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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가 빨간 쇠물닭아 물들숲 그림책 17
이영득 지음, 권정선 그림, 김나현 기획 / 비룡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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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한 살이를 담은 생태그림책에서 '이마가 빨간 쇠물닭' 이야기를 읽었습니다만, 저는 아직 자연에서 쇠물닭을 본 일이 없습니다. 어쩌면 우포늪이나 주남저수지에서 여러 새들과 함께 새물닭을 보았을지도 모릅니다만, 쇠물닭인 줄 모르고 보았으니 못 본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글을 쓴 이영득 선생님은 "쇠물닭 둥지를 처음 본 날 가슴이 뛰었다"고 합니다. "쇠물닭 둥지가 물위에 지은 수상가옥 같았다"고 합니다. 쇠물닭은 둥지를 만들고나서 싱싱한 줄(벼과에 속하는 물풀) 잎을 구부려서 가려놓는다고 합니다.

 

새 둥지를 보는 것은 새를 보는 것보다 훨씬하기 어려운 경험이겠지요. <이마가 빨간 쇠물닭아>는 늘 자연과 가까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지내는 이영득 선생님이 직접 보고 관찰한 쇠물닭의 한살이를 담은 생태 그림책입니다. 


사람들은 사라져 가는 황새, 따오기, 반달가슴곰, 여우들을 되살리겠다고 애쓰고 있지만, 사라져 가는 생명 못지않게 우리 곁에 흔히 있는 생명들 또한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쇠물닭'이야기를 글로 옮겼답니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곤충 한 마리가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는지 아는 것이 자연과 친구가 되는 길이라고 합니다. 오래전 자연과 만나는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길잡이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지요.


"이름을 모를 때는 잡초이지만, 이름을 알고 나면 더 이상 잡초가 아니다."


이 책에는 쇠물닭이 알을 낳고 알음 품고 스무여 날이 지나 새끼가 깨어나는 과정, 개구리밥과 잠자리 애벌레를 받아 먹으며 자라는 과정, 올챙이, 노린재, 메뚜기를 잡아먹으며 성장하는 과정, 논우렁이와 물자라와 물고기를 잡아먹는 모습이 예쁜 글과 초록 가득한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엄마 쇠물닭은 여섯 개의 알을 품었지만, 다섯 남매만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삵을 피해 달아나는 숨막히는 장면을 지나면서 안도하였더니, 비바람이 사납게 몰아치는 태풍이 부는 늪에서 형제들을 모두 잃고 맙니다.


"그토록 힘센 태풍도 날이 밝는 것을 막지 못했"지만, 온몸으로 새끼를 돌보던 엄마 쇠물닭과 아빠 쇠물닭도 거센 폭풍우 앞에서 어린 쇠물닭들을 다 지켜내지는 못했습니다. 며칠 뒤 날이 밝고 물은 날마다 낮아져서 여드레쯤 지나자 늪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막내 쇠물닭만 살아남아 어른이 되어 갑니다. 

 

"막내 쇠물닭이 첫 발길질로 알껍질을 훅 찼어. 

햇살이 눈부셔 눈을 감고 쉬어. 

숨을 쉴 때마다 배가 볼록거려. 

실눈을 뜨고 바람에 깃털을 말려. 

날개죽지에 스친 바람이 비릿하고 시원하고 달았어."

(본문 중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쇠물닭의 첫 발길질과 첫 숨을 너무나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감성으로 쇠물닭이 처음 세상과 마주서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늪에 쫙 깔린 가시연꽃씨가 물에 둥둥 떠다녀.

줄은 이삭을 한껏 피웠고, 물풀은 늪을 풀받처럼 뒤덮었어. 

솨아솨아 갈대가 흔들려. 또로로 또로로 풀벌레 소리가 나."

(본문 중에서)


예쁜 우리 말이 가득 담긴 글을 따라 읽다보면 물풀이 무성한 늪에 사는 쇠물닭의 한살이를 함께 배우게 됩니다. 어린이들이 자연과 더욱 친해지도록 돕는 책이라고 합니다.


이영득 작가는 여러 편의 동화 책을 썼고, 풀꽃, 산나물, 꽃과 풀들에 관한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 흔히 있기 때문에 눈여겨 관찰하지 않는 '쇠물닭'의 생태와 성장과정을 담은 생태동화입니다. 

막내 쇠물닭이 첫 발길질로 알껍질을 훅 찼어.
햇살이 눈부셔 눈을 감고 쉬어.
숨을 쉴 때마다 배가 볼록거려.
실눈을 뜨고 바람에 깃털을 말려.
날개죽지에 스친 바람이 비릿하고 시원하고 달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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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꽃차 만들기 - 누구나 쉽게 배우는
이영득.고찬균 지음, 노승일 감수 / 황소걸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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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봄에 흐드러지게 핀 '목련'을 따다 꽃차를 만들었던 일이 있습니다. 당시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목련꽃차' 이야기를 듣고 아무 공부 없이 등산로 어귀에 활짝 핀 목련꽃을 따다가 잘 말려서 차로 우려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만든  목련 꽃 잎차는 향이 너무 강해 맛을 즐길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화장품 맛이 난다'고도 하였고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향이 강해 어떻게 차로 마시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목련 꽃잎을 차로 마실 수 있다는 것에 설레었지만, 실제로는 맛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10여년 쯤 세월이 흐른 후, 지난 2월 말 꽃차 전문가인 이영득 선생님과 함께 '목련 꽃 잎차'를 마셔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십여 년 전쯤 목련 꽃 잎을 따다 무작정 말려서 차로 우려냈던 나의 목련 차와는 워낙 맛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은은한 목련향이 배어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옅은 단맛과 약간의 고소한 맛이 잘 어우러졌습니다. 이영득 선생이 주신 목련 꽃잎 차를 마셔보고, 그가 쓴 <행복한 꽃차 만들기>를 읽은 후에야 꽃잎만 따다 말린다고 차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풀꽃 도감을 비롯한 산나물, 들나물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낸 생태전문가이자 <강마을 아기너구리> 같은 예쁜 동화책을 쓴 동화작가 이영득 선생이 이번에는 <행복한 꽃차 만들기>를 출간하였습니다.


예쁜 산수국 꽃차 사진이 담긴 <행복한 꽃차 만들기>를 읽어 보니 이영득 선생 혼자 만든 책이 아니더군요. 글과 사진은 고찬균 선생과 함께 작업하였고 한약학을 전공한 노승일 박사의 감수를 받아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찬균 선생은 "자연이 좋아 경주 산내면 산속에 살며 꽃, 잎, 가지, 뿌리, 열매 등 풀과 나무에서 얻은 것으로 차를 연구하고 만드는" 분이라고 합니다. 책을 받아 주르륵 넘겨보며 가장 먼저 놀라게 되는 것은 화려하고 눈부신 꽃차 사진들입니다.


텍스트보다 사진이 훨씬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책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독자들도 글보다 먼저 사진이 눈에 띌 텐데... 실물보다 더 아름답고 고운 사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꽃을 주제로 한 화려한 '사진집'을 보는 기분에 젖게 될 것입니다.


