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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사직소, 조선을 움직인 한 편의 상소
조식 지음, 이상영 옮김 / 뜻있는도서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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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움직인 한 편의 상소라는 수식어가 붙은 <을묘사직소>는 남명 조식 선생이 500년 전에 쓴 <을묘사직서>를 번역한 책입니다. 번역자 이상영이 밝혔듯이 그간 나온 여러 번역문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구구절절 소상하게 풀이합니다. 풀이하고 풀이하고 또 풀이합니다. 때로는 원문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내용까지 말합니다." 주해번역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이기도 합니다. 


남명 조식이 쓰고 이상영이 주해하여 옮긴 <을묘사직소> 

 

상세하고 정확한 풀이를 위해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주역, 서경을 찾아보고, 한유, 유종원, 정명도, 정이천, 주희 등이 쓴 글을 살펴보며, 남명집, 학기유편 등을 통해 조식의 말과 표현을 가늠합니다. 500년 전 조선의 시사를 확인하기 위해 조선왕조실록과 당대 문헌을 두루 살피는 수고와 노력을 담은 번역입니다.  


조식 선생이 <을묘사직소>를 쓴 때는 조선 명종 11년(1555년)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온나라가 쑥대밭이 되기 불과 37년 전입니다. "척족 세력이 날불한당과 같은 정치를 펼치고 있었고, 논밭을 빼앗기고 유랑하는 백성이 농사짓는 백성보다 많았던" 시기라고 합니다.


마침 이때 조정에서 조식에게 '단성현감' 벼슬을 내리자 그는 단성현감을 사직하는 상소 형식을 빌어 당시 정치를 강력하게 비판하는데, "임금의 책무를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 궁궐에서만 살아와 세상 물정을 알지 못하는 과부"라는 직설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척족세력 세력을 향해서는 야비한 승냥이 무리라 하고, 벼슬아치들의 간악함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날을 세워 비판합니다.


오늘의 통치자를 탓하는 듯한 소름 돋는 문장들


자그마치 500년 전에 쓰인 <을묘사직소>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임금이 아니라 국민이 주권자인 시대가 되었지만, 불의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을묘사직소를 읽다, 마치 오늘 이 시대를 이야기하는 듯한 문장과 만날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당나라 유학자 한유는 우두머리 목수가 나무를 쓰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굵은 나무를 대들보로 쓰고 가느다란 나무를 서까래로 쓰는 일은 목수가 해야 하는 일이다. 기둥 위와 아래에 쓸 나무를 찾고 문지방과 문설주와 문짝에 쓸 나무를 고르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목수는 이와 같이 나무를 취하여 방을 이루고 집을 이룬다."(본문 중에서)


오늘날 대한민국 목수는 대들보도 서까래도, 문지방과 문설주 그리고 문짝까지 모두 한 가지 나무만 골라 집을 짓고 있습니다. 모두 검찰 출신이지요. 한 가지 나무로만 지은 집이 얼마나 제대로 지탱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입니다. 소름 돋는 대목은 또 있습니다.


"물고기가 썩을 때 뱃속부터 썩는 법입니다. 나라 또한 물고기와 같으니, 내부에서 썩기 시작해 곧 악취를 풍기며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본문 중에서)


작금의 대한민국도 내부에서부터 썩기 시작하여 무너져 내리는 징조가 나타나고 있지요. 여러 일들이 있지만, 최근 정부가 내놓은 항복문서와 다름없는 대일 강제동원해법 발표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500년 전 을묘사직소에도 일본과의 관계를 지적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공격하지 않고 은덕을 배풀고자 하였으나 왜구는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나라를 얕보며 함부로 날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야흐로 왜구의 침탈이 일어나는 것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겨난 변고라고 할 수 없습니다."(본문 중에서)


지금 대통령의 친일 굴욕외교 역시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주장하던 세력들이 현재 집권 세력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지요. 스스로 무릎 끊은 대일 강제동원 해법 제안으로 500년 전 왜구들처럼 일본이 우리나라를 얕보고 더욱 날뛰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나라가 곧바로 망하지는 않지만, 수습할 수 없는 재앙으로...


조식은 이렇게 해도 나라가 곧바로 망하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변고가 생기면 수습할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군자가 한 나라에 살면서 인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현명한 신하를 존중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곧바로 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날 평범하지 않은 변고가 일어나면 장수는 수레에 올라 달려가고 군졸은 달음박질로 달려가 손짓하며 수습하려 해도 재앙이 닥친다."(본문 중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비로소 목이 마르고 입술이 타들어 갈 때 하늘을 우러러 탄식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형벌과 강압으로 명령으로 흩어진 백성을 불러모을 수는 있어도 임금(나라를 위해)에게 헌신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논어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명령으로 이끌면서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은 형벌을 피하려고만 할 것이니 백성에게서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본문 중에서)


일시적으로는 명령과 형벌로 국민을 굴복시킬 수 있겠지만 강압과 명령으로 영원히 통치할 수는 없다는 것을 500년 전에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권력기관을 동원한 압수수색과 구속기소로 언제까지 국민들의 저항을 잠재울 수 있을까요?


"지금 전하의 나랏일은 매우 잘못되고 있습니다. 전하의 나랏 일은 마치 새의 양날개가 서로 다른 쪽을 향해 퍼드덕대는 것과 같습니다....... 「맹자」에서는 백성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백성이 바라는 일을 들어 주고 싫어하는 일을 베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본문 중에서)


국민이 바라는 일은 들어주지 않고, 국민이 싫어하는 일에만 집착하는 통치자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500년이 지난 오늘, 저는 매일매일 <국민사직소>를 쓰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권력을 잘못 맡긴 주권자의 책임을 통감하면서 <을묘사직소>를 일독하였습니다.

"당나라 유학자 한유는 우두머리 목수가 나무를 쓰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굵은 나무를 대들보로 쓰고 가느다란 나무를 서까래로 쓰는 일은 목수가 해야 하는 일이다. 기둥 위와 아래에 쓸 나무를 찾고 문지방과 문설주와 문짝에 쓸 나무를 고르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목수는 이와 같이 나무를 취하여 방을 이루고 집을 이룬다."

