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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하게 살기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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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쓴 새 책이 나왔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며 여간 설레지 않았습니다. 마침 지난 5월에는 이오덕, 권정생, 하이타니겐지로 선생님의 삶과 책을 전시하는 '아이처럼 살다' 전시회가 서울도서관에서 열리기도 하였지요. 


'온 삶을 아이들처럼 살다 간' 세 분을 모두 좋아합니다만, 어쩐지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의 작품이 가장 끌리더군요. '아이처럼 살다' 전시회에 갔더니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을 일컬어 "상냥함을 태양처럼 품고 산 사람"이라고 하였더군요. 


그가 쓴 책들에서 건져낸 표현 같더군요. <상냥하게 살기>, <태양의 아이> 같은 책 제목들이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상냥하게 살기>는 "일본의 대표 작가이자 교육실천가였던 저자가 세상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던 40대 무렵에 발표한 64편의 글을 모은 산문집"입니다. 


자급자족 생활을 위해 아와지 섬으로 귀농한 뒤에 경험하는 초보 농사꾼의 실패와 성공담, 농업을 천대하는 정부 정책, 교과서 왜곡과 헌법 개정에 대한 비판적 입장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경험하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어린이 문학작품에서 알아챌 수 없었던,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의 일본 사회와 정치에 대한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특히 5.18 광주민중항쟁과 서준식, 서승씨 간첩조작 사건을 통해 애국심과 통일에 관하여 쓴 글을 읽을 때는 놀랍고도 서글펐습니다. 



자연이 사람을 상냥하게 만든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어는 역시 '상냥함'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상냥함은 그냥 친절함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자연과의 만남,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깨달음으로부터 비롯되는 마음가짐 같은 것입니다. 


"밭을 갈고 채소를 자급자족하면서 나는 수많은 생각을 했다. 앞으로 하나하나 이야기할 생각인데, 모든 생명은 둘도 없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내 안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 여태껏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을 보아도 그것이 생명의 집합체이며 세상의 모든 생명은 대등한 관계로 이어져 있기에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 <상냥하게 살기> 본문 중에서


그는 아와지 섬으로 들어와 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상냥해진다' 하더군요. 섬과 도시 사이를 바다가 막아주기 때문에 '상냥해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합니다. 


책에는 떠돌이 닭과 병아리들을 함께 키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떠돌이 닭이 병아리들이 병아리들의 대리모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기대는 빗나가고 말지만 서로 싸우거나 괴롭히는 일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자연 그 자체로 살아가는 동물은 자기 생명을 지키는 일에는 냉혹하리만큼 가차 없지만 다른 생명에게 비뚤어진 간섭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 <상냥하게 살기> 본문 중에서


하이타니 겐지로가 직접 유정란을 부화시킨 병아리들을 키우는데, 이웃집 농부가 알을 품던 닭 한 마리를 데려다주면서 생긴 일입니다. 자연의 섭리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살아가는 사람의 삶, 그리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모습이 이처럼 다릅니다. 그 까닭은 사람이 자연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1934년생인 하이타니 겐지로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밀'은 가난의 기억으로 남은 농작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제비가 주식이었고 볶은 밀이 귀한 간식이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만이 가지는 밀밭에 대한 추억이 있더군요,


"밀기울을 물에 풀어 끓여 먹은 적도 있다. 아무리 없이 살던 시절이라지만 정말로 먹기가 힘들었다. 그걸로 한 끼를 때워야 할 때면 눈물이 복받쳤다. 그 눈물을 보고 더 힘들어했던 건 부모님이었으리라." - <상냥하게 살기> 본문 중에서


섬에 와서 처음 밀농사를 지어 수확을 앞두고 있을 때 어린 시절 밀에 얽힌 추억들을 회상하면 쓴 글입니다. 밀 이삭을 뭉쳐 넣어 껌처럼 씹던 추억으로부터 어머니를 도와 맷돌을 돌리던 기억으로까지 이어지더군요. 


싼 값에 팔린다는 것은 누군가 그 희생을 치른다는 것


이 책에는 섬으로 귀농하여 살면서 경험하는 농사이야기가 많습니다만, 농사를 지으며 일어나는 의식의 변화과정도 흥미롭습니다. '마을 경제2'라는 글에는 싼 것이 좋은 것이라고 믿었던 생각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도시에서 살면 무조건 값싼 물건이 최고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싼 것이 최고라는 사고방식에는 큰 함정이 있다. 몇몇 사람의 희생으로 물건값이 싸졌는데도 그런 물건을 사는 것은 죄라는 의식이 없다면 그 사회는 타락하고 만다." - <상냥하게 살기> 본문 중에서


얼마 전 읽은 야마오 산세이의 책에서도 이런 글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도쿄에서 살다가 자급자족을 하기 위해 야쿠시마로 귀농한 야마오 산세이 역시 어느 날 가게에서 '야자 잎 모자'를 헐값에 사면서 수공예로 모자를 만든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하이타니 겐지로 역시 농산물 값이 너무 싸고 농민들이 바라지 않는데도 유통과정에서 투기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음식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고백합니다. 농산물 값이 싸다는 것은 어떤 농민이 그 희생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슈퍼에 파는 깨끗하게 손질되어 진열된 채소의 이면에는 농민들의 눈물이 숨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밥풀 하나도 남기지 못하게 하던 내 아버지도 '쌀 한 톨이 농부의 땀 한 방울'이라고 가르치셨지요. 바로 이런 깨달음도 그가 말하는 '상냥함'의 원류입니다. 



상냥함의 원류는 자연과 아이들


하이타니 겐지로가 말하는 상냥함의 또 다른 원류는 아이들입니다. 이 책의 2부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이들의 삶과 아이들이 쓴 글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인간적인 상냥함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어떻게 체득되는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생활과 삶을 통해서 체득되는데, 이때 생활이란 물질적인 풍요여부와 상관없이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과정을 말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생활과 자신이 단단히 이어져 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더 없이 상냥해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권위만 휘두르거나 아이의 비위를 맞추는데 급급할 경우 단절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두에 잠깐 언급하였던 것처럼 이 책에는 하이타니 겐지로의 한국 정치상황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레이건과 전두환사이에 오고 간 '인권보다 안보가 우선'이라는 공동 성명서 읽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과연 무엇이 살아 있는 것이고 무엇이 죽은 것입니까. 하루 삼시 세끼 끼니만 이어가면 사는 것입니까? 도대체 한 나라에서 어린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백 수천 명이 자기 나라 군인들한테 희생되어 피를 흘려가며 쓰러져 죽어 가는데 나만, 우리 식구만 무사하면 된다는 말입니까?'라고 광주사태에 항의하고 분신자살을 시도한 젊은 노동자 김종태 씨의 숭고한 민족애는 뭐가 되는가." - <상냥하게 살기> 본문 중에서


책을 읽다 한국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놀랐고, 저자가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라웠습니다. 아마 한국인들 중에도 5.18광주민중항쟁은 알아도 김종태씨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또 재일교포 간첩단(서준식, 서승 형제) 사건으로 온갖 고초를 겪었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그가 쓴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하이타니 겐지로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애국심이란 단순히 적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만 아니다


하이타니 겐지로는 두 아들이 죽음 목전에까지 가는 고초를 겪은 서준식, 서승 형제 어머니 오기순씨가 조국을 원망하지 않고 조국의 국민들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조국애'란 무엇인가 하고 반문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애국심은 가상의 적국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애국심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장애인이 웃는 얼굴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는 마음, 길을 걷다가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는 마음을 우리는 애국심이라고 부른다." - <상냥하게 살기> 본문 중에서


전쟁이 났을 때 가장 먼저 고통 받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는 마음이 애국심이고, 정치가들과 부도덕한 기업들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으려는 마음이야말로 애국심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민중에게는 깊은 인간애와 높은 윤리의식이 있는데 나라의 지도자들에게는 없다는 점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말합니다. 호전적인 정치가들을 낳는 풍토까지 똑같은 것이 너무 슬픈 일이라고도 이야기 하더군요. 