고요한 명상으로 빠져드는 꽃 차 사진


만약 명상과 영성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치 명상을 하는 것 같은 고요함이 깃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꽃차, 잎차, 줄기차, 뿌리차를 만들기 전에 지켜야 할 것들을 먼저 마음에 새겨두라고 충고합니다.


"꽃과 잎 등 재료를 모실 때는 자연의 기운을 받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한다. 자연에 간 손님으로 예를 갖추고, 표가 나지 않게 솎는다. 넘치는 것보다 모라란 듯 하는 것이 자연의 복을 귀하게 누리는 방법이고 자연에 깃들어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에 대한 예의다."(본문 중에서)

또 꽃차를 만든 후 차로 우려 낼 때 찻잔 속에 꽃이 다시 피어나도록 하려면 씻지 않아도 되는 깨끗한 자연에서 재료를 구하라는 팁을 줍니다. "꽃은 씻으면 향이 줄고, 꽃가루가 씻겨나간다"는 것이지요. 꼭 씻어야 할 상황이라면 짧은 시간에 씻어야 한다는 겁니다.



또 꽃이나 잎 혹은 줄기나 뿌리로 차를 만드는 경우 반드시 '때'를 맞추라고 강조합니다. 가령, 꽃은 종류에 따라 모시는 때도 다르다고 합니다.


"꽃은 30% 정도 피거나 부푼 봉오리가 좋다. 어린 꽃봉오리는 풋내가 나고, 활짝 핀 꽃은 꽃잎과 꽃가루가 잘 떨어져 모시기 힘들고 효능도 줄어든다. 대신 꽃음료를 만들 때는 활짝 핀 꽃이 좋다. 비 맞은 꽃이나 이슬에 젖은 꽃은 물기가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본문 중에서)

저자는 각각의 차 만드는 방법을 소개할 때 꽃차, 잎차에 따라 가장 좋은 때가 언제인지를 알려줍니다. 아울러 초보자라면 쓰임새에 따라 만드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마음에 새겨 두라고 일러줍니다.


"모양이나 색이 중요한 때는 팬, 찜기, 등에 면 보자기를 깔고 수분을 뺀 다음, 저온에서 시작하여 온도를 조금씩 높이며 덖는다. 맛과 향이 중요한 때는 중온 이상이나 고온에서 충분히 덖거나 찐 다음 덖는다. 모든 차에 해당하지는 않고 일반적인 예다."(본문 중에서)



아울러 모든 꽃차와 잎차들은 온도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꽃에 따라 저온에서 고온으로 덖는 것, 고온에서 시작해 저온으로 낮추면서 덖는 것, 중온에서 시작해 온도를 높이며 덖는 것이 있다는 것과 각각 꽃에 따라 적당한 온도와 덖는 시간 따로 알려주면서도 기본 원칙을 기억해 두라고 일러줍니다.


"이때 온도를 급하게 바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온도를 높이고 낮출 때는 같은 온도에서 두 번 이상 덖어 꽃이 그 온도에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 보통 팬 온도 다이얼 0.2cm씩 높이거나 낮추며 여러 차례 덖는다. 온도를 갑자기 높이면 꽃이 오므라들거나 타거나 거뭇해질 수 있다."(본문 중에서

꽃이나 잎은 살아 있을 때 뿐 아니라 차를 만들기 위해 열을 가할 때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꽃처럼 다루어야 나중에 따뜻한 물과 만났을 때 마치 살아있는 꽃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꽃은 찻잔 속에서 두 번째로 피어난다


꽃차를 마실 때마다 전해오는 감동 중 하나는 따뜻한 물속에서 살아있을 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아름다움을 머금고 예쁜 자태로 활짝 피어나는 것입니다. 꽃차의 매력도 바로 이 지점에서 발휘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꽃차를 보관하는 방법도 일러줍니다. 습기에 민감하니 건조하게 보관하고 가끔 수분을 점검해주라고 권합니다. 햇빛이 닿으면 색이 바래고 성분이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 밀폐하여 습기 없고 빛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라고 강조합니다. 어떤 먹을 것이든 무조건 냉장고나 냉동고에 보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꽃차를 보관하기에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당신이 알고 있는 꽃차는 몇 종류나 되는가요? 직접 마셔 본 꽃차는 몇 종류나 되나요? 저는 여러 종류의 국화차와 도라지 꽃차, 목련꽃차, 장미꽃차를 마셔 보았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꽃차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될까요?


이 책에 소개하는 120여 종의 차가 모두 꽃차는 아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풀꽃들은 대부분 차로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자연과 가까이 살았던 옛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보다 꽃을 먹는데 더 익숙해 있었다는 것은 다들 아시지요? 부모님들로부터 봄에 진달래를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는 이야기 한두 번은 들어보셨을 테지요.


"꽃(화)전, 화채, 부각, 차, 술, 약 등으로 꽃의 색과 모양, 영양분, 약효를 자연스레 얻었다. 꽃은 비타민, 아미노산, 미네랄 등 영양소가 많아서 종합 영양제라 할 수 있다. 면역력을 높이고 신진대사를 돕고 노화를 더디게 하는 등 약선효과가 있다. 무엇보다 꽃을 곁들인 음식은 보는 즐거움이 있다. 영양분에 맛과 향까지 담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자연이 준 선물이다."(본문 중에서)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거나 꽃이 몸에 맞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꽃으로 만든 음식이나 꽃술 꽃차를 보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보는 즐거움과 향이 각별하기 때문이지요.


꽃차 만들기를 취미 생활 정도로 하실 분들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덖음솥이나 찜기, 면보자기, 멍석, 병 등을 준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처럼 한때의 호기심으로 경험해보는 사람들이라면 집에 있는 비슷한 도구를 활용해도 그만이겠지만요. 가장 중요한 것이 덖음솥인데 책에 나오는 모든 레시피는 전기팬을 기준으로 설명이 되어 있으나 바닥이 두꺼운 솥과 냄비라면 모두 괜찮다고 합니다.


꽃차 만들기...향매김이 가장 중요하더라 


용어 설명도 빠뜨리면 안되겠군요. 덖기, 말리기, 법제, 볶기, 식히기, 열건, 찌기, 수분점검, 향매김 같은 꽃차 만들기에 필요한 용어들에 대하여 따로 설명을 해두었습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향매김인 것 같습니다. 향매김이 제대로 안 되면 꽃차만들기는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수분 점검을 한 뒤 정해진 시간 동안 저온에서 뚜껑을 덮고 향을 가두는 일. 재우기, 잠재우기라고도 한다. 향매김 시간은 저마다 다르다. 향기나 맛이 부족한데 모양과 색이 중요한 꽃은 한 시간 안팎, 모양과 색뿐만 아니라 맛과 향이 중요한 꽃은 두 시간 안팎, 잎이나 가지, 열매, 뿌리 등은 여섯 시간 안팎으로 한다."(본문 중에서)

꽃차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정성이 담겨야 하지만, 향매김을 하는 시간이야말로 그 정성의 최종 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복한 꽃차 만들기>에는 지금까지 소개한 것뿐만 아니라 꽃을 찌는 까닭(대부분 꽃은 쪄서 덖는다), 덖는 온도, 꽃차 마시는 법 그리고 각각의 꽃차가 가진 약효 등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줍니다.