"물고기가 썩을 때 뱃속부터 썩는 법입니다. 나라 또한 물고기와 같으니, 내부에서 썩기 시작해 곧 악취를 풍기며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공격하지 않고 은덕을 배풀고자 하였으나 왜구는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나라를 얕보며 함부로 날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바야흐로 왜구의 침탈이 일어나는 것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겨난 변고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군자가 한 나라에 살면서 인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현명한 신하를 존중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곧바로 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날 평범하지 않은 변고가 일어나면 장수는 수레에 올라 달려가고 군졸은 달음박질로 달려가 손짓하며 수습하려 해도 재앙이 닥친다."

"논어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명령으로 이끌면서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은 형벌을 피하려고만 할 것이니 백성에게서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지금 전하의 나랏일은 매우 잘못되고 있습니다. 전하의 나랏 일은 마치 새의 양날개가 서로 다른 쪽을 향해 퍼드덕대는 것과 같습니다....... 「맹자」에서는 백성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백성이 바라는 일을 들어 주고 싫어하는 일을 베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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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얼굴들 지앤유 로컬북스 4
허정도 지음 / 지앤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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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통합 창원시가 되어 그 이름조차 잃어버린 근대도시 마산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저자 허정도가 쓴 <도시의 얼굴들>에 나오는 첫 문장은 매우 강렬합니다. 

 

"장소를 피해가는 삶은 없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생의 한 순간도 장소를 벗어날 수는 없다."(본문 중에서)

 

<도시의 얼굴들>은 바로 장소에 새겨진 사람들의 삶을 담은 책이고, 사람들이 장소에 새겨 놓은 흐릿한 기억들의 재발견입니다.


저자는 건축과 도시전문가로 오랫동안 '도시의 공간 변천'을 연구하고 기록해 왔는데, 이번엔 도시와 건축에 관한 이야기대신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에 주목하였고 그들의 발자취와 그들이 걸었던 길을 쫓아 이 책에 담았습니다. 


"20세기 전반 60여 년, 마산이라는 한 도시에 남긴 16인의 흔적"을 도시와 건축에 탁견을 가진 저자가 여러 자료와 문헌들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질문하는 방식'의 상상력을 보태는 것으로 입체감을 높여놓은 새로운 형식의 도시스토리텔링입니다. 


등장인물은 모두 16명. 마산 사람들도 모르는 이가 많지만 잊지 않아야 할 사람들로 옥기환, 명도석, 김해랑, 독립운동가 김명시, 시인 백석, 마지막 왕 순종, 국어학자 이극로, 김수환 추기경 그리고 이원수, 김춘수, 천상병, 나도향, 임화와 지하련 같은 문학가들 그리고 이름 모를 산장의 여인이 그들입니다. 


민족해방운동사에서 마산을 대표하는 단 한 명을 꼽으라면, 김명시

 

열여섯 명의 주인공들 중 독자들에게 가장 소개하고 싶은 이는 김명시 장군입니다. 마산에서 태어나 열여덟까지 살았으며 러시아를 거쳐 중국 대륙과 만주벌판을 무대로 민족 해방을 위해 싸웠던 독립 운동가이자 사회주의혁명가입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고, 3.1만세운동 때 얻은 부상 후유증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사회주의 계열 항일투쟁에 뛰어들어 무려 12년이나 일제의 감옥에 갇혔던 김형선이 오빠였고, 1930년대 부산과 진해에서 적색노조운동을 이끈 김형윤이 남동생이었다."(본문 중에서)


고향을 떠나 항일 투쟁에 뛰어들었고, 스물여섯에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7년간 신의주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고 나와 1939년부터 팔로군에 입대하여 대륙을 누볐답니다. 조선의용군에 합류하여 김무정 장군과 함께 해방이 될 때까지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볐다고 합니다.


흔히 여성독립운동가라고 하면 남자들을 뒷바라지 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김명시 장군은 남자와 꼭 같이 총을 쏘고 훈련 받고 전투에 참가하였습니다. 여성부대를 따로 조직하여 지휘한 여장군이었다는 겁니다.


영화 <암살>을 통해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전설 같은 투쟁이 꽤 많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흔한 이야기는 아니지요. 최근에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소개한 여러 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도시의 사람들>이 가진 특별함은 바로 아래와 같은 인용문에 있습니다. 

 

"김명시는 1907년 동성리 189번지(오동동 문화광장 무대 자리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중략) 김명시가 살았던 때의 동성동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예전에 그 많았다는 요정도 지금의 아구찜 식당도 당시에는 없었다. 다닥다닥 붙은 나지막한 초가 사이로 거미줄처럼 얽힌 좁고 굽은 흙투성이 길뿐이었다. (중략) 소녀 김명시가 책보자기를 등에 둥치고 집과 학교를 오갔던 길은 어디였을까? 김명시의 집에서 학교까지는 대략 700여 미터, 소녀 걸음으로 15분 정도의 거리였다."(본문 중에서)


저자는 김명시가 살았던 동네와 흔적에 주목합니다. 어떤 역사학자도 '소녀 김명시의 등굣길'을 상상해보지는 않았을 겁니다. 독자들은 100여 년 전 김명시의 등굣길을 따라가면서 당시 마산의 모습을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다섯 쪽 가까이 이어지는 김명시의 등굣길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100여 년 전 마산 도심의 입체적인 모습과 만나게 됩니다.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가다보면 마산공립보통학교의 만세운동 역사에까지 닿습니다.


김명시가 6학년으로 편입했던 그 해 봄에 마산공립보통학교에는 이원수가 2학년으로 편입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서로 얼굴이라도 익힌 사이였을까?"


허정도가 이끄는 김명시 이야기는 해방 후 동지들과 함께 봉천에서 서울까지 걸어온 귀국길도 쫓아갑니다. 그리고 4년 뒤 부천경찰서 유치장에서 "수도 파이프에 자신의 치마를 찢어서 걸어놓고 목을 걸고 앉은 채로 자살했다"는 비통하고 안타까운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집니다. 


언론인 정운현도, 역사학자 강만길도, 일제강점기 민족 해방운동사에서 마산을 대표할 수 있는 단 한 명을 꼽으라면 바로 김명시 장군이라 했답니다. 하지만 지금 마산에서는 그 이름조차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란'을 찾아가는 시인 백석의 마산 길


열여섯 명 중에 딱 한 명만 더 소개한다면 누구를 해야 할까 오래 고민한 끝에 마산까지 이어진 개화기 최고 모던보이 백석의 사랑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월북 문인들의 작품이 해금되면서 남한에서 가장 새롭게 조명 받는 작가는 바로 백석입니다.