하이타니 겐지로는 '오키나와'에 대해서도 어떤 부채의식 같은 미안함 혹은 애틋한 마음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마오 산세이의 책에서도 오키나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감대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오키나와 풍진아'라는 글이 있습니다. 1965년 오키나와를 휩쓴 풍진 때문에 난청을 앓는 장애아가 600명이나 태어났는데도 본토에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키나와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사실 오키나와는 단순히 차별 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오키나와의 역사를 보면 오히려 국가내 내부 식민지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베트남전 참전 죄값을 치르는 오키나와 아이들


하이타니 겐지로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풍진에 감영된 것은 미군들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사실은 이미 충분히 확인되었는데, 일본 정부만 외면하고 있다더군요. 베트남 전쟁을 위해 오키나와에 드나들었던 미군들이 미국에서 대유행하던 풍진을 옮겨왔다는 것입니다. 


"풍진의 감염원이 미군이라면 (난청을 앓는)이 아이들은 분명 전쟁 희생자입니다. 아무 죄도 없는 이 아이들이 베트남전에 가담한 일본인의 죄값을 대신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 <상냥하게 살기> 본문 중에서


하지만 절대 다수의 많은 일본인들은 오키나와에 이런 장애아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이 일본의 현실이라고 합니다. 독자들은 또 한 번 애국심에 대하여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끝으로 단순한 친절을 넘어 서는 저자가 생각하는 상냠함에 대하여 조금 더 소개해 보겠습니다. <상냥하게 살기>라는 책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저자는 여러 글에서 상냥함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인간의 상냠함은 조상이 남겨준 문화유산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느냐에 달렸다."


"그것보다 더 힘들고 슬픈 것은 사람들 마음 속에서 서민감각이라는 상냥함이 사라지는 일이다." 


"섬사람들의 상냥함은 모든 생명을 대등하게 바라보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것 같았다."


"오키나와는 그런 상냥함의 문화로 지탱되어온 곳이기에... 인간의 존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수업을 하자 다연한 일이지만 오키나와 아이들은 훌륭한 집중력을 보였다."


"아이들은 모든 사라에 매우 예민하다. 아이들의 상냥함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평등하다'는 생명의 근원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생활과 자신이 단단히 이어져 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더 없이 상냥해진다."


"어린이가 지닌 상냥함의 근원은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느끼는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냥함은 인간의 조건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길'로써 존재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상냥하게 살기> 본문 중에서


저자는 아이의 인생이든 어른의 인생이든 둘도 없이 소중하다는 의미에서 대등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함께 배우려는 자세는 늘 아이보다 부모나 교사에게 부족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어른들을 얕잡아 본다고 하지만 실은 아이를 얕잡아 보는 부모와 교사들이 훨씬 많다고 주장합니다. 


"고난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야말로 인간적인 배려가 몸에 배어 있고, 깊은 절망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한없는 상냥함을 지닐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아이들에게서 배운 상냥함을 잃지 않고 살다 세상을 떠난 아이를 닮은 어른이었습니다. 


2005년 가을 식도암과 췌장암 판정을 받은 저자는 약물치료를 거부하고, 자신의 생명을 자연에 맡긴 채 살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2006년 11월 23일 유언에 따라 장례식을 하지 않았으며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고난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야말로 인간적인 배려가 몸에 배어 있고, 깊은 절망을 헤치고 나온 사람만이 한없는 상냥함을 지닐 수 있다"

"인간의 상냠함은 조상이 남겨준 문화유산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느냐에 달렸다."

"그것보다 더 힘들고 슬픈 것은 사람들 마음 속에서 서민감각이라는 상냥함이 사라지는 일이다."

섬사람들의 상냥함은 모든 생명을 대등하게 바라보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것 같았다."

"오키나와는 그런 상냥함의 문화로 지탱되어온 곳이기에... 인간의 존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수업을 하자 다연한 일이지만 오키나와 아이들은 훌륭한 집중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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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미원주 2015-06-30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고 있는 책이에요. 상냥함에 대해서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이타니 겐지로가 농사지으며 자연에서 발견한 소증한 얘기가 잔잔히 맘을 건드립니다. ^ ^
 
슬로리딩 - 생각을 키우는 힘
하시모토 다케시 지음, 장민주 옮김 / 조선북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슬로리딩>은 2013년 101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한 하시모도 다케시 선생이 100세가 되던 해인 2012년에 쓴 책입니다. 그는 생애 절반인 50년을 효고현에 있는 사립 나다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지냈는데, 이 학교는 일본 최고의 사립 학교이자 입시 명문 학교라고 합니다.


입시교육과 서열화를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입시 명문 학교'와 그 교육 밥업을 소개하는 것이 찜찜하기도 했습니다만, 주입식 암기교육으로 입시 명문 학교를 만들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하시모토 선생님은 1934년에 당시 후기학교였던 나다중학교에 부임하여 나카 간스케가 쓴 <은수저>라는 소설 책을 중학교 3년 동안 읽게 하는 '전대미문'의 수업을 시작하였는데, 이 수업의 결과 대학진학에 놀라운 성과를 냈다고 합니다.


"1962년에는 은수저 2기생들이 나다학교 최초로 교토대 합격자수 일본 내 1위를, 1968년에는 사립고 최초로 도쿄대 합격자수 일본 내 1위를 기록했다." - 본문 중에서


우리나라 고등학교들과 입시학원들이 내건 <서울대 합격 OO명> 같은 광고 현수막이 떠올라 손발이 오그라듭니다만, 지방의 후기학교였던 나다교에서 이런 성과를 기록하였다는 것은 어쨌든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소설책으로 공부했는데...도쿄대 합격자 수 1위?


도쿄대 합격자수 일본 내 1위 같은 겉으로 드러난 성과 말고도 그의 은수저 학습방법에서 뭔가 배울만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고안한 은수저 수업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예를 들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연놀이나, 100가지 일본 시를 카드로 만들어 맞추는 놀이를 실제로 수업 시간에 해 보는 수업법이죠. 이렇게 '샛길'로 빠지는 사이, 아이들이 배우는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고안해 낸 수업법입니다." - 본문 중에서 


바로 이 수업이 <은사의 조건> <기적의 교실> 같은 책과 여러 매체 통해 '슬로리딩'으로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 역시 나다교는 '죽어라 공부만 시키는 주입식 교육의 최전방'은 아니었다고 강조합니다.


