특정 직업이 존재하는 반면, 평화가 유지될 때 이 평화의 경제적 가치는 일종의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아무에게도 경제적 혜택을 직접적으로 주지 못한다.”(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평화를 누리는 것이야 좋아하지만, 정작 그 평화라는 공공재를 위해 애쓰려는 개인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중, 일 삼국이 앞으로 30년 평화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단위에서 “평화가 현실적으로 필요한 시민들로 국민경제의 절반을 유지해야”하며, 평화로 부터 이익을 얻는 산업이 육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전쟁 없는 유럽’에 대한 열망이 담긴 EU 통합과 비슷한, 중, 일 경제 통합을 통하여 평화체제 구축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중, 일에서 평화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이 현실에서 다양하게 시도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석훈은 닫는 글을 통해 특별히 학교를 통해 나타나는 우리사회의 파시즘적인 현상을 돌아보아보자고 호소한다. 수업은 더 적게 하고 대학등록금을 50만원 수준으로 낮추어, 억압은 줄이고 자유를 늘리며 다양성을 넓히지 않으면, 더 이상 십대들이 버틸 수 없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 68혁명처럼 결국 중, 고생들이 못 참겠다고 들고 일어나”기 전에 “스위스나 스웨덴처럼 어른들이 알아서 바꾸어”주지 않으면, 종국에는 아이들이든 ‘촛불’이 ‘횃불’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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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젊은 영혼들의 기록
황광우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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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빨아드리는 글쓰기는 황광우가 가진 남다른 재주인가보다.

1985년에 대학에 입학한 나는 참 많은 후배들에게 그가 쓴 책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와 <들어라 역사이 외침을>을 읽게 하였다. 그리고, 대학을 마치고 혹은 감옥살이를 하고 나서는 반드시 '현장'으로 옮겨야 한다는 중압감을 가졌던 마지막 세대였다.

대학 3학년이 되면서부터 시작한 노동야학에서도 내가 만나는 백여명이 넘었던 노동자들과 함께 읽었던 입문서 역시 '소삶'과 '들역'(우리는 그 때 이렇게 불렀다.)이었다.  이 두 권의 책은 출간되자마자, 소위 의식화교육의 입문서로 자리매김하였다.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철학공부의 입문서였던 <철학에세이>를 쓴 사람도 황광우와 함께 활동하던, 조성오라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황광우와 함께 활동하던 이들이 쏟아낸 숱한 번역서를 읽고 공부하였던 이들이 이른바 '386세대'다. 나는 단 한번도 그들 만난적이없지만 80년대 후반 사회과학서점을 통해 그가 참여했을 인민노련기관지를 꼬박 꼬박 사설 읽은 적이 있다.

이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는 황광우의 개인사와 같은 책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자서전이나 개인사는 아니다. 개인사의 형식을 빌었기 때문에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을 만큼 편안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읽는이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마치 밤을 세우면서 70년대, 80년대 활동가들의 무용담을 듣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그 내용이 어두운 과거와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은이 특유의 '혁명적 낭만주의'가 스며있기 때문인지 큰 패배보다는 작은 승리를 읽으면서 기쁨을 맛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황광우를 통해서 혹은 황광우의 지인을 통해서 혹은 그가 찾아낸 역사의 기록을 통해서 그 시절 전사들, 운동가들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된다. 윤한봉, 김남주, 권인숙, 박종철, 전희식.......과 같은 이들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고,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나는 최근 6.10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여, 지역 운동사를 정리하는 작업 중 일부를 맡았었다. '기록'이'기억'을 이긴다는 말이 있지만, 당시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 시절이었다. 기록은 곧 범죄의 증거가 되는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지역 운동을 정리하는데도 참 많은 어려움이있었다.

나는 20년전 활동가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시도하였다. 불과 20년 전의 일이지만, 사람들의 기억이 일치하지 않는 곳이 너무 많았다. 기억하는 과거중에는 이미 '역사'가 아니라 '서사'가 되어버린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기록물 하나만 발견되어도 그것이 사실을 정확히 기록으로 남기는데 아주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잘 안다. 이 정도 기록을 정리하는데는 어마 어마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책을 읽는 이들은 마치 지은이가 소주잔을 마주놓고 자신의 무용담을 주저리 주저리 풀어내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글을 쓴이는 많은 이들의 실명을 담아서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야하는 많은 부담을 안고 있었으리라

지은이의 탁월한 기억과 지인들의 증언으로 엮어진 이 책은 1970년대, 80년대 한국의 노동운동사를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실감나는 문장으로 정리하였다는 점에 있어서도 큰 성과라고 생각된다.

책을 읽는 동안, 탁월한 감각을 지닌 어떤 영화감독이 이 책을 읽는다면, 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얼마전 마산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조희연 교수로부터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과제는 세대를 잇는 일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나는 87년 6월 항쟁에 4살베기 꼬마였던 후배와 함께 토론회에 참석하였다. 그는 토론회를 마치고 나오며 "솔직히 모르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틀어놓았다. 이 책이 나와 그 후배 사이에 세대간의 간극을 메우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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