그를 다룬 논문과 책이 1천여 편을 넘겼다는군요. 평북 정주가 고향이고 동경 유학을 다녀와 조선일보 기자로 일했던 백석이 뜬금없이 마산을 세 번이나 다녀간 까닭은 무엇일까요? 한 편의 영화 같은 아릿한 짝사랑을 찾아가는 길에 마산을 거쳐 갔다고 합니다.


한 해 전 여름 친구의 결혼식 축하연에서 '란'을 처음 만난 후에 마음을 빼앗겼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1936년 1월, 2월, 12월 모두 세 번 마산을 거쳐 통영으로 갑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한 시절이 아니었기에 애끓는 그리움으로 먼 길을 다녀갔다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겠지요. 

 

"서울역에서 출발한 백석은 삼랑진에서 기차를 갈아탄 후 구마산역에 내렸다. 통영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하필 그날은 란이 서울로 가는 날이었다. 선창에서 내린 란이 구마산역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 백석은 배를 타기 위해 구마산역에서 선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불종거리에서 지나쳤다. 백석은 몰랐고 란은 알았다."(본문 중에서)

  

운명 같은 엇갈림이 마산 불종거리에서 있었고 백석과 란은 그후 다시 만나지 못합니다. 한편 통영에서 백석은 '란'을 그리워하며 '통영'이라는 시를 씁니다. 그날 쓴 시 '통영'에는 마산이 등장한답니다.

 

"구마산의 선창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중략) 내가 들은 마산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본문 중에서)

 


 

저자는 1936년 구마산역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마산포를 향해 걷는 백석의 모습을 실감나게 재구성 해냈습니다.

 

"역에서 나와 불종거리에 들어선 백석의 헤어스타일은 여전했다. 올백으로 넘긴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중략) 백석이 왔던 1936년 1월 초, 이원수는 형무소 안 독방에서 1월말의 석방을 기다리며 떨고 있었다. 가던 발걸음을 잠깐 멈추고 담장 안으로 눈길을 돌려봤을까?"(본문 중에서)


한 해 동안 세 번이나 통영을 찾아갔지만 청혼은 거절당하고 끝내 그녀와는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인연이 어긋난 후에 쓴 여러 편의 작품에도 '란'의 잔영이 오래도록 스며있습니다. 백석이 다녀 간 마산에도 그의 발자국이 남아 있겠지요.


이 책은 열여섯 명의 주인공들과 얽힌 마산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서술합니다. "도시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건축가, 사람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 지식인" 허정도가 풀어 낸 마산 이야기 입니다.


마산에 살고 있거나 백석처럼 잠시 마산을 거쳐 간 사람들, 그리고 마산과 아무 인연이 없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숨겨진 이야기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저자는 문화적 도시재생을 위한 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마산을 재생하기 위한 "스토리텔링을 주장하는 이도 많았고 이용할 사람도 많았지만, 스토리를 발굴하고 엮어 낼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더 먼저 더 깊이 고민한 자신이 <도시의 얼굴들>을 썼습니다. 마산이 아닌 다른 <도시의 얼굴들>을 기록하는데도 널리 길잡이가 될 만한 책 입니다.



출처: http://www.ymca.pe.kr/2565 [세상 읽기, 책 읽기, 사람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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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12-29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 읽기, 책 읽기, 사람살이] 포스팅에 첨부된 이미지들이 알라딘 서재에서는 보이지 않나봐요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 - 신우해이어보 지앤유 로컬북스 3
최헌섭.박태성 지음 / 지앤유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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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최헌섭과 박태성이 쓴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 - 신우해이어보>


<우해이어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쓰인 어보입니다. <우해이어보>약 200년 쯤 전인 조선 후기에 진해(지금의 마산합포구 진동면 일대)에 유배 온 담정 김려(1766~1822)라는 분이 쓴 책입니다. 담정이 쓴 <우해이어보>는 이미 몇 차례 번역본이 나왔지만, 일반 시민들이 읽기엔 어렵고 불편하였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는 담정 김려의 <우해이어보>를 일반인들도 편하게 만날 수 있도록 쓰인 책입니다. 김려의 시대로부터 200년 후에 그의 발자취를 쫓으며 쓴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는 창원 출신 역사학자 최헌섭과 박태성이 썼습니다. 


두 저자는 200년 전 담정이 남긴 기록을 따라 '우해' 일원을 찾아다니며 당시 생활사를 이해하고, 우해 앞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어민들의 삶을 되살펴보았더군요. 경남도민일보에 <신우해이어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이 경상대학교 출판부를 통해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로 엮여 나왔습니다.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는 문절망둑에서부터 소라(황소라, 자주소라, 앵무소라)에 이르기까지 40여 종의 바닷물고기와 게, 조개, 소라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특별한 까닭은 그냥 책상 위에서만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동저자인 최헌섭과 박태성은 오랜 시간 동안 '우해이어보'에 등장하는 옛 진해 일대를 답사하였고, 실제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김려가 관찰했던 그 물고기도 잡았습니다. 이미 지난 200년 동안 수많은 물고기들이 옛 진해 앞바다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바다에서 잡을 수 없는 물고기는 어시장을 찾아가서라도 직접 보고 관찰하였더군요. 


저자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40여 종의 물고기들을 지금의 시각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롭게 소개합니다. 김려가 '우해이어보'에 쓴 물고기 이름과 생김새 등이 틀림없는지 검증도 하고 한자와 우리말 그리고 지방 방언으로 물고기 이름과 특성을 알려줍니다. 


조선시대 마산 사람은 어떤 물고기를 먹었을까?


바로 그런 노력 덕분에 저자들은 200년 전 김려가 잘못 쓴 것을 고쳐 바로잡기도 하고, 김려의 시선으로 바라 본 200년 전 어부들의 고기잡이 방식 그리고 그 시대를 살던 어촌 사람들의 생활상을 마치 한 폭의 그림이나 옛 이야기처럼 전해줍니다. 