다만, 이 학교는 한 번 교과 담임을 맡으면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 동안 같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교사의 재량이 그만큼 넓었다는 것이 전대미문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첫장은 100세를 앞둔 2011년 6월, 27년 만에 나다교의 교단에 서서 토요강좌라는 특별 수업을 진행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2001년 6월 당시 나다중학교 학생들에게 옛날처럼 <은수저>를 교재로 수업을 했다고 합니다.


98세의 늙은 국어교사는 아이들에게 놀다와 배우다라는 두 단어에 대한 생각을 묻습니다. 아이들의 대답은 단순합니다. "놀다는 좋아하지만 배우다는 싫어합니다"


놀다는 좋아하고 배우다는 싫어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배우는 즐거움을 깨우치지 못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단순히 "그렇게 말하지 말고 논다는 기분으로 배우면 되지"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한 답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깨우쳐주는 '슬로리딩' 수업을 실현해 보여줍니다. 아이들에게 놀다(아소부)와 배우다(마나부)라는 단어를 보고 생각나는 것이 뭐가 있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자 아이 하나가 평범한 답을 내놓습니다.


"둘 다 히라가나 세 글자로 마지막에 '부'가 붙습니다"라고 답하는데, 그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훌륭한 지적이야! 정말 그렇구나!"하고 칭찬하며 다소 과장된 반응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 일에서부터 생각의 폭이 크게 확장된다"고 강조합니다.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국어수업...당연한 것도 다시 생각해보라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질문과 대답으로부터 생각의 확장이 일어난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아소산' '아소해'처럼 '아소'가 붙은 산 이름 바다 이름이 있는데, 부가 붙으면 놀다가 되고, 마나에도 부가 붙으면 배우다가 되며, 부가 붙는 단어를 떠올려보면 부 동사 컬렉션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곧장 '부'가 들어가는 동사를 세기 시작하고, 어떤 아이들은 일본어 50음순을 따라 세면서 동사를 찾아냅니다. 하시모토 선생님은 일본어 50음순을 암기하는 아이들에게 반대 순서로 암기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놀이와 배움을 섞어 놓아 흥미를 북돋움니다.


저자는 정말 중요한 것은 배우는 과정이 재미있어야 하고,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어른들이 놀이의 요소를 '제대로' 던져주기만 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것을 배워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독특한 수업은 점점 더 확장됩니다. 그는 자주 시험을 치렀지만 점수로 경쟁시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으로 자주 시험을 쳤지만 학생들끼리 답안을 교환해 채점하게 하고, 점수에 대해서 채점자와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생각보자 점수가 낮다고 느껴진다면 그 이유에 대해 채점자와 이야기를 해 보세요. 너무 점수가 빡빡한 거 아니냐고." - 본문 중에서


이 부분에 참 공감이 갔습니다. 점수와 채점의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법, 서로 다르게 느끼는 것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잘 쓰고 못 쓰고는 없다, 쓰기만 하면 모두 만점


이 시험은 점수가 몇점이든 모두 만점이었고, 성적에 반영되지도 않았다고 하더군요. 한 달에 한 권씩 과제 도서를 선정해서 줄거리와 독후감을 쓰는 시험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어떤 애기든 쓰기만 하면 만점"으로 처리하였고, 암기를 통해서 답할 수 있는 출제를 하지 않고 생각을 확장해야 하는 출제를 하였기 때문에 암기식 시험공부에만 매달리지 않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벼락치기 시험 경험을 회고하면서 "금방 도움이 되는 것은 금방 쓸모가 없어진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국어교사인 그는 국어 실력이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문과 이과를 가릴 것 없이 모든 과목에서 설명이나 지문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생활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도 국어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국어실력 = 생활능력인 것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는 인관관계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국면에서 국어실력과 독해력은 원하든 원치 않든 시험을 받게 됩니다." - 본문 중에서


그가 은수저 수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사실을 깨닫고 느낄 수 있게 돕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학생들의 마음에 평생 남을 수 있는 살아있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시작하였다고 하더군요.


"저는 교과서를 완전히 버리기로 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지식이 쌓여가는 즐거움을 통해 국어에 대한 흥미를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그가 은수저를 선택한 것은 여러 가지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고, 그 과정을 통해 국어과목에 대한 학문적 흥미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랍니다. 그의 은수저 학습노트를 보면 <슬로리딩>의 핵심은 샛길로 빠지기입니다.


"예를 들어 <은수저>에 쥐 계산법이 등장하면 해설문을 1월에 암컷과 수컷 2마리가 12마리의 새끼를 낳고, 2월에 어미와 새끼 모두 12마리씩 새끼를 낳으면, 12월에 쥐의 수는 276억 8257만 4402마리가 된다"는 식으로 단어 자체의 의미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 - 본문 중에서


예컨대 은수저 수업은 수학 수업으로도 확장되며 소설 내용에 '막과자'가 등장하면 막과자를 직접 먹어보는 식으로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샛길'을 많이 만들어 수업을 확장하였다는 것입니다.


샛길이 많을수록 인생도 풍요롭다


그는 수업 뿐만아니라 인생에서도 샛길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샛길이 많을수록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지식의 폭도 넓어진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앞만보고 달려가는 인생은 단조롭고 재미 없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샛길이라는 것은 결국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를 말합니다. 이 샛길은 실로 일상생활의 다양한 부분에 감춰져 있어요. 중요한 것은 그 점을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 그것 뿐입니다." - 본문 중에서


말하자면 국어수업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도 <슬로리딩>하는 방식으로 살아야 삶이 풍요롭게 된다는 것이지요. 무엇이든 의문을 품고 자기 나름대로 주체적인 사고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고안한 <은수저> 샛길 수업 중에는 시를 암송하는 수업도 있고 학생들에게 시를 짓게 하는 수업도 있더군요. 그가 아이들의 시를 평가하는 방식은 남달랐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시를 잘 지었는지 아닌지는 따지지 않겠다. 글쓴이의 노력자체를 평가할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시의 완성도는 일절 따지지 않았습니다.......또한 한 편밖에 쓰지 못한 아이도, 10편 이상 완성한 아이도 점수 차이는 두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한 편밖에 못 썼지만 게으름을 피웠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시를 쓰는 동안 더 많이 고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 본문 중에서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남들이 시 10편을 쓸 동안 1편 밖에 쓰지 못한 아이가 격었을지도 모를 힘듦을 이해하는 교사였기 때문에 그의 <은수저> 수업이 성공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좋은 문장을 위해서는 많이 써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백론이 불여일작'이라고 말합니다.


"쓰고 쓰고 또 쓰면서 쓴다는 행위에 대한 절대적 반감을 제거했을 때 비로소 문장 작법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는 것이지요." - 본문 중에서


잘 쓰고 못 쓰는 것을 따지지 말고 가능한 많이 쓰고 가급적 손으로 쓰는 것이 좋다고 강조합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읽어보고, 해석하려고 노력하기 전에 읽는 것을 즐기라고도 충고합니다.