꽃차를 마시는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각별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겠습니다만, 꽃차에 관한 이런 상식을 알고 마시면 그 즐거움이 두 배, 세 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이 책은 꽃차 만들기를 해보실 분들에게도 유익하지만, 저처럼 꽃차에 대해 그냥 좀 알은체하면서 마시고 싶은 분들에게도 유익한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라해보세요, 감나무와 고욤나무 꽃차 만들기


봄을 대표할 만한 꽃차 두어 가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먼저 감나무와 고욤나무 차입니다. 감나무, 고욤나무 꽃차는 5월 말에서 6월, 잎차는 4월 중순부터 6월까지가 적당하다고 합니다.


"어린잎은 쓰면 좋지만 큰 잎은 자르면 되고, 고온에서 숨을 죽인 뒤 덖고 비비고 식히는 과정을 3~5번 되풀이 하며, 덖은 뒤 수분이 있을 때 여러 번 비벼야 맛난 차가 된다고 합니다. 수분이 어느 정도 빠지면 온도를 조금 낮춰 여러 번 덖고 수분 점검 뒤 6시간 안팎으로 향매김을 하면 된다고 합니다. 감꽃은 그냥 말리거나 쪄서 말리면 꽃차가 된다고 합니다. 혈관을 튼튼하게 하고 이뇨, 지혈 작용을 하며 감기, 고혈압, 괴혈병 등에 좋다고 합니다."(본문 중에서)

타이밍을 놓치기는 하였지만 봄을 대표하는 꽃 중 하나인 개나리도 꽃차를 만든다고 합니다. "가지에 조롱조롱 매달려 반짝반짝 빛나던 노란별이 차가 되는 게 고맙다. 개나리 꽃차는 은은하고 순한 맛으로 몸을 흔들어 깨운다"고 합니다. 개나리 꽃차는 꽃이 오므라들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갓 핀 꽃을 준비한다. 저온에 면 보자기를 깔고 겹치지 않게 놓는다. 수분이 어느 정도 빠지고 모양이 잡히면 온도를 조금씩 높이며 덖어 고온에서 마무리 한다. 꽃이 부서지지 않게 면 보자기를 들썩이며 덖는다. 수분 점검 뒤 1시간 안팎으로 향매김을 한다. 청열, 이뇨, 소염 작용을 한다. 신장염, 방광염, 당뇨, 여드름 등에 좋다."(본문 중에서)

벚나무, 산벚나무, 왕벚나무 등 벚꽃은 모두 차로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이미 벚꽃이 피었다 져버려서 내년 봄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년 봄엔 벚꽃 엔딩 같은 노래를 들으며 벚꽃을 보며 벚꽃 차를 마셔보고 싶습니다.


개나리, 돌복숭아꽃도 꽃차로 만들 수 있어


꽃이 예쁘기로는 복사나무도 뒤지지 않습니다. 산에 절로 자라는 복사나무를 흔히 돌복숭아라고 하는데 산에 절로 자라는 돌복숭아가 꽃이 곱고 화사하다고 합니다.


"봉오리나 갓 핀 꽃을 준비한다. 저온에 면 보자기를 깔고 펼쳐 놓은 뒤 가끔 뒤집는다. 모양이 잡히면 온도를 조금씩 높이며 덖다가 고온에서 마무리한다. 핀 꽃은 수분을 90% 정도 빼고, 10~15초씩 찌고 식히기를 되풀이한 다음 고온에서 덖는다. 빨리 식혀야 눅눅해지지 않는다. 수분 점검 뒤 2시간 안팎으로 향매김을 한다. 벌레가 많은 꽃이니 반드시 고온에서 덖어 마무리 한다.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 변비, 월경불순, 소화불량, 기미, 주근깨 등에 좋다."(본문 중에서)

5월에 피는 붓꽃도 보라 빛이 아름다운 차를 만들 수 있고, 7월에 피는 분꽃도 주홍빛이 곱게 우러나는 차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110여 종의 꽃차와 잎차 그리고 10여종의 약차와 꽃음료 만드는 법 그리고 다식 만드는 법들도 자세히 정리되어 있는 책입니다.


<행복한 꽃차 만들기>, 누구나 쉽게 배울 수는 있지만, 누구나 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꼼꼼하고 정교한 손길이 있어야 하고 차분하고 느긋한 마음도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인 듯합니다. 직접 해보지 않았지만 책만 읽어봐도 꽃차 만들기는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숲에서 맑은 바람 마시며 새소리를 듣고 놀다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에 자연의 생기가 채워진다. 꽃을 덖고 차를 마시는 시간은 참살이를 하면서 자신을 치유하는 시간이다. 스스로 꽃이 되는 시간이다."(본문 중에서)

"덖을수록 짙어지는 빛깔, 덖을수록 깊어지는 향기, 덖을수록 가벼워지는 무게." 자연을 모시고 덖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짙게, 깊게, 가볍게 사는 법도 함께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에 꽃을 모시고 살아가고 싶다면 <행복한 꽃차 만들기>와 함께 시작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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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사람에게 가는 길
김병수 지음 / 마음의숲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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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 농부 김병수의 세계 공동체 순례 여행기 <사람에게 가는 길>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하여 세계 공동체를 찾아 떠난 여행.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만 막상 그 꿈을 실현시키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사람에게 가는 길>은 유기농업과 사회운동을 하던 저자 김병수가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찾기 위해 2년 6개월 동안 세계 21개국 38개 공동체 마을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살았던 경험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공동체들은 어떤 모습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을까요? 가장 먼저 소개할 곳은 휴메니버서티 공동체입니다.


사람을 만드는 학교로 번역할 수 있는 휴메니버서티 공동체는 네덜란드 서쪽 바닷가 에그몬트라는 마을에 자리 잡은 공동체입니다. 20여 개가 놓인 침실은 남녀가 함께 사용하고, 심지어 샤워실도 남녀 구분이 없으며 폭력은 금지되지만 서로가 원하면 섹스는 가능한, 자유로운 치유를 위한 공동체입니다. 한국인 저자에게는 생경하고 낯선 문화였지만 한 달을 머무르면서 소중한 체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투어리스트 그룹은 알코올 혹은 마약 중독, 스트레스, 우울증, 소심증, 자폐증 등 정신 병력이 있어 휴메니버서티에 비싼 비용(1주일 40만원, 40일 150만원)을 지불하며 치료받고 있는 사람들이다."(본문 중에서)


1978년에 만들어진 휴메니버서티 공동체는 명상, 요가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잘 아는 '오쇼라즈니쉬'의 제자를 지도자로 모시고 있다는군요. 굉장히 비싼 비용을 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날이 번창하는 비결은 치료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랍니다.