"흉년에 순무를 캐어 대갓집에 파는 노파와 처녀, 오징어 숙회에 이명주를 파는 들병이 노파, 매가리젓갈을 팔러 혼자 배를 목고 오는 고성의 아낙, 멀리 반성장에 정어리를 팔러가는 양섬 아낙의 모습에서 그들의 억척스런 모습을 읽어낸다."(본문 중에서) 


요리법을 소개할 때는 더욱 생생합니다. 저자들은 특별히 '감성돔 식해'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오늘 날에도 충분히 옛 맛을 재현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한 레시피가 남아 있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이곳 사람들은 가을이 지나갈 무렵에 감성돔을 잡으면, 비늘을 긁어내고 지느러미를 떼어 낸다. 머리와 꼬리를 자르고 내장은 버리고 깨끗이 씻어 배를 양편으로 가른다. 보통 배를 가른 감성돔 200조각에 희게 찧은 멥쌀 한 되로 밥을 해서 식기를 기다린 뒤에 소금 두 국자를 넣고 누룩과 엿기름을 곱게 갈아 한 국자씩 고르게 섞어 놓는다. 그리고 작은 항아리를 이용하여 안에는 먼저 밥을 깔고 다음에 감성돔 조각을 겹겹이 채워 넣고 대나무 잎으로 두껍게 덮고 단단히 봉해 둔다. 이것을 깨끗한 곳에 놓아두고 익기를 기다렸다가 꺼내 먹는다. 달고 맛이 있어 생선 식해 중에서 으뜸이다."(본문 중에서)


이 인용문은 원작인 김려의 <우해이어보>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두 저자들의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만 번역해서 들려주는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원작에 감성돔 식해 이야기가 나오자 가자미 식해, 오징어 식해, 청어 식해, 복어 식해에 관한 이야기로 넓혀 가는데, 여러 관련 서적이나 그림 등 여러 자료들을 적절하게 인용하곤 합니다. 


낚시 좋아하신다구요? 감성돔 식해 아시나요?


예컨대 볼락편에서는 한자로 '보라어'라 쓴 까닭을 문헌에서 찾거나 관련 자료를 토대로 짐작해보고, 볼락의 종류를 조피볼락(우럭), 불볼락(열기), 쏨벵이가 있고, 개볼락, 누루시볼락, 황점볼락 도화볼락, 세줄볼락, 탁자볼락 등을 함께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볼락편의 마지막엔 김려가 남긴 시를 번역하여 독자들에게 들려줌으로써 정취와 멋을 더해 마무리를 합니다. 


달 기울고 까마귀 우는 바다

한밤 밀물이 울타리 앞 두드릴 때

아마 볼락 실은 배가 들어왔나 보다

거제 뱃사람들 물가에서 떠들썩하네


저자들은 볼락은 '보라어'를 비롯한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쌀엿처럼 단맛이 나는 보랏빛 물고기"라고 원작을 뛰어넘어 멋지게 정의 하였더군요. 


서뢰라고도 불렀다는 쥐치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만, 오늘 서평에서는 쥐치는 생략하고 '죽음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맛'으로 불린다는 복어 이야기로 갑니다. 김려의 우해이어보에는 석하돈, 작복증, 나하돈, 황하복증 등 여러 어종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어편에서 가장 재미있는 대목은 소동파와 옛사람들이 남긴 멋진 문장들이었습니다. 복어의 맛을 표현한 옛사람들의 문장이 이색적이고 유쾌합니다. 


"복어의 맛은 중국 송나라 소동파가 죽음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일본에서는 복어를 먹지 않는 사람에게는 후지산을 보여주지 말라고 할 정도로 그 맛을 일품으로 생각했다."(본문 중에서)


복어만큼 흥미로웠던 이야기가 또 있는데 바로 '병어'(석편자)편입니다. 허균이 쓴 짦은 편지 글이라고 하는데 오늘 날로 치자면 병어회를 먹고 쓴 맛 칼럼 같은 것입니다. 


"실처럼 잘게 회를 쳤더니 군침이 흐르더이다.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으니 국수나 먹던 창자가 깜짝 놀라 천둥소리를 냈습니다."(본문 중에서)


놀랍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병어가 등장하는 여러 옛문헌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당나라 시인 맹호연과 두보의 시에도 등장하고, 이규보의 시에도 등장하며, <현산어보>나 서유구의 <난호어목지><신증동국여지승람> 같은 책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더군요.


봄=도다리, 가을=전어? 진짜 도다리 제철은 가을이라는데


사람들의 상식을 흔들어 놓는 물고기 이야기들도 여러 번 등장하는데, 그중 대표적으로 소개할 만한 것은 도다리편입니다. 우선 우해이어보에서는 도다리를 '도달어'라고 하였는데, 가자미 종류의 하나라고 하였답니다. 


물고기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도 고등어, 갈치, 꽁치처럼 도다리나 광어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사는 고장 사람들은 흔히 횟감으로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고 이야기 합니다. 도다리 회는 봄에 맛이 제일 낫고, 전어회는 가을이 최고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를 쓴 최헌섭, 박태성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도다리에 대한 상식은 여러 측면에서 오류 투성이입니다. 


"지난해 가을 끝자락에 고현 앞바다에서 꼬시락과 함께 낚은 녀석도 여러 자료를 비교해 봤더니 도다리가 아니라 문치가자미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이 녀석을 도다리라 부르고 횟집에서도 그렇게 팔고 있다. 봄에 한창 제철을 맞아 도다리쑥국에 들어가는 녀석이 바로 이 녀석이라니 도다리 행세하는 문치가자미가 도다리 철을 봄으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본문 중에서)


"도다리 행세를 하는 대표 어종이 가두리에서 키운 강도다리다. 봄철 횟집에서 도다리 횟감으로 내놓는 게 대부분 이 녀석인데, 도다리와 비슷하게 마름모꼴에 가깝게 생긴 몸통에 지느러미에 검은 띠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본문 중에서)


요약하자면 우리 고장 사람들이 도다리라고 알고 먹는 봄 도다리 회는 가두리에서 키운 '강도다리'이고, 도다리 쑥국에 들어가는 생선은 '문치가자미'라는 것인데, 쉽사리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담정 김려는 <우해이어보>에서 도다리를 가을 생선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맛은 감미롭고 구워서 먹으면 더욱 맛있다. 이 물고기는 가을이 지나면서 비로소 살이 찌고 커진다. 큰 것은 3~4척이나 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가을도다리 혹은 서리도다리라고 한다."(본문 중에서)