시 10편 쓴 아이보다 1편 밖에 못쓴 아이가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국어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에는 영어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일본도 우리나라 만큼 영어 교육 열풍이 있었는지, "영어를 배우기 전에 국어 실력을 키우라"고 강조합니다. 자신의 경험으로봐도 국어 성적이 좋은 학생이 영어성적도 좋았다고 합니다.


한편 이 책에는 100세를 앞둔 늙은 교사의 지혜가 담긴 교사론도 나옵니다. 그는 교사로서 자신을 연마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교사의 일이란 자신의 인간성을 학생들과 직접 부딪치고 공유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교사가 교사로서 자기 자신을 열심히 연마해 나가면 그 진심은 반드시 아이들의 가슴속에 전달됩니다." 


또 자신이 만약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사람들처럼 공립학교 교사로 갔다면 <은수저>수업과 같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수업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고백 합니다. 예컨대 입학과 취직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생에서 어떤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때가 되지 않으면 알수 없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99세에 <슬로리딩>을 쓰면서 두 가지 인생 목표를 밝힙니다. 하나는 남은 생애데 대한 목표인데 100세를 넘기는 것은 물론이고 108세 차수, 111세 황수를 누리고 120세 대환력을 목표로 살겠다고 하였습니다만 안타깝게도 2년 후인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른 목표는 다시 태어나도 은수저 수업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혹은 다른 누구라도) 은수저 수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은수저 연구노트>를 새로 만들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에게 배움의 즐거움은 100세를 넘어서도 계속되었더군요.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대로 해냈다"는 의미에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신의 삶을 평가하였습니다. 외길로 쭉 가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샛길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말이 오랫 동안 여운으로 남는 멋진 책입니다.

"1962년에는 은수저 2기생들이 나다학교 최초로 교토대 합격자수 일본 내 1위를, 1968년에는 사립고 최초로 도쿄대 합격자수 일본 내 1위를 기록했다."

"예를 들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연놀이나, 100가지 일본 시를 카드로 만들어 맞추는 놀이를 실제로 수업 시간에 해 보는 수업법이죠. 이렇게 `샛길`로 빠지는 사이, 아이들이 배우는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고안해 낸 수업법입니다."

"국어실력 = 생활능력인 것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는 인관관계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국면에서 국어실력과 독해력은 원하든 원치 않든 시험을 받게 됩니다."

"저는 교과서를 완전히 버리기로 했습니다. 소설을 읽으면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습니다. 지식이 쌓여가는 즐거움을 통해 국어에 대한 흥미를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샛길이라는 것은 결국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를 말합니다. 이 샛길은 실로 일상생활의 다양한 부분에 감춰져 있어요. 중요한 것은 그 점을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 그것 뿐입니다."

"시의 완성도는 일절 따지지 않았습니다.......또한 한 편밖에 쓰지 못한 아이도, 10편 이상 완성한 아이도 점수 차이는 두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한 편밖에 못 썼지만 게으름을 피웠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시를 쓰는 동안 더 많이 고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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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 두 교사의 교실 기록으로 들여다 본 초등학교
박남기.박점숙.문지현 지음 / 우리교육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부처님 오신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그 다음엔 스승의 날로 이어지는 5월입니다. 그 중 스승의 날은, 어린 시절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고마운 스승을 떠올리거나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날 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날이기도 합니다.

특히, 올 해 처음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낸 학부모 들 사이에서는 노골적으로 촌지를 요구하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불만과 스승의 날을 어떻게 넘길지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학부모들은 어떤 선생님이 담임이 될까 하는 기대와 걱정이 아이들 못지 않습니다. 어떤 담임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1년 생활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1년 살이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날이 들어 있는 5월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래, 저래 학부모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교사들이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있지만,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는 사건 사고를 통해 만나는 교사들은 어이없는 일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난주에도 교생실습 나온 학생들을 성추행한 교사 이야기가 뉴스에 보도되었더군요.

일반적으로 학부모들이 교사라는 직업군을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교실이 아무나 함부로 넘을 수 없는 높은 문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는 물론이고 동료 교사, 심지어 학교장도 담임교사가 맡고 있는 교실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기 때문에 학교와 교사들의 생활을 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문지현, 박점숙 선생님이 쓴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는 새내기 교사의 2년간 학교 생활과 교직 경력 30년 된 교사의 교단일기를 발췌하여 엮은 책입니다. 문지현 선생님 일기는 기간제 교사로부터 시작하여 2년간의 '불타는 의욕'이 담긴 교직생활이 솔직하게 기록되어 있고, 박점숙 선생님 일기에는 30년 경력 교사의 내공이 베어나오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매일 매일 출근이 즐거운 행복한 교사.

"기간제 교사를 마치고 방학이 시작된 지 이틀이 지났다. 보고 싶다. 전에 키우던 강아지를 멀리 보냈을 때처럼 아이들이 보고 싶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으면 다 거짓부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지금 그렇다."

"입 꼬리가 이렇게 무거운지 지난 4개월 동안 모르고 지냈다.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저절로 올라가곤 했던 입꼬리가 어찌 이토록 무거운지. "아침에 자명종이 울리면 피로에 절어 비비적거리다가도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 눈이 번쩍 뜨이곤 했다. '오늘은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그녀의 일기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학교에 출근하는 것이 즐거운 교사와 만나는 아이들은 매일 매일 학교에 가는 것이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대부분 아이들은 학교가는 날 보다는 놀토와 일요일을 기다립니다. 물론 가장 기다리는 것은 방학이구요.

어디 아이들만 그럴까요? 선생님들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지현 선생님은 학교에 가는 일, 아이들과 만나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고 합니다. 교사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라면, 그 교사와 함께 하루를 지내는 아이들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여행 가는 날은 아이들보다 더 신이나고, 눈이 펑펑 내린 다음 날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는 문선생님 모습을 보면 아마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커다란 눈사람도 두 개나 만들고 땀이 뻘뻘 나게 뛰어다녔다. 교실에 돌아와서는 젖은 양말을 의자에 걸어 두었다. 젖은 바지는 별 수 없이 입고 있어야 했지만 그것도 좋다. 오늘 아이들이 일기장에 쓴 것처럼 눈이 또 많이 왔으면 좋겠다."

영하4도, 눈이 소복이 쌓인 운동자에서 아이들과 섞여 질펀그리는 운동장에서 쌍쌍축구를 하는 선생님은 영락없이 철없는 개구장이 모습입니다. 월드컵보다 재미있다며 심판을 보다 선수가 되었다 종횡무진 하는 선생님, 5대 1로 뒤진 경기를 5대 5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축구에 몰입하는 선생님은 스스로 행복하여,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선생님입니다.