알코올, 마약 중독...병원보다 탁월한 명상 치료


이곳에서 알코올중독과 마약중독을 6개월 이상 치료 받는 경우 완치율이 75%에 이른다고 하는데, 유럽의 국가기관이나 전문기관 완치율이 35%정도이니 대단한 것이지요. 다이내믹 메디테이션이라고 부르는 역동적인 명상법과 심리학 이론을 응용한 정신 치료법을 사용하는데, "마음속에 쌓여 있는 나쁜 기운이나 원한 등은 밖으로 분출해 풀어 버리고, 좋은 에너지나 욕구는 자유롭게 마음껏 채우라"로 정의할 수 있답니다.


"메디테이션 방은 푸른색과 붉은색 조명이 어슴푸레 비치고 정면으로는 수염을 길게 기른 오쇼라즈니쉬의 사진이 걸려 있다. 누군가 징을 치면 음악에 맞춰 처음 10분간은 양팔을 구부린 채 몸 쪽으로 당기면서 코로 몸속의 나쁜 기운을 내뿜는다. 신기하게도 1분도 채 안 돼 메디테이션 방은 심한 악취로 가득 찼다. 다음 10분간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다시 징소리가 울리면 격렬하게 10분간 춤을 춘다. 징소리가 울리면 움직이던 상태에서 갑자기 멈춰 정지동작으로 10분간 그대로 있는다."(본문 중에서)


흔히 명상이라고 하면 고요하게 집중하는 동양의 참선을 떠올리겠지만, 다이내믹 메디테이션은 동양의 참선 같은 메디테이션 기법을 익히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고안된 것이라고 합니다. 격렬한 몸동작을 통해 마음과 정신을 비워 새로운 에너지를 받는 원리라는 것이지요.


아무튼 놀라운 것은 네덜란드의 한적한 바닷가 동네에는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기구한 사연을 겪어 마음과 영혼에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독특한 명상법을 통해 탁월한 치유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방문한 네덜란드, 미국, 영국, 프랑스, 멕시코, 인도, 쿠바, 캐나다, 덴마크, 독일, 브라질, 북아일랜드를 비롯한 21개국 38개 공동체 중에서 독자인 제가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곳은 '가장 완벽한 공동체 시스템을 갖춘 미국의 트윈옥스'입니다. 트윈옥스는 퀘이커 모임인 펜들힐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공동체 중 한 곳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시간에 하는 유토피아 노동제도, 트윈옥스


경제적으로 완전하게 자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가 없는 독특한 의사결정 시스템 그리고 새로 만들어지는 다른 나라의 공동체의 자립을 위한 지원까지 해내는 저력 있는 공동체입니다.


"트윈옥스의 최대 장점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노동제도'라고 말할 것이다. 이들의 노동제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각자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노동제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본문 중에서)


"트윈옥스는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눠 갖는 일종의 공산주의 공동체다. 직업에 따라, 직종에 따라 더 많이 벌고 적게 버는 경우는 없다. 일을 더 많이 한다고 더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니, 자연스레 자기 개성이나 능력에 따라 좋아하는 일을 찾아하면 된다."(본문 중에서)


트윈옥스에서는 자본주의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트윈옥스 사람들은 많이 벌기 위해 남들과 경쟁하고, 자기 능력보다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하는 현재 자본주의의 모순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유토피아적인 노동제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공동체 인구의 상한선을 100명으로 설정해두었다고 합니다. 어른 정회원 5명당 어린이 1명, 노인 1명으로 노동과 경제적 부담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이한 규칙은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구성원으로 가입할 때 개인 재산을 공동체에 헌납하도록 요구하지는 않지만, 공동체에 머무는 동안은 사용할 수 없도록 합니다. 공동체 밖에서는 부자여도 공동체에 들어오면 물질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는 의미랍니다.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까지 스스럼없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


1967년에 시작된 트윈옥스는 월든Ⅱ를 읽고 영감을 얻은 '캣트'와 그녀의 친구 '루카스'가 종자돈 26,000불로 123에이커의 땅을 사서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신문광고를 내 사람들을 모으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시작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수년 동안 자립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 온갖 시행착오를 경험한 끝에 누군가 '해먹'(그물침대)을 만들어 팔자는 제안을 하였는데, 그것이 사업적인 성공을 이루면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마련합니다. 1967년에 시작하여 6년만인 73년 무렵에 공동체의 기본 틀을 모두 갖추었다고 하니 놀라운 성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다른 공동체와 단체를 지원하는 일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트윈옥스의 지원으로 1982년에 만들어진 '에이콘 공동체'가 대표적 사례이고 평등주의 공동체 연대라는 공동체 연대모임 활동도 적극 지원하고 있답니다.


"트윈옥스는 매해 5천불 정도를 150여 개 단체에 지원한다. 지원이라야 한 개 단체에 20불부터 많게는 70불 정도지만, 그 의미나 씀씀이가 놀랍다. 트윈옥스는 세계 각국에서 평화와 비폭력, 그리고 환경보전과 인권보호 등 인류가 추구해야 할 존엄한 가치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 단체들의 활동에 동의하고 지원한다는 뜻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본문 중에서)


자신들의 삶과 직접 관련이 없는 세계 각국의 평화와 비폭력, 환경보호와 인권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소박하지만 구체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다녀 온 세계 여러나라의 38개 공동체 가운데도 이런 활동을 펼치는 곳은 트윈옥스 뿐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공동체가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들이 함께 스스럼없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며,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가 없으며, 특정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구심도 없고, 심지어 회원 전체가 모이는 모임도 없는 개성과 정체성이 뚜렷한 개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는 길>에 나오는 모든 공동체를 소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마음이 가는대로 딱 세 군데 공동체만 소개하리라 마음먹고 책 소개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소개한 두 곳은 어렵지 않게 선택하였습니다만 세 번째 공동체를 고를 때는 갈등이 적지 않았습니다.


간디, 함석헌, 윤보선, 만델라가 머물던 영성 공동체


세 번째는 유럽 퀘이커들의 공동체인 우드부룩입니다. 저자는 우드부룩을 우리식으로 설명하면서 "기독교 내 작은 교파의 훈련원"같은 곳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이곳은 마하트마 간디, 함석헌 선생, 윤보선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 같은 유명 인사들이 머물렀던 세계적인 영성 공동체입니다.


100년 전통의 우드부룩을 지탱하는 저력은 퀘이커들의 깊은 영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와는 판이하게 다른 퀘이커는 자유로우면서도 진지한 신앙공동체였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30분 저녁 15분, 일요일은 1시간씩 종교 모임을 갖는데 매우 독특하다. 참석자들이 둥그렇게 앉아 침묵한 채 그냥 앉아 있다가 시간이 되면 옆 사람과 악수하며 인사 나누는 게 전부다."(본문 중에서)


설교하는 목사도 없고 기도중에 일어난 영적 체험은 모두 녹음하여 기록으로 남긴다고 합니다. 모든 제안은 구성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토론과 대화를 통해 결정하는데 만장일치가 아니면 보류된다고 합니다. 영적인 공동체인 이들의 관대함은 일반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얼마 전 파키스탄에서 온 이슬람 교수 '나힘'이 저녁기도에 참여해 이슬람 찬송을 틀 자고 제안했다. 놀랍게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고 이슬람 기도송이 틀어졌다. 저녁 기도 때는 참석자의 제안에 따라 가끔 음악을 듣거나, 좋은 글을 낭독하곤 하지만 타 종교의 찬송을 허용하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닐 텐데 퀘이커의 포용력이 위대해 보였다."(본문 중에서)


퀘이커의 영성에 기반한 우드부룩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청빈하지만 소외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나 정의로운 실천이 요구되는 현장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워싱턴에서 열리는 반전시위에도 참여하고 한국 전쟁 때는 군산에서 병원을 운영한 일도 있었답니다.