200년 전만 해도 도다리는 봄에 즐겨 먹는 생선이 아니었으며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늦가을에 즐겨 먹었는데, 그 까닭은 그 때가 되어야 살이 찌고 커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흔히 도다리라고 알고 먹고 있는 생선은 문치가자미와 강도다리라니 허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고기에 대한 알쓸신잡... 우해이어보를 읽어보시라


그렇다면 진짜 도다리는 없는 걸까요? 없지는 않지만 귀하다고 합니다. 국립수산과학원 수산생명자원정보센터에서 낸 자료를 보면 도다리는 문치가자미와 함께 가자미과에 속하는데, 가을에 산란을 하고 1년에 10cm, 2년이 되면 17cm, 3년이면 21cm로 성장하며 성어의 크기는 30cm 정도라고 합니다. 


아무튼 바다에서 직접 잡지 않으면 횟집이나 도다리 쑥국 전문점에서 진짜 도다리 회나 진짜 도다리 쑥국을 맛보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유난히 눈에 뜨인 물고기들에 대한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더 많은 물고기들에 대한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우해이어보>에 나오는 '우해'는 당시 지명으로 '진해'였고,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일대입니다. 제가 사는 마산 사람들의 200년 전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 책인 것이지요. 바로 그 책을 읽고 말하자면 해설판으로 낸 책이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입니다. 


두 저자가 창원 혹은 창원에서 가까운 창녕에서 나고 자라서, 창원에서 공부를 하고 창원에서 창원 지역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라 더 반갑고 고맙습니다. 옛 사람이 남긴 내 고장 바다와 물고기 이야기를 오늘날 독자들을 위하여 더 쉽고 더 흥미롭게 그리고 더 과학적인 자료를 찾아 비교하면서 바로잡고 풍성하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TV프로그램이 인기지요? 그 프로그램 패널인 황교익 선생의 고향이 바로 <최초의 물고기 이야기-신우해이어보>의 배경이된 '우해' 인근이라고 하더군요. 알쓸신잡 같은 지식이 필요하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물고기에 대하여 아는 체 좀 하고 싶은 분들에게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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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사람 별난 인생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들 - 그들 이야기에서 세상의 희망을 보다
김주완 지음 / 피플파워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서평] 김주완이 쓴 <별난사람 별난인생>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내가 책을 읽고 마음에 새겨 인생의 좌우명처럼 간직하고 있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스콧 니어링이 전해 준 말입니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국장이 쓴 <별난사람 별난인생>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세상의 순리대로 둥글둥글하게 사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별난사람’으로 보이고 ‘별난인생’으로 보이는 것이겠지요. 


책 읽기를 좋아하고 남들의 사는(살아 온) 이야기를 즐겨 읽은 탓에 <별난사람 별난인생>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중엔 낯설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채현국 일대기를 담은 <풍운아 채현국>, 김진숙의 살아온 이야기가 담긴 <소금꽃 나무>, 방배추의 자서전과 다름없는 <배추가 돌아왔다>, 임종만 회고록 <나는 공무원이다>을 읽고 서평을 썼기 때문입니다. 


서평을 썼다는 건 그 만큼 자세히 읽었고, 글을 쓰기 위해 중요한 대목과 마음에 닿았던 문장 예컨대 밑줄 친 곳 들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는 것이지요. 그 밖에도 농민운동가 김순재의 경우 몇 차례 직접 만난 일도 있고, 농협조합장 선거에 출마 했을 때는 그를 알리기 위한 글을 여러 차례 블로그에 포스팅 하였기 때문에 역시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난사람 별난인생>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책에서 소개되지 않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고,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장형숙, 김장하 같은 분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모두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세 개는 채현국 선생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채현국 선생 인생을 책으로 쓰고 난 뒤에도 그를 꾸준히 밀착 취재(?)했더군요. 강연회장에서 혹은 대담자리에서 패널이나 청중들과 주고 받은 대화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여 저자가 쓴 <풍운아 채현국>에 담아내지 못한 선생의 다른 면모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좋은 책 저자에게 격려편지 보내는 89세 할머니


4번째 에피소드는 매년 수백 통의 편지를 쓰는 89세 장형숙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 일본으로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연수를 갔다가 이른바 전공투 세대인 일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소일거리 삼아 핵잠수함 감시 활동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장형숙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니 그 기억이 나더군요. 


이 분은 <풍운아 채현국>을 읽고 저자인 김주완 국장에게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라고 감사와 격려의 편지를 보냈는데, 김주완 국장만이 아니라 신문이나 책을 읽다가 좋은 글, 좋은 사람, 좋은 책을 발견하면 격려와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늙은이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나요? 편지라도 써서 좋은 일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된다면 보람이지요. 진짜 보석 같은 사람들이 많이 숨어 있는 것 같아. 특히 시골에 그런 보석이 많이 살아요.”


심지어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읽고는 일본에 있는 동창을 통해 주소를 수소문해  저자 와타나베씨에게 편지를 썼다더군요.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 역시 이 책을 읽고 오마이뉴스와 블로그에 서평을 쓰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 하였지만, 저자에게 편지를 쓴다는 생각을 한 번도 못해봤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였으니 인텔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에서 부모를 잘만나 어린 시절부터 글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을 ‘복이 터졌다’고 하셨더군요. 89세가 되어서도 소박하지만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고”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도 숙연해졌습니다. 


교토의정서, 국제통화기금, 모기지론 같은 단어의 뜻을 찾아 붙여 놓고, 미국지도와 중국지도를 붙여 놓고 책을 읽는다는 할머니의 학구열에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30년, 40년 후에 나도 장형숙 할머니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더군요. 


전설의 운동권 주먹 방배추 


5번째 에피소드는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라는 방배추 어른이야기입니다. 그가 전설의 주먹으로 불린 것은 아무래도 평생을 주먹잡이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1954년 백기완에게 따귀를 얻어 맞고 이른바 운동권과 어울리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권 주변에 대체로 주먹을 쓰는 사람이 흔치 않으니 젊은 시절 그의 주먹 다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전설이 되었으리라 짐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0만평 노나메기 농장을 운영하다 억울한 간첩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경관 이근안의 악몽같은 고문을 견뎌냈으니 전설같은 인물은 분명합니다. 