이걸 어떻게 가르치지?, 나도 못하는데

세상을 살다보면 선생님이 아니어도 누구나 이런 경험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초짜 교사는 자기도 할 줄 모르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자신도 잘 불줄 모르는 단소를 가르치는 장면이나 시범을 보여줄 수 없는 '철봉 거꾸로 오르기' 체육 수행평가 이야기는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대학시절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어려웠던 단소, 나는 아이들이 한 학기 동안 단소 한 곡은 소화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막상 저질러 놓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단소를 잘 불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지현 선생님은 아예 아이들에게 단소를 잘 불지 못하기 때문에 잘 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노라고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그림을 그려가며 어떻게 단소를 불어야 소리가 잘 나는지를 가르쳐주는 방법을 택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연습할 수 있도록 넉넉한 시간을 주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둠을 마다 단소를 잘 부는 아이들을 단소 선생님으로 정하여 연습이 필요한 학생을 가르치게 하고, 단소 선생님을 맡은 아이에게 보너스 점수를 주는 방법으로 아이들이 단소를 익히게 하였다고 합니다.

"체육 수행평가로 지정된 '철봉 거꾸로 오르기' 때문에 한숨만 나온다. '이걸 어떻게 가르치지? 나도 못하는데.' 네가 철봉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매달리기뿐이다. 그래서 일단 지도서를 꼼꼼히 읽어 보고, 인터넷에서 순서와 방법을 찾아보았다."

시낼 수업시간에 그림을 보여주며 순서와 방법을 설명하고, 학급 홈페이지에는 사진과 방법을 따로 올려두는 노력을 하였지만, 설명만으로 할 줄 아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수업은 운동장에서 새로 시작됩니다. 가장 가벼운 아이부터 한 명씩, 교사와 친구들이 서로 밀어서 넘을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마침내 대부분 아이들이 '철봉 거꾸로 오르기'를 익힐 수 있게 됩니다. 초짜 선생님은 '자신이 할 줄 몰라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깨우치게 됩니다. 

30년 경력 교사의 내공이 묻어나는 일기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의 공동 저자인 박점숙 선생님은 30년 경력의 베테랑 선생님입니다. 물론 30년 세월이 흐른다고 하여 모두가 베테랑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박선생님 일기에서는 새내기 교사 뿐만 아니라 경력교사들도 배울 만한 기법과 구체적인 적용 방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가계부 쓰는 선생님 이야기, 멸치를 상으로 주는 이야기, 그리고 젓가락 데이 이야기에 가장 꽂혔습니다.

"용돈 기입장을 나눠 주고난 뒤 쓰면 좋은 점과 쓰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선생님 가계부 쓰세요?' 평소 말이 없고 행동도 굼뜬 건웅이가 앞으로 나오더니 작은 소리로 물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응, 왜?'하고야 말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를 보며 선생님은 고민합니다. 다시 불러 사실은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고 고백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말입니다. 아이의 질문에 거짓말을 한 선생님은 마음이 몹시 불편합니다.

내가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왜 쓰지 않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이런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결론입니다.

"건웅이를 다시 불러 고백을 못할 바에야 거짓말하고 불편해하느니 차라리 이참에 가계부를 쓰는 게 낫겠다"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니 마음이 후련했다. 그리고 "아, 선생 노릇하기 참 힘들다." 선생 노릇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대로 사는 것, 그것이 선생 노릇이라는 것이지요? 우리 학교에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대로 사는 선생님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칭찬 스티커를 주는 대신에 멸치를 상으로 주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어느날 선생님께 칭찬을 들으며 상으로 받으러 나온 아이들에게 주어진 상은 사탕이 아니라 멸치입니다. 멸치를 상으로 주겠다는 선생님 말씀에 아이들은 자지러지는데, 선생님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멸치 한 마리를 통째로 입에 넣고 먹어보이며 아이들 더러 따라하게 합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생각보다 먹을 만 하다는 소감을 말하고...칭찬 스티커 대신에 칭찬 멸치가 자리잡게 됩니다. 멸치로 칭찬 스티커를 대신하고, 멸치에 대한 집중 탐구 과제를 해오면서 아이들은 멸치를 대하는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난 멸치를 싫어 한다. 왜냐하면 멸치 먹는 느낌이 징그럽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멸치 먹는 모습을 징그러워하긴 했지만 집에서 한 번 먹어 보니 맛있고 고소하였다."

"냠냠 멸치는 짭짭하면서도 맛있고 군침이 돈다. 하지만 처음으로 멸치 머리까지 먹어 보니 느낌이 너무 안 좋았다. 하지만 눈 감고 먹어 보니 맛이 끝내 주었다. 칭찬에 멸치까지 함께 맛보니 너무 좋았다. 더 열심히 해서 열 개까지 도전해야지. 너무 끝내 준다니까"


이 책에 소개된 아이들 일기입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음식도 '상'이 되면 아이들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볶은콩을 상으로 주거나 시금치를 상으로 줄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튼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이 상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이 참 놀라웠습니다.

빼빼로 데이를 젓가락 데이로

박점숙 선생님 일기 중에 마지막으로 젓가락 데이 이야기를 소개해드릴까요? 짐작하시겠지만 젓가락 데이는 이른바 빼빼로 데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빼빼로 데이는 그냥 넘길 수 없어 어제 빼빼로 데이에 대한 유래와 문제점을 조사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11월 11일은 젓가락을 닮은 날이라 젓가락으로 콩 집기 대회를 할 것이니 연습을 해 오도록 했다. 바른 쇠 젓가락의 사용이 우리 민족의 두뇌를 발달시켜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다는 얘기도 함께 들려주면서"

물론, 아이들은 이것만으로 빼빼로 사오는 것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숙제를 해 오면서 과자 회사의 상술에 넘어가지 말자, 돈을 낭비하지 말자고 적어놓고도 결국 빼빼로를 사지 않게다는 결심 대신에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며 우정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단 번에 아이들의 행동을 변화시키지는 못 하였지만, 빼빼로 데이에 젓가락을 들고 콩 집기 대회를 하는 아이들 모습은 인상적입니다.  과자 회사의 상술 뿐만 아니라 과자 속에 포함된 각종 첨가물의 위험을 알아 갈 수 있는 수업으로 활용할 수 있겠더군요. 아울러 빼빼로 데이 대신에 젓가락 데이로 바꾸어 부르는 것도 참 좋은 대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0년 경력 박점숙 선생님의 일기 중에서 특히 '나의 교육활동 실패기'는 더욱 가슴을 찡하게 합니다. 아이 하나를 남겨두고 체험학습 떠난 이야기, 교재 연구를 하지 않아 수업에 실패한 이야기, 학부모를 외판원으로 오해한 이야기, CD 플레이어 오작동으로 행사를 망친 이야기, 한 아이에게만 상을 몰아 준 이야기들입니다.

이 밖에도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에는 아이들에게 배우는 교사의 모습이 여러 장면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배우고, 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교사의 모습 말 입니다.

선생님도 칭찬 받고 싶어 한다.

한편, 이 책 말미에는 두 교사의 일기를 통해 학교 현장의 모습과 교사의 성장과정을 분석한 박남기 교수의 글이 있습니다. 이 글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칭찬 받고 싶어 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 교사들을 칭찬할 것을 주문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도 칭찬을 먹고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칭찬, 동료 교사의 칭찬, 학교장의 칭찬, 그리고 학부모의 칭찬이 교사에게 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음을 교단 일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칭찬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학부모의 칭찬, 동료교사의 칭찬에 얼굴 붉히면서도 자신감을 얻어가는 교사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늘 잘하는 아이들도 칭찬 받고 싶어 한다는 구절은 늘 잘 하는 교사도 칭찬 받고 싶어한다는 이야기와 닿아있는지도 모릅니다.