우드부룩이 안정적으로 운영된 것은 부유한 퀘이커들이 죽음을 맞이할 때 퀘이커 재단에 재산을 헌납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드부룩 역시 1870년 경 초콜릿 회사를 경영하여 큰 부자가 된 퀘이커 교도 조지 케드베리가 자신이 살던 집을 기부하면서 시작되었다더군요.


퀘이커는 영국에 2만 명, 미국에 10만 명, 전 세계를 통틀어 30만 명 정도 밖에 안 되지만, 영성에 기반한 그들의 청빈한 삶과 정의로운 실천 때문에 그 영향력은 백배, 천배로 나타나고 있는 듯합니다.


우드부룩은 수용인원이 최대 50명을 넘지 않는 조그만 스터디센터이지만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저작물을 생산하는 전문 출판사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운영자, 기획교수단, 관리책임자들이 수준 높은 공동체 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우드부룩과 같은 체계적이고 진지한 토론과 교육 훈련과정을 통해 퀘이커는 얼마 안 되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평화운동, 비폭력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미처 소개하지 못한 공동체이야기가 더 많이 있습니다. 이 땅에 실현하고 있다는 80년 전통의 브루더호프, 브라질, 쿠바, 인도, 멕시코 같은 나라의 농촌 혹은 제 3세계 공동체 그리고 플럼빌리지와 코 하우징 같은 영성공동체나 코리밀라나 세오 도 마피아 같은 평화공동체를 다녀 온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전 세계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가지 삶의 대안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 하루 이틀 방문해서 그들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고 배울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공동체 순례입니다.


그는 방문하는 공동체마다 여러 날을 함께 생활하면서 그곳 사람들과 마음으로 그리고 영혼으로 만났다고 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순례 경험을 고스란히 담은 결정체와 같은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것은 트윈옥스 방문자 프로그램 안내 책자에 나오는 공동체 선택의 기준을 제시한 안내문입니다.


"공동체에 1주를 머물면 좋은 점들만 보일 것이다. 이 느낌으로 멤버가 되겠다고 결단하지 말고 기다려라. 공동체에 2주를 머물면 여러 규칙들이 너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이 문제로 공동체가 불편한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하지 마라. 더불어 살려면 최소한의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3주를 머물면 싫어지거나 미운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이 일로 공동체 멤버가 되기를 포기하지 마라. 나와 다르다고 나와 어울리지 못할 사람이란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문제들이 극복되었다고 생각될 때 멤버 가입을 고려하라. 다만, 내가 이 공동체에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준비돼 있는지 먼저 점검하라."(본문 중에서)


삶을 함께 하는 공동체 참여는 물론이고 작은 계모임이나 동호회 혹은 새로 출근하게 된 직장이라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함께 살아가려면 이런 마음으로 참여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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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미즘이라는 희망 - 삼라만상에게 길을 묻다
야마오 산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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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0년 된 삼나무를 보러 야쿠시마에 다녀오면서 야마오 산세이라고 하는 구도자이자, 시인이며 농부로 살다간 그의 삶과 철학에 매료 되었습니다. 짧은 야쿠시마 여행을 다녀 온 후에도 야마오 산세이 읽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하였던 <여기에 사는 즐거움> <어제를 향해 걷다> <더 바랄게 없는 삶>에 이어 오늘은 <애니미즘니라는 희망>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1999년 7월 12일부터 16일까지 닷새 동안 오키나와의 류큐대학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아마도 국내에 번역된 책 중에서는 가장 최근 작인데, 일본에서는 저자가 생을 마감하기 약 2년쯤 전(2000년 무렵)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저자가 지구별을 떠난지 10년 쯤 지난 2012년에 출간 되었더군요.


앞서 소개하였던 다른 세 권의 책은 대체로 일기 형식으로 씌어진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었는데, <에니미즘이라는 희망>은 자신의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철학, 역사, 문화, 종교, 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풀어내는 인문학 강의 같은 책입니다.


애니미즘....삼라만상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주제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애니미즘'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자급자족을 꿈꾸며 도쿄에서 야쿠시마로 귀농한 농부이자, 시인이며 또한 철학자이자 구도자의 삶을 살아온 저자는 말년에 자신의 철학적 사유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에니미즘'을 주창하였던 모양입니다.


"아니마(anima)라는 라틴어의 의미는 생명이나 정령, 혹은 영혼인데 이 중 영혼이라는 의미가 가장 강할지 모르겠어요. 자연만물이에는 아니마가 깃들어 있다, 정령 혹은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사고 방식이 곧 애니미즘입니다." - 본문 중에서



애니미즘은 아니마라고 하는 라틴어가 어원이며 요약하자면 자연만물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사상이 바로 에니미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종교사적으로 이해하자면 에니미즘은 샤머니즘보다 전 단계에 해당한다고 하였더군요.


"삼라만상 안에는 생명이고 정령이며 영혼인 아니마가 깃들어 있지요. 그런 원초적 심성을 애니미즘이라고 합니다. 즉 삼라만상에는 아니마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이 바로 애니미즘이지요." - 본문 중에서


저자가 다시 한 번 요약해놓은 애니미즘의 정의입니다. 한편 애니미즘의 어원인 아니마라는 말에는 심리학자 융이 고안한 "남성의 잠재의식 속에 깃들어있는 여성적인 것에 대한 동경의 원리"를 말하는 개념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이라는 말도 '아니마'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니메이션 "수 많은 그림 한 장 한 장을 이어서 살아있는 것처럼 화상을 구성하는 거니까, 애니메이션이란 생명 또는 영혼을 부여받은 화면"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에 재생된 아니마의 세계가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로 상징되는 에니메이션이라는 방법론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저자는 시를 함게 읽고 그 시들을 설명하고 배경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애니미즘'에 관한 이야기를 닷새 동안 풀어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야마오 산세이의 자연철학을 총정리한 책이라고 보아도 틀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신에게 간구하던 것이 노래와 시의 기원


애니미즘에 관한 저자는 시가의 기원, 노래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일본의 권위있는 한자 기원학자인 시라카와 시즈카 교수의 글을 인용하면서 "신에게 무엇무엇을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바로 노래의 기원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예컨대 저자의 경우 자기안의 절절한 외침을 절제되고 정갈한 언어로 정착시키는 것이 바로 시(詩)를 쓰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그는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기 위하여 독일 작가 노발리스라는 시인이 쓴 단편소설 <파란꽃>의 서문을 소개합니다.