아마 <별난사람 별난인생>에서 방배추 어른을 소개하는 짧은 글을 읽고나면 그의 인생이 무척 궁금해질 것이고, 그러면 저처럼 자전적 에세이 <배추가 돌아왔다>을 읽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뉴스 펀딩 기사로 이 글을 읽고 헌책방에서 <배추가 돌아왔다> 1, 2권을 구해 읽었답니다. 


6번째 에피소드는 영화평론가 양윤모, 이 분은 50살이 넘어 잘나가던 직업을 내려놓고 고향 제주로 낙향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가로 살아가는 분입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으로 네 번이나 수감생활을 하였고, 세 차례의 장기 단식으로 투쟁을 이어온 분입니다. 


“제주 해군 기지라는 게 너무 터무니 없는 거예요. 이 사업의 순수성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군도 하나의 이기집단이라는 거죠. 국제적인 전쟁 괴짜들,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 하지만 껍데기 속을 들여다보면 군수산업체 패밀리들의 잔치라고 보는 거죠. 그들은 나중에 전쟁도 계획하게 되고 그것을 또 실행하게 되고...그런 국제적인 전쟁 괴짜들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본문 중에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간명하게 정리해주더군요. 그러면서 끝내 ‘해군 기지가 들어섬으로써 강정 싸움은 패배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지금부터 새로운 시작이라고 답하더군요. “우리는 저걸 평화공원으로 만드는 획기적인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더군요.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일에 일생의 꿈을 걸었다고 하더군요.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지역운동의 기초를 다지는 작업으로 새로운 지역언론을 만들고, 강정생명평화사목센터를 세워 해군지지를 평화공원으로 만드는 긴 호흡의 운동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나이들어 꼰대로 살지 않기 위해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양윤모 선생에게 한 수 배우게 되었습니다.


나이들어 꼰대로 살지 않는 법


7번째 에피소드는 이 책에 등장하는 8명의 ‘별난사람’ 중에서도 저자인 김주완 국장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분입니다. 진주에서 남성당한약방을 경영하고 있는 이 분은 자기를 자랑하거나 내세우는 일을 일체하지 않기 때문에 인터뷰없이 여러 증언과 자료를 정리하여 쓴 글입니다.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100억 원의 사재를 쏟아 부은 사립 고등학교를 세웠다가 국가에 헌납해 버립니다. 


“학교 설립의 모든 재원이 세상의 아픈 이들에게서 나온 이상, 이것은 당연히 공공의 것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이지요. 


인권운동, 지역신문, 장학사업, 평화운동, 문화운동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후원 하였지만, 그것을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않는 분이라는 겁니다. 진주시민사회가 범 민주단일 시장후보로 추대하였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은 (당선 가능성이 없으니) 그렇다치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초대에도 응하지 않았다더군요. 


자신이 번돈을 자기 돈이 아니라고 하는 부자, 참 흔치 않은 인물이지요. 가진 돈이 없으니 그의 삼을 고스란히 닮을 수는 없습니다만, 그가 보여준 삶의 자세라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초청도 거절한 한약방 주인


8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영혼이 있는 공무원 임종만 선생입니다. 공무원 노조활동을 하다 2년에 걸친 복직 소송을 하고, 재 징계를 받아 정직 2개월의 중징계를 당한 분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생은 아랑곳 하지 않고 “2년간 일도 하지 않고 봉급을 받아 미안할 뿐”이라고 하였더군요. 


흔히 공무원을 빚대어 영혼이 없다고 하는데, 그는 승진 욕심을 버리면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랜 세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남몰래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파트가 될 뻔한 땅을 공원으로 만드는 일에 앞장서서 ‘녹색환경인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임종만 선생의 살아온 이야기는 자전적 엣세이 <나는 공무원이다>에 더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만, 김주완 국장이 쓴 <별난사람 별난인생>에는 임종만 선생이 자신의 책에 담지 못한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미 민주노총을 탈퇴한 노조에도 희망을 엿보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함께 블로거 활동을 하면서도 모르고 지나쳤던 임종만 선생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9번째 에피소드는 한진중공업 타워크레인 농성의 주인공 김진숙 선생입니다. 타워크레인 농성 당시 <소금꽃나무>를 읽고 서평을 썼기 때문에 이 분의 삶 역시 낯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탁월한 인터뷰이 김주완 국장을 통해 이분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었습니다. 


“누가 좋은 사람이다고 소개를 해도 딴 사람은 연애감정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아 저 사람하고 같이 노동조합을 한 번 해볼까 이런 생각이 우선들었으니까.” (본문 중에서)


이 책에는 그가 어떤 마음으로 타워크레인에 올라갔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어떻게 생활 하였는지, 희망버스와 이른바 ‘날라리’들에게서 배운 진정성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금속노조나 민주노총이 그런 진정성들을 충전하지 않으면 참 공허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촛불집회 때도 마찬가지였죠. 진정성이 있어야 대중의 역동성이 되살아나는 거다.”(본문 중에서)


아울러 평생을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그이가 녹색당 사람들에게 건넨 덕담도 인상 깊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면서,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운동권...진정성 있어야 대중의 마음 얻을 수 있어


10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농협조합장 선거에서 낙선한 농민운동가 김순재입니다. 선관위로부터 제 블로그 글을 블라인드 당하면서까지 응원 하였습니다만, 큰 표차로 낙선 하였습니다. 김순재 조합장  때문에 농협중앙회가 준재벌 규모를 갖춘 거대한 조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농협을 바꾸면 농민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답니다. 


저도 20년을 훌쩍 넘겨 한 가지 일에 인생을 걸고 있습니다만, 이 양반 만큼 주도면밀하였는지, 이 분 만큼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꽤뚫고 있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더군요. “농민을 위해서는 농협이 적자를 봐도 된다”는 말에 그의 철학이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농협조합장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모두 내려놓고,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바꾸고 농산물 판매방식에 농협의 책임성을 높이는 수탁판매 비율을 높여냈더군요. 가끔 진보세력에게 권력이 넘어오면 나라를 경영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집권능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김순재 선생은 작은 농협 조직을 통해 ‘운동권 출신이 대중을 더 잘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책을 읽고보니 예비 독자들에게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별난사람 별난인생>을 읽고 나면 이 책에 등장하는 여덟 사람의 인생이 점점 더 궁금해질 것입니다. 어쩌면 다른 책을 더 읽거나 이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어질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주인공들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터뷰이의 집요함과 실력을 동시에 엿볼 수 있었습니다. 