박남기 교수는 부모 교육을 할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 한다는군요.

"지난 한 달을 돌이켜 보아 담임선생님께 감사하다는 편지 글이나 칭찬하는 전화 통화를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다면 전혀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그 칭찬 에너지를 받아 즐겁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적이 없었다면 지금쯤 에너지가 고갈되어 힘들어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육학자인 그는 선생님들에게도 우리 사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당부를 잊지 않습니다. 월급이 적고 업무가 과중하지만,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결코 급여가 적은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교사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학생들의 존경도 다른 나라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 입니다.

책을 읽는 동안 문제 투성이인 학교를 너무 이상적으로 그려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교사들이 있다는 것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진정한 교사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동료 교사들에게, 그리고 학부모들에게 가르침의 깊이을 더해 주는 따뜻한 교육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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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파울로 프레이리 외 지음, 프락시스 옮김 / 아침이슬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는 교육과 사회변화를 위해 헌신해 온 브라질 교육운동가 파울로 프레이리와 미국 사회운동가 마일스 호튼의 대화집입니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인간해방으로 보고 이를 실천한 20세기의 대표적 교육사상가입니다.  1950년대에는 농민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독자적 교육방법을 개발하였고, 1963년에는 브라질 정부의 문해교육 프로그램 책임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1964년 군사 쿠데타때 체제전복혐의로 투옥되었고, 국외로 추방되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였으며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였다고 합니다. 1979년 브라질로 돌아와 노동자당에 입당하였고, 1988년부터 수년간 상파울루 시 교육감을 지냈다고 합니다. 프레이리가 국내에 잘 알려진 것은 그의 초기 대표작인 <페다고지>가 일찍 국내에 소개되어 소위 '민중교육' 진영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일스 호튼은 상대적으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마일스 호튼이라고 하는 탁월한 교육운동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1932년 테네시 주의 쿰버랜드에 하이랜더 지역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미국 시민권운동과 지역사회학교운동을 이끌었던 유명한 교육운동가라고 합니다. 

여성인권운동가인 제인 애덤스 그리고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일하였으며, 교육을 통해 새로운 사회질서 만들기를 꿈꾸면서 흑인과 노동자 교육에 일생을 바쳤다고 합니다. 호튼은 노동조합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잠시 하이랜더를 떠나 있던 기간을 제외하고 은퇴할 때까지 40년 동안 하이랜더 책임자로 일하였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함께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를 읽으면서 처음 만난 마일스 호튼이라는 인물에게서 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서평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프레이리 보다는 마일스 호튼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소개하는데 조금 더 관심이 기울어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대담은 1987년 12월 프레이리의 제안으로 호튼이 살고 있는 테네시주 하이랜더에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 대화가 있은 지 2년 후 대담집은 책으로 출판되었으며, 호튼은 이 원고의 초안을 프레이리와 검토 하고 사흘 후인 1990년 1월 19일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마일스 호튼이라고 하는 탁월한 사회운동가의 유작이기도 합니다.

프레이리와 호튼, 100년이 넘는 민중교육 실천 '회고'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는 '회고'라고 하는 독특한 방식을 통하여, 두 사람의 탁월한 교육운동가가 지닌 시민교육, 민중교육 사상을 풀어내도록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경험한  백 년이 넘는 교육실천 독자들과 나누는 책입니다.

마일스 호튼의 어린시절, 그리고 젊은 시절 이야기는 그가 탁월한 사회운동가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학교 교육에 대한 문제를 발견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교사들이 학생들로부터 문학작품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빼앗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작품을 읽고 암송해야 할 대상으로 강요하니 학생들이 싫어할 수밖에요. 저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창의력을 말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사들을 존경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무능한 교사들에게 저항하는 방식으로 책읽기를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선생님들의 바보 같은 질문 때문에 바보가 되기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답니다. 교사들의 집요한 방해를 뚫고 책읽기에 몰입하는 동안 비판적 태도를 키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쿰버랜드 장로교회에서 있었던 두 사건은 어린시절 마일스 호튼이 비판적 사고를 키워나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어느 날, 한 선교사가 교회에서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원하였는지를 이야기하였답니다. 호튼은 선교사의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고 영혼을 구하는 일이 참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는군요.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모두 지옥에 갈 거라는 선교사의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교사 말대로라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가지만, 아예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선교사가 전한 복음이 원주민들을 지옥으로 보냈다면?

호튼은 선교사가 복음을 전했음에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얼만지, 그리고 그로 인해 지옥으로 떨어진 사람은 또 얼만지 얼른 속으로 계산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선교사가 지옥으로 보낸 사람들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고 합니다. 설교 후 토론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신학적 질문을 할 때, 호튼은 다음과 같은 산술적 질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셨나요? 선교사님 말씀대로 따지면, 구원한 사람들보다 수백 배나 많은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신 것 같은데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댁에서 쉬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러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갈 수 있을 텐데요."

젊은 시절 마일스 호튼의 비판적 사고를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교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비판적 시각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독교와 관련된 또 하나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호튼이 지역 청년모임 회장으로 모임을 주선할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그는 어느 날 모임에서 회원들에게 주일 외의 나머지 엿새 동안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주일날만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늘 신앙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하였던 것입니다.

일요일만 신앙인으로 사는 기독교인

그랬더니, 담임목사가 호튼의 이야기가 교회에 대한 모욕이라며 펄쩍 뛰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호튼은 이렇게 반박합니다.

"제가 가게에서 일하면서 보았더니, 많은 사람들, 특히 이 교회의 집사님, 권사님들이 주중에는 신앙에 따라 살지 않으시더군요. 그분들은 거짓말쟁이이자 위선자들입니다. 도둑질하는 것과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는 일하면서 목사님께서는 보실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보게 됩니다. 가난한 흑인 아이들을 위해 값을 대신 치러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영수증을 조작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호튼은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지역유지들이 위선에 가득 찬 채 일요일만의 신앙생활에 빠져있었던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입니다. 그는 책보다도 일하던 가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흑인 민권운동의 배후 '하이랜더'

1932년 하이랜더 세운 호튼은 초창기에는 농촌운동과 노동운동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고, 1950년대부터 흑인을 위한 '문해교육' 운동에 집중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법원에 가서 유권자등록을 해야만 투료를 할 수 있었지요. 흑인들에게는 이름쓰기나 영수증 작성 같은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면서 최종적으로는 투표를 할 수 있는 시민권을 얻는 일에 집중하였다고 합니다.

하일랜더 문해교육반의 첫번째 강좌가 끝났을 때, 참가자의 80%가 법원에 유권자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문해교육은 글자를 읽히고 쓰는 것뿐만 아니라 투표권을 획득하여 시민권을 행사하는 운동이었기 때문에 문해학교는 곧 시민(권)학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1957년 1월부터 1961년까지 400여명의 교사들이 시민학교 프로그램을 수료하였고, 다시 40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시민학교 프로그램으로 교육하였다고 합니다. 이 기간 동안 하일랜드 지역의 선거권자는 무려 300%이상 증가했다는 것 입니다.