모든 시적인 것은 동화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전한 동화 작가는 미래의 예언자다. 

모든 동화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저 고향세계의 꿈이다.


저자는 수강생들에게 이 문장은 꼭 기록해두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문장이 갖고 싶어 헌책방에서 2천엔이나 주고 절판된 이 책을 샀다고 하더군요.


"말이라는 것이, 자기 가슴으로, 영혼으로 깊이 파고드는 말이 단 한줄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평생의 보물이 될 수 있는 것이죠." - 본문 중에서


영혼을 파고드는 단 한줄의 말을 보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니 그는 시인이 분명합니다. 말을 평생의 보물로 삼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겠지요. 저자는 노발리스의 글을 설명하면서 사람은 "누구라도 한 줄 정도는 진실의 말을 쓸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말하자면 동화처럼 가슴에 닿고, 영혼에 닿는 진실하고 소박한 말이 바로 시라는 것입니다. 특히 바로 자신의 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강의는 <야자잎 모자 아래서>라는 시집에 실린 시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 강연을 글로 읽는 것이구요.


첫 번째 시는 <저문 강변의 노래>라는 시인데, 이 시에는 "신을 구하여 울어라"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은 바로 이 말에 이끌려 살아온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신은 영어 대문자로 표기하는 'GOD'가 아니라 소문자로 표기하는 'god'라고 강조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소문자 'god'는 사실 영어표기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제가 만들어낸 겁니다. 저는 인생을 살면서 위안을 주는 것이 소문자 'god=신'이고 나한테 좋은 것이면 무엇이든  'god=신'이다 ! 아름다운 것은 모두 신이고, 기쁨을 주는 것도 무엇이든 신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 본문 중에서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천지만물 삼라만상에는 모두 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의 이야기는 바로 그 신이 깃들어 있는 자연만물의 기초는 물이고 흙이라는 말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인류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우주 공간에 새로운 지구를 만들려는 무모한 짓을 그만두고 지구를 소중히 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을 바꾼 나무 한 그루 '조몬스기'


이 책은 모두 15개 장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겨우 첫 장에 대해 소개하였는데 글이 이렇게 길이졌네요. 두 번째 장의 제목은 '내 인생의 나무 한 그루'입니다. 최근에 제가 쓴 여행기나 서평을 읽은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내 인생의 나무 한 그루'는 바로 '조몬스기'입니다.


저자는 조몬스기에 대한 시를 쓸 때 당시 116세로 최장수 인물이었던, 이즈미 시게치요라는 분을 생각하며 '성스러운 노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는 100세 혹은 90세를 넘긴 노인들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성스러운 노인'이라고 말합니다.


성스러운 노인


야쿠시마 산 속에 한 성스러운 노인이 서 있다

그 나이 어림잡아 7천 2백 년이라네

딱딱한 껍질에 손을 대면

멀고 깊은 신성한 기운이 스며든다

성스러운 노인

당신은 이 지상에 삶을 부여받은 이래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단 한 발짝도 내딛지 않고 그곳에 서 있다

그것은 고행신 시바의 천년지복의 명상과 닮았지만

고행과도 지복과도 무관한 존재로 거기 서 있다


야쿠시마 여행기나 조몬스기를 소개하는 글에 자주 인용되는 야마오 산세이의 시 '성스러운 노인'의 일부입니다. 야마오 산세이는 여러 글에서 '조몬스기'에 이끌려 야쿠시마를 '본향'으로 삼아 살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이 책 13장에는 조문스기로 가는 길을 시로 쓴 연작시 '야자잎 모자 아래서 24'라는 제목의 긴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15쪽 분량으로 읽는데만 25 ~ 30분이나 걸리는 장편시입니다.


워낙 긴 시라 옮길 수 없지만 조몬스기까지 올라가는 시인의 심상과 풍경이 잘 담겨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 길을 따라 조몬스기까지 다녀 온 후에 이 시를 읽었더니 눈으로 봤더 그 숲과 길들이 심상에 맺혀 에니메이션처럼 펼쳐지더군요.


앞서 저자 야마오 산세이가 딱 세줄이 문장을 얻기 위해 독일작가 노발리스의 <파란꽃>을 샀던 이야기에 견주어 말하자면, <애니미즘이라는 희망>이라는 책은 '성스러운 노인'과 '야자잎 모자라아래서24>라는 시 두 편만으로도 책값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책입니다.


아니 책 값으로 이 책들의 값어치를 말하는 것이 불경(?)스럽기까지 합니다만 아무튼 조몬스기 오랫 동안 마음에 새길 수 있는 두 편의 시(詩)라고 생각합니다. 야쿠시마 여행을 떠나기 전 날 30여 분동안 이 시를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조몬스기가 살고 있는 야쿠시마의 숲은 수 천년 된 삼나무들이 수천 그루나 살고 있는, 삼나무 나이테 속에 지구의 시간이 압축되어 있는 숲입니다.


읽는데만 30분이 장편 시...조몬스기를 노래하다


이런 곳에 살았던 야마오 산세이는 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애니미즘이라는 희망>에도 다른 책들에서 강조하였던 시간에 대한 성찰적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현대인들을 '진보하는 시간에 자신을 빼앗기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합니다.


"진보하는 문명의 시간이란 과거에서 미래로 상승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일직선으로 진행하지 결코 물러서진 않습니다." - 본문 중에서


현대라는 시간을 사는 사람들, 특히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조몬시대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불가역성을 신뢰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삶을 규정하는데 직선의 시간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 합니다.


"태양계의 행성들은 자전하고 자전하면서 조금씩 태양주위를 공전하죠. 지구도 하루에 한 번 자전을 하면서 태양 주변을 일년에 걸쳐 한 바퀴 돕니다. 태양계 시스템은 태양계가 우주에 생겨난 46억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눈곱만큼도 진보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같은 길을 회귀할 뿐이고 순환할 뿐이죠" - 본문 중에서 


또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어가는 생노생사의 흐름도 결코 진보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모든 생명은 1만년 전에도 태어나면 죽었고, 1만 년 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사람의 육체와 의식은 회귀하고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야마오 산세이는 우리시대의 사회불안과 사회병리는 이 두시간의 상극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순환의 흐름속에 있으면서 순환하지 않고 진보하는 시간에 예속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상극'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표중 하나가 바로 자살률이라고 강조합니다. 진보하는 시간에게 자신을 빼앗긴 나머지 자신의 인생과 문명과의 상극속에 죽음을 택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순환하는 시간, 회귀하는 시간에 주목하라 !