"늙은이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나요? 편지라도 써서 좋은 일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된다면 보람이지요. 진짜 보석 같은 사람들이 많이 숨어 있는 것 같아. 특히 시골에 그런 보석이 많이 살아요."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학교 설립의 모든 재원이 세상의 아픈 이들에게서 나온 이상, 이것은 당연히 공공의 것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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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아 채현국
김주완 지음 / 피플파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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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작년 연초에 <한겨레>에 실린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걸 잘 봐 두어라" 인터뷰 기사 덕분입니다. 


<분노하라>를 써서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프랑스 노인 스테판 에셀에 감동 받으며, 우리나라엔 왜 저런 분이 없을까 하던 차였습니다. 그런 때에 국내언론을 통해 채현국이라는 뉴 페이스(?)가 등장한 것입니다.  


일찍부터 익히 채현국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던 지인들과 동지들도 적지 않았겠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는 <한겨레> 인터뷰가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해방 이후 줄곧 친일파 후손과 독재자들이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동안,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은 곳 모두에서 많은 사람들이 맞서 싸웠습니다. 


그 중에는 백기완 선생이나 리영희 선생 혹은 젊은 시절의 김근태, 이부영, 황석영처럼 널리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고수'(?)도 여럿 있었던 모양입니다. 


채현국 선생 역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강호의 고수들 사이에서는 알아주는 이 중 한 명이었더군요. 채현국 선생의 이력이 알려진 후에 여러 매체를 통해 그 분의 인맥이 드러나는 걸 지켜보니, 소위 민주화 운동의 고수들과 '유유상종'하는 분이었습니다.


채현국 선생은 그 중에서도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호기심 때문에 김주완 <피플파워> 기자가 기록한 <풍운아 채현국>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사놓고 다 읽기 전에 창원대학에서 열린 '풍운아 채현국 북 콘서트'에 가서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


채현국 선생은 남부럽지 않을 만큼 많은 재산을 모았으면서도, 노동자의 고혈을 빠는 재벌기업이 되는 길을 버리고, 사람답게 사는 삶을 선택한 분입니다. 


"한때 24개 기업을 경영하며 개인 소득세 납부액이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거부였으나, 지금은 특별한 소득이 없는 신용불량자"로 살아간다고 하더군요.


"그는 맘에 맞는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헤어질 때 차비를 쥐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셋방살이를 하는 친구들에게는 조그마한 집을 한 채씩 사주는 파격의 인간이다." - 본문 중에서


"서울대 철학과 출신 채현국은 그 당시 표면에는 일절 나서지 않으면서 군사정권의 지명수배를 받거나 도망 다니는 사람들을 그 탄광에 받아서 그들에게 호신처를 제공하고, 또 음양으로 반독재의 노선을 추구하는 지식인들과 학생들 그리고 문인들을 경제적으로 도와준 훌륭한 분이오." - 본문 중에서


채기엽, 채현국 부자는 1952년 서울에서 시작한 연탄 공장을 필두로 삼척과 저성선 일대의 탄맥을 개발하여 흥국탄광을 설립했습니다. 이어 흥국화학, 흥국해운, 흥국조선 등의 여러 회사를 운영하였다고 합니다. 장항에 있던 흥국조선은 우리나라 최초로 1000톤이 넘는 컨테이너 전용선을 두 척이나 건조했답니다.


하지만 1973년 즈음에 잘 나가던 회사들을 모두 정리하여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 나눠주고 사업을 정리해 버립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하기 어려운 큰 결단을 한 것이지요. 사람은 흔히 돈을 벌면 더 많은 돈을 벌려다 돈의 노예가 되기 십상인데, 채현국 선생은 그 때까지 모은 재산을 조건 없이 나눠줘 버리면서 노예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재벌 부럽지 않은 부자에서 신용불량자가 되기까지 


그는 광부들과 노동자들에게 나눠 준 것이 아니라, 원래 주인에게 돌려줬다고 하는 표현이 더 맞다고 강조했습니다. 농장까지 팔아서 광부들에게 돌려 준 것도, 탄광에서 생긴 이익금으로 농장을 마련하였기 때문에 그 돈까지 돌려주는 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무튼 그 때 회사를 모두 나눠주고도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었던 탓에, 1980년 즈음 회사가 부도난 이후로 지금까지 신용불량자로 살고 있다 했습니다. 젊은 시절 대부호로 살았다가 중년 이후에는 신용불량자로 살고 있는 것이지요.


채현국 선생은 김일성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아울러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벽초 홍명희가 북한에 가서 부수상을 하지 않았느냐는 말에 단호하게 반박합니다. 


"부수상이란 자리. 김일성 그 자식이 딸년 데리고 살았어요. 그놈 개자식이요. 독립운동한 건 사실이지만, 이 나라에서 나처럼 그놈을 개새끼라고 부르는 사람도 별로 없을거요." - 본문 중에서


"내가 알기론 북한에선 이미 마르크시즘이 금서가 되어 있다. 저 자들은 절대로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지금 독재 권력을 행사하는 자이지, 그럴싸한 수작만 하는 자이지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 본문 중에서


창원대학교에서 개최된 북 콘서트 때도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으로 평가하였습니다. 동시에 남한에서 진보 세력을 종북좌파 빨갱이로 덧칠하는 것에 대해서도 단호히 반대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빨갱이 개념은 북조선에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김일성 그 일당으로 제한시켜야한다. 실직적인 권력, 무력을 가지고 북조선의 그 세력을 지지하고 추장하는 자들에게만 빨갱이라는 단어를 써야지, 전 세계가 사상의 자유가 있는데 그러지 않으면 우리만 바보 된다." - 본문 중에서


따라서 이런 기준을 놓고 보면, 인혁당이나 남민전 같은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절대 북한 추종자들이 모인 게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그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겠지만, 그의 북한관이나 남한의 진보세력에 대한 이념적 규정은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반도에 빨갱이는 김일성과 그 일당뿐이다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묻는 질문에 거침없고 단호하게 '권정생'이라고 말합니다. 권정생은 대한민국 대표 동화 <강아지똥>과 소설 <몽실언니> 수필 <우리들의 하느님> 등 많은 동화와 시, 수필을 남긴 작가입니다. 


