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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한 포기 다치지 않기를
클로드 안쉰 토마스 지음, 황학구 옮김 / 정신세계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그는 열일곱 살 나이에 미 육군에 입대했고 베트남 복무를 자원하였다. 열여덟 살에 베트남에 파견되어 무기를 손에 들고부터, 수백 명의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직접 가담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27개의 항공훈장과 공군수훈 십자훈장, 명예전상장(戰傷章)을 포함한 많은 상장과 훈장을 받았다.
군대에 가면 진정한 사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육군에 입대한 그는 굴욕과 절망, 무기력한 자신에게 힘들어하다가 베트남 근무를 지원하였다고 한다. 헬리콥터 공격중대에 배치되어 M60기관총 사수가 된 그는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는 전쟁의 상처를 경험하게 된다.
그는 베트남에 있는 동안 625시간 이상의 전투비행과 625회 이상의 전투임무를 수행하였다. 그 모든 전투 임무는 다 사람을 죽이라는 임무였지만 그는 한 번도 그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나에게 적이었다. 가게주인, 농부, 여자, 어린아이, 갓난아기....그 모두가 나의 목표물일 뿐이었다. 로켓과 7.62밀리 기관총이 장착된 무장헬기 세대와, 40밀리 기관포가 장착된 무장헬기 한 대를 몰고 간 우리는 사격을 개시했고, 아무 생각 없이 마을 전체를 파괴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 살인은 완전한 광기였다. 우리는 움직이는 모든 것을 죽였다. 아이들, 물소, 개, 닭... 아무 느낌도 생각도 없었다."(본문 중에서)
끝나지 않는 전쟁
전장을 떠나 집으로 돌아온 그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자신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사람들은 참전자들과 거리를 두었고, 마음속 전쟁은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늘 잠을 잘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 그에게 남은 것은 사회부적응자라는 꼬리표와 매일같이 반복되는 끔찍한 전쟁악몽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사회에 적합하지 않았다. 살인자로만 훈련받았을 뿐, 한 번도 살인자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제멋대로인 채로 내버려졌다."(본문 중에서)
그는 1968년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후부터 1983년까지 술과 마약과 담배와 섹스에 빠져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를 떠돌며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는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
그에게 전후(戰後)는 없었다. 베트남 생존자로서 그의 삶은 계속되는 전쟁일 뿐이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그 상처를 안고 현실과 함께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는 항상 권총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밤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운전을 할 때도 심지어 학교에 갈 때도 권총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전쟁은 한 번의 선전포고로 시작해서 한 번의 휴전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쟁의 씨앗은 끊임없이 뿌려지고 그 수확은 영원히 계속된다. 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나 역시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많은 면에 상처를 입었다. 전쟁은 내 몸과, 마음과, 영혼에 상처를 남겼다. 전쟁의 현실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도 나와 함께 살고 있다."(본문 중에서)
전쟁의 상처는 그에게만 남아 계속되는 것이 아니었다. 1975년 이후 지금까지 어림잡아 베트남에서 복무했던, 10만명 이상의 미국인 남녀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또한 미국의 노숙자 인구 중 약 40~60%는 베트남 참전군인이라고 한다. 또한 참전 군인은 국민 평균보다 이혼율이 훨씬 높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클로드 안쉰 토머스가 쓴 <풀 한포기 다치지 않기를>은 열일곱에 군대에 들어가 열여덟에 베트남전에 참전하였던, 지은이가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마약과 섹스, 알콜중독자이자 노숙자로 전전했던 청년이 십수 년에 걸쳐 평화순례를 이끄는 선승으로 변해가는 가슴 아프고 감동적인 깨달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마약과 술을 끊은 지 7년이 되던, 1990년 그는 틱낫한 스님이 이끄는 '베트남 참전자를 위한 불교명상 수련회'에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수련회를 통해 틱낫한 스님은 참전자들에게 처음으로 '전쟁에 참가한 참전자들보다 비참전자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었다고 한다.