저자는 직선의 시간, 진보하는 시간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시간', '회귀하는 시간'을 지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살우리를 둘러 싼 세계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하루하루 다음 사회, 다음 시대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것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거기에 쏟아붓기를 바랍니다." - 본문 중에서 


이 인용문은 닷새 동안의 긴 강의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문장입니다. 우리의 삶은 삼라만상 즉 자연에 속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애니미즘이라는 희망>은 말년의 야마오 산세이가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강연하였던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오늘까지 소개한 4권의 책 모두 좋은 책들입니다만, 딱 1권만 읽겠다고 하면 <애니미즘이라는 희망>을 추천합니다. 제게 야쿠시마는 앞으로도 영원히 '조몬스기'와 '야마오 산세이'의 섬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아니마(anima)라는 라틴어의 의미는 생명이나 정령, 혹은 영혼인데 이 중 영혼이라는 의미가 가장 강할지 모르겠어요. 자연만물이에는 아니마가 깃들어 있다, 정령 혹은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사고 방식이 곧 애니미즘입니다." - 본문 중에서

"삼라만상 안에는 생명이고 정령이며 영혼인 아니마가 깃들어 있지요. 그런 원초적 심성을 애니미즘이라고 합니다. 즉 삼라만상에는 아니마가 깃들어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이 바로 애니미즘이지요."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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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를 향해 걷다
야마오 산세이 지음, 최성현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야쿠시마 여행을 다녀오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 된 사람은 25년 간 그 섬에 살다 세상을 떠난 야마오 산세이입니다. 그는 일찍이 가족과 함게 7200년 된 삼나무 조몬스기가 있는 야쿠시마로 이주하여 날 마다 조몬스기를 생각하며 살다가 별이 되어 지구를 떠났습니다.


사회운동가이자 시인이었으며 농부이자 구도자로서 조몬스기와 함께 야쿠시마에 살았던 야마오 산세이의 삶은 지구 환경, 생태, 생명, 평화 등의 가치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연에 기대어 살고 있다는 하였더군요.


그를 더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한국어로 번역된 책 네 권을 모두 찾아 읽었는데, 앞서 <더 바랄게 없는 삶>과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소개하였으며 오늘은 <어제를 향해 걷다>를 소개합니다. 먼저 소개하였던 <여기에 사는 즐거움>과 오늘 소개하는 <어제를 향해 걷다>는 모두 절판된 책을 헌책방에서 구입하였습니다.


도서관에서도 빌릴 수 있는 책이었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있는 책은 마음대로 책장을 접을 수도 없고, 밑줄을 그을 수도 없어 제 적성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웬만하면 책은 사서 읽는 편입니다.  


이 책들은 헌책방에서 샀지만 출판 당시 책에 표시된 정가보다 더 비싼 값을 주고 샀습니다. 헌책방 하시는 분들의 안목이 높은 때문인지 절판된지 오래되어 구하기 어려운 책이 아닌데도, 원래 가격보다 비싸게 팔고 있더군요.


새 책보다 비싼 헌 책...헌 책방 사장님의 안목일까?


2006년에 번역 초판이 나왔던 <어제를 향해 걷다>는 야마오 산세이의 일본어 판 책 <조몬 삼나무의 그늘 아래서>와 <회귀하는 날들의 일기> 중 일부를 우리말로 옮겨 <어제를 향해 걷다>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고 합니다.


택배로 받은 책을 펼쳐보면서 일기처럼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과연 책의 일부는 원래 일본에서는 <회귀하는 날들의 일기>로 출판되었더군요. 이 책은 고향에 관한 이야기, 자연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 자급자족하는 생활 이야기, 예배와 기도 명상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이야기로 나뉘어 있습니다.


혹시 다른 책을 읽은 독자들이나 야쿠시마나 조몬스기와 관련된 TV 다큐에서 지금도 야마오 산세이의 아내 하루미씨가  옛집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신 분들도 있을텐데요. 그 때문에 저도 이 책에 나오는 '아내의 뼈를 먹다'라는 글을 읽을 때 조금 헷갈렸습니다.


제가 읽은 네 권의 책을 통해 발견한 단서들을 모아보면 야마오 산세이의 첫 번째 아내는 '준코'였던 모양입니다. <어제를 향해 걷다>에는 준코 여사의 갑작스런 죽음과 이별의 슬픔을 견디어 가는 야마오 산세이의 심경이 자세히 고백되어 있습니다. 


야마오 산세이와 함께 야쿠시마에서 살았던 준코 여사는 '지주막하출혈'이라는 흔하지 않은 증상으로 1987년 47세를 일기로 급작스런 죽음을 맞았습니다.


"의식 불명인 아내의 간호, 밤샘, 장례식, 화장, 그뒤의 초칠일까지 상주 및 승려로서의 임무를 다해 오며 그동안 거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죽고 싶을 만큼 잠을 자고 싶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마침내 몇 시간이나마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하룻밤을 지내고 맞은 열흘째 날의 아침, 맑은 하늘 아래 죽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 없는, 그런 가운데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내가 있었다." - 본문 중에서




아내 장례 치르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똥 푸는 일


급작스런 아내의 죽음 이후에 다가온 슬픔과 절망적인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내 생각이 간절한 어느 밤 야마오 산세이는 '아내의 유골'을 먹으며 그리움을 달래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깊은 슬픔에 빠져 열흘을 보낸 그가 몇 시간이나마 숙면을 취한 다음날 맨 처음 한 일이 '변소의 똥오줌을 치우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더군요.


물론 그는 평소에도 변소 치우는 일을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쓴 다른 글을 보아도 변소 치우는 일을 '명상' 하듯이 기꺼운 마음으로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똥오줌을 퍼다가 나무에 주는 일을 생명을 순환시키는 일, 생명을 살리는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일상에서도 아내의 부재를 실감하게 됩니다.


"문득 이렇게 똥을 퍼서 똥통이 깨끗하게 비더라도 더 이상 기뻐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내가 변소 치기를 좋아하는 것은 똥을 퍼내는 그 자체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아내가 그 결과를 대단히 좋아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갑자기 알게 되었다." - 본문 중에서


그는 오열어 터져나올 것 같은 충동을 이를 악물고 참고 비틀거리면서 60킬로그램쯤 되는 똥통을 메고 다리 건너 배나무 아래로 가서 변소치기를 마칩니다. 그에게 일상의 모든 일은 아내가 살아 있을 때와 아내가 죽은 후로 나뉘졌다고 하더군요. 특히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것들은 아내의 영혼이 머무는 장소들입니다.


"아내가 숨을 거둘 때 나는 분명히 보았다. 아내의 영혼은 이 섬의 최고봉인 미야노우라 산으로 날아갔다.......그때처럼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내는 갑자기 메시모리 산에서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해거름 녘의 맑은 공기 속에서 메시모리 산은 자신의 푸른 모습을 뚜렷하게 내보이고 있었고, 그 산에는 미야노우라 산에서처럼 이미 아내의 영혼이 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본문 중에서


그는 처음 야쿠시마의 최고봉인 미야노우라 산으로 갔던 아내의 영혼이 자신의 일상을 지켜볼 수 있는 집 가까운 산 메시모리로 옮겨왔다고 느낍니다. 아내가 기뻐할 만한 일을 할 때마다 자신만이 아는 표식으로 위로해줄 것이라고 믿더군요. 