제도권 교육 밖에서 이루어진 하이랜더의 탁월한 시민교육 사례는 사실 국내에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이 책에는 하이랜더가 미국 시민권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이랜더에서 수십 번의 모임과 워크숍을 연 후, 미국 인종문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시민권운동이 일어났다. 로자파크스는 하이랜더에 몇 달간 머무른 후,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라는 백인 남자의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촉발했다."

미국 시민권운동 초창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배후'는 바로 하이랜더였던 것 입니다. 흑인들이 선거권과 정치적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으며, 대중적인 흑인 지도자들이 교사로 참여하여 '문해교육'의 원리를 개발하였다는 것 입니다.

민중교육, 1년 만에 유권자 130만명 조직

프레이리 역시 탁월한 사회교육운동가이자 문해교육 실천가 입니다. 1959년 브라질에서 레시페시에 급진적 민주주의자인 미구엘 아레스가 시장으로 당선되자 헌법 개정을 위하여 농민들에게 투표권을 줄 수 있는 문해교육에 시작합니다. 

당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였던 농민, 빈민들은 글을 읽을 수 없어 투표에 어려움을 겪었고 프레이리는 이들을 교육시키는 민중문화운동의 책임을 맡았으며, 1960년에는 국가 문해교육 프로그램 책임자가 됩니다.

1964년까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적으로 백만 명에 이르는 비문해자들이 프레이리의 문해교육 방법으로 글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프레이리는 다른 수백 명의 활동가들과 함께 브라질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투표권자의 수가 80만 명에 불과하던 당시 페르남부코의 상황에서 1년 사이에 자그마치 130만 명이 넘는 새로운 유권자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것은 정권의 권력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프레이리와 호튼은 모두 문해교육과 선거권을 결합시킴으로써 단순한 문해교육을 시민(권)교육으로 끌어올렸고, 바로 그 성과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된 권력구조에 커다란 위협이 되었고 결국 가혹한 보복을 당하게 됩니다.

프레이리는 쿠데타 정부에 체포되어 투옥과 고문을 당한 후에 국외로 추방당하며, 호튼 역시 매카시 선풍이 닥치자 공산주의자들과 접선하였다는 이유로 고초를 당하고 하이랜더 소유자산과 부동산을 압수당합니다. 

자유에 대한 믿음, 급진적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

두 사람은 반대 세력의 음모와 공격으로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자신들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낙관주의를 버리지 않습니다. 호튼과 프레이리는 사회변혁을 위한 '민중교육' 일생을 바친 경험을 통해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믿음을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민중들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확고한 믿음이다. 둘째는 민중들이 자기 해방을 위해 자유를 성취할 수 있으며, 그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급진적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다."

호튼과 프레이리는 진정한 해방은 민중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었으며, 참여는 그 자체로 해방적이며 참여적인 교육실천으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호튼과 프레이리의 탁월함은 그들의 사상이 추상적이지 않다는 것 입니다.  그들의 사상은 각자의 삶속에서 이론과 실천을 결합시키면서 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제도권에서 이루어진 프레이리의 성공사례와 제도권 밖에서 이루어진 호튼의 사례는 그들을 뒤쫓는 민중교육 활동가들에게 '조건'을 탓할 수 없는 실천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책 말미에 호튼이 소개하는 동양 철학자의 시 한 편은 독자들을 다시 한 번 놀라운 감동으로 끌어들입니다.

민중에게 가서 민중에게 배우라

민중과 함께 살고, 민중을 사랑하라

민중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고 

민중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라

그러나 최고의 지도자는

모든 일이 끝나고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때,

'우리 힘으로 이 일을 해냈다'고

민중 스스로 말할게 할 수 있는 자일지니...


여러분 놀랍지 않은가요? 기원전 604년에 노자(老子)가 쓴 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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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9-06-19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근데... 민중도 제대로 없는 이 나라의 교육은 너무 슬퍼요. ㅠㅜ
 
핀란드 공부법
지쓰카와 마유 외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핀란드 공부법은 고등학생 교환유학생으로 1년 동안 핀란드를 다녀 온 일본 여학생 지쓰카와 마유와 그녀의 엄마 지쓰카와 모토코가 함께 쓴 책이다.

이 책을 쓴 마유는 2004년 8월부터 약 1년간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헤르토니에미’ 고등학교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다녀온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경쟁, 등수, 서열이 없는 바람직한 교육 모델로 핀란드 교육이 많이 소개되고 있지만, 마유가 유학을 떠날 무렵만 하여도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도 핀란드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에도 핀란드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마유가 유학을 떠난 2004년 무렵이라고 한다.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2000년부터 OECD가 실시한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2000년 조사에서 독해, 수학, 과학 각 분야에서 상위권을 넘보던 핀란드 아이들이 2003년 조사에서는 드디어 독해와 과학에서 1위, 수학과 문제해결 능력에서 2위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자신감을 갖고 있던 수학에서 6위까지 줄줄 미끄러졌고, 2000년에 그럭저럭 8위를 했던 독해력에서는 14위까지 밀리고 말았다.”(본문 중에서)

2003년 핀란드가 세계 1위를 휩쓸 때, 같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한국은 독해력 2위, 과학 4위, 문제해결능력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OECD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만 놓고 보면, 한국교육도 성공적인 사례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핀란드 교육의 실상을 알고 나면 깜짝 놀라고 만다. 왜냐하면,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일본과 유럽 국가들을 제친 이 나라에는 학원도 없고, 과외도 없고, 서열과 경쟁은 물론이고 등수도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아울러 핀란드는 2000년대에도 매년 5%씩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일본 사람들이 핀란드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마유가 직접 가서 체험해 본 핀란드는 일본만큼 무시무시한 중학입시가 있는 나라도 아니고, 한국처럼 밤낮 없이 학원을 다니는 나라도 아니고, 중국처럼 엘리트 선발교육이 이루어지지도 않으며, 심지어 부모들의 교육열조차 높지 않은 나라였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동아시아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진 나라였던 것이다.

학원, 등수, 교칙이 없는 핀란드 학교

핀란드에는 학원이 없다. 마유가 핀란드 친구들에서 일본 학교와 입시를 설명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바로 “수업 들으면 되지 학원을 왜 다녀?”하는 질문이었다. 실제로 핀란드에도 대학 입학 시험이 있으므로 시험을 위한 학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나 한국처럼 중고등학교 내내 대학 입학을 위해 학원에서 죽도록 공부하는 입시전쟁은 없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그들에게는 학교란 ‘배우는 곳’이라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잡고 있다. 때문에 일부러 학원까지 가서 배우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핀란드 학생들이 수업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에도 나타난다. 그들은 수업 중에 절대로 졸지 않는다.”(본문 중에서)

핀란드 아이들은 중고등학교 무렵에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는데,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따라서 핀란드에서는 누구도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한다고 강제 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는 공부하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분명하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이나 한국 아이들은 ‘학교=생활’이 일치하고 있지만, 핀란드 아이들은 학교가 생활을 완전히 지배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고 한다. 우선 아이들은 하루 종일 학교에 있는 일이 거의 없고, 심지어 고3이 되면 학점 취득이 끝나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학교에 간다고 한다. 일본이나 한국의 대학생들처럼 수업을 들을 때만 학교에 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틀린 표현이다. 요즘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입시전쟁을 마치고 나면, 취업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중, 고등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수업이 없는 시간에도 하루 종일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하거나 학원을 다녀야하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서 고등학교 수업은 학기 초에 원하는 과목을 수강 신청하여 수업을 듣게 된다고 한다. 전 과목이 자유선택이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과 적성에 맞는 수업을 선택하여 졸업에 필요한 72학점을 이수하면 되는 것이다.