"만물은 예외 없이 서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누구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법이며, 스스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전쟁에 가장 책임이 있고,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은 비참전자들의 생활방식 그 자체에 있다고 말씀하셨다."(본문 중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베트남을 가지고 산다
그가 쓴 책 <풀 한포기 다치지 않기를>을 읽다보면, 정념명상과 걷기 명상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얻어가는 깨달음의 과정을 쫒아갈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폭력적인 행동은 군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베트남을 가지고 있다. 그 정도는 다르지만 저마다 자신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본문 중에서)
미국정부가 개입한 10년간의 베트남 전쟁에서 대략 5만8000명의 미군이 죽었는데 1990년대 10년 동안 미국에서는 총기사고로 해마다 2만9000~3만9500명이 죽었으며, 어림잡아도 베트남전의 네 배가 넘는 26만명이 죽었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베트남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플럼빌리지를 거쳐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조동종 스승인 버니 글래스먼 스님을 만나서 승려가 된 후 지금까지 평화를 일구고 선 수행에 종사하는 사회활동가들의 국제공동체와 함께 일하고 있다.
그가 평화의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그가 쓴 책 <풀 한포기 다치지 않기를>에서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평화로 가는 길은 살인을 통해서라고 생각하도록 조건화 되었다. 나와 다르고 내 믿음을 위협하는 것은 모두 나의 적이라고 배웠다. 삶의 유일한 목적은 승리이고, 승리는 적의 파멸과 패배를 통해 얻어진다고 배웠다."
"사실 내 행동은 전 우주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종이 한 장을 함부로 대하거나 남용한다면, 그것은 곧 나 자신을 학대하고 남용하는 것이고 여러분을 학대하고 남용하는 것이다."
"내가 현실에 입을 다물고 적극적으로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하지 않고 무지와 망각 속에 산다면, 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폭력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뺏은 목숨에 대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을 되살릴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깨어남으로써 고통을 영속시키지 않고, 의식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감으로써 과거의 행동에 대해 속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불교수행을 통해 깨달았다."
"결국 모든 책임과 행동은 개인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곳도 바로 이 개인이다. 쉽게 말하자면, 비폭력이란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평화는 삶의 방식이다
그는 전쟁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서 평화에 이르는 길을 삶을 통해 보여주어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치유와 변화를 경험하고 깨어난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1995년 승려가 되었을 때 탁발승이 되기로 서약하였다.
탁발승은 소유물을 가지지 않고, 절에서 살지 않고, 집 안에서 영구히 살지 않고,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지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것은 영적인 수행으로 떠돌겠다는 맹세이다. <풀 한포기 다치지 않기를>에는 탁발승이 되어 평화를 위해 걷는 그의 여정이 담겨 있다.
폴란드에서 베트남으로 아우슈비츠와 독일, 폴란드, 세르비아, 체코, 이탈리아를 그리고 미국대륙을 횡단하는 평화여정과 평화를 향해 걸으면서 얻어가는 깨달음의 과정이 담겨있다. 그가 걷고 명상하는 삶을 통해 깨달은 평화에 관한 메시지는 이렇다.
"평화는 하나의 관념이나 정치적운동이나 이론이나 교리가 아니다. 평화는 삶의 방식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살겠다는 굳건한 결심, 고통에 대한 태도를 바꿔서 세상과 일상사에 비폭력의 태도로 임하겠다는 결심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바깥세상을 평화롭게 만들 수 없다. 우리 자신이 평화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유일한 길이다."(본문 중에서)
그가 쓴 책 <풀 한포기 다치지 않기를>에는 그가 경험한 치유를 위한 '듣기와 말하기' 그리고 부록으로 여러 가지 명상 수행을 위한 기본 적인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우리 자신이 평화가 될 수 있는 앉아서 하는 명상, 걷기 명상, 일 명상, 식사 명상, 주의 깊은 경청과 정념을 가지고 말하기와 같은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가 쓴 책 <풀 한포기 다치지 않기를>은 전쟁과 폭력의 실체를 알아차리고, 평화를 향한 새로운 삶을 찾는 이들에게 스스로 평화의 삶을 사는, 스스로 평화가 되는 길을 열어주는 깨달음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