이 책에는 아내가 그리워 잠못 이루던 어느 날 밤 아내의 유골을 먹은 사연, 서둘러 무덤을 만들지 않고 서재에 아내의 유골을 두고 함께 지내는 사연, 집 가까운 산비탈에 아내의 무덤을 만드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내의 영혼은 야쿠시마 최고봉 미노우라산으로 갔다


한편 2002년에 국내에 번역 된 <여기에 사는 즐거움>에는 지금도 야쿠시마의 옛집에 살고 있는 아내 '야마오 하루미' 여사가 쓴 감사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아마 1987년에 준코 여사와 사별한 후에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하루미 여사와 재혼 한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어제를 향해 걷다>에 실린 준코 여사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짧은 글 4~5편에 불과하지만 깊은 슬픔이 담긴 글이라 마음을 무겁게하더군요. 일기 형식으로 씌어진 이 책에는 저자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야마오 산세이가 야쿠시마를 고향으로 삼게 된 까닭도 씌어 있습니다.


"하지만 천명은 이미 정해져 있어 우리는 이미 이 섬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천명이란 조몬삼나무라 불리는 칠천이백 년의 할아버지 삼나무의 부름이었다. 그것이 가장 큰 힘이었다. 이 섬에서 두세 해 사는 사이 나는 그 삼나무를 어느새 '성스러운 노인'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안심을 주는 스승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 본문 중에서


야마오 산세이는 25년을 야쿠시마에 살다가 죽는 날까지 조몬스기를 스승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인간이 아닌 한 그루 나무를 스승으로 둔 것을 천명으로 여긴다고 하더군요. 그가 남긴 많은 글을 읽어보면 나무 한 그루 역시 사람만큼 귀한 생명이라는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으로 땅, 물, 바람, 나무, 불 이 다섯 가지를 듭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책을 읽어보면 이 책에 있는 글들은 모두 이 다섯가지 중요한 것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이기도 합니다.


<어제를 향해 걷다>라는 제목은 책에 담긴 60여 편의 글 중 한 편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야마오 산세이는 인간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에 관하여 깊이 성찰 하였더군요. 책 제목이기도 한 '어제를 향해 걷다'라는 글은 '자연의 시간과 인간 의식'에서 만들어지는 시간에 관하여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실은 내일을 향해 걸을 수 있는 것처럼 어제를 향해서 걸을 수 있다. 우주 식민지를 향해 걷는 것도 가능하지만 석기 문화를 향해서 걸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 시대의 큰 착각이자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예컨대 우리는 항상 '지금'이라는 순간에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 문명은 미래를 향해서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향해서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핵무기도 없고 핵발전소도 없는 과거로 가는 것이 더 나은 발전이라는 것입니다.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는 한편 날마다 돌아오고, 봄여름가을겨울로 돌아오고, 한 세대에서 또 한 세대로 돌아와도 거기서 불편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어제를 향해 걷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새로운 문명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오래된 미래'와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어제가 오늘로 오늘이 내일로 이어지는 직선의 시간, 시간의 불가역성에만 매달리면 회귀하는 시간, 순환하는 시간의 흐름을 놓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제를 향해 걷는 것이 새로운 문명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거슬러 살 수는 없다고 하지만, 야마오 산세이가 말하는 순환하는 시간, 회귀하는 시간에 주목해야 삶이 풍성해질 수 있을 겁니다. 야마오 산세이에게 회귀의 시간, 순환하는 시간에 주목하였기 때문에 나이많은 삼나무 조몬스기에 대해서는 특별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야마오 산세이는 자신을 야쿠시마로 끌어들인 성스러운 노인 조몬스기에 대하여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그가 이 섬에 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수령 7200의 조몬스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일은 물론, 노자가 하늘나라도 올라간 것,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 못 박힌 일까지 모두 지켜보았을 것이 틀림없는 그 할아버지 삼나무는 어둠이 밀려오는 숲 속에서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 본문 중에서


"수령 칠천이백 년의 조몬 삼나무는 깊은 산속에 있어 쉽게 가서 뵙기 어렵다. 하지만 도쿄에서 이섬으로 옮겨와 산 십년 동안 나는 하루도 조몬 삼나무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또한 조몬 삼나무가 나를 생각하지 않은 날도 없으리라고도 생각한다. - 본문 중에서


그는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과 공존하는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더군요. 특히 '산에서 사는 즐거움' 이라는 글에는 자연과 하나되는 경험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정말 자연을 이해하려면 노동을 통해 자연을 만나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기 합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낫으로 풀을 베다 보면 차츰 자신이 인간이기 보다는 식물과 비슷한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된다. 비를 피하지 않고 그냥 맞는 식물들의 고요와 기쁨이 가슴속에 분명하게 전해지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그에게 노동은 명상과 같은 구도 활동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자연과 공생하는 방식의 삶은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지 않으면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인간이면서 식물(농작물)과 일체감을 경험 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산이 있고, 강이 있고, 바다가 있어 사람이 살 수 있다고 하는 이 소박한 진리'가 독자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자연이 주인이고 사람이 그들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을 위해 야마오 산세이는 ▲손수 농사지어 먹는다, ▲되도록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다, ▲기도와 명상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고 집중한다 등의 생활 원칙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의 삶과 글이 생명이 서로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울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의식 불명인 아내의 간호, 밤샘, 장례식, 화장, 그뒤의 초칠일까지 상주 및 승려로서의 임무를 다해 오며 그동안 거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죽고 싶을 만큼 잠을 자고 싶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마침내 몇 시간이나마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하룻밤을 지내고 맞은 열흘째 날의 아침, 맑은 하늘 아래 죽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 없는, 그런 가운데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내가 있었다." - 본문 중에서

"문득 이렇게 똥을 퍼서 똥통이 깨끗하게 비더라도 더 이상 기뻐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내가 변소 치기를 좋아하는 것은 똥을 퍼내는 그 자체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아내가 그 결과를 대단히 좋아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갑자기 알게 되었다." - 본문 중에서

"아내가 숨을 거둘 때 나는 분명히 보았다. 아내의 영혼은 이 섬의 최고봉인 미야노우라 산으로 날아갔다.......그때처럼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내는 갑자기 메시모리 산에서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해거름 녘의 맑은 공기 속에서 메시모리 산은 자신의 푸른 모습을 뚜렷하게 내보이고 있었고, 그 산에는 미야노우라 산에서처럼 이미 아내의 영혼이 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본문 중에서

"하지만 천명은 이미 정해져 있어 우리는 이미 이 섬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천명이란 조몬삼나무라 불리는 칠천이백 년의 할아버지 삼나무의 부름이었다. 그것이 가장 큰 힘이었다. 이 섬에서 두세 해 사는 사이 나는 그 삼나무를 어느새 `성스러운 노인`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안심을 주는 스승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 본문 중에서

"우리는 실은 내일을 향해 걸을 수 있는 것처럼 어제를 향해서 걸을 수 있다. 우주 식민지를 향해 걷는 것도 가능하지만 석기 문화를 향해서 걸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 시대의 큰 착각이자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는 한편 날마다 돌아오고, 봄여름가을겨울로 돌아오고, 한 세대에서 또 한 세대로 돌아와도 거기서 불편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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