3년간 취득한 학점은 졸업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 여부를 결정할 뿐이며, 다른 아이들과 서열화 시키는 등수라고 하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핀란드 학교에는 다른 아이와 자신을 비교하는 등수는 없고, 공부를 제대로 하였는지 확인하는 학점만 존재한다는 것. 1등을 제외한 모든 아이가 열패감을 느끼는 일본이나 한국과는 구조적으로 다른 상황이라고 한다.

핀란드 학교에는 교칙이 없다고 한다. 일본이나 한국학교에서는 매니큐어, 피어싱 같은 것은 물론이고 머리카락 길이나 치마길이 등도 모두 교칙으로 정해 규제하지만 핀란드에는 교칙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고 한다.

한 마디로 학교라고 해서,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어른들에 비하여 특별히 더 금지하거나 규제하지 않는다. 피어싱이나 염색은 기본이고 선생님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도 있었지만 누구도 상관하지 않더라는 것.

그렇지만, 누구도 그런 아이들을 일본이나 한국처럼 ‘불량학생’이라고 말하지 않고, 피어싱과 염색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도, 수업시간이 되면 선생님말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집중해서 참여한다는 것이다. 공부나 성적과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을 개성있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지식보다 생각이 중요하고, 읽고 쓰는 것이 시험

등수가 없고 학점만 이수하면 되는 핀란드 아이들은 시험공부는 어떻게 할까? 마유는 핀란드 아이들의 시험공부는 암기가 아니라 읽기라고 한다. 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모두 책과 자료를 읽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핀란드 아이들은 시험 전에 ‘공부한다’ 고 말하지 않고, 시험을 대비하여 ‘읽는다’리고 한다는 것이다. 마유가 만난 핀란드 친구들 시험 답안지를 보면 음악이나 미술 같은 과목도 꼭 마지막에는 에세이 문제가 출제 되어 있었고, 수학조차도 고급 수준이 되면 에세이를 쓰게 하더라고 한다.

심지어, 마유가 홈스테이를 하였던 후트넨 가에는 공부하는 책상조차 따로 없었는데, 책을 읽는 것은 침대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란다. 시험 직전에 핀란드 아이들은 두꺼운 책을 읽으며 시험 준비를 하기 때문에 ‘암기’는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지식을 채워놓은 것만으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는 것이 핀란드 시험이란다. 핀란드 시험은 지식보다 자기 자신의 의견을 얼마나 잘 표현했느냐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나 시험은 책이나 자료에서 얻은 지식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훈련을 하는 과정이라는 것.


 

유급해도 괜찮아 알 때까지 배운다

핀란드 교육시스템은 5학기로 나누어져있고, 성적은 일본이나 한국의 대학학점 방식으로 주어진다고 한다. 1에서 10까지 10단계 성적에서 4가 두 개 이상이면 유급이 된다고 한다. 중학교의 경우 대체로 8과목을 공부하기 때문에 2과목이 4점이면 똑같은 공부를 1년 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유는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유급된 아이들을 수 없이 많이 보았다고 한다. 당시 열네 살이던 후트넨 가의 막내 요카는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지 못해서 중학교 1학년에 머물러 있었고, 둘째 아케 역시 나이는 열여섯이었지만 2년을 유급하여 중학교 3학년이었다고 한다.

“핀란드인에게 낙제는 특별히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을 확실히 배우지 않고 졸업하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핀란드 아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하여, 다시 말해 세상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을 위해 교육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도 유급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

아울러, 핀란드는 무상교육을 실시하기 때문에 유급을 하기 때문에 학부모가 더 추가비용을 부담하는 일도 없으며 아이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다 배울 때까지 같은 것을 반복해서 공부할 뿐이라는 것이다. 핀란드는 꼴찌를 만드는 대신에 유급을 시켜서라도 꼭 필요한 것은 반드시 익히도록 한다는 것.

핀란드 부모들은 자식이 유급을 하여도 아이가 능력이 없다거나 문제아 취급을 하는 일이 없으며, ‘읽는 것’을 싫어하고 읽지 않았기 때문에 유급 당했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말한다는 것이다.

“교육의 역할은 결국 먹고살아갈 수 있는 직업을 갖도록,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도록 돕는 것이고, 직업을 구하는 일도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만날 때까지 천천히 찾아나가면 되니까, 부모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본문 중에서)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어 하고 뭘 제일 잘 하는지는 아이마다 다 달라요. 유급을 시키는 것 또한 성적이 충분히 좋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가 함께 생각해보기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예요.”(본문 중에서)

이런 생각이 핀란드 부모들의 일반적인 교육관이라는 것이다. 아이들 중에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읽고 쓰는 일 대신에 무언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그 뿐이라는 그들 일반적인 생각이란다.

따라서 핀란드 부모들의 걱정은 성적이 나쁘다거나 놀기를 좋아한다 같은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장래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걱정이라고 한다. “핀란드 학생들은 중학생 정도의 이른 시기부터 인턴십 등을 거치며 자신의 진로를 명확히 결정해나간다”는 것이다.

미래를 꿈꿀 시간을 허락하는 나라

한마디로 핀란드 교육에는 시간제한이 없다. 남들 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려도 필요한 것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몇 살까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연령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몇 살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한다고 선을 긋지 않는다. 대학에 입학하는 것도 졸업하는 것도 자신이 하고 싶을 때 하면 된다.”(본문 중에서)

뭔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을 때까지 연령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기업에서 사원을 모집할 때도 대부분의 경우는 연령제한을 두지 않는 단다.

따라서 핀란드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이 들물 만큼 ‘바리부오시’(휴식하는 해, 유예기간)는 일반적 일이라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경험하면서 좀 더 구체적인 장래 계획을 세우는 유예기간을 대분이 거친다는 것이다.

지쓰카와 마유가 소개한 <핀란드 공부법>을 읽으며 한국의 몇몇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을 여러 번 떠 올렸다. 가만히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면 핀란드의 모든 학교는 한국의 대안학교처럼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놀면서 공부하는 핀란드 아이들이 밤낮없이 공부하는 일본과 한국을 가뿐히 제치고 세계 최고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찌 부럽지 않을 것인가?




“영어, 국어는 물론이고 화학, 생물, 음악까지 에세이, 즉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핀란드 고등학교의 일반적인 시험형식이다.......핀란드에서는 이러한(일본이나 한국 같은) 구멍 메우기 문제가 아예 없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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