후배들과 학습 모임을 하면서 권정생 선생님이 쓴 <우리들의 하느님>을 다시 함께 읽고 있기도 하고, 최근 서울도서관에서 개최하고 있는 이오덕, 권정생, 하이타니 겐지로 전시회 <아이처럼 살다>에서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과 유품을 보고 온 때문인지 더 많이 공감 되더군요. 


채현국 선생은 권정생 선생님과 더불어 소설가 박완서의 여러 작품들과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문학작품이 아닌 책들로 임락경 목사가 쓴 <우리 영성가 이야기> 그리고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같은 책들도 추천해주었는데, 모두 읽지 않은 책들이라 도서구입 목록에 추가해 두었습니다. 


여러 인물에 대한 평가도 있었는데 앞서 소개하였듯이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매우 단호하였고,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에 대한 평가도 과격(?)하였습니다. 그는 스필버그를 가장 악랄한 지적 범죄자라고 단정 짓습니다. 


"빌 게이츠가 자본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는 면도 있지만, 스필버그 같은 사람이 정말로 인간의 마음속까지 썩게 하면서 자본주의를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돈 버는 능력, 그게 최고의 정의입니다." - 본문 중에서


"그렇죠. 그 몰랐던 새로운 사실(영화 <쉰들러 리스트>)을 그렇게 재미있게 만들어가지고 돈을 빨아먹은 겁니다. (중략)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는 계획적으로 계산 대어가지고 자기 전체 제작 영화를 정의로운 걸로 믿고 방심하게 만든 겁니다. 그래서 돈 버는 능력이 정의가 된 겁니다." - 본문 중에서


예컨대 스필버그 감독은 '정의'마저도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이며, 재미있는 것이 곧 좋은 것일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것으로 믿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돈 버는 능력이 곧 '정의'가 되는 문화와 풍토를 확장시킨 주범이기도 하다는 주장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지적 범죄자다?


요약하자면, 그가 만든 영화를 흥행시키는 과정에서 돈 잘 버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끔 만든 것이 그가 저지른 '지적 범죄'라는 것입니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소개하였다시피, 채현국 선생은 그 자신이 나이든 사람이면서도 나이든 사람들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입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나이든 사람들이 존경받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나이 먹을수록 지혜로워지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혜보다는 노욕의 덩어리가 될 염려가 더 크다는 겁니다." - 본문 중에서


농경사회까지만 하더라도 노인의 경험이 지혜처럼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 사회 혹은 요즘과 같은 정보화 사회에서는 그런 경험이 다 고정관념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알던 것은 모두 오류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나이 먹은 사람들은 점점 지혜롭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풍운아 채현국>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고 놀라웠던 사실은, 채현국 선생과 같은 지식인도 일제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은 '일본이 조국이라고 굳게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이 조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어. 그걸 아는 놈은 아주 뛰어난 상류층 지식인 집안이거나 아니면 지식 있는 중상류층에서 아이가 가서 말 하지 않을 확신이 있었던 집에서만 일본이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말을 해줄 수 있었지." - 본문 중에서


그의 말에 따르면 3.1운동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은 일본이 조국이 아니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답니다. 일본 사람을 잘난 체 하는 사람 정도로 알았지, 딴 나라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해방 전까지... 일본이 조국이라고 굳게 믿었다


또 그랬기 때문에 해방이 되고 나서 엄청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채현국 선생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동년배, 동시대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혼란을 겪었겠더군요.


"해방되자 마자였죠. 놀랐죠. 이 놀라움이라는 것은 세상이 옳다고 가르쳐준 게 전부 거짓말인거야. 영국 놈, 미국 놈은 다 죽여야 할 짐승 같은 놈이라고 얘길 했는데, 학교 칠판 옆에 루즈벨트 하고 처칠 얼굴 붙여놓고 거기에 사무라이가 칼로 이마빡을 쑤셔놓은 그림이 커다랗게 걸려있었어요. (중략) '아, 어른들이 옳다 하던 건 전부 거짓말이네' 하는 것을 그 때 알았어요." - 본문 중에서


요새 하는 말로 '멘붕'을 경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3.1운동 때까지만 해도 독립운동가 대열에 이름을 올렸던 사람들이 1930년대, 1940년대에 줄줄이 친일파로 돌아서게 된 것도 더 이상 독립에 희망을 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한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묻는 질문에는 기대보다는 평범한 답을 합니다. 그래서 좀 안심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좀 덜 치사하고, 덜 비겁하고, 정말 남 기죽이거나 남 깔아뭉개는 짓 안 하고, 남 해코지 안 하고... 그것만하고 살아도 인생은 살 만 하지." - 본문 중에서


뭔가 엄청나게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덜 치사하고 덜 비겁하고 남 깔아뭉개는 짓 안 하고 남 해코지 안하고 살면 된다고 합니다. 쉬워보였습니다만, 가만히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해보니 그리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더군요. 나이든 지식인의 외침은 '고정관념'을 깨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수상이란 자리. 김일성 그 자식이 딸년 데리고 살았어요. 그놈 개자식이요. 독립운동한 건 사실이지만, 이 나라에서 나처럼 그놈을 개새끼라고 부르는 사람도 별로 없을거요."

"내가 알기론 북한에선 이미 마르크시즘이 금서가 되어 있다. 저 자들은 절대로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지금 독재 권력을 행사하는 자이지, 그럴싸한 수작만 하는 자이지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빌 게이츠가 자본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는 면도 있지만, 스필버그 같은 사람이 정말로 인간의 마음속까지 썩게 하면서 자본주의를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돈 버는 능력, 그게 최고의 정의입니다."

"그렇죠. 그 몰랐던 새로운 사실(영화 <쉰들러 리스트>)을 그렇게 재미있게 만들어가지고 돈을 빨아먹은 겁니다. (중략)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는 계획적으로 계산 대어가지고 자기 전체 제작 영화를 정의로운 걸로 믿고 방심하게 만든 겁니다. 그래서 돈 버는 능력이 정